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도서관 장서 500만권 ‘燻蒸 관리법’
하루 한번 소독실서 화학약품으로 해충없애
[조선일보 박영석 기자]
예로부터 여름이 지나고 건들 가을 바람이 불면 햇볕에 책을 말리고 파손된 부분을 보수하는 ‘포쇄(曝?)’를 했다. ‘선비는 책을 말리고(사포서·士曝書) 농부는 곡식을 말리며(농포맥·農曝麥) 부녀자는 옷을 말린다(여포의·女曝衣)’는 것이 한여름 다 지나가는 칠석(음력 7월 7일) 절기에 할 일이기도 했다. 서재의 묵은 냄새, 도서관의 책 냄새는 ‘책 뜯어먹고 사는’ 벌레와 균이 만들어내는 생명과 죽음의 냄새이기도 하다. 한증막에서 땀빼고 기운내듯, 책도 노폐물을 제거하고 소독하는 치료로 활기를 되찾는다.
서울 반포동 국립중앙도서관이 소장한 500만권 장서에 대한 포쇄는 실내에서 1년 내내 값비싼 장비를 동원해 자동으로 처리되고 있다.
중앙도서관 ‘책 찜질방’은 14평 규모. 지하1층 자료보존관에 자체 소독실을 두고 섭씨 25도 상태에서 훈증 자동처리 장비 2대를 연중 가동한다. 그래봐야 하루 처리할 수 있는 양은 하루 500~700권 안팎이다. 장서 500만권을 쉬지 않고 한 번씩 소독하는 데만 대략 23년이 소요되는 셈이다.
3일 훈증 소독실에 들어간 책들은 1945년 무렵 발간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청구사에서 펴낸 호암 문일평(文一平)의 ‘朝鮮史話’(조선사화), 국제문화협회에서 펴낸 엄항섭(嚴恒燮)의 ‘屠倭實記(도외실기)가 눈에 띈다. 다른 책들도 그만큼이나 오래된 것들이다. 여기 들어가서 훈증 처리되는 책을 고르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니다. 보존 담당 직원 3명이 이 업무에 매달린다. 보통 연대 순으로 정해놓고 돌아가지만, 훼손 정도가 심한 것은 ‘급행’ 치료를 받기도 한다. 열람봉사과 이귀복 사무관은 “연초에 계획을 세워 보존이 시급한 고서(古書) 순으로 진행한다”고 말했다.
중앙도서관의 훈증소독기는 지난해 말 수입한 것으로, 1대에 1억6000만원짜리 고가 장비다. 처리 약품은 항균 성분이 있는 감·허브·한약재 같은 자연 추출물로, 한번 처리에 만 하루가 걸린다. 매일 오전 11시에 소독한 책을 꺼내고 새 책을 넣는다. 완전 밀폐한 소독실을 진공 처리한 뒤 화학약품을 순간적으로 주입해 해충·미생물·세균을 박멸하는 방식이다. 책 뿐아니라 미술품·식품·농산물·문화재 등 섬유질을 지닌 고체류의 장기 보존에 이 같은 방제(防除) 방식을 쓴다. 대전 둔산동 국가기록원(옛 정부기록보존소) 역시 같은 방식으로 보존 처리를 한다.
서가 가득 책을 채워넣은 서재 한 칸이 꿈인 보통 사람의 포쇄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바람이 잘 통하도록 창문과 방문을 잘 열어놓고, 습기·곰팡이 제거제를 쓰라”고 전문가들은 권한다.
(박영석기자 yspark@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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