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자일스의 나환자 캐드펠 수사 시리즈 5
엘리스 피터스 지음, 이창남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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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볼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상식을 파괴하는 무자비한 인간의 행동. 인간이 어떻게 그런 짓까지 할 수 있을까. 인간의 심연에는 무엇이 있을까. 욕망을 부정할 수 없지만 비뚤어진 욕망은 제재가 필요하다. 올바른 길로 이끌 어른 같은 존재도 필요하다. 엘리스 피터스의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주인공 캐드펠 수사야말로 그런 어른이 아닐까. 조만간 AI가 존경받는 어른도 만들어낼지도 모르지만 어딘가 캐드펠 수사가 존재하면 좋겠다. 서두가 길다. 『세인트자일스의 나환자』를 만나볼까.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번 이야기엔 나환자가 등장한다.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르 수도원의 캐드펠 수사는 수도원 가까이에 있는 세인트자일스 병원으로 향한다. 주로 나병 환자들이 생활하는 곳으로 환자들에게 허브 치료제를 전해주기 위해서다. 캐드펠을 보자 그곳에 있던 마크 수사는 반가움을 표한다. 캐드펠의 조수 마크 수사는 제법 어엿한 수사의 모습이 보인다. 때마침 수도원에서 혼례식을 치를 예정인 귀족들이 도착하는 날로 병원 앞을 지나는 일행을 보기 위해 나환자들이 가득했다. 귀족을 호위한 이들이 나환자들을 몰아내고 소리를 지르자 피했지만 유독 한 사람만은 꼿꼿하게 어딘가를 응시했다. 그의 이름을 라자루스, 보통의 나환자와 달랐다. 『세인트자일스의 나환자』의 주인공일까.


그건 그렇고 신랑 휴언 드 돔빌은 육십을 바라보는 노인이었고 신부 이베타는 겨우 열여덟 살이라는 사실에 캐드펠은 경악한다. 세상에 어떤 부모가 이런 혼례를 승낙했을까. 소녀의 보호자는 부모가 아닌 외숙 부부였다. 소녀에게 남겨진 막대한 유산을 갖기 위한 거례가 바로 이 혼례였다. 외숙 부부에겐 무사히 이 혼례식을 마치는 게 중요했다. 조카딸에게 어떤 일도 일어나선 안 되었다.


그런데 혼례식 당일, 아무리 기다려도 신랑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이제라도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면 다행인데 들려오는 소식은 돔빌의 사망 소식이었다. 혼례 전날 하인도 없이 혼자 수도원 밖을 나갔다가 시체로 발견된 것이다. 밤사이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을 타고 어디로 가려 했는지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베타의 주변 인물이 용의자가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베타를 사랑하는 이가 있었으니 그는 돔빌의 하인 조슬린이었다. 돔빌도 그 사실을 알고 그에게 도둑 누명을 씌워 해고했다. 이쯤 되면 나 같은 독자도 알 수 있다. 용의자가 된 조슬린은 절대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한편 도망친 조슬린은 나환자가 있는 세인트자일스 병원으로 숨어들었다. 조슬린은 친구인 사이먼의 도움으로 이베타에게 연락을 하고 도망칠 계획을 세운다. 얼굴을 가렸지만 손이 깨끗한 새로온 환자를 마크 수사는 조용히 관찰한다. 그에게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을지도 몰랐다. 이게 다 캐드펠 수사에게 배운 것이다.


마크 수사를 꼼짝 못하게 붙들어둔 건, 약속이나 한 듯 그자를 감싸는 환자들의 행동이었다. 아무런 이야기도 설명도 없이. 고통받고 있는 환자 모두가 침묵의 연대로 그의 불행을 함께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마크 수사는 경솔한 사람이 아니었다. 감히 그 물결을 거스르거나 그들의 판단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었다. (169쪽)


캐드펠 수사는 돔빌의 행적을 추적한다. 밤이 지나면 어린 신부를 맞이할 신랑이 향한 곳이 어디이며 그의 죽음으로 큰 이익을 얻을 이에 대해서. 돔빌의 조카 사이먼도 모른다고 하니 단서를 찾을 수 있을까. 걱정은 접어두자. 설마 우리의 캐드펠 수사가 놓치는 게 있을까.


말을 타고 나갈 때 썼던 모자가 시체에는 없었다. 시체의 근처에서 찾은 모자에는 캐드펠 수사만이 알아차릴 게 있었으니 바로 허브였다. 그 허브가 어디서 자라는 곳을 찾으면서 캐드펠 수사의 추리는 급물살을 탄다. 놀랍게도 돔빌에는 여자가 있었고 어디를 가든 동행하고 만남을 지속했다. 오랜 만남의 주인공이 배신감에 돔빌을 죽였을까. 진실은 달랐다. 여자는 단 한 번도 돔빌을 사랑한 적이 없었고 그 밤의 만남을 끝으로 수녀가 된 상태였다. 유력한 용의자였던 여자도 범인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 이베타의 외숙부까지 살해당한다.


『세인트자일스의 나환자』는 묘한 분위기의 나환자 라자루스의 정체와 범인이 밝혀지며 소설은 나름 해피엔딩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인간의 추악한 욕망을 마주하니 애처롭고 안타깝다. 부와 권력을 다 지녔지만 사랑은 얻을 수 없었던 돔빌, 오직 재산만이 전부였던 이베타의 외숙부,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인을 저지른 범인의 마지막은 처량하다. 흉악하고 추한 인간의 욕망 끝에는 파멸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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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제스틱 극장에 빛이 쏟아지면
매튜 퀵 지음, 박산호 옮김 / 미디어창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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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간을 견디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있다면 알고 싶다. 지극히 주관적인 슬픔은 객관화될 수 없기에 더욱 고통스럽다. 누군가 괜찮냐 묻고 누군가 괜찮아질 거라 말해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알 수 없는 시간이 지나야 괜찮아질 수 있다. 아주 천천히, 아주 느리게 말이다. 오롯이 혼자 나올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 시간을 돌아보면 결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안다. 우리가 있었기에, 서로를 지탱하는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걸 말이다.


매튜 퀵의 장편소설 『머제스틱 극장에 빛이 쏟아지면』은 그런 소설이다. 그러니까 견딜 수 없어 사라지고 싶은 순간, 현실을 부정하고 나만의 시간으로 도망치는 이를 가만히 지켜봐 주고 기다리는 이가 있다는 걸 알려주는 소설.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다정하고 뜨겁게 안아주는 소설이다. 그들이 같은 상처를 가진 이라면 그게 가능하다고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래서 가장 강력한 위로로 다가오는 게 아닐까.


『머제스틱 극장에 빛이 쏟아지면』의 루카스는 마제스틱 극장에서 일어난 참사로 아내 다아시를 잃었다. 소설은 처음부터 슬픔을 공개하지만 구체적인 설명은 하지 않는다. 모든 건 루카스의 정신분석을 맡았던 칼에서 보낸 편지로 이어진다. 칼 역시 머제스틱 극장 사고로 아내를 잃은 피해자였다. 그 사건으로 모두 열일곱 명이 죽었다. 도대체 극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소설은 사건과 칼이 왜 답장을 하지 않는지 궁금증을 안겨준다. 루카스가 칼에게 보낸 편지만을 통해 독자는 짐작할 뿐이다.


루카스에겐 비밀이 있다. 다아시가 천사가 되어 자신의 곁에 있다. 증거도 있다. 아침마다 다아시의 천사 날개 깃털을 모은다. 그건 다른 이들에게는 비밀이다. 오직 칼에게만 털어놓을 수 있다. 루카스의 집에서 같이 지내는 다아시의 절친 질에게도 말해선 안된다. 루카스는 학교에서 상담 교사로 일했지만 사고 이후로 그만둔 상태다. 칼에게 정신 분석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편지를 쓰는 게 일상의 전부다. 루카스의 일상은 머제스틱 극장 사고의 가해자 제이콥의 동생 앨리의 등장으로 변화한다. 앨리가 루카스 집의 뒷마당에 텐트를 치고 들어왔다. 앨리 역시 마제스틱 극장 사고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학교에서 앨리를 상담했던 루카스는 앨리를 내보내는 대신 함께 지낸다.


앨리가 일상을 찾을 수 있도록 돕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는 방법이 무언인가 찾는다. 앨리의 제안으로 자신에게 일어난 마제스틱 극장의 사고를 영화를 만들기로 한다. 머제스틱 극장의 사건을 괴물로 설정하고 괴물을 어떻게 물리치고 나가는지 보여줄 생각이다. 그건 사고로 가족을 잃은 피해자이자 생존자인 모두에게 필요한 일이었다. 질을 비롯해 루카스의 친구들과 사고 관련자인 마을 사람들이 영화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같은 상처를 지녔기에 마을 사람들은 서로 돕는다. 각자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분담하며 영화를 만든다. 영화는 그들을 연결시켰고 끈끈하게 만들었다.


“그 비극이 일어난 후, 비탄에 젖은 내 일부가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어요. 마치 괴물처럼요. 상상도 할 수 없는 운명에 감염된 사람 같았어요.”


“우리가 괴물로 만든 사람들도 있어요. 아무 잘못도 없는데 사람들이 던지는 비난의 대상이 되고 따돌림을 받은 사람들. 자신이 너무나 비천한 존재라고 느껴 스스로 소외된 사람들.” (134쪽)


루카스는 이 모든 과정을 칼에게 편지로 전한다. 앨리가 입을 괴물을 깃털로 표현하는 일부터 가장 강력하게 반대 의사를 전한 인물을 설득하는 일까지 하나하나 칼에게 말한다. 루카스는 앨리와 함께 조금씩 나아간다. 조금씩 괜찮아지는 것 같다. 머제스틱 극장에서 영화 상영회를 할 때 루카스가 연설도 할 예정이다. 질이 끝까지 만류하고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지만 루카스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정말 괜찮아질 수 있다고 말이다.


자신의 모든 걸 보여주고 이야기할 수 있는 통로로 편지만큼 완벽한 게 있을까. 혼자만의 기록인 일기가 아닌 수신인이 있는 편지는 일종의 고백이었고 치유와 회복의 과정이었다.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오래된 상처와 트라우마를 루카스는 칼에게 쓰는 편지를 통해 내려놓을 수 있었다. 부모에게 받지 못한 인정과 사랑이 얼마나 큰 상처로 남는지 알기에 루카스는 앨리를 보살피고 보듬는 게 가능했다. 상처와 고통의 공간인 머제스틱 극장을 찾을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 용기가 참담한 결과로 이어졌더라도 말이다.


매튜 퀵의 『머제스틱 극장에 빛이 쏟아지면』 아프지만 아름답다. 어둠을 통과하는 소설이다. 어둠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려준다. 암담하고 온통 칡 흙 같은 어둠의 세계에도 끝이 있다고 말한다. 혼자만 어둠 속에 있는 게 아니라고. 처음엔 약하지만 연대하는 우리의 모습을 통해 삶은 단단하게 나가가는 거라고. 마침내 마주할 빛을 향해서 말이다.


저 빛 속에 우리가 있어. 이 방에 있는 사람들 모두와 머제스틱 마을 사람들이.

우리.

우리가 빛이에요. (3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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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드로 축일 캐드펠 수사 시리즈 4
엘리스 피터스 지음, 송은경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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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는 모두를 즐겁게 한다. 종교와 상관없이 크리스마스엔 너도 나도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석가탄신일에는 가족 건강을 기원하며 등을 밝힌다. 축제를 즐기는 이들을 상대로 물건을 파는 상인들은 분주해진다. 대목을 포기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슈루즈베리의 마을 사람들은 사정이 달랐다. 성 베드로 축일 이틀 전인 1139년 7월 30일,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르 수도원은 분위기가 심각하다.


제프리 코비저 시장을 필두로 상인들이 헤리버트 수도원장 후임으로 새로 부임한 라둘푸스 수도원장을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들의 용건은 축일장 수익의 1할을 요구였다. 내전으로 파손된 성벽과 도로 복구를 위한 비용 충당을 위한 합당한 제시라고 주장했다. 축일장이 열리는 3일 동안 시장 상인들은 장사를 접어야 하는 피해를 설명했다. 그러나 라둘푸스 수도원장은 원칙주의였고 원칙적으로 축일장 수입은 수도원 것이므로 나룰 수 없다고 단호한 입장이다.


캐드펠 시리즈 세 번째 『성 베드로 축일』은 새로운 인물의 등장과 갈등을 보여주는 시작으로 처음부터 긴장감이 감돈다. 성 베드로 축일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하면 각지에서 모여드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위험한 인물이 있을 거란 예상은 충분하다. 시장 상인을 비롯한 시민들이 축일장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모여든 상인들을 좋게 볼리 없으니까. 자신의 정원에서 허브와 약초를 관리하는 우리의 수사 캐드펠은 여전히 평온하다. 브리스틀에서 온 대상 토머스의 시체가 발견되기 전까지 말이다. 그것도 알몸의 시체라니. 범인은 토머스에게 원한이 깊은 사람이 아닐까 짐작게 하는 정황이다.


그도 그럴 것이 토머스가 죽기 전 코비저 시장의 아들 필립 사이에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온 상인들과 감정이 좋을 리 없는 젊은 청년들은 다툼이 일어났고 그 과정에서 위협을 느낀 토머스가 필립을 지팡이로 내리쳐 상해를 입힌다. 토머스의 조카딸 에마가 말리고 상인의 통역을 위해 근처에 있던 캐드펠도 그곳으로 달려가는데 한 청년이 상황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는 슈롭셔주에서 온 코르비에르였다. 캐드펠은 아름다운 외모의 에마를 바라보는 코르비에르의 눈길을 놓치지 않았다.


토머스를 죽인 범인으로 필립은 감옥에 수감되지만 에마는 필립이 외숙부를 죽였을 리 없다며 그의 편을 든다. 젊은 혈기에 다툼은 가능하지만 살인이라니. 강도를 위장한 살인으로 보였지만 캐드펠은 범인이 토머스가 가진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는 걸 직감한다. 캐드펠의 직감은 맞았다. 누군가 토머스가 타고 온 배에 침입했기 때문이다. 없어진 게 없냐는 캐드펠 수사의 말에 에마는 축일장에 오면서 산 장갑을 없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범인이 찾는 건 무엇일까. 토머스가 지닌 게 아니고, 배에도 없다면? 외숙부의 죽음과 일련의 사건을 생각하면 에마가 위험할 수 있기에 에마는 휴 베어링 부부의 집에서 지내기로 한다. 그 사이 휴 베어링은 결혼을 했고 아내는 아이를 임신했다. 시리즈의 재미는 주인공의 활약과 더불어 등장인물의 새로운 모습을 만나는 일 아닌가.


외삼촌의 장례식을 위해 움직이는 에마 곁을 코르비에르가 지킨다. 젊은 여인을 위한 사랑의 마음이라 보기에 충분하다. 그런 에마를 캐드펠도 조용히 관찰한다. 그러던 중 잃어버린 장갑을 사기 위해 장갑 장수를 만나러 가는데 이번에도 살인이 일어났다. 장갑 상인이 죽은 것이다. 누가 왜 상인을 죽였을까. 토머스,의 살인, 누군가 침입한 배, 장갑 장수의 죽음. 세 사건과 고통으로 연결된 건 에마뿐이었다. 그렇다면 에마는 뭔가 알고 있는 게 아닐까. 범인은 한 명일까? 토머스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의심을 받는 필립은 나머지 두 사건의 용의자는 아니다. 토머스 사건도 필립의 친구들의 증언으로 그는 풀려낸 상태다.


필립은 자신을 믿어준 에마를 위해 진범을 찾기로 한다. 예상했겠지만 그건 사랑의 감정이 분명했다. 토머스가 죽던 밤 자신의 행적을 따라가다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 필립은 캐드펠 수사에게 그 사실을 전한다. 『성 베드로 축일』은 연이은 사건으로 독자를 정신없이 몰아친다. 범인의 동기도 모르겠고 범인의 윤곽도 드러나지 않는다. 아니 수상한 이가 있다. 바로 에마다. 뭔가 숨기는 그녀, 캐드펠은 그 진실에 다가갈 수 있을까. 나처럼 궁금한 이를 위해 범인에 대해 살짝 언급하자면 범인은 가장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이다.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과 별개로 『성 베드로 축일』에서 나를 붙잡은 건 캐드펠 수사의 이런 말이다. 왕권을 위한 스티븐 왕과 모드 황후의 전쟁은 신을 따르는 수도원의 수도사와 수도원 밖의 시민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이익을 따라 움직이는 복잡한 정세, 신의와 신념이라 믿고 따르는 이들. 그들의 모습은 진정 신이 바라는 것일까. 지금도 전쟁은 이어지고 신은 무슨 생각일까 알고 싶다.


“죽음은 전쟁 중엔 죄 없는 여인들에게 떨어지고, 평화로울 땐 악인에 의해 저질러지지. 누구에게도 해를 끼진 적이 없는 아이들에게, 선한 일을 하며 살아온 노인들에게, 잔인하고 무분별하게 떨어진다네.” (2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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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사의 두건 캐드펠 수사 시리즈 3
엘리스 피터스 지음, 현준만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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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졌던 욕망은 한순간에 튀어나온다. 숨겨온 게 아니라 게 같은 자리에서 자라왔기 때문이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이때다 싶은 타이밍에 움직인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 세 번째 『수도사의 두건』 속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의 로버트 부수도원장도 다르지 않았다.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내전 당시 스티븐 왕의 편에 서지 않았던 헤리버트 수도원장의 권한이 정지되고 회의 참석차 런던으로 떠났으니 모든 권한은 로버트 부수도원장에게 있었다. 때마침 일어난 살인 사건 수사도 말이다.


사건은 이랬다. 자신의 장원을 수도원에 양도하고 남은 생을 수도원에서 보내기 위해 며칠 전 수도원으로 이사한 영주 거베이스 보넬의 죽음이었다. 문제는 또 있었다. 보넬이 보낸 문서를 헤리버트 수도원장이 승인하지 않고 떠났다는 것. 사건의 범인을 찾는 것도 중요했지만 보넬의 죽음으로 장원의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느냐도 관련자에게 중요한 일이었다.


캐드펠 수사에게 중요한 건 보넬이 독살당했다는 것인데 자신이 기른 약초가 살인에 이용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약초의 이름은 ‘수도사의 두건’으로 우리에게 투구꽃으로 익숙하다. 보넬이 먹은 음식은 로버트 부수도원장이 그에게 보낸 것으로 같은 음식을 먹은 부수도원장은 괜찮으니 범인은 보넬의 가족이나 하녀, 하인 가운데 한 명이었다. 당시 부엌에는 하녀 알디스와 하인 앨프릭과 메이리그가 있었다.


메이리그는 보넬이 하녀 사이에 낳은 자식이었으나 상속과는 무관했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보넬의 의붓아들 에드윈으로 장원을 수도원에 양도한 것에 앙심을 품어 살해했다는 정황이다. 평소에도 보넬과 사이가 좋은 건 아니었다. 집을 떠나 매형의 가게에서 목수 일을 배우고 있었다. 누가 봐도 충분한 가설이었다. 더구나 도망치듯 달아났으니까.


보넬이 식사를 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에드윈이 음식에 독을 넣을 시간은 없었다. 그리고 캐드펠의 진료소에서 약초를 훔쳐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 약초의 효능을 아는 사람 말이다. 캐드펠의 작은 오두막에 있던 약초는 캐드펠과 진료소를 담당하는 수사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진료소를 방문한 누군가가 범인일 가능성이 컸다. 억울한 범인을 만드는 일은 없어야 했다. 하지만 로버트 부수도원장는 에드윈을 잡아 사건을 종결하고 싶었다.


『수도사의 두건』에서 흥미로운 건 보넬의 아내 리힐디스와 캐드펠의 관계였다. 그렇다. 리힐디스와 캐드펠은 과거 연인이었다. 이 사실을 들은 로버트 부수도원장은 캐드펠에게 사건에서 손을 떼라고 지시한다. 이제 사건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때 구세주처럼 등장한 이가 있으니 바로 『시체 한 구가 더 있다』에서 캐드펠과 대등한 관계에 있던 휴 베어링이다. 사리분별이 가능한 그는 사건을 맡은 행정장관을 대신한 책임자였다. 행정장관은 왕의 회의를 참석하기 위해 자리를 비웠다. 이 얼마나 다행인가.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이오. 힘이 든다고, 진실에 눈을 감은 채 편안한 것에만 안주해서는 안 되지 않겠소?” (238쪽)


캐드펠은 사건 수사에 관여할 수 없지만 아픈 수사를 돌보는 일은 가능했다. 수도원 밖으로 나가 정보를 구하기에 충분했다. 누가 진료소에서 약초의 효능을 알고 몰래 훔쳤을까. 보넬의 죽음으로 장원을 소유할 가능성이 생겼을까. 보넬의 장원의 지리적 위치가 중요했다. 잉글랜드와 웨일스 간 접경지대의 가족 관계는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통혼도 많았다. 리힐디스의 아들 에드윈은 보넬이 어떻게 죽은 지도 모르는 어린 소년이었고 약초가 담긴 약병에 대해서도 몰랐다. 범인이라면 약병을 버렸을 것이고 약초를 따르며 흔적을 남겼을 게 분명하다. 몸소 체득한 지식과 지혜와 연류를 더한 캐드펠의 수사는 이번에도 완벽했다.


엘리스 피터스는 12세기 중세 모습을 치밀하고 상세하게 그려낸다. 인간에 대한 이해와 안타까운 마음을 배제하지 않았다. 인간이 어떤 짓까지 벌이는지,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추락하는지 말이다. 『수도사의 두건』은 촘촘하게 잘 짜인 역사추리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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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4-08-16 11: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봐도 뭔가 좀 어렵네요. 역시 역사소설은 장벽이 느껴져요 ㅠㅠ
시리즈라길래 봤더니 중세시대 영국배경의 탐정물? 뭔가 새롭네요.
자목련 님도 시리즈 정주행 중이신가요 ㅎㅎㅎ

자목련 2024-08-18 07:17   좋아요 2 | URL
제가 정리를 잘 못했서 ㅋㅋㅋ
완간 30주년 기념판이라 이미 팬이 많은 시리즈라고 합니다.

달자 2024-08-16 23: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사 추리 소설이라.. 뭔가 색다른 조합인데요? 추리소설이 너무 어려우면 좀 힘들던데 이 책에 별 다섯개를 주셨네요 …!! 리뷰를 읽어도 좀 어려운 책 같은데.. 으으 호기심 그득그득

자목련 2024-08-18 07:18   좋아요 1 | URL
제 리뷰는 엉망이지만 소설은 무척 재미있어요. BBC에서 드라마 <캐드펠>의 원작, 드라마로 봐도 좋을 것 같아요!!
 

말복이다. 말복인데 더위는 이제 막 시작한 것 같다. 왜 이리 더운 것일까. 질문은 쏟아지는데 답을 찾을 수 없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이렇게 될 줄 몰랐냐고 혼내는 것 같다. 그냥 온몸으로 꾸중을 듣고 벌을 서는 것처럼 여름을 보낸다. 지난 추 입추는 쪼금 달라진 것 같았다. 기대를 품게 만들었다. 정말 신기하게도 입추가 되니 손톱만큼 시원해진 것 같았는데. 기분 탓이었나 보다.

말복이고 내일은 광복절. 그래서 오늘은 택배가 오지 않는 날이다. 이 더위에 얼마나 다행인가. 새벽 배송을 운영하는 업체는 예외라고 하지만. 아, 엊그제 새벽 배송으로 먹거리를 주문하고 받은 나 같은 소비자도 한몫한 것일까.


말복과 책이니, 책 이야기를 해보자. 프랑수아즈 사강의 『엎드리는 개』와 한정원의 『내가 네번째로 사랑하는 계절』도 기대가 큰 책이다. 한정원의 산문은 ‘한정원의 8월’이라는 부제가 있으니 8월이 가기 전에 읽으면 더 좋을 것이다. 이 두 권으로도 남은 8월을 채우기엔 충분하다. 읽는 것도 힘든 요즘이다.







뜨겁게 달궈진 더위는 식을 줄 모르지만 그래도 시간은 간다. 시작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요란하고 긍정적인 화제를 낳은 올림픽도 끝났다. 이번 주말까지 잘 견디면 다음 주에는 더위가 식을 준비를 할지도 모른다. 말복이니 삼계탕을 먹어볼까. 실은 어제 삼계탕을 끓였는데 실패했다. 삼계탕에도 실패가 있냐고 놀랄 수 있지만 가능하다. 내가 끓인 삼계탕은 분명 실패작이다. 그 사정은 기회가 되면 나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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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4-08-14 09: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잉 엎드리는 개, 자목련 님 리뷰 벌써 기대됩니다~!!
근데 삼계탕을 직접 끓으신다고요????!!!! 놀라워라. 🙀🙀🙀

자목련 2024-08-14 09:50   좋아요 4 | URL
그냥 닭, 마늘, 짭쌀 넣고 끓이면 끝!
놀라운 건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ㅋㅋㅋ

잠자냥 2024-08-14 09:53   좋아요 2 | URL
찹쌀이 아니라 짭쌀을 넣어서...ㅋㅋㅋㅋㅋㅋㅋ

자목련 2024-08-14 09:54   좋아요 2 | URL
앗, 그렇군요!
심지어 급한 마음에 불리지 않은 짭쌀(찹쌀)을 넣어서 ㅋㅋㅋ

다락방 2024-08-14 12: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삼계탕 이야기 꼭 들려주세요. 정확하게는 삼계탕 실패한 이야기!!

자목련 2024-08-16 11:01   좋아요 1 | URL
실패한 삼계탕 먹느라 고생한 이야기까지 써볼까요? ㅎㅎ

페넬로페 2024-08-14 1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난 주에 정말 잠깐 온도가 내려간 것에 속았어요 ㅠㅠ
너무 더워 책도 읽히지 않아요.
집중력 저하를 더위 탓으로 돌리네요 ㅎㅎ
여름 가기 전에 삼계탕 한 번 해 먹어야겠어요
삼계탕에 넣으려고 녹두 구매해 놨는데 아직입니다~~

자목련 2024-08-16 11:02   좋아요 2 | URL
녹두을 생각하니 어렸을 적 녹두 따기 싫었던 기억이...
이 더위, 끝은 있겠죠?

독서괭 2024-08-14 1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입추라고 조금 나아진 것 같다 했었는데 말입니다… ㅜㅜ
삼계탕 직접 끓이시는 것만도 훌륭! 저는 뭔가 요리를 하면 희한하게 하라는대로 해도 맛이 안 나더라고요? ㅎㅎ

자목련 2024-08-16 11:03   좋아요 1 | URL
레시피는 왜 있는가 싶어요 ㅎㅎ
오늘도 무지 덥습니다. 시원하게 보내시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