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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사슴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1998년 8월
평점 :
절판


 
몹시 더운 요즘 나는 나를 달래가면서 검은 사슴을 읽게 되었다.
이 여름날 꽃가루처럼 날리는 눈을 떠올리며 깊은 골짜기의 울림에 귀기울이며 책장을 넘기고 넘기고 또 다시 주춤하다 그렇게 읽었다.
갑작스레 느껴지는 답답한 먹먹함 이랄까,그것이 맞는 답일까?
한강의 검은 사슴.

초반에는 너무 어렵게 다가왔다. '내 여자의 열매'라는 단편들로만 그녀의 글을 접한 내게 검은 사슴은 긴호흡을 필요로하기에 내심 두려워지기도 했다. 이러다 책을 덮어버리면 어쩌지? 그래서 더 열심히 들어오지 않는 책장을 넘기도 또 넘겼다.
검은 사슴을 만난다는 것은 어쩜 꿈이었는지 모른다.

검은 사슴,북한에 서식하고 있다는 검은 털을 가진 사슴. 막장속에서 광부를 만나게 되면 뿔을 잘라주면서 빛을 보게 해달라고 했다는 검은 사슴.
깊은 막장에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면 터널을 빠져나오는 광부들이 검은 사슴이리라.
그네들이 보는 막장을 뚫고나와 만나는 그 눈뜨지 못할 빛이 바로 삶이리라.

잡지사 기자인 인영,기억을 잃고 사라진 의선,의선을 사랑하는 명윤,그리고 황곡에서 만나는 사진작가 장, 임씨와 그의 아내
의선을 흔적을 찾아 헤매는 명윤과 인영은 강원도 황곡에서 장이라는 사진작가를 취채하게 된다.
왜 사진을 찍는지 잃어버린 남자,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채 살고 있는 장은 자신을 떠나간 아내를 끌어안고 산다. 그러나 그녀를 잡지 못했다.
취재를 핑계삼아 떠나왔지만 인영은 사실 의선을 찾아야하는 이유를 말할 수 없다.간절하게 의선을 찾아 헤매는 명윤도 사실은 명확하게 대답할 수 없었다.
얽힌듯 엮긴 그네들의 만남에는 어떤 필연이 있었을까? 인영과 명윤이 찾고 있는 의선이라는 여자가 사진작가 장이 떠올리는 임씨의 딸이라는 것을 나는 너무 늦게 깨닫게 되었다.

눈발이 가득한 겨울이  눈 앞에 그려진다.
밝음과 멀리있는 사람들이 있다. 짐짓 그렇게 보이려고 애쓰지 않았는데도 흐림으로 보이는 사람들.
실은 나도 잘 웃지 않는다. 소설속의 인물이라도 어쩐지 닮은 꼴 성향의 사람을 발견하면 주춤하게 된다.
엄마와 언니를 잃고 세상에 홀로남은 인영에서 가녀린 손가락으로 머리를 매만져주던 의선이 가족같은 존재였다는 걸, 세상을 향해 몸부림치던 명윤에게는 의선은 또 다른 자신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때 의선은 곁에 없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에 지쳐가고 있을 때를 만나게 된다. 나에게 향한 따뜻한 시선을 알지 못하기도 하고 주변의 지인과 가족들에게 마음과는 달리 무뚝뚝하기도 하다. 한줄기 빛을 향해 달려나오는 검은 사슴처럼 우리가 갈망하는 빛을 알아가는 과정이 산다는 것일까?
인영도 명윤도 의선도 사진작가 장도 모두 검은 사슴이었겠지. 잘라줄 뿔은 없지만 세상의 빛을 향해 이제는 눈을 크게 뜰거라는 걸 안다.

무엇인가를 갈망하는 것을 멈출 때 비로소 평화를 얻게 된다는 것을 나는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251쪽

인영이 너무 일찍 깨달은 것을 나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그 깨달음을 얻을때까지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혼잣말로 중얼거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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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여자의 열매
한강 지음 / 창비 / 200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늦은 밤 눈이 아닌 귀로 들려오는 낭독의 소리는 언제나 나를 매료시켰다. 그런던차에 만난 목소리의 주인공이 소설가임을 알았다. 한강이라는 너무 예쁜 이름. 나는 중얼거렸다.음,필명이 너무 멋지네. 작가 한승원씨의 딸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이름이 본명이라는 것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야 알게되었다.

그 날 한강이 낭독한 구절이 이 소설집에 있었다. [어깨뼈]라는 아주 짧은 글이었는데 그녀의 목소리를 통해 내게로 온 그녀의 글이 너무 슬퍼서 나는 몇 번이고 다시보기를 눌러 그 목소리를 기억하곤 했다.그녀의 목소리만큼 이 소설은 단아하고 낮은 음색으로 쓰여졌다. 적당하게 행복하거나 적당하게 웃음이 묻어나거나 적당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글이다. 단편 하나 하나 사실 즐거움으로 밑줄을 그을 만한 곳은 없었다.적어도 내게는, 그렇지만 뭐랄까?겨울을 뚫고 먼저 봄을 데려온 목련의 수줍은 듯한 은은함이 있었고 베란다를 통해 달려드는 장마철 굵은 빗줄기같은 힘이 있었다.

단편들을 보면 제목에서 내용이나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메세지에 대한 힌트를 주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어느 날 그는] [철길을 흐르는 강] [해질녘의 개들은 어떤 기분일까] [흰 꽃]이 소설들은 인간의 내면의 충동과 갈등을 조절하지 못하는 모습과 또 어디론가 회기하고픈 인간의 본능을 읽을 수 있었다.현재와 과거를 함께 서술하여 가끔 혼돈이 되기도 한 부분도 있었다.  

[어느 날 그는]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야기로 시작되지만 결국 그들의 사랑은 소통되지 못한 몸짓에 불과하고 여자도 남자도 외부적으로 보여지는 모습은 내면의 또 다른 그네들과는 전혀 다르다. [아기 부처]나 [붉은 꽃 속에서]는 사찰에서의 풍경소리가 들리는 듯했고 짙은 향내가 가득하다. 나에게 상처를 주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은 내가 그 상처를 낸 주인이라는 것을 우리는 나중에서야 알게 되고 깨닭음이라는 이름으로 또 그 생을 꾸역꾸역 살아가게 되는지 모른다. 속세를 떠나지 않아도 우리는 보살이 되고 속세를 떠나고 그 안에서 맴돌기도 한다. ......지나가는 아픔 하나 견디지  못하면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 -[아기 부처 중 111쪽] 

이 소설집의 제목으로 붙여진 [내 여자의 열매]는 어느 날 부턴가 식물로 변해버리는 아내의 이야기로 소재가 무척이나 특이하다.점점 초록의 식물로 변해가는 아내에게서 강렬한 생명력을 발견하는 남편. 아내가 남기고 간 열매는 아내이고 그 열매는 계속해서 싹을 띄울꺼라는 희망이 있다. 인간으로써는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었던 아내. 그 아내가 시들어가는 것을 모른척했을지 모르는 남편.그렇치만 아내를 놓아 줄 수 없을 만큼 외로웠던 남편이었다.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우리는 이처럼 언제나 외롭고 애처롭기만 하다.

[아홉 개의 이야기]는 아홉 개의 아주 짧은 글들이 있는데 마치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되어진거 같지만 막상 읽어보면 하나 하나가 모두 다른 목소리를 낸다.그 중 [어깨뼈] [목소리]가 내겐 가장 인상적이었다.
사람의 몸에서 가장 정신적인 곳이 어디냐고 누군가 물은 적이 있지. 그때 나는 어깨라고 대답했어.~~~당신의 마른 어깨와 내 마른 어깨가 부딪힌 순간. 외로운 뼈들이 달그랑,먼 풍경(風磬)소리를 낸 순간.-[아홉 개의 이야기 중 어깨뼈 - 251쪽]

그녀가 선택한 어휘는 무척이나 고급스럽고 단단하며 투명하기까지 하며 귀를 귀울여야만 들을 수 있는 그녀의 목소리처럼 읽는 내내 집중하게 된다. 맑은 떨림으로 만들어내는 그녀의 소설을 다음엔 눈이 아닌 내 몸에서 올리는 나만의 목소리로 소리내어 읽고 싶은 충동이 인다. 반짝이며 별처럼 빛나는 글속에 보이지 않는 달과 해가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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