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김정원 (영화칼럼니스트) 2004.07.08
현재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 가운데 하나가 된 “해리 포터 시리즈”는 신문을 읽거나 서점을 가거나 극장 앞을 스쳐 지나가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아동 문학이 되었다. 그래서 첫 번째 가장 잘못된 기대가 여기에서 비롯된다. “해리 포터 시리즈”가 아동문학이라는 이유로, 어른들은 쉽게 권선징악형의 단순한 동화를 예상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예상, 혹은 편견은 책을 스크린에 옮겼다는 영화에서 더욱 커졌다. 착하고 귀여운 아이가 친구들과 합심하여 악당을 물리치고 바르게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이른바 “크리스마스 특집극” 같은 내용을 기대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런 기대엔 “해리포터 시리즈”의 1, 2편이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Harry Potter and the Sorcerer's Stone>,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을 연출했던 크리스 콜럼버스는 크리스마스 배경의 깜찍한 아동 액션극, <나 홀로 집에 Home Alone>로 전세계에 널리 알려진 감독이고, 그가 선보인 1편과 2편은 그 분위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맥컬리 컬킨보다 더욱 아름다워진 다니엘 래드클리프는 ‘네버랜드’ 만큼이나 환상적인 호그와트에서 어둠의 마법에 대항해 악당을 무찌르는 착한 승리를 거두었고 그 과정은 액션 영화를 보는 것 마냥 흥미진진했다. 현세의 해리포터로 영원히 기억될 다니엘 래드클리프의 모습과 해리포터가 처한 여러 가지 극중 배경을 보여주던 1편을 지나, 2편인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에서 크레인을 적극 활용한 카메라 움직임은 넓은 시야와 함께 역동성을 높여 판타지 어드밴처의 성격을 강화했던 것이다. 이런 크리스 콜럼버스의 연출 덕분에 대부분의 관객들은 두 영화가 가진 어두운 부분을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기억을 더듬어 보자. 해리 포터는 자신을 구박하는 이모부 내외 때문에 일부 어른을 증오하고 있는 캐릭터이고 그 증오는 당연한 것으로 다루어진다. (해리 포터가 이 증오를 고치거나 아니면, 이모부 식구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또 환상과 마법의 공간인 호그와트는 낡고 어두운 성 - 공포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 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유령들이 수시로 출몰한다. 게다가 일어나는 사건과 해리포터가 대적해야 하는 어둠의 악당들은 또 어떤가.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보면, 오히려 영화를 밝고 건전한 드라마처럼 그려낸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의 연출이 놀라울 정도이다.
그러므로 만약 전작 두 편의 기억을 잃고, 혹은 처음으로 ‘아동문학이 원작’인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를 보려 한다면, 제발 해리 포터의 밝고 신나는 모험담을 기대하는 일은 중단하도록 하자. 그런 모험담이 없다는 소리가 아니다. 그저 단순한 모험담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어른들을 감화시키는 착한 아이, 해리 포터가 나오지도 않고, 극의 내용이 바른 생활을 가르쳐 주지도 않는다. 감동이나 계몽이 목적이 아니라, 13살 먹은 소년이 10대 소년답게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단지 마법 세계를 배경으로 다룰 뿐이다. 조앤 K. 롤링의 원작 소설이 10대들에게 열화 같은 찬사를 받으며 읽혀지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영원히 순수하게 남아주길 바라지만, 아이들도 어른이 된다.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는 그런 아이들의 성장을 얘기하므로, 그 전의 두 영화가 그랬듯이 밝고 신나는 모험담만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에서도 그랬지만,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에서도 배우의 성장은 눈에 띄게 드러난다. 심지어 이번엔 변성기가 닥친 듯 목소리가 갈라지기도 하는데, 귀여운 마법사 해리 포터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팬들에겐 다소 실망스러울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해리 포터도 자란다. 그는 이제 11살의 꼬마가 아니라 13살의 소년인 것이다. (영화가 다소 지연되는 통에 다니엘 레드클리프는 14살이 되었지만.)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11살의 어린 해리 포터만을 기대하고 있다. 이것이 두 번째 오해이다.
이모부에게 학대를 받지만 천재 마법사의 피가 흐르고 있는 해리 포터는 언제나 착하고 귀여운 소년이길 관객들은 원한다. 그러나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에서는 착하고 귀여운 해리를 찾아 보기 힘들다. 자신과 부모님을 모욕하는 것에 발끈해서 규칙을 깨고 마법을 악용하는가 하면, 사과하는 대신에 가방을 싸서 가출을 선택한다. (영화와 달리 원작에선, 갈 곳 없는 마법사들을 위한 구조버스를 탈 때 이름을 묻는 차장의 질문에 해리 포터는 거짓말로 답하기도 했다.) 또 옷차림도 달라졌다. 예쁘고 착하게 입는 것이 아니라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그 위에 헐렁하게 남방을 걸친다. 단정하게 교복을 갖춰 입기만 했던 꼬마가 아닌 것이다. 모범생인 헤르미온느도 수업시간에 선생의 말에 일어나 교실문을 박차며 나가고 친구들을 괴롭히는 말포이의 얼굴에 일격을 가하기도 한다. 아직도 착하기만 한 사람이 있다면 론 뿐이다. 해리가 친구들과 함께 밤에 기숙사 방에 모여 놀고 있는 모습은 부모님 곁을 떠난 10대 소년들의 자유로운 모습 그 자체다.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는 이런 것들을 단편적으로 늘어 놓고만 있어서 다소 개연성이 떨어지기도 하지만, 모두 성장하고 있는 해리 포터들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들인 것은 분명하다. 퀴디치를 즐기고 마법 공부를 하는 해리 포터의 모습이 1편과 2편에 비해 많이 사라진 것들도 영화가 여기에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2005년 11월에 나올 예정인 4편, <해리포터와 불의 잔 Harry Potter and the Goblet of Fire>에서 해리 포터가 첫사랑을 겪게 될 것임을 상기한다면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에서 10대 징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해리 포터의 행동과 모습은 더욱 이해가 될 것이다.
그래서 영화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에는 마법으로 악당을 무찌르는 모험담이 적다. 대신 해리 포터의 성장한 외모와 더불어 최고의 마법 가운데 하나라는 ‘익스펙토 페트로눔’을 성공시켜 한층 더 마법력이 높아진 해리 포터를 볼 수 있다. 해리 포터는 소년으로서도, 마법사로서도 계속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블록버스터 영화들의 경향이 그렇고, “해리 포터 시리즈”와 경쟁적으로 올려지곤 했던 <반지의 제왕 The Lord of the Rings> 3부작이 그랬듯이 <해리 포터>에서도 영상, 특히 CG로 만들어지는 영상에 대한 기대가 높다. 책에서 읽은 마법세계를 실감나게 표현하는 것은 물론이고,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캐릭터를 재현하는 것은 더욱 관심의 초점이 된다. 하지만 여기서 염두에 둘 것은 <스파이더 맨 The Spider-Man>이나 <반지의 제왕> 같은 현란한 CG는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에서 가장 기대했던 구조버스와 디멘터를 살펴 보자. 보라색 3층 버스인 구조버스는 갈 곳이 없는 마법사들을 태우고 그들이 원하는 목적지에 데려다 주는 운송수단인데, 책에 나온 설명에 근접하지만 그대로인 것은 아니다. 구조버스가 달릴 때, 우체통과 가로등이 움직여 길을 터주는 것은 영화에서 완전히 수정되었다. 그래서 이 CG는 기대했던 것만큼의 판타지 효과를 주지 못한다. 또 아즈카반의 죄수를 감시하는 간수, 디멘터들의 경우도 그렇다. 디멘터는 책에서 묘사된 것과 거의 일치하게 만들어졌지만, 공교롭게도 <반지의 제왕>에 나온 ‘나즈굴’과 비슷해져 새롭지 않다.
해리가 디멘터에 맞서 죽을 뻔하다가 살아나는 장면에서도 원작의 유니콘과 유사한 동물이 아니라 뿔이 멋지게 난 사슴이 보여지는데, 이것은 장면 자체가 1997년작 <모노노케 히메>의 영향이라고 볼 수 밖에 없어 역시 신선하지 않다. 결론적으로 말해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는 특이하거나 혹은 눈에 띄는 CG가 적다. CG에 대한 기대가 반드시 관객들의 잘못이라곤 할 수 없으나, ‘원작에 충실한다’는 계약을 한 영화사의 입장에선 관객들의 기대를 들어주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는 부모님을 죽인 원수이자 악의 마법사인 볼드모트와 대결을 하는 “해리포터 시리즈”의 3번째 에피소드이다. 볼드모트와 해리포터의 얽힌 인연이 나온 것이 1편, 볼드모트의 정체가 밝혀진 2편에 이어, 3편에선 해리포터의 부모님들이 어떻게 죽었는지가 나온다. 원작에서의 장황한 설명에 비해 영화는 순식간에 지나가기 때문에 많은 것들이 생략되어 있긴 하지만 어쨌든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는 10대 해리 포터가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것에 한층 더 다가서 있다. 벽장 속의 보가트(사람 각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로 모양을 변신하는 존재)가 어둠의 마법 방어술 수업에 주요하게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해리 포터는 부모님의 죽음을 희미하게 기억하며 디멘터를 떠올리기 때문에 여자 비명과 디멘터가 동시에 등장하게 되고, 그의 보가트도 디멘터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밖에도 알고 보면 더욱 재미있는 소소한 것들이 몇 가지 있다. 해리 포터가 지도를 따라 걸어갈 때 복도에서 ‘불 끄라’고 하는 그림 속의 인물은 감독인 알폰소 쿠아론 자신이다. 그리고 의외로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에서 가장 멋진 장면이 된 것은 호그와트 합창단의 노래 부분. 허공을 가득 메운 촛불들 사이로 마법주문을 부르는 합창단의 모습은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특징인 환상적인 장면 연출과 유머가 잘 드러난 시퀀스이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합창단이 부르는 노래의 가사는 세익스피어의 희곡, “맥베스”에서 마녀들이 부른 바로 그 주문이다. 또 근엄함이 줄어든 대신 익살스럽기까지 한 새 덤블도어의 모습도 감독의 영향력 하에 있다.
이렇게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에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재치가 곳곳에 드러나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원작에 충실해야’ 하는 조앤 K. 롤링과의 계약 때문에 1편과 2편에 마찬가지로 다소 산만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영화적 완성도를 떠나 해리 포터가 성장하여 마침내 볼드모트와의 최후 대결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에 이어, <해리 포터와 불의 잔>을 기다릴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이다.
[글출처 : nkin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