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동안 무리한 탓에 월요일엔 아이들 보내놓고 하루종일 쉬었다. 하루를 마음대로 푹 쉬고나니 집안은 온통 엉망이었다. (어제도 문화센터 다녀와서 오후 내내 쉬었다.) 3일만에 집안의 먼지를 털어내고 모아둔 빨래를 했다.
그리고 쉬는내내 정미경의 <아프리카의 별>을 읽었다.
아프리카, 막연하게나마 낭만적일거라 생각했다. '아프리카의 별'이라는 제목만 보아도 낭만적이지 않은가 말이다.
사막, 모래와 바람 그리고 강렬한 태양을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낭만적일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낭만은 없다.
살아보니 현실은 그렇다. 낭만을 꿈꾸지만 실제로 낭만적인 순간은 거의 없다. 마치 사막에서 만나는 신기루처럼 말이다.
승이 아프리카를 찾을 수밖에 없던 사연, 혼자 남겨진 보라가 메디나 거리를 헤매일 수밖에 없던 사연, 낯선 이국의 여자의 아름다움에 끌리는 바바, 늘 새로운 아름다움을 찾아 헤매는 로랑, 자신이 태어난 나라에서보다 더 오랜 시간을 아프리카에서 살고 있는 나오미. 어느 누구 하나 사연없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을 하면 삶이란 그런 것이라고 쓸쓸해하고 있다.
입 밖으로 말이 되어 나오는 순간 모든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뼈아픈 상처인지를 생각한다. 짭조름한 검은 종이, 김, 입 속에 넣으면 입 안에 달라 붙지만 어느새 사르르 녹아 목구멍 안으로 넘어가는 그것을 중독처럼 먹는 보라, 자신의 입을 통해 말해야하지만 말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는 사람들이 겪을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한다. 입 천장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면서도 차파티를 먹는 승, 그들 속에서 나오지 못하는 분노와 증오. 그것들을 견뎌내기에 더없이 적당한 장소가 아프리카가 아닐런지.
밤 하늘 무수히 떨어지는 별을 받기 위해 광주리 하나씩 준비하라던 그, 그 별들은 과연 어디로 사라져 갔을까?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도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도 모든 것이 다 나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이기적인 행동이라는 걸 다시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300쪽도 안되는 소설책을 며칠 끌어 안고 있었던 건 그들의 사연이 구구절절 가슴 아팠기 때문이었지도 모른다. 우린 도대체 무얼 위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누군가를 배신하고 또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렇게 누군가를 버리고 다른 누군가를 선택하는 끝없는 욕망을 어떻게 조절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모든 것이 존재했던 것처럼 모든 것은 사라지기 마련일테고 우린 그 어떤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일까를 내내 생각했다.
가볍지 않은 소설이다. 뜨겁게 내려쬐는 태양같은 강렬함은 없지만 사막의 모래 바람이 어느새 날아들 것 같은 그런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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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월요일 하루 피곤해하고 말았는데 난 여전히 피곤해 하고 있다. 사실 엄살도 약간 있다. 싱크대 정리며 냉장고 정리 그리고 끝없는 걸레질...정말 많이 피곤했다.
새 집에 이사가서 밥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시부모님. 새 집도 살다보면 더이상 새집은 아니건만. 그래도 부럽긴 하다. 바닥엔 대동마루 깔고 새 싱크대에 실크벽지, 화사한 조명까지.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 내 집이 제일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