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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노래, 우리들의 이야기 - 윤형주가 말하는 나의 인생 나의 노래 나의 친구들
윤형주 지음 / 삼인 / 201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윤형주라는 한 음악인의 삶을 정치,사회적 배경에서 다시 정리 해보았다.
1. 명문대생 아마추어 윤형주는 왜 손쉽게 갑자기 떴을까?
우선 당시 음악이 산업다운 규모와 형태를 갖추지 않았다.
프로가 뛰어서 놀 만큼 밥의 크기가 나오지 않았다.
그 시대 부터 활약한 프로라고 하면 미군부대 위문 공연을 주로 하던
오래된 가수들이다.
또 하나 규제였다.
팝 자체도 그대로 내보내면 오히려 규제를 받는다.
덕분에 영어실력으로 팝의 최근 트렌드를 적당히 번안하는 것으로
훨씬 참신함을 보여줄 수 있었다.
2. 왜 그는 대마초 사건으로 감옥으로 가야했나?
윤형주의 지인, 면면을 보면
송창식,이장희도 있지만 김민기,양희은도 있다.
청바지 입고 기타 하나 들어도 음악이 되는 시대였고
예술이 가진 은유의 힘은 당대를 비판하는 도구로 쓰였다.
금지곡의 한 구절 한 구절들이 얼마나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나.
그 시대의 음악을 포크라고 한다. 포크는 미국에서도 존 바에즈 등
저항음악으로 많이 작용했다.
덕분에 독재정권에는 눈에 가시였다.
독재 정권은 원래 엄격함을 요구한다.
도덕적 우위를 장악하기 위해 머리도 길지 마라 미니 스커트는 절대로 안된다고 한다.
지금 보면 참 웃기는 일이다. 궁정동의 술판을 보면 말이다.. ^^
하지만 어쩌려 이 시대의 현상인데..
어쨌든 독재정권이 밟아도 꺽이지 않는 자유의 뿌리에 있는 음악인들을
어떻게 도려낼까 하는 고민에
대마초가 잘 포개진다.
미국의 경우 히피 문화의 한 측면으로 마약이 있었다.
애플의 잡스도 가끔 이 시절 이야기르 하면서 마약 해보았냐고 강의 중에 이야기해서
논란이 되었다.
어쨌든 정부는 강력한 도덕적 무기를 쥐고 이를 맘껐 휘둘렀는데
윤형주도 거기에 타격을 받은 것이다. 본인은 직접 하지 않고 선물만 받았다고
하지만 어쨌든 거의 죽을 고비를 넘긴 것이다.
3. 세번째 국면은 산업화의 성공에 따른 대한민국 위상 강화다
88올림픽은 세계적 사건이었고 연이어 민주와, 동구권의 붕괴가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다.
민주화는 이제 금지곡을 풀어내고, 커져버린 방송 시장은 새로운 신인을
대거 등장시킨다. 달러를 좀 더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되자 해외 뮤지션의 국내 공연도
가능해진다.
그리고 내수가 커지면서 광고도 커진다.
윤형주는 여기서 방향전환을 시도한다.
프로 가수로서의 삶을 줄이고, 광고를 위한 CM 제작업에 집중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영어 실력을 발휘해 해외 뮤지션 국내 공연 사업에 나선다.
그리고 이 시대의 프로 가수들 면면을 보면
헝그리하다.
이선희 등의 삶을 보면.
4. 지금은 아이돌 시대다, 잘 만들어지는 예술작품을 보는 듯한 놀라움을 준다
하지만 반작용도 크다.
수백,수천의 경쟁률 속에서 약간을 만들어내는 이 길에서
탈락자들은 뭐가 될까?
마케팅의 전성시대, 주문형 상품을 만들어가는 '기업형'이라는 단어가
시대를 만든다.
대치동학원,성형미인,아이돌
다들 그렇게 사람을 필요에 맞추어 가는 작용의 일부다.
과연 이 모든 일들이 사람에게 더 큰 행복을 줄까?
윤형주의 시대, 포크의 시대, 통기타 하나로 내놓던 가벼운 외침이
물위에 던져진 조약돌 처럼 퍼져나가던 시대의 자연스러움이
그립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