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되기 전에는 결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들어갈 때는 가능했던 자세가

나올 때에는 불가능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오목한 당신의 마음이 볼록하게 튀어나오는

순간이 어째서

관객들에게 패러독스입니까

 

당신은 당신이 밖으로 긴 장갑을

던져주기 바랍니다 간직했거나

감추어졌다 펼쳐지는 지문을 우리는 주울 뿐입니다

당신이 발을 딛는 바닥은

내 머리 위의 심연

가까워지는 당신의 손을 절대

만질 수 없는 투명한 거리가 있습니다

 

하얀 새의 윤곽을 만드는 검은 새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우리가 지나치듯이 (「회전문」, 전문)

 

알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 마음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만 용기를 내지 못한다. 말하지 못하고 입안에 담아둔 말처럼 용기가 고여 있다. 어제는 주기적인 일정을 변경하면서 괜히 짜증이 났다. 한 번 변경한 일정을 다시 잡아야 하는 일이었다. 누구의 잘못과 미안함이 끼어들 문제가 아니었다. 그럴 수도 있는 그런 일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속으로 짜증을 냈고 미안해하는 마음에 화가 났다. 왜 그랬을까. 번거로움, 귀찮음 때문은 아니었을까. 별거 아닌 것들인데 그냥 대수롭지 않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던 마음들은 어디론가 달아나버렸다.

 

사소하다고 여기는 기준은 누가 만드는 것일까. 나 아닌 누군가에 의해 결정되는 그런 기준들이 싫다. 그런 게 싫으면서도 나는 또 누군가에게 기준을 제시한다. 참 우습다.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선택한다는 이유로 말이다. 가장 합리적인 방법 안에는 비용의 최소화가 있다. 발생하는 비용이 최우선이다. 이게 맞는 것일까? 맞고 틀림의 문제라고 여겨야 할까. 단순하게 생각하려 하는데도 한 번씩 복잡함으로 빠져든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로 피곤한 시간, 아주 작은 일상이 나의 기분을 바꾼다. 가스레인지 점화 손잡이가 부러졌다. 그래서 그쪽 화구를 사용하지 못했다. 인터넷 쇼핑몰에 검색하니 손잡이를 구매해서 끼우면 된다는 설명이 있었다. 제조회사의 것으로 구매를 했고 결과는 꽝이었다. 나의 부주의로 발생한 일이다. 나름 꼼꼼하게 살피고 주문했다고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고객센터에 문의를 했더니 바로 부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안내를 받았다. 오래된 제품인데도 부품을 구매할 수 있다니 신기했다. 고가가 아니라서 그런가 싶은 생각이 스쳤다. 냉장고나 TV의 경우는 출고된 지 얼마 되지 않아도 부품이 없다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권장 사용기간도 점점 짧아지고 있으니 말이다. 보통의 택배비 2배를 지불했지만 만족도는 최상이었다. 마스크를 채우듯 점화 손잡이를 끼우니 완벽하다.

 

지난주에는 노벨문학상이 발표되었다. 노벨문학상에 대한 관심이 점차 줄어든다. 이유는 글쎄. 이번에 수상한 작가의 소설을 책장에서 발견하고 언제 이 책을 샀던가, 혼자 웃었다. 한 권은 읽다가 말았고 한 권은 아예 손도 대지 않았다. 어리석은 욕심은 줄어들지 않는다. 2018년 맨부커상 수상작 『밀크맨』이 궁금하다. 오래 생각하고 기다렸던 작가의 신간 소식은 기쁘다. 소설은 아니지만 그래도 괜찮다. 10월의 절반 이상이 흘렀고 아직 감기에는 걸리지 않았다. 그러니 독감 예방 주사는 올해도 맞지 않을 것 같다. 건강해진 기분이랄까. 그냥 그렇다고 주문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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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BBP 2019-10-18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집에 찾아보니 한 권 있더라구요. 이번 아니면 언제 읽으랴 싶어 책을 들었지만, 영 페이지가 안넘어간다는..

자목련 2019-10-21 16:56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이런 기회가 아니었다면 또 잠자고 있었겠지 싶어요. ㅎ
 

 

 

 

 

 

낮에 석양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보니 기분이 묘하다. 사진은 베란다 창문을 닫다가 마주한 풍경이다. 오랜만에 담은 해 질 무렵이다. 창틀에 기대어 한참을 바라보았다. 몇 시간 뒤면 다가올 순간인데도 멀고 먼 순간일 것 같은 착각을 불러온다. 아침에는 가는 빗줄기가 내려 서늘하더니 한낮인 지금은 덥다. 가을이 이렇게 더워도 되는 거냐고 따지고 싶을 정도다.

10월이 되었고 예상할 수 없었던 문제가 생겼다. 문제란, 그렇게 다가오는 것이다. 예상했던 범위를 벗어나 발생한다. 나쁜 일은 아니지만 좋은 일도 아니다. 어떤 과정을 지나야 하고 해결될 일이다. 그저께는 베란다에서 버려야 할 화분을 정리하고 오래된 기름때와 이별했다. 이별은 힘들었다. 팔 근육을 써야 했고 시원하지도 않았다. 미루지 말아야 할 일이 집안일인데.

알면서도 알고 있다는 이유로 미루는 일들이 많다. 모두가 사소하고 소소한 것들이다. 그것들이 쌓이면 거대한 산을 이루고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때로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삶이란 이런 조각들이 모이고 엮이는 것이라는 걸 새삼 확인한다.

10월에는 무언가에 집중하고 싶다. 집중하는 순간에 세상은 그것과 나​로 채워진다. 그것과 나를 제외한 세상을 향한 시선은 잠시 거두고 나를 더 오래 바라볼 수 있기를. 책과 마주하는 순간에도 그러하기를. 김혜진의 신간 『9번의 일』과 대상과 수상작 모두 여성작가라는 반갑고도 신기한 『2019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는 이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그냥 독자의 마음이 그렇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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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9-10-05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아름다운 순간이네요

자목련 2019-10-14 18:19   좋아요 1 | URL
네, 어쩌다 마주한 순간이라 더욱 오래 기억될 것 같아요. 지금 이 순간도 그러할까 싶기도 하고요.

heefilm 2019-11-11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1월 22일 삼청동 과수원에서 열리는 김혜진 작가님 북토크 놀러오세요!
https://booking.naver.com/booking/5/bizes/259106/items/3217897?preview=1
 

 

하루하루 자신에게 만족하며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다. 부족한 자신 때문에 화가 나고 제대로 의견을 말하지 못한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이 쌓여 자꾸만 작아지는 기분. 한 번쯤 느꼈을 것이다. 그런 마음을 잘 모른다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잘 모르겠지만 그건 아닐 것 같다. 사실, 이건 요즘 내 마음이다. 일상에서 자신감이 떨어지고 존재에 대한 의문이 드는 것이다. 때아닌 사춘기도 아닌데 말이다. 제법 많은 일을 겪고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받아들이고 선택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걸 알고 그렇게 대처하면서 살아왔는데 왜 자꾸 흔들리는 것일까. 친구가 속상한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면 다 괜찮다고 말했는데, 그 작고 소소한 상처가 결국엔 죽고 사는 것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걸 놓치고 있었다.

우리의 삶은 저마다의 상처투성이로 결집되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나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무조건 상처를 감추고 살아야 할까. 내 상처가 너무 커서 보여줄 수 없고 혹여 타인의 시선에 상처가 아닌 것처럼 보일까 조심스러웠을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현재는 그가 살아온 과거에서 시작되고, 상처는 과거에서 현재로 이동하는 묘한 능력을 지녔다. 과거의 상처와 제대로 된 이별을 하지 못하면 그것은 내내 삶을 괴롭게 만든다. 김윤나의 『당신을 믿어요』는 그런 상처에 대한 이야기다. 상처를 인식하고 제대로 바라보고 그것을 안아줄 수 있는 힘에 대해 들려준다.

 

상처의 맨얼굴과 대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이다. 내가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외로움과 절박함의 끝에 섰을 때, 자기 믿음이 채워지지 않고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17쪽)

 

누군가에게 자신의 비밀을 말하는 순간, 나는 믿음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혼자만 끙끙 앓다가 내게서 분리하고 싶다는 열망, 그리고 말하기로 다짐하는 순간, 나와 상대에 대한 믿음이 생긴다. 설령 그 상대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더라도 속상해할 필요는 없다. 그건 그의 몫이고 나는 이전보다 조금은 가벼워질 수 있으니까.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내게 5년 동안 힘들었던 이야기를 꺼내면서 그런 행동과 그런 마음을 가졌던 자신이 참 싫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이런 모습을 내게 보여주는 것도 부끄럽다는 표현을 했다. 나는 자꾸 말해야 상처는 작아지고 소멸하는 게 아니겠냐며 괜찮다고 말했다.

 

당신과 상처의 관계는 분명히 ‘사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마침표 대신 물음표를 찾다 보면 완전히 다른 옵션도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전처럼 강한 척하지 않고,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하 수 있고, 모두 너 때문이라고 비난하는 대신 ‘서운했다’고 고백할 수 있게 된다. 멈추어 질문해야 당신이 정말 원하는 것과 가까워진다. (36쪽)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의 상처를 온전히 보여준다. 어린 시절 자신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떠난 엄마, 그런 엄마를 미워하며 살아온 시간과 알코올중독에 빠진 아버지의 폭력과 새엄마와 힘들었던 날들에 대해 담담하게 들려준다. 처음부터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녀의 말처럼 그녀의 잘못이 아니고 그녀의 몫도 아니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다친 마음을 돌볼 이는 자신뿐 이었으니 혼자 벽을 쌓고 경계하고 생존을 위해 애쓴 그녀가 상담을 공부하고 누군가의 상처를 들어준다. 상처를 알기에 더욱 상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고 보듬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면으로 보면 이 책은 김윤나 자신의 이야기이면서도 누군가의 이야기인 것이다. 쉽게 용서하라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의 상태를 확인하는 일, 들어주는 일, 궁금한 것에 대해 짐작하지 말고 물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느낀다. 부모와의 관계, 독한 말로 상처를 주는 가족, 아픈 형제 때문에 희생하거나 잘난 형제 때문에 비교당하며 쌓인 상처가 얼마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지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그녀가 상담한 다양한 사례를 읽다가 어느 순간 화가 나거나 어느 순간 눈물이 난다면 그건 책을 읽는 독자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내면에 가득한 상처와 슬픔을 무시하면서 살아왔을 누군가, 자신의 주변의 누군가가 떠오른다면 그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상처와 함께 자라다 보면 알게 됩니다. 내가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던 일들을 이미 해내고 있다는 것을요. 살아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193쪽)

 

상처와 함께 자라는 것, 나는 그 말에 동의한다. 성장한다는 건 상처를 직시하는 일이고 그것을 때로는 안아주고 보듬어 줄 주는 순간 어느새 상처는 새 살이 나고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니까. 내 존재를 스스로 부정할 때마다 나는 책을 찾는다. 최근 몇 달 동안 알 수 없는 자괴감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그래서 김혜남, 박종석의 『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를 읽었다. 기존의 심리 서적에서 다루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다 이런 문장에 얼었던 마음이 녹는 느낌을 받았다. 어른이라고 해서 모든 게 괜찮은 게 아니고 실수와 자책을 할 수 있으며 울고 싶을 때 울고 나를 부정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을 고쳤다. 이 부분은 앞서 김윤나의 책에서 마주한 부분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행복은 우리의 권리다. (『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 72쪽)

상처 입고 두려움에 떠는 연약한 자기를 바라보는 일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눈물 가득한 연민을 느끼며 자신을 바라본 후에야 우리는 그러한 자신을 따뜻하게 보듬어 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더 이상 도망가지도 숨지도 않고 행복을 찾아갈 수 있는 건강한 힘을 얻게 된다. (『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 258쪽)

우리에겐 상처와 하나가 되는 순간이 필요하고 상처를 통해서 나와 같은 상처를 지닌 누군가를 이해하고 걱정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아프다고 소리쳐도 그 아픔을 알아주는 이가 없다면 나는 내 안의 동굴로 들어가 묻을 닫아버릴 테니까. 혼자가 아닌 함께 살아가는 존재 이기에 우리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가장 가까운 누군가, 혹은 낯선 존재, 때로는 이런 책들의 도움을 받는다. 감사하게도 내게는 내 목소리와 말투만으로 나를 알아차리는 친구가 있고 이런 책도 있다. 연달아 읽은 정혜신의 『당신이 옳다』를 통해서도 많은 힘을 얻는다. 세 권의 책에서 주목하는 건 상처에 대한 인식과 그것을 알아봐 주고 들어주는 존재와 그로 인해 나 자신에 대한 사랑에 대한 확신을 키울 수 있다는 믿음의 중요성이다.

사람의 감정은 항상 옳다. 사람을 죽이거나 부수고 싶어도 그 마음은 옳다. 그 마음이 옳다는 것을 누군가 알아주기만 하면 부술 마음도, 죽이고 싶은 마음도 없어진다. 비로소 분노의 지옥에서 빠져나온다. (『당신이 옳다』, 167쪽)

살아가는 동안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모르기에 불안하고 이미 지난 일에 미련을 버리지 못해 과거에 붙잡혀 살기도 한다. 그 과정에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상처와 상실이 있다. 책을 읽고 이렇게 쓰는 동안 조금 차분해진다. 시들해졌던 내게 책은 생기를 주고 나는 조금 괜찮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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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새벽부터 폭우가 내렸다. 빗소리에 잠에서 깨어 창문을 닫았다가 열기를 반복했다. 제대로 잠을 잤다고 할 수 없으니 하루가 몽롱하고 기운이 없다. 예상했던 장맛비는 예상대로 흠뻑 내렸다. 아니, 흠뻑이 아니라 쏟아부었다. 입맛도 살짝 사라졌는지 도통 떠오르는 음식이 없다. 식은 카레의 노란색은 더 이상 빛나지 않고 냉커피만 연식 마신다. 일기예보가 맞는다면 내일이나 모레까지 비는 계속 내릴 것이다. 나의 몽롱함도 그때까지 지속될지도 모른다.

배롱나무의 꽃이 피기 시작했다. 언제 어느 가지에서 먼저 꽃이 시작되었는지 몰랐는데 사진으로 보니 오른쪽부터 피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올해는 작년보다 빨리 꽃을 보여주는 것 같다. 하긴 자귀나무의 화려한 꽃은 한참 전에 사라졌으니 배롱나무의 꽃이 눈에 들어오는 게 당연한 걸까. 봄에 만난 친구는 배롱나무꽃이 필 때 다시 만나자 했는데 우리의 만남은 아직 미정이다. 하나의 계절이 꽃으로 연결되고 누군가와의 만남이 꽃 필 무렵으로 이어지는 건 참 낭만적이다. 우리의 현실이 낭만적이지 않기에 그럴지도 모르고.

 

 

경비실의 지붕이라고 해야 맞을까. 지붕 위에 농구공은 언제 주인과 이별한 걸까. 바람이 빠져서 홀로 외롭게 있는 걸까. 언제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걸까. ​문득 외롭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의지로 구르지 못하는 공이라니. 그러다 화분을 집으로 알고 온전히 그 안에서 성장하고 살아가는 나무를 생각한다. 내가 한 번씩 안녕이라는 말을 건넬 뿐 다정한 말은 들려주지 않고 비정기적으로 물을 주는데도 해마다 꽃을 피우고 잎을 키우고 자란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모습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러다 한계를 느끼고 성장을 멈추고 소멸하는 나무도 있다. 자신의 의지로 할 수 있는 일과 그렇지 않을 일 사이에서 고민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나무.

7월에는 읽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고 있다. 어디 읽는 일뿐이랴. 날씨와 저질 체력을 핑계로 삼다가 지금 읽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나중에 읽으면 왜 안 되는가, 묻기까지 한다. 나의 물음을 들은 책이 나를 가소롭게 여기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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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7-26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7월에는 역시 배롱나무죠.

자목련 2019-08-02 15:53   좋아요 0 | URL
레삭매냐 님의 이런 댓글 좋아요!!
연분홍과 연보라 꽃을 피운 배롱나무를 보는 8월, 건강하게 보내세요^^*
 

 

주말에 갑자기 보일러가 가동하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설정을 바꿔도 아랑곳하지 않고 돌아갔다. 내가 뭔가를 잘못 만졌는지도 모르겠다. 어찌할 바를 몰라서 관리사무소에 문의를 했더니 친절하게도 직원분이 방문을 해주셨다. 예약이 걸려 있다면서 그것을 다 해제시켰다고 하셨다. 별문제가 없는 듯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잠든 새벽에 어떤 소리에 깨었다. 갑자기 윙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보일러가 일을 하는 것이다. 조절기를 꺼버리고 잠을 잤다. 월요일에 서비스센터에 방문 신청 접수를 하니 담당기사님이 전화를 하셨다. 그러면서 보일러의 문제점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부탁했다. 나는 기사님의 질문에 의도를 파악했으나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약속된 시간이 지나 방문한 기사님은 점검을 하셨고 내가 궁금한 것에 답을 해주셨는데 결론은 오래된 보일러라서 그렇단다. 덧붙여 앞으로 벌어질 수도 있는 상황에 대한 설명까지 해주셨다. 지금은 괜찮지만 언제 어떤 문제가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말이다. 그리고 여름이니 중앙조절기만 켜두고 다른 방은 꺼두어도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그 말에 수긍을 하면서도 왠지 불안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보일러가 제멋대로 일을 하려고 할지도 모르고 오래되었으니 부품은 없고 새로운 보일러를 만나야 하는 일이 생길 것이다. 꽤 큰 비용이 발생한다는 것에 대한 걱정 말이다.

 

오랜 시간 제 할 일을 다 했으니 수고했다고 멋지게 이별할 수 있으면 좋으려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예고 시스템이라 생각하고 준비를 한다 해도 그 기간이 얼마나 될지 모른다. 모든 일이 갑자기 일어난다는 걸 잘 안다. 걱정한다고 걱정이 사라지지 않다는 걸 알고 불안한 마음을 키울 필요가 없다는 걸 안다. 그래도 당황스럽고 속상하다. 이런 나를 위로하는 건 매콤한 비빔면과 몇 권의 책뿐이다. 최근에 돋보이는 활약의 소설가는 장류진이 아닐까 싶은데 테마소설집의 참여로 더욱 확실하게 인정한다. 시인 김현의 소설도 있어 흥미롭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소설과 김진영과 아니 에르노의 산문집도 평이 좋아서 기대가 된다.

 

 

 

 

 

 

 

 

 

하루가 다르게 기온이 상승한다. 바람은 좀처럼 다가오지 않는다. 여름이 성장하는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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