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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과장 1
히로카네 겐시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1996년 4월
평점 :
절판
시마과장
일본 경제가 급속도로 확장되며 세계를 뒤흔들어 놓을 시점의 이야기다. 하쯔시바의 실제 배경은 전자업계의 초일류기업 마쯔시다이다. 작가인 히로카네 겐시가 회사생활을 한곳은 마쯔시다의 선전부로서 실제 시마의 초기 역할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 시마는 여기서 팜플렛,달력 제작 등 홍보에 관한 일을 하다가 상사의 눈에 들어 미국지사에 파견된다. 여기서 주요 파벌간의 갈등에 끼어들었지만 슬기롭고 원만하게 해결해가면서 점차 발전해나간다. 미국의 뉴욕, LA, 라스베가스 및 필리핀까지 세계 여러 곳을 오가는 시마의 모습은 당시 세계 각지에 나가 활동하던 일본 회사원들 모두의 활약상을 한데 모은 것이다.
이 만화의 장점은 뛰어난 사실성이다. 만화를 통해서 일본 대표적인 기업의 내면을 볼 수 있다.
우선 조직은 하나의 봉건 영토이고 조직원에게 충성심은 절대적으로 강조된다. 운명을 같이 해야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곧 배신자로 취급된다. 특히 타기업의 스카우트 제의인줄 알고 섯불리 받았다가는 자신의 말이 녹음되어 상사의 책상에 놓이는 사태를 맞게된다.
조직의 가치는 때로 극단적으로 미화되어 회사가 곧 신성한 곳이라는 표현으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미국지사에서 여자와 애정표현 하다가 상사에게서 호되게 꾸지람을 듣는 대목에서 이 이야기가 나온다.
신성한 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그만큼 절대적이 된다. 시마를 보면 회사의 특명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수행한다. 심지어 홍보 관련해서 외부에서 주는 상을 받기 위해서 섹스파트너 교환을 하는 일까지도 감행한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가족을 얼마간 버린 상태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우선 본사의 전근 명령을 받았을 때 주저하면 감점한다는 제도도 작품에 나온다. 시마는 마침 와이프와 거리가 있던 상태라 거의 주저하지 않고 사령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고 덕분에 A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대가는 있게 마련이다. 시마를 비롯하여 부장이상으로 출세하면서 멀쩡하게 가족을 유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 다른 애인이 있고 본처와는 사실상 별거에 들어간 상태다.
참고로 일본은 간통죄가 없다. 이것이 더욱 가정 파괴를 부추긴다. 거기에 더해서 원조교제의 분위기도 일조를 했다.
그러면 이렇게 소중한 가정도 파괴되며 일중독에 빠진 일본 회사원들이 가지는 보람은 무엇일까? 작품의 마지막에 사장으로 오르는 나까자와의 입에서 나오는 “한 단계 오를 때 마다 전혀 다른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 이사가 되니 개인이라는 단위가 세계의 움직임에 관여할 때 공포감이라는 느낀다.”라는 거창한 말이 바로 그들의 심정을 고스란히 표현해준다.
2차 대전에서는 분명 일본이 졌지만 비참한 패전을 극복하고 이제 새로운 경제전쟁에서 이겨나가면서 미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을 누비면서 일본의 위상을 높이는 경제전사들이 느꼈던 프라이드를 잘 보여주는 말이다.
이렇게 열심히 일하면 회사는 그만큼 상응하는 대가를 줄 것인가? 대가는 준다 하지만 공정하게 주는 것은 아니다. 기업의 성장이 정체함에 따라 점점 좁아지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실력보다 세력다툼에 나서는 여러 파벌이 생겨난다. 공동 운명을 가진 파벌이 많으면 많을수록 성실성과 실력보다는 정치에 의해 자리가 결정된다. 덕분에 출세하려면 “실적과 실력으로 갈 수 있는 자리는 기껏 과장이다”라는 후쿠다 상무의 말을 기억해야 한다.
하지만 그래도 상사에게만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인간은 매력이 적다. 대표적으로 내세운 존재는 곤노 주임이다. 상사에게 있는 힘을 다해 충성하는데 황당하게도 부인까지 실은 상사의 첩이라는 설정이 나온다. 자신이 위에 충성을 바쳤으니 다시 아래에도 그만큼 요구를 한다. 그래서 지위를 이용한 성희롱의 주범으로 행동한다. 전형적인 상후하박의 모습인데 실제 직장생활에서 대부분의 출세주의자는 이런 모습을 나타낸다.
시마는 파벌활동도 열심히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이런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을까? 거기에는 바로 영어라는 포인트가 있다.작가가 합리적으로 제시한 근거는 그가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그 후에도 학원을 다니며 실력을 탄탄히 했다는 것이다. 당시는 전공투(한국으로 하면 전대협, 한총련이지만 훨씬 급진적으로 운동을 전개함) 세대라 대학때 거의 공부하기 힘들었다고 보면 시마의 영어실력이 희소성을 가져 더욱 중요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덕분에 해외 파견이나 각종 외국인들과의 협상에서 시마에게는 많은 기회가 주어진다. 하지만 실제로는 과장이 될 때까지 한번도 해외 나가보지 않은 사람이 그렇게 여러가지 문화를 오가면서 원만하게 일을 처리한다는 것은 솔직히 무리다.
그래서 설정된 것이 남들의 도움이다. 우선 어디를 가든 입사동기를 찾는다. 멀리 뉴욕이나 필리핀에서도 그리고 오사카 지방이나 다른 곳을 가도 늘 마음을 터놓고 고민을 함께하며 회사 분위기를 익힐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동기들이다. 이건 일본이라는 사회를 이해하는데 주요한 특성 중 하나다. 다른 파벌은 공식적으로 불허하지만 동기들과의 모임은 장려하고 이를 통해 서로 다른 조직간의 의사소통과 업무협조를 위한 백도어 기능을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여자에 관한 부분이 나온다. 파벌로부터 독립되어 낭인을 표방하는 시마지만 항상 상사들의 관심과 애정을 받는다. 왜 일까? 시마가 가진 독특한 매력으로 상사들의 가장 어려운 뒤치닥거리인 여자문제를 도맡아 처리하기 때문이다. 그냥 치닫거리가 아니라 여자들의 적극적 구애를 적당히 받아들이며 자신도 적당히 못 이기는척 그 분위기에 빠져든다.
여러 여자들은 때로는 몸까지 던져가며 시마의 성공을 위해 헌신적 도움을 준다. 왜 시마에게 이런 행운이 계속 따르냐고 묻는 독자에게 작가가 내놓는 답은 시마에게는 인간미가 있다는 것이다. 만화 곳곳에서 작가의 배려는 쉬지 않고 시마가 보인 선행을 열거한다.
파벌 싸움에서 밀려버린 옛 상사에게 찾아가 솔직하게 암이라고 알려주고 숨겨진 아들을 만나는데 도움을 준다. 인종차별 당하는 흑인 일러스트레이터를 위해 머리를 쥐어짜 놓쳐버린 계약을 가져갈 수 있게 해준다. 아침 전철에서 할머니에게 자리 양보하라고 핏대올리며 싸우기도 한다. 또 경품으로 받은 비싼 옷을 길거리 노인에게 넘겨준다.
어찌 보면 누구도 못할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상에서 하는 사람은 드문 그런 행동들이 계속 나타난다.
이 작품의 디테일한 묘사도 매우 훌륭하다. 한국의 독자로서 내입장에서 이렇게 만화를 통해서가 아니면 언제 긴자의 요정을 가볼 것인가, 직장내 성희롱의 생생한 현장 나아가 일본 이사회의 치열한 권력 암투를 생생하게 지켜볼 수 있을까? 기업가들의 홍보용 자서전을 아무리 보아도 이런 생생한 내용은 결단코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생생함은 아주 작은데서도 나타난다. 맨하탄의 일식집에서 요리사가 투덜대며 이 사람들은 튀김을 기름에 바싹 튀겨내기를 원한다고 하는 말도 취재에서 얻은 내용일 것이다. 여기서 한걸음 나아가 새우와 오징어는 기름장이 아니라 소금에 찍어 먹는 것이 맛있다고 하는 팁 하나까지 제공하는 친절함도 보여준다.
작품이 리얼하다 보니 찬찬히 보면 거꾸로 일본경제의 약점이 보인다.
무역적자를 해결하려는 미국의 고강도 압박에 의해 엔이 높아지면서 변화되면서 국내적으로 주식과 부동산에 거품이 급속히 형성된다. 거품이 좋지 못한 점은 불로소득을 만들어 결국 열심히 일하겠다는 의욕과 생산성을 떨어뜨린다는 점이다.
처음에 기업은 호황에 좋아한다. 수출에서 본 이익으로 해외 투자에 나서게 된다. 록펠러 센터를 비롯해서 미국의 부동산이나 심지어 고흐와 같은 그림에까지 투자한다. 하지마 이러한 투자가 기존의 사업과 시너지를 내기 어렵다. 일본의 강점은 제조업이었다. 미국과 맞붙어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던 일본의 철강,자동차,조선,전자 등 제조업 부문의 기술력 수준은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다. 각종 항공모함,비행기,탱크를 만들었던 그들인지라 전쟁의 폐허 위에서도 빠른 속도로 산업을 만들어갔다. 하지만 효율이란 부분에서 우위를 자랑했던 일본이지만 소프트한 부문에서는 그만큼 경쟁력이 뒤따라주지 않았다.
당장 만화에서 주인공들이 거금을 들여 사들인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차후 경영은 별로 좋지 못했다. 그렇게 된 원인 또한 만화를 잘 읽으면 나온다. 에피소드 하나로 자기 뜻을 펴지 못하고 신입사원 이야기가 나온다. 그림에 매우 우수한 재능을 가진 신입사원은 광고 부서를 희망하지만 전혀 엉뚱한 곳으로 배치 받고 만다. 인사팀에서 그를 배제한채 광고 부서에 배정한 그 해 신입사원들은 분명 역량보다는 누군가와의 연줄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풍조가 점점 심해지다 보면 하츠시바는 꽉 막힌 조직이 될 것이고 결국 하드 한 분야에서 강한 힘을 발휘하던 조직이지만 막상 소프트한 분야에서는 성과를 내기 어려웠다.
머리 좋은 엘리트로 뭉친 기업답게 여러가지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보지만 성공율은 점점 낮아지게 마련이다. 그렇게 변해가는 마쯔시다에서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3DO라는 게임기를 만들어 도전했다. 엘리트 중심의 경직된 조직이 만들어낸 이 작품이 과연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닌텐도의 패미콤과 시장에서 겨루어 얼마나 초라한 결과를 가져왔을까? 결과는 일본 기업 최대 실패작의 하나로 기록되고 말았다. 참고로 한국의 LG 그룹도 여기에 수억달러를 투자했다가 똑 같이 날려버렸다.
소니의 성공요인은 역시 학벌보다는 다양하고 창의적인 인재를 조직에 수용한 것이었다. 시마 또한 이러한 문제를 잘 알았고 아마 작가인 겐시 또한 같은 심정이었겠지만 실제 하쯔시바는 그렇게 움직이지 못했다. 차후 사령탑에 오르는 인물들도 이분야에서 큰 개혁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또 이 만화에는 한국과 중국은 나오지 않는다. 이것 또한 90년대에 와서는 일본의 약점이 된다.
일본은 실은 한국과 중국과는 그리 좋지 않은 사이다. 배경에는 역사적 앙금이 깔려있다. 한국과 중국은 각기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 따라 두나라 씩 모두 네 나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나라 모두가 한목소리를 낼 때가 한번씩 있다. 바로 일본의 과거사 반성을 촉구할 때다.
중국은 대범한 나라라 국교 수교할 때도 그렇게 일본에게 사과하라고 강요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절대 남경에서 벌어진 대학살이나 731부대의 만행을 잊지 않는다. 그것이 자연스럽게 중국에서 일본인들의 활동을 어렵게 만들고 역으로 일본의 해외투자에서 중국의 비중을 낮게 잡는 원인이 되었다. 반면 한국은 중국과의 수교는 늦었지만 매우 빠른 속도로 중국에 투자를 시작했다.
세월이 흐른 지금 보면 동남아와 중국을 비교해 볼 때 비용과 생산성이라는 측면 모두에서 중국은 동남아에 비해서 높은 성과를 가져왔다. 이는 곧 한국의 대표기업 삼성과 일본의 대표기업들과의 경쟁력 차이로 나타나게 된다.
작가가 인식한 이러한 문제점들은 결국 일본기업의 발목을 잡고 후속작 시마부장에서 그 후유증들이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