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마음은 뭘까. 산 책을 정리하면서 잠깐 생각했다. 단순한 소유욕일까. 그렇다면 책을 소유한다는 건 뭘까. 읽으려고, 읽기 위해서, 읽고 싶어서라는 이유가 따라온다. 내가 산 3권의 책은 우선 내 소유가 되었다. 가지고 있을 뿐, 온전히 그것을 알지 못한다. 읽어야만 조금 알 수 있다. 읽어도 모를 수 있다. 독서란 그런 것이니까. 책을 읽지만 읽고 있어도 읽는 행위에 멈추고 잘 모를 때가 더 많다. 그러니 이 세 권의 책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

사는 마음은 뭘까. 세 권의 책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좋아해서, 더 좋아하려고 사는 것이다. 박준의 세 번째 『마중도 배웅도 없이』의 출간 소식을 접하고도 바로 구매하지 않았다. 박준의 첫 시집에 대한 마음이 너무 좋아서 그랬다. 두 번째 시집을 구매할 때도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그랬다. 그리고 결국 구매로 이어졌지만 말이다. 좋아하는 마음은 이렇게 주춤할 수도 있다.

김지연의 『새해 연습』은 다른 경우다. 나는 김지연의 소설을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고 있다는 걸 이 책을 사면서 알았다. 이 소설은 위즈덤하우스 위픽 시리즈인데 나는 이 시리즈를 좋아하지 않는다. 해서 이 시리즈의 신간 알림에 대해 관심이 없다. 참여하는 작가의 목록을 살피지 않았다. 그래서 이 소설도 이제야 안 것이다. 더 좋아하려고 구매한 게 맞다. Falstaff 님의 리뷰 덕이 크다. (『겨울 여행』도 마찬가지)


자우메 카브레의 『겨울 여행』은 아직 좋아할지 어떨지 모른다. 다만, 이 단편집의 리뷰가 너무 좋아서 궁금했다. 이 작가의 장편 『나는 고백한다』의 소문을 알지만 읽지 못했고 단편은 시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니 이 소설을 읽은 후에야 나는 이 작가를 좋아하거나 더 좋아할 수 있을 것이다.






좋아해서, 더 좋아하려고 책을 샀다. 좋아해서 더 좋아하려고 쌓아둔다. 좋아해서 더 좋아하려고 덜 좋아진 책을 정리한다. 좋아하는 마음도 변할 수 있으니까. 좋아하는 마음처럼 변덕스러운 것도 없으니까. 우선은 이 세 권에 대해서는 좋은 상태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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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5-05-14 1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집 컬렉션 멋지네요? 자목련님의 추천 시집이 궁금합니다~!
박준 시인님 신작 전 좋던데 안좋은 평도 많더라구요 ㅜㅜ

자목련 2025-05-16 10:21   좋아요 2 | URL
한때는 시집을 더 많이 사랑했는데, 지금은 사랑이 시들었어요 ㅎ
이번 박준 시집은 호불호가 있는 듯해요^^

yamoo 2025-05-14 13: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겨울여행 지금 읽고 있는데 반갑네요! 이제 에피소드 3개 남았어요..단편도 정말 좋네요..^^

자목련 2025-05-16 10:21   좋아요 1 | URL
좋다고 하시니 더욱 기대가 큽니다!!

레삭매냐 2025-05-14 15: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겨울여행, 땡기네요.

책 다이어트 해야 하는데...
정리는 못하고 계속해서 사
기만 하네요 ㅠ

자목련 2025-05-16 10:22   좋아요 1 | URL
정리는 잠시 잊고 함께 읽어보아요!
 
모린
안윤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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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것 같은 마음이 있다. 알 것 같은 것이지 아는 것 아니다. 그 마음을 아는 건, 오직 마음의 당사자뿐이다. 비슷한 상황, 비슷한 감정을 경험했기에 상태를 짐작한다. 주저하고 조심한다. 마음은 유일한 것이고 마음은 소하니까. 안윤의 소설집 『모린』을 읽으면서 나는 그런 마음 곁에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깨질 것 같은, 얕은 숨에도 사라질 것 같은 그런 마음을 지키려 애쓰는 마음을 보았다.


표제작 「모린」 은 고객의 불평불만을 상담하는 ‘미란’과 장애인 ‘영은’의 이야기의 사랑 이야기로 읽을 수 있고 상실과 회복에 대한 것으로도 읽을 수 있다. 시각 장애인 낭독 봉사를 하는 미란은 그곳에서 영은을 처음 만났다. 자신의 전부였던 할머니를 잃은 미란에게 다가온 영은. 둘 사이에 흐르는 감정과 서로를 향한 마음은 같으면서도 다르다. 위안을 주는 유일한 존재, 무엇이든 다 말하고 싶은 상대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그런 존재. 소설 속 가장 선명하게 남은 문장처럼 유일한 사람.


모린은 유일한 사람이었다. (「모린」, 9쪽)


설령 헤어졌다고 해도 그 고유함은 사라질 수 없다. 누군가를 알고 사랑한다는 건 그런 것이니까. 미처 전부를 다 알지 못해도 애서 지우려 해도 끝까지 남아 있는 어떤 것이 있으니까. 그래서 먼 훗날 가만히 떠오르는 기억에 이름을 불러보게 된다. 잘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나도 한때 당신에게 유일한 사람이었다고.


서로의 전부가 될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랑도 아무것도 아닌 게 되기도 한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이별을 한다. 「담담」 속 ‘혜재’와 ‘은석’처럼 말이다. 11년이라는 긴 연애를 끝낸 혜재는 소개로 만난 은석에게 양성애자라 말한다. 사고로 아내와 딸을 잃은 은석에게 혜재의 정체성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은석에겐 유가족이라는 정체성이 그러했으니까. 「담담」이란 제목처럼 둘의 만남은 그렇게 지속되고 서로에게 스며든다. 일부러 캐묻지 않고 일상을 공유한다. 무엇 때문에 슬픈지, 무엇이 상처로 남았는지 말하고 싶은 순간이 온다는 걸 알아서가 아니라 그 마음이 어떤지 조금은 알 것 같아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털어놓은 일과 서로를 이해하는 일, 한 사람을 아는 일 간에 정확히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그것이 관계에 얼마나 필요하고 중요한 일인지 갈수록 알 수가 없어진다. 서로를 이해하는 일, 한 사람을 아는 일이 과연 무엇인지조차도. (「담담」, 121쪽)






안윤이 그리는 관계는 밀착이 아닌 떨어진 사이다. 그러니까 그림자를 볼 수 있는 정도라고 할까. 그건 그림자까지 보고 싶은 마음이라고 해도 좋겠다. 그런 게 느껴져서 나는 안윤의 소설이 좋았다. 읽을수록 좋아졌다. 「모린」과 「담담」에서 상처가 회복되기를 기다리는 마음, 남겨진 흉터를 어루만지는 마음이 전해졌다.


그런 마음은 「하지夏至」에서도 만난다. 서울에서 제과점을 하던 ‘수림’은 모든 걸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가기로 한다. 서울을 떠나기 전 오랜 친구 ‘지언’과 이별 캠핑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수림의 결정을 존중하고 그저 곁에서 이별을 준비하는 지언. 수림이 얼마나 힘들고 지쳤을지 짐작하기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둘 사이에 흐르는 믿음이 있기에. 수림이 고향으로 내려가고 지언은 너는 잘 지내라는 문자를 보낸다. 수림을 걱정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잘 지내지 않고 괜찮지 않더라도 잘 지내고 괜찮아질 거라는 믿음. 수림이 아닌 내가 회복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계절이 바뀌고 낮이 길어지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천천히 회복될 거라고.


너는 잘 지내. 그건 마치 지언이 내게 거는 주문 같았다. 너는 잘 지내. 그 주문에 단단히 걸려들고 싶었다. (213쪽)


낮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것. 나는 안다, 때가 되면 다시 점점 길어지리라는 것을, 어김없지만 전과는 같지 않을 낮이. (「하지夏至」, 214쪽)


직접적으로 묻거나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어떤 상처와 마음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그건 상대를 향한 관심과 애정이 있어야 가능하다. 확인하고 확인받으려는 욕망이 아닌 그런 마음. 서툴고 어려워서 시간이 지나서야 보인다. 초라했던 이십 대 초반을 떠올리는 ‘의선’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던 ‘준수’를 회상하는 「작은 눈덩이 하나」. 그 시절 의선에게 유일한 사람은 준수였을 것이다.


그런 유일한 사람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면 어떨까. 아무런 징조 없이 증발해 버린다면. 「틈」에서 ‘사희’가 그러했다. ‘인애’는 사희를 수소문하지만 찾을 수 없다. 사희는 이혼을 했고 사라졌다. 나중에야 사희에게 일어난 일을 알게 되었다. 우연하게 잡지에 실린 사희를 보고 무작정 찾아간다. 구 년 만에 사희는 인애를 근처 저수지로 안내한다. 그 풍경을 사진에 담으면서 그곳에서 다시 살아난 이야기를 들려준다.


황량하고 덧없는, 무위에 가까운 풍경들, 자신의 내면과 어딘가 닮은 대상들을 포착했다. 뷰파인더를 들여다볼 때 사희는 철저히 관찰자가 되었다. 자신이 이 세계에 속해있는 것이 아니라 건너다보고 있다는 감각이, 거대한 세월의 흐름 속에서 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고작 찰나를 붙잡는 것뿐이라는 사실이 형용할 수 없을 만큼의 위안을 줬다. (「틈」, 240쪽)


인애에게 사희가 유일한 사람이었던 시절은 과거가 되었다. 아니 그 시절을 통과했다고 할까. 사희에게 인애의 사과나 위로가 필요한 시간도 지나가 버렸다. 놓쳐버렸다는 게 맞겠다. 사희가 보낸 시간을 알 길이 없고 그 시간을 놓쳤지만 그림자를 볼 수 있는 거리가 생긴 것이다.


안윤은 이처럼 저마다의 유일한 사람이 있기에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각자의 삶 속에서 유일한 사람을 지키려 노력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거라고. 마음을 온전히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 그런 기억을 품고 살아가도 충분한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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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립백 블렌드 오렌지선셋 - 12g, 5개입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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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좋아하는 알라딘 커피를 찾았다. 나는 이 커피가 좋아서 선물하고 소개하고 함께 마시는 기쁨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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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5-05-10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방금 마셨는데 맛있네요!

자목련 2025-05-13 11:23   좋아요 1 | URL
이커피 정말 좋아요!
 


부모는 모두 늙는다. 병들고 아프다. 어떤 부모는 자식에게 미안해서 병을 숨긴다. 어떤 부모는 자식에게 당당하게 간병을 요청한다. 초고령 사회에서 늙은 부모를 돌보는 일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아픈 부모를 홀로 간병하고 돌보다 발생한 사건에 놀라지 않는다. 개인의 희생으로 감당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라는 걸 알지만 뚜렷한 해결 방안은 없다. 가족이 모두 매달려 간병을 하다 지쳐 마지막으로 시설을 선택한다. 그나마 경제적으로 여유가 되는 경우에 가능한 일이다. 부모만 늙는 게 아니다. 우리는 모두 늙고 간병과 돌봄은 곧 모두에게 닥칠 일이다.


제19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문미순의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를 읽으면서 친구들의 걱정이 스쳐 지나갔다. 부모님 두 분이 살아계시지만 언제 어떻게 병원 신세를 질지 몰라 무섭다고. 나 살기도 바빠 간병은 엄두도 나지 않고 병원비도 생각하면 벌써부터 걱정이라고.


소설은 엄마가 돌아가신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곧 등장해야 할 장례식장의 풍경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 이 소설은 좀 이상하다. 치매의 엄마는 죽었지만 연금이 들어왔고 딸 명주는 엄마의 죽음을 숨기기로 결심한다. 명주는 작은방 관에 죽은 엄마의 시신을 넣고 살아간다. 그게 가능하다고? 충분히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독사가 늘어나고 이웃 간의 왕래가 적은 사회에서는 놀랄 일도 아니다.


명주에게도 사정은 있다. 이혼 후 생계를 위해 일하다 발에 화상을 입었고 심각한 후유증으로 일 자리를 구하기 힘들다. 그런 명주에게 엄마가 간병을 제안했다. 엄마의 연금으로 생활한 명주에게 엄마는 살아있어야 했다. 다행히 아무도 엄마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단 한 사람, 옆집 청년만 빼고. 명주에게 아는 척을 하고 할머니 안부를 걱정하는 청년 준성이 문제였다. 물리치료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준성은 집에서 아버지를 간병하고 야간에 대리운전을 한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명주는 알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준성은 한 번씩 반찬을 나눠주시던 할머니가 궁금했다. 할머니 딸인 게 분명한 명주는 시원하게 답을 하지 않았다. 그게 전부였다. 할머니가 걱정되었지만 준성에겐 아버지 하나로 벅찼다. 준성이 고등학생 때부터 뇌졸중을 앓았고 지금은 알코올성 치매까지 있다. 형은 빚만 남기고 외국으로 떠났고 준성은 가장이 되었다. 바로 옆집에 살지만 서로의 사정을 알 길이 없었다.


명주는 딸 은진이 찾아오기 전까지 엄마의 시신을 매장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혼 후 엄마와 살던 은진은 고등학교 때 사고를 치고 아빠의 집으로 들어갔다. 사고 수습은 모두 명주의 몫이었지만 하나뿐인 딸에게 마음이 늘 약했다. 대학을 졸업한 은진에게 좋은 엄마이고 싶었던 명주는 외할머니에 대해 꼬치꼬치 묻는 은진이 모든 걸 알게 될까 겁이 났다. 은진은 외할머니의 시골집을 찾아냈고 그걸 빌미로 돈을 요구했다.





명주는 엄마를 시골집에 모시기로 결정하니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그런 명주 앞에 손에 피를 묻히고 준성이 집에서 뛰어나왔다. 준성과 함께 들어간 집에는 준성의 아버지가 피를 흘린 채 누워있었다. 준성은 외제차 대리운전을 하다 사고가 났고 집에 불이 나서 아버지는 심각한 화상을 입었다. 수리비와 병원비는 준성이 감당할 수 없어 아버지를 집에 모실 수밖에 없었다. 예전과는 다른 수준의 간병이었고 아버지를 목욕시키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다.


명주는 담담하게 자신의 집으로 준성을 데리고 와 죽은 엄마의 관을 보여주고 준성에게 제안한다. 모든 건 다 자신이 할 수 있고 두 분을 시골집에 매장하자는 계획을 들려준다. 이삿짐을 옮길 트럭을 빌리고 운전은 준성이 하면 된다고.


품위 있는 삶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생존은 가능해야 하지 않겠어? 나라가 못 해주니 우리라도 하는 거지. 살아서, 끝까지 살아서,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하는지 보자고. 그때까진 법이고 나발이고 없는 거야. (218쪽)


50대의 명주와 20대의 준성의 연대는 서로의 사정을 잘 알기에 가능하다. 가족을 돌보는 어려움은 물론이고 육체적 경제적 한계로 보이지 않는 미래와 허방을 딛는 것 같은 삶을 끝내고 싶은 간절함. 서로를 위로하고 안아주고 싶은 마음 말이다.


문미순의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은 그런 간병과 돌봄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가장 깊숙하게 파고든다. 돌봄 노동의 피상적인 면이 아니라 진짜 이야기. 둘러보면 내 주변의 지인이 겪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생생하다. 그래서 몰입하게 되고 한 편으로는 두려움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부모와의 이별은 가까이 다가온다. 조금 더 미루고 싶은 마음과 병든 부모와 살아가는 시간이 막막하다. 가정의 달이라는 5얼에 너무 빨리 떠난 부모가 그리우면서도 아빠나 엄마가 오랜시간 병상에 있다고 생각하면 무서운 게 사실다.


늙고 병든 부모를 외면하고 돌봄을 다른 형제에게 미루고 마는 현실. 류현재의 소설 『가장 질긴 족쇄, 가장 지긋지긋한 족속, 가족』에서 “나한텐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게 가족이에요. 가장 질진 족쇄, 가장 지긋지긋한 족속이 가족이라고요!” (『가장 질긴 족쇄, 가장 지긋지긋한 족속, 가족』, 194쪽)외침은 가장 솔직한 감정일지도 모른다. 어쩌다가 우리는 이런 가족이 되었을까. 누구의 잘못일까. 긴 병에 효자없다는 속담은 긴 병은 사회가 함께 돌봐야 한다로 바뀌어야 한다.


가족을 돌보느라 희생하고 정작 자신의 삶을 돌보지 못한 여성의 삶을 들려주는 김유담의 소설집 『돌보는 마음』에서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돌봄은 여성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돌봄 노동의 비용에 대해서도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부모를 간병하고 돌보느라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방법은 어디에 있을까. 이제 정말 정부와 사회가 나서야 할 차례다. 아픈 가족을 외면하는 게 아니라 함께 돌보고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내일을 기다리고 미래를 꿈꾸는 일이 당연한 일상이 되고. 명주가 살고 싶은 이유가,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누리는 일이 죄가 되지 않도록.


자신이 원한 것은 그저 한 끼의 소박한 식사, 겨울 숲의 청량한 바람, 눈꽃 속의 고요, 머리 위로 내려앉는 한 줌의 햇살, 들꽃의 의연함, 모르는 아이의 정겨운 인사 같은 것들이었다. 자신이 아직은 더 보고 싶고 느껴보고 싶은, 아직은 죽지 않고 살고 있고 싶은 이유였다. (1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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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5-05-09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두가 외면하고 싶지만 결국 우리 본인이 당사자가 될 일인 것 같아요. 공감이 많이 갑니다.

자목련 2025-05-10 11:43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요즘 친구들과 그 주제로 이야기를 많이 나눠요. 우리의 나중은 어떨까 하고요.
 
이월되지 않는 엄마 - 임경섭의 2월 시의적절 14
임경섭 지음 / 난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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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자고 나는 가정의 달 5월에 이 책을 읽게 되었을까. 작정했을지도 모른다. 조금 울고 싶어서, 엄마가 그리워서 말이다. 『이월되지 않는 엄마』란 제목에서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곁에 없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올 거라는 것을. 그렇다고 마냥 우울하거나 슬픔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그런 내용은 아니다. 매일매일 주어진 하루를 살아가는 삶, 그 곁에 머무는 죽음, 부재로 존재하는 사랑에 대한 기록이라 하겠다. 여느 ‘시의적절’ 시리즈가 그러하듯이.


시인 임경섭의 『이월되지 않는 엄마』는 2월 1일부터 2월 28일까지의 기록이고 그날 그날 느끼는 감정을 시, 에세이, 짧은 소설로 표현했다. 엄마가 암이라는 소식을 들은 2월 1일, 그날은 매년 2월의 첫날을 지배할 것이다. 삶이란 그런 것이니까. 어느 해 어느 날, 어느 달은 그렇게 온통 한 사람으로 채워진다. 그런 의미로 나에게 5월은 아버지의 달이다. 이 책을 읽을 때는 엄마만 생각했는데, 엄마 없이 살아온 시간의 설움만 떠올렸는데 막상 글을 쓰는 지금은 아버지가 생각난다. 5월이라 그런 가 보다. 5월이라서. 5월에 돌아가신 아버지.


우리는 모두 고아가 된다고 했던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영영 부정하고 싶다. 빨리 고아가 된 나는 그 자리를 고모와 형제가 대신해 주었다. 병원에 입원하고 수술하고 회복할 때 당연한 듯 고모에게 부탁했다. 나이가 들어도 철이 없는 건 고모 때문이다. 전화를 안 받으면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면 되는데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노심초사 걱정한다. 그런 고모의 사랑에 한 번씩 짜증을 내기도 했다. 분에 넘치는 줄도 모르고. 지금도 안부를 먼저 묻고 살피는 작은아버지께도 마찬가지다.


부모는 무엇이고 자식은 무엇일까. 죽는 순간까지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 좋은 시인이 되라는 마지막 인사를 남긴 저자의 엄마. 마지막 인사를 전할 수 있는 죽음과 이별은 얼마나 다행인가. 이른 나이에 엄마를 떠나보낸 슬픔과는 별개로 나는 그런 이별이 부러웠다. 내게 엄마의 죽음은 통보였고 아버지의 죽음은 사랑한다는 말을 전할 수 있었지만 아버지의 목소리는 듣지 못했다.


2월 내내 글을 쓰면서 저자는 돌아가신 엄마와 함께였을 것이다. 그렇게 주어진 특별한 한 달, 언제나 그립지만 2월은 더욱 그러했을 터. 엄마가 좋아하는 꽃 ‘마가렛’으로 시작하는 봄, 엄마가 만들어준 기억하며 음식을 만들고 가만가만 그해 2월의 시간을 떠올린다. 짧고도 긴 2월을 그의 곁에서 보낸 이들도 함께.


시간이 흐르면서 빈자리가 문득문득 느껴질 때야 비로소, 그 시간이 켜켜이 쌓여 큰 무게로 돌아올 때야 비로소 진짜 슬픔이란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아무리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다는 걸 몸소 깨달을 때야 비로소 진정한 설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나의 엄마에 대한 추념은 끝이 없거니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커져만 가는 것이다. 어쩐다. 나는 엄마의 죽음에서 한 발짝도 빠져나오지 못했다. (170쪽)





정말 슬픔은 그렇다. 아무렇지 않게 하루를 보내고 웃고 떠들고 맛있는 걸 먹고 잘 지내다 문득 슬픔에 목이 멘다. 서러워서 울고 만다. 아, 나는 엄마가 없구나. 나는 엄마랑 이 풍경을, 이 음식을 먹지 못하는구나 실감하는 것이다.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엄마의 목소리, 낡고 흐린 사진 속 서툴게 웃고 있는 엄마의 표정만이 남았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친구의 엄마는 어린이날 돌아가셨다. 그래서 나는 어린이날 그 친구를 생각한다. 나와 똑같이 고아가 된 내 친구. 우리는 모두 그렇게 부모를 잃고 남겨졌고 살아간다. 농담처럼 죽음을 말하면서 정작 가까운 이의 부재를 두려워한다. 부재를 인식하지 않으려고 잊고 살다가 무슨 날에 화들짝 놀란다. 어버이 날인 내일도 그런 날이다.


나는 이제 카네이션을 준비하지 않는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엄마에게 카네이션을 달아드린 게 생각이 나지 않는다. 달아드리긴 했을 텐데. 항상 할머니가 먼저여서 할머니만 드린 것 같기도 하고. 할머니 보다 엄마가 먼저 돌아가셔서 그 후에는 할머니와 아빠에게만 드렸으니.


눈부신 5월이 쓸쓸하다. 아프다. 아버지와 이별한 그해 5월과 엄마와 이별한 그해 6월의 통증이 몰려온다. 시인의 2월이 그러하듯 나의 5월이 그렇다. 다가올 6월이 그렇다. 이월되지 않는 감정이다. 이월될 수 없어서 영원히 곁에 머물러 차곡차곡 쌓인다.


그해 2월은

도무지 이월되지 않고

여기까지 와 있다

그해 2월은

잊히지 않고

기어코 여기까지 와 있다

그해 2월이,

아팠던 그해 2월이

죽어 사라지지 않고

여기까지 같이 와 보란듯이 옆에 서 있다

원망스러운 그해 2월이,

그해 2월만 아니었다면

지금의 내가 아닌 다른 내가

이런 글을 쓰지도 않을 것 같은 나로

살아가고 있을 것만 같은

그런 2월이

다른 길로 가지 않고 온전히 내 옆에 살아 있다

죽지않고 여기에 있어서 다행이다

내가 죽을 때까지 죽지 않을 것 같아서

천만다행이다 ( 「2월」 전문, 176~177쪽)그해 2월은


울다 지쳐 잠들었던 밤, 멍하니 보낸 시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순간들이 저만치 달아났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나는 살아서 이렇게 새로운 5월을 맞이했고 엄마의 부재를 실감한다. 산다는 게 이런 거냐고 묻는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서, 답을 들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엄마에게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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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5-05-07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의 인생은 왜 이리 슬플까요. 이별하고 사라지고...자목련님 글이 이 화창한 봄날에 더욱 슬픕니다.

자목련 2025-05-08 11:41   좋아요 0 | URL
그 모든 것이 자연의 섭리일 텐데. 가끔 부정하고 거역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해요.

페넬로페 2025-05-07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월은 그리움의 달도 되는 것 같아요.
한편으론 언젠가 모두 가야할 곳이라는 생각에 시니컬해지기도 하고요^^

자목련 2025-05-08 11:43   좋아요 1 | URL
5월은 특히 그래요. 어버이 날인데, 마음이 쓸쓸해요.
모두 가야할 곳. 김혜자가 나오는 드라마처럼 그곳에서 다시 만나기를 바라며...

젤소민아 2025-05-08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도 농도가 다 다른 게 더 아름다운 것 같아요~~예뻐요, 자목련! 시는 슬퍼요...ㅠㅠ

자목련 2025-05-09 09:38   좋아요 0 | URL
엄마를 향한 그리움을 담은 시는 슬프고도 슬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