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 - 스스로 행복해지는 심리 치유 에세이
플로렌스 포크 지음, 최정인 옮김 / 푸른숲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소설가 김연이 딸과 살아가는 다큐를 시청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이 책을 만났다.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방송이라는 경로는 더더욱 그러하다.  김연은 방송을 통해 마지막 보험이 죽음이라고 했다. 지금 17살인 딸이 스무 살이 되고 자신의 나이 쉰에 자신을 위한 유럽 배낭 여행을 떠날 것이라고 했다. 엄마가 아닌 이제 그녀 스스로를 위한 삶을 꿈꾸는 그녀. 홀로 딸을 키워가는 그녀는 고독하고 외로워 보였으나 행복해 보였다.   김연처럼 우리 주위에는 혼자 사는 여성들이 많다. 여전하게 세상은 아직도 그녀들에게 많은 편견을 갖고 있지만 그들을 당당하게 세상과 맞서고 있다. <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의 원제는  On My Own.  이 책의 저자 플로렌 포크는 두 번의 이혼으로 혼자가 된 자신의 이야기와 심리치료사가 되어 상담해온 많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스스로 행복해지는 법을 말한다.

 연인이 있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결혼이라는 것이 행복으로 향하는 마법의 문처럼 생각하는 여성들이 많다.  나도  한 때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삶은 원하는 대로, 계획하는 대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별을 경험하게 된다. 혼자 남겨져 살아야 한다는 것, 정확하게 말하면 둘이었다가 혼자가 된 상실감은 크다. 연인과의 이별, 남편과의 이별이든 대부분의 여자들은 결별의 이유를 자신에게 찾으려고 애쓴다. 사랑했기에 믿었기에 때로 배신감은 더 클 수 있다. 

 저자는 ‘혼자라는 것은 하나의 기회다’ 라고 말한다.  혼자만의 공간을 통해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연인으로써 존재가 아닌 여성으로써의 존재를 발견할 기회라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기혼 여성들이 베란다나, 부엌 한 켠에 자신의 공간을 마련하고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갖고자 하는 마음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혼자라는 것의 확장은 고독과 이어지는데, 고독은 외로움이 아니었다. 고요하고 안정된 마음을 넘어 초월적이고 창조적인 것과 관련된 것이었다. 순간, 나는 고독해지고 싶어졌다. 

 혼자라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여성들에게는 자신만의 트라우마가 존재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 어린 시절 부모나 주위 친구들에게 받은 상처가 연장되어 있다는 것은 놀라운 것이었다. 아픈 부모가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고 떠나버렸을 때, 친구들 사이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믿었던 어른에게 폭력을 당한 상처들이 그러했다. 특히나 ‘상실의 원인이 무엇이든 아이는 잘못한 것은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 p 115 라는 문장을 읽었을 때 가슴이 먹먹해졌다. 작가는 어린 시절 그 상처를 견디기 위해 찾았던 비밀의 정원을 기억하라고 한다. 당신을 위해 썼던 일기, 책 읽기,  빨간 머리 앤의 상상하기도 비밀의 정원의 형태인 것이다.

혼자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생길 때 가장 필요한 것이 자신에 대한 믿음이라고 강조한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으면 길에는 생각보다 더 많은 갈림길이 있다느 것을, 더 많은 기회가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잘할 때까지 똑같은 걸음을 반복하며 연습함에 따라, 갈림길이 선명하게 보인다. ’ p 247  나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반복도 연습도 하지 못한 채 갈림길에서 주저앉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믿음을 바탕으로 변화되는 자신을 만나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안다면 피나는 노력도 두려울 것이 없다는 것이다.

 혼자만의 시간을 찾은 여성들에게 있어 창조적인 삶이란 자신의 비밀스러운 삶을 찾아내는 행위이며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표현할 수 있는 행위라는 것은 고독의 참의미가 된다는 것을 책을 통해 발견하게 된다. ‘고독은 풍요로운 상태다. 나와 주변의 고요함 사이에 아무것도 끼어들지 않는 상태다. 시야를 가리는 장애물이 하나도 없는 상태, 생각이 왔다 갔다 하지만 아무것도 앞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물이 그 자체로서 그대로 존재하는 상태. 바람이 불어 그 상태를 흩뜨려놓지 않는 한, 균형을 잡을 수 있는 한, 우리는 고독의 파도를 타고 해안으로 간다. ’p 298  아, 정말 멋진 말이다. 물론 온전하게 내 것으로 만들 수 없는 문장이지만, 나는 흥분하고 있다.

 책이 주는 특별함은 여성들만의 위한 상담, 모든 연령대의 여성들의 고민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동생이거나 후배, 언니나 엄마, 할머니가 될 수 있는 모든 여성들의 이야기. 물론 소개된 것이 여성들을 위한, 혼자인 여성들을 위한 삶의 정석은 아니겠지만 여성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은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세 가지다. 인식하고, 이름 붙이고, 표현하라는 것이다.  내 안에 있는 욕망과 감정을 인식하고 그것들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권리가 있다는 것을 나 자신을 위해 표현하라. 

 어려운 책이지만, 여성이기에 이 책을 읽는 동안 힘겨워 멈추기도 했고 공감하기도 했다.  또한 내가 감추고 있었던 나의 감정 상태도 체크할 수 있었다. 내 안의 깊은 우물을 들여다 보게 한 이 책을 이렇게 말하고 싶다. 여성인 당신에게, 당신을 위한 책이라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청춘의 문장들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삶을 설명하는 데는 때로 한 문장이면 충분하니까.’p 9  

 김연수의 말대로  정말 그렇다.  셀 수 없이 많은 조각의 인생이라는 퍼즐. 제 자리를 잡은 조각들은 지나온 내 삶의 슬픔과 기쁨을 기억하고 있다. 하루 하루가 설렘으로 가득했던 사랑이 시작되는 날들은 생각하노라면 정현종의 시 구절이 떠오른다.  ‘사람으로 붐비는 앎은 슬픔이니-/그게 활자의 모습으로 있거나/망막에 어른거리는 그림자거나/풀처럼 흔들리고 있거나/그 어떤 모습이거나/사람으로 붐비는 앎은/슬픔이니……’ 어쩜 정작 그 날들은 설렘보다는 불안하고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지나고 나니 그 시절 나는 수줍었고 블그스레한 낯빛을 가졌고 거울 앞에 있는 시간이 많았었다. 

 <청춘의 문장들>이라는 산문집은 김연수만의 추억이 담겼고 그만의 문장으로 채워졌다. 그의 문장을 읽으면서 잠시 주춤하는 것은 그의 이야기 속에 겹쳐지는 나를 만나기 때문이다. 세대가 같다는 것, 비슷하다는 것은 같은 추운 겨울 스케이트를 타고 누나가 사준 떡복이를 먹는 기억에 나도 큰 언니와 처음 쫄면을 먹었던 날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 김광석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단 한 번 보았다는 것, 허름한 자취방에 두둑하게 쌓아올린 연탄으로 겨울을 시작했던 가난한 대학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것이다. 

 작가 김연수를 만든 문장이 아닌 사람 김연수를 만든 문장을 읽으면서 그가 느꼈을 슬픔, 외로움이 얼마나 절실했는지 전해지는 듯하다. 느닷없이 맞이한 사촌 조카의 죽음, 빛나던 청춘의 푸르름은 어두운 보라빛으로 시든다. 그리고 그가 만난 이시바시 헤네노의 시 ‘매미소리 쏴-/아이는 구급차를/못 쫓아왔네.’ 이 짧은 시 속에 죽음이, 절망이 있었다.  쫓아갈 수 없는 죽음. 김연수는 이렇게 썼다.
‘겪은 사람이라면 저대로 잊지못하는 순간이다. 누구도 원망하지 말고 잊으라고 소리쳤지만, 정작 나만은 아직도 그 절대적인 공허와 그 절대적인 충만의 순간을 잊지 못하겠다. 시간은 흘러가고 슬픔은 오랫동안 지속된다. ’p92

 영원히 지속되는 누군가의 부재를 채울 수 없어 많은 밤을 술과 함께 견뎌낸다고 믿었지만 나는 아직도 그 부재를 견뎌내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공지영의 <인간에 대한 예의>나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을 꺼내는 이유, 슬픔은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었으니까.

 김연수는 자신의 문장을 이야기하는 게 맞다.  그러나 그가 쓴 글은 이제 누군가의 문장이 된다. ‘내가 서른 살 너머까지 살아 있을 줄 알았더라면 스무살 그 즈음에 삶을 대하는 태도는 뭔가 달랐을 것이다.’ p122 이 문장은 그의  소설 <스무 살>에서 ‘스무 살이 지나고 나면, 스물한 살이 아니라 스무 살 이후가 온다. ’ 라는 문장의 연속이었다. 청춘은 불안하기에 아름답다. 어떻게 변화하여 무엇이 될지 모르기에 신비롭다. 그의 청춘을 지탱해준 많은 문장들을 읽으며 지금 그의 곁에 있는 문장은 무엇일까 궁금하다. 이제 더 이상 청춘이라 불릴 수 없는 나는 그의 문장을 읽고, 심보선의 시, 삼십 대를 읽고, 에피톤 프로젝트의 노래를 듣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를 위해 웃다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떤 타이틀이든 작가상을 수상한 작가는 어려운 숙제를 남겨둔 느낌이 아닐까 싶다. 자신의 이름에 따라붙는 수식어로 독자들이 갖는 기대감을 직접적으로 느낄 것이기에. 그 대표적인 작가가 2007년 문학동네 작가상을 수상한 정한아. 한 권의 소설은 그녀를 단숨에 커다란 풍선으로 만들어버렸다. 조금씩 부풀어 오르는 것 이상으로 커져버렸다. 동시에 그것이 절대 터져버리지 않을 꺼라는 믿음을 준 작가다.

<나를 위해 웃다>는 <달의 바다>가 안겨준 숙제를 잘 풀어낸 소설이다. 어떤 독자라도 작가의 성실성을 느낄 수 있다. 8개의 소설은 우울함을 달래주는 코코아처럼, 보드라운 감촉을 떠올리는 사프란의 향기처럼 독자를 기분좋게 만든다. 유쾌하고 즐거운 이야기라서가 아니다.  불안과 두려움을 조금씩 벗겨내려는 몸짓이 있기 때문이다.

잉태됨과 동시에 죽음을 염두한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는지 그에 맞서듯 거대하게 성장해 버린 엄마의 삶을 이야기하는 <나를 위해 웃다>도 자신을 버리고 떠난 엄마가 자신을 찾는 모습을 보게 되지만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며 살아내려는 <아프리카>, 동생의 죽음이라는 슬픔을 잊지 않으려 요리를 하는 아빠 의식을 바라보는 가족의 시선을 담은 <마테의 맛>도 사실, 파고들면 그 본질은 고요하고 슬픈 상처와 맞닿는다. 그러나 작가는 고여있는 슬픔들을 퍼내기 시작해 그 슬픔의 크기를 점점 줄여 나간다.  

 거대병을 앓는 엄마의 배속에서 자라는 또 하나의 생명, 독자적으로 살아남는 아프리카 동물처럼 자신만의 삶을 꿈꾸고, 상처를 드러내어 서서이 딱지를 떠어내도록 유도한다. 엄마를 닮아 거대한 몸으로 살아가게 될지도 모르고, 지금의 삶보다 더 고통스러운 생활이 이어질지도 모르지만, 언젠가는 슬픔도 하나의 작은 점이 되어버릴 수 있는, 어떤 이는 강하게 부정할 그들의 삶에 막연하지만 희망과 긍정을 심어둔다. 

 슬픔이든 두려움이든 견뎐낼 때까지 고된 일들로 몸을 쉬지 않게 하여 감정을 소모시키는 <첼로농장>, 자기 자신을 더이상 사랑하는 방법을 잃어버린 남자와 그의 아이를 사랑하는 것이 결국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임을 알아버린 <의자>, 어떤 의지로도 달라질 수 없는 육체의 고통을 가진 아빠가 엄마의 구두를 닦아주고 품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자전거에 엄마를 태우고 달리는 그 자체가 황홀한 댄스인 <댄스댄스>의 등장 인물들은 모두 지쳐있다. 고단함에서 벗어나려 자신을 포장하려 애쓰는 엄마의 모습,  간질거리는 봄날처럼 편안함과 부드러움으로 기억되는 의자를 찾아나서는 이는 우리가 가진 그러나 마주할 수 없는 그림자와 같은 것.

 포기하고 놓아버리고 주저앉고 싶은 마음은 달래는 방법을 작가는 알고 있는 양, 끝없는 절망의 나락으로 내던져 지지 않게 심지어 큰 소리로 싸움을 내지도 않으며 가만가만 그들을 토닥이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고개를 끄덕여준다. 결코 쉽지 않은 세세한 감정을 작가는 어떻게 자기 것으로 만들었을까. 어쩌면 내일이라는 삶이 너무도 두려워, 오늘만을 살아내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가진 작가.

 분명, 이 소설은 <달의 바다>를 뛰어 넘는다. 더 성숙해졌고 유려해졌으며 따뜻하다.  간절하게 타인의 삶을 이해하려 노력한 것이, 그 간절함을 요란스럽지 않게 담담하게 표현하려 한 것을 느낄 수 있어 독자는 감사하다. 이제 정한아에게 가졌던 조금은 걱정스러웠던 시선은 걷어두어도 좋다.
그저 지금처럼 그녀의 소설을 기다려주고 읽어주고 같이 느끼면서 작가와 함께 성장해 나가면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른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레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일반적으로 우리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것에는 외도나 불륜을 배제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부적절한 관계라고 해서 그것이 사랑이 아닌 것은 아니다. 혼자만의 사랑, 지속되지 못하고 어긋나 버린 사랑, 드러내지 못하는 숨겨진 사랑 등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다양한 사랑의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다. 결국 사랑이라는 것은 사람과의 관계를 대신하는 말 중의 하나가 아닐까.
 
 <더 리더>에서 사랑을  단순한 연애 감정만이 아닌 그에 따른 인간의 심리를 아우르는 것, 그리하여 전체적인 삶에 대한 철학적 사유로 연결시켰던 베른하르트 슐링크. 그의 다른 소설 <다른 남자>는 제목에서 다소 강한 외설의 느낌을 풍긴다. 결혼과 동시에 부여되는 책임과 의무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 권태로운 일상에 대한 회의를 새로운 사랑에서 찾으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대케 한다. 책엔 표제작인 <다른 남자>를 포함해 <소녀와 도마뱀>, <외도>, <청완두>, <아들>,  <주유소의 여인> 등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소설이 수록되었다. 베른하르트 슐링크는 유려한 문장을 통해 인간 내면의 사랑과 갈등을 말한다.
 
 아버지가 아꼈던 그림이 간직한 비밀을 파헤지는 듯 시작된 <소녀와 도마뱀>은 무척 인상적이다. 어머니는 마치 그 그림 속 여인을 질투하는 듯 그림으로 인해 아버지와 잦은 싸움을 벌인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2차 세계 대전 당시 아버지가 유대인들에게 중대한 죄를 지었으며 그림이 그 사건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된다. 모든 것을 알고 있음에도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너도 젊었을 때 얼마 동안은 선택을 할 수 있어. 이것을 하거나 저것을 할 수도 있고, 이 사람과 살거나 저 사람과 살 수도 있지. 하지만 어느 날 너의 행동과 그 사람이 네 인생이 되버리는 거야. ”p35 
  
 아버지는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평생 죄책감에 사로잡혀 그 그림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으로 죄책감을 덜어내고 싶었던 것 일까. 화자인 나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그 그림은 그에게 비밀스런 존재가 된다. <소녀와 도마뱀>을 내내 상상했다. 아버지가 사랑했던 여자라고 생각했던 그림 속 소녀를 화자는 사랑했던 것일까?
 
 표제작인 <다른 남자>는 죽은 아내에게 온 한 통의 편지로 인해 아내의 불륜을 확인하고자 하는 남자의 이야기다. 편지 속 아내는 명랑하고 기품있는 여자였다. 자신이 알고 있던 아내가 아니었다. 아내의 다른 남자에 대해 질투로 시작된 감정은 그를 찾아나서게 한다. 낯선 도시에서 만난 아내의 다른 남자. 그는 허영심이 가득찬 볼품 없는 남자였다. 그를 통해 아내의 다른 모습을 듣게 되면서 아내에 대한 원망과 질투심은 사라지고 일에만 충실했던 자신을 떠올린다.
 
 “ 리자가 당신 곁에 머문 까닭은 그녀가 당신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좋지 않은 시절에도 말입니다. 좋은 시절에 그녀가 나를 사랑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말이죠. <중략> 나는 당신처럼 효율적이고 정직한, 쀼루퉁한 괴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겉으로 드러난 것만을 보지,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것은 보지 못하죠.” p186 아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는 항상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모든 남편들이 그러하듯이. <다른 남자>는 부부 생활은 길고 긴 대화 같은 것이다. 결혼 생활에서는 다른 모든 것에 변화해 가지만, 함께 있는 시간의 대부분은 대화에 속하는 것이다. 라는 니체의 말을 되뇌이게 한다.
 
 그 외에 통일된 독일속에서 살아가는 동독과 서독 사람들의 오해와 갈등을 다룬 <외도>, 세 여자를 동시에 사랑하며 그 생활을 지속하고 싶은 이기적인 남자의 이야기인 <청완두>, 자신이 일과 성공을 위해 이혼한 남자가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아들을 그리워하는 <아들>,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해왔다고 믿었지만 인생의 허무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남자를 그린 <주유소 여인>.
 
 적나라하게 드러난 표현없이도 소설은 충분히 외설적이다. 사랑으로 불리는 여러가지 관계와 형태에 대해 어느 하나만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우리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수 많은 관계속에서 선택을 하거나 받는 것만이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되며 그것은 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내린 결단뿐만 아니라 우리가 내리지 않은 결단까지도 장부에 기록해두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p321 <주유소 여인 중> 는 문장과 같은 뜻을 지니게 되리라. 사랑에 있어서도 우리는 선택한 사랑외에 다른 사랑을 꿈꾸기도 하고 다른 사랑을 찾아 떠나기도 한다.
 
 ‘어느 곳에서 있지만 아무데도 없는 사랑, 때로는 구원이지만 때로는 영혼을 옥죄는 감옥 같은 사랑’이라는 표지의 글때문일까. <다른 남자>보다 원제 <사랑의 도피>가 이 책의 제목으로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사랑의 도피를 떠나는 누군가가 있다면 남아 있는 누군가도 있을 터.  언제나  어느 누군가에게는 아픔으로 남기도 하는 사랑.  진정 완전한 사랑은 어디에도 없는 것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홍합
한창훈 지음 / 한겨레출판 / 199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한창훈의 소설은 묘한 중독성이 있다. 소설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가 깔아 놓은 놀이판에 슬그머니 자리를 잡는 것이라고 할까. 그는 취임새를 넣어가며 목청 높여 흥을 돋우는 놀이패의 우두머리이며 독자는 박수로 화답하는 관객이 된다. 그리하여 너도 나도 즐거운 놀이판. <나는 여기가 좋다> 이후 두 번째 만나는 소설 <홍합>도 그랬다.  걸죽한 사투리를 흉내내며 읽었다. 한창훈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 듣기 민망한 정도의 음담패설조차도 정겹게 들리는게 사투리의 매력을 글에 잘 녹아들게 하는 힘을 가졌다.
 
 소설은 전라도 여수의 홍합 가공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일상을 담았다. 공장에서 일을 하는 대부분은 중년 여자들로 남편이 있든 없든 부업 형태인 공장일이 유일한 생계수단이 된 사람들이다. 배를 타다가 사라졌거나 술 없이 하루도 못 살거나 폭력이 일상이 된 사람. 하나 같이 제대로 된 남편을 둔 여자가 없었다. 반장일을 맡고 있는 강미네는 남편의 폭력에 이혼을 하고,  중풍걸린 시할머니 시부모와 두 딸의 엄마로 한 집 안의 가장이 된 승희네는 공장의 문기사에게 정을 준다. 부모 잃은 아이를 하나 키우며 시어머니와 공장에 나오는 미순은 5.18에 남편을 잃었다. 모두가 하나 같이 고단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부스스한 퍼머머리, 하루 하루 일당을 계산하며 아이들 입성을 댈 생각에 뿌듯해하기도 하며 제발 술 좀 그만 마시라고 잔소리하는 모습. 지지고 볶으면서도  때가 되면 자식들 밥 챙기러 발걸음을 재촉하는 모습에서 우리의 어머니를 본다. 가슴 속 한을 수다로 풀어내며 위로 받고 때로는 모진 말로 싸움이 일기도 하며 무거운 어깨 기대고 싶은 로맨스가 피어나기도 하는 공장은 그들에게 유일한 도피처 였는지도 모른다. 계절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바다의 풍경과 중년 여인네들의 푸념과 회한이 이어진다.  어느 누구를 주인공이라 지정할 수 없는 모두가 주인공이다.
 
 <어떻게 보면 아무렇지도 않은 삶의 연속일 뿐이었으나, 언어로 옷을 씌우면 또 객기나, 일탈이나, 퇴화나, 자포자기의 명찰을 달 수도 있거니와 또 다른 가지의  색채를 씌우면 성숙이라거나, 배짱이라거나, 진화거나 뭐 그런 형태일 수도 있었다.> p 211
 
 떠나고 싶은 마음 누군들 없겠는가. 고향이라는 이유로, 밥 벌이라는 이유로 살아가는 것일터. 가족이 있기에 속내를 털어 놓은 이웃이 있기에 모두가 그렇듯, 그 안에서 게걸스럽게 웃고 울며 사는 것이다. 반복되는 작업을 마치고 마시는 막걸리 한 잔으로 고단한 삶을 달래는 일상을 아름답게 신명나게 그려내는 것은 한창훈이기에 가능하다. 그의 글에는 그를 만나고 싶에 하는 무언가가 있다. 
  
 <아름다운 것은 스스로 서 있는 자리에게 가능할 것이었다. 돌아볼 것도 없고 쫓아갈 것도 없었다. 언제나 눈앞에 있었다. > p285
 
 언제나 눈앞에 있었는데 아직 알지 못했던 아름다운 것들은 무엇일까. 바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들, 내 곁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바로 나 자신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