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혜영 작가는 사실 생소하다. 성씨가 독특해서 이름정도는 알고 있긴 했지만 그녀의 소설을 읽어본적이 없었다. 인창도서관에서 작가와의 만남에 온다고해서 친구와 신청하고 갔었는데 읽은 책이 없는 관계로 일찍 만나 도서관에서 그녀의 책 <저녁의 구애>를 얼른 읽고 갔었다. <밤이 지나간다>는 근처 서점에서 친구 기다리다가 유일하게 서점에 남아 있는 편혜영 작가의 책이라 구입해 갔다. 좋은 시간이 되면 싸인이라도 받아둘 생각이었다. 역시나 책을 가져가길 정말 잘 했다. 예쁜 얼굴에 조근조근 말하는 작가가 마음에 쏙 들었다. 외모도 빛이 나는데 그녀의 얘기들은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을 흠모하게 만들었다. 끝나고 친구와 여유없이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도 어찌나 기분이 좋았는지 모른다. 그녀의 작품을 많이 읽어보지 못했고, <저녁의 구애> 그리고 <밤이 지나간다>를 읽으며 줌파 라히리와 비슷하단 생각이 많이 들었다.

 

<밤이 지나간다>단편집 안에 <해물 1킬로그램>이라는 소설이 있다. 아이가 실종된 부모들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솔직히 가늠이 안된다. 어느새 10년 넘게 함께 살고 있는 아이들때문에 웃고 울고 가슴 설레고 감동하고 그렇게 인간으로 살아가는 감정의 기복을 느끼며 살고 있는데 어느 날 내 아이가 어딘가로 사라져 버리고 영영 찾지 못한다면 나는 어떨 것인가? 밥도 못 먹으며 슬프게 무기력하게 살까? 남편과의 관계는 또 어떻게 될까? 머리 속으로 별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가끔 아이들이 속상하게 할때, 혹은 경제적으로 무기력한 순간에 아이들이 없었으면 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을까? 없었을까? 모든 순간을 부정하고 싶었던 날들도 분명 있었을텐데 지금은 별로 기억이 안난다. 그만큼 나도 컸고 아이들도 컸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이 아직 바깥으로 나가기 미숙했던 날들은 내가 모든 책임을 지며 지켜야만 했지만 지금은 스스로 해야할 것들을 해나가고 친구들도 사귀어 바깥에 나가 놀기를 더 소망한다. 아이들이 바깥에서 보내는 시간이 어떤 날은 8시간이 넘어간다. 그 시간에 나는 나대로 내가 하고 싶어하는 일과 해야할 일들을 한다. 하지만 곧 저녁이면 모여서 다같이 저녁을 먹고 거실에 모여 있는 시간은 고작 3~4시간 정도가 된다. 이렇게 점차 아이들이 자라면서 함께 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 이 시간을 기대하고 고대했다. 하지만 점점 아이들과의 시간이 줄어들면서 우리는 서로에 대해 비밀이 생기고 서로 알려주기 싫은 일들이 생겨나는 것 같다. 확실히 경험만큼 중요한 건 없는 것 같다. 품안의 자식일때가 좋다는 선배들의 말이 그대로 내게도 실현되고 있는 중인 것 같다.

아이들이 없는 시간을 틈타 동네 아줌마들과 수다도 떨어보고 문화센터에 등록해서 뭐든 배워보고 운동도 열심히 해보고 그러면서 점차 아이들과 책과 글과 멀어지는 나를 발견했다. 무심코 보내던 시간들을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어찌 그리 무료하게 보냈는지 모르겠다. 머리 속에 가득한 생각들과는 다르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일상을 즐겼던 같다.

아이가 어른이 되어도 부모의 눈에는 어린아이로 보인다는 말을 떠올린다. 세상에 나와서 한 인간으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건 정말 끔찍한 일이 될 것 같다. 언제고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눈 앞에 아른 거릴 것만 같다. 세상에 사라지는 아이들이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 모두들 부모의 곁에서 제대로 자라났으면 좋겠다. 서로에게 감동을 주고 행복을 느끼면서 말이다. 해물 1킬로그램을 정확하게 잴 수 없듯 인생도 결코 정확하게 계획한대로 살아가지진 않겠지만 그래도 우리 인생이 어느 정도는 불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구나 견딜 수 있는 고통까지만 견뎌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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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5-11-10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가워요! 편헤영 작가 저도 좋아하는데 꿈섬님 직접 보고 이야기도 들으셨다니 부러워요...

꿈꾸는섬 2015-11-10 23:23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 정말 오랜만이에요.ㅎㅎ
편혜영 작가는 블랑카님도 좋아하실 스타일이에요.
정말 좋은 시간이었어요. 또 기회가 된다면 뵙고 싶은 분이에요. 말도 외모만큼 이쁘게 잘 하시더라구요.
 

살아간다는 게 행복하기 위해서 살아가야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막상 살아간다는 게 행복하지만은 않다.

슬픔도 괴로움도 기쁨도 즐거움도 우리 삶 속에 고스란히 녹아져 있다.

 

깊은 반성중이다.

내 감정을 조절하는 상태가 온전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는 요즘이다.

좋을 때는 다 주어도 좋을 것처럼 굴다가도 싫을 때는 어느 것 하나도 주기 싫어서 안달하는 내 상태가 의심쩍다.

 

내게 남은 벗은 책뿐인듯 하다.

내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해도 변함없이 나를 반겨주는 것이, 한동안 소원해져서 나라는 사람을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을텐데도 책은 그저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내 옆을 지켜주고 있다.

 

아이들 학교 학부모 명예사서를 하기를 잘 했다.

학교 도서관의 책들이 내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지만 한 달에 두번 봉사를 하며 도서관의 서가가 마치 내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한동안 뜸하게 돌아보던 학부모 도서코너를 좀 더 유심히 볼 기회이기도 했다.

 

<빅픽쳐>를 읽은 후 더글라스 캐네디를 알게 되었다. 이후 <모멘트>를 읽었고, 얼마전 <템테이션> 그리고 지금 <행복의 추구>를 읽고 있다. <파리 5구의 여인>은 영화로만 보았다. 더글라스 캐네디의 작품이 얼마나 술술 잘 읽히는지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의 작품의 인물들의 섬세한 심리나 구성, 플롯 등을 생각하면 정말 대단한 작가라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난 요새 '새러 스마이스'의 삶을 통해 많은 생각을 한다. 과연 내 인생은 어느 부분에서부터 잘못 끼워진걸까하고 말이다.

나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오는 타인을 배려하지 못하는 언사에 내가 내게 실망하는 요즘이다. 나의 생각을 거르고 걸러서 좀 더 신중하게 말해야하는지도 모르는데 자꾸만 그러지 못하고 내 감정을 고스란히 타인들에게 드러내서 그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 같아 미안하다.

 

함께 명예사서를 하게 된 분은 다른 지역에서 작년에 이사를 오셨단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역은 마치 '섬'같단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아이와 함께 유치원에 다닌 학부모들과 교류를 하면서 느낀 점이 많단다. 우리 동네 엄마들이 유난히 외로움을 많이 타고, 그 외로움을 타인을 통해 해결하려하다보니 다른 이들에 대해 평가하는 이야기가 나돈다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힘이드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계속 만나고 이야기하고 결국 사건이 커지면 다투기까지 한다. 동네가 작다보니 한 집 걸러 한 집씩 대부분 아는 사람들로 연결되어 있고, 싸움이 났다는 소문은 결국 누군가가 떠나는 일로 마무리가 되었다. 이런 소문은 끊임없이 해마다 들려 온다. 누구와 누구와 싸우고 결국 누구가 이사갔다로 마무리가 되는 이야기가 끝없이 나온다.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가 서툰 나는 그런 사람들이 부담스럽다. 그러다보니 점점 고립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요새 정말 미치도록 외롭다고 느꼈던 건 정말 외롭기 때문이다.

글을 쓰지 않아도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공연을 보고 여행을 다니지만, 누군가 터놓고 이야기할 상대가 마땅치않다.

엄마들의 이야기는 늘 아이들, 아이들, 아이들이다. 일상의 자잘한 이야기도 나쁘지는 않지만 그보다 다른 이야기가 하고 싶어 다른 이야기를 꺼내놓고보면 외톨이가 되는 느낌이 든다. 어떤 이들은 내게 잘난척하는 기질이 있다고 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내가 그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즐기는 나는 잘난척하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싶다.

모든 나에 관한 이야기들을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씁쓸한 건 사실이다.

 

'새러'가 맨허튼을 떠나 브룬스윅 작은 마을에서 사는 동안 그 마을 사람들은 새러가 무엇을 하는지 안다. 새러가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분명 새러가 어디에 갔고, 누구를 만났고를 안다. 그렇다고 그걸 떠벌리거나 이야기의 주제로 삼아 사생활을 침해하는 일은 절대 없다. 하지만 우리 동네에는 돌고 도는 이야기가 계속해서 생겨난다. 이곳에 정착해서 살기로 결정한 이상 돌고 도는 이야기 속에 우리 가족의 이야기는 없기를 바랄뿐이다. 그래서 더 우울한건지도 모르겠다. 우리 동네의 그물처럼 펼쳐진 인간관계에 걸려들지 않을 방법이란 없으니 말이다.

 

우울과 조울이 자꾸만 번갈아가며 엄습해온다.

이겨야겠다고 생각하면 우울이 더 찾아오는 것 같다.

일부러 기분 좋게 행동하고 말하려고 하다보니 더 불쑥 나쁜 감정들이 튀어나오는 것 같다.

 

아이가 집으로 돌아온다고 휴대전화로 전화를 했다.

우선은 기분좋게 아이를 맞아줘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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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4-05-30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구는 무척 덥습니다..ㅠㅠ
더위조심하시고 늘 건강 챙기셔요.^^

힘 내세요~!!! 화이팅입니다.^^

꿈꾸는섬 2014-05-31 05:31   좋아요 0 | URL
여기도 한낮엔 무척 더워요. 아침 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서 그나마 살만해요.
후애님도 늘 건강하세요.^^

수퍼남매맘 2014-05-30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부모끼리 잘 만나고 어울리다가도 틀어지는 경우 많다고 들었어요.
특히 아파트촌은 소문이 장난이 아니라고....
학부모독서모임을 하면 좀 힘이 날텐데..
토닥토닥 힘 내세요.

2014-05-31 05: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4-05-31 0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글러스 케네디~ 책 제목만 들었지 실제 읽은 건 하나도 없네요. 집에 책이 있는데도 불구하고~ㅠ
사람 사이의 문제는 어디나 있게 마련이지만, 너무 신경쓰지 않는 방법도 익혀야 할 것 같아요.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끼리 동아리를 하면 학습활동도 하면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듯해요.
어제 그림책 신규 동아리 첫모임 가졌어요~

꿈꾸는섬 2014-05-31 05:40   좋아요 0 | URL
저도 처음엔 덥썩 읽고 싶지 않았어요. 근데 읽나보니 빠져드네요.
그냥 유명하기만한 작가는 아니것 같아요. 미국사회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동아리활동에 익숙치않아서 사실 좀 겁부터 나네요.

blanca 2014-05-31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말씀인지 알 것 같아요. 다들 그런 문제는 어느 정도 다 가지고 사는 것 같아요. 지역 사회에 안 들어가려 하면 외롭고 들어가면 분란에서 자유롭기가 쉽지 않고....저는 이사 오기 전 동네에서 너무 밀착된 관계를 경험해서 그 피로도가 참 크더라고요. 사람은 어디에서든 결국 다 외로운 존재인 것 같아요. 그리고 아이 이야기, 너무 동감해요. 정말 다들 아이 이야기만 하면서 '나'의 이야기는 어디론가로 가 버리죠. 그래도 꿈섬님, 꼭 좋은 따듯한 인연 찾아올 거예요. 기대도 믿음도 간직하다 보면 그렇더라고요. 그리고 더글러스 케네디 책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꿈꾸는섬 2014-06-05 17:01   좋아요 0 | URL
더글러스 케네디 책은 정말 재밌어요.
좋은 인연을 만들어 간다는 게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그래도 다행인 건 책이 있어 다행인 것 같아요.^^

하늘바람 2014-05-31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겨내셔야 해요 저도 그래요 함께 힘내요

꿈꾸는섬 2014-06-05 17:03   좋아요 0 | URL
아이들 키우는 일과 더불어 나도 함께 성장해야하는데 여전히 어렵네요.
얼마간 좀 우울했었는데 이제는 좀 나아진 것 같아요. 하늘바람님 말씀처럼 힘을 내야죠.ㅎㅎ
 

요새는 컴 앞에 있는 시간이 확실히 줄었다.

바깥활동이 많아진 것도 있고, 스마트폰을 사용하다보니 그런 것도 같다.

학교 도서관 봉사를 하면서 빌려 읽었던 책들도 갈무리해야지했는데 그게 또 그냥 흐지부지 갈무리하지도 않고ㅜㅜ

알라딘에도 자주 들락거리며 글을 써야지 했던 것도 후지부지 되어버렸다.

 

학교 도서관에서 정글만리1을 빌려 읽고 얼른 2권과 3권을 빌리려고 했으나 연체중이란다.

교감선생님께서 빌려가셔서 여태 반납을 안 하신 거란다. 바쁜 일과로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하실 수 있지만, 그 책을 기다리는 나로서는 얼른 반납해주시기를 바랄뿐이다. 그냥 사서 읽을 걸 그랬나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이들 책 주문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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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남매맘 2014-05-25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글만리 정말 재미있어서 한달음에 읽었던 기억이 나요.
집이 가까우면 빌려드릴 텐데.....

꿈꾸는섬 2014-05-26 16:47   좋아요 0 | URL
ㅎㅎ오늘 도서관 봉사일이라 갔는데 여전히 연체중이더라구요.
교감샘이시라 사서샘이 말씀 드리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읽을 때 이어서 읽으면 좋은데 말이죠.
그 덕에 <템테이션>을 읽고 오늘은 <행복의 추구1,2> <정도전>을 빌려왔어요.
도서관 봉사하니 책 빌려 읽기가 쉬워졌네요.^^

순오기 2014-05-27 0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에 다녀가요~
바쁘기도 했고, 지난 수욜밤에 공유기 바꾸면서 선을 잘못 꽂아 인터넷이 안됐어요.
어제 오후 서비스 받고 인터넷이 됐어요.

꿈꾸는섬 2014-05-30 12:08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정말 바쁘게 사시던걸요.ㅎㅎ(카스를 보니)
숲해설사로 멋지게 사시는 모습 정말 대단하세요.^^
늘 잊지 않고 찾아주셔서 감사해요.

희망찬샘 2014-05-31 0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 봉사를 하시는군요. 저희 학교도 그래서 어머님 봉사자들을 위해 도서 권수를 팍팍 늘려 드렸습니다.

꿈꾸는섬 2014-06-05 17:04   좋아요 0 | URL
네, 저희도 봉사자들은 2권 더 늘려주셔서 정말 좋더라구요.
학교 도서관이 더 친근해졌어요.^^
 

요즘은 아이들 책 읽기에 좀 더 집중하기로 했다.

학과 공부 따라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조금 더 아름답고 행복하고 재미난 이야기들을 가득 심어주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오전에 학교 도서관에 가서

 아이들과 내가 읽을 책을 빌려왔다. 명예사서를 하니 좋은 점이 2권의 책을 더 빌릴 수 있게 되었다.

현수는 얼마전 도서관에서 본 뮤지컬 오즈의 마법사가 인상적이었는지 인디고에서 출판된 <오즈의 마법사를 빌려왔다. 물론 현수가 읽기엔 벅찰 것 같은데 현준이가 읽겠다고 나섰다. 요새 아이들도 책 빌려오는 엄마의 수고를 생각해서인지 더 열심히 읽어준다.

 

 

 

 

 

오늘 오랜만에 친구의 직장 근처에 가서 함께 점심을 먹고 간단히 커피 한잔하고 왔다.

아이들 키우는 얘기가 우리의 주된 이야기이다.

초등 2학년 된 친구의 딸이 연산이 너무 부족하다고 연산을 좀 더 시키라는 얘길 듣고 심란해했다. 꾸준히 수학공부를 해왔다면 괜찮았을텐데 1학년때 단원평가 등 시험을 거의 보지 않길래 수학공부를 잘 안 시켰었단다. 직장맘이다보니 아이 공부 봐주는게 사실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학습지를 시켜야하나 연산문제집을 추가해야하나 고민하는데 아이에게 정말 필요한 건 공부시간에 함께할 부모라고 생각한다고 말해주었다. 할머니 집에서 숙제 등을 미리 하지만 늘 TV가 켜져 있단다. 집중해서 공부하지 못한다면 학습지나 연산문제집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워낙 공부를 잘했던 친구라 아이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기를 바란다. 큰 아이 중학교 들어가기 전엔 이사를 하고 싶다고, 나에게 서울로 이사 올 계획은 없냐고 물었다. 난 사실 그다지 공부를 잘 하지 못했고, 공부보다 다른 재미난 것들에 빠져 살았었다. 난 아이들 학교 교육에 크게 투자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꼭 서울 안에 있는 대학을 보내야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저 아이가 할 수 있는만큼 도와줄 생각이라고 했다. 대신 책읽기와 피아노, 운동은 꾸준히 시키고 싶다고 했다. 학력, 학벌이 중요한 사회이긴 하지만 내 아이가 꼭 좋은 학력과 학벌을 가져야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생각이 나중에 우리 아이들 커서까지 변하지 않고 유효했으면 좋겠다. 물론 아이가 열심히 공부하여 좋은 대학을 간다면 모르겠지만 그것때문에 다른 것들을 하지 못하게 하고 싶진 않다. 그래서 우린 지금 살고 있는 곳을 떠나지 않을 생각이라고 했다. 남들보다 더 특별하고 뛰어난 아이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현재를 열심히 살고, 배울 수 있는 것을 배우는 것, 읽을 수 있는 것을 읽는 것, 다룰 수 있는 악기 하나 정도는 있는 것, 그게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바라는 삶이다.

얼마 전 학교에서 과학탐구대회를 했었다. 그때 처음 과학상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도 나도 생소한 과학상자를 설계도를 보며 만들어보았다. 하지만 촉박한 시간만큼 연습할 시간이 많지 않았고, 아이는 준비했던 것을 다 마무리하지 못했었다. 그때 아이도 나도 많이 속상해했다. 하지만 아이는 그 속상함에 빠져 있지 않았고, 자신이 잘하는 다른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피아노 앞에 앉아 자신이 잘 칠 수 있는 곡을 연주하며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고 다독이는 모습을 보면서 대견했다. 어른인 나보다 나았단 생각을 했다. 피아노를 가르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내지 못했다고 질책할 필요가 없다. 내 아이가 더 잘하는 무언가를 발견해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었던 것 같다.

 

세월호 침몰 뉴스를 함께 봤었다. 거의 하루 종일 TV를 켜는 일이 없는 우리집에서 요새는 종종 뉴스를 봤다.

아이는 수학여행에 대한 공포가 생겼는지 나중에 학교에서 가는 수학여행을 가고 싶지 않다고 일기에 썼다. 공포심을 심어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늘 조심하기를 바라는 마음과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사건을 기억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안전에 대한 매뉴얼은 있었지만 그 매뉴얼이 실행되지 않는 나라, 우리나라. 우리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또 어른이 되어서는 기본적인 규칙, 약속이 지켜지는 그런 나라가 되기를 희망하기 때문에 아이에게 공포감을 줄 수 있는 뉴스를 함께 보고 이야기 했다.

어른들의 그릇된 행동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사건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를 바란다. 언제쯤 바뀔지 알 수 없지만 말로만 지켜지는 사회가 아니라 행동으로 지켜지는 우리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공부만 잘 하는 아이, 다른 아이보다 내가 월등히 뛰어난 아이로만 자라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의 본분을 알고, 책임과 의무를 이행할 줄 아는 아이가 되기를 바란다. 도덕과 윤리가 필요한 사회지만, 우리는 수학과 영어에 집중한다. 학습 능력이 뛰어난 사람만이 인재가 아닌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상대를 배려하고, 이해하고, 봉사하는 자세가 먼저 필요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는데 지식만 가득하면 무엇하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더 많은 책을 읽혀야겠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으며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어야겠다.

 

우울한 일주일이었다.

아들에게 말했다. 우리는 더 열심히 살자고. 먼저 간 바닷속에 빠져 생사를 달리한 형과 누나들을 생각하더라도 더 열심히 살아야한다고. 그게 우리 남은 사람들의 몫인 것 같다고. 아들은 네. 하고 대답해주었다. 그리고 함께 마음 속으로 누구라도 살아서 돌아와주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잊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 다시 또 반복해서는 안된다. 잊지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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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5 12: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26 16: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난 금요일에 빌려온 책들을 갈무리하지 않았더니 한권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게 대체 무슨일인지......

 

최숙희《너는 기적이야》《엄마가 화났다》
《지하100층짜리 집》
《책속으로 들어간 공룡》

오늘은 학교도서관에서 명예사서 봉사를 하고 왔다. 애들 학교보내고 처음 명예사서가 꾸려졌다. 지금 사서선생님이 임신중이시고 6월말부터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에 들어가신단다. 작년까지 계시던 달빛도서사서쌤도 올해부터는 안계시고 아무래도 혼자 힘드셨을 것 같다.
현준이네 담임선생님도 다시 복귀하셨다. 학기초부터 혼란준 것에 사과하시고 조금 늦었지만 남은 기간 최선을 다하시겠다고하니 믿음이 간다.
아침에 도서관 봉사간다니까 쉬는시간에 들르겠다더니 왜 안왔냐고했더니 큰애는 진도가 너무 늦어 쉬는시간에도 보충했다하고 작은애는 담임선생님 허락없인 못간다고 했다. 학교에서 얼굴보면 반가울줄 알았는데 못 보니 아쉬웠다.
봉사하고 대출한 책

 

《또야너구리가 기운바지를 입었어요》
《엄마의 의자》
《까치와 호랑이와 토끼》
《방귀스티커》
《두고보자 커다란 나무》
《여우세탁소》

난 요새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를 읽고 있었다.세월호 침몰에 뉴스특보에 빠져 책 읽기가 잠시 중단되었었다. 그런데 벌써 엿새가 지나가고 있는 이 시점에 내 심신도 함께 지쳤다. 매일 보여준 자료화면과 매일 떠들어대는 반복되는 이야기들, 그리고 실망스러운 구조소식과 정부. 뉴스를 보면서 울화가 치밀어서 뉴스특보를 내내 보지 않기로하고 가끔 인터넷 뉴스를 살피기로 했다. 자연히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분명 매력적이고재밌는 소설소설을 읽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궁금해진다. 기적적으로 구조된 누군가가 있을 것만 같은 생각에 TV앞으로 가야하는게 아닌가 하고 있다.
진도의 실종자가족의 마음을 어느 누가 과연 알겠는가. 제발 어느 누구라도 생존자가 있어주기만을 바라고 또 바랄뿐이다.
제발 살아서 돌아와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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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남매맘 2014-04-22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교 도서실 봉사 다니시는군요. 짝짝짝!
학교에서 애들 보면 더 반갑죠?
저희 학교는 도서실 명예교사가 없어요.
불미스러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서 없앴다고 하네요.
사서 샘 혼자서 하시니 몸은 힘들지만 맘은 편하다고 하세요.

꿈꾸는섬 2014-04-23 10:46   좋아요 0 | URL
저희도 올해 다시 생긴거라더라구요. 초창기에 있다가 없어졌고 다시 부활한거라고해요.
많은 학부모가 참여해서 한달에 한두번만 봉사하면 되더라구요.

blanca 2014-04-23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뉴스 안 본다고 하면서도 기적이 일어날 것만 같아서...이래저래 참 마음 아픈 나날들이네요. 요새는 자꾸 모든 것에 회의가 들어요...

꿈꾸는섬 2014-04-23 16:01   좋아요 0 | URL
뉴스보면서 더 화가나더라구요.ㅜㅜ
좋은 소식을 기다리지만 좀처럼 일어나지 않으니 답답해요.ㅜㅜ

희망찬샘 2014-05-31 0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책을 많이 빌려 오셨네요. 아이들이 부지런히 읽는다니 더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