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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난골족 ㅣ 우리시 그림책 9
백석 지음, 홍성찬 그림 / 창비 / 2007년 2월
평점 :
<여우난골족>은 먼 곳에 살던 친척들이 명절을 맞아 모여드는 모습을 어린이의 시선으로 담아 낸 '백석' 시인의 시에 그림을 곁들인 동시그림책이다. <단군신화>, <재미네골>, <선비 한생의 용궁답사기> 등의 그림을 그린 홍성찬 씨가 모처럼 모인 일가친척들 간의 정감이 넘치는 풍경을 투박한 듯 하면서도 구수한 느낌의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이 동시그림책은 평안도 사투리로 된 백석 시인의 원시를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어렵게 여겨지는 부분들을 풀어서 싣고 있다. 대신 본문 뒤에 원시가 실려 있으므로 본문을 감상한 후에 원시도 꼭 읽어보자~. (원시를 실은 부분에도 사투리나 낱말의 풀이를 실어 놓았다.)
명절을 맞아 무척이나 신이 난 듯이 활개를 치며 뛰어가는 아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꼭 명절이 아니더라도 아이들은 자기를 귀여워해주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나러 가는 것을 무척 즐거워한다. '나'는 가는 길에 큰아버지 댁 식구도 만나고, 고모네 식구들과도 상봉을 한다. '얼굴에 별자국이 솜솜 난' 고모나 '뽀로통하니 성을 잘 내는 고모', 그리고 '말끝에 서럽게 눈물 짤 때가 많은' 고모. 그리고 작은 아버지 부부와 사촌들... 다 모이니 사람들로 방 안이 한 가득하다. 우리 시부모님이 명절 때 식구들이 모이면 '이제 사람 사는 맛'이 난다고 말씀하시곤 하는데, 내가 보기에도 식구들이 북적대는 맛이 있어야 명절 기분이 느껴지는 것 같다.
추석, 설 같은 명절이 되면 온 나라가 귀경 행렬로 들썩이곤 하지만 예전에 비해 명절의 의미가 많이 퇴색되고 의례적인 행사처럼 되어가는 것 같다. 어린 시절, 큰 집에 가면 이 책에 나오는 것처럼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집안 문제나 정치 이야기 등에 대해 설전을 벌이고, 아이들은 몰려 나가 마당에서 놀다가 동네 한 바퀴를 돈 후에야 집에 돌아오곤 했었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면 차례를 지내고 세배를 드리기 위해 여러 일가들이 함께 큰 집을 비롯하여 둘째 할배 댁, 셋째 할배 댁으로 두루 돌던 기억이 난다. 엄마가 큰 엄마와 함께 음식 준비를 하시던 정지(부엌)에 들어가 보면 가마솥에서는 허연 김이 오르고 부뚜막에는 이런 저런 먹거리들이 놓여 있어 좋아하는 음식 한 점을 얻어 먹고 나오기도 하였었는데...
그런데 어른이 되어 주부가 되고 보니, 명절 음식 준비나 비용 같은 것을 먼저 생각하고 부엌일도 평소보다 몇 배로 많아지는지라 아이였을 때처럼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가끔은 아무런 부담 없이 마냥 즐거운 마음으로 명절을 기다리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곤 한다. 문득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는 명절을 어떤 느낌으로 기억할지 궁금해진다. 할아버지, 할머니, 작은 아빠와 작은 엄마, 그리고 사촌들을 만날 생각에 들떴던 일들을 떠올리며 지금의 이때를 그리워하려나?
처음에는 각 인물들에 집중하느라 배경들은 그냥 지나쳤는데 다시 보니 눈 덮인 벌판이며, 나무 한 짐을 싣고 가는 듯한 소달구지, 다리 아래 얼어붙은 강 위에서 썰매를 지치는 아이들의 모습 등 그림에 볼거리도 풍성하다. 무엇보다 일가들이 모여 들어 즐거워하는 모습이나 이런 저런 음식 준비에 분주한 부엌 풍경, 상마다 호롱불을 밝히고 둘러 앉아 식사하는 모습 등이 너무나 정겹게 여겨진다. 아이들이 밤이 늦도록 놀고 들어오면 어른들은 어른들 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방에 모여 두런두런 거리다 새벽녘이 되어 눈을 붙이는 장면을 들을 보고 있자니 옛날에 시골에서 명절을 보내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이 책을 보면서 어린 시절에 보낸 풍성하면서도 훈훈한 명절의 느낌을 우리 아이들에게 들려주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200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