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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readersu > 김연수, 김중혁 작가의 만담 혹은 대담

김연수, 김중혁 작가의 만담 혹은 대담

 몇 년 전에 둘의 만남이 있었다. 한겨레 최재봉 기자의 사회로 두 작가와 대화의 시간을 나누었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두 작가의 우정이 그야말로 부러웠던. 이왕이면 김천의 트로이카 문태준 시인과 같이 셋이 만났다면 정말 멋진 구성이였겠다 싶었지만 그런 만남은 앞으로 꼭 한 번은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걸로 끝났고, 이 둘마저도 앞으로 그런 자리를 마련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어쩌다 영화 칼럼을 쓰게 되고 이렇게 또 한번의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다. <대책 없이 해피엔딩> 사실, 이 책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 둘의 만남 이벤트를 눈 빠지게 기다렸을 것이다. 둘이 만나 영화칼럼처럼 대화를 나누는 걸 직접 본다면 정말 재미있을 것이라 생각했을 테니. 한데 꿈처럼 이루어진 것이다. 기대 만발이 아닐 수 없었는데... 

처음부터 주거니 받거니 하는 둘의 대화를 들으며 독자들은 킥킥거리고 하하 웃으며 너무나 즐거웠는데 중혁 작가가 포스터에 나온 광고의 멘트 '폭풍 같은 입담 대책 없는 재미 어쨌거나 해피엔딩'은 기대하지 말라고 하자, '폭풍 같은 입담'은 중혁 작가가 맡을 것이고 '어쨌거나 해피엔딩'은 자신이 맡을 예정이라며 연수 작가가 말했다. 책에서처럼 은근 슬쩍 상대를 약올리면, 인정해주는 척하며 되돌려주며 진짜 핑퐁을 하듯 주고 받는 대화로 인해 처음부터 너무나 유쾌했다는. 

다음 주에 드디어, 마침내! 기다리던 장편 <좀비들>이 나온다는 말로 인사를 하던 중혁 작가는 시간 내내 <좀비들>이야길 서너 번 했는데 어찌나 재치있게 자신의 책광고를 하던지 <좀비들>, 오래 전 부터 궁금했지만 담주에 나오면 바로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할 만큼 궁금증을  유발시켰다는. 또 표지의 비율이 맘에 안 든다던 연수 작가와 표지를 그린 이강훈 일러스트를 좋아한다던 중혁 작가와의 티격거림은 너무 귀여웠다나?ㅎㅎ 사실, 둘의 정다운 대화보다 서로를 살짝, 까는 '농담'들이 많을수록 그 재미는 더했는데 재주 좋게도 둘 다 수위 조절을 너무 잘하더라는. 암튼 기억에 남는 대화는 이런 것들.  

책과 관련한 칼럼을 모 잡지에 연재 중인 중혁 작가, 칼럼에 올려 놓은 책들은 읽은 것이 아니라 구입한 책목록이라며 자신은 난독증이 있어 책을 오래 못본다고 책을 읽지 않는 것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했고(그래도 소설가인데 책을 안 읽겠냐마는^^), 단편을 쓰든 장편을 쓰든 글을 쓰고선 다시 한번 고쳐 쓴다는 연수 작가의 그 진지함이라닛!, 하루키를 좋아하는 연수 작가는 그의 작품보다는 하루키라는 인물에 빠져들었다 했는데 그 이유가 하루키의 벗은 등짝의 근육때문이라나 어쩌나 ^^, 이에  중혁 작가가 한국의 하루키는 연수 작가인 것 같고, 자신은 하관이 긴 게 폴 오스터를 닮아, 한국의 폴 오스터는 자신이 아닐까 싶다며 우스갯소리를 해서 우릴 웃겼다. 또 기억할 만한 것들만 기억한다던 중혁 작가와 과거의 세세한 일까지 기억을 한다는 연수 작가는 둘이 고등학교를 가면서 6개월 동안 만나지 않은 사연을 이야기하며 서로의 기억이 다르니 누가 옳은 건지 모르겠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작가니까 문학적인 이야길 해야 하는데 문학 담당은 연수 작가가 할 거라고 말해 놓고, 연수 작가의 말이 길어지면 '역시 문학적인 이야길 하니 지루하다며' 독자를 웃겨주었고, 소설가이면서 이토록 책을 안 읽는 작가는 처음 봤다고 궁금한 책이 있으면 자신에게 줄거리를 물어본다며 소설가라는 직업을 가진 '선배'로서 '후배'에게 가르쳐야 할 게 많다고 연수 작가가 받아쳤다. 

그들은 서로, 만날 사람 다 만나고 정말, 만날 사람이 없을 때나 만나, 커피 혹은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데 절대로 책 이야기를 하진 않는다고 했다. 또한 서로의 사생활에 대해선 관심이 없고, 서로의 책에 대해서도 알 바 없다면서도 28년 동안 친구로 지내다 보니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가까워지게 된 것 같다며 애증어린 우정을 과시했다. 김연수 작가가 좋아하는 것은 떡볶이와 치킨, 면종류이며 중혁 작가가 좋아하는 것은 에스프레소. 쿠엔틴 티란티노의 기발한 상상력은 중혁 작가 스스로 자기와 비슷한 것 같다고 하고 연수 작가는 홍상수 감독과 참 잘 맞는 것 같다고. 

 한 시간 가량 두 작가의 대담 혹은 만담이 끝났는데 이어진 질문의 시간, 질문하세요! 말하기가 무섭게 손을 드는 독자들!! 한 독자가 중혁 작가에게 책 두 권 내고 어떻게 먹고 살았는지 물었고, 연수 작가에겐 빵집을 할 생각은 없느냐는 질문을 했다. 중혁 작가는 이것저것 조급하게 굴지 않고 일을 즐기면 살았다고 대답했던 것 같고(사실 잘 기억이 안나는데 비슷?!) 연수 작가는 빵집이든 카페든 장사가 하고 싶다는 얘길 꺼냈다. 물론 머릿속으로만 생각 중이라고.   

약속이 있어 사인을 받지 못했다. 위안이 되었던 것은 중혁 작가는 담주에 책이 나오니 만날  기회가 있을 테고, 연수 작가도 가을엔 새 책을 낸다고 하니 그때 만나면 될 터. 아쉬웠지만... 아, 그러고 보니 질문 중에 연수 작가에게 쉬운 소설을 쓸 생각이 없냐고 하니 나이가 드니 변하는 게 있다며 진지한 것보다는 이렇게 웃고 떠드는 일이 재미있어져서 글도 그렇게 변할 것 같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그럼, 쉽고 잘 읽히는 소설을 쓸 수 있다는 이야기?! 이에 중혁 작가는 그러지 말라고 그건 내 아이템이라며 랄랄라 한 것 같기도 하고^^;; 정말 멋지고 즐거운 시간. 그리고 꼭 한번 중혁 작가, 연수 작가, 문태준 시인과 셋이 만나는 이벤트가 꼭 한번 있으면 좋겠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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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readersu > 나도 알고 당신도 알고 우리 모두가 '아는' 작가, 천명관 낭독회

오래 전에 집에 놀러 오던 ‘아는’ 동생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천명관 작가를 만났다며 이곳에 사는가보다고 했다. 그래? 하는 놀라움보다는 마침 그의 첫 작품 『고래』를 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여서 아, 그 소설, 정말 재미있었는데! 딴소리를 했다지. 사실, 그땐 작가들에게 관심이 없었기에 천명관 작가가 아니라 김훈 선생이 옆집에 사신다 했어도 시큰둥했을 것이다(정말?) 아무튼 재미있다는 친구들의 강력 추천에 의해 『고래』를 읽고 그 느낌이 너무나 새롭고 놀라워서 오래오래 기억에 남았는데, 정말 오래(!) 기다린 셈이다. 그의 장편을!

알라딘에서 있었던 천명관 작가의 낭독회였다. 지난 번 <상수이리카페>를 한번 다녀간 덕분에 길을 헤매지 않고 잘 도착했다. 저녁을 먹지 않아 빵과 우유를 먹으며 허기를 달래고 있으니 작가가 도착했다. 아주 잘생기신 외모와 멋진 목소리(^0^), 그보다 초큼 덜 잘생긴 장 모 과장의 사회로 낭독회가 진행되었다.

신간인 『고령화 가족』은 작가로서 한번쯤은 짚고 넘어가고 싶었던 가족 이야기였단다. 이전에 발표한 소설집 『유쾌한 하녀 마리사』를 읽은 독자들이 『고래』와 비교하며 천명관이 왜 이러나, 그랬을 수도 있었을 테지만 작가로서는 다양한 실험을 시도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론 성과가 별로 없었고 『고래』를 읽은 독자들이 실망했던 것 같다고 했다. 『유쾌한 하녀 마리사』의 경우는 연극으로도 만들었단다. 연극의 제목은 <참치>였는데, 연극 역시 별반응은 없었단다(갑자기 왜 제목이 <참치>였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이야길 했는데 못 들은 것일까??).

아직 『유쾌한 하녀 마리사』를 읽어보지 못해 그 책이 실망스러웠는지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지만 낭독회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유쾌한 하녀 마리사』를 읽었다는 친구는 ‘어, 재미있어, 괜찮아!’ 라며 읽어보길 권했다. 또 우리만 알고 있는 어떤 공통점 때문에 나도 집에 가면 그 책을 꼭 읽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집에 분명 있을 거라(이상하다 분명 있었는데 말이다) 생각하고선 도착하자마자 책을 찾았는데 어라, 책이 없네! 이건 웬 착각이었을까? 괜한 허탈함이라니…암튼 다시 낭독회로 돌아가서,  

제목을 왜 ‘고령화 가족’이라고 지었는지 물으니 나이 많은 자식이 ‘엄마‘와 살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시도를 해봤단다. 책을 읽은 분들이 작가와 비슷하다고 말들을 하는데 그가 생각하기엔 보통 대부분의 작가들이 어느 작품에서든 본인의 고백들이 조금씩 들어가지만 그는 그럴 만한 글이 없었기에 『고령화 가족』의 오인모라는 캐릭터를 보며 영화제작자라는 점에서 천명관 작가를 투영했던 게 아닌가 싶다고 한다. (참고로 천명관 작가는 여러 영화사에서 총무과장으로 일하다가 시나리오를 썼고, 한번쯤은 들어봤을 영화 <북경반점>이나 <총잡이>가 그의 시나리오였고 그외 시나리오가 많 으나 영화화 되진 못했다고 한다.)

이어 천명관 작가의 낭독이 있었다. 작가들은 왜 하나같이 이토록 멋진 목소리를 가졌는지…가만히 듣고 있으면 귀에 착착 감긴다. 처음으로 읽은 부분은 93~94쪽으로 헤밍웨이를 언급하며 오인모에게도 헤밍웨이의 젊은 날과 같은 시절이 있었을 것이라는 이야길 하며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음을 한탄(!)하는 장면이었다.

“내게도 아마 헤밍웨이의 젊은 날과 같은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세상은 신비하고 달콤한 희망으로 빛나며 옆에 누워 있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래서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었던 시절…… 하지만 그 상대가 누구였는지, 당신의 감정이 어땠는지는 이제 잘 기억나지 않는다. 중요한 건 그 모든 것이 사라졌다는 것이며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거였다.” 

『고령화 가족』에 ‘오인모‘가 쓰레기통에서 헤밍웨이 전집을 주워 오는 부분이 있는데 천명관 작가는 사실적이고 화려한 문체를 가진 헤밍웨이를 좋아한단다. 작가의 일거수일투족이 신문에 나올 정도로 유명한 작가이지만 실제는 나약하기 그지없는 작가이기에 두루 감회가 남다른 작가다. 그래서 천명관 작가의 작품에도 등장을 한 셈이다. 천명관 작가는 미국 문학을 좋아한단다. 헛소리가 별로 없고 사실적이며 하드보일드 한 부분들이 그와 맞는 코드라고 생각하기에 그렇단다. 하드보일드라고 말을 하니 하루키가 생각나고 문득 레이먼드 챈들러가 생각난다. 정말 하드보일드 한 사람들이지. 그렇게 두고 보니 천명관 작가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어 사티의 음악에 맞춰(내 아침 알람 음악이기도 한) 46쪽을 낭독했다. 어느 주택에서나 한 부류 정도는 있을 할머니 그룹, 동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꿰고 앉아 그 어떤 소설가보다도 소설을 잘 쓰시는 할머니들. 어쩌면 이 책에서 제일 코믹한 장면을 연출해준 분들이 아닌가 싶다.

처음 책을 냈을 때 천명관 작가는 본인의 책을 ‘누가‘ 읽을지 궁금했단다. 왜냐하면 작가 주변의 친구들은 전혀 책을 읽을 만한 친구들이 아니었기에 그랬단다. 한데 나중에 들어보니 친구들의 아내들이 책을 읽어 보고 재미있었다며 얘길 해주었다고 한다. 의외였는데 오늘 낭독회에 참석한 독자들을 보니 남자들보다는 여성이 많아 이 또한 생소하기도 하다며 웃었다.

이어 읽은 부분은 277쪽이다. 에로물을 제작하는 박사장의 이야기다. 오인모가 만든 에로 영화가 마음에 들었는지 한 편 더 계약하자며 박사장이 들려주는 시나리오였다.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이고 좋아하는(!) 부분이라(내가 잘못 들었나??ㅎㅎ) 읽었다고 했다. 박사장의 이야기 다음에는 영화의 에필로그처럼 「그리고 남은 이야기들」이라는 제목으로 인물들의 그 이후 삶을 넣었는데 작가는 이 책의 마지막을 감상적으로 처리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으며 위의 박 사장 이야기는 유머로 넣은 거라 했다.


작품 집필 중에 고충은 없었냐는 질문에 『고래』를 쓸 때는 상상이 많이 들어간 내용이란 쓰기가 쉬웠지만 『고령화 가족』은 너무나 현실적이라 글쓰기가 힘들었다고 했다. 그는 다큐가 아닌 픽션으로 커트 보네거트처럼 작가가 소설 속에 적극적으로 개입을 하는 메타픽션을 좋아한단다. 해서 이번 작품을 쓸 때도 인물들의 창조자로서 너그러운 군주가 되자고 생각을 했더란다.

글을 쓸 때는 제목과 첫문장, 그리고 표지가 떠오르면 글을 쓰기 시작한단다. 표지를 떠올리는 것은 표지가 영화포스터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표지와 첫문장이 떠오르면 문체가 결정되고 인물들이 떠오른단다. 물론 강렬한 것들은 머릿속에 두고 있지만 『고래』를 쓸 때는 결말을 본인도 잘 몰랐었다고 한다. 작품을 떠올릴 때 영화포스터를 생각하듯 표지를 먼저 떠올리지만, 또 영화제작을 한 사람이기도 하지만 천명관 작가는 의외로 영화를 잘 보지 않는단다. 많아야 일 년에 한두 편이란다. 예전에 많이 봐서 그런지 재미가 없다고 했다. 

작가는 소위 말하는 386세대이다. 그가 한국문학을 접한 시기에는 이청준 선생이나 이문열 선생이 활동하던 시기였다. 그래서 당연히 그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을 거라 생각한단다. 하지만 존 업다이크의 『달려라, 토끼Rabbit, Run』를 스무 살에 읽고 낯선 나라, 낯선 곳 낯선 인간들이었는데도 꼭 자신이 경험한 일처럼, 본인이 살았던 곳처럼 느껴져 존 업다이크에게 빠져들었단다. 읽어보면 어느 소도시 커플들의 ‘찌질한‘ 이야기들이고 사건은 없이 그저 평범하게 흐르는 일상들인데도 빠져들었는데 그때 작가란 모름지기 이런 평범한 일상을 아무렇지도 않게 다루면서 독자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단다. 그래서 스토리는 세계 어느 누가 읽어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쓸 생각을 했고 문체와 문장은 한국문학에서 배운 것이라 했다. 앞으로 한국문학도 번역이 많이 되어 세계로 뻗어나가야 하는데 그럴 경우라면 특히 모든 나라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다뤄야 한다고 생각한단다.

작가를 만나고 나면 늘 생각하는 거지만 다들 어쩜 그렇게 말들을 잘하는지-.-;; 물론 당연한 일이겠지만 오늘도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사인을 한다기에 그때까지만 해도 집에 있을 거라고 당연히 생각했던 『유쾌한 하녀 마리사』를 들고 오지 않은 것을 안타까워하며 『고령화 가족』에만 사인을 받았는데 예전에 같은 건물에 산 적이 있었다는 뜬금없는 생각에 혼자 즐거웠다나. 

 아무튼  『고령화 가족』을 읽으면서 가장 감동 받은 것은 엄마였다. 작가도 책의 마지막 부분에 적었듯이 ‘나도 알고 당신도 알고 우리 모두가 아는‘ 그것! 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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