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정원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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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변 사람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한 책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선뜻 읽혀지지 않았다. 이상한 오기라고 할까. 대체 어떤 내용 이길래 하면서 궁금하기도 했지만 내심 소문 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고 그런 책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표지에서 산뜻한 정원의 한 컷을 기대했지만 나무 의자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그러나 우선, 나의 오기는 잘못된 것이었다. 참으로 칭찬하고 싶은 아름다운 소설이었다. 쉽게 읽혔고 따뜻했고 구석구석 재미와 더불어 애잔한 여운도 주었다. 
 
 10살짜리 아이 동구의 눈을 통해 바라본 세상, 그 세상은 폭풍전야 같았던 1980년을 이야기한다. 청와대와 가까운 인왕산 자락의 산 동네 살고 있는 동구. 그저 평범한 집의 아이. 동구의 곁에는 언제나 온화한 미소를 짓는 엄마, 무뚝뚝하고 무서운 아버지, 항상 험한 소리를 달고 사는 할머니, 부서질듯한 보석같은 동생 영주가 있다. 그저 늦된 아이라 생각했던 동구가 난독증을 앓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박영은 선생님을 만난 것은 동구에게 또 다른 세상과의 만남이었다. 그래서 일까 이 책의 제목은 <나......의 아름다운 ......정원>이다. 천천히 숨을 고르고 동구가 된 양 눈을 감고 읽어본다.

 마음 먹은 대로 말하지 못하고 흥분하면 말이 엉켜버리는 동구, 반면에 세 돌이 되기 전에 글을 읽는 동생 영주, 집 안에서 동구는 영주에게 가려 보이지 않는다. 그런 자신을 믿어주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마음을 나눠준 박영은 선생님에 대한 동구의 애정은 이루 말할수 없다. 그러나 그런 선생님은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고 어지러운 세상을 향해 떠나고 만다. 동구에게 이별을 고하지도 않고 떠나버린다. 언제라도 돌아올 것을 믿는 동구의 순수한 마음이 아름답고도 애처롭다. 10살 눈에 비친 세상은 아름다워야 하는데 세상은 혼란스럽고 어른들의 세상은 이해할 수 없다.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웠던 시대, 서울 한 복판에 탱크가 들어오고 아이들은 흥분한다. 그것이 아이들이다. 세상은 요란해도 아이들의 눈에는 그저 신나는 재미꺼리로 보인다. 조금 천천히 세상을 알아가는 동구에게 사랑스러운 영주의 갑작스런 죽음은 엄마에게서 미소를 빼앗아가고 동구네 집은 흔들린다. 10살이라는 나이는 너무 적은 나이이다. 동생과의 이별을 받아들이기에 너무 이른 나이. 

 작가 심윤경은 소년의 성장을 말한다. 아름답고 따뜻하게 동구에게 좀 더 많은 웃음을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너무도 가혹하게 이별을 겪게 하고 성장하게 한다. 물론 안다. 세사은 험한 곳이라는 것을, 더구나 동구가 살았던 어린 시절은 더욱 그러하다는 것을, 그리하여 그 시대의 동구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소설은 동구가 좋아했던 동네의 삼층집 정원을 둘러보는 것으로 동구가 겪었던 이별, 슬픔을  그 안에 남겨두고 끝을 맺는다. <아름다운 정원에 이제 다시 돌아오지 못하겠지만, 나는 섭섭해 하지 않으려 한다.>  동구의 아름다운 정원처럼 마음속 깊은 곳에 슬픔과 상처를 남겨두고 문을 닫을 수 있는 정원이 있다면.. 문득 동구를 생각한다. 지금 동구는 나와 비슷한 나이가 되었을까. 동구는 선생님에게 배운 대로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따뜻한 눈을 가진 어른으로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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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의 맛
오현종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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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현종이라는 작가를 알지 못했지만 이 책을 선뜻 구매하게 된 것은 작가의 이름 때문이었다. 시인 정현종님을 좋아하는 내게 현종이라는 이름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름이다. 당연 남자이려니 했던 작가가 여자라니 이 책은 나의 선택을 받기에 충분했다. ‘동화보다 발칙하고, 영화보다 기발한 아홉 가지 이야기’라는 광고 카피는 탁월했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사과의 맛이라는 단편은 만날 수 없었다. 정말 의도적으로 기획된 소설집일까. 어쩌면 작가의 전작을 읽었더라면 아마 주저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사과의 맛을 시작으로 오현종을 만나게 된 것은 내게 다행인 셈이다.

 사실, 동화 속 백설공주나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떠올렸다. 여전하게 동화라는 것은 꿈과 환상을 안겨주는게 아니던가. 우리가 살고 있는 복잡하고 무미건조한 일상에서의 환상, 놀이공원에 만날 법한 고딕양식의 아름다운 성을 꿈꿨는지 모른다. 동시에 우리는 안다. 우리가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가 모두 행복한 결말을 맺은 것은 아니며 때로는 무섭고 끔찍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상추, 라푼젤> 신선했다. 경어체로 시작하여 부드러움을 강조한다. 상큼함과 가벼움을 상징하는 상추와 상추를 먹는 아내의 뚱뚱한 모습의 설정이며, 상추로 아내의 남편을 유혹해 결국 라푼젤을 갖게 되는 옆집 여자는 마녀라기보다는 계획적이고 현실적인 여자였다.  아이만을 간절하게 원한 평범한 여자. 아름답게 자란 라푼젤을 사랑하는 왕자. 성이 왕이고 이름이 자인 어쩌구니 없는 이름까지 꽤 동화적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요정, 라푼젤은 현실속에서는 남편 왕자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아내로 남게되니 이것이 바로 우리 시대의 라푼젤의 자화상이라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연금술의 밤>은 열어서는 절대 안되는 판도라의 상자를 떠올린다. 과거의 사랑했던 마리라는 여인을 잊지 못하는 형과 자신이 누군가의 대역으로 사랑받고 있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고도 마리로 살고자 하는 여자, 그리고 과거의 모든 사실을 알면서 그 둘을 지켜보는 나, 마리가 과거의 사진첩을 열어보지 않았다면 셋은 정말 영원하게 행복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동화속 행복한 결말은 현실에서는 찾기 어렵다.

 <수족관 속에는 인어가>를 보면 성이 ‘인’이고 이름인 ‘어’라는 반인반어의 여자가 등장한다. 장애를 가진 아름다운 딸의 탄생은 가족에서 무거운 짐이 되며 더구나 창창한 미래를 펼칠 아들이 있다면 인어는 물 속으로 사라져 주기를 내심 간절하게 바랄 것이다. 어부인 아버지가 건져 올린 물병은 새로운 요술램프가 되지만 그들은 인어의 완전한 몸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쉽게 부자라는 소원을 말해버린다. 인어의 결혼과 동시에 이사를 가버린 가족과 인어를 사랑하지만 욕체적 교류를 원하던 남편은 그녀를 버리고 만다. 그녀가 선 곳은 탐욕과 음란이 가득한 현실의 공간인 지중해나이트의 수족관속.  목소리를 바꿔 왕자의 앞에선 인어공주처럼 이미 모든 것을 다 주었는데 우리의 인어는 두 다리를 갖지 못했다. 

 <닭과 달걀>단편을 최고의 점수를 주고 싶다. 홀로 아들을 키운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은 대부분 시어머니의 압승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동화적 테마를 갖추지 않아서 다른 단편에 비해 더 돋보였다. 광산으로 금강석을 캐러 남편이 떠난 후, 독선적이고 욕심만 가득한 시어머니를 향한 며느리의 차분하게 치뤄내는 계획적인 결말은 섬뜩했지만 목에 걸린 독이 든 사과가 시원스레 빠져나오는 듯 했다. 음식을 소재로 하여 만든 독특함과 통쾌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멋진 조화였다.

 동화라는 것을 꼭 같다 붙이지 않아도 이 책을 충분하게 재미있으며 나쁘지 않았다. 9가지 이야기속에는 동화에서 모티브를 찾거나 현대를 살고 있는 동화, 혹은 전설, 신화속의 인물을 상상하게 하지만 그런 설명이 아니더라도 그 자체로 빛나는 소설집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이 작가의 전체적인 작품의 흐름이다. 물론 나는 <동화를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제목의 김형중님의 글에 전적으로 의지한 것이니 직접 전작을 만나게 된다면 다를지 모르나 <너는 마녀야><본드걸 미미양의 모험>등의 제목에서부터 사과의 맛까지 전체적인 소재나 테마를 모두 동화, 신화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이 이 작가의 매력이나 특징이 될 수는 있지만
이미 <사과의 맛>을 알아버린 나는 그녀가 더 넓고 다양한 문학을 그녀만의 프리즘을 통해 세상에 보여주길 바란다. 그녀가 새로운 변화의 나래를 펼칠 것이라 믿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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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속 페르시아 고양이 생각의나무 우리소설 2
구효서 지음 / 생각의나무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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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효서 라는 작가는 왠지 친근하다. 정작 그의 소설은 이번이 처음인데 말이다. 사연인즉, 친구와 같은 성을 가진 소설가로 친구는 항상 자신의 성을 이야기할 때 구효서들먹였다. 그런 이유일까, 친구의 딸은 효서가 되었다. 이웃집 아저씨와 같은 흔한(?)인상이라 낯선 소설들임에도 불구하고 호감을 갖고 그와의 만남을 시작했다.
 
 소설속에는 혹시 작가의 일상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작가에 대한 언급이 많다. 특히 차례로 이어지는 <물 속 페르시아 고양이>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 <나무 남자의 아내> 세 소설에서는 특정한 직업을 소개하지 않고 여행자의 모습으로 작가를 떠올리게 한다. 또한 현재에서 시작하여 과거로의 회귀나 기억을 떠올리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물 속 페르시아 고양이 : 습작시절을 떠올리며 문학도로써의 모습은 이러하다 라는 사고로 살았을 것 같은 젊은 날, 우연하게 만난 자취방 주인 집 여자가 될 뻔한 여자와 소설가를 꿈꾸는 화자에게 말이 통하는 아줌마와의 만남은 즐거운 일상을 예고했을지 모른다. 우아함을 가장해 클래식을 듣고 신문 기사를 외워가며 이 소설가와 어떤 로맨스를 꿈꿨을까.  여자가 자신과 어울리지 않게 안고 있던 페르시아 고양이처럼.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 : 본격적인 소설을 쓰기 위해 아니 직업에 충실하게 위해 한적한 암자에 찾아든 화자는 소설쓰기가 아닌 무료한 일상에 젖어든다.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그러다 탈출사 사내를 만난다. 어떤 위험한 상황에서도 탈출은 성공하지만 정작 떠나고 싶은 암자의 스님의 눈에서는 탈출을 하지 못한다.  소설을 쓰기 위함이라는 핑계를 대고 떠났지만 화자는 정작 아내의 임신 사실이 확정되는게 두려웠는지 모른다.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에서도 깡통을 딸 수 있고 특정한 공간이 아니더라도 소설은 쓸 수 있다고 나는 그만 엉뚱한 단지를 걸고 만다.

 영혼에 생선가시가 박혀: 이 단편은 참으로 재미있다. 제목부터가 너무 멋지지 않은가. 소설을 꿈꾸는 수많은 이들은 모두 영혼에 생선가시가 박혀있기 때문이란다. 주인공 서 통이 소설가로 등단가지 까지의 에피소드를 그렸다.  열심으로 창작의 고통의 결과가 아닌 힘있는 작가의 문하로 들어가서 추천으로 등단을 하거나 이곳 저 곳 학원을 옮겨 다니는 모습 등 한국문단의 등단과정이나 문학상 당선과정을 풍자하며 꼬집고 있다.
 
 묵집한 소설집에는 표제작인 <물 속 페르시아 고양이>를 시작으로 9편의 소설을 만날 수 있다. 9편 모두 인상적이었지만 내게는 다소 생경한 소재의 소설이 두 편 정도 있었다. 마치 암호화된 글인양 느껴지는 < 아이 엠 어 소피스트>와 <확성기가 있었고 저격병이 있었다> 이 두 소설은 군대라는 제약된 공간에서의 이야기인데 그 형식과 내용이 다소 파격적이었다.

 작가 구효서를 처음 만난 느낌은 어려운 글들이었지만 대체로 나쁘지 않았다. 소설 쓰기와 문학에 대한 애정을 소설 속 곳곳에서 만나게 되어 더욱 그러했다. 소설 속 소설 쓰는 화자들은 대부분 남자들로 그들은 마치 작가 구효서의 분신들처럼 느껴졌다. 그는 책의 시작에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인간은 말을 한다. 그 말을 통해서 타인에게로 건너가며, 세계로 들어가고, 그 세계를 이해한다. 또 그 말을 타고서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말이 없다면 나도 없으며, 너도 없고, 세계도 없다. 말은 인간과 인간을, 존재와 세계를, 사물과 영혼을 연결하는 길이다. (중략) 문학은 이 미지에 말의 길을 내려는 운동이다. 아직 형태를 얻지 않는 세계와 존재와 삶의 신비를 말의 길로 끌어들이려는 움직임인 것이다. 특히 소설은 일상의 큰길의 한복판에서 오고 가는 모든 것으로부터 에너지를 얻는 가장 싱싱한 말이다. 성(聖)과 속(俗), 귀(貴)와 천(賤),내면과 실재를 가리지 안고 그는 세상의 모든 길을 달린다. (중략) 도처에 울려 퍼지는 문학의 죽음이 거짓 소문이라는 것, 우리가 말을 버리지 않는 한, 아니 버릴 수 없는 한, 말은 계속해서 살아 움직이며, 아직 형태를 얻지 않는 우리들의 진실을 향해 달려올 것이라는 점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외치고 싶다.누가 우리의 가는 길 묻거든, 눈을 들어 이 말을 보게 하라.

 그의 글은 소설을 꿈꾸는 이에게, 그가 독자이건 작가이건 아니 영혼에 생선가시가 박힌 모든 이에게 강력한 위로가 되고 커다란 울림을 준다. 그 울림을 제대로 전하지 못함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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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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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책이 있다. 모두들 감동적이라고 극찬하는데 내게는 좀 어지러운 느낌을 주는 책. 왠지 나만 남들이 느낀 그것을 찾아내지못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책, 이 책이 그러했다. 어린 아들과 아버지가 떠나는 머나먼 여정. 그들이 어디를 향하는지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왜 그 험한 여정을 가고 있는지 알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요란한 문구는 책을 선택하는데 어떤 영향을 줄까?  미국 현지에서 유명세를 탄 책. 낯선 작가, 사실 외국 작가에 익숙치 않다. 코맥 매카시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작가라는 것뿐. 
 
 시작은 음울했다. 그 시작은 끝내 음울을 버리지 못했다. 글씨를 채 배우지 못한 어린 아들, 세상의 모든 것에서부터 아들을 지켜야 했던 아버지. 아들을 사랑하고 걱정하는 마음과는 다르게 아버지의 메마르고 냉소적으로 느껴졌다. 결국 세상에 혼자 남아야 할 아들을 연습시키기 위한 것이었을까. 그런 아버지에게 무조건적인 믿음과 사랑을 확인하고 싶었던 아들은 이렇게 묻는다.

제가 죽으면 어떡하실거예요?
네가 죽으면 나도 죽고 싶어.
나하고 함께 있고 싶어서요?
응, 너하고 함께 하고 싶어서.
알았어요. 본문 16쪽

 얼마나 두려웠겠는가. 얼마나 확인하고 싶었을까. 상상하고 싶지 않다. 아이에게 남자는 절대적인 그것이었다. 모든 문명은 사라지고 세상은 두려움과 정적뿐이다. 여기 저기 흩어진 죽음의 잔해, 그들을 죽이려 달려드는 사람들, 내가 살아야 하기에 결국은 누군가를 죽일 수 있고 인육을 먹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 세상의 종말은 그런 모습일까. 언제 어디서 죽음을 만날까 두려운 것은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침마다 아버지의 온기를 확인하는 어린 아들, 꿈속에서 죽음을 만나고 아내를 기억하는 남자. 살아남기 위해 먹어야 했고 끊임없이 걸어야 했다. 걷고 또 걷고. 그들은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무겁고도 무거운 여정이었다. 책을 읽는 나는 점점 지쳐갔다. 세상의 끝을 향한 그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종말은 또 다른 시작일까. 

 할 일의 목록은 없었다. 그 자체로 섭리가 되는 날. 시간. 나중은 없다. 지금이 나중이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모든 것들, 너무 우아하고 아름다워 마음에 꼭 간직하고 있는 것들은 고통 속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슬픔과 재 속에서의 탄생. 남자는 잠든 소년에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나한테는 네가 있는 거야. 본문 64쪽

 어디에도 빛은 없었고 공기마저 절망처럼 느껴진다. 살아남기 위해 손에 꼭 쥔 총 한 자루, 무엇이든 먹을 수 있고 입을 수 있는 것을 운반하기 위한 카트, 경계를 늦추지 않는 눈동자, 남자를 떨어지지 않는 아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처절하다. 끔찍한 고통속에서 살아남은 어린 아들은 새로운 세상을 위한 신이 선택한 존재인가. 소년은 세상에 빛이 되고 불을 켤 것인가. 결국 아버지의 죽음으로 세상에 홀로 남은 아들, 아버지를 두고 떠날 수 없었던 아들은 이렇게 말한다. 아빠하고 매일 이야기를 할게요. 소년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잊지 않을게요. 무슨 일이 있어도. 본문323쪽

그들의 여정은 끝이 났다. 페허가세상 속으로 아버지는 사라지고 새로운 세상을 위해 아들은 살아남았다. 남쪽으로 남쪽으로 바다를 향하던 그들이 향한 곳, 마침내 도착한 그 끝에 남은 것은 희망이었을까. 그곳에는 희망과 구원이 있을까. 그렇게 믿고 싶을 뿐이다. 여전하게 내게는 잿빛 연기로 둘러싸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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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랑
이언 매큐언 지음, 황정아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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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사랑이라, 도대체 어떤 사랑이란 말인가. 요즘 이래 저래 내게 도전적으로 다가오는 사랑이라는 단어. 꼭꼭 곱씹어 그것이 가진 함축적인 의미를 맛보고 싶어진다. 더구나 이언 매큐언이 아니던가. < 첫사랑, 마지막 의식 >에서 그는 예상치 못했던 인간의 내면 구석구석을 파헤져 놓았다. 이성적으로는 도저히 받아들 수 없는 상황 설정, 그 안에서 그가 던지는 질문은 도덕성과 자유분방한 문란함을 동시에 생각하게 했다.

 이 책에는 어떤 사랑이 있을까. 짧은 생각을 이어가기도 전에 이언 매큐언은 강한 흡입력으로 책 속으로 독자를 유인한다.  한가로운 피크닉의 풍경, 낭만적인 헬륨풍선을 떠올리면 그것은 행복한 상상으로 이어져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도 불행한 일들의 시작에 불과했다.  풍선에 타고 있던 아이를 구하기 위해 달려든 남자들 중에 조와 클라리사의 일상에 들어온 한 남자, 패리와의 만남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첫 눈에 반한 사랑, 패리는 조에게 그런 사랑을 느꼈다. 동성애를 생각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서로 상호적인 교류가 없다는 것이다. 맹목적인 그의 접근은 조를 당황하게 만들고 만다. 패리는 조의 곁에서 맴돌기 시작한다. 점점 조여드는의 행동에 조는 그가 정신질환인 클레랑보 신드롬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는 중요한 것을 잊었다. 바로 그의 곁에 있는 클라리사에게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한 것이다. 패리의 전화가 걸려온 그 날, 바로 클라리사에게 이야기했어야 했다.

 사랑하는 사이의 관계라는 것은 참으로 미묘한 것이다.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고 사랑하면 살아왔지만 어느 순간, 보이지 않는 틈은 그 둘의 관계에 벽을 만들고 만다. 패리로 인해 조와 클라리사는 보이지 않는 벽을 쌓기 시작한다. 클라리사는 패리의 문제를 자신과의 많은 대화로 풀기를 원했다. 조가 자신에 대한 불신을 품었다는 것에 큰 상처를 받게 된다.

 조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패리를 향해 어떤 행동을 해야 했을까. 자신을 죽이려 했던 사람, 사랑하는 클라리사를 위협하고 자신앞에서 자살을 시도한 사람에게 그가 총을 겨눈 것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본능은 아니었을까. 그럼 그가 원했던 것은 무엇일까. 조와 이야기를 나누고 조가 그의 사랑에 대해 호응만 했더라면 그조 대신 누군가를 죽이지 않게 되었을까. 그러나 어떤 답도 정답은 없다. 어느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은 이렇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클라리사와 조의 관계는 예상대로 멀어지고 있다. 조는 클라리사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패리에게 총을 쏜 일에 감격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클라리사는 이런 결말을 이끌어 낸 조에 대해 이미 많은 믿음을 상실한 상태였다. 과학분야의 저널리스트인 조는 과학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못했다.
 
 자신의 마음을 자신의 고통을 보여주고 싶었던 조, 결코 평범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그에게는 전부였던 사랑을 위해 죽음을 택한 남자 패리. 자신에게 모든 것을 열어주지 않았던 조를 이해할 수 없었던 클라리사.  일상적일 수 있는 사소한 사건으로 시작되었지만 언제나 맞닥들 일 수 있는 사랑이라는 것. 그것은 끔찍한 진실이다. 
 
 이언 매큐언은 대중적이지 않은 소재를 대중적으로 이끌어내는 힘을 가진 작가다.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에 흐르는 감정을 탁월하게 묘사한다. 그만이 그려낼 수 있는 인간의 처절한 고통, 인간의 본능적 양면성을 만나는 것을 즐거운 일이다. 그의 소설에는 항상 치명적인 무엇이 함께 한다. 그래서 두렵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인 작가다.

 니체가 말했다. 사랑이 두려운 것은 깨지는 것보다도 사랑이 변하는 것이다 라고.  깨지는 것 보다 변하는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배제되는 그것이 두려운 것이다. 수많은 형태로 존재하는 사랑들, 그 사랑들 중에 이런 사랑도 분명 존재할지 모른다. 사랑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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