--고립은 도시주의의 현실이지만, 그 고립의 일반 운동은
반드시 계획될 수 있는 생산과 소비라는 요구에 의존하여
노동자들의 통제되는 재통합을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체제 내로의 통합은 고립된 개개인들이 재포획되고
함께 고립되어 있기를 요구한다.
다시 말해 공장들과 문화시설들, 관광단지와 주택개발은
명백히 고립된 개인권리를 따라가 마침내 가족세포까지 쫓아가는
이 사이비 공동체에 봉사하기 위해 조직된다.
스펙터클적 메시지를 수신하는 기기들의 광범위한 활용으로 인해
개인은 자신의 고립을 지배적인 이미지들 - 그 힘은 바로 이 고립으로부터
끌어오는 이미지들 - 로 채울 수 있게 된다.
(기 드보르 <스펙터클의 사회>139쪽)
1.
어제 아침 방송에선가 얼핏 우리나라 인구가 오천만 명을 넘어섰으며
그 절반이 수도권에 밀집되어 있다는 뉴스를 접했다.
아침밥을 준비하고 아이 등교 준비를 돕는 바쁜 시간이라 그냥 흘려들었는데
어젯밤 '도시적 생산조건에 의해 위험할 정도로 군집하게 된 노동자들(138쪽)'
어쩌고 하는 구절을 읽다보니 문득 아침의 그 뉴스가 생각 났다.
어제 내 눈에 들어온 또 하나의 뉴스는 해고된 E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계비 지원 약속을 어겼다는 민주노총 소식이다.
겨우 9월 한 달, 약속한 50만 원씩을 지급할 수 있었다는 것인데
지원을 약속한 산하 15개 연맹의 납부율이 21프로에 그쳐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대기업 정규직 조합원이 많을수록 납부율이 저조한데 제일 기가 막힌 건
언론노조와 교수노조는 그나마 예정액 중 한푼도 내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 그럴 줄 알았다. 서비스연맹과 여성연맹, 보건의료노조의 순으로
납부금액과 납부율이 제일 높았다.)
2.
10년 구독하던 신문을 끊은 지 1년이 넘었는데 문득 신문의 냄새와 촉감이 그리워
어제 다시 구독 신청을 했다.
컴퓨터를 켜면 굳이 내가 알고 싶지도 않은 괴상한 뉴스들이 무차별로 달려든다.
이혼소송에 휘말린 연예인 부부의 잠자리 횟수까지 알게 되고
한 방송 프로그램에 첫 출연해 남자 패널들의 혼을 빼놓은 외국인 미녀가 얼마나 섹시한지
남이 퍼다놓은 동영상으로 확인한다. 침울한 낯짝으로......
내것이 아닌 미모와 몸매와 거액과 남의 로맨스와 질탕과 끌탕을 훔쳐보며
아까운 시간을 흘려 보내는 꼴이라니.
그런 의미에서 오늘 아침, 오랜만에 커피를 마시며 내가 선택한 신문과 기사를
골라 읽는 기분이 썩 괜찮았다.
신문과 관련하여 생각나는 이야기.
얼마 전 부산에 내려갔을 때 방에 굴러다니는 신문이 하도 꼬질꼬질해
무심코 버리려고 했더니 엄마가 못 버리게 했다.
아직 다 못 읽었다고.
예전부터 정치에 얼마나 관심이 많았던지, 어쩌다 우리가 <신동아> 한 권을 사면
처음부터 끝까지 구석구석 읽는 사람이 당신이었다.
요즘은 사나흘에 한 번 가까운 신문 지국에 가서 남는 신문 있으면 한 부 달라고 하여
얻어 읽는다는 것이다.(허탕 칠 때도 있다니 가슴이 찡했다.)
엄마 앞으로 신문 구독을 신청하겠다고 했더니 그럴 필요가 없다고 극구 말리셨다.
이번에 박완서의 책을 몇 권 가져다 드렸더니 아주 좋아하셨는데
생각난 김에 그의 모든 책들을 읽게 해드려야겠다.
3.
수잔 손택의 <타인의 고통>을 읽다가 기 드보르의 <스펙터클의 사회>를 읽고,
오래 전 건성으로 읽어치운 하비 콕스의 <세속도시>가 문득 생각나 책꽂이에서 빼들었다.
이상하게 요즘은 책을 이런 식으로 엄벙덤벙 읽게 된다.
마무리는 최승호 시인의 <세속도시의 즐거움>이 어떨까 싶은데,
아쉽게도 그의 시집이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