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야말로 사치스럽게 사는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같은 것을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사치가 아닐까._《단순한 열정》


아니 에르노는 이 책에서 이렇게 끝을 맺는다. 《단순한 열정》을 읽으면서 내내 이 여자의 폭풍과도 같은 열정적인 사랑, 일상을 사로잡아버린 사랑에 내가 다 미칠 지경이었다. 누구나 사랑을 시작하면 어느 정도 상대에게 몰입할 수 있다. 이해는 하면서도 그래도 그렇지, 라는 말이 내 입에서 나올 정도라면 어느 정도인지 내 스무살 때 친구들이 보면 '너보다 더 하단 말야?'라며 경악할 것이다.


물론 《단순한 열정》에서의 남녀 관계는 일반적인 남녀의 관계가 아니다. 우리가 소위 말하는 '불륜'이다. 아내가 있는 남자를 사랑하는 아니 에르노. 그것도 속물 근성을 가진 소련 외교관에 13살이나 어린 남자다. 왔다가 돌아갈 때는 꼭 아니 에르노의 말보로 담배를 몽땅 다 챙겨가며, 큰 차를 좋아하고, 브랜드의 옷을 말끔히 입는 것으로 자신의 지위를 나타내는 전형적인 사회주의(!) 촌부 같은 그런 남자에게 아니 에르노는 빠져서 속을 끓인다. 이유가 뭘까? A는 그녀가 좋아하는 외모도 아니고, 지적으로 통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속궁합인가? 글쎄,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길어야 서너 시간 만나고 헤어져야 하는 관계인데다 그녀의 글 속에 담긴 욕망이 그러하므로. 그것 외엔 없는 것 같기도 하지만《단순한 열정》의 상세판(!)이라고 할 수 있는 《탐닉》에 나오는 A였다가 S가 된 그에 관한 아니 에르노의 인상은 이렇다.


그는 나의 가장 '유치한' 부분, 그리고 가장 사춘기적인 부분을 대변한다. 별로 지적이지 않고, 큰 자동차를 좋아하고, 운전하면서 음악을 틀어놓고, '과시하기'를 좋아하는 그는 '내 젊은 시절의 남자'이며, 금발이고 약간 촌스럽다(손과 네모난 손톱들). 그러나 나의 쾌락을 한층 증폭시켜주기 때문에 이런 지성의 부재에 대해 더이상 불평하고 싶지 않다._《탐닉》


그렇다면, 어쩌면, 어릴 때 그녀가 생각했던 '유치한' 부분이 아니 에르노를 사로잡았는지도 모르겠다. 《단순한 열정》을 읽고 그녀와 사귀었다가 헤어진 후《포옹》이라는, 《단순한 열정》을 꼭 닮은 소설을 펴낸 필립 빌랭의 글에 보면 이런 글이 나온다.


나는 그녀가 A를 사랑했던 것이 아니라 그 남자가 상징하는 혁명적 이상이 그녀의 유년기 첫사랑의 추억에 접목되었을 뿐이라고 생각하며 애써 자위했다. 아, 그러나 그것은 매번 공염불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생각은 내게 비수로 돌아와 A에게 신화적 힘만을 부여했고 그의 영웅적 위상을 깎아내리기는커녕 오히려 강화시켜주는 꼴이 되었다. A는 A.E를 그녀의 어린 시절로, 출신세계로 이어주는 사람이었다._《포옹》


 

그러니까 필립 빌랭의 말을 빌리면 그녀가 A의 촌스러움과 지적 부재에 따위보다는 '그녀의 유년기 첫사랑의 추억'으로 이어주는 사람이었기 때문일 거라고 추측한다(이 글을 읽으니 아니 에르노의 이전 작품들이 더 궁금해지고 말았다) 아무튼 그녀가 그 남자 A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내가 있는 남자의 집으로 전화를 할 수도 없으며, 소비에트라는 나라에 소속되어 있던 때라 그가 근무하는 곳에도 함부로 전화를 못한다. 그저 A가 전화를(그것도 가끔은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공중전화로) 해서 언제, 몇 시에 갈게. 라고 해야만 만날 수 있는 존재다. 그러니, 아니 에르노의 집착과도 같은 그 사랑이 아프지 않을 수 없다. A를 향한 온갖 상상, 연락이 없으면 금방이라도 죽어버릴 것 같다가 전화라도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변하고 마는 감정. 읽는 이가 질리도록 천국과 지옥을 오고가는 그 감정들!


때로, 그사람이 내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게 아닐까 자문해보기도 했다. 나는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듯이 태연히 잠자리에서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이야기하고 웃는 그 사람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한시도 그 사람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와의 차이 때문에 너무나 불안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아니다. 그 사람도 분명히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 생각만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깜짝 놀랄 것이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내 태도가 옳은 건지 그 사람이 옳은 건지 굳이 가려낼 필요는 없다. 그저 그 사람보다 내가 더 운이 좋다고 생각하면 그만이었다._《단순한 열정》


물론 이 정도의 생각은 사랑에 빠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이 문장은 전체적으로 봤을 때 가장 정상적인(!)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깊이 빠진 듯 하~아, 한숨이 나오는 문장들이 많지만 그래도 《탐닉》에 비하면 《단순한 열정》의 글들은 정말 '단순'하다. 그 책을 출간하고 십 여 년이나 지나 펴낸 《탐닉》에선 그 감정의 변화가 말도 못한다. 매일이다시피 써 놓은 그녀의 일기를 읽으면 감정의 변화가 어찌나 변화무쌍한지 읽으면서 내내 이 여자를 어쩌면 좋아! 와 같은, 측은함이라면 좀 웃기고, 누군가를 사랑하면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그 마음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라고나 할까? 암튼 책을 다 읽고 덮으면서 난 앞으로 누군가를 그보다 내가 더 사랑하게 되면 절대로 '일기' 따위는 쓰지 않으리라, 맘 먹을 정도였다.

 

아니 에르노는 《단순한 열정》에서 한 남자와의 사랑의 경험을 열정적이면서도 아름답게 미친듯이 써내려 갔지만 《탐닉》에서는 그 남자를 벌거벗기고 만다. A가 아니 에르노에게 했던 모든 행동들, 그녀가 A에게 느낀 수많은 감정들이 정제되지 않은 채 날 것 그대로 묘사된다. 아니 에르노는 일기야말로 '삶을, 혹은 가장 가까운 무엇을 허무에서 구해내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십 여년이 지나 《탐닉》을 발표한 이유가 '허무'때문이었을까? …어쩌면, 그럴 수도ㅡ

 


A와 필립과 아니 에르노

 

《단순한 열정》에서 아니 에르노는 이렇게 말했다.


A는 지금도 이 세상 어디엔가 살고 있다. 나는 그 사람의 신분을 드러낼 수도 있는 예민한 정보에 대해서는 자세히 이야기할 수 없다. 그 사람은 이제 '그의 삶'을 살고 있다. 다시 말해 지금의 그에게 자신의 삶을 값지고 성공적인 것으로 이끄는 일보다 더 소중한 일은 없는 것이다. 그 사람의 입장이 나와 다르다는 사실이 나로 하여금 그 사람의 신분을 밝힐 수 없게 만든다. 나는 그 사람을 내 존재를 위해 선택한 것이지 책의 등장인물로 만들기 위해 선택한 것은 아니다._《단순한 열정》


이때만해도 아니 에르노의 마음엔 A가 남아 있었다. 비록 그에 관한 글을 쓰면서도 그를 보호해주려고 하는 그런 마음. 하지만 십여 년이 지나 그녀는 A를 만나면서부터 거의 매일 쓰다시피한 일기를 공개한다. 그 일기가 바로 《탐닉》이다. 물론 그녀는 '체험적 글쓰기'를 하는 작가였다. 마치 미래의 출판을 위해 일기를 쓰듯 어쩌면 출판을 목적으로 일기를 썼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A에 관한 소설(!)을 펴내고서 다시, 그보다 더 자세한 이야기, 아니 A와의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라고밖에 할 수 없는 소설(!)을 펴낸 의도는 뭘까. 출간 연도 순으로 따지고 보면 《탐닉》은 필립 빌랭이 아니 에르노와 헤어지고 난 후 발표한《포옹》이라는 소설이후에 나온 작품이다. 《포옹》에서 필립 빌랭은 아니 에르노와 사귈 때, 절대로 A의 이야기를 담은 '일기'를 펴내지 말라고 졸랐다(필립은 아니 에르노가 A를 못 잊는다고 생각했다. 그 대부분의 오해(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는 《단순한 열정》때문이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요구에 따라 '그녀는 A와 관련된 부분의 일기를 나중에라도 출간하지 않기로 했다.'고 했다. 한데 그녀는 결국 출간했다. 왜?


그 시절엔 줄곧 나 자신이 둘로 분열되어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는 다른 두 사람ㅡ죄수이자 간수ㅡ이라고 느껴졌다.

집에 신문기자나 사진기자가 오면 그녀는 나더러 아래층 방에 있으라고 요구했다. 인터뷰가 길어지면 나는 전봇대에 오줌을 싸서 자기 영역을 표시하는 개처럼 변기 물을 내리고 문을 소리나게 여닫으며 내 존재를 상기시켰다.(또한 미래의 그녀 애인들을 생각하며 나는 내 영역을 표시하기 위해 이 책을 쓰고 있다. 그들은 그녀가 내 것이었으며, 내가 이렇게 쓴 책 속에 감금당했음을 알게 될 터이다. 또한 그녀가 자기들과 하는 것은 나와 했던 일의 반복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을 것이다. 내 글은 출판된 뒤에도 여전히 힘을 행사 할 것이다.)_《포옹》


필립 빌랭은《포옹》에 이런 문장을 넣었다. 그가 아니 에르노를 만나면서 A의 존재에 대해 얼마나 질투를 하고 있었으며 결국 5년 동안의 만남이 끝나버린 것은(물론 5년이란 기간동안 필립 빌랭이 본인에겐 소설 속 인물이나 마찬가지인 A에 대해 아니 에르노가 잊었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단순한 열정》의 장면장면을 떠올리며 굉장히 질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쉬웠을지도) 아니 에르노의 지갑 속에 들어 있던 A의 사진때문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것 같다 그리하여 '출판된 뒤에도 여전히 힘을 행사 할' 글을 쓴 것이겠지. 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감수하면서(사랑일까? 집착일까? 주목받고 싶었을까? 제2의 A가 되고 싶었을까?) 말이다,


A.E와 멀리 떨어져 루앙에 있으면 나 자신이 쓸모없어서 버림받은 존재로 느껴졌다. 그녀는 "우리 커플을 유지하기 위해서 오직 좋은 시간"만을 갖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이를 "사치스럽게 사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정상적인 삶'의 규칙성으로부터 도망친 우리는 역시 단조롭고 보다 음흉하고 어떤 놀라움도 없는 또다른 규칙성을 만들고 말았다._《포옹》


A와 아니 에르노가 헤어진 후 한 번 만나고 두 번 다시 못 본 것처럼(십여 년이 지나 펴낸 《탐닉》에도 더이상 A에 관한 글이 나오지 않으니 아마도 만나지 못한 것 같다) 필립 빌랭과 아니 에르노도 만나지 못했을까? 러시아에 살고 있는 A와는 다르게 필립 빌랭은 같은 나라에서 같은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데 말이다. 추리 소설도 아닌데 자꾸만 추리를 하게 만드는 이 세 권의 책, 아니 에르노가 십여 년이 흐른 후 《탐닉》을 내보낸 진짜 이유는 어쩌면 A보다는 필립 빌랭을 향한 것은 아닐까. 그의 요구에 따라 'A와 관련된 부분의 일기'는 출간하지 않기로 했다는 약속을 깨기 위해(날 엿먹였으니 너도 엿먹어봐라. 내 진짜 사랑은 역시 A였다. 뭐 이런-.-;;->아, 소설(!)을 넘 마이 읽었다;) 아니 에르노는 《탐닉》을 출간하게 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2000년 1월인가 2월, 나는 5년 전부터 들춰보지 않았던, S에 대한 나의 열정의 시간에 해당되는 일기장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여기 굳이 밝힐 필요가 없는 이유로 일기장은 내 손이 닿지 않는 장소에 보관되어 있었다). 나는 이 페이지들 속에 《단순한 열정》에 들어 있지 않은 다른 '진실'이 내포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정제되지 않고 암울한, 구원의 가능성이 없는 어떤 제물 같은 무엇이 있었다. 나는 이것도 언젠가는 출판하리라고 마음먹었다.

(...)

이 글에서 외부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도 내게는 언제든 사료에서 찾아볼 수 있는 시사적인 사건들보다는 그날그날의 생각이나 몸짓, 그리고 열정 그 자체인 삶에 관한 이 글에 담긴 세세한 부분ㅡ자동차 안에서 욕정을 주체할 수 없어 섹스를 했을 때 그가 신고 있었던 양말 같은 것ㅡ들이 더 중요해 보인다.

나는 일종의 내적 필요에 의해 이 일기장을 공개한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다. S가 느낄 감정에 개의치 않고 당연히 그는 문학적 권력의 남용이라거나, 더 나아가서 배신이라고까지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성욕 해소용으로 그녀를 만났을 뿐이야"라고 웃어넘기면서 자신을 변호하는 것도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시는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그 몇 달 동안 그가 자신도 모르게 나의 경이롭고도 무서운 욕망과 죽음, 그리고 글쓰기의 근원이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를 바랄 뿐이다._《탐닉》


'5년 전부터 들춰보지 않았던', '여기 굳이 밝힐 필요가 없는 이유'. 세 권의 소설을 차례로 읽으면서 나는 사랑의 강자와 약자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단순한 열정》에서 '약자'였던 아니 에르노는《탐닉》에서는 그 반대로 '강자'가 되어 있었다. 아니 에르노가 겪었던 모든 감정의 변화를 필립 빌랭이 겪고 있었음을 몰랐을리 없겠지만 A의 만남과 비교해볼 때 필립 빌랭과의 5년은 결코 짧은 기간도 아닌데 그에 관한 글은 하나도 없으니(어쩌면 그것 또한 그녀의 손에 닿지 않는 어느 곳에 보관이 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 혹은 그녀에게 필립 빌랭은 '성욕 해소용'일지도. 《포옹》이 츨간 되었을 때 아니 에르노의 마음이 어땠을지 상상도 안 되지만 결코 좋은 감정은 아니었을 거다. 필립 빌랭의 글은 아니 에르노와 는 차원이 다른, 질투에 눈먼 한 남자의 멍청한 짓으로밖에 안 보이니 ). 나의 상상은 끝없이 펼쳐진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도 넉 달이 지났다. 소설 형식이긴 하지만 우리의 이야기를 공개하면서 무엇인가를 파괴하고 있는 셈이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몰랐다. 언젠가 이 글이 책으로 출간된다면 그것은 아마도 그녀가 나를 증오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우리의 결정적 종말을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 글쓰기는 그녀와 나 자신을 향한 위험이다. 이별 장면을 쓰면서 나는 우리 두 사람을 다시 되살려, 필경 한 사람은 죽여야 하고 다른 한 사람은 죽어야만 하는 원형 경기장 속에 두 인물을 내던진 것이다.

나는 그녀를 좀더 내 곁에 간직하고 우리가 함께 했던 모든 것, 우리가 가보았던 모든 장소, 우리가 사랑을 나누었던 모든 호텔 방을 회상하고자 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면 이 책과는 전혀 다른 책을 썼을 것이다.

 

그녀를 통해, 그리고 내 질투심을 통해, 나는 너무 늦게서야 행복이었음을 깨달은 사라진 세계에 대한 분명한 신호를 정말적으로 찾아 헤매고 있다._《포옹》

 

짧은 기간의 열정적인 사랑, 그 사랑의 책이 인연이 된 또 다른 사랑. 사랑에 있어 승자와 패자가 어디있겠으며 세월이 흐른 후엔 그 모든 것이 오로지 추억으로 남을 뿐인 허무한(!) 사랑인데(그들의 책을 보고 느낀 점이랄까. 진짜 허무했다. 죽을만큼 서로 사랑했지만 그 기간이 지나고 나면 너무나 일상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열정이 사라지고 만다. 글을 쓸 때까지도 그들은 서로에 대한 감정이 남아 있는 듯 보였지만 결국엔 과거에 있었던 빛바랜 사랑의 추억일 뿐으로 보인다. 사랑은 그런 것 같다. 순수하든 열정적이든 순간의 행복이 지나면 그저 똑같은 일상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사랑에 관련한 소설은 이별을 던져주는 마지막 보다는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을 갖게 해주는 게 좋은 것 같다. 체험적 글쓰기인지라 끝이 분명한 소설들이었지만 시작과 과정과 끝이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조금은 불편했던. 하지만 그 불편함 때문에 더 마음에 오래 남는) 왜 그토록 집착하고 잊지 못하는 걸까. '한 사람은 죽여야 하고 다른 한 사람은 죽어야만 하는'게 사랑이라면 어느 누가 사랑따위를 할 것인가.


우연히 읽게 된 세 권의 책으로 인해 며칠 동안 나는 즐거웠다. 사랑이 무엇이고 집착과 욕망이 무엇인지 이 세 권의 책에 너무나도 잘 나와 있다. 이 이야기들이 모두 허구가 아니라 실제 있었던 일이라는 것이 더 놀라웠고 이런 글을 두려움없이 펴내는 아니 에르노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그래서 그녀의 이전 책들이 궁금해졌다. 도대체 그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소설이라는 허구의 구성을 무시하고 체험적 글쓰기를 하게 만들었는지. 왜 지극히 사적인 부분을 드러내면서까지 글을 써야만 했는지에 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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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계절의 여왕 오월, 열두 달 중에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다. 오월이 오면 언제나 마음이 들떠 있다. 나의 일년 중 시작은 항상 오월부터였으니까. 겨울을 싫어해서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게 오월은 회생의 달이며 희망의 달이다. 그런 오월,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가슴 아프고 힘든 달일테지.

 

언젠가 읽은 SF 소설이 생각난다. 사람이 죽으면 가는 곳. 천국도 지옥도 아닌 그곳엔 누군가 '죽은 나'를 기억해주어야만 갈 수 있는 곳이다. 그러니까, 살아 있는 누군가가 '죽은 나'를 기억하면 나는 그곳에서 마치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처럼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처음엔 많은 사람들이 '죽은 나'를 기억해준다. 그래서 그곳에서의 삶은 살아 있을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게 바쁘다. 하지만 그 어떤 사건도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지나면 다들 잊게 마련이다. 사느라 바빠서, 또 다른 사건들로.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기억에서 조금씩 멀어지게 된다. 그러면 그곳에서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살아가고 있던 '죽은 나'도 서서히 사라진다. 마치 뚜렷했던 물체가 점점 투명해져 모습이 옅어지는 거다. 그러다 어느 순간 '죽은 나'는 이제, 이곳에서도, 저곳에서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처음엔 스토리의 상상력에 너무 황당했다. SF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말이다. 한데 이상했다. 다 읽고 책을 덮으면서 너무(!) 마음이 아팠다. 잊는다는 것,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고 잊히는 존재가 되기 마련이지만, 절대로 잊지 않을게, 하면서도 나 역시 모르는 사이에 잊으면서 살아가지만. 오랫동안 누군가를 기억하는 일, 기억해주는 그 사람마저 죽어버리면 끝인 그 허무함.

 

시작부터 괜히 사설이 많아졌는데 그런 기억에 관한 거다. 이미 많은 사람이 잊고 있지만, 그래도 끊임없이 되새겨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잊지 말아야 할, 그러니까, 오월엔 한번쯤 그날을 생각해보자는. '죽은 그들'이 투명하게 사라지지 않도록.

 

알고 있는 책들이 많지는 않아 내가 읽은 것들을 위주로 골랐고 덧붙여 같이 읽을만한 책을 넣었다. 부끄럽게도 그동안 관심이 얕았으므로 깊이는 별로 없다. 그래서 이런 책을 한번쯤은 읽어봐주세요. 하는 정도밖에 되지 못한다.


 

“군인들은 뛰어내리자마자 사람들에게 달려갔다. 사람들은 왜 자신에게 다가오는지 몰라 그대로 서 있었다.

먼저 회사원과 중년 남자들이 얻어맞고 나자빠졌다. 중국집 배달부는 배달통과 함께 넘어졌다. 자전거 바퀴가 허공에서 돌고 우동 국물이 쏟아졌으며 뒤이어 머리통이 깨졌고 군화에 짓밟혀 다리가 부러졌다. (…) 언니의 손을 잡고 가던 소녀가 넘어지며 울음을 터뜨렸다. 소녀를 일으켜세우는 언니의 어깻죽지를 군인이 곤봉으로 때렸다. 언니는 소녀 위로 넘어졌고 다른 군인이 자매를 밟고 넘어갔다. (…) 한 군인이 개머리판으로 그의 뒤통수를 쳤다. 남자가 비명을 질렀다. 얼굴을 감싼 손에서 붉은 피가 떨어져내렸고, 그 속에 동그란 눈알이 들어 있었다.“

 

한창훈 작가의 《꽃의 나라》는 '폭력'에 물든 한 소년의 성장기다. 그 소년이 가정과 학교에서 나중엔 사회와 국가에서 당하는 '폭력'에 관한 이야기를 다뤘다. 그중 가장 '거대'하고 끔찍한 폭력은 바로 '국가의 폭력'이었다.

그동안 많은 책을 읽어왔지만 그 당시 그 반대편 도시에 살고 있던 어린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몰랐다는 게 자랑이 아니라 부끄러운 일이라는 걸 늦게 깨달았다. 자칫하면 그조차 모르고 지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무심결에 폭력에 관한 단순한 소설일 거라는 기대로 읽다가 나타난 무시무시한 국가의 폭력 장면 앞에서 너무 놀라고 말았다. 

책은 그런 것 같다. 어느 순간에 가슴을 후벼파며 들어오는 책이 있다. 다른 때 읽었으면 아무것도 아닌 채 지나가버릴 그런 글들이 순간적으로 내 머릿속을 뒤흔드는. 그래서 작가의 도리란, 되풀이되고 똑같은 내용에 뻔한 스토리라고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잊지 않도록 자꾸 끄집어내고 드러내야 한다는 것. 겨우 한 사람만이 공감하고 충격을 받을지언정.

그가 아니었으면 난 올해의 오월도 그렇게 개인적으로 찬란을 운운하며 보내고 있을지 모르니까.    

 

 

'자기가 죽인 자의 자식… 용서를 빈다는 게 가능하단 말인가…'

(…)

"자네에게도 해줄 말이 있네. 26년 전 자네가 쐈던 아기를 안고 있던 여자, 기억하나? 잊을 수가 없겠지. 저기 주차타워에 있는 저격수, 그때 자네가 죽인 그 여자의 아이라네. 그 여자 아이가 커서 지금 저곳에 있다네."

'…… 내가 죽인 자의 자식! 그, 그 아이가!'

"그리고 난 내가 죽인 자의 자식에게 용서를 받았다네. 내가 먼저 용서를 빌었기 때문이지. 자네와 나의 길은 26년 전 그날 이후로 나뉘어졌네. 나는 용서를 빌기 위해 노력했고, 자네는 용서받을 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살았어… 자네도 용서를 빌게. 그것이… 옳아. 저기…주차타워에 올라가 있는 저 아이는 평생을… 복수만을 생각하고 살았더군. 자네는 저 아이에게 평생의 고통과 슬픔을 안겨준 사람이야. 용서를 빌게. 자네가 방법을 찾아서."

(…)

"그날로 부터 그래서 내 나이 26살이오. 이전을 잊고 새로 시작하려고 해도 계속 과거는 따라오고 말았소. 당신은 분명히 기억해야 하오. 당신의 욕심이 어떤 아픔과 슬픔을 남겼는지 그때가 당신이 살거나 죽게되는 날일 것이오."

 

강풀의 만화 <26년>은 시각적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가슴이 아팠다. 몇 장 넘기지도 못하고 먹먹해지는 마음으로 인해 읽기가 주저댈 정도였다. 강풀은 이 만화에서 '단죄와 복수, 이해와 용서'에 관해 들려준다. 단순히 역사적 진실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날의 상처를 통해 용서와 이해를 보여주는 거다.

가해자와 피해자. 어쩔 수 없이 상부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던, 그럼에도 가해자가 되어 살아가는 또 다른 피해자와 그날의 상황을 합리화하고 용서를 빌 줄 모르는 가해자들. 그때의 상처를 안고 26년이란 세월을 오로지 복수와 단죄를 위해 살아온 사람들을 통해 역사의 비극과 용서란 무엇인가를 감동적으로 풀어냈다.

이 만화를 아직도 '용서'가 무엇인지 모르는 그분이 꼭 읽어보길 바라는 마음 간절.   



그가 말했지. 그는 그날 걸어가면서 자기가 외운 것들을 내게 들려줬어. 그건 광주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한 이야기였어. 고통과 피와 눈물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 지금도 종로 거리를 걷다보면 그때의 우울과 멜랑콜리가, 그다음에는 열에 들떠 자기가 들은 이야기들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내게 들려주던 그의 목소리가 떠올라. 뜨거운 여름이었지. 나도 뭔가에 홀린 것처럼 그의 이야기를 들었어. 그때 나는 뜨거운 여름 안에 있었지. 그때 나의 영원을 생각하고 있었어. 하늘이나 바다 같은 것, 혹은 시간이나 공간, 우주 같은 것, 어쩌면 사랑 같은 것.


김연수 작가의 <원더보이>는 1984년에서 1987년까지의 이야기지만 그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과거는 1970년대로 넘어가 1980년을 거쳐온다. 그 시기, 박정희군부독재정권에서 벌어진 많은 사건들로부터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고 아직도 잘못을 모르는 사람이 대통령을 하던 그때까지. 

김연수 작가는 이 책 이전에도 그날의 이야기를 조금씩 들려줬다. 왜 그렇게 작품마다 내비치는가 궁금했는데 <원더보이>  낭독회에서 그 의문이 풀렸다.


11살 때, 박대통령이 서거한 후 아버지의 권유로 신문 스크랩을 했단다. 중요한 사건이므로 자료를 모아두면 나중에 쓸 일이 생길거라는. 그 당시 계엄이 확대되고 1월부터는 대학생 시위가 있었는데 그걸 모두 스크랩하고 있었다. 그러다 1980년 봄이 왔다. 그 봄의 신문에 '춘래불사춘'이란 글자가 나왔는데 그 말이 유행했단다. 그것은 3김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다음 대통령 자리를 두고 세력 다툼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런 뉴스가 나오니 스크랩이 재미없어지고 말았다. 그렇게 스크랩에 점점 지쳐갈 무렵, 대학생 시위가 격화되던 어느날 뉴스에서 광주 MBC가 불타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11살 소년의 눈엔 뭔가 수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다음날 신문엔 별다른 기사가 없었다. 그러다가 광주에서 계엄군이 물러난 뒤에야 신문에 소식이 나왔다. 그건 광주가 폭도들의 손에 넘어갔다는 기사였다. 이후 신문에 실린 유언비어에 관한 기사들. 총 들고 있는 시민군 사진 같은 기사들을 스크랩했다. 며칠 지나 평온을 찾은 광주 기사까지.  그 이후엔 다른 소식들이 올라오지 않았다. 스크랩이 재미없어지고 말았다. 그러다가,

김연수 작가가 광주에 관한 이야기를 제대로 알게 된 것은 대학에 들어가서였다. 그건 아마도 모든 지방에 살았던, 특히나 경상도 지역에서 올라온 아이들이 대학에 가서 제일 먼저 받는 충격적인 사실이었을 것이다. 그때 그 사실을 알고 문학을 하게 되면 광주에 대한 이야길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단다. 그래서 자주 작품에 등장하는 것이란다. 매번 쓸 수는 없다는 생각도 들고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잊어가고는 있지만 작가가 된 가장 원초적인 사건이기에 모른 척하며 살지는 않을 것 같단다.



이외에도 그날의 봄에 관한 작품들은 그날을 잊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꾸준히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 관심은 점점 적어진다. 그만큼 세월이 흘렀고 이젠 잊고 살자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올해는 더욱 그런 것 같다. 진보를 운운하는 당에선 자기들만의 세력을 위해 정신이 없고 대선을 앞두고 다들 자기 앞가름하느라 바쁘다. 어차피 그들은 생색내기일 테니 그렇다면 우리라도 오월엔 한번쯤 그때를 기억해주자. 처음 접했던 그때의 충격을 떠올리고, 관련 책을 읽거나 영화라도 보면서. 그래서 오월만은, 죽은 자의 나라에서 우리의 기억으로 많은 '죽은 자'들이 살아 움직일 수 있도록. 오월만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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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라 2012-05-14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

readersu 2012-05-15 10:22   좋아요 0 | URL
아, 오월이 되면서 야심차게(!) 써볼려고 했는데
다른 책은 아직 마무리도 못하고;;;
너무 바빠서 글이고 뭐고 쓸 시간이 없었어요.
오타도 많고(하면서 고치지도 않고;;)
다른 책도 링크할려고 했는데 빼먹고 에공에공
그래도 미흡한 글에 추천해주고 캄사해요!
 

 

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뒤뜰 물앵두 다 익어서 우박처럼 쏟아지는디……."

"죄송해요. 요번 주말도 이래저래 갈 데가 많네요."

"그려. 허긴 여기 내려오는 기름값이면 물앵두 한 가마니는 사먹을 텐디 뭐."

잠시 가슴 한쪽에서 콩깍지 터지는 소리가 나고, 썰물이 싸하니 빠져나간다.

"늬덜 안 내려와도, 늬덜 대신 왼갖 새들이 우리 집 물앵두 먹으러 온다야."

"새라뇨?"

"내가 작년에도 말혔잖여. 우리 동네 새들이 그렇게나 종류가 많은 줄 몰렀다. 종일 동네 할망구들하고 새 똥구멍 쳐다보며, 새소리 듣는 재미가 삼삼혀. 처음에는 거무죽죽한 새들만 오더니, 요즘엔 총천연색 새들이 날아와서 난리다. 아마 돌아가신 어르신들이 새가 되어서 오시는게벼."

"이쁘겠어요?"

"새 키우기 이렇게 쉬운 줄 몰렀다. 새만 오면 좋은데, 쥐새끼도 와야."

"동물원이구만요?"

"내려올 때 닭 사료 한 포대만 떼 와라."

"닭도 쳐요?"

"아녀. 앵두 다 지면 사료 줘야지."

"어머니도 참."

"기똥차게 잘생긴 새 한 마리가 내 눈을 빤히 쳐다보는디. 꼭 돌아가신 니 아버지 같어."

"아이고, 이제 전화 끊을 때가 됐고만요. 곧 내려갈게요."

전화는 어느새 끊겨버렸다. 아버지라는 말에 아마도 목이 메어 수화기를 놓쳤을 것이다.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얼마나 무거우셨을까?

끊임없는 병치레, 하루에도 몇 차례씩 차렸던 술상. 그리고 농사일은 뒷전이었던 나날들. 어머니는 그걸 다 받아 이셨다. 가슴에 고스란히 품고 다독이셨다.

난 그게 불만이었다. 내 나이 열 살 때, 아버지는 나에게 지게질을 가르치셨다. 숫돌에 낫을 벼리는 방법을 가르쳐주셨다. 어찌 어린 고사리 손에 낫을 쥐어주고 술만 드실 수 있을까?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버지의 가슴은 숯가마였을 것이다. 이른 나이에 아버지와 동생 셋을 잃고, 두 어머니를 섬겨야 했을 종손의 어깨. 아버지는 지게를 지지 않아도 멍 가실 날이 없었으리라.

그렇다. 술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은 이미 행복한 것이다. 어머니는 이미 당신의 간간한 치마폭에 아버지의 아픔을 다 담고 다독인 것이다.

언젠가, 통화 중에 낮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아버지가 왜 텃밭 구석구석에다 과실수을 심어놨겄냐?"

"왜요?"

"빚이 많아서 그런 거여."

"빚이라뇨?"

"마음의 빚 말이여."

"예?"

"니가 내 말뜻을 알겄냐? 농촌에서 일 안하고 사는데 하루하루 빚 안질 수 있겄냐?"

"……."

"햇빛한테 빚지고, 냇물한테 빚지고, 풀한테 빚지고, 동네 사람 바쁜 손에게 빚지고……. 심지어 동네 꼬맹이들한테도 빚지고."

"네."

"당신이 떠나도 계속 열매 맺을 거 아니냐. 그걸 누가 먹겄냐? 어미 혼자 먹으면 얼마나 먹겄냐? 다 나눠 먹으란 거지. 내려올래? 늬덜 자주 고향에 다녀가란 뜻도 있는 겨."

어머니의 치맛자락은 간간하다. 도량을 파며 뻘을 빠져나가는 썰물처럼 어머니의 치마는 주름져 있다.

저 치마가 간혹, 해일처럼 뒤집혀 어머니의 얼굴을 덮치고 어머니의 눈물을 받아먹을 때가 있다.

앵두나무가, 바닥에 떨어진 무른 앵두를 굽어보듯 마음 붉어진다.

 

☆★☆★☆★☆★☆★

 

어쩜 이 어머님은 이토록 사랑스러운지 몰라. 저렇게 슬쩍 돌려 고향다녀가란 말을 하시다뉘.

책 읽으며 내내 떠오르는 고향의 엄마, 아부지. '가슴 한쪽 콩깍지 터지'고 '썰물이 싸하니 빠져나'가기 전에 고향 다녀와야겠다는 생각만. 행동으로 옮겨!!!

 

이정록 시인의 산문집은 구수하다. 짠하다. 웃음이 비실비실 나온다.

웃다가 울다가 똥구멍에 솔날 것 같다.

시로도 만들어진 어머니와 블루스 치는 장면의 대사는 압권!

소시장에 끌려나갔다가 혼자 돌아온 소 이야기도 뭉클.

구수한 이야기 속에 들어있는 시적 감수성은 최고!

 

그래서 시 한 편!

 

 

엄니의 남자

               _이정록

엄니와 밤늦게 뽕짝을 듣는다.
얼마나 감돌았는지 끊일 듯 에일 듯 신파연명조다.
마른 젖 보채듯 엄니 일으켜 블루스라는 걸 춘다.
허리께에 닿는 삼베 뭉치 머리칼, 선산에 짜다 만 수의라도 있는가.
엄니의 궁등이와 산도가 선산 쪽으로 쏠린다.
이태 전만 해도 젖가슴이 착 붙어서
이게 모자(母子)다 싶었는데 가오리연만한 허공이 생긴다.
어색할 땐 호통이 제일이라, 아버지한테 배운 대로 헛기침 놓는다.
"엄니, 저한티 남자를 느껴유? 워째 자꾸 엉치를 뺀대유?"
"미친놈, 남정네는 무슨? 허리가 꼬부라져서 그런 겨"
자개농 쪽으로 팔베개 당겼다 놓았다 썰물 키질소리
"가상키는 허다만, 큰애 니가 암만 힘써도 아버지 자리는 어림도 읎어야"
신파연명조로 온통 풀벌레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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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12-05-05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투리가 귀에 익다 싶었는데, 역시요. 너무~ 반갑네요~ 님의 서재에서도 이정록 시인의 산문집과 시집을 만나니 ㅎㅎ .. 댓글은 처음이지만서두~ 님 반가워요!

readersu 2012-05-05 15:18   좋아요 0 | URL
저두 반갑습니다^^
이정록 시인이 여고때 선생님이셨나봐요.
님의 서재에 들어가보니 그런 듯^^
18일에 작가와 만남 있던데... 가보셔요.
저도 시간 나면 가볼까, 합니다.
한번 뵌 적이 있는데 꽤 유쾌하신 선생님 같았어요^^

icaru 2012-05-05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진짜요? 너무 소중한 정보네요~ 갈 수 있으면 꼭 가 뵙고 싶어요!!

readersu 2012-05-05 16:28   좋아요 0 | URL
앗, 모르셨군요!!
http://blog.aladin.co.kr/culture/category/30096086?communitytype=MyPaper
알라딘에 행사 공지 떴어요! 신청해보세요^^
전 친구가 해서 안 하고 있는 중(떨어질지도 모르는데 ㅋㅋ)
 

이상하다. 아무래도 올해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죄다 책을 내기로 작정을 했나보다. 신간은 절대 안 살거야! 새해 벽두에 다짐을 했는데 좋아하는 작가들이 마치 짜기라도 하듯 연이어 신간을 출간한다. 그 사이사이 궁금해보이는 책들은 왜!! 자꾸만 출간되고 있는지. 봄도 오고 새 옷도 사고 싶고 예쁜 구두도 장만하고 싶은데 그 모든 지출이 책에게 집중되어 내게 멋부릴 시간을 주지 않는다. 책 읽는다고 새 옷이 나오는 것도, 맛있는 게 생기는 것도 아닌데(아, 신간 이벤트 당첨되면 작가와 여행가는 행복한 일은 생기기도 하더라^0^) 아무튼 이번 주 들어서면서부터도 신간 '뽐뿌'가 장난아니게 들어와서 눈 돌아간다. 사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되면 안 사면 그만인데 일단 보관함으로 넣어두고 왜 고민하는지 나도 모르겠다(혹시 아는 사람?). 아무래도 지를 것만 같은 '무서운' 책들!

 

 

알랭 드 보통이 정이현과 동시에 글을 쓴다는 소식을 듣고서부터 궁금하긴 했더랬다. 알랭 드 보통은 나로 하여금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궁금하게 만들어 필사를 하게 만드는 작가. 그가 '결혼'에 관한 글을 썼다고 하니 오홋, 아이는커녕 결혼 근처에도 가보지 않은 나는 정이현의 '연애'보다 알랭 드 보통의 '결혼'이 더 궁금해지고 말았다나. 그는 얼마나 냉철하고 분석적으로 결혼 이야길 풀어놓았을까? 혹시 그걸 읽고 결혼이 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독신을 고집하는 나의 불안한 마음이 걱정되긴 하지만 그럼에도 놓칠 수 없는 알랭 드 보통! 책소개에 보니 이런 글이 실려 있다.   

 

"객관적으로 봐도 사소하고, 남들이 보기엔 터무니없는 종류의 싸움 때문에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게 된다면, 이는 모두 야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일은 상대가 내 눈에 어떤 사람으로 비쳐야 하고, 그와 함께하는 삶이 어떻게 펼쳐져야 마땅하다는 이상(理想)을 바탕으로, 서로의 행복을 염원하는 것이다. 이는 가장 높은 수준의 질문, 즉 아이들 교육은 어떻게 시키고 어떤 집을 장만할 것인가에서부터 가장 낮은 수준의 질문, 소파는 어디에 놓고 화요일 저녁엔 뭘 하며 보낼까에 이르기까지, 광대무변한 행위들의 범주를 두루 아울러 최고의 완벽을 구현하려는 시도다."

 

역시 알랭 드 보통의 철학적인 문장, 맘에 쏙 든다. 제목도 그렇다. '사랑'이라는 단어와 '기초'라는 단어가 섞이는 것은 뭔가 어색한 느낌이 들지만 알랭 드 보통을 떠올리면 '여행'과 '기술'이 어울리듯 자연스러워진다. 알랭 드 보통의 17년만의 자전적 결혼 소설이란다. 《사랑의 기초》 알랭 드 보통, 작가의 말이 맘에 와 닿는다.

 

“이 소설은 ‘오래된 관계’에 관한 이야기다. 최초의 행복감이 자취를 감춘 뒤에, 내가 그토록 매혹되었던 낭만적 사랑의 시기가 지나고 나면, 사랑에는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까. 낡은 사랑의 초상이 독자들에겐 암울하게 비쳐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작가인 나는 이것이 진지하고 성숙한, 조심스럽지만 보다 희망적인 답이 되길 바랄 뿐이다.”

 

 

 

김수영이다. 아니, 강신주다. 난 강신주의 책을 제대로 읽은 게 없다. 책을 다 사서 꽂아두고선 뜬금없이 한 챕터 읽고 다시 꽂아두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가 책을 내면 살까말까, 망설이기 몇 번하다가 사서는 그냥 꽂아둔다. 한데 강연 때마다 그가 말하는 김수영에 관한 책이라니! 이건 뭐 바로 장바구니로 들어갈!(-.-) 책소개엔 이런 글이 실려 있다.

 

김수영을 위하여》는 강신주가 본격적으로 자기 지향점을 드러내는 책이다. 즉 철학자로서 인문정신이라는 날카로운 잣대를 들이대며 ‘자기 이야기’를 써 내려간 책이다. 이 책은 시인 김수영을 이야기하지만 결코 문학비평서가 아니다. 민족주의 시인으로 오해 받았지만 실은 강력한 인문정신의 소유자였던 김수영을 통해 한국 인문학의 뿌리를 찾는 철학서이다. 다시 말해, 1960년대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한 이 땅의 자유와 인문정신에 대한 강신주의 철학적이고 문학적이며 인문적인 고백록이다.


 

강신주 덕분에(!) 구입한 김수영 시와 산문도 아직 제대로 못 읽었는데ㅡ

 

 

 

시인의 산문집이 또! 나왔다. 이번엔 이정록 시인이다. 어익후야! 시인으로 등단하고 20년만에 처음으로 낸 산문집이라니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일상이 시로 바뀌는' 아주 기막힌 시상을 지닌 그의 시들. 그런 평범한 시 속에서 슬쩍 내비치는 감수성 강한 시구들. 이정록 시인의 시를 읽어본 독자들이라면 모두 알 것이다. 한데 그의 시, 일정 부분은 어머니가 툭툭 내뱉는 말들이 시로 바뀐다는 사실. 익히 들어 알고 있었으나 이 책으로 인해 좀더 자세히 알게 될 듯.

 

할머니가 빗물이 고인 고무신을 토방에 닦아 세우며 마루에 오르신다.
“왜 우리 집 복숭아가 제일 쪼끔이래유?”
나는 볼멘소리로 할머니를 흘겨본다.
“다른 아주머니들은 그저 많이만 달라고 보채니께 그렇지.”
“할머니도 많이 달라고 하면 되잖아유?”
할머니가 거친 손으로 나와 동생들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내 얼굴은 할머니 때문에 군살이 박힐지도 모른다.
“아니, 세상에서 젤로 이쁜 우리 손주들이 먹을 것인디, 내가 어찌 많이만 달라고 헌다냐?”
“난 많이 먹고 싶단 말이여.”
“훌륭한 인물이 될라믄 이쁘고 잘생긴 걸루만 먹어야 혀.”
“그럼 여기 썩고 병든 것은 왜 가져왔댜?”
“그건 할미 거여. 할미는 이도 션찮고 잇몸도 부실혀서 딱딱한 복숭아는 못 먹어. 공짜로 얻은 거여.”
“그거 빼니께 몇 개 되지도 않네 뭐.”
“그랴도 세월 과수원에서는 최고 특상품으로 가져온 겨.”

 

시 속에 보이는 충청도 사투리가 정겹고 웃기고 재미있는데 산문집은 더 그럴 듯해서 기대 잔뜩이다. 《시인의 서랍》속에 숨겨진 '코 끝 찡하다가도 슬며시 웃음 터지게 하는 감성'적인 이야기들, 그가 만들어낸 시 속에 사람 이야기. 아 궁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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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04-26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정록 시인의 시 좋던데 산문집이 나왔군요.
낼름 담아갑니다.^^
그리고 보통과 정이현이 같이 썼다는 저 책도 유혹이네요. 이것도.^^

readersu 2012-04-27 10:29   좋아요 0 | URL
이정록 시인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구요.
저도 그런 독자 중에 한 사람이고. 그래서 산문집에 대한 기대도 많답니다^^;
세 작가 모두 제가 좋아하는 분들일 뿐이지만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해요^^

blanca 2012-04-27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랭 드 보통과 정이현 ㅋㅋㅋ 꺄아, 정말 기대됩니다. 예고편도 유튜브로 보고 더 기대되네요. 미처 몰랐던 신간 소식 감사합니다.^^

readersu 2012-04-27 10:30   좋아요 0 | URL
책이 곧 나올 거라는 소식 듣고 기다렸다가 올라오자마자 찜부터 해버리고 말았답니다. 어떤 감상을 안겨줄지 마구 기대가 되더라구요^^

해라 2012-04-27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꾸욱 ㅎ
어찌 안사고 버티겠어요 ㅜ ㅜ 저도 그냥 말없이 담습니다! ㅎ

readersu 2012-04-27 10:31   좋아요 0 | URL
감사감사.
절 지르게 한 지름신이 해라님에게도 옮아갔군요!
좋은 소식!! 우리 모두 책을 많이 사서 읽어야해욤^^
(흑, 근데 요즘 책값들이 장난아니게 비싼 ㅠㅠ)
 

작년에 문학상을 받은 두 권의 책을 연이어 읽었다. 2011년 퓰리처상을 받은 제니퍼 이건의 깡패단의 방문2011년 맨부커상을 받은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이다. 깡패단의 방문을 먼저 읽었는데 분량이 만만찮았다. 또 공간과 시간이 비규칙적이어서 가끔 앞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며 읽느라 시간이 걸렸다. 그에 비해 2011년 맨부커상을 받은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문학상치고는 꽤나 얇은데다 초반 몰입도가 높아 잡자마자 읽었다. 읽으면서 생각하길 제니퍼 이건의 깡패단의 방문과 같이 책 대 책으로 엮어보면 좋겠다, 했더랬다. 두 권의 책, 비슷하면서 다르다. 한데 역시 문학상을 받을만한 좋은 책이라는 것에는 공감한다. 제니퍼 이건의 서사적인 이야기도, 줄리언 반스, 역량 있는 그의 글도 너무나 훌륭했다. 이런 책을 동시에 읽을 수 있었던 독자로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책을 읽으면서 두 권의 책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포괄적으로 보자면 시간, , 기억. 두 권의 책이 가진 공통점이다. 제니퍼 이건의 책은 제목에서부터 '시간'을 말한다. 깡패=시간, 어떻게 이런 공식이? 일단 읽어보라고 말하겠다. 또 두 권의 책에는 개개인의 ''이 들어 있다. 한 사람의 인생이라 할 수는 없지만 그에 준하는 삶이다. 그리고 당연히 그 삶을 지배하는 '기억'들이다. 좋거나 나쁜 추억, 그리고 잊었거나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이 하나둘 씩 터져 나온다. 과거, 그들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문득 나의 삶도 되돌아보게 만든다. 두 권의 책을 감히 비교하지는 못한다. 그저 내 식대로 일부분들만 주절거린다. 삶에 관해. 내 것이기도 하지만 당신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제니퍼 이건의 깡패단의 방문은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각 장마다 화자가 다르고 시점도 다르다. 또한 공간과 시간이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처음엔 뭐지? 헷갈린다. 하지만 매 장이 독립된 이야기처럼 읽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탄탄하다. 모두 열세 장으로 된 이야기의 중심은 레이블 대표 베니와 그의 비서 사샤의 인간관계로 엮인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과거와 현재, 미래이다. 그 속에서 드러나는 삶의 부조리나 깨달음은 독자로 하여금 나는 잘 살아온 것일까, 혹은 잘 살아가고 있는 걸까와 같은 회환과 희망을 가지게 한다.

 

어느 정도 세월을 보낸 분들은 알 것이다. 시간이라는 것이 청춘에겐 얼마나 더디고, 나이가 들면서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청춘일 때는 이 시간만 지나면 뭐든지 근사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지만 그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는 삶이 존재하리라곤 그땐 생각을 못한다. 또한 언제나 그 청춘일 것만 같은 삶이 지나고 보니 그렇지 않은, 그저 그때보다 조금 나은 여유만 생겨날 뿐이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느끼게 되는 씁쓸한 느낌은 깡패단의 방문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면서 마치 나의 삶을 되돌아보는 듯한 공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럼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 나오는 토니의 삶은 어떤가? 잘 살아온 것일까? 토니는 그렇다고 처음엔 여긴다. 비록 이혼을 한 상태지만 딸과의 교류도 있고 헤어진 아내와도 친구로서 지속적으로 만남을 유지한다. 그동안 벌어놓은 돈도 있어 여유롭진 않지만 노후를 편안히 보내기엔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과거를 돌아볼 사건(!)이 터진다. 지나가버린 시간, 이젠 까마득하여 기억조차 나지 않는 그때의 일들이 뜬금없이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토니에겐 과거를 기억해야만 하는 일이 주어졌다.

 

잘 살아왔다고 반추하는 토니가 알게 되는 사실들은 우리가 그동안 기억이라는 것이 얼마나 자기 위주로 왜곡되어 왔는가를 보여준다. 자신의 기억이 왜곡된 기억이라는 사실을 처음 깨달으면서도 그는 계속 의문과 질문을 던지며 변명 같은 말로 삶의 본연을 예감하지 못하지만 과거 자신이 던진 말을 사실과 다르게 기억하고 그 말로 인해 두 사람의 미래가 무시무시한 결말로 치닫게 되어버린 일을 알게 된 후 그가 가지는 삶의 무게는 과연 평범할 수 있었을까?

 

삶의 끄트머리에서 인간은 누구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살아오는 동안 잘못한 일은 무엇인가? 적어도 그걸 생각할 정도의 시간은 모두 가지길 바랄 것이다.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 비슷한 삶을 살게 될지언정. 파노라마처럼 내 인생이 머릿속에 지나갈 때 무얼 깨닫게 될까.

 

인생에 대해 내가 알았던 것은 무엇인가. 신중하기 그지없는 삶을 살았던 내가. 이긴 적도, 패배한 적도 없다. 다만 인생이 흘러가는 대로 살지 않았던가. 흔한 야심을 품었지만, 야심의 실패를 깨닫지도 못한 채 그것을 위해 섣불리 정착해버리지 않았던가. 상처받는 게 두려웠으면서도 생존력이라는 말로 둘러대지 않았던가. 고지서 납부을 하고, 가능한 한 모든 사람들과 무난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았을 뿐, 환희와 절망이라는 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소설에서나 구경한 게 전부인 인간으로 살아오지 않았던가. 자책을 해도 마음속 깊이 아파한 적은 한 번도 없지 않았던가. 이 모든 일이 따져봐야 할 일이었고, 그러는 동안 나는 흔치 않은 회한에 시달렸다. 그것은 상처받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큰소리쳤던 인간이 비로소 느끼게 된 고통, 그리고 바로 그랬기 때문에 느끼게 된 고통이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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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2-04-21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맛, 저도 연달아서 두 권의 책을 읽고 있는데! :)
글 잘 읽고 갑니다 ㅎㅎ

readersu 2012-04-23 12:06   좋아요 0 | URL
앗~ 반가워라^^
수다쟁이님의 책수다 기대합니다^^
두 작가 모두 너무 멋져요. 이런 좋은 글들을 쓰다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