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치적 인간의 초상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 리브로 / 199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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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난세에는 규칙이 다르다.

살아 남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

프랑스 혁명에서는 길로틴이 어느 순간 방향을 틀어 어제까지 가장 강력했던 지도자의

머리위에 떨어졌다.

그 순간 모두가 자신의 목을 감싸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 혼란 스러운 시대를 이해 못하는 평시에 산 사람이 난세의 인간들을 쉽게 비난하기는 어렵다.

난세의 규칙은 무엇일까?


속을 드러내지 마라

누가 강한지 촉수를 세우고 재보는 건 중요하다. 하지만 쉽게 먼저 나서지 마라.

전쟁에 따라 운이 결정되는 시대에 군인들과 친하게 지내라.

나 만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2중 플레이를 한다.

그가 나를 다 믿는다고 절대로 믿지 마라.

지도자의 핵심측근에도 정보망을 깔아두라.

나에게 명령하는 지도자를 위해서도 정보를 수집하지만

모든 것을 넘겨줄 필요는 없다.

상황에 맞추어 적절한 것을 내놓아라


#이 대목에서 한국의 정보기관도 매한가지라고 한다. 정보기관의 총수, 심지어 대통령에 대한 정보도 쉬지 않고 수집하는 것이 정보기관의 핵심 역할이라고 한다. 누군가 바뀐 사람이 오면 그 정보를 찾기 때문이다. 머리는 바뀌어도 조직은 영원해야 하니 말이다


레미제라블을 보면 잔혹한 경찰 자베르가 나온다.

그의 오랜 상사는 바로 이 책의 주인공 푸셰다.

혁명이 백가제방을 만들었지만 그러한 자유로움 속에서 오락가락 하는 방식으로는

정권은 유지되지 못한다.

무릇 예언은 무장되어야 실효성이 있다.

그래서 로베스피에르를 실각시킨 후 혁명의 지도자들이나 나폴레옹은 

경찰을 강화시켜 국내 치안을 유지하도록 한다.

이때 단순히 몽둥이만 앞세워서는 현명한 통치가 되지 못한다. 핵심은 정보에 있었다.


나폴레옹 암살 미수 등 여러 사건에서 매우 치밀한 정보 수집을 통해 그는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았다. 유능해서, 지나칠 정도로 유능한 덕분에 항상 그는 경계를 받았다.

스스로도 누구도 믿지 않았기에 남들 아무도 자신을 믿지 않게된 우울한 처지가 된 것이다.


그렇게 쓸쓸히 퇴장하지만 그의 역사적 의의는 오래 갔다.

나폴레옹은 세인트 헬레나에서 쓴 회고록에서 푸셰의 불투명을 비난했다.

다른 이들도 여기저기서 그를 비난한 덕분에 그는 온갖 불명예를 다 뒤집어 썼다.

이 대목에서 마키아벨리의 교훈을 들춰보자.


"지도자는 비난 받더라도 무시당해서는 안된다"


쓸모가 없었다면 그가 난세에 살아남고 권력의 지근거리에서 수십년을 일하며

다양한 지위를 오르내릴 수 있었을까?

황제의 처까지 정보원으로 고용했던 푸셰의 역량이 그의 값을 올렸을 뿐이다.


참 발자크가 푸셰에 대해 높이 평가했던 점도 기억해두어야 할 것이다.

사실주의자의 눈에는 당대의 걸물이 남긴 족적을 쉽게 비난으로 넘겨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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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베트 -하
발자크 지음, 박현석 옮김 / 동해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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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848년 경의 프랑스 사회


혁명으로 신분이 무너지니 사람들은 혼란을 겪게 된다.

누가 누구와 결혼하는 것이 합당할까?

신분제라면 귀족도 시민도 급이 있어서 고민이 적었다.

귀족의 경우 토지에서 나오는 연공에 따라 가격이 매겨져왔다.

혁명으로 이들은 몰락했고 나폴레옹이 장군들을 귀족으로 임명해서 혼선을 준다.

거기다가 돈의 힘으로 밀고 올라온 상인들은 어떻게 계산하면 될까?

자 이 상황에서 합당한 결혼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일단 간단한 계산법이 있다.

연수입을 돈으로 환산해보라. 마침 좋은 제도로 채권이 있었다.

돈을 집어 넣으면 해마다 일정한 돈으로 준다. 대략 금리가 6% 정도.

과거의 토지의 연공과 비슷한 개념이다.


이 돈을 집어 주지 않고는 딸을 시집보내기가 어려웠다.


조금 앞 시대의 영국에서 한 재능 많은 여인이 지참금이 없어서 결혼 못하다가

독신으로 생을 마쳤다. 그녀는 자기 이야기를 가지고 세상을 비틀어 보여주었고

후일 이 글이 인기를 끌었다.

바로 제인 오스틴이다.

소설 속 여주인공들은 돈은 없어도 행복한 결혼을 하게 되지만 

현실은 절대로 그렇지 않았다.


결혼은 일정의 새로운 신분 확인이고 나아가 신분의 확장 내지 향상이다.

그래서 다들 안간힘을 다해 더 높은 더 나은 상대를 원한다.

고리오 영감은 평생 모은 돈을 다 털어 두 딸을 최상의 신랑과 결혼시켰다.

이 작품 사촌베트에서도 결혼은 비즈니스였다


사회 변동 초반에는 열혈 군인이 아름다운 농촌 아가씨를 얻어서 같이 출세 했다.

매우 해피한 스토리다.

반면 연줄 없고 못 생긴 사촌은 평생 여공으로 살아야 했다.

이쪽이 제인 오스틴의 소설 보다 더 리얼한 세계일 것이다.


한편 사회의 다른 편에는 결혼과는 다른 남녀관계가 있었다.

하나는 가수나 무희가 돈 많은 후원자를 맞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미 유부녀인 여자가 자신의 남편을 제쳐놓고 돈 많은 후원자를 잡아서 즐기는 것이다.

이렇게 결혼과는 다른 방식으로 여자는 남자를 이용한다.


사회 변동이 많던 시절 한 남자에게서만 평생의 안녕을 기댈 수 없었기에

여자들은 자신의 매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남자를 끌어들인다.

혹 안되면 다른 쪽에 기대어 사는 것이다.

실제 발자크의 남동생은 아버지가 달랐다고 한다.

발자크도 여기저기에 자신의 씨앗을 뿌렸다.

일종의 뻐꾸기가 남의 둥지에 알 낳기 수법은 당대 프랑스에서 자주 볼 수 있는데

현대의 동물 생존전략으로 견주어 보아도 꽤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이 소설에는 이와 같은 남녀 관계의 여러 형태를 아주 디테일한 묘사를 통해 보여준다.


일종의 결혼 사회학이라고나 할까?


여자가 돈 많은 남자를 얻어가는 이야기를 우리는 신데렐라 스토리라 부른다. 지금도 대부분의 한국 드라마는 그 형태다.

반면 이 시대에는 남자가 지참금 많은 여자를 낚는 작업이 적지 않았다.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온달 스토리다. 평강공주를 낚는.

그리고 바로 발자크 자신이 이런 이야기의 주인공 자체 였다.

그는 평생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줄 막강한 여인을 찾아다녔다. 귀족이고 돈 많은 이왕이면 자신의 문학도 이해하는..

덕분에 수백만불 이상의 돈을 가진 여인과의 결혼에 골인하는 소설 같은 생을 살게 된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데 이 작품(일종의 결혼사회학)은 지극히 흥미롭게 당대의 사회를 묘사해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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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처 스타일 -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했지만 모두가 존경했던 철의 여인
박지향 지음 / 김영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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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처 수상은 레이건과 함께 신자유주의 시대를 열었던 지도자다.

그녀의 이름을 딴 대처리즘이라는 사상은 지금도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권불 10년이라는 말이 있는데 무려 11년반을 집권한 그녀의 정치역정은

찬성하지 않아도 무시하기 어려운 존재임을 알게 해준다.


노조말살,소련에 대한 반감,포클랜드 전쟁의 식민주의 유산 지키기,

칠레 피노체트와 같은 군사독재자에 대한 옹호,IRA 반군의 옥중 단식 사망 사건 등

그녀의 통치를 학창 시절 신문으로 보아 왔던 입장에서

좋은 기억은 별로 없었다.


그리고 긴 시간이 흘러 지금 우리 눈에 그녀에 대한 영화 한 편이 그리고 

이 책 하나가 놓여진다.


저자는 박지향 서울대 교수.

영국 유학시절, 파업에 나선 탄광노동자에게 가진 돈을 아껴서 성금을 보냈던

유학생이었던 그녀다.

하지만 이제 오랜 시간을 보내며 과거의 사건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된

그녀는 다른 결론을 이끌어간다.


대처의 업적을 간략히 요약하면

먼저 영국병을 치유했다는 점

노조와 맞서서 국내 산업개혁을 가져왔다.

모두를 함께 끌고 가기 위해 고용을 최대 보장하는 방식은 인플레이션을 가져왔다.

보조금과 임금인상은 과다한 부담을 재정에 주었고 결국 인플레는 반복되면서

국내 산업 경쟁력은 내리막을 걸었다.


구조개혁을 가져오면서 반대파를 거의 무자비하게 분쇄한 그녀에 대해서

반대도 많았지만 지금에 와서는 필요악이었다는 시각도 늘어난다.


민영화를 통해 중산층을 양성하여 우군으로 삼자는 그녀의 전략이

통신 등 다양한 국가 산업의 주식을 분양하였다.

이는 한국의 노태우 정권에 의해 얼마간 벤치마킹 되었다. 

덕분인지 중산층들의 여당성향은 매우 강화되었고 꼴 보기 사나울 때도 많았다.


레이건과 보조를 맞추어 소련을 공격한 덕분에 사회주의는 정말 몰락해버렸다.

유럽국가들과 잘 지낸편은 아니고 언제든 영국 제일주의를 취했던 그녀는

지금 보면 정말 독특한 존재였다.


가난한 식료품점 딸로 보수주의자 속에서 하나의 장식품처럼 활용되었지만

끊임없는 노력으로 자신의 위상을 높여나간 그녀의 삶은 21세기의 성공스토리였다.

정파를 떠나 여성의 사회 참여의 기대감을 높인 점은 참 대단하게 생각된다.


엘리자베스 여왕을 롤 모델로 삼았지만 당대의 여왕과는 그리 친하지 않았고

어느 선을 넘어서 자신을 제왕화 시키는 순간 대처에게는 급추락이 있었다.


하지만 역사는 그녀의 삶을 가볍게 취급하지 못한다.

그녀 말고 영국 수상의 이름을 우리가 몇이나 기억할런지.. 전임자던 후임자던 우리 귀에

많은 사람이 기억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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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마다 - 세상에서 가장 빼어난 전쟁 연대기 동아시아와 그 너머 5
개릿 매팅리 지음, 콜린 박.지소철 옮김 / 너머북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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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마다는 무적함대를 뜻한다.

1588년은 스페인 제국이 이제 한참 뻗어나가던 시기다.

얼마전인 1571년에 레판토에서 무적 터키를 꺽어냈기에 한층 기세가 올랐다.

제국의 통치자 펠리페 2세의 눈에는 섬나라의 여자 통치자 엘리자베스가 가엽게 보였을 것이다.

한때 감옥 생활을 했고, 돈이 거의 없고, 결혼도 못한 그런 여인이 감히 자신의 맞상대가 될 것인가?

하지만 그의 눈에 가시 같이 박힌 네덜란드의 반란자들을 재정적으로 후원하는 통에

가만 놔둘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드디어 대함대를 보내 상황을 한번에 해결하려고 했는데..


결과는 잘 알고 있듯이 스페인의 참패였다.

이 책은 길게 길게 그 전후 과정을 설명한다.

전투는 아주 짧았고 전장에서 직접 손해를 입은 배는 몇 척 되지 않는다는 점(함대의 규모에 비해)

그리고 전쟁은 오랜 준비가 필요한데 이 과정에서 이미 많은 한계가 그어진다는 점

지도자들이 전장에서 보여준 선택은 후일 알게 된 것과는 차이가 많다는 점 등을

찬찬히 이해시켜준다.


대전쟁은 무엇보다 보급이 중요하다는 점을 새삼 알게 되었다.

아르마다라는 규모에 맞게 물자를 동원하고 전투 태세를 갖추는 일은 무척 어려웠다.

특히 화포에 필요한 포탄과 화약을 다 소모하고 나서는 더 이상 전투를 할 수 없었다.

항구에 가까운 영국은 수시로 보충을 받을 수 있었지만 스페인의 원정군대는 그렇지 못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식량과 물이었다.

전쟁보다 한참 전에 드레이크가 약탈한 물자 중에는 물통을 만드는 재료가 있었다.

이후 전쟁터에서 스페인군이 보관된 물통이 썩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짓게 되는 좌절된 표정이 선하다.

후일 나폴레옹 원정을 가능하게 한 전략 물자가 통조림이라고 이해되는데 이때의 해전도 매한가지였다.


스페인의 문제는 이런 세심한 점에 대해서 충분히 고려하기보다

의지를 더 강조하는 지도자를 가졌다는 점이었다.

규모를 통해서 상대를 제압하려고 하는 지도자의 귀결점은 

플루타크가 묘사한 페르시아의 대왕 다리우스에서 잘 나타난다.

군대를 그렇게 크게 만들기 보다 오히려 치밀하게 준비하고 보급망을 잘 깔았다면

그리고 적을 분열시키는 방법에 대해서 보다 연구했더라면 아마 승리를 얻을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반면 엘리자베스는 지극히 현명한 통치자였다.

빈약한 재정은 그녀에게 투기 행위와 함께 민영화라는 개념을 도입하게 한다.

드레이크라는 해적을 공인하여 소자본을 넣고 큰 배당을 받게 된다.

더 중요한 일은 해적을 국가 통치의 일원으로 공인해준 행위다.

덕분에 영국의 해군은 소수지만 가장 신분과 벗어나 실력에 의해 쟁취되는

강력한 군대가 된다.

이 군대가 계급과 위계질서에 의해 움직이는 거대한 스페인 보다 훨씬

효율적인 전투를 펼쳤다는 점은 역사가 잘 입증해준다.


민영화의 전통은 이미 그 당시 엘리자베스에 의해서 잘 발휘된 것이다.

이는 후일 그녀의 모방자인 대처 수상에 의해서도 이어진다.


퓰리처 상을 받은 이 걸작은 매우 길지만 세세하면서도 풍부한 상상력으로

1588년의 역사 현장으로 우리를 인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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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노래, 우리들의 이야기 - 윤형주가 말하는 나의 인생 나의 노래 나의 친구들
윤형주 지음 / 삼인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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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윤형주라는 한 음악인의 삶을 정치,사회적 배경에서 다시 정리 해보았다.


1. 명문대생 아마추어 윤형주는 왜 손쉽게 갑자기 떴을까?
우선 당시 음악이 산업다운 규모와 형태를 갖추지 않았다.
프로가 뛰어서 놀 만큼 밥의 크기가 나오지 않았다.
그 시대 부터 활약한 프로라고 하면 미군부대 위문 공연을 주로 하던
오래된 가수들이다.

또 하나 규제였다.
팝 자체도 그대로 내보내면 오히려 규제를 받는다.
덕분에 영어실력으로 팝의 최근 트렌드를 적당히 번안하는 것으로
훨씬 참신함을 보여줄 수 있었다.

2. 왜 그는 대마초 사건으로 감옥으로 가야했나?
윤형주의 지인, 면면을 보면
송창식,이장희도 있지만 김민기,양희은도 있다.
청바지 입고 기타 하나 들어도 음악이 되는 시대였고
예술이 가진 은유의 힘은 당대를 비판하는 도구로 쓰였다.
금지곡의 한 구절 한 구절들이 얼마나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나.

그 시대의 음악을 포크라고 한다. 포크는 미국에서도 존 바에즈 등 
저항음악으로 많이 작용했다.

덕분에 독재정권에는 눈에 가시였다.
독재 정권은 원래 엄격함을 요구한다.
도덕적 우위를 장악하기 위해 머리도 길지 마라 미니 스커트는 절대로 안된다고 한다.
지금 보면 참 웃기는 일이다. 궁정동의 술판을 보면 말이다.. ^^

하지만 어쩌려 이 시대의 현상인데..
어쨌든 독재정권이 밟아도 꺽이지 않는 자유의 뿌리에 있는 음악인들을
어떻게 도려낼까 하는 고민에
대마초가 잘 포개진다.
미국의 경우 히피 문화의 한 측면으로 마약이 있었다.
애플의 잡스도 가끔 이 시절 이야기르 하면서 마약 해보았냐고 강의 중에 이야기해서
논란이 되었다.

어쨌든 정부는 강력한 도덕적 무기를 쥐고 이를 맘껐 휘둘렀는데
윤형주도 거기에 타격을 받은 것이다. 본인은 직접 하지 않고 선물만 받았다고
하지만 어쨌든 거의 죽을 고비를 넘긴 것이다.

3. 세번째 국면은 산업화의 성공에 따른 대한민국 위상 강화다
88올림픽은 세계적 사건이었고 연이어 민주와, 동구권의 붕괴가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다.
민주화는 이제 금지곡을 풀어내고, 커져버린 방송 시장은 새로운 신인을
대거 등장시킨다. 달러를 좀 더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되자 해외 뮤지션의 국내 공연도
가능해진다.
그리고 내수가 커지면서 광고도 커진다.
윤형주는 여기서 방향전환을 시도한다.
프로 가수로서의 삶을 줄이고, 광고를 위한 CM 제작업에 집중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영어 실력을 발휘해 해외 뮤지션 국내 공연 사업에 나선다.

그리고 이 시대의 프로 가수들 면면을 보면

헝그리하다.

이선희 등의 삶을 보면.


4. 지금은 아이돌 시대다, 잘 만들어지는 예술작품을 보는 듯한 놀라움을 준다

하지만 반작용도 크다.

수백,수천의 경쟁률 속에서 약간을 만들어내는 이 길에서

탈락자들은 뭐가 될까?

마케팅의 전성시대, 주문형 상품을 만들어가는 '기업형'이라는 단어가 

시대를 만든다.


대치동학원,성형미인,아이돌


다들 그렇게 사람을 필요에 맞추어 가는 작용의 일부다.

과연 이 모든 일들이 사람에게 더 큰 행복을 줄까?

윤형주의 시대, 포크의 시대, 통기타 하나로 내놓던 가벼운 외침이

물위에 던져진 조약돌 처럼 퍼져나가던 시대의 자연스러움이

그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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