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의 첫 번째 시집을 애정 한다. 주변에 선물도 하고 시집을 추천해달라는 이들에게는 무조건 박준을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뒤를 이은 산문집도 좋았다. 가만가만한 일상을 들려주는 그의 목소리가, 그 안에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과 지긋이 바라보는 슬픔이 따뜻하게 느껴졌다고 할까. 그러니 나는 그의 두 번째 시집도 기다렸고 사랑해야 맞다. 사랑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그저 좀 아쉽다는 말이다. 뭐가 아쉬운 걸까. 잘 모르겠다. 여하튼 좀 그렇다.

봄이라 할 수 있는 날들이다. 수줍은 매화의 손짓과 어디선가 고운 자목련의 자태도 보였다. 그러니 봄이었다. 그래도 이런 시가 어울리는 요즘이다. 자의반 타의 반 집안에 갇힌 시간이 많다. 이 날들도 언젠가는 추억이 되겠지. 불안과 염려로 채워지는 시간에 만나는 시, 그래서 더 오래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비는 당신 없이 처음 내리고 손에는 어둠인지 주름인

지 모를 너울이 지나는 밤입니다 사람을 잃은 사람들이 모

여 있다는 광장으로 마음은 곧잘 나섰지만 약을 먹기 위

해 물을 끓이는 일이 오늘을 보내는 가장 중요한 일이 되

었습니다 한결 나아진 것 같은 귓병에 안도하는 일은 그

다음이었고 끓인 물을 식히며 두어 번 저어나가다 여름

의 세찬 빗소리를 떠올려보는 것은 이제 나중의 일이 되

었습니다 (「겨울비」, 전문)

 

그래도 나는 이런 시가 더 좋다. 봄을 앓는 사람들의 마음을, 여전히 삶이 고달프고 어두운 누군가를 달래주는 것 같다고 할까. 죽는 일이 사는 것만큼 어렵다는 생각을 해본다. 죽고 싶은 마음을 추제하지 못했던 순간, 누군가 가슴에 숨겨져있지 않을까. 상실과 괴로움, 그리고 절망이 앞을 가린다 해도 겨울이 지나 봄이 오듯 우리도 그렇게 살아간다. 살아가야 한다는 절실함이 모두에게 전해지길 바란다.

얼마 전 손목을 깊게 그은

당신과 마주 앉아 통닭을 먹는다

당신이 입가를 닦을 때마다

소매 사이로 검고 붉은 테가 내비친다

당신 집에는

물 대신 술이 있고

봄 대신 밤이 있고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 대신 내가 있다

한참이나 말이 없던 내가

처음 던진 질문은

왜 봄에 죽으려 했느냐는 것이었다

창밖을 바라보던 당신이

내게 고개를 돌려

그럼 겨울에 죽을 것이냐며 웃었다

마음만으로는 될 수도 없고

꼭 내 마음 같지도 않은 일들이

봄에는 널려 있었다 (「그해 봄에」,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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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0-03-06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제목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자목련 2020-03-10 12:52   좋아요 0 | URL
네, 아름다운 제목에 반하고 시에 반하고...
 

 

어제, 예배를 드리러 나가는 아침에는 눈이 그치는 것처럼 보였다. 바람은 차가웠고 장갑을 끼지 않은 손이 시려웠다. 소파에 가지런히 놓고 온 장갑 생각이 간절했다.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더 많이 추웠다. 그래도 눈이 더 내릴 것 같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저녁을 먹고 창밖으로 보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마치 눈을 잊은 이들에게 자신을 잊지 말라고 말하는 듯 보였다. 침대에 눕기 전에 창을 열어보니 온통 하얀 세상이었다. 그리고 아침에도 마찬가지였다. 밤 사이 눈은 더욱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고 다가오는 봄을 주춤하게 만든다고 할까. 그래도 이번 눈에는 봄눈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릴지도 모른다.


 

아주 오랜만에 눈을 담았다. 모든 사물 위에 눈이 내렸다. 운동기구에도 눈이 내려앉았고 자동차 위에도 눈이 내렸다. 잠시 눈의 세상이 되었고 그 뒤에 모두 숨은 것만 같다. 이상하게도 눈이 내린 풍경이 든든하다. 든든하다니, 뭐가 든든하다는 말인가 싶겠지만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다. 곧 사라질 눈을 바라본다는 일이 나쁘지 않다. 사라졌다고 해서 눈이 내렸던 날들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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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0-02-18 0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눈을 만났네요 저도 사진 찍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어제 새벽에 내리는 것만 봤습니다 지금도 내릴지도 모르겠군요 어제보다 더 많이... 아까 쌓인 거 보고 왔어요 예전에는 새벽에 눈 오면 밖에 나가서 그걸 찍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러지 않는군요 그래도 눈 반가워요 겨울이 아주 가기 전에 와서 더 반갑습니다

오늘도 춥겠지요 자목련 님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하세요


희선

자목련 2020-02-18 17:44   좋아요 1 | URL
예전에는 눈만 오면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게으름 때문인지 잘 안 찍어요. ㅎ
제대로 된 눈이 내린 날이라 저도 반가웠어요. 내일부터는 날씨가 풀린다고 해요. 희선 님도 건강 잘 챙기세요^^*
 

 

그게 무엇이든 시작이 중요하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으니까. 그러니까 지금 나는 시작에 있다. 무슨 밀이냐 하면 뭔가 쓰려고 하는데 쓰고 싶은 무언가가 있는데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이다. 그러니 그냥 이렇게 시작이라도 하는 것이다. 텅 빈 화면을 바라보면서 다른 창을 열었다가 인터넷 급상승 검색어를 클릭하고 있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인데 나는 무엇을 쓰고 싶은 것일까.

매년 정월대보름에는 더위를 팔았다. 유독 더위를 많이 타는 편이라 가족들에게 마구 더위를 넘겼다. 그런데 올해는 잡곡밥이나 땅콩, 밤 같은 부럼도 없는 그런 날로 지나갔다. 주말 밤 식탁에 놓인 땅콩을 보고 정월대보름이구나 싶었다. 하늘을 보고 커다랗게 둥근 달을 찾는 일도 잊었다. 사소한 일상을 놓쳤다고 할까. 놓쳐도 서운할 일이 아닌데 올해는 그냥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이런 작은 일상의 여유조차 사라진다. 당연한 것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메르스 사태를 떠올리면 공포에 휩싸였던 그 여름이 재생된다. 폐 질환을 앓던 큰언니가 병원 일정을 뒤로 미뤘던 기억도 소환된다. 그 여름이 지나고 5년 뒤 이 겨울은 다시 하나의 두려움으로 남을 것이다.

주일에는 교통사고 소식을 들었다. 같은 교회에 다니시는 분들의 사고였다. 나는 잘 알지 못하는 어르신들이 다치셨다. 모두 입원하셨고 치료 중이다. 모두 다 건강하게 회복하시고 퇴원하시길 바란다. 어제는 놀랍고도 반가운 소식도 있었다.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 수상 소식. ​언론과 방송 모두 봉준호 감독의 수상에 대해 전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일들이 일어난다.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은 일어나는 것이다.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리고 이런 일들이 발생하면 항상 생각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 할 수 일을 하는 것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생각의 끝에서 만나는 나의 자리다.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싶은 거다.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다는 걸 알기에 더욱 속상한 마음이다. 가장 잘 알면서도 열심을 내지 않는 것.

언제나 그렇듯 마음은 다시 책으로 향한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읽을 거라는 마음, 그리고 지금 읽는 중이라는 게 그나마 위안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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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는 장맛비처럼 강한 바람과 함께 비가 내렸다.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의 손길이 너무 커서 조금 무섭기까지 했다. 따뜻한 겨울은 차가운 겨울을 준비하고 기다려온 이들에게 걱정을 안겨준다. 뉴스를 통해 마주한 겨울철 축제의 현장은 속상함 그 자체였다. 얼마나 많은 시간 계획하고 공을 들였을까 싶은 마음에 괜히 나도 속이 상했다. 지역마다 계절에 따라 축제를 연다. 그 축제를 위해 떠난 기억과 현재의 간극은 크기를 잴 수 없을 만큼 크다. 먼 기억 속에는 행사의 첫 회를 즐겼던 순간이 아련하게 남았다.

그제부터 어제까지 내렸던 겨울비는 그쳤고 하늘은 여전히 뿌옇다. 미세먼지 때문일까 생각하다 겨울이니 그런가 하고 여긴다. 새해의 인사를 나누면서 건강에 대한 안부를 묻는 일이 많아졌다. 즐겁고 복된 새해라는 것보다는 무탈한 새해를 맞으라는 바람을 전한다.

새로운 세계로의 진입을 앞둔 이들을 곁에서 지켜보는 일은 뿌듯하면서도 불안한 것 같다. 부모라는 이유로, 가족이라는 이유로 뭔가 도움이 되고자 하면서도 그 도움을 전할 방법을 찾기 못해서 그저 안타까운 마음을 붙잡고 있다. 구체적으로 도움을 청하지 않을 때는 그저 곁에 가만히 머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인지도 모른다.

지난 연말에는 친구를 만났다. 크리스마스에 만난 친구는 친구의 남편도 함께였다. 부모님의 건강으로 인해 분주한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빵을 먹었지만 그들의 마음이 마냥 무겁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언젠가 이별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그 이별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모든 것은 후회로 남는다. 크리스마스 다음 날에 바쁜 시간을 쪼개 길을 달려온 친구를 통해 듣은 이야기도 마찬가지로 이별에 관한 것이었다. 가족의 죽음을 감당하는 일은 충분한 애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충분하다는 말은 적절하지 않다. 상실과 애도 사이에서 무너지지 않고 일상을 지키는 일은 위대한 일이다. 우리의 삶은 그런 위대함의 조각들이 모여 완성된다. 담담하게 죽음을 말하는 친구 앞에서 울고 있는 건 나였다. 몇 년 전 우리의 위치는 반대였다. 같은 자리에서 죽음을 말하는 일이 삶이었다.

 

 

 

 

2020년에도 보통의 날이 이어지고 몇 권의 책을 검색한다. 시인으로 등단한 장혜령의 자전적 소설과 윤이형의 소설, 제목이 주는 울림 때문인지 그 고독에 닿고 싶은 소설이 눈에 들어온다. 흐린 날에는 햇빛이 더욱 간절하다. 길게 늘어나는 그림자가 보고 싶다. 하늘의 해를 향해 고개를 들고 눈이 시리도록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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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고장 난 시계를 집에 두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고장이 났다는 건 건전지를 제때 끼워도 시계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시계가 많다는 건 그만큼 시간에 대한 강박이 강한 건 아닐까. 손목에 시계를 찼던 게 언제였던가. 휴대폰이 나오면서 시계는 멀어졌다. 직업적 특성 때문에 유독 시간에 민감했던 큰언니는 시계가 많았다. 어쩌면 시계를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집안에 둔 시계의 시각도 제각각이었다. 5분이 빠르게 가는 시계, 10분이 빠르게 가는 시계. 모두 정시보다는 조금씩 빨랐다. 이사를 하면서 장식용으로 내가 권했던 건 양면 시계였다. 마음에 드는 시계를 찾지 못했던 탓일까. 양면 시계는 두 개가 있다. 그러니까 벽에 걸려있는 시계는 모두 네 개였다. 그중 하나를 버렸다. 고장의 여부는 상관없이 버렸다. 동생의 말 때문도 아니었다. 멈춰 있는 시간을 소유한다는 게 부담스러웠다고 할까. 탁상용 시계의 건전지는 모두 뺐다. 시계는 오직 양면 시계, 두 개만 작동한다. 두 개의 시간이 흐른다고 해야 할까. 나 역시 시간을 조금 빠르게 설정했다. 휴대폰 알람의 경우도 기상이나 약속 시간보다 일찍 설정해 울린다. 시간을 붙잡고 싶었던 걸까. 글쎄 모르겠다.

 

12월 24일에 붙잡고 싶은 건 무엇일까. 딱히 그런 건 없다. 이제 일주일 후면 새로운 시간과 마주한다. 그것은 새로운 시간일까. 투명했던 시간은 언제였고, 미세먼지처럼 불투명했던 시간은 언제였을까. 누군가와 함께 보낸 기억을 선명하게 떠올리는 순간의 시간은 투명한 것일까. 자신의 전부를 드러내는 이런 잎맥처럼 환한 시간을 쌓고 싶다. 천천히 읽고 있는 서보 머그더의 소설 『도어』속 에메렌츠의 시간이 그러한 듯하다. 올해의 끝에는 그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갈 것이다. 좋은 소설과 보내는 시간은 빠르게 채워진다. 메리 올리버의 산문 『긴 호흡』도 좋을 것 같다. 외국 작가의 소설과 산문에 이어 한국작가의 소설과 시인의 에세이도 있다.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인 『최단경로』와 박연준의 산문집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사람들은 마음이 아플 때 건강하고 강하게 이겨낼 수 있는 방법으로 슬픔이 자신을 비껴가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고 착각하곤 하는데, 이는 건강한 방법이 아니다. 멍울진 감정이나 체한 슬픔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슬픔에게도 기회를 주어야 한다. 슬플 기회를! 무언가 때문에 상심해 있다면 자신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슬픔을 피하지 말고, 같이 여행을 가자. 상처가 나를 데리고 떠나는 여행이 끝날 무렵, 딱지 앉은 상처를 이제 내가, 데리고, 돌아오면 된다. 그렇다. 다시 관성의 법칙이다. 떠났으니 돌아오는 것, 피 흘렸으니 아물기를 기다리는 것.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중에서)

 

스스로에게 충분하게 슬플 기회를 주는 일, 충분하게 웃는 기회를 주는 일. 맘껏 웃고, 맘껏 울어도 좋겠다. 후련한 마음으로 새로운 시간 속으로 걸어간다면 그 발걸음은 얼마나 경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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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4 1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27 1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9-12-24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2019년 서재의 달인 북플마니아 축하드립니다.
올해도 좋은 이웃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세요.^^

자목련 2019-12-27 11:07   좋아요 1 | URL
언제나 축하 인사를 건네주시는 서니데이 님, 감사해요.
저야말로 서니데이 님의 이웃이라 행복했습니다.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서니데이 2019-12-31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새해인사 드리러 왔습니다.
조금 있으면 2020년 경자년이 됩니다.
새해에도 항상 건강하시고 가정에 평안 있으시기를 기원합니다.
행복과 행운 가득하시면 좋겠습니다.
새해복많이 받으세요.^^

자목련 2020-01-03 11:10   좋아요 1 | URL
2020년, 건강하고 즐거운 일들이 가득하기를 바라요.
서니데이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