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쉰 살이 넘어가면서 50년 묵은 내 우울을 떨쳐버렸는데,
그건 대단한 경험이 아니에요. 애인한테서 전화가 안 와서 짜증 내다
전화가 오는 것, 인생은 그런 건줄로만 알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그 전화라는 게 원래 없는 거라는 걸
안 거예요. 언젠가는 전화가 오는 게 아니라...
그걸 알고 나서 우울을 벗어버렸죠.
(<행복이 가득한 집> 2008,12월, 가수 김창완 인터뷰)
비디오대여점에서 아이가 만화를 고르는 동안 잡지를 펼쳤는데
김창완의 인터뷰 기사가 딱 눈에 띄었다.
대강 읽어내려 가는데 김창완의 저 말이 시선을 붙잡고 안 놓아주었다.
애인에게서 오다말다하는 전화 정도로 인생을 비유하는 솜씨라니!
맛있는 음식이라면 아무리 먼 곳이라도 찾아다니며 먹었는데
이제는 밥과 김치만 있어도 맛있고 만족한다는 그다.
얼마 전 집 근처 극장에서 영화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를 봤다.
맛있는 케이크라면 환장하는 유괴범 '흰수염' 역을 맡았는데
그 모습이 정말 섬뜩하고 기괴했다.
마성의 게이나, 야성의 소년 꽃미남이나, 심지어 가게 진열장 속의
화려한 케이크들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아 하품을 참고 있었는데
극 중 김창완은 유괴범이라기보다 '늙은 은둔형 외톨이'의 모습으로
단번에 내 시선을 빼앗았다.
그는 내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또다른 얼굴을 보여주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무슨 역할을 맡건 기다렸다는 듯
필요한 마스크를 꺼내어 쓰는 그에게도 아쉬움이 남는 작품은 있다.
죽음의 형식을 다룬 영화 <굿'바이>와 비교해 볼 때
<행복한 장의사>(1999년)가 그렇다.
1990년대 중반에 나온 <집에 가는 길> 이후 그는 <이제야 보이네>라는
제목으로 두 번째 산문집을 냈다.
두 번째 산문집이 나온 무렵에 그는 북새통과의 인터뷰(2005년)에서
이런 말을 했다.(궁금해서 찾아봤다.)
북새통(박종호) : 책에서 ‘나는 실제로 자유로운 사람도 아니고,
자유로운 사람이 되기를 원치도 않는다’고 하셨는데
어떤 의미입니까?
김창완 : 우리가 자유라고 하는 것은 현재로부터 얼마만큼 떨어져 있느냐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자유라는 것은
나에게 필요치 않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전 현재, 지금 이 순간에 있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자체가 자유롭지 않다면 거기서부터 벗어남으로써 얻어지는
도피적 자유로움도 알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제야 보이네> 출간 후 북새통과의 인터뷰에서 자유에 대해
피력한 지 3년이 흘렀다.
그런데, 그는, 정말로, 뭐가, 보이긴 보이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