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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소설집 音樂小說集
김애란 외 지음 / 프란츠 / 2024년 6월
평점 :
아주 오래전 늦은 퇴근을 하고 시외버스를 탔다. 연인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연인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는데 행복하지 않았다. 연인보다는 늦게까지 일을 끝내고 헤어진 친구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업무의 과중함과 스트레스로 자주 맥주를 마셨다. 그날은 연인과의 약속 때문에 맥주를 마시지 못했다. 시외버스 좌석에 앉아 버스 창밖의 어두운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듯 노래를 불렀다. 당시 힘들 때마다 나를 위로했던 노래는 ‘때로는 너의 앞에 어려움과 아픔 있지만으로 시작하는’ <축복송>이었다. 시간이 흘러 <축복송> 대신 다른 노래가 차지했다. 최근에는 클래식 연주를 듣는다. 가만히 음악을 들으며 고른 호흡을 하려고 애쓴다. 그런 시간이 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익숙한 경험에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음악을 주제로 한 다섯 작가의 단편 『음악소설집』을 읽으면서 몇 개의 장면, 그 위로 흐르던 음악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음악에 기대어 울 수 있었던, 음악 소리에 숨어 훌쩍이던 순간이 고맙게 느껴겼다. 살다 보면 나의 노래, 나만의 연주 같은 게 생기기 마련인데 『음악소설집』은 나만의 음악소설로 여기고 싶은 욕심을 안겨준다. 그렇다고 5개의 단편이 아주 특별하나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라고 말하겠다. 스치고 지나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짧은 순간의 인연처럼 쉽게 지울 수 없는 아련하고 애틋함 같다고 할까. 나는 그게 좋았다. 우연이겠지만 5개의 단편은 죽음과 상실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추운 겨울에 손이 시려서 두 손을 비비는 내게 장갑을 끼워주는 것 같았다. 이상하게 따뜻했다. 어쩌면 나는 이 소설집에 대해 쓰려는 게 아니라 그냥 내 감정에 대해 쓰고 싶은지도 모른다. 아무려나 그게 무슨 상관일까 싶지만 말이다.
김연수, 김애란, 편혜영, 윤성희, 은희경 작가의 소설을 읽으며 함께 늙고 있다는 게 왠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먼저 읽은 건 김연수의 단편 「수면 위로」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남겨진 자의 삶을 무기력과 절망으로 이끈다. 애인 ‘기진’의 죽음은 ‘은희’에게 삶은 그런 시간이었다. 호흡이 힘들어진 ‘은희’는 우연한 동영상을 보다가 ‘기진’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들려오는 ‘영천의 오므라이스’는 은희도 아는 이야기였다. 어느 여름밤 기진이 들려준 엄마의 우울과 죽음, 그리고 피아노 연주. 어린 기준에게 엄마의 우울은 어떻게 보였을까. 우울과 죽음으로 까맣고 어두운 화면과 노란 오므라이스와 드뷔시의 달빛이 교차로 반복되는 느낌. 그렇지만 나는 이 소설에서 주문 같은 이런 부분이 좋았다. 너무 당연해서 애써 외우거나 간직하려 하지 않았던 인생의 법칙 같은 주문.
인생도 그런 게 아닐까? 나는 행복하고 슬프지 않다. 나는 행복하지 않고 슬프다. 나는 행복하고 슬프다. 나는 행복하지도, 슬프지도 않다. 이 모두를 말해야지 인생에 대해 제대로 말하는 게 아닐까? (90쪽, 김연수의 「수면 위로」)
김애란의 「안녕이라 그랬어」의 화자 ‘은미’도 엄마와 작별했고 오랜 사귄 애인과 이별했다. 엄마의 간병을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집으로 내려왔다. 엄마의 죽음 후 은미는 경력 단절의 자신감을 상실한 사십 대의 중년 여성이었다. 뭐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외국어를 배우기로 한다. 화상 영어 사이트에서 원어민 교사에게 영어를 배우면서 한국어로 ‘안녕’이란 말은 무엇인지 질문을 받는다. ‘안녕’이란 단어에 결혼을 약속했지만 이별한 남자친구와의 팝송을 들었던 아침을 떠올린다. 상실의 조각으로 남은 기억을 통해 시간이 지난 후에야 고통을 말할 수 있고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다는 알 게 된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고 여겼던 은미의 삶에 ‘안녕’을 전하고 싶었을 남자친구의 마음. 김애란은 누군가를 만나 반갑게 인사를 전하는 안녕, 누군가의 안녕을 바라는 소중한 말을 그렇게 전한다.
소설마다 명랑한 슬픔을 안겨준 윤성희는 「자장가」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나’는 횡단보도를 건너다 트럭에 치여 죽은 고등학생이다. 죽었지만 죽지 않아서 엄마를 따라 집으로 간다. 엄마가 자신의 죽음으로 슬퍼서 잠도 못 잘까 걱정이 되어서다. 그런데 엄마는 너무 잘 자서 슬펐다. 그러다 엄마가 꿈에서 ‘나를 만나고 싶어 잠을 잔다는 걸 알게 되고 꿈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엄마를 위해 자장가를 불러준다. 소중한 사람을 토닥토닥 쓰다듬는 단편이다. 자식을 잃은 부모, 부모를 두고 떠나지 못하는 자식의 마음을 알지 못하겠지만 그 다정한 손길은 알 것 같다.
구스타브 홀스트의 ‘행성’을 소재로 한 은희경의 「웨더링」은 묘한 여운을 남긴 소설이다. 기차의 4인석에서 만난 네 명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구스타브 홀스트의 ‘행성’이야기라고 하면 맞을까. 클래식을 대하는 저마다의 태도와 생각에 대한 차이를 불러오는 동시에 네 명 중 두 명이 직장 동료의 부친상 소식을 듣고 장례식에 가는 것과 나머지 둘 중 하나인 노인이 펼쳐보는 구스타브 홀스트의 ‘행성’의 악보. 서로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그들이 고통적으로 마주할 게 죽음이라는 사실.
죽은 엄마가 뜨다 만 초록 색 스웨터의 사연이 궁금한 편혜영의 「초록색 스웨터」는 초록색 스웨터를 입은 기분이 드는 소설이다. ‘경주’는 엄마가 돌아가시고 몇 년이 지나 엄마 친구 영주 이모와 함께 강화도로 향한다. 엄마에게 빌린 돈 오백만 원을 받기 위해 엄마 친구 나주 이모를 찾아가는 길이다. 소설은 엄마가 뜨다 만 스웨터가 누구의 것인지, 여러 사람의 손을 빌려 조금씩 완성돼가는 스웨터와 엄마의 이야기를 따뜻하고 포근하게 들려준다. 경주는 초록색 스웨터가 완성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자신에게도 그 모든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된다. 엄마가 슬픔만 남겨두고 간 게 아니라는걸.
소설을 읽으면서 일부러 소설 속 음악이나 노래를 찾아듣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소설을 읽는 동안 그 음악이 곁에서 맴도는 것 같았다. 나만 느꼈던 건 아닐 것이다. 교교한 달빛, 낮고 작은 자장가, 전쟁 같은 요란한 연주, 귀를 귀울여야 들을 수 있는 낡은 음색, 나도 모르는 사이 따라 부르는 팝송, 이 모든 음악이 흐르고 자신만의 음악을 연주하는 게 인생이라는 걸 말이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 비발디의 사계를 들었다. 벚꽃 흩날리는 봄밤, 비 내리는 여름밤, 달이 가득한 가을밤, 눈 내리는 겨울밤에 다시 만나고 싶은 단편이다. 상실의 시간을 쌓여가고 허무한 인생이라는 생각이 짙게 스며질 것이다. 그래도 그때도 좋을 것이다. 지금 좋았던 것과 다른 이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