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면서 한참을 울게되었다. 스토리는 거의 알고 있었고 진행 또한 느릿느릿해서 급한 성격과 맞지 않았지만 그래도 눈물이 나왔다. 무엇보다 부모님 세대에 대해서 한번 더 생각하게 만들었다.
다 보게 되니 언뜻 앤서니 홉킨스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겨주었던 작품 <남아있는 나날들>과 비슷한 주제를 담고 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주인공은 철도와 함께 한평생을 보냈다. 기관차에 석탄을 부어넣는 화부에서 출발해서 운전을 하다가 승진해서 역장으로 한참을 보내고 이제 막 정년을 앞두고 있다. 맡은 일에 너무나도 충실하게만 살아온 사람이다.
철로라는 것이 사람에게 얼마만큼 큰 자유를 허용할까? 프랑스에서 인상파 화가들이 활약할 수 있었던 기반에는 철도가 있었다고 한다. 화가들이 기차를 타고 도심을 벗어나 자연을 바라보니 빠르게 스치는 풍경을 느끼며 전통과는 다른 터치를 가지고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행동반경을 넓혀주는 철도였지만 종사자들에게도 똑 같은 자유가 주어졌을까?
그 보다는 꽉 짜여진 틀이라는 개념이 더 들어맞을 것 같다. 워낙 빨리 달리다보니 길의 일부분만 흐트려져도 대형사고로 이어지는 기차운행은 종사자들을 매우 엄격한 규율속에 생활하도록 만든다. 다양한 수신호를 주고 받으며 점검하고 또 확인하게 된다.
이러한 삶을 조금 확대해보면 그대로 우리가 요즘 이야기하는 공장굴뚝의 시대가 느껴지지 않을까? 한번 들어가면 평생을 머물게되는 직장, 엄격한 연공서열, 자신의 일은 정말로 자신이 사명을 다해서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 등 일본 내지 한국식의 사회구조를 잘 나타내는 셋트가 바로 철도가 아니였을까?

그가 책임을 맡고 머무르는 역 자체가 더 이상 기차가 나아가지 않는 종착역이다. 꽉 짜인 틀에서 주어진 일에 너무나도 충실하게 사느라 자신의 소박한 욕구도 마음대로 드러내지 못했던 사람이 바로 주인공이다.

결혼 17년만에 아이가 생겼어도 그는 아내를 포옹하며 같이 기뻐해주지도 못했다. 그저 공적인 업무시간에 사적인 희로애락을 표현할 수 없다는 원칙만 되풀이 할 뿐이다. 이렇게 고지식한 남편을 나 말고 누가 돌볼수 있을까하는 고운 심성을 가진 아내가 옆에 있다. 하지만 그 아내도 급성 폐렴에 걸려 생사가 걸린 자식의 병원길에 동행해주지도 못하고 제때 큰병원으로 옮기지 못해서 마침내 싸늘하게 식어버린 자식의 몸뚱이를 안고 오는 아내가 탄 기차를 평소와 다름없이 수신호와 구호로 맞이하는 남편에게는 정말 한없는 원망을 쏟아내고 싶었다. 마침내 병약하던 아내도 기차를 타고 병원길을 가게된다. 역시 교대근무자가 없기에 혼자 보낼 수 밖에 없지만 이번만은 그도 그냥 보내기에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역에서 몇분을 더 끌어보았지만 그래도 기차는 떠나야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내마자 돌아오지 못하는 객이 되고 말았다. 홀로남아 지키는 역은 쓸쓸했다.

그렇게 열심히 앞만보고 주어진 일에 충실했지만 사회는 빠르게 변모하고 만다. 인정과 배려보다는 돈의 효용에 따른 합리성이 더 중시되는 모습으로 바뀌어간다. 새파랗게 젊은 자식뻘의 아이가 벌써 조직의 상층부에서 자신을 컨트롤하는 지위에 올라가있다. 그리고 매우 유감스럽지만 이제는 그만두어야 한다는 조직의 뜻을 전달한다. 지금 머무르는 집도 비워야 할 것이다.

이제 정말로 정년을 얼마남기지 않은 날에 철도원 생활을 같이 시작했던 동료가 기차를 타고 왔다.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이런 저런 일들을 회고한다. 이 대목에서 영화는 일본판 포레스트 검프라고나 할까? 짤막한 배경장면들을 활용해서 일본사회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서느라 겪어야 했던 힘들었던 집단적 잠재의식을 개인의 시선으로 보여나간다.
회사의 이익에 맞서서 동료들이 단합해가지고 취업열차를 운행하게 했던 점은 가슴 뿌듯한 추억이다. 이제 막 취업하러가게 된 어린 고교생들을 싣고 가면서 고향에 대한 좋은 기억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 기적소리를 울려줄 정도로 자상한 마음가짐들이었다. 그 뒷면에는 전원취업을 기뻐하며 도회지에 나가서는 모두 열심히 먹고 살아라는 격려를 하면서 만세 삼창을 하는 교장선생님의 모습이 보인다. 모두가 힘을 합쳐 잘 살아 보자는 소망은 한국의 새마을 운동과 다를바 없을 것이다. 서울역과 미아리에서 보듯이 그렇게 도회로 나간 소년 소녀들 중에는 힘에겨운 일에 눌려서 옆으로 삐져나가 술집의 매춘부로 도심의 부랑인으로 살아가게된 존재들도 꽤 있을 것이다. 씁쓸했던 부분을 옆으로 젖혀놓고서라도 고생을 추억으로 받아들이고 싶은 시간이다.
탄광촌이 지금은 노인밖에 없는 소멸해가는 공간이지만 과거에는 엄청난 달러를 벌어와 전체 국민을 먹여살렸던 그야말로 효자산업이었다는 회고도 담겨있다. 그러다 보니 아이 하나 데리고 달랑 왔다가 탄광사고로 목숨을 잃은 어떤 아버지의 모습도 생각난다. 한국사회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던 눈물겨운 사연들이다. 사진 한장 변변한 것이 없어서 아이가 어린 마음으로 그려낸 아버지의 영정은 바로 산업현장에서 고유의 인격이라기 보다 대체될 수 있는 그리고 소모되는 기계의 부품으로 취급되며 살아가다 짓눌려버린 우리의 아버지들의 모습 바로 그것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부모가 없어진 아이를 보면서 집에 자손이 없기에 거두어 대를 잇게하고도 싶었지만 아내의 건강이 염려되어 포기했는데 되돌아보니 너무도 아쉽다.
그러던 중에 조그마한 아이가 역앞에 나타나서 왔다갔다하다가 옛날 인형을 놓고 갔다. 한밤중에는 다시 그 아이의 언니가 와서 재롱을 떨다간다. 정말로 귀여운 아이였다. 따끈한 음료수를 나누어 주었더니 눈을 감게하고 입에 뽀뽀를 하는 그런 사랑이 담뿍안기는 그런 아이였다. 하지만 이아이도 여전히 인형을 놓아두고 갔다. 다음날 정말로 묘하게 자신의 아내와 닮은 제법 큰 아이가 나타났다. 상당히 구닥다리 교복을 입은 이 아이를 보면서 너무도 아름답다고 느낀다.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에 맛있게 요리를 해놓고 같이 먹자고 한다. 잠시 여러이야기를 하면서 참 이쁘다고 생각하는 때에 전화가 한통화 온다. 현실이 너의 행복은 환영이라고 깨우쳐주려는 것이다. “아 이제야 알겠다. 너야 말로 나의 아름다운 딸,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줄 알았던 너가 이렇게 커서 나에게 왔구나. 나는 너에게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는데 사회에서 조금만이라도 출세 했다면 도회지에서 근무할 수 있었겠지. 그랬다면 감기 정도 걸린 것으로 작디작은 너를 싸늘하게 식혀서 땅에 묻지는 않았을 것인데 말이다.”
먼저 간 사람들 중에 보고 싶던 얼굴이 나타나게 되면 그건 다음 차례가 자신이라는 메시지라고 했던가? 딸은 떠나가면서 인형은 들고 갔지만 아직도 식탁에는 보글거리는 찌게가 남아있다. 꿈일까 생시일까? 그건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단지 눈발을 헤치고 달려온 제설차의 시선을 따라갈 수 있을 따름이다. 한참을 달려와보니 눈에 뒤덮인 역에 쓰러져 조용히 누워있는 우리의 주인공의 모습이 나타났다. 한 철도원의 삶의 매듭을 보여주면서 그렇게 영화는 매듭을 짓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알렉산드로스, 침략자 혹은 제왕 - BBC 고대 문명 다큐멘터리 시리즈 2
마이클 우드 지음, 남경태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2년 4월
평점 :
품절



예전에 내가 플루타크에서 읽었던 알렉산더는 테베를 잔혹히 파괴하였고 술취한 상태였지만 한 때 자기의 목숨을 구했던 가장 가까운 부하를 창으로 죽인 것 등 여러가지 잔혹한 면이 있었지만 그래도 부하들에게 존경 받고 철학을 비롯해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가지는 인물이라는 인상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알렉산더에 대해서 떠오른 이미지는 히틀러였다.
그를 오랫동안 가르쳤던 아리스토텔레스가 별로 높이 평가하지 않았던 점들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파괴적인 인물인지는 몰랐다.
헤겔의 <역사철학>을 보면 알렉산더의 페르시아 정복전쟁을 아킬레스의 트로이 전쟁과 함께 비유해놓았다. 승리, 파괴 그리고 문명화로 포장된 약탈 마지막으로 영웅들의 짧은 생까지 모두 일치한다고 정리하였다. 실제 알렉산더 자신도 아킬레스 혹은 헤라클레스의 화신으로 간주되기를 원했다고 한다. 그런데 호머의 일리아드를 읽어 보면 아킬레스가 너무 잔혹하고 야만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어서 결코 더 가깝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더니 역시 이번 알렉산더에 대한 독서도 그런 결론으로 치닫게 되었다.
가령 페르시아와의 통합 정책으로 실시했던 1만명의 결혼이라는 행사도 피정복민 입장이었던 페르시아 쪽에서는 너무도 괴로운 기억이었다는 것이 이 책에서 확인되었다.
역시 역사는 이긴 쪽뿐만이 아니라 진쪽의 목소리를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BBC의 후원에 의해 긴 정복전쟁의 여정을 세세하게 답사하면서 만든 책이라 가치 있게 느껴지는데 그런 답사가 가능했던 것은 역시 참여한 사람들의 기록이 그만큼 충실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그런 답사 자체가 어려울 정도로 사료가 부족한 한국의 역사에 대해서 안타까움을 많이 느낀다.
그리스 역사에 관심이 많은 분들은 일독하기를 권하고 싶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ayonara 2004-12-06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알렉산더에 관한 다른 책을 또 읽으셨는지요. 개인적인 관심으로 읽어보려고 하는데..

소설이건 역사평설이건간에 간결하게 씌여진 책이 있는지요!? 혹시 아시는지요!? ^_^

사마천 2004-12-06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렉산더 -두려움을 정복하는 자, 세계를 정복하리라

알렉산더 -역사로 태어나 신화로 남은 남자, 알렉산더에 대해 알고 싶은 모든 것

두권이 새로 나왔습니다.

제가 읽은 것은 아니고 서점에서 간략히 훑어 보았는데 사진이 풍부해져서 읽기 쉽게 되있더군요. 연말에 올리버스톤의 알렉산더라는 영화가 개봉되면서 한번 붐이 나오겠죠. 하지만 그래도 가장 기초가 되는 책은 역시 플루타크 아닐까요?
 




니콜라스 케이지가 나왔다는 점,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비디오를 집어들었고 무려 2시간이 넘게 보았다.

2차 대전 중의 몇년간을 - 대략 40년에서 44년 까지
그리스의 작은 섬에서 실제 벌어졌다는 일을 가지고
보여주었다.
작은 섬이 이탈리아에 점령되고
평화롭지만 긴 점령기간 끝에
주민과 이탈리아 군인들이 서로 이해하며
동화되다가 마지막에 독일에 대항해서
함께 싸운다.

여주인공도 아름답고 행동도 귀엽게 봐줄만하지만
영화 전체로는 별로 집어들고 싶은 메시지가 없다.
그리스 전쟁은 이탈리아가 먼저 시작했고
역량이 안되자 - 영화에서도 나오듯이 14000명이 8000명에게 밀리고
동맹군의 체면 때문에 독일이 개입한다.
이탈리아는 리비아에서도
영국군에게 먼저 도발했다가
수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박살이 났고
롬멜이 급파되게 된다.
도대체 역량이 안되면 벌리지나 말지
히틀러가 무솔리니 한테 싸워달라고 나선 것도 아니다.
어쨌든 그리스 사람들에게는 고깝게도
이탈리아 군에게 점거 당한다.
하지만 이 군대는 정말 놀기만 좋아하는 날라리들이다.
그 덕분에 서로 좀 더 가깝게 지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막바지에는 갑자기 독일군에 맞서서 함께 싸우다가
대거 희생된다.
이것도 정말 우스운 진행이다.
거의 의미 없는 개죽음에 가깝기 때문이다.

전쟁 영화를 보고 싶다면 명작으로 꼽히는 옛날 작품을 보고
예를 들면 <콰이 강의 다리>
연애 영화를 보고 싶다면 다른 작품들을 추천하는 게 좋겠다.
예를 들면 <구름속의 산책>, <You've got mail>, <When harry met sally>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스탈린 시대에 실제로 있었던 비극들 중 하나를 소재로 삼아 당시 사회의 문제점을 잘 드러내 보여주는 작품이다.
영화의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무척 낡아보이는 구식 탱크가 눈에 들어왔다. 이 탱크를 앞세운 채 일단의 군대가 전진해간다. 용감한 적군의 용사들 앞에 놓인 평지는 그냥 아무나 지나가는 길이 아니다. 그 위에는 농부들이 한여름 흘린 땀으로 만들어진 작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제발 멈춰달라는 농부들의 하소연에도 군대는 이미 잡은 진로를 바꿀 줄 모른다. 농부들은 이 상황에서 어느 노인에게 달려간다. 상황을 바로 판단한 그는 말을 타고 달려와 지휘관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진로정정을 명한다. 혁명전쟁의 영웅인 코토바 대령의 위세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위세 좋은 사람이 그자리에 있지 않았다면 결과가 어떻게 나타났을까 하는 아찔함이 느껴진다. 이미 혁명에는 관료주의의 냄새가 짙게 배이기 시작한 것이다. 말단 조직에게 순간순간의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순발력을 키우게 하기 보다는 무조건적인 충성만이 요구된다.

그냥 천천히 비추어 주는 화면은 정말 평화로운 농촌의 모습이었다. 여기에 울리는 사이렌은 민방공 훈련을 나타낸다. 이 시점에서 피아니스트를 가장한 젊은 청년 하나가 나타난다. 그를 대하는 다른 사람들의 태도는 이 사람이 가진 사연의 무게를 나타낸다.
이제는 대령의 아내가 되어버린 옛날 애인과 잠시 만남을 가지고 옛날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그가 이곳에 나타난 목적은 그것이 아니다. 대령과 사적인 대화를 얼마간 나누었고 처음에는 정중히 차로 모시는 행동을 하는 과정에서 결국 그가 드러낸 정체는 정보부 요원이었다. 둘 사이의 갈등이 얼마간 나타났지만 저 건너편에 떠오르는 스탈린의 초상화는 잠시 침묵을 갖게한다. 둘 다 같은 초상화를 향해 경례를 붙인다. 한때는 대령에게 직접 훈장을 수여했던 바로 그 스탈린이지만 이제는 냉혹한 독재자로 변모해서 자신의 권력에 걸림돌이 되는 모든 존재들을 숙청해가고 있다.
그래서 이어지는 장면은 대령의 처형이었다.
어제는 전장에서 목숨을 걸어 영웅이 되었고 이제는 선량한 노인이고 마을의 어른인 그가 이렇게 죽어야만 했다.
이 때 단지 목격자가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죽어야만 했던 사람이 있다.
가끔 어떤 목적지를 찾아서 트럭을 몰고 헤매며 다니는 운전수가 있었다. 그에게는 분명 목적지가 있었다. 하지만 정말 아무도 그곳에 대해서 대답해줄 수 없었다. 그는 누구의 상징일까? 그가 그렇게 안타깝게 가려고 했던 곳은 결국 아무도 모르는 유토피아가 아니었을까?
바로 이 사람이 여기서 같이 죽게된다.
이는 스탈린의 숙청이 기존의 당과 군의 관료 뿐만이 아니라 그저 열심히 유토피아를 쫓던 무수한 평민층에까지 미쳤다는 점을 상징하게 된다. 아울러 한걸음 나아가 유토피아를 추구하던 모든 사람들이 다 위협을 받았다는 점까지도 나타낸다.
트로츠키주의, 개량주의, 인민주의 운동 등 같지 않은 모든 의견들이 배제되었다. 그 과정에서 고려인들의 피해 또한 적지 않았다는 점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후르시초프의 스탈린 격하운동이 나타나게 되는 배경을 상징적인 기법으로 잘 표현해낸 영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시회를 보고나서 우선 머리에 떠오른 것은 작품들이 미국인의 시각을 뚜렷이 담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퓰리처상의 다른 부문에는 "가급적 미국적 주제를 담은 최고의 소설", "애국심을 주제로 한 최상의 전기 또는 자서전" 등이 있을 정도니까 보도 분야 또한 창설자의 이런 시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을 것 같다.

퓰리처상에 보도사진 부문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1942년이라고 한다. 이때는 2차대전의 중반 무렵으로 유럽과 태평양 전선에서 미군 병사들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런 장면들을 담은 사진이 전시회의 시작을 장식하고 있다. 어쨌든 이 전쟁의 승리를 통해 미국은 초강대국으로 올라서서 냉전의 한축을 유지하게 된다. 나라밖으로 볼 때 국가의 위신이 크게 올라갔지만 산업화와 성장의 그늘은 있게 마련이다. 전시회의 시작 부분에 놓여있는 또 다른 사진 하나는 포드사에서 벌어졌던 파업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자행되던 폭력을 담고있었다. 산업사회의 풍요를 표현하는 예로서 전국민에게 차한대씩을 주게 만든 포드사의 위업이 종종 거론된다. 그 이면에는 이렇게 치열한 노와 사간의 갈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은 한 사회의 수준을 넘어서서 전세계적으로 확대되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곧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사진들은 이제 막 종결되려는 2차대전에 이어서 발생하는 한국전쟁을 담는다.

부서진 다리에 피란민이 가득 매달려 있는 사진이 하나 걸려있었다. 밑에는 평양 대동강이라는 사진 찍은 지명이 표시되어 있다. 전쟁의 비극은 무엇보다 모두가 생존의 문제에 매달려야 한다는 것이다. 등에 봇짐을 지고 손에 아이를 붙들고 하나는 또 등에 업고 그렇게 그 험난한 길을 가는 사람들은 우리에게서 그리 멀리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떠올리게 된다.
그럼에도 우리의 고민은 전쟁이 남긴 비극에 대해서만 머무를 수는 없다. 사진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하나의 컷이다. 매우 사실적으로 다가오는 이 사진을 보면서 잊지 말아야할 것은 사진을 찍는 사람은 한쪽 편에 서있다는 점이다. 작가는 한컷으로 표현되는 사진을 통해 얼마나 공정한 입장을 견지할 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때도 있기 마련이다.

같은 시기에 피카소는 <한국에서의 미군의 학살>이라는 작품을 그렸다. 미군병사들이 한국양민들에게 총격을 가하는 모습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이 작품은 국내에는 거의 소개되지 않고 있지만 이와 관련해 여러 증언을 취합한 기록물도 나와있다. 이 그림은 한폭의 화면에 작가의 기준에 따라 간명한 주장을 상징이라는 형식을 통해 담고 있다. 전쟁의 도덕성에 대한 문제를 심각하게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똑 같은 시기에 전쟁의 미군측 사령관이었던 맥아더 장군은 아버지의 기도라는 감동적인 내용의 기도문을 만들어냈다. 이 문장들을 읽어보면 진실로 아들을 사랑하고 신앞에서 겸손한 인간의 애원이 절실히 표현되어 있다.
하지만 똑 같은 인간 맥아더는 중국 본토의 여러 도시에 핵폭탄을 사용할 것을 여러 차례 강력하게 주장하다가 파면되었다. 당시 그의 핵투하 주장 또한 기도문을 만들던 것과 같은 심성에서 나왔을 것이다.
한 생명을 위한 더할나와이 없는 진지함과 수백만의 목숨을 끊는 단호한 결정과의 모순은 없었을까?

이러한 모순은 2차대전을 통해 절대강자로 올라선 미국사회 전반이 고스란히 안고 있었던 것이다. 밋밋한 사진 한장이 이런 복합적인 문제까지 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 모순에의 탐구는 다음 기회로 미루어지게 된다.

베트남 전쟁은 미국 사회가 벌인 전쟁 중에서 국민 전체의 동의를 받지 못했던 최초의 전쟁이라고 볼 수 있다. 2차대전이나 한국전쟁에 관한 보도가 일방적인 자국민 중심의 것이었다면 베트남전쟁이나 그 이후의 전쟁들에 대해서는 자기비판적인 보도가 병행해서 진행되었다.
따라서 피난민이나 참전군인들의 고충에 대한 사진은 이전의 전쟁과 다들바 없지만 여기에 더해서 보도는 전쟁터보다는 홍역을 앓고 있는 국내의 사회에 더욱 초점을 맞추게 된다.

이 당시는 직접 전쟁에 참전해야하는 젊은 대학생들의 반발이 가장 강했다. 사진에 나온 코넬대의 시위대는 직접 총을 들고 농성에 들어갔고 또 다른 사진에서는 켄트대에서는 군인들이 직접 총을 쏘아 4명의 시위대가 사망하는 사건이 담겨있다.

반면 전쟁에서 돌아온 귀향군인들의 아픔도 적지 않았다. 기념일에 쓿쓿이 앉아있는 한 흑인 부상병의 모습도 애처롭고 더해서 한 귀향군인과 가족에 대한 사진이 무척 인상적이다. 정복을 입고 걸어오는 귀향포로를 맞이하기위해 가족이 환한 표정으로 뛰어오는 사진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얼굴이 보이지 않는 주인공이 실은 매우 굳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한다. 무려 5년 동안 고된 포로 생활을 했고 그 사이 가정은 아내의 불륜으로 파탄직전에 놓여 있었던 상태에서 누가 얼굴을 활짝 필수있을까? 기껏해야 <25시>에 나오는 안쏘니 퀸의 얼굴 정도가 잡혔을 것이다. 하지만 사진작가는 그의 얼굴을 가린채 뒤에서 앵글을 잡게되었고 결국 환히 웃는 가족들의 모습만 보도되었다.

이 당시 클린턴은 교묘한 수단으로 ROTC 징집을 기피하였고 나중에 대통령 선거 당시 크게 논란이 되었다. 원래 미국사람들은 세금을 빼먹거나 병역의무를 기피했다고 하면 무조건 탈락시키는 것이 투표관행이었다. 하지만 이 때 클린턴에 대해서는 예외적인 투표성향을 보였던 것은 매우 이례적인 행동으로 이를 통해 우리가 베트남전쟁에 대한 미국사회의 사후평가를 알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렇게 클린턴이 보여준 이중적인 태도는 통치기간 중 자신의 행동을 제약하는 요소가 되기도 했다. 임기 초반에 소말리아의 내전을 해결하고자 직접 투입했던 군부대가 공격을 받아 희생자가 발생했다. 이때 소말리아의 성난 군중들은 미군시체를 줄에 묶어 거리를 끌고 다녔는데 이 장면을 잡은 사진이 크게 보도되었다. 자기는 베트남에 나가지 않아놓고 마찬가지로 그리 큰 명분이 없는 전쟁에 젊은이들을 내보내는 행동에 대한 비판이 쏟아진 것은 물론이다. 결국 이 보도는 미군의 조기철수를 유도해내었다.
얼마전 프랑스 외인부대에 대한 특집기사가 <한겨레21>에 실린적이 있다. 프랑스 같은 선진국이 굳이 외인부대를 두는 이유도 국내여론과 무관하게 위험지역에 군사적 개입을 하려는 의도라고 한다.

베트남전에 대한 긴 보도가 만들어내는 논란과 더불어 미국의 국내문제도 많은 양의 사진과 보도, 논란을 만들어내었다. 특히 흑백차별은 미국 사회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잣대가 되었다. 퓰리처상도 여기에 대해서 적지 않은 할애가 있었다. 시작은 법률로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실제로는 존재하는 차별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흑인미식축구 선수가 경기장에서 의도적인 폭력으로 불구가 되는 모습을 드러낸 사진이 첫작품이고 조금 지나면 흑백차별에 항의하기 위해 도보행진을 하던 흑인젊은이가 거리에서 총을 맞는 모습이 그 다음이었다. 미시시피 주 최초의 흑인대학생이었다는 이 젊은이는 비록 쓰러져서 계속 걸음을 이어가지 못했지만 그가 내딛은 첫발은 곧 마르틴 루터 킹 목사와 같은 수많은 인권운동가들의 참여를 이끌어내었다. 부당한 차별에 대한 저항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백인사회에서 교육을 받지 못한 가난한 백인들은 자신의 피부색말고 내놓을 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더더욱 이런 차별에 적극적이었다. 그래서 학교가는 버스에 흑백 어린이들을 같이 태우자는 정부의 결정은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경찰이 직접 개입해서야 질서가 잡혔지만 전국 어느 곳에서나 흑과백 사이의 긴장은 이어졌다. 보스톤에서 발생한 한 흑인 변호사에 대한 백인들의 집단린치를 담은 사진은 이런 단면을 잘 드러내 준 작품이었다. 특히 손에 자유를 상징하는 성조기가 달린 깃대로 흑인에게 폭행을 가하는 백인 젊은이의 모습은 뭔가 묘한 모순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투쟁은 순교자를 만들기 마련이다. 루터킹 목사의 장례식에 대한 사진을 통해 우리는 흑인들이 분노하지만 결코 좌절하지 않을 것같은 의지를 보게된다.

곳곳에서 벌어지는 싸움을 통해 사회는 한발씩 움직여간다. 서구사회는 개인대 개인의 문제를 약속 조금 거창하게 말하면 계약을 통해 해결해나간다. 기독교의 모태가 되는 유태교에서도 신과 인간의 관계가 일방통행적인 아니었으니까 이런 방식의 해결은 꽤 오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대법원의 판결들을 통해 계속 차별을 금지하는 정책들이 정당성을 갖게되면서 미국사회는 오늘의 모습으로 변화해나가게 되었다.

이러한 흑과백의 문제 말고도 소외와 가난에 대한 보도도 제법 많았다.
한 농장에서 일하는 흑인여자 노동자의 지친 모습은 아무리 일해도 그날의 삶을 연명하는 것이외에 돌아오는 것 없는 애처로운 장면이다. 그럼에도 기회의 땅 미국으로 넘어오기위해 목숨을 걸고 강을 건너는 멕시코 노동자의 모습은 묘한 대조를 보여준다.
장면이 조금 바뀌어 필라델피아의 홈리스(집없는 사람들)들이 사진에 나온다. 한남자가 따뜻한 가게안에서 식사를 하다가 창밖을 보니 길거리에는 또 다른 사람이 앉아서 자기를 쳐다보고 있다. 창을 사이에 놓고 서로 마주치는 두사람의 시선을 보면서 묘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
이외에도 값싼 마약에 푹빠진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진도 사회적으로 마약퇴치 운동을 일으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보도는 종종 윤리의 문제를 야기시키곤 한다.
수단의 기아를 다룬 사진 중에 인상적인 것으로 굶주린 어린아이가 쓰러지려 하는 것을 한발짝 떨어진 곳에서 대머리 독수리가 기다리는 장면이었다. 작가는 사진 촬영을 하고 아이를 구했다고 한다. 이때 보다 극적인 장면을 포착하기 위해 일정 시간을 지체했는지 여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아이를 구하는 것이 먼저가 아니었나 하는 논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에 따른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여류 사진작가였던 당시 수상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비슷한 우려가 드는 것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쿠데타와 혁명에 대한 보도다. 보통 이런 보도사진에 담긴 처형장면들은 대부분 이를 자행하는 사람들의 야만성에 대한 분노를 일으키기 마련이다. 전쟁이 두 주체가 맞서서 치열하게 싸우는 공간이라는 것을 상기해보면 양쪽 모두에게서 저질러질 수 있는 폭력을 어느 한쪽의 것만 끄집어내 공개한다면 그것 또한 문제가 될수 있을 것이다. 이란혁명 이나 엘살바도르 등에 대한 보도들은 이런 우려를 가지게 만든다.

미국적인 관행 덕분에 사진 중에서 유럽에 대한 것은 거의 없었다.
뚱뚱한 옐친이 락밴드와 같이 춤추면서 지어낸 듯한 웃음을 보이는 것이나 무너진 동상에 모여있는 동구권 사람들의 모습이 있기는 했지만 그렇게 인상적이지는 못했다.

작가들 중에 아마추어도 꽤 많았다. 특별한 사건이 벌어지는 것은 아주 짧은 순간이고 꼭 전문가들에게만 이를 포착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작가 중에 일본 사람이 몇 있었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자기 나라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한 보도 이외에도 멀리 베트남의 밀림을 누비다가 포화의 와중에서 희생되었던 작가도 있었다 한다. 물론 한국사람은 없다. 오랜 식민지 생활에 눌려있다 잘살아보려고 발버둥치던 한민족에게는 아직 세계인들의 보편적 가치에 호응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만한 여유는 없었다고 생각된다.

여기 나왔던 작품들을 보다 잘 이해하는데에는 역시 영화라는 텍스트가 효과적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특히 올리버 스톤이 만들어낸 일련의 작품들은 사진이 가진 한사람의 시각이라는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기회를 줄것이다. 다른 작품을 젖혀놓고도 최소한 <7월4일생>과 <살바도르>, <하늘과 땅>은 꼭 보아야할 작품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사진들이 담고 있는 갈등, 생각, 욕망들이 결코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포드사의 노동자가 두들겨 맞는 장면이 노사정위원회가 깨져나가려는 지금 이순간의 우리사회와 그리 먼 이야기는 아닐것이다. 흑백의 처절한 갈등도 외면적인 봉합으로 이끌어내는 미국인들의 정치기술은 동서간의 치열한 대립으로 치닫고 있는 한국민들에게 좋은 교훈이 될 것이다. 동서화합도 못하고 남북통일을 꿈꾼다는 것이 우스운 것처럼 남과북이 함께하지 않고서야 공멸을 맞을 것이라는 것도 자명한 이치다. 그런 상념들을 안고서 천천히 전시장에서 발길을 돌려나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