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의 문장
김유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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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진의 소설은 섬뜩했다. 몇 번의 멈춤을 갖게 했고 숨을 고르게 했다. 그러나 신선했다. 어디서 이런 놀랍고도 실험적인 소재를 얻었을까 궁금했다. 첫번째 희생자는 세 명의 여자아이였다.  단편 늑대의 문장의 시작이며 이 소설집을 시작하는 문장은 이 소설을 예고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편혜영의사육장쪽으로』, 백가흠의조대리의 트렁크』를 떠올렸다. 조금은 엽기적이며 조금은 끔찍한 일상을 만나게 되지나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김유진은 조금 강한 바람이 아닌 폭풍 그 자체였다. 맞다, 폭풍이었다.

 표제작 「늑대의 문장」은 이유도 없이 폭사(爆死)가 발생한 작은 섬 마을의 이야기다. 소녀는 사방에 둘러싼 죽음을 마주하며 두려워하지 않는다. 존재감 없는모와 극악스런 엄마. 전염병처럼 번지는 죽음. 무엇으로 인해 폭발이 시작되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죽거나 불구가 된 사람들이 가득한 섬은 자연스레 고립되고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폭사의 원인을 들개에게로 돌렸다. 자신들이 돌보았던 개들이 생명을 위험하는 늑대로 전락되고 말았다. 아버지를 잃은 소녀의 엄마는 극도로 난폭해졌고 개들을 죽이기 시작한다. 말리는 이모는 폭발했지만 죽지 않았다. 섬은 늑대와의 전생을 선포한 듯 하다. 잔인하고 엽기적인 단어가 갖는 그 이상으로 끔찍스러운 소설이다. 폭사로 난자당한 시체들, 죽음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그 안에서 김유진은 놀랍도록 조용하고 차분한 이모를 그려냈다. 

 <이모의 방은 햇빛이 거의 들지 않았다. 사면에 커튼이 쳐져 있는 방 안에는 가기 다른 천들이 천장에서 바닥까지 늘어져 있었다. 미로 같은 천들을 다 걷어내고 나면 한쪽 구석에 바느질을 위한 작은 공간이 나왔다. 바느질은 전적으로 이모의 손으로 이뤄졌다. 재봉틀도 없었다. 수많은 바늘들, 두껍고 얇고 밝고 어두운 천들이 방을 겹겹이 둘러싸고 있었다. 이모는 그 속에서 누에고치처럼 실을 뽑아내었다. >p 19

 이제 「마녀」를 볼까. 엄마의 발목이 돌아왔다. 로 시작된다. 발목이 돌아오다니 이 소설은 또 얼마나 괴기스러울까. 나무를 돌보고 버섯을 타며 산다. 돌풍이 작은 마을에 온전한 집은 화자의 집뿐이다. 거대한 나무뿌리가 집을 지탱해주는 이유로 나와 아버지를 나무를 돌본다. 아버지의 사랑을 원했지만 외로워하던 엄마는 자살을 선택했다. 아름다운 엄마를 닮고 싶었지만 화자인 나는 짧은 목과 넓은 어깨를 가졌다. 몸 대신 검은 곱슬머리만 자라는 동생은 엄마의 아름다움과 우울함까지 닮았다. 나는 끊임없이 악몽을 꾸고 매일 기록한다. 환상처럼 사라진 것들을 보는 동생은 돌풍에게 엄마라는 이름을 붙인다. 발목으로 돌아온 엄마, 풍파에 찌든 노인같은 모습의 나, 긴 머리의 허약한 동생 중 진짜 마녀는 누구일까?

「목소리」는 지극히 몽환적이다. 늑대의 문장처럼 여기에도 죽음이 있다. 늑대 대신 이번엔 물이다. 마을과는 격리된 삶을 사는 듯한 소녀와 언니. 오래된 간장과 밥을 먹고 산다. 나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본 이야기를, 백발은 가진 언니는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 이야기를 들려준다. 진짜 그들은 마녀, 마귀같다.  ‘등’을 만드는 남자가 저수지속으로 사라졌다. 그가 별로 간 것이라고 믿는 언니는 서서히 입덧을 한다. 어느 날 폭우가 내리고 집들은 물 속으로 잠기지만 언니와 나는 집을 떠나지 않는다. 단편 마녀에서와 마찬가지로.

  세 편외에 다른 소설들, 지진이 나던 날 태어난 괴기한 형상( 붉은 한 팔을 가졌고, 겨드랑이와 팔 안쪽에 수포가 퍼진)아이의 이야기 「움」, 길을 잃고 골목을 헤매다 잔반 수거를 하며 사는 노인과 아들과 함께 살게 된 아이의 눈에 비친 골목을 그린 「골목의 아이」 등 나머지 소설도 모두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아니, 쉽지 않은 정도를 너머 고통스럽고 낯설다.

 소설책이 나온다고 어머니에게 자랑스럽게 말하는 작가 김유진의 미소는 아마도 책날개의 그것보다 더 밝았을 것이다. 이처럼 유쾌한 미소를 가진 작가가 어쩜 이렇게 그로테스크한 묘사가 가득한 소설을 섰을까? 그 답을 다음 소설집에서 만날 수 있을 꺼란 기대를 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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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리뷰] 앤서니 브라운 그림책 리뷰를 올려주세요~ 5분께 2만원 적립금을 드립니다.
겁쟁이 빌리 비룡소의 그림동화 166
앤서니 브라운 지음, 김경미 옮김 / 비룡소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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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어떡하죠?  사랑스러운 우리 빌리에게 온 세상 모든 것이 다 걱정거리군요. 신발도 걱정, 구름도 걱정, 아마 빌리는 나무도 걱정이고, 바람도 걱정일게 분명해요.  혼자서 잠을 자기 시작하면 무서워서 못 자는 아이들이 있는데, 우리 빌리는 그 정도가 심했어요. 엄마랑 아빠가 걱정하지 말라고, 어떤 일이 있어도 빌리를 지켜준다고 해도 빌리의 걱정이 사라지지 않았어요. 왜 그렇잖아요. 어렸을 때는 모든 것을 살아있는 생명체로 느껴지잖아요. 호두까기 인형처럼 빌리가 잠든 사이 방 안을 마구 돌아다닐 꺼라 생각하고, 벽이 내려앉으면 어쩌나 걱정하잖아요. 저도 그랬거든요. 

                              

 이제, 걱정하지 마세요. 겁쟁이 빌리의 걱정이 멈췄거든요. 어떻게 멈췄을까요? 궁금하죠? 그 비밀을 알려줄께요. 빌리가 할머니댁에 가서도 걱정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지요. 그런 빌리를 보고 할머니께서 예쁜 인형들을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이 애들은 걱정 인형이란다. 잠들 기 전, 이 인형들에게 너의 걱정을 한 가지씩 이야기하고 베개 밑에 넣어 두렴, 네가 자는 동안 이 인형들이 대신 걱정을 해 줄 꺼야.” 
                                                        
                              
                                

  빌리는 잠들기 전 걱정 인형들에게 모든 걱정을 이야기하고 잠을 잘 자게 되었어요. 역시 할머니들은 모르시는게 없어요.  그런데 세상에나 빌리는 걱정 인형이 걱정이 되지 뭐예요. 역시 겁쟁이 빌리답나니까요. 걱정거리들을 걱정 인형에게 떠넘겼으니 걱정 인형은 얼마나 많은 걱정이 많을까, 빌리는 생각했어요.  빌리에게 좋은 생각이 났어요. 걱정 인형을 위한 또 다른 걱정 인형을 만들었어요. 정말 귀여운 아이예요. 누가 이런 빌리를 겁쟁이 빌리라 부르겠어요?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은 그림이 부드럽고 따뜻하지요. 아이들의 꼭 안아주는 것 같아요. 점점 아이가 혼자 자는 나이가 빨라진다고 해요. 무섭다고 울기도 하고, 혼자 자기 싫다고 말하는 아이들을 위해 엄마들은 음악도 틀어주고 책도 읽어주고 잠들기를 기다리지요.  이제는 하나 더, 엄마들은 이제 걱정 인형도 준비해야 되겠네요. 혼자서 잠을 자고 혼자 일어나는 아이를 보면 대견하다는 생각도 들면서 안쓰럽기도 하고 그게 엄마의 마음인가 봐요.

 * 걱정 인형은 중앙아메리카의 과테말라라는 나라에서 처음 생겼대요. 아주 작은 나무 조각과 남은 천 조각으로 만들어졌대요. 정말 예쁜 인형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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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어느 날 소설이 되다 현대문학 테마 소설집 1
하성란.권여선.윤성희.편혜영.김애란 외 지음 / 강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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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문학을 이끌어 가는 9명의 인기 여류작가가 서울을 테마로 소설을 썼다. 물론 9명의 작가 모두 서울 태생이거나 온전하게 서울에서 살았던 것은 아니다.  사회,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인 서울.  내 이름 그대로 서울에 살게 될 줄 꺼라 믿었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니 피식 실소가 터진다. 9명의 작가가 그려낸 서울은 어떤 모습일까.  순서대로, 좋아하는 작가대로 읽어도 좋다. 서울을 꿈꾸는 사람들, 서울을 추억하는 사람들, 서울에 갇혀 사는 사람들. 서울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잠시 접어두고 그녀들에 의해 새로이 탄생된 서울을 만나볼까?

 먼저 이혜경의 <북촌>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한옥 마을로 나를 이끈다. 전재산을 사기당하고 친구의 집을 돌봐주며 삶을 이어가는 남자에게 나비처럼 한 여자가 날아온다.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는 남자와 모든 것을 원하는 여자의 만남. 마루에 앉아 햇볕에  머리를 말리는 여자를 상상한다. 춘몽같은 사랑은 금세 사라진다.  친구의 집을 떠나야 할 때가 다가오고 나비같던 여자도 날아가버린다. 그도 이제 서울을 떠나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적금을 들고 집을 마련해 소박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던 서울. 그러나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린 곳이 되고 말았다. 시간이 흐를지 않을 것 같은 북촌. 제발 그곳만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내게도 옹달샘처럼 계속 남아주기를 바라는 곳이니 서울에 터를 내린 모든 이에게는 그런 곳이 아닐까 싶다.     

 권여선의 <빈 찻잔 놓기>는 서울이라는 도시를 가득 채운 인간의 욕망을 노래한다. 서울에서 명예를 얻기란, 얼마나 힘들고 외로운 일인가? 인맥을 위해 적당한 아부와 적당한 가식이 필요한지 시나리오 보조 작가인 주인공만 몰랐던 것이다. 함께 작업하고 마음을 나눈다고 믿었지만 사람들의 관계는 이익을 위한 허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서울은 그녀를 옭아맨 올무가 된다. 아니, 그녀만이 서울의 실체를 몰랐는지 모른다. 여전하게 서울에 적응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강영숙의 <죽음의 도로>는 쓸쓸하다. 벌어먹고 살기 힘든 서울 살이, 빚을 정리하고 애인은 떠나고 살아야 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 어디에서 죽어야 좋을까. 주인공은 서울을 탐색한다. 사고 발생률이 가장 높은 구간을 발견하고 실전에 옮기려 시도한다. 그러나 첫 번째, 두 번 째 모두 실패한다.  모든 것에 화가 난다. 마침내 죽음을 실행하는 날, 그녀가 안착한 곳은 바로 집. 결국, 서울은 죽음보다 삶이 더 강한 도시인가? 살기 위해 온 곳, 그러나 죽음을 생각하게 만드는 곳이 서울이라는 것을 알기에 너무도 쓸쓸하다.

 편혜영의 <크림색 소파의 방>은 제목처럼 달콤하지 않다. 오히려 처절하고 끔찍하다. 오랜 시간 지역 근무를 마치고 수더분한 여자와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얻었다. 이제 마지막 행복을 찾아 서울로 향하는 부부. 새로 산 살림이 꾸려질 서울의 보금자리,그들에겐 포근한 크림색 소파같은 서울이 있다. 그러나 삶은 언제나 변수가 존재하는 함수의 그래프 같은 것. 폭우 한가운데 멈춰버린 차,  온다는 보험회사 직원은 오지 않고, 크림색 소파는 아파트 어느 자리에도 들어가지 않는다는 이삿짐 센터 직원의 전화만이 계속된다. 국도 낡은 주유소에서 만난 청년들과 실랑이가 벌어진다.  과연, 그들이 꿈꾸는 서울에 안착할 수 있을까?

 그 외에 타인의 삶에 차단거리를 두는 서울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김숨의 <내 비밀스런 이웃들>, 이민간 동창의 할머니를 위해 지난 시절 그들이 함께 했던 추억의 장소를 찾아가 변화된 서울과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독특한 소설 <소년은 담 위를 거닐고>도 흥미롭다.

 서울, 화려한 빌딩 숲 사이에 북촌이 존재하는 곳. 누군가에게는 행복으로, 누군가에게는 절망으로 기억되는 곳.  9명의 작가가 그려낸 서울은 서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서울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읽는 동안 한때, 정기적으로 서울을 향했던 시절을 떠올렸다.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서 상기되었던 나, 지인을 만날 설렘과 해야 할 일들을 기록하던 나. 서울이라는 도시에 삶을 뿌리내린 사람들도 작은 에피소드 심어둔 사람도  나처럼 이렇게 서울을 생각할까. 그렇게 잠시 스쳐 지나간 서울, 내게는 한 장의 추억으로 남은 곳. 이제 서울이 그리워질 때마다 이 책을 펼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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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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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대를 갖고 만난 책이 기대 이상일 때 즐거움은 배가 된다. 괜찮은 소설집이라는 호평이 끊이지 않았던 김애란의 소설집 <달려라 아비>이 바로 그것. 군더더기 없고 깔끔하며 탄탄한 문장력, 거기다 무거운 주제로 가라앉지 않도록 위트로 버무렸다. 9개의 단편 모두 최고의 별점을 준다. 
  
 <나는 편의점에 간다> 이 단편이 직접적으로 김애란을 만나게 했다.
나는 편의점에 간다. 많게는 하루에 몇 번, 적게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나는 편의점에 간다. 그러므로 그사이, 내겐 반드시 무언가 필요해진다.p32 소설은 이 문장으로 시작해 이 문장으로 끝난다. 언제부턴가 편의점은 현대인의 일상 속 필요충분조건이 되버렸다. 아니 잠식해버렸는지 모른다. 모든 것을 만족시키는 유일한 곳인 양 사람들은 편의점에 간다. 편의점을 둘러싼 사소한 일상임에도 소심한 화자는 전전긍긍한다. 택배 서비스로 주소를 알게 되지는 않을까, 휴대전화 충전시 문자를 훔쳐보지는 않을까, 남들이 하지 않는 걱정을 사서하는 경우다. 정작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갖는 이가 없다. 바쁜 생활, 도심 한복판에서 교통사고를 목격해도 무심하다. 현대인의 삶은 단적으로 표현해주는 곳, 편의점. 모든 것이 다 있었지만 정작 그곳엔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이 당연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참 쓸쓸하다.
 
이과 같은 느낌은 <영원한 화자>의 다음 구절과 이어진다.

나는 이해받고 싶은 사람, 그러나 당신의 맨얼굴을 보고는 뒷걸음치는 사람이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 그러나 그 사랑이 ‘나는’으로 시작되는 사람이 하고 있는 사랑이나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그래도 나는’이라고 말한 뒤 주저 앉는 사람, 나는 한번 더 ‘나는’이라고 말한 뒤 주저앉는 사람, 그러나 나는 멈출 수 없는 사람, 그리하여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자주 생각하는 사람이다’라고 처음부터 다시 말하는 사람이다. 하여, 우리는 흐르는 물에 손을 베이지 않고도 칼을 씻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이다.  p 138 
 
표제작 <달려라, 아비> 속 아비가 누구일까 호기심을 불러온다. 아비가 주인공의 아버지일꺼라 예상이나 했을까? 생물학적 아버지 단 한번도 만나지 못했던 아버지를 아비라 불렀다. 내게 생명을 준 이, 그리운 존재. 임신한 엄마를 버리고 떠났다지만 그래도 아버지가 아니던가. 택시기사라는 직업이 얼마나 고단할지, 삶이 얼마나 궁핍할지 예상해보지만 소설 속 두 모녀는 씩씩함을 벗어나 유쾌하다.  언제나 세상을 향해 달리고 있을 꺼라는 상상으로 아버지의 부재를 대신한다. 그런 아버지가  미국에서 이복 형제의 편지로 돌아왔다. 도대체 이런 슬픔을 담담하다 못해 평온하게 까지 하는 힘, 김애란이 더 궁금하다.
 
전반적으로 이 소설집은 아버지와 인간의 내면이라는 두 가지 축으로 나눠진다.  놀이공원에서 아들을 버린 아버지, 그러나 화자는 자신이 아버지를 잃어버렸다고 말하는 <사랑의 인사>, 어느 날 딸의 자취방으로 찾아온 무기력한 아버지. 하루종일 방안에서 라면을 먹거나 텔레비젼을 보는 아버지, 결국 딸은 텔레비젼 전기 선을 잘라버리고 만다. 준비해둔 용돈은 아버지에게 딸의 방을 떠나라는 여비가 되고 다시금 혼자 잠 못드는 밤을 지내는< 그녀가 잠 못 드는 이유가 있다>.  존재하나 언제나 부재로 기억되는 아버지. 아버지와 더 가깝게 지내고 싶지만 이상케도 먼 거리를 유지하려는 듯 보여지는 <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 그러나 작가 김애란은 아버지의 역할에 있어 생물학적 기능으로써 말할뿐 더 이상의 큰 의미는 부여하지 않는 듯 보여진다.  아버지가 없어도 삶은 지속된다라고 말하고 싶었을까. 아니면 소설 속 아버지들이 아닌 다른 아버지를 원하고 있음을 말하는가.
 
인상적인 또 하나의 단편은 <노크하지 않는 집> 같은 구조의 5개의 방에 다섯 여자가 산다. 그러나 누구도 자신 외의 나머지 4명의 이름도 얼굴도 모른다. 널어 놓은 빨래로, 화장실 머리카락으로, 깊은 밤 울음 소리로만 거기에 그녀들이 살고 있음을 알 뿐. 연이어 화자의 신발이 사라지 순간 타인의 공간이 궁금하다. 상주하는 시간이 다르므로 내 방인 양 열쇠공을 부르고 문을 연다. 방 안엔 화장의 방이 그대로 펼쳐지고, 순간 읽는 이에게도 어지러움이 몰려온다.
 
타인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현대인. 그러나 반대로 무관심이 너무도 두려운 사람들. 많은 사람들 속에 살아가지만 진정한 소통을 나누는 이를 찾기 어렵다. 나를 세상에 존재하게 한 이와 상관없이 살고, 이웃을 시작으로 사회에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삶. 어쩌면 우리가 속한 세상의 진실은  이렇게 무서운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김애란이 그린 소설로 만난 삶은 무서움을 벗어던진 씩씩함으로 보여진다. 그리하여 읽는 이도 씩씩하게 세상을 향해 달릴 만반의 준비 자세를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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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다 자랐다, 삼십대, 청춘은 껌처럼 씹고 버렸
다. 가끔 눈물이 흘렀으나 그것을 기적이라 믿지 않
았다. 다만 깜짝 놀라 친구들에게 전화질이나 해댈
뿐, 뭐 하고 사니, 산책은 나의 종교, 하품은 나의 기
도문, 귀의할 곳이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지. 공
원에 나가 사진도 찍고 김밥도 먹었다. 평화로웠으
나, 삼십대, 평화가 그리 믿을 만한 것이겠나, 비행
운에 할퀴운 하늘이 순식간에 아무는 것을 잔디밭에
누워 바라보았다. 내 속 어딘가 고여 있는 하얀 피,
꿈속에, 니가 나타났다, 다음 날 꿈에도, 같은 자리
에 니가 서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너랑 닮은 새였다
(제발 날아가지마), 삼십대, 다 자랐는데 왜 사나,
사랑은 여전히 오는가, 여전히 아픈가, 여전히 신열
에 몸 들뜨나, 산책에서 돌아오면 이 텅 빈 방, 누군
가 잠시 들러 침만 뱉고 떠나도, 한 계절 따뜻하리,
음악을 고르고, 차를 끓이고, 책장을 넘기고, 화분에
물을 주고, 이것을 아늑한 휴일이라 부른다면, 뭐,
그렇다 치자, 창밖, 가을비 내린다, 삼십대, 나 흐르
는 빗물 오래오래 바라보며, 사는 둥 마는 둥, 살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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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4-10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눈물이 나려고 해요.

자목련 2009-04-10 22:05   좋아요 0 | URL
저도 어제 이 시를 만나면서 그랬는데, 님도 그러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