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스티는 다 알아 그림책은 내 친구 20
애널레나 매커피 지음, 앤서니 브라운 그림 / 논장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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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의 삶이 행복하다고 느껴지지 않거나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느낄 때, 혹은 삶의 한 켠에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져 있으면 그런 상황에 놓인 현실을 벗어나 지금과는 다른 삶을 그려 보게 된다. 상상 속에서의 내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근사하고, 모두가 행복하며, 멋진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 공상을 즐기고 있는 순간에는 세상의 모든 즐거움과 행복이 내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는 듯 마음이 한없이 부풀어 오른다. 애드벌룬만큼이나 커다랗게 부푼 마음이 두둥실 떠올라 구름 위에 내려 앉아 그 정점에서 내내 머무르고 싶지만 아쉽게도 현실은 그런 순간을 길게 허용하지 않는다.  

 <특별한 손님>에 이어 애널레나 매커피(안나레나 맥아피) 와 앤서니 브라운이 함께 만든 그림책. (소개글을 보니 애널레나 매커피가 이언 매큐언의 아내라고!) 큼지막한 왕관을 쓴 커스티는 레이스가 드리워진 근사한 공주 침대에 누워서 무엇을 하며 하루를 신나게 보낼지 궁리를 하며 즐거워한다. 하지만 아침 먹고 학교에 가라는, 자명종 소리보다 시끄러운 엄마의 목소리가 커스티를 현실로 끌어낸다. 



 지저분한 얼룩이 있는 식탁보 위에는 그다지 먹을 마음이 들지 않는 맛없는 음식이 차려져 있다.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현실의 커스티를 괴롭히는 존재, 머리 양 쪽을 리본으로 묶어 뿔처럼 삐죽 솟은 노라의 머리 모양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스탠드, 책, 컵, TV, 벽에 걸린 그림, 식탁보의 얼룩, 건물이 그려진 파인애플 그림과 그 옆의 검은 그림자들 속에서... 현실의 삶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노라가 얼마나 큰 존재감으로 커스티를 짓누르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 내 눈에는 선생님의 머리 뒤에 있는 칠판에 그려진 두 개의 가느다란 선마저도 노라의 머리 모양을 연상시킨다. 

 

 그래서 커스티는 새하얀 식탁보 위에 -아이들 눈높이에서- 온갖 군침 도는 음식들이 즐비하며, 그런 파티를 엄마 아빠도 함께 즐기는 아침을 그려 본다. 주변에는 색색의 풍선들이 두둥실 떠다니고 흥겨운 음악소리까지 곁들인 흥겨운 파티 같은 아침을 마음만 먹으면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자동차를 타고 학교에 가며 자기를 놀리던 노라 넬슨도 커스티가 생각하는 세상에서는 자신이 탄 인력거를 끄는 신세이다. 청색 계열의 동양풍의 청자 접시 같은 느낌을 살린 그림을 들여다보면 뽀빠이, 네스호 괴물, 악어 등을 발견할 수 있다. 글에 집중하느라 그림은 대충은 훑어 넘겨버리는 것은 앤서니 브라운이 그림 곳곳에 숨겨 놓은 여러 장치들을 찾는 재미를 놓치게 되는 지름길! 



 
 현실에서 엄마는 작은 슈퍼마켓에서 일하러 다니며, 한 달에 한 번 머리를 하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다. 실업자인 아빠는 저녁이면 연장 창고에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조이스 리틀 여사에게도 멋진 모습의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근사한 꿈이 있다. 그렇다, 엄마의 이런 꿈을 커스티는 다 알고 있다.




 그리고 커스티가 상상하는 아빠의 과학실 풍경은 볼거리가 가득하다. 그림 구석구석을 세세히 살펴보면 깃털, 날개, 프로펠러, 나르는 양탄자와 빗자루, (커다란 귀로 나는) 코끼리 점보 등 하늘을 나는 여러 가지 것들로 자유로움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장면은 양 쪽 페이지에 각각 교실 풍경이 실려 있는 그림인데, 언뜻 보기에는 비슷한 그림인 것 같아도 세세하게 비교해보면 많은 변화가 생긴 것을 알 수 있다. 왼쪽 책장에는 아이들이  지루한 표정으로 수업을 받는 평범한 교실 풍경인 반면 오른쪽 책장을 보면 주변의 온갖 사물들이 비슷한 모양의 다른 사물로 바뀌어 있다. 커스티의 책 모양, 창문 밖 풍경, 그림 속을 탈출한 동물들, 노라의 머리 모양을 하고 있는 지구본.  그리고 앤서니 브라운하면 저절로 연상되는 동물, 고릴라까지! 




 커스티가 꿈꾸는 세상과 현실은 그림과 문체에서도 확연히 구분된다. 커스티가 접하는 현실은 단조로운 문체로 들려주며 평번한 일상을 담은 그림이 책장의 2/3정도를 채우는 크기인 반면, 커스티가 꿈꾸는 것들은 사각틀 안에 다양한 문양으로 장식한 알파벳 대문자 글자와 더불어, 커스티의 말투와 책장  가득 세밀하게 그린 그림으로 구체화했다. 이런 차이점들이 커스티의 현실과 공상의 경계를 인식하게 만드는 장치이다.
- 책을 본 아이들이 그 알파벳 글자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해 했는데, 원작에서 해당 쪽 첫 문장의 첫 영문 글자가 아닐까 짐작해 봄.




 다만 이 그림들도 테두리 선 안에 갇혀 있지만 노라 넬슨이 변한 두꺼비가 빵~ 터지는 순간 그림 양 옆의 사각틀도 함께 열린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는 어떤 틀에도 갇혀 있지 않은, 완전한 자유를 누리는 커스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제목이 실린 내지에 보면 호랑나비 애벌레 그림이 있는데, 단지 장식으로 그려 놓은 것이 아니고 마지막 장에 커스티가 탈바꿈한 모습으로 하늘을 날아오르는 모습과 연관되어 있다. 작고 볼품없는 모습이지만 그 안에 아름다운 날개를 지닌 나비를 감추고 있는 애벌레처럼 자신 안에 세상을 향해 힘차게 날아오를 근사한 내가 잠재되어 있음을 커스티는 다 알고 있는 것이다. 




 공상을 즐기는 커스티에게서 가끔 멍하니 생각에 잠기곤 하는 내 모습-빨간 머리를 빼면 모습도 비슷한 듯-을 보는 것 같다. 아이에게나 어른에게나 자신이 꿈꾸는 삶과 일치하지 않는 일상은 때때로 답답하고, 서글프거나 두렵기도 할 것이다. 잠시나마 현실을 뒤덮고 있는 무거운 덮개를 열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자. 공상을 통해 얻는 자유로움과 행복감은 현실의 무게를 이겨내는 힘이 되어 줄 것이다. 아이들은 다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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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나라 고구려의 시작 - 추모왕 이야기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 2
김용만 지음, 장선환 그림 / 마루벌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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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 시리즈의 첫 번째 그림책. 새롭게 기획된 시리즈인 모양인데, 우리 역사를 이끌어 온 인물 이야기를 당시 상황과 역사적 배경을 곁들여 들려줄 예정이라고. 이번 작품은 고구려를 건국한 추모왕의 일대기를 이야기 형식으로 들려주고 있다. 흑백의 과감하면서도 간결한 선과 절제된 부분 채색으로 이루어진 그림은 여백의 미를 한껏 살린 동양적인 화풍으로 비움의 미학이 돋보이는 그림책이다.  

-  역사를 취약 분야로 생각하고 있기는 한데, 제목을 보면서 '고구려를 세운 사람은 주몽인데... 추모왕은 누구지? (혹 주몽이 추모왕인가?)'라는 의문을 잠깐 가진 것을 보면 역사 지식이 어지간히 없는 모양이다. ^^*  아, 그리고 아주 어렸을 적에 옛날에 즐겨 보던 TV 어린이 프로그램에 '동명성왕'이라는 인형극을 방영했었다. 그 때 따라 부르곤 했던 노랫말의 일부가 아직 기억나는데, 해모수와 유화 부인의 아들을 '동명성왕'이라 칭했었다. 그래서 자료를 검색해 봤는데 동명성왕과 추모왕은 동일 인물이 아니라는 글도 눈에 띄어서 좀 헛갈린다.

 이 그림책은 유화가 부여 왕궁에서 알-해모수가 햇빛으로 변해 유화를 비춰주면서 생긴-을 낳은 것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해모수와 유화의 만남(?)과 이별의 과정은 아이들에게 알려주기에는 부적합한 이야기이긴 하다. ^^;) 알에서 태어난 추모가 '주몽'이라는 별명을 갖게 된 것은 활을 잘 쏘았기 때문. 즉 '주몽'은 이름이 아니라 화를 잘 쏘는 사람을 가리키는 부여 말이며, 추모왕이라는 이름은 [광개토태왕릉비문]에 나오는 것이라 하니 고구려의 시조를 말할 때는 '추모왕'이라는 명칭을 쓰는 것이 합당하다. 

- 나도 주몽을 이름으로 알고 있었던 터라 그림책을 본 후 검색을 해보면서 이 점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요즘 아이들 책을 보면서 궁금했던 점들을 인터넷으로 찾아보곤 하다 보니 나도 여러 방면으로 많은 공부가 되는 것을 느낀다. (역사 드라마는 재미를 위해 종종 허구적인 내용이 가미되어 오히려 역사 지식에 혼선을 주어서 되도록이면 안 보는 편임. -.-)

 재주나 능력이 월등하게 뛰어나다 보니 주변에 시기하고 헐뜯는 이가 생기게 되고, 결국 추모는 새 나라를 세우기 위해 세 친구와 부여를 떠난다. 이후 홀본 땅에 이르는 여정-엄리대수를 건너는 일화-과 소서노를 만나 고구려를 세우고 비류국을 통합하는 과정을 들려준다. 후반부는 궁궐 건축, 고구려의 영토 확장에 이어 부여에서 찾아 온 아들(유리) 이야기가 짧게 언급된다. 추모왕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어서인지 유리가 부러진 칼 조각으로 아들임을 증명하는 일화는 생략되었다. 

 대상 연령을 고려하여서인지 본문 글이 대체로 간결한 편이며, 어미를 '~요, ~다'를 혼합하여 써서 이야기를 듣는 느낌을 살렸다. 본문 뒤에는 [대륙을 호령한 고구려]라는 제목 아래 고구려와 고구려인에 대한 정보, 지금도 성벽과 건물의 터가 남아 있는 오녀 산성(추모왕이 만든 궁궐)에 대한 이야기, 소서노*를 조명하는 글이 실려 있다.  
* 본문에서는 '홀본'이라는 단어를 쓰고 이 부분에서는 "졸본"이라는 단어를 썼던데, 같은 지역의 땅을 지칭한다면 표기를 통일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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꺽다리 기사와 땅딸보 기사 봄봄 아름다운 그림책 16
비네테 슈뢰더 지음, 조국현 옮김 / 봄봄출판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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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은 <개구리 왕자>를 비롯하여 <플로리안과 트랙터 막스>, <보름달의 전설/미하엘 엔데 글> 등의 작품을 통해 몽환적인 화풍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작가 '비네테 슈뢰더'의 그림책이다. 사이좋게 지내던 두 부부가 작은 싹이 피워낸 아름다운 꽃 한 송이를 독점하기 위해 욕심을 부리다 결국 꽃을 잃고 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발견한 사람이 누구인지, 가꾸거나 지킨 이가 누구인지 옥신각신하다 소중한 것을 잃게 되는 이야기는 전래동화 등에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는 형식의 내용.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외모, 개성,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이 '다름'을 극대화하기 위해 신체적으로 큰 차이가 있는 인물을-부부는 닮는다고 아내 쪽도 비슷한 체형~ ^^- 등장인물로 설정하지 않았나 싶다. 

 이웃해 있는 두 성에 살고 있는 꺽다리 기사와 아내 로네, 땅딸보 기사와 아내 리네는 두 성 사이의 벽을 허물고 먹을 것을 나누어 먹을 만큼 사이가 좋다. 그런데 어느 날 작은 싹이 자라 아름다운 자태를 지닌 꽃을 피우자 즐겁고 행복했던 이들에게 문제가 발생한다. 자고로 과욕은 화를 부르는 법! 꽃이 자기네 성 쪽만 보게 하기 위해 두 기사가 번갈아 가며 꽃봉오리 둘레에 밧줄을 걸어 성 쪽으로 끌어당겨 묶는 것으로도 모자라 대판 싸움이 벌어진다.

 이 두 부부가 뱉어내는 온갖 괴물 같은 욕설들을 형상화 한 그림이 재미있다. 그냥 두었으면 함께 볼 수 있는 꽃이었거늘 나 혼자만의 것으로 독점하려는 괜한 욕심을 부린 탓에 두 부부는 기분 좋게 바라보던 꽃도 잃고, 두 성 사이에는 두꺼운 얼음벽만이 자리하고 말았지 무언가...  좋은 것, 아름다운 것, 비싼 것에 욕심이 생겨 혼자만 가지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맨 처음 욕심을 낸 사람을 여자(아내)로 설정한 점은 불만스러워~.- 그런 욕심이 겉으로 드러날 때 다툼이 일고, 서로 간에 차갑고 두꺼운 벽이 생긴다.

 비네테 슈뢰더의 화풍을 보면 대개 그림 전반에 걸쳐 파스텔 톤의 부드러운 색채를 감각적으로 사용하여 몽환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이번 작품에서는 꽃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배경을 땅과 하늘로 나누어 다양한 색채로만 채워 넣어 간결함을 주고, 그림의 핵심적인 부분이 두드러지게 한 점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뒤쪽에 위치한 인물이나 사물은 간략하게 묘사하고 앞 쪽에 배치한 대상은 선명하게 그려 공간적인 입체감을 살렸다. 

 표지나 면지가 이야기의 처음과 끝을 담고 있는 경우도 있는데 이 그림책 또한 표지를 넘기면 펼쳐지는 면지의 그림을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 앞, 뒤면지에 그려져 있는 그림을 보지 않고 넘어갔다면 이야기의 처음과 끝을 놓치는 우를 범하는 것이 되어버린다. 이 책에서는 앞면지에 두 기사가 손 인사를 하며 서로를 향해 걸아가고 있고, 그 위를 날아가던 새가 씨앗 하나를 떨어뜨리고 가는 장면이 나온다. 두 성 사이에 있는, (무너진) 성벽이 있던 자리에 난 작은 싹은 바로 이 씨앗이 싹을 틔운 것이다. 뒤 면지에서는 새가 또 다른 어딘가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울 씨앗 하나를 물고 날아가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로네가 새싹을 발견하는 내용이 나오는 부분의 그림이 눈길을 끄는데, -길쭉한 꽃봉오리 형태, 꽃잎들이 벌어지고 있는 형상, 꽃잎이 활짝 펼쳐진 모습-  세 송이의 꽃이 자라고 있는 듯한 광경이 양쪽 책장에 걸쳐 그려져 있다. 이 장면은 새싹이 점차 자라 꽃이 피는 모습을 한 화면에 담아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는(이시동소) 기법이 적용된 그림이다. 그리고 두 부부가 꽃을 뿌리째 뽑으며 대판 싸움을 벌이는 장면을 자세히 보아야 마지막 장면에 양쪽 정원에 핀 일곱 송이의 꽃들은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있다.  ^^

 뿌리 뽑힌 꽃이 사방에 흩뿌린 씨앗에서 자란 꽃들이 두 부부를 화해로 이끈다. 이 책은 욕심으로 인해 벌어진 싸움과 이들이 화해하는 과정을 통해 공유하거나 나누면서 누리는 행복함을 이야기 하고 있다. 아이들에게도 장난감이나 인형 같은 것을 자신만의 것으로 하고 싶은 소유욕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나친 욕심은 친구 간에 다툼을 벌이고, 멀어지게 만들 수 있다. (때로는 욕심쟁이라는 눈총과 핀잔을 받기도 하고~) 혹 다툼이 있었다면 친구에게 먼저 사과하고 화해하여 우정이라는 아름다운 꽃을 사이좋게 함께 가꾸어 나가는 행복을 누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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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 나!
고경숙 지음 / 재미마주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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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경숙 씨는 2006년 볼로냐 아동도서박람회에서 <마법에 걸린 병>이라는 그림책으로 픽션부문 라가찌상을 수상한 작가.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이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단체에서 수상을 하는 것은 반갑고도 기쁜 일이다. 상을 수상한다는 것은 작품성을 인정 받은 셈인데, 그 작품의 어떤 점이 독특하고, 뛰어나서 인정을 받았는지, 작가의 작품 세계 등이 궁금하여 관심이 가게 된다. 

  <마법에 걸린 병>에서는 병 그림뒤에 숨어 있는 여러 동물로 즐거움을 주었고, 글밥이 상당히 많아서 놀랬던 <위대한 뭉치>에서 흥미진진한 모험 이야기를 들려 주는 등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하는 작가이다. 이번 작품은 원색을 많이 사용한 현대적인 감각이 돋보이는 독특한 그림들이 눈길을 끈다. 흰 바탕에 인물이나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지 않고, 대상의 특징이나 중요 부분들을 도형으로 형상화하거나 콜라주 등으로 과감하게 표현해 놓은 점이 인상적이다. (인터넷 서점에 올라와 있는 책소개 글을 보면 입체파 형식을 언급해 놓았던데, -미술에 대한 지식은 부족하지만- 개인적인 감상을 표현하자면, 표현주의 그림 같은 느낌을 풍기는 화풍이라고나 할까~) 

 세로 방향의 판형이 제법 긴 이 책은 부채 접는 것처럼 긴 책장을 차곡차곡 접는 방식으로 제작된 병풍 책으로, 책장의 일부를 들추어 보는 플랩(여닫이 판)이 포함되어 있다. 플랩과 플랩 밑의 그림이 한 책장에 있는 일반적인 플랩북과 달리 플랩에 해당하는 부분에 오는 책장 (뒷면) 쪽에 밑그림(글자)을 인쇄한 것이 특징. 이 책의 책장이 일반 그림책의 책장보다는 두꺼운 편이긴 하지만 책장마다 배치한 작고 긴 플랩이 구겨지거나 찢어질까 염려되어 들추어 보기 조심스럽다.
- 책장 뒷면은 들춰보는 곳에 해당되는 아래쪽 부분에 글자가 인쇄되어 있는 것 외에는 공백으로 비어 있다. 뒷면에도 그림-가령 버려진 것들-이 그려져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은 고급스러운 책장이 비어 있는 것이 너무 아까워서~. ^^*

 표지 책장을 넘기면 -속지 없이-검은 색의 간지에 그림을 그렸다가 구겨서 버린 것 같은 종이 뭉치가 눈에 들어온다. 옆 장에는 그 종이가 펴지면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그림 속의 한 여자 아이가 "누구야?"하고 묻는다. 빨간 체크무늬 리본을 맨, 대충 그린 듯한 곱슬머리에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여자 아이는 스케치를 끝내고 채색을 하려다 만 듯한 모습.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느낌을 받은 미미는 자기를 버린 이가 누구인지 궁금하다.

 많은 이들이 차례로 "나야, 나!"라고 외치며 나서는데, 책장의 하단에 달려 있는 긴 플랩을 넘겨보면 이들이 저마다 버린 것들이 나온다. 피아니스트는 슬픈 음계를, 교통순경은 고장 난 호루라기를, 발명가는 낡은 부속품들을... 그런데 마지막에 모습을 드러낸 화가는 앞서 등장한 이들과 달리 자기는 아니라고 부인한다. 소리를 친 아이가 화가가 그린 그림인 것을 눈치 채고 있는 독자 입장에서는 빤히 눈에 보이는 사실을 부인하며 발뺌하는 모습에 코웃음을 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화가 이외의 이들은 미미를 버린 당사자가 아닌데 왜 자기라고 나선 거지?  비록 미미(를 그린 종이)를 버린 것은 아니지만 자기가 다른 무엇인가를 버렸다는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 아닐까? 어쩌면 자신들이 버린 어떤 것들도 어디선가 미미처럼 "누구야?"하고 묻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이 책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어떤 것들을 버렸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이와 이 책을 처음 볼 때는 플랩을 넘겨보기 전에 이 대상이 무엇을 버렸을지 추측해 보게 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그리고 책에 나오는 인물들로 그치지 않고 또 다른 대상과 짝지어 버렸을만한 것들을 덧붙여 보는 것도 재미있는 활동이 되지 않을까 싶다. 작가가 이야깃거리를 제공한다면 그것에 상상력을 더해 이야기를 확장시켜 가는 것은 독자의 몫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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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마을
다시마 세이조 지음, 엄혜숙 옮김 / 우리교육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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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에서 직접 가축과 농작물을 기르며 아이들을 위한 작품을 쓰고 그린다는 다시마 세이조의 이력을 보며 작고하신 우리나라 동화작가 권정생님이 떠올랐다. 자연을 가까이 하며 아이 같은 동심을 잃지 않는 점 등의 유사한 면이 있어서 일까? 아이들의 상상 속에서 펼쳐질 법한 이야기들을 형상화시킨 다시마 세이조의 그림책들을 보면 먼저 아이가 그린 것 같은 그림이 눈길을 끈다. 독자들은 내가 혹은 친구, 내 아이가 그린 것 같은 그림에서 동질감과 친근함을 느끼게 된다. 글도 미사여구로 치장하지 않고 아이가 쓴 것처럼 간결하고 짧다. 

 <로쿠베, 조금만 기다려>, <사람놀이>, <훈이와 고양이> 등의 그림을 그린 초 신타(죠 신타) 역시 어린이가 그린 것 같은 화풍을 선보이는 작가인데, 다시마 세이조의 그림이 좀 더 원색적인 색감과 선 굵고 강렬하면서도 대담한 붓질로 화풍에 활력이 충만하다. 주인공이 놀라는 모습도 깜짝 놀라는 정도가 아니라, 펄쩍 뛰어 오르거나 나동그라질 만큼 화들짝 놀라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과장스럽게 표현해 놓았으며, 자연의 활기를 기운차게 흐르는 시냇물처럼, 세차게 쏟아지는 폭포수처럼 시원하고 생동감 있는 그림으로 잘 발산하고 있다. 

 소풍 가는 날 아침, 친구들이 탄 버스를 놓치고 뒤이어 오는 다른 버스를 타게 된 주인공. 그런데 이 버스는 소풍 장소가 아닌 '모르는 마을'로 향한다. 이 마을에는 -인간 중심의 현실 속에서 이룩된- 상식을 뛰어넘는 일들이 연이어 펼쳐지며 이야기 속 주인공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도 쉴 새 없이 놀라움을 안겨준다. 차를 타면 갈 수 있는 곳이라는 설정 또한 이처럼 기발하고 놀라운 세계가 현실과 그리 멀지 않은, 가까운 곳에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우리 동네에도 이런 마을로 가는 버스가 멈추면 아이들이 무척이나 좋아할 텐데~. ^^

 모르는 마을은 현실에서 고정되어 있던 것들이 살아 움직이고, 물과 땅에서 사는 것들이 뒤바뀌어 있는 세상이다. 식물이 걸어 다니고, 시냇물에서 과일이 헤엄쳐 다니고, 길가에는 새가 나 있고 밭에는 소랑 돼지가 자라고 있는 곳.(<돼지가 주렁주렁>이라는 그림책에서도 돼지가 꽃으로 피기도 하고 열매가 되기도 하지만 이는 아내가 인위적으로 만든 설정. 돼지들을 나무에 매달다니, 이 아내 힘이 장사에요~. ^^) 여러 종류의 물고기가 땅에 머리를 처박고 자라나고 있는 밭이라니, - 나무에 물고기가 열매처럼 주렁주렁 열린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있긴 하지만-기발한 설정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물에서 튀어 오르는 바나나를 잡고, 여치를 타는 즐거움을 누린 소년은 채소로 되어 있는 마을에 도착한다. 이곳에서는 가로수 개가 도시락을 먹어치우며, 민들레가 사람을 삼켜 버리기까지-맛이 없어서 뱉어내긴 하지만- 한다. 그리고 이 마을 햄버거가게에서는 햄버거가 고양이 화분을 판다. 고양이가 햄버거를 파는 것이 아니라! 정형화된 틀을 벗어난 설정이 더 큰 웃음을 주는 것을 아는 작가의 발상~.

 주인공은 태어날 때의(=발가벗은) 모습 그대로 민들레 솜털을 타고 돌아온다. 아침에 맨발로 뛰어나오며 도시락을 챙겨주었던 동생이 이번에도 맨발로 달려와 반긴다. 그리고 아이가 옷가지며 배낭을 잃어버리고 돌아왔지만 엄마는 야단은커녕 환하게 웃는 얼굴로 맞이한다. 바로 우리 아이들의 소망이 투영된 해후이자 감격적인 결말이 아니겠는가~. 현실에서는 대게 동생과 늘 티격태격하고, 부모에게는 야단맞기 일쑤인데 이와는 정반대의 꿈같은 일이 현실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아, 이 얼마나 즐거운 소풍이란 말인가!! 

 속지 그림을 보면 표지 그림과 달리 원색을 배제하고 흑백으로 그려져 있다. 앞 속지의 흑백 그림은 -중요한 순간에 실수를 하면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처럼- 타야할 차를 놓친 암담한 소년의 감정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반면 뒤 속지의 흑백 그림은 지붕 위로 달이 떠있는 어두운 밤에 소년이 다시 모르는 마을로 놀러 가는 풍경으로, 꿈과 환상의 세계로 진입하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아, 민들레 솜털들을 따라 웃는 얼굴로- 짐작에 옷을 걸치지 않은 듯- 모르는 마을로 가는 소년의 모습을 작게 그려 놓아서 하마터면 놓칠 뻔 했다.

 명화 같은 느낌의 고풍스러운 그림-대게 아이보다 어른들이 이런 작품이 더 끌리는 경향이 있지 않을까-도 아이들의 감성을 풍부하게 키워주겠지만, 아이들에게는 웃음을 주는 요소가 있거나 상식을 벗어난 설정이나 그림, 그리고 찾을 거리, 볼거리가 많은 그림이 더 큰 즐거움을 주는 것 같다. 깔깔~ 소리내 웃어가며 이 책을 본 아이(초등5)가 정말 재미있다며 엄마도 빨리 보라고 독촉을 하기에 감상을 말로 표현해 보라고 하니 "창의성이 돋보이는 걸작"(조금 과장된 표현이려나?) 이라고 한다. 하긴 내가 봐도 아이들이 재미있는 책이라고 열광할만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이 놀라자빠지는 주인공의 표정이나 곤란한 상황에 처한 모습 등을 보며 내내 웃지 않을 수 없다.

  이 그림책이 펼쳐 보인 새로운 세계를 접한 아이들은 새로운 시선으로 주변을 돌아보면서 자신의 내면에 또 다른 세상을 창조해낼지도 모르겠다. 다시마 세이조의 작품으로는 이 그림책 외에 <뛰어라 메뚜기>와 <채소밭 잔치>를 보았는데 <엄청나고 신기하게 생긴 풀숲>을 비롯하여 아직 보지 못한 다른 그림책들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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