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들을 주인공으로 현란한 컴퓨터그래픽으로 그려졌지만 내용은 순백색의 미국 가치관이 가득 담긴 영화다. 스토리는 주인공의 본의 아닌 일탈, 도움 주는 존재에 의한 성장, 본래의 무리에의 복귀, 능력 발휘에 의한 영웅으로의 등정 등 일반적인 영웅담의 구성을 그대로 따른다. 이 영화의 관객이 될 사람들은 먼저 미국의 어린아이들일 것이다. 그들에게 보여주는 영화는 그만큼 교육을 의식하지 않고 만들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영화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간략히 몇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어린아이들이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쉽게 좀 노골적으로 드러나게 표현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메시지는 꼭 아동물에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성인들을 위한 영화에서도 손쉽게 발견되기 때문에 한번 짚어 두었다가 필요할 때 떠올리는 것이 좋을 듯해서 여기 요약해보았다.
첫번째 메시지는 약자를 보호하라는 것이다.
주인공이 어리고 늙은 대조적으로 기존 리더는 약자들이 낙오하거나 도태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는 태도를 취한다. 현대사회에서 아무나 붙들고 “약자를 보호해야 하느냐 마느냐”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표면적으로는 대부분 보호해야 한다는 답을 할 것이다. 하지만 속으로 꼭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런 태도가 공식적으로 표면화된 것에는 무엇보다 기독교의 영향이 크다. 그 이전의 사회는 그야말로 약육강식이고 힘이 곧 정의라는 주장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대사상가인 플라톤의 글에 보면 여자도 남자와 동등하게 대우하라는 내용이 있는데 실은 여자가 남자와 같은 수준의 역할을 할 때만 그렇게 해주라는 것이다. 능력 있는 사람을 대우하되 장애인이나 지진아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냉정하게 끊어버리는 태도가 바로 플라톤의 정의로운 국가의 사회정책이었다.
여기에 비해서 기독교는 사랑을 가르친다. 사회가 꼭 그렇게 운영되는 것은 아니지만 표면적으로는 늘 그런 주장을 반복한다. 그것만으로도 한국이나 일본 보다는 훨씬 우월한 사회다.
두번째 메시지는 전체를 위해 기여하라는 것이다.
혼자만 낙원에 머무르면 편하게 살 수 있지만 굳이 남들을 위해 위험을 자처하는 자세를 본받고 높이 사달라는 것이다. 공동체를 위한 자원봉사를 미국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세번째 메시지는 너는 할 수 있다는 것이다. <Back to the future> 시리즈를 보면 늘 비실비실하게 사는 아버지가 마음에 들지 않던 아들이 과거로 돌아가는 시간여행을 해서 아버지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되돌아 오게 된다. 와서 돌아보니 모든 것이 너무나 환상적으로 바뀌어 있었다. 작은 계기가 사람을 너무나 크게 바꾸어 놓은 것이다. 실제 삶은 꼭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지만 항상 그들은 무한한 가능성이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고 각자 최선을 다하도록 교육하게 된다.
네번째 메시지는 최선을 다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니까 너무 결과에 연연하지 말라는 것이다. 대신에 최선은 꼭 다하라는 요구다.
이것도 생각해보면 우습다.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진 장치 같이 보이기도 한다. 사회란 아무리 열심히 모두들 뛰었다고 해도 모두를 만족시키기에는 너무 비좁다. 그렇게 볼 때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겠다는 자세다.
영화의 마지막에 있었던 멘트는 낙원이 있기 위해서 있었던 여정을 기억해달라는 것이다. 결국 미국의 건국신화를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매사추세츠 주 플리머스에 모형으로 놓여 있는 <메이플라워>라는 배를 보면 정말 이렇게 조그맣고 약하게 보이는 나무배를 타고 거친 대양을 건너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대단하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자유를 찾아서 계급 없는 사회를 위해 길을 떠난 사람들이 만들어낸 국가가 바로 미국이다. 그리고 이 나라가 어떻게 해서 오늘까지 발전하게 만드는 원동력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