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사계절로 비유하는 일은 진부하지만 그것만큼 인생의 시기를 잘 표현하는 말도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모두에게 획일적인 계절을 대입하는 건 좋지 않다. 나만의 시간이 있고 나만의 계절이 있으니까. 지금 어떤 계절을 살아가고 있는지 아는 이는 오직 한 사람, 자신뿐이다. 살다 보니 별일을 다 겪고 과거에는 상상조차 못했던 일상을 살아가는 일, 그게 인생이라는 걸 느낀다. 그러나 여전히 인생을 아는 일은 어렵고 꿋꿋하게 노년의 삶을 이어가는 분들을 보면 존경스럽다.


어린 시절에는 그냥 늙는다고 여겼다. 나이를 먹으면 저절로 어른이 되고 뭐든 막힘없이 다 해결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 삶이 얼마나 고단하고 어떻게든 버텨내는 것이라는 걸 조금씩 배우고 깨닫는다. 최근 친구들과 통화를 하면서 사는 게 참 어려운데 그 시간을 견디고 살아낸 할머니들이 대단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70대 중반에 그림을 그리리 시작한 모지스 할머니도 마찬가지다. 『인생의 봄에는 할 일이 참 많습니다』를 통해서 나는 알지 못하는 인생의 비밀과 감사를 만난다.


역사의 기록에서나 만날 시대, 1860년에 태어나 결혼해서 10명의 아이를 낳았지만 다섯 명만 키우고 70세 이후에 그림을 그리면서 유명해진 그녀는 93세에 <타임> 표지 장식을 하기에 이르렀다. 100세에는 모지스 할머니의 날로 지정까지 받았다. 그런 할머니의 말에는 뭔가 특별한 게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기사, 인터뷰, 구술, 편지를 통해 모은 할머니의 말들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났을 때 솔직하고 평범해서 놀라고 긍정적인 태도에 위로를 받는다. 인생의 질문에 해답 책처럼 아무 곳이나 펼쳐도 명쾌하게 답을 제시한다고 할까. 아마도 내가 경험하지 못한 시간이 있기에 가능할 것이다.


불안과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도전과 시도는 대단한 결심 이후에 시작되어야 할 과정 같지만 “일단 해보면 되겠지요”란 할머니 말엔 어떤 핑계도 통하지 않는다. 해보지도 않고 이런저런 핑계와 변명을 내세우는 내 모습이 부끄럽다. 까짓것, 해보고 안 되면 말지, 하는 마음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한바탕 시원하게 웃고 나면 그 힘으로 또다시 살아갑니다”란 말은 왠지 호통과도 같이 들린다. 한바탕 시원하게 웃었던 때가 언제였나 싶은 거다.


모든 삶이 그렇듯 언제나 좋은 시절, 좋은 기억으로 생을 채울 수는 없다. 알면서도 우리는 때로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 시절에 머물곤 하다. 그냥 지나간 대로 두지 못해서 안달을 내기도 한다. 그러다 이런 할머니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든다. 세계대전이라는 전쟁을 두 번이나 겪고 아이를 잃은 상실과 함께 101세까지 살아온 할머니도 있는데 고작 나의 슬픔에 매몰되어 상처에 전착하다니.


지나간 일은 지나간 대로, 그렇게.

살다 보니, 실망스러운 일이 있더라도 불평하지 말고 지나간 일은 지나간 대로, 그렇게 흘러나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27쪽)


어떻게든 삶은 계속되고 우리는 살아간다. 3년 전의 봄은 마스크 한 장에 울고 자가격리와 코로나 확진에 대한 공포로 무너진 일상이었지만 지금 우리는 마스크를 벗고 봄을 맞는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고 튀르키예 지진으로 많은 이들이 생명을 잃었다. 고공행진하는 물가와 어려운 살림살이로 하루하루 사는 게 버겁지만 할머니의 말처럼 감사할 것들은 차고 넘친다.


하지만 감사할 일은 너무도 많습니다.

추수감사절에는 웃음꽃이 피어나는 집이 있는가 하면 슬픔에 잠기는 집도 있습니다. 하지만 감사할 일들은 너무도 많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축복과 풍요로움에 감사해야겠지요. (210쪽)


이렇게 귀한 말을 읽고 그것을 기록하고 나눌 수 있는 것도. 101살이라는 나이, 나는 감히 상상할 수 없지만 알 수 없는 내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삶은 아름답다는 걸 이제 나는 안다. 잘 사는 게 뭔지 모르지만 잘 살아야지 싶다.


모지스 할머니의 『인생의 봄에는 할 일이 참 많습니다』를 읽다 보니 생각나는 할머니가 있다. 모지스 할머니처럼 101세까지 산 실존 인물이 아닌 일흔넷의 소설 속 할머니. 젊은 할머니라고 해야 할까. 와카타케 치사코의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속 일흔넷 모모코 할머니. 남편은 죽고 자식은 분가했다. 말 그대로 홀가분하게 산다. 자식과 즐겁게 소통하지 않는다. 조금은 쓸쓸하게 혼잣말을 하고 스스로와 대화한다.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고 자신과 닮은 이들의 모습을 관찰한다.


모지스 할머니의 활기 넘치는 모습과 대조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두 할머니의 모습은 곧 우리가 마주하는 미래의 모습이 될 수 있다. 누군나 늦은 나이에도 뭔가 시작하고 하루하루 신 나게 살겠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도 있으니까.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낸 할머니들, 그 나이가 거저 오는 게 아니라는 걸 주변의 어르신을 통해 느낀다.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속 모모코 할머니처럼 혼자서 남은 생을 살아야 하는 이들도 많다. 어떤 삶이 더 좋거나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삶이란 각자의 못이니까. 정반대의 모습이라 할지라도 누구 하나의 삶을 응원하는 쪽 아니라 모든 삶을 응원한다. 나 역시 그 삶 가운데 하나로 살아갈 테니까.


수많은 모모코 씨가 있다. 수많은 모모코 씨가 간다. 모모코 씨가 모모코 씨의 어깨를 끌어안고, 손을 끌어당기며, 등을 밀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 길이 얼마나 따듯하던지.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 138쪽)


주어진 하루가 버겁고 다가올 내일을 어떻게 채워야 하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하루를 맞았고 주어진 하루에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내가 살아가는 인생이 도달할 계절을 그려본다.아직은 봄이라고 우겨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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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먼지 2023-04-14 1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글 읽으면서 노년의 삶을 기록한 또 다른 여성작가가 누가 있을까 떠올려봤는데 소노 아야코도 있네요!! 이 할머니는 조금 까칠하신 편!! 인용해주신 부분을 그냥 읽었으면 제가 좀 삐뚤게 받아들였을 것 같은데 미리 모지스 할머니의 인생을 설명해주셔서 모난 마음을 가라앉히고 곱씹어보게 됩니다!! 인생의 계절이 봄부터 시작하진 않는 것 같아요!! 제겐 겨울부터 온 것 같은데 그래서 지금이 봄입니다❤️

자목련 2023-04-17 09:54   좋아요 1 | URL
소노 아야코 검색해 보고 알았어요. <약간의 거리를 둔다>로 만난 작가였는데 1931년생인 줄 몰랐어요. 책먼지 님의 봄을 응원합니다. 활기차고 환할 봄!!
 
안녕하세요, 마르탱네 사람들입니다
다비드 포앙키노스 지음, 윤미연 옮김 / 망고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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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가 찾아와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한다면 수락할 이가 얼마나 될까? 수상한 사람이라고 신고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상대가 작가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나를 모르는 누군가에게 아무런 부담 없이 나의 고민이나 걱정을 털어놓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게 인간이다. 익명성 때문에 뭐든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게시판이 인기 있는 것처럼.


프랑스 소설 『안녕하세요, 마르탱네 사람들입니다』는 그런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소설의 시작은 조금 엉뚱하다. 영감과 열정을 잃어버린 작가가 ‘나’는 거리로 나가 맨 처음 마주치는 사람을 주제로 책을 쓰겠다고 다짐한다. 그렇게 만난 사람은 평범한 할머니였다. 놀랍게도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할머니 마들렌은 나의 제안을 수락한다. 42년 전부터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지만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다. 세상이란 이런 곳이다. 근처에 살더라도 얼굴을 모르고 살아간다. 그런 점에서 우연성이야말로 특별하다. 마들렌이 남편의 이야기를 시작할 즈음 둘째 딸 ‘발레리’가 등장한다. 발레리는 마들렌에게 치매 증상이 있다고 알려주며 나와의 인터뷰가 무리가 되지 않을까 염려한다.


소설은 이제 마들렌과 ‘나’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가족 전체로 확대된다. 발레리가 나를 저녁식사에 초대했고 이 프로젝트에 동참하게 된다. 발레리, 그녀의 남편 ‘파트릭’, 십 대의 딸 ‘룰라’와 아들 ‘제레미’까지. 사실 소설에 등장하는 이 가족은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이들이다. 너무 흔한 ‘마르탱’이라니 성처럼 말이다. 하지만 어느 집이나 그들만의 사정이 있고 비밀이 있듯 발레리의 가족도 그러했다. 가족의 이야기를 써줄 전기작가의 등장으로 호들갑을 떨지만 나에게 들려주는 건 그동안 가족에게 말하지 못한 것들이다.


신기한 건 그들과 ‘나’의 만남이 별거 없을 것 같은데 이상하게 빠져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마르탱네 가족이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는지, 차마 가족에게는 말하지 못하는 사정이 무엇인지 나도 모르게 그들에게 공감하고 귀를 기울이게 된다는 거다. 그건 ‘나’ 도 마찬가지로 발레리의 질문에 답을 하면서 점점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된다. 동거했던 여자친구와의 만남과 이별. 계획에 없던 말들을 하게 된다. 오롯이 소설을 전제로 만났지만 조금씩 그들의 가족에게 물드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권태와 피로에 진력이 난 한 가정에 스며들어 갔다. 이 가족은 정해진 루틴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함께 살면서도 서로 얼굴을 부딪히는 이리 없이 그저 스치듯 지나가는 탑승자들. 아파트의 이런 비극이 흔한 것이라 해도, 흔하다고 해서 고통스럽지 않다는 건 아닐 것이다. 그 삶은 권태와 피로를 느끼는 기계장치에 불과할까? (52쪽)


아무런 설명 없이 떠나간 첫사랑을 만나고 싶은 할머니 마들렌, 남편 파트릭과 시들해진 관계를 고민하고 이별을 결심한 발레리, 직장 상사와의 갈등과 가족 간의 소통 부재로 힘든 파트릭, 모든 관심이 SNS와 축구인 제레미, 가족이 과는 거의 말을 하지 않는 룰라. 어쩌다 보니 ‘나’는 마르탱네 사람들의 사람들의 모든 걸 알게 되었다. 룰라가 사귀는 남학생을 만나게 되고, 발레리의 생각도 모르고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는 파트릭, ‘나’는 둘 사이에서 무슨 역할이라도 해야 하나 고민한다.


나는 마르탱 가족에게 가능한 한 감정 이입되지 않으려 노력하며서 그들을 관찰해야 했다. 약간 냉담하게, 임상적으로, 일종의 서사적 거기를 유지하면서. 하지만 그렇게 하면서 글을 쓰는 건 불가능하다.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인물을 유기적으로 느끼지 않고는 글을 쓸 수 없으니까. (145쪽)


‘나’의 노력으로 뉴욕에 살고 있는 첫사랑과 연락이 닿아 그를 만나러 여행을 떠나기로 했고 소설 때문에 늦은 시간 발레리와의 만남은 파트릭을 자극했고, 그 일로 둘은 서로를 향한 마음을 알게 되었다. 파트릭에게 발레리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말이다. 갑질하는 사장에게 자신만의 방법으로 복수하며 사직한 파트릭을 발레리는 응원했고 가족은 더욱 단단해진다. 결말에 이를수록 더욱 흥미진진하다. 마치 우리네 생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며 삶이란 살아봐야 알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말하는 듯하다.


유쾌하면서도 따뜻한 소설이다. 거기다 누구나 한 번씩 빠지는 매너리즘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소설 쓰기의 매너리즘에 빠진 작가, 부부 사이의 권태기, 직장 생활의 위기, 성장하는 자녀와 느끼는 세대 차이나 소통의 부재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마주하고 느끼는 감정들이다. 평범한 가족의 이야기는 곧 우리의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때문에 우리 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 무엇이니 이 소설은 알려준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그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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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봄은 꽃이 빨리 피어서 축제를 기획한 이들이 무척 당황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난 3년간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한 봄을 만끽하려는 사람들을 위해 꽃들이 열렸다고나 할까. 기후 위기의 증거로 자연 생태계에는 위험 신호로 받아들여야 하지만 그 사실은 망각하고 꽃에 취하고 만다. 어쨌거나 그에 발맞추려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그 무리에 끼는 일은 어렵고 아파트 한쪽에 동백나무가 꽤 크게 자란 걸 확인하는 날들이다.


봄이지만 마음은 여전히 겨울이다. 각자의 겨울은 끝나지 않았고 우리는 그 겨울 속 추위를 견딘다. 한 겹의 옷을 벗고 바람에 몸을 맡기는 연습을 하는 것처럼 조금씩 겨울에서 탈출을 시도한다. 그러다 보드라운 바람에 슬그머니 마음을 내려놓는다. 봄이구나, 봄이니까, 봄이라서 마음은 자꾸 느슨해진다.


나는 아무것도 거두지 못했다

실패한 봄이 나를 지나간 후였다

꽃이 혼자 지던 날


무게중심은 어디서나 숨길 수 없다

저기 막 사라진 사람들

고개를 숙인 사람들

앞 촉이 닳은 신발을 신은 사람들

치욕 같은 맨발을 내 보인 사람들


울고 있는 동안은

눈물에 대해 말하지 못한다


이미 나를 지내간 내 거짓말


나는 가볍고

구름은 금세 몸을 바꿔 흩어져

한 번도 우리는 우리를 관통한 적 없었다


나는 지금 울고 있는 것 아니라

막 안개를 지나온 것이거나

안개와 섞여본 적 없음을 알았을 뿐

지나가던 눈물을 훔쳐 살 뿐


그리하여 매번 너무 늦게 울었거나

안개에 얼굴을 묻는

발 없는 나무가 되고 싶었다 ( 「안개 속의 거짓말」, 전문)


아무리 지우려 노력해도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긴 줄을 세우는 그런 사월이다. 나를 지나간 거짓말들은 어디서 무엇이 되었을까. 만우절로 시작된 4월이라 그럴까. 거짓과 눈물이 나뒹구는 4월이다. 새로이 탄생할 거짓과 슬픔이 자멸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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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안개비가 내렸다. 화요일 밤부터 시작된 비는 수요일에는 흠뻑 내렸고 어제는 안개비로 오늘은 미세먼지가 그 자리를 채웠다. 아침 일찍부터 도착한 안전 안내 문자는 일상이 되었지만 익숙하다고 해서 친근한 건 아니다. 황사용 마스크를 챙겨서 사용해야 한다,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라고 가족에게 말했다.


며칠 전 언니가 마스크를 정리했다. 모든 물건이 그렇듯 마스크에도 유통기한이 있었다. 이미 많은 개수의 마스크가 유통기한이 지났고 그래도 순차적으로 사용해야 할 것이라고 정리한 것들을 식탁에 꺼내 놓았다. 나도 방에서 마스크를 찾았다. 책장에서 마스크를 꺼냈다. 여기저기 마스크가 가득했다. 여유분이라고 하기엔 많았다. 아마 가방에도 하나쯤 있을 것이다. 언제 어디서 사용하려고 챙겨둔 마스크. 예고 없이 끈이 떨어지거나 주변에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나눠주려고 한 것들.


마스크 한 장 사려고 요일에 맞춰 약국에서 대기하던 시간들, 방문한 약국에 품절된 마스크 안내문을 보고 다른 약국으로 찾아 빠르게 이동하던 순간들. 3년 전 봄은 그랬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외출을 삼가고 병원 방문도 자제하라던 그 시간이 아득히 멀게 느껴진다.


이제는 패션아이템으로 자리잡은 마스크. 생각난 김에 뉴스 기사를 검색했더니 필터 효율이 떨어지지만 밀봉된 상태면 큰 차이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면 마스크는 딱히 기간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3년이라는 시간 한 몸처럼 사용했으니 이제는 마스크가 없는 상태가 이상할 정도다. 나 역시 마스크를 벗지 않는다. 화장을 하지 않아서 정말 좋았다. 열심히 화장을 하지는 않았지만 여름에는 마스크를 쓰기 힘들 테니 그때는 화장을 하게 될 것 같다.


3월 중순부터 마스크 필수가 아닌 권고 사항이 되었고 최근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친구는 마스크를 벗는 아이들이 낯설게 느껴졌다고 한다. 초롱초롱한 눈빛만으로 표정을 확인하는 것과 얼굴 전체를 보는 일은 묘한 감정을 불러온다고. 그만큼 눈빛이 중요한 것일까.


마음의 마스크는 어떨까. 외부로부터 오는 무언가를 막아낼 마스크. 함부로 쉽게 터져 나오려는 것을 막아주는 마스크. 나는 그런 마스크가 필요한가. 이미 마음에 착용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무엇으로부터 내 마음을 보호하고 싶은 것일까. 지금은 잡념으로부터 보호하고 싶다. 쓸데없는 생각들, 의미 없는 사고들로부터 나를 보호하고자 마음의 마스크를 쓴다. 평온을 위해. 읽고 싶은 책을 고르는 일도 마스크 역할을 한다. 몇 권 골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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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3-04-07 14: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너무 좋은 책이 많이 나와요. 저도 다 읽어볼래요.

자목련 2023-04-10 09:24   좋아요 0 | URL
수이 님과 함께 읽게 될 책, 신나요!!

희선 2023-04-08 0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마스크 안 해도 된다니... 그래도 저는 그냥 나가지 못하는군요 코로나가 아주 사라진 게 아니기도 하니... 가끔 공기가 안 좋기도 하고 어제는 황사도 온다고 했군요 오늘도 공기 안 좋다고 한 듯합니다 마음에 쓰는 마스크... 있으면 좋겠네요


희선

자목련 2023-04-10 09:24   좋아요 0 | URL
미세먼지가 심각한 요즘은 계속 마스크를 착용하게 되더라고요. 희선 님, 좋은 하루 이어가세요^^
 
꼬리와 파도 - 제1회 창비교육 성장소설상 우수상 수상작 창비교육 성장소설 8
강석희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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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가장 힘든 순간 중 하나는 아무도 내 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다.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의논할 대상이 없다는 건 얼마나 막막한 일인가. 주변에 많은 사람들 가운데 내 말을 들어줄 이가 없다고 판단했을 때 그 삶은 스스로 무너진다. 그건 어른의 삶에 한정된 게 아니다. 어떤 삶을 살든, 어느 나이를 살든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가 간과하는 것도 그것이다. 그런 마음은 모두에게 해당된다는 사실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다는 막연한 말은 무책임하다.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말이다.


제1회 창비교육 성장소설상 수상작 『꼬리와 파도』은 그런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비겁한 어른, 상처를 지닌 아이를 이용하는 몹쓸 어른, 지위를 이용해 폭력을 일삼는 어른, 그들을 상대로 연대하며 단단하게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대견하면서도 아프다. 주변에 의논하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어른이 없다는 게 안타깝고 부끄럽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폭력의 현장과 실태를 교육 현장인 학교에서 마주한다. 그들만의 위계라 여기며 여전히 자행되는 운동부의 모습, 성적을 내기 위한 방법으로 무자비한 훈련을 강행하는 코치, 고교 진학을 위해 약자가 되어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하는 아이들. 그 아이들 가운데 여자 중학교 축구 선수 무경이 있었다. 무경은 축구가 좋았고 친구 지선과 함께 운동하며 우승을 꿈꾸고 국가대표가 목표였다. 그런데 지선이 어려움을 당했다. 합숙 훈련소에서 남학생에게 추행을 당하는 순간 도와준 코치가 그것을 빌미로 지선을 괴롭혔다. 무경은 참을 수 없었고 도움을 청했지만 돌아오는 건 지선을 향한 공격과 상처뿐이었다.


지선은 학교를 그만두고 무경은 전학을 왔다. 고등학생이 된 무경은 축구 선수 대신 체육 교사가 되기 위해 태권도 도장을 다닌다. 그곳에서 중학생 예찬을 보게 된다. 예찬은 도장에서 약한 아이였다. 태권도를 잘한다는 이유로 띠가 다르다는 이유로 대련을 핑계로 폭행이 이어졌다. 그 중심엔 고등학생 황동수가 있었다. 예찬은 학교에서도 따돌림을 당했다. 그런 예찬에게 무경은 뭔가 달랐다. 태권도를 잘 하면서도 상대를 무시하지 않았고 자신을 도와줬다. 좋아하는 마음이 생겼고 뭔가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다. 그러데 하계 훈련을 다녀온 후 무경과 동수 사이가 심각해 보였다.


동수는 무경의 선배 서연과 사귀면서 무경에게 호감을 느꼈다. 무경은 아니었다. 무경의 자취 집에 동수가 찾아오고 그 광경을 예찬과 서연이 목격했다. 동수는 자신을 좋아하는 서연의 감정을 이용해 폭력을 가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서연은 상담을 신청하고 상담교사에게 의지하지만 상담교사는 이성적인 호감을 표한다. 서연의 경우도 무경의 친구 지선과 다르지 않았다. 어디에도 교사로 존재하는 선생님은 없었다. 학교의 위신이 중요했고 서연의 책임으로 돌렸다.


서연은 현정을 통해 무경을 찾아왔다. 현정은 서연과 같은 학년으로 무경과 친하게 지냈다. 현경에게도 지선과 같은 친구 미란이 있었다. 어디서든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는 게 현실이었다. 서연은 무경의 축구 선수였던 시절의 이야기를 퍼트린 일을 사과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지키기로 한다. 작은 연대가 시작된 것이다. 꼬리에 꼬리를 이어 만든 리본은 파도가 되었다. 그 리본에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어른들은 감추려고 급급했지만 아이들은 있는 그대로 세상에 내보였다.


선생이라는 위치로 행한 폭력, 농담을 빙자한 성추행과 언어폭력, 휴직으로 모면한 사과, 피해자를 더욱 힘들게 만드는 현실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가득하다. 작가는 현직 교사의 시선으로 학교에서 발생하는 폭력에 대해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문제를 축소시키고 자신의 안위만 염려하는 학교, 그 안에서 아이들을 대변하는 선생님을 향한 질책과 부당한 대우까지. 학교라는 공간은 사회로 확장되어 독자에게 전달된다. 사회 곳곳에 약자를 향한 폭력, 데이트 폭력, 스토킹의 대상은 대부분 여성이다.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더욱 가혹한 사회. 폭력에 대처하는 올바른 자세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도움을 구하는 이가 가장 원하는 게 무엇인지도 말이다. 더 이상 피해자만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혼자가 아니라는 걸, 곁에 우리가 있다는 걸, 연대를 통해 치유하고 성장하는 아름다운 소설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한다.


우리가 지켜 줄게. 혼자서는 못하지만 우리가 되어, 너를 지켜 줄게. (2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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