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과거시제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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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미래를 경험할까? 미래를 산다는 게 아니라 경험한다는 것, 도달할 미래에 내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커서다. 100세 시대가 되었지만 모두에게 공평한 미래가 주어지는 건 아니다. 우주여행, 다른 행성으로의 이주, 보편화된 AI의 시대, 로봇이 일상화된 미래에서 나는 얼마나 그들과 동화할 수 있을까. 배명훈의 SF 소설 단편소설집 『미래과거시제』를 읽으며 든 생각이다. 배명훈의 그려내는 미래 시대는 기발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그것은 나의 상상력과 이해력의 한계가 있다는 말과 같다.


9편의 이야기는 현실적이면서도 정말 먼 미래에 먼저 도착한 작가가 과거를 회상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표제작 「미래과거시제」는 시간을 자유자재로 살아가는 인물과 만나는 설정이라고 할까. 아니 사실 나는 이 소설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는커녕 자꾸면 되돌이표처럼 돌아가는 읽기를 반복했다. 과거, 현재, 미래를 살아가는 게 우리가 아는 삶이지만 그렇지 않은 삶이 존재한다는 것. 그러니까 다른 시간을 사는 ‘은신’과 보통의 ‘은경’이 만나 연인이 되었다 헤어지는 과정 속에서 ‘은신’의 말에 담긴 비밀. 그것을 ‘은경’이 알아내면서 그들은 다시 만나는 흥미로운 소설. 사실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배명훈은 언어야말로 시간에 따라 가장 빠르게 변하고 시대를 측정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미래과거시제」에서 다룬 것처럼 「차카타파의 열망으로」는 독자를 혼란으로 초대한다. 단편을 처음 읽을 때 오타나 편집에서 잘못된 게 아닐까 싶었다. 미래의 대학 역사학과 격리 실습실이 등장하는데 그곳에는 과거 코로나로 인한 기억으로 비말에 의해 전파되는 전염병을 막기 위해 'ㅊ, ㅋ, ㅌ, ㅍ'를 사용하지 않는다. 즉 이 소설에는 'ㅊ, ㅋ, ㅌ, ㅍ, ㅉ, ㄸ, ㅃ' 이 등장하지 않는다. 이런 발상과 소설을 쓸 수 있을까. 그뿐 아니다. 판소리 형태로 풀어낸 SF 「임시 조종사」도 있다. 오직 배명훈만이 할 수 있고 쓸 수 있는 소설이라 놀라고 감탄한다.


가장 가까운 미래를 예측하고 경험할 수 있는 「수요곡선의 수호자」에서는 심해도시 건설 현장이 등장한다. ‘유희’는 명목상 관리 감독에 불과하다. 크고 작은 로봇들이 일하며 실제로 현장을 지휘 감독하는 것은 회사 AI였다. 그곳에서 ‘유희’가 발견한 ‘마사로’는 오직 소비를 위한 로봇이다. ‘마사로’ 고래상어 감상을 하러 바다 밑으로 떠났다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유희’에게 발견되었다. 인간이 아닌 로봇이 등장한 가장 최초의 목적은 대량 생산을 떠올렸을 때 미래에 이런 일을 하는 로봇의 등장도 가능하겠다. 예술, 창작도 가능한 ‘ChatGPT’의 등장을 생각할 때 마사로 같은 로봇의 소비로 작은 무대에서 공연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 인간 본연의 창작활동이 사라진 미래는 나에게는 아찔하고 마주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다.


우주선과 외계인의 등장이 일상이 된 미래를 생각하면 「인류의 대변자」에서 우주선이 한국의 서울, 가장 높은 빌딩은 꼭대기에 정박하는 설정은 친근할 정도다. 재미있는 건 외계인을 응대하는 이들의 방식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그들에게 요구하는 것들. 배명훈의 외계인은 변신이 자유롭고 다리가 셋, 머리가 하나, 눈이 세 개, 팔이 여섯이 모습이다. 하긴 외계인의 모습을 규정하는 건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그들의 존재에 대해 외화감을 느끼는 것도 이상하다. 아무튼 이 소설에서 빵 터졌는데 특정한 날, 비행 금지를 요청하는 부분이다. 우주선, 외계인이 등장하는 시대에도 변함없는 수능이라니. 배명훈의 센스라고 할까.


“대학수학능력시험이라고, 하아, 국가에서 관리하는 대학 입시 기본 시험입니다. 크게 다섯 과목으로 나눠서 보는데 3교시가 영어에요. 시작하자마자 듣기 평가가 있는데 전국적으로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조건으로 녹음된 문제를 틀어야 해요. (…) 외계인도 외국인도 예외는 없습니다.” (193~194쪽, 「인류의 대변자」)


화성으로 가는 우주선을 배경으로 한 「접히는 신들」은 아름다운 감동을 안겨준 단편이다. 목성, 화성, 지구를 자유롭게 이동하며 살아가는 미래에서 외계인을 발견하는 이야기다. 종이처럼 2차원으로 펼쳐서 보낸 다음 목적지에서 3차원으로 접는 방법으로 이동했을 거라는 설정. 미래에는 외계인 발굴도 고대 유물에 속할지도 모른다. 외계인을 발견하기 위한 노력이 없다면 불가능할 것이다.


자기를 알아볼 수 있는 존재가 나타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다렸을까. 누군가가 찾아내 맥박을 타진할 때까지 얼마나 긴 시간을 홀로 고독했을까. 먼지에 파묻힌 자신의 디자인을 찾아내 하나하나 고이 접어 3차원 공간에 되살려줄 그 귀한 손을 만나게 될 때까지. (162쪽, 「접히는 신들」)


처음 소설을 읽을 때는 표지를 자세히 보지 않았다. 나중에 다시 보니 소설의 고스란히 담긴 듯했다. 표지부터 이미 『미래과거시제』가 시작된 느낌이라고 할까. 각 단편마다 작가노트가 있어 소설에 대한 접근이 수월한 점이 있지만 쉽지 않은 책이었다. 『미래과거시제』에 대해 단순히 재미의 유무로 말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배명훈이 꿈꾸고 추구하는 미래가 있다고 할까. 내게 선명하게 보이지 않지만 여전히 궁금하고 기대되는 미래라는 건 부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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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4-03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명훈 작가를 마지막으로 만난
게 <맛집 폭격>이었는데 그게
벌써 9년 전이네요. 놀라워라.

소설집이군요. 낭중에 도서관에
서 만나 보는 것으로.

자목련 2023-04-04 09:12   좋아요 1 | URL
배명훈 소설을 많이 읽은 건 아니지만 빠르고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 소설은 너무 어려웠습니다. ㅎ
 

책장 읽기 프로젝트라고 하면 거창하지만 나쓰메 소세키 읽기 두 번째를 겨우 마쳤다. 어쨌든 읽었다는 게 중요하다. 『산시로』는 지난달 『태풍』에 비하면 수월하게 읽었다. 아주를 덧붙여도 될 정도다. 소설은 주인공 ‘산시로’가 대학에 다니기 위해 도쿄로 오는 기차의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렇다. 우리의 주인공 산시로는 시골 촌뜨기인 것이다.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하는 것처럼 그도 구마모토를 떠나 도쿄로 온 것이다. 모든 것이 낯설고 처음이니 두려움도 적지 않다. 기차에 탄 사람을 살피는 일,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마주친 승객과 어색한 눈 맞춤. 그리고 우연하게 동행한 한 여인과 여관 투숙까지. 말 그대로 그냥 옆에서 잠만 잔 산시로에게 여인은 배짱이 없다고 말한다. 산시로는 순수한 청년일까. 글쎄, 소설을 읽으며 지켜보면 알 것이다.


개운치 않은 만남을 뒤로하고 도쿄로 향하는 기차에서 산시로는 선생으로 보이는 한 남자를 만난다. 복숭아를 맛나게 먹는 것 외는 모든 게 따분해 보이는 남자. 산시로는 그가 도쿄를 다 아는 것처럼, 대표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이제 곧 자신이 살게 될 도쿄의 삶. 도쿄 대학 생활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당부가 담긴 편지와 하숙집, 아직 수업이 시작되지 않은 대학. 스물셋의 청년에게 도쿄는 아마도 고교 진학을 위해 다른 도시로 온 내가 느낀 것과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설렘과 기대가 가득하면서도 불안과 두려움이 차오르는 것. 산시로가 어머니의 소개로 도쿄 대학의 ‘노노미야’를 만나 지하의 연구실에서 나와 연못가에 앉아 생각에 잠긴 모습은 지하와 지상, 어둠과 빛, 이상과 현실 같은 것을 떠올리게 만든다. 소세키가 의도한 건 아닐 텐데. 어쩌면 소세키가 의도한 건 이처럼 회화풍 이미지가 아닐까 싶다.


산시로가 가만히 연못의 표면을 응시하고 있으니 커다란 나무 여러 그루가 물속에 비치고 그 밑으로 푸른 하늘이 보인다. 그때 산시로는 전차보다, 도쿄보다, 일본보다 멀고 아득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잠시 후에는 그런 느낌에 엷은 구름 같은 쓸쓸함이 가득 밀려들었다. 그리하여 노노미야의 지하실에 들어가 홀로 앉아 있는 듯한 적막감을 느꼈던 것이다. (43~44쪽)


연못에 비친 풍경, 산시로가 고개 들어 마주한 언덕에 부채로 이마 위를 가리고 기모노를 입고 있는 한 여자. 그 아름다운 색채에 반한 산시로는 넋이 나갔다. 구마모토에서는 볼 수 없는 그런 신여성이라고 할까. 어머니가 대학을 마치고 결혼을 바라는 구마모토 출신의 여성이 아닌 도쿄의 여성. 산시로의 삶으로 들어와 그를 흔들어 놓을 게 분명했다. 소설은 산시로가 도쿄에서 대학에 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와 사고의 차이를 발견하고 느끼는 것들에 대해 들려준다. 성장소설로 볼 수 있고 연못가에서 만난 여자를 향한 연애소설로도 볼 수 있다.


산시로의 마음을 가져간 그 여자는 누구인가. 노노미야가 리본을 선물한 여자. 노노미야와 사귀는 사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산시로가 만나는 모든 이들과 연결된 그녀는 ‘미네코’다. 대학에서 사귄 ‘요지로’도 그녀를 알고 있었다. 요지로가 추앙하는 선생 히로타는 물론이다. ‘히로타’는 바로 기차에서 복숭아를 먹던 남자였다. 스승이면서 친구 사이로 모두가 연결된 상태였다. 그들의 사이에, 산시로가 흡수되었다고 할까.


요지로는 고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히로타가 대학에서 강의를 할 수 있도록 여러 활동을 추진한다. 문예지에 그를 추천하는 글을 쓰기도 하고 모임을 만들어 많은 이들의 지지를 독려한다. 산시로는 자신에게 가장 먼저 손을 내밀고 도쿄의 여러 곳을 안내해 주고 문화를 소개해 준 게 고마워 모든 활동에 참여한다. 하지만 요지로가 자신에게만 그런 태도를 보인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어떤 모임이든, 어떤 장소든 그곳엔 항상 미네코와 노노미야, 노노미야의 동생 요시코가 있다. 요지로는 그들과 스스럼없이 지내지만 산시로는 그게 잘되지 않는다. 특별한 감정이 자란 미네코에게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 마음을 고백하지 못한다. 그런 쪽에서는 미네코가 한 수 위다.


산시로를 제외하면 그들은 이미 도쿄에 살고 있었으니 당연하다고 여긴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고립감을 느낀다. 학교에서 수업을 들을 때, 히로타 선생을 만나 책과 철학에 대한 토론 비슷한 걸 할 때, 서양 문화나 외국어에 대해 알지 못할 때 산시로는 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어떤 불분명한 경계, 한계를 느낀다고 할까. 소설은 그것을 산시로에게 생긴 세 개의 세계로 설명한다. 하나는 멀리 있는 시대, 산시로가 돌아가면 돌아갈 수 있는 세계, 두 번째는 이끼 긴 벽돌 건물이 있는 대학, 산시로는 그 안의 공기를 알 수 있다. 더 깊게 들어갈 수도 있고 나갈 수도 있다. 세 번째는 봄처럼 찬연히 흔들리는 세계로 미네코가 있는 세계로 가장 의미심장하고 눈앞에 있지만 다가갈 수 없는 세계다. 산시로는 어떤 세계로 진입할 수 있을까. 아니 결단을 내릴 수 있을까. 그를 둘러싼 노노미야, 요지로, 히로타에게 영향을 받으면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을까.


산시로는 잠자리에서 그 세 세계를 늘어놓고 서로 비교해보았다. 다음으로 그 세 세계를 뒤섞어 그 안에서 하나의 결과를 얻었다. ……요컨대 고향에서 어머니를 모셔오고 아름다운 아내를 맞이하고 몸을 학문에 맡기는 것보다 나은 건 없다는 것이다. 결과는 굉장히 평범하다. 하지만 그 결과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생각했으므로 사색의 노력을 따져 결론의 가치를 올렸다 내렸다 하기 쉬운 사색가인 자신이 볼 때 그렇게까지 평범하지는 않다. (107쪽)


우리는 모두 산시로였구나 싶다. 방황하는 청춘, 시대를 읽고자 애쓰고 시대를 뛰어넘으려는 욕망의 분출구를 찾고자 했던, 어떻게 표출해야 할지 모르던 서툰 감정들. 소세키의 산시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현재 이 봄을 살고 이겠구나 싶다. 아름다운 풍경의 일부가 될 것인가, 스스로 풍경을 만들어 갈 것인가. 끊임없이 고민하고 치열하게 토론한 뜨거운 청춘이 한 단계 성장한 산시로와 포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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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3-31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세키 선생의 <마음>을 읽고 있습니다.

오늘 다 읽어야 하는데... 마음에 급하네요.

서툴었던 나의 감정에 대한 생각들, 왜
이리 공감이 가는지요.

자목련 2023-04-03 08:38   좋아요 0 | URL
<마음>도 좋다는 평이 많은제 제 책장엔 마음이 없습니다. ㅎ
어느 시절의 나와 마주한 듯한 감정, 아마도 많은 이들이 공감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너에게 오는 건 사람이 아니라 사랑이야
아오야마 미치코 지음, 이경옥 옮김 / 빚은책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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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사랑에 빠진다는 말들을 하지만 나는 사랑이 온다고 생각해.”

“온다…… 고요?”

“응, 맘대로 오지. ‘우와아 왔다!’하는 사랑도 있고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면 와 있는 사랑도 있어. 오는 건 그 사람이 아니라 사랑이야. 불가항력이라서 그 사람이 아닌 사랑에 휘둘리는 거지.” (「금붕어와 물총새」, 45쪽)


어떤 책은 한 구절이나 한 문장이 전부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짐작했겠지만 2022년 일본 서점대상 2위 작품인 아오야만 미치고의 단편소설 『너에게 오는 건 사람이 아니라 사랑이야』는 제목이 그렇다. 각각의 단편소설이지만 하나로 이어진 연작소설로 그 중심엔 하나의 초상화가 있다. 가장 중요한 주인공 혹은 작은 단역으로 등장하는 초상화. 그러니까 초상화에 담긴 사연, 초상화로 연결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하면 맞겠다. 청초하고 싱그러운 초상화를 상상하며 읽는 것도 좋다.


긴 머리 여자의 초상화다. 빨강과 파랑 물감만 사용해서 그렸는데 머리카락의 음영이 보라색 그러데이션으로 되어 있다. 사르륵 흘러내리는 머리카락 표현이 훌륭했다. 빨간 옷, 가슴팍에는 파란 새 브로치. (118쪽)


초상화의 시작을 알리는 첫 번째 단편 「금붕어와 물총새」은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 그 묘한 떨림과 설렘의 감정이 가득하다. 교환학생으로 멜버른에 온 ‘레이’는 한 살 때 부모를 따라 일본에서 호주로 온 대학생 ‘부’와 연애를 시작한다. 레이가 일본으로 돌아갈 때까지 기한이 정해진 연애를 시작한다. 말이 기한부 연애지 그게 가능할까. 부는 레이가 떠나기 전 자신이 아는 화가의 모델을 부탁한다. 정성껏 차려입은 레이와 그를 그리는 화가, 그들을 바라보는 부. 레이와 부의 연애는 어떻게 되었을까?


두 번째 단편 「도쿄 타워와 아트센터」는 무명화가의 그림에 반해 그림이 아닌 액자를 만드는 액자 공방에 취직한 ‘소라치’의 이야기다. 공산품 액자가 아닌 예술 작품을 아름답게 뒷받침하는 액자를 만드는 일을 소라치는 아직 해보지 못했다. 거래하는 화랑에서 전시를 위한 액자를 주문했고 작품을 확인하는 순간 소라치는 자신이 직접 하겠다고 사장에게 말한다. 대학시절 여행으로 다녀온 멜버른에서 본 화가의 그림이었다. 짐작했겠지만 바로 그 〈에스키스〉란 제목의 초상화였다. 그림과 가장 잘 어울리는 액자를 만드는 일, 자신이 원했던 순간과 마주한 소라치.


이쯤 되면 세 번째 「토마토 주스와 버터플라이피」에서 초상화는 어떻게 등장할까 궁금해질 것이다. 이 단편은 천재 만화가와 그의 스승이자 경쟁자인 만화가의 이야기로 그 둘이 만나는 카페에 초상화가 걸려있다. 갤러리를 연상시키는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면서 스승은 제자가 지닌 만화에 대한 애정을 확인하며 자신을 돌아본다.


마지막 네 번째 단편 「빨간 귀신과 파란 귀신」은 오래된 연인이 헤어진 후 1년 만에 다시 재회하는 이야기다. 도쿄의 수입 잡화점에서 일하는 ‘나’는 영국 출장을 준비하다 여권을 연인과 살던 집에 놓고 온 걸 알게 된다. 아직 그 집에 살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연락을 한다. 그는 그 집에 살고 있었고 아무렇지 않게 찾으러 간다. 둘이 살던 공간은 그대로였다. 고양이가 있는 것만 빼면. 그런데 ‘나’는 이때 공황장애 증상으로 출장 대신 휴가를 얻게 된다. 일 자리를 잃게 될까 두려운 나에게 사장은 건강을 챙기라고 말한다. 쉬고 있는 동안 그가 집을 비우게 생겼다면서 고양이를 봐 줄 수 있냐고 부탁한다. 고양이와 그 집에서 지내면서 그를 떠나온 게 바로 자신이라는 걸 확인한다. 나에게 다시 사랑이 온 것이라고 할까. 처음 사랑이 그랬던 것처럼.


전체를 관통하는 건 초상화라 할 수 있지만, 한 편 한편이 경쾌하고 맑은 수채화처럼 읽힌다. 연애와 사랑뿐 아니라, 각자의 일과 소중하게 관계를 맺은 사람들의 따뜻하고 담백한 이야기. 숨은 그림 찾기처럼, 보물 찾기처럼 숨겨진 그림과 연결된 사람들을 발견하는 순간 작은 탄성이 터진다. 우리네 보통의 삶에서 사랑은 어떻게 특별하게 존재하는 것일까. 나의 사랑은 지켜지고 있는가. 가만히 살아가는 일상의 기쁨을 생각한다. 주변을 돌아보고 나를 둘러싼 소중한 사람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보드랍고 따뜻한 봄 햇살 같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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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23-03-30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퍼를 읽고 기록해 둡니다. ^^
사람 plus 떨림(설렘) => 사랑
다가오는 사람한테 떨림이 있으면 사랑이 오고
없으면 사람만 오는 것 같아요. ^^;

자목련 2023-03-31 08:30   좋아요 0 | URL
떨림은 결국 사람에게서 발견할 수 있으니 사랑이 아니라 사람이 오는 게 아닐까 싶은...
아, 잘 모르겠습니다. ㅎ
 
어느 삶의 음악
안드레이 마킨 지음, 이창실 옮김 / 1984Books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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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과 역경을 헤치고 나가는 게 삶이라고 한다. 하지만 생사의 갈림길에서 고난과 역경은 아무 의미가 없다. 오로지 살아 있다는 게 중요할 뿐. 살아남기 위해 죄책감이나 죄의식 따위는 생각할 겨를이 없다. 내 앞에 펼쳐진 죽음이 당도하기 전에 달아나 피해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훔쳐서라도 말이다. 그 삶을 감히 평가할 수 없다. 내가 알 수 없는 시대의 비극, 부조리를 직접 살아내는 일, 설사 같은 시대를 산다 해도 우리는 함부로 타인의 삶을 평할 자격이 없다. 얼마나 절박한지, 얼마나 어두운지 그 어둠에 들어가 봐야 알 수 있으니까. 


러시아 출신 작가 안드레이 마킨의 『어느 삶의 음악』 속 ‘알렉세이 베르그’가 살아낸 삶이 그러했다. 스물한 살의 촉망받는 피아니스트였던 그가 살아온 시대, 암흑으로 가득한 소련 스탈린 치하의 정권, 밀고와 은밀하게 벌어지는 숙청이 자행돼된 공산주의. 1941년 5월 24일 그에게는 가장 최고의 날로 기억될, 자신이 연주회가 예정되었던 날 그는 도망쳐야 했다. 그 이후 그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자신을 버리고 자신과 닮은 죽은 병사의 이름으로 살아온 삶. 어느 순간부터 ‘알렉세이 베르그’인지 ‘세르게이’ 인지 가늠할 수 없게 된 그의 삶. 


소설은 처음부터 그의 삶을 들려주지 않는다. 극동지방을 여행하고 돌아오다 우랄 지방 어딘가에서 눈보라로 연착된 기차를 기다리며 춥고 어두컴컴한 대합실을 둘러보는 ‘나’의 시선으로 시작한다. 아무런 대책 없이 느긋해 보이는 승객들의 모습에서 빠져나오려는 ‘나’는 어떤 소리에 이끌린다. 혼잡한 대합실과는 어울리지 않는 피아노 소리. 피아노 앞에 앉은 노인과 마침내 도착한 모스크바행 기차에 오른다. 예상하지 않았던 노인과의 대화, 그리고 그가 살아온 지난 삶을 듣게 된다.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전쟁. 그러나 전쟁이 일어나는 순간에도 삶은 다채롭다. 긴박한 상황에서 재미를 찾고 유머가 넘치며 서로가 서로를 격려한다. 그래야만 살아갈 수 있으니까. ‘알렉세이 베르그’가 아닌 ‘세르게이’로 살게 된 그도 그랬다. 피아니스트의 삶이 아닌 병사의 삶으로 살아야 했다. 장군의 운전기사로 위험한 순간에 그를 구하고 신임을 얻는다. 그러나 음악을 향한 갈망은 버릴 수 없었다. 장군의 딸이 치는 피아노, 음악을 모르는 무지한 운전기사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고 싶은 딸의 짓궂은 욕망. 그것은 그를 향한 호기심이자 사랑에 속한 감정의 표현이었다. 


소설에서 음악은 정치나 이념을 뛰어넘은 하나의 고귀함이다. 그것은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삶의 존엄이자 어떤 상황에서도 존중받아 마땅한 인격과도 같다.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그 시대를 살지 못한 ‘나’는 노인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대합실에서 마주한 사람들과 똑같이 게으르고 수동적인 사람이라 여겼을 것이다. 그가 어떤 삶을 견디고 살아왔는지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처럼. 


안드레이 마킨은 매끄럽고 유려한 문장으로 음악을 들려준다. 아니, 삶을 들려준다. 누구나 고유한 자신만의 음악이 있다는 걸 알려준다. 응시하는 곳곳마다 절망과 폐허로 가득한 시대를 살지라도 놓쳐서는 안 되는 그것. 『어느 삶의 음악』은 어느새 ‘나의 삶의 음악’이 된다. 나를 채우는 것들, 내가 희망하는 삶이 된다. 


그는 연주를 한다는 느낌이 아니었다. 밤을 가로질러 전진했다. 얼음과 나뭇잎과 바람의 무수한 단면들로 이루어진, 이 밤의 투명하고 불안정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그의 안에 불행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한 공포도 느껴지지 않았다. 불안도 후회도 없었다. 그가 헤치고 나아가는 이 밤은 불행과 공포와 만회할 수 없이 산산조각 나버린 과거를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이 모두가 이미 음악이 되어 오로지 그 아름다움으로 존재했다. (119쪽)


읽는 내내 피아노 연주를 듣는 기분이다. 고요하고 차분하게 흐르는 아름다운 선율과 격렬한 몸짓의 연주자를 상상하기에 이른다. 연주에 집중하고자 흐트러짐 없는 모습, 음악을 향한 순수한 열정. 우리 각자의 삶이 연주할 음악도 이와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흐르는 소망을 간직한 아름다움이라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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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3-03-28 11: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잠자냥님 리뷰가 좋아서 담아둔 책인데 자목련님 리뷰도 역시 좋네요. 도서관가면 아무도 안 빌려가 늘 눈에 띄었는데 꼭 읽어봐야겠어요.

잠자냥 2023-03-28 12:07   좋아요 1 | URL
아무도 안 빌려가다니! 이런.......ㅠㅠ 쿨캣님이 꼭 빌려가세요! ㅎㅎㅎ

coolcat329 2023-03-28 19:19   좋아요 0 | URL
네네~^^

자목련 2023-03-29 11:19   좋아요 1 | URL
이번에 만나면 냉큼 집으로 데려오세요^^

레삭매냐 2023-03-28 1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어 보겠다고 사둔 책인데...

어느새 헌책방에 나왔더라구요.
아이구 참.

다른 책도 있던데, 그 책도 다시
읽어 보고 싶습니다. 기억이 나
질 않아서요.

자목련 2023-03-29 11:20   좋아요 0 | URL
실은, 저도 그런 책이...
읽어보겠다고 사두셨으니 이제 꺼내 읽어보세요.
레삭매냐 님도 좋아하실 소설입니다!

잠자냥 2023-03-28 1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참 좋죠... 조용히 묵묵히 살아가는 인생을 생각해보게 되는 책이었어요.
대부분 우리의 삶이 그렇듯이.

자목련 2023-03-29 11:21   좋아요 1 | URL
네, 참 좋았어요. 잔잔하게 흐르는 삶, 아름답고도 슬픈. 그게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구나 싶었어요.
 
여행자와 달빛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8
세르브 언털 지음, 김보국 옮김 / 휴머니스트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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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한 시기가 남은 삶을 결정적으로 지배하기도 한다. 트라우마라고 부를 수도 있는 그것, 대부분 그 실체는 지독한 사랑이거나 상처다. 어떤 이는 추억이나 기억으로 간직하지만 어떤 이는 내내 같이 살아간다. 그것을 어떻게 견디고 받아들여 넘어가느냐에 따라 삶은 달라진다. 20세기 헝가리를 대표하는 작가 세르브 언털의 『여행자와 달빛』 속 ‘미하이‘는 내내 같이 살아가는 인물이다. 현재에 충실하려고 안정된 중산층 삶에 안착하려고 ‘에르지’와 결혼하고 신혼여행을 왔다. 하지만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에르지와 자신의 성향은 맞지 않고 뭔가 어긋나는 느낌이다. 그런데다 신혼여행지인 이탈리아 베네치아까지 자신을 찾아온 친구 때문에 기분이 상한다. 


친구의 등장으로 미하이의 학창 시절이 소환된다. 미하이는 에르지에게 자신이 전부를 걸었던 친구 ‘터마시’와 그의 동생 ‘에바’, 그리고 성직자가 된 ‘에르빈‘와 보냈던 시간을 들려준다. 미하이 가족과는 다른 분위기의 터마시 가족, 배우가 되고자 했던 에바, 죽음을 갈망했던 터마시가 끝내 성공한 이야기. 미하이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현재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친구들과 보냈던 그 시간, 절정과 아름다움으로 가득했던 시절, 터마시와 에바를 향한 감정들. 그들과 헤어졌다고 여겼지만 아니었다. 그런 생각에 휩싸였기 때문일까. 미하이는 에르지와 탄 기차가 아닌 다른 기차에 오른다. 조금 시간이 걸릴 뿐 에르지와 만날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미하이는 에르지에게 돌아가지 않고 친구들을 찾아 떠난다. 


이제 소설은 신혼여행으로 시작했던 처음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미하이의 생각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20대 청춘도 아닌 그의 행동을 방황이나 일탈로 볼 수 있을까. 미하이는 왜 그런 선택을 한 것일까. 에르지의 생각처럼 에바는 첫사랑이 맞을지도 모른다. 모두가 사랑한 에바, 자신은 사랑한 게 아니라고 말했지만 진실은 그게 아니었다. 미하이의 기억 깊숙한 곳에 에바는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를 찾는 건 에르지 한 사람이었다. 아내 에르지는 미하이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미하이는 그런 아내에게 자신을 찾지 말라는 전보를 보내고 길을 떠난다. 


여행자가 된 미하이는 이름도 알 수 없는 산악 도시에 도착하고 배회한다. 강풍과 추위에 지친 그 앞에 죽은 터마시의 환영이 보인다. 병원에서 눈을 뜬 미하이는 의사와 죽음과 지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진다. 회복된 미하이는 그곳을 떠나야 하지만 경제적 문제가 있던 차 예술사를 공부하는 미국인 젊은 여성 ‘밀리센트’가 나타나 도움을 청한다. 그녀에게서 미하이는 방황하던 청춘 시절을 발견한다.


인간은 방황의 시기에 더욱 소심해지고 겁이 많아지며, 가장 좋은 기회를 잃어버린다. 이 때문에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 시절에 대한 회상은 영원히 남는다. (142쪽)


방황하던 시절로 여행하는 것, 그 회귀는 단지 시간을 옮기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실제로 그것은 더 아래로 내려가야만 하는, 그리고 더 먼 과거, 자신의 개인사로 가야만 하는 계단일 뿐이다. 방황하던 시절은 그냥 쓸모없는 방황으로 채웠던 시간인 것처럼 낯선 여인은 항상 낯설 뿐. 그는 집으로, 낯설지 않는 그들이 있는 곳으로 가야만 한다. 그러나 그 사람들…… 그들은 이미 오래전에 죽었다. 세상 곳곳을 떠돌던 바람이 그들을 휩쓸어버렸다. (154~155쪽)


밀리센트는 자신과 함께 있기를 바랐지만 미하이는 그럴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미하이에게 학창 시절 겪었던 어지러움과 발작 증상이 나타났고 의사에게 치료를 받다 ‘에바’와‘ 에르빈’으로 추정되는 이의 소식을 듣는다. 밀리센트에게 돈을 빌린 미하이는 에르빈이 있는 구비오로 향한다. 그리고 운명처럼 그곳에서 성직자가 된 에르빈을 만난다. 에바와 터마시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만 그는 구체적인 답을 피한다. 성직자로 그 본분에 충실하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 와인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던 에르빈은 없었다. 


“나는 이미 그 어떤 것도 그립지 않아.” 

미하이는 에르빈을 이해하고자 했다. 이해하지 않고서는 안 된다. 아마도 그는 스스로 모든 것을 지운 듯했다. 실제로 에르빈은 모든 이와 단절해야 했고, 사람들 간에 감정의 싹이 틀 수 있는 뿌리마저 영혼으로부터 덜어냈다. 지금, 이제 고통스럽지는 않지만, 여기 버려둔 땅에 그는 머물고 있다. 메마르고 척박한 이 산에서…… (186쪽)


단호하게 말하는 에르빈과 과거에 매달려 질척거리는 미하이의 모습은 무척 대조적이다. 각자의 시간을 견디고 살아온 결과라고 할까. 그러니 미하이의 철없는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 물론 자신을 찾는 일,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혼여행에서 아내를 버리고 도망친 무책임한 남편,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이사로 재직한 아버지 회사에 닥칠 어려움을 모르는 아들이 분명하다. 도대체 그가 찾는 건 무엇일까. 첫사랑 에바를 향한 욕망, 죽음을 갈망하고 실현하기를 바라는 마음일까. 죽음을 갈망했던 미하이는 죽음의 공포에 직면하고서야 삶에 대한 의지를 찾는 미하이가 안타까우면서도 그를 이해하기란 어렵다.


이쯤에서 에르지를 떠올려보자. 그녀는 미하이를 찾고 기다리는 대신 프랑스 파리로 향한다. 혼자서 헝가리로 돌아갈 수는 없다. 파리에 있는 친구를 만나 그간의 사정을 전한다. 친구는 당장 이혼하라고 말하지만 에르지는 여러 상황을 고려해 그럴 수 없다고 말한다. 여전히 자신을 기다리는 전 남편, 시아버지의 사업에 투자한 돈, 그리고 미하이에 대한 자신의 마음. 그런 그녀에게 놀랍게도 베네치아에서 만난 미하이의 친구가 접근해 페르시아인를 소개한다. 미하이가 사기꾼이라 말했던 그는 에르지를 이용하려는 게 분명했다. 사고로 페르시아인과 단둘이 남겨진 에르지는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깨닫는다.


이탈리아 곳곳을 여행하는 기분, 대성당과 미술품을 감상하는 즐거움도 안겨주지만 복잡하고도 어려운 소설이었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소설처럼 우리도 때로 현재에 처한 어려움을 피하려 과거로 도피한다. 그러나 결국엔 알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시간은 바로 현재라는걸. 둘로 시작했던 여행은 각자의 여행이 되었다. 동반자가 있어도 결국엔 혼자라는 게 인생이라는 것처럼 말이다. 여행자의 삶을 선택하지 않는 한 여행은 출발지이자 도착지에서 끝난다. 다시 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어디로 갈지 어디서 끝날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삶이라는 여행 말이다. 


살아남아야 한다. 폐허 속 들쥐처럼 그 또한 살아남을 것이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살아남을 것. 인간은 살아 있어야 항상 뭔가가, 여전히 뭔가가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3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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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3-27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 않아도 궁금해 하던
책이었는데 좋은 리뷰 잘
보고 갑니다.

생각보다 쉽지 않아 보이네요.

과거의 어떤 것도 그립지 않고
현실에 충실하겠다는 단호한 삶
의 모습 -

자족적인 결단인지 아니면 무모
한 결정인지 궁금해지네요.

자목련 2023-03-28 11:03   좋아요 0 | URL
아름다우면서도 철학적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저는 어려웠어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