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9단
이 작품의 작가는 <시마과장>으로 유명한 히로카네 겐시다. <시마과장>을 보고 마음에 들어 이 작품에 손댄 사람들이 많다. 그들 중 상당수는 거부감을 많이 느낀채 책을 덮는다. 자위대 합법화는 기본이고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 남경학살도 과대평가 되었다는 등 우경화한 일본의 목소리가 너무나 적나라하게 담겨있다. 그래도 여기서 덮기에는 이르다고 생각한다.
먼저 작가인 히로카네 겐시가 원래 리얼리즘을 기본 원칙으로 가져간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시마과장>이 재미있었던 것도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주변 혹은 우리가 속해있는 현실세계의 보이지 않는 면을 잘 드러내주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 작품은 일본의 현실 정치를 대상으로 유사한 작업을 한 것이다. 대략 60명에 이르는 국회의원을 인터뷰했을 정도로 충실한 기초조사를 했기에 정치9단에 담겨있는 목소리는 결코 어느 만화가의 일방적인 주장이 아니라 오늘 일본을 끌고 가려는 우익 전체의 꿈이라고 봐야 한다. 작가는 이 만화의 독자로 상정한 대상은 일본 사람이고 그 중에서도 특히 젊은층에게 일본의 정치란 무엇인가 또 어떠해야 하는지 가르치기 위한 의도를 분명히 보인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 발자크가 소설이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했듯이 이 작품 또한 일본 자체의 속살을 들추어 볼 수 있는 하나의 거울로 보고 의의를 찾는다면 충분히 읽고 생각해볼 만한 만화다.
작품에 담겨 있는 많은 사건들 중 상당수는 실제 일본 내에서 발생한 것들을 큰 가감없이 채용했다. 일본의 정치개혁, 정치세력간의 이합집산과 뒷거래,여자공무원을 통해 정보를 빼내서 폭로한 기자에 대한 유죄선고,빌린 자금을 가지고 주식거래를 통해 돈을 벌어들인 사건, 여인들과의 스캔들로 연이어 사임하는 것 또한 뒷 이야기와 폭로 등등 대부분 실제 발생한 사건들이다. 참고로 후쿠모토 노부유키의 <은과 금>에서도 같은 시대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 비교해서 읽어 보는 것도 재미있다. 정치인에 대한 묘사는 <은과 금>쪽이 훨씬 더럽다는 듯 나타내진다.
반면 북한과 미국,중국 등 소재를 바깥에서 찾은 부분에 있어서는 허구가 매우 많다. 작가의 극적 긴장을 높이고 지향하는 이상을 드러내느라 작위적인 설계를 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 쪽 내용을 짚어보면 잇단 스캔들로 집권 자민당이 붕괴하는 것에서부터 신당 창당, 소선거구제 도입을 통한 정계개편으로 만들어지는 새로운 보수정당들의 경쟁까지 큰 흐름이 보여진다.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냉전의 붕괴에 따른 새로운 질서의 형성이다. 오랫동안 대치해오던 동과 서의 전선이 무너지고 평화가 오게 된 결과는 무엇보다 적과 아군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것이다. 소련이야 원래 태평양 전쟁 막바지에 참여해서 일방 선전포고 하고는 북방 열도를 점거해버렸고 이것이 문제되어 아직 일본과는 아예 평화협정도 맺지 않은 상태다. 냉전 기간 내내 일본은 소련으로부터의 핵공격을 두려워했다. 그리고 일본의 사상 자유화에 의해 일본은 적색노조 및 전공투 등 오랜 사상투쟁의 역사를 가진 나라다. 사회당과 공산당이라는 두 좌파 정당이 서로 경쟁적으로 활동했다. 특히 사회당은 한국을 인정하지 않는 대신 북한,소련 등과의 교류를 통해 소련으로부터의 군사적 압박을 줄이는 외교적 역할을 수행해야 전체적인 국익을 도모해왔다. 평화 애호세력이라는 자신들의 입장을 강조하고 한편으로는 이해를 구해서 전쟁에서의 피해를 막으려고 노력했다.
이제 냉전이 끝나고 소련과 북한의 역할이 대폭 줄어든 시점에서 사회당 또한 역할을 잃어갔다. 전세계적인 이데올로기 전쟁의 승패가 분명해지자 이들 정당이 가졌던 이상 또한 힘을 잃어가게 되었다. 덕분에 계속 되는 선거에서 사회당 등 좌파계열 정당의 몰락은 매우 뚜렷하게 되었다. 작품에서 나오듯 사회당의 우파계열은 급속히 우경화되어 탈당해 신당에 동참하게 된다. 남아 있던 좌파는 후일 자민당과 연합정권을 구성해보지만 점차 몰락의 길을 갈 수 밖에 없었다.
한편 반대편에서의 압력도 커졌다. 미국이 일본에게 과거의 동맹국 입장이 아니라 경제 전쟁의 경쟁자로 간주하고 무역흑자 축소 등 여러가지 측면에서 압박을 가하게 된다. 작품에 잠깐 언급되는 플라자합의는 노골적으로 일본의 자동차 수출을 ‘자율’규제하고 엔을 높여 수출경쟁력을 축소시키는 미국의 경제 간섭이 관철된 것이다. 이른바 미국과의 관계 재조정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요구되었다.
미국과의 일방적 관계에서 벗어나려면 결국 일본은 자기 스스로 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질 수 밖에 없다. 그러한 재무장을 막고 있는 것은 맥아더가 전쟁 직후 만들어준 평화헌법이라는 구조다. 이 헌법의 기초에 대한 공략이 우파로부터 착실하게 나오게 된다. 작품 중 카지가 듣고 말하고 하는 내용은 이러한 우경화의 맥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독도에 대한 생각도 일본의 주장과 한국의 주장을 대비시키는 카지의 접근은 사뭇 겸손한 수준이다. 그렇지만 정식 문제는 역시 북한에 대한 태도에서 나타난다. 납치, 땅굴 발견, 핵수송선 납치 등 북한의 여러 모습은 매우 작위적이다. 왜 이렇게 북한에 집착하는가 하는 질문은 한국 독자들일수록 던지고 싶을 것이다. 답은 먼저 소련이라는 주적이 사라진 상태에서 다른 대상을 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이 냉전이 끝난 상태에서 군축 요구를 막기 위해 악의축과 불량국가라는 개념을 만들었듯이 일본 또한 자신의 적을 가까운 북한에서 찾게되었다.
이 만화처럼 작위적이지는 않아도 실제 북한의 핵개발, 미사일 발사는 일본에 적지 않은 위협이 되었고 일본인 납치 사건은 양국의 대립에 중요한 논점이 되고 있다.
이렇게 허구적일까 하면서 만화를 비웃어도 거기에는 부끄러운 진실도 담겨 있다. 먼저 한국 정부가 당시 북한에 대한 일본의 식량지원을 방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북한이 식량난을 맞아 일본에 대해 인도적 지원을 요청하자 당시 YS 정부는 먼저 자신에게 사정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총력을 기울여 중국과 일본 등 여러나라에게 북한을 지원하지 말아달라고 외치고 다녔다. 이는 국제적 망신으로 여겨졌고 외교이 실패로서 지금도 부끄러운 일로 생각된다.
북한의 일본 주민 납치도 한편으로 보면 한국의 중앙정보부가 원조다. 대사관 직원까지 포함된 납치단이 70년대 김대중을 동경에서 납치해 한국으로 데려간 사건은 지금도 일본에게 약점 잡혀 있는 사건이다. 지금 되돌아보면 참 부끄러운 일들이지만 분명 대한민국 정부가 벌인 일들이다. 이런 걸 보면 일본에서 한국을 왜 그렇게도 하찮게 보는지에 대해서도 이해가 갈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작품에서 그려낸 일본의 세계는 오늘 다시 보아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최근 정권을 담당하고 있는 고이즈미의 행동에도 나온다. 고이즈미가 수상이 되는 과정에서 기존의 의원만의 선거에서 벗어나 직접 청년당원들에 대한 호소를 통해 더 많은 득표를 한점도 이 만화에 나온다. 특히 신사참배, 자위대활동 범위 확대 등에 매우 적극적이 된 것도 만화의 맥을 이어가는 것이다.
한 걸음 나아가 고이즈미가 인질을 구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한다는 것을 보면 역시 이 만화에서 수상이 직접 방문하여 인질 구하기에 나서는 장면과 너무나도 유사하다.
여기서 정치와 사회의 관계를 잠시 살펴보자. 일본의 정치는 수상을 뽑을 수 있는 의원들의 지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집단을 유지하고 적당히 돈과 권력을 나누어 주어 세력을 유지하는 역량을 가져야 한다. 수상이라는 자리가 임기가 딱히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고 늘 합종연횡을 통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항상 대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어야 한다.
한편 기업을 대상으로 그린 <시마부장>을 보면 사장을 이사들이 호선하는 장면이 나온다. 같이 일하는 부하들에 의해서 사장이 선출된다는 제도는 상당히 특이하다.
이 둘을 비교해보면 공통점이 나타난다. 즉 국가의 정치, 회사의 경영 그리고 가정 모두가 다 하나의 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국가나 사회가 가정의 확대판이라는 논리가 다시 확인된다.
작품의 디테일에 대한 작가의 노력은 여러모로 인정해주어야 한다. 창당 자금으로 50억을 선뜻 빌려주는 증권왕은 실제 인물을 소재로 삼았다. 고레가와 긴조로 증권으로 수천억을 벌어들인 인물이다. 기타 야쿠자, 정치가의 여인, 유권자들의 모습, 후원회 등 여러 곳에서 작품의 사실성을 높인다.
또 외국 중 미국의 뉴욕이나 워싱턴은 매우 디테일하게 묘사한다. 하나의 예로 뉴욕 방문중에는 노부라는 레스토랑 까지 나오는데 실제 이곳은 로버트 드 니로와 일본 요리사 노부가 같이 합작한 곳으로 노부의 책이 최근 국내에도 소개되었다. 미국에 대해서는 레스토랑 하나 그리는데도 이렇게 상세하게 노력하지만 한국과 중국에 대해서 지극히 무관심을 기울이는 것 또한 평균적인 일본의 시각을 반영한다.
이러한 태도는 히로카네의 다른 작품에서도 똑 같이 나온다. 대표작 <시마과장>을 보면 한국과 중국에 대해 전혀 나오지 않는다. 단 한컷도 묘사되지 않는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은 작가가 굳이 다른 일본인과 다르게 반한,반중적 태도를 가지고 있어서 이 만화가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작가는 단지 일본이라는 사회 자체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줄 따름이다.
일본은 중국에 대한 투자에서 한국보다 한참 늦었다. 대신 동남아에는 치중한 편이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오늘 한국이 일본의 전자산업을 따라 잡게되는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중국은 동남아보다 생산성이 월등히 높다. 그걸 알면서도 일본이 투자를 늦추게 한 것은 역시 민족간의 감정 문제다. 그 감정이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이유 또한 이 만화가 잘 보여주고 ㅣ있다.
일본 내에서는 너무나 쉽게 머리 숙이는 수상이지만 밖에 나가서는 그렇게 머리를 뻣뻣하게 세우게 된다. 중국에 가서 남경대학살에 대해 죽은 사람이 30만이 아니라 최대 20만 정도라는 주장이나 그 사건 얼마전 일본인 100여명이 중국 사람에게 죽은 것과 비교한다거나 하는 주장은 실제 현실정치에서도 중국에 대고 직접 맞대응 하기는 어려운 수준이다. 그럼에도 작품에서는 이를 자유롭게 주장한다.
모든 일은 전쟁에서 벌어진 일이고 당시 전쟁은 일본만 일으킨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는 비록 힘이 약해 졌지만 그렇다고 부당한 일은 하지 않았다는 태도다. 이래서는 도저히 서로 상대는 하고 있지만 독일과는 달리 존경 받기는 어렵다.
세계평화를 위해 기여하겠다고 유엔에 가서 기회를 달라고 하는 그들이지만 가장 첫걸음으로 이웃들에게서 아무런 인정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게 바로 지금 일본의 모순 된 모습이다. 작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일본 정치의 여러 모습들이 아주 선명하게 드러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