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1번지 대치동 엄마들의 입시전략
김은실 지음 / 이지북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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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모두들 궁금해하던 대치동의 일면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책이 나온 시점이 좋았다고 이야기해야 한다. 그런면에서 마음에 들지 않아도 한번 관심을 가져볼 책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하지만 대치동에서 꽤 이름 있는 학원을 경영하는 분을 만나보았는데 결론적으로 이 책의 내용은 매우 편향되었다고 한다. 학원을 몇가지 유형으로 분류하면 그 중 하나가 브로커 유형이 있다고 한다. 공부 잘하는 아들딸 두어서 말빨 강하고 나름대로 입시전문가로 떠 받들어지는 그런 학부모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아예 입시학원 브로커로 나서서 거꾸로 선생을 모집하여 강좌를 만드는 타입이 바로 브로커 유형 학원이라고 한다. 이 책에 소개된 어느 학원 하나가 바로 그런 대표적인 예라고 한다.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다보니 당연히 돈으로 싸바르지 않으면 자녀들이 절대로 좋은 대학 못간다는 결론에 도달 할 것이다.

이런 입시현실을 개탄하기 전에 공교육의 몰락을 만들어낸 교육정책에 대한 비판을 앞세워야 할 것이다. 사교육을 없애겠다는 이해찬식 개혁이 결국 여기까지 왔다. 최근에는 아예 노골적으로 학원을 다니며 강제로 수강료를 낮추도록 협박하고 다닌다는 소문이다. 문제가 그걸로 해결될까?

한국에서 평등주의적 교육정책은 김대중과 노무현 두 대통령이 방향이었다. 둘 다 상고출신이라는 점을 잘 유념해야 한다. 이들의 의도는 평등이었지만 결과는 더 노골적인 불평등이다. 그리고 그 정책의 실행자로 이해찬이 있었던 점도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

어설픈 개혁은 문제만 키운다. 그 문제를 만든 사람이 자기 인지도 모르면서 계속 개혁하자고 다닌다. 외형적으로는 평등주의 하지만 내용적으로는 차별주의가 진행되는 오늘 한국 교육의 모순을 어떻게 볼 것인가? 지금 이대로는 절대 개천에서 용날 수 없다. 똑똑한 가난한집 학생이 노력해서 좋은 대학가는 사례는 점점 줄어든다. 서울대 총창 정운찬도 원래 어려운 집안에서 일어나 미국유학을 다니고 오늘 지위까지 올랐다. 그 사람 입에서 이대로는 안된다. 강남 아이들 밖에 없다고 하는 소리가 나온다.

카지노에서 보면 규칙이 복잡한 게임일수록 아마추어가 따기 어렵다. 요즘 대학입시제도를 정확히 꿰고 있는 사람을 만나기는 무척 어렵다. 결과는 당연히 정보와 자금이 우월한 강남사람의 승리로 끝날 수 밖에 없다. 제도를 simple하게 만들지 않는다면 사교육의 번창과 불평등의 고착화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입에 발린 전인교육이라는 말 보다는 그 쪽이 훨씬 가난한 집안에서도 희망을 갖게하는 힘이 될 것이다.

한국은 가난한 나라였다. 그걸 오늘까지 이끌어온 힘은 역시 사람이다. 사람을 만드는 힘은 다시 교육에서 찾아야 한다. 교육을 무시하고 방치하면 결과는 경쟁력의 추락이라는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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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xim 2005-01-14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교육 몰락이 어째서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정책 때문입니까? 과거 박정희,전두환 때는 과외 없었나요? 평준화 폐지하면 과외 없어지나요? 아마 더 심해질 겁니다. 제가 평준화 이전세대거든요.



저 초등학교 6학년때(1966년입니다) 중학입시 준비하느라고 일년내 일요일날에도 학교수업했고 여름방학때도 매일 새벽 6시에 등교해서 공부했습니다. 저 서울출신 아닙니다. 인구 10만밖에 안되는 소도시에서 초등학교 다녔어요. 그런 곳에서도 입시광풍이 그정도 였습니다.



우리나라 공교육 망가진 걸 자꾸 정부탓하는 분들 정신차리셔야 합니다. 공교육이 망가지는 1차적 책임은 저 책의 주인공들 같이 자기 자식만 생각하고, 공교육에 돈내는 걸 아까와하면서 사교육에는 월 몇백만원씩 들이는 학부모들과 이런 태도를 정당화하는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교육문제는 교육문제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꾸 정치적 입장과 결부시키니까 교육문제의 해법이 안나오는 겁니다.

paxim 2005-01-14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저 책의 내용중 상당부분은 과장이거나 왜곡입니다. 저렇게 정신나간 짓 안하고도 서울대 합격시키는 집 많아요. 제 친조카도 강남 사는데 100만원짜리 과외 안하고 비싼 학원도 별로 안다니고 초등학교 때부터 전교 1등해 서울과학고 들어갔습니다. 과학고 졸업한 뒤 서울대 나왔구요. 일부 메이저 언론에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과장된 주장에 근거해 편향된 주장을 펴는 건 우리 교육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해가되는 겁니다.



노벨상 수상자인 카이스트 러플린 총장도 한국은 중고교시절 입시 때문에 너무 아이들을 소진시켜 고등교육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습니다. 중고교시절 학생들을 무조건 경쟁체제로 내몰면 교육수준이 올라갈 거라는 일부 세력의 주장은 과학적 근거가 없는 것입니다.



적당한 경쟁은 물론 필요하지만 평준화를 전면해제해 입시광풍을 불러일으키는 건 학생들의 진정한 실력을 향상시키는데 도움이 되기보다는 해가 될 것입니다. 경쟁은 나이에 따라 서서히 강화해 가는 것이 옳습니다.



따라서 저는 평준화의 기본틀을 유지한채 특목고와 자립형 사립고를 설립하는 현재의 정책이 옳다고 봅니다. 물론 교사평가제나 학교평가제 같은 건 도입해야겠지요. 제가 반대하는 건 당장 전면적으로 평준화를 폐지하자는 주장입니다.



마치 두 대통령이 상고를 나온 것이 교육정책과 연관이 있다고 주장하는 우리나라 일부 기득권층의 비논리성에는 아연할 따름입니다. 그런 논리는 박정희의 평준화 정책이 아들 박지만의 고교입시를 위해서였다고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근거가 없는 선동적인 주장입니다.

사마천 2005-01-16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긴 반론 감사합니다.
입시제도는 제 기억으로는 전두환시절부터 거의 20번 가까이 바뀌었습니다. 그때 마다 개혁이라는 이름이 붙었죠.
하지만 지금 제도에 만족하는 사람이 많나요? 과연 김대중 1기 교육부장관인 이해찬이 공약한대로 다양한 인재가 배출되었나요? 답은 백번 아니라고 할 수 있죠.
이해찬이 총리로 지명되었을 때 가장 반대 목소리를 높인 사람들은 교육계였습니다. 진보와 보수 모두 이해찬을 반대했죠. 왜 그랬을까요?
이해찬은 자신이 개혁이고 양심이라고 간주하고 주변을 모두 하대했습니다. 그래서 교장선생님들의 집단연명장 파동을 통해 결국 퇴출되었죠. 일종의 하극상이지만.
노무현 정부의 교육정책은 한마디로 철학부재입니다. 처음 임명하려던 대안학교 교장, 실제 임명한 지방대 총장의 경우 평등교육 지향이었죠. 다음 안병영은 부동산 대책 일환으로 입시제도를 바꾸었고 이번에는 갑자기 대학개혁한다고 서울대총장 출신을 임명합니다. 여기에 어디 일관성이 있나요? 누구라도 노무현 대신에서 맥을 짚어 줄 수 있습니까? 상고라고 비아냥 거리려는게 아닙니다. 단지 두 사람 모두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세계를 자신의 기준으로 너무 쉽게 자기식대로 고집스럽게 바꾸려고 하는게 안타깝다는 점이죠.
한국 학부모들이 그렇게 보내려고 하는 조기유학의 종착역인 미국은 어떤가요? 거기에 교육부가 있읍니까? 없죠. 거의 대부분의 행정은 지역자치체에 의해 수행됩니다. 자유를 주고 알아서 경쟁해서 1류를 만드는 겁니다.
지금 한국제도의 문제는 이미 대학이 평준화를 거부하며 본고사스타일의 입시를 부과하는데 정작 공교육에서는 이게 전혀 커버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믿다가 발등찍히겠습니까? 아니면 미리 대비하실 건가요? 라고 묻는게 이런 유의 책들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필요한 그런 존재죠.
 
한국을 버려라
이성용 지음 / 청림출판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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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견 맞는 소리가 많이 담겨져 있다.

삼성차가 무너지자 그때까지 조용히 있던 수많은 전문가들이 망할 수 밖에 없었다는 당위론을 들고 나온 것은 대표적으로 부끄러운 사례다. 조금 확장하면 대통령이 레임덕이 되면 갑자기 아들의 비리가 나타나 구속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힘이 있을 때 숙이고 없어지면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는 행태에 대한 반성은 필요하다.

모두가 문제로 생각하는데 아무것도 되지 않는 개혁에 대한 실망도 많다. 수십년째 진행되는 교육개혁은 대표적인 예이다.

특히 적당히 어길 수 밖에 없는 법의 대목은 준수하지 못할 높은 기준을 앞세우고 덕분에 행동하는 모두가 범법자가 되면 이를 적당히 봐줄수 있는 권한을 관료가 누리는 기형적 체제에 대한 통렬한 지적이다. 최근의 성매매 관련법도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이런 부분들에 솔직한 지적과 충고를 할 수 있는 저자의 태도를 우선 높이 산다.

하지만 한국이 꼭 버려야 할 것들로만 가득차지는 않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한국사람의 적응력은 매우 뛰어나다. 드러커의 <새로운 현실>이라는 책 서문에 보면 한국에 대해 결코 빈말이 아닌 진정한 격찬을 길게 서술한 것을 볼 수 있다. 폐허에서 공장건설 그리고 전세계 수출로 1위까지 올라가는 과정을 단 수십년만에 이루어내는 역동성에 대한 감탄이다.

이 과정에서 속도와 결과를 위해 과정의 합리성 이해당사자의 동의를 만들어내는 민주적 절차의 부재 등 여러가지 문제는 한편으로는 동전의 양면처럼 나타나게 된다. 지금 이 시점에서는 과거의 성과에 대해 부정할 필요도 한국인의 속성에 대해 자기 비하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된다. 장점은 장점대로 살리고 단점을 보완해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서구의 합리적 정신에 충실한 컨설팅 회사 - 저자가 근무하는 - 의 관점들은 모두 한국이 부실기업을 처분하는 구조조정을 철저하게 하라고 외쳤고 대표적인 예로 하이닉스를 거론했지만 하이닉스는 결국 한국인들의 여러 노력으로 살아나서 자신을 사려고 했던 마이크론 보다 훨씬 높은 영업이익율을 내고 있다. 다 망해가던 대우조선도 LNG에서 발휘한 놀라운 적응력으로 회생한다. 이런 점들이 숫자와 지표에 나타나지 않는 숨은 저력이고 바로 한국인의 장점이다.

영미자본주의에서는 기업의 수명이 짧다. 자본과 노동이 빠르게 헤쳐모여를 한다. 하지만 한국이 IMF 이후 추진한 구조조정에서는 흩어진 노동을 재수렴할 자본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 결과는 오늘의 청년실업과 소비불황이다. 이것이 신자유주의 정책이 일방적으로 한국에 적용되서는 안되는 점이다. 그럼에도 많은 컨설팅 회사가 best practice라는 이름 하나를 무기로 삼아 한국을 재단하면서 엄청난 수수료를 챙겨갔다. 이것 또한 합리적인가?

컨설팅 산업은 원래 영미에서 발달해서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여기에 대해 동양권에서 유일하게 독창적인 내용을 내세운 사람이 일본 매킨지 전사장 오마에 겐이치다. 일본 제조업의 세계 1위 도약과 함께 일본적인 것의 강점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답하며 미국을 누볐다.

반면 한국은 지금 삼성전자라는 1위 기업을 가지고 있지만 한국컨설팅 업계가 해외에 대해 당당히 자부심과 노하우를 전파한다는 소리는 못 듣고 있다. 왜 일까? 한편으로는 H/W적 기술 빼내기 위해 혈안이 된 중국과 일본의 기업들이 존재하지만 컨설팅 업체가 당당히 한국적인 강점을 정립하고 이론화해서 보급하지는 못한다. 노력부족일까 인식의 착오일까 아니면 여전한 자기 비하일까?

한국에서 버려야 할 것 위주로 찾은 이 책의 저자에게서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다음번에는 한국에서 찾아야 할 것을 담은 책을 만드는 사람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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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에스트로 그린스펀
밥 우드워드 지음, 전철환 감역 / 한국경제신문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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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미국의 금리결정과정을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되는 책이다. 단 관련된 여러책을 두루 보기를 권하고 싶다. 이 책을 지은 우드워드는 워터게이트 사건에 대한 심층취재로 결국 막강하고 오만한 대통령 닉슨을 하야시켜버린 대인물이다. 명성을 바탕으로 여러가지 르뽀 형식의 책을 쓰는데 대통령을 위시한 여러 고위직을 만나는데 별로 걸림돌이 없다는 점이 부럽다.

덕분에 그린스펀에 대해 세세한 내용까지 담겨 있다. 그의 모호한 말투는 천성적이어서 애인에게 두번 청혼했는데 말투가 모호해서 상대방이 이를 프로포즈라고 생각치 않았다는 일화도 재미있다.

그린스펀이 뉴욕의 쓰레기 양을 보면서 경제활성도를 체크한다는 일화가 있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GE의 잭 웰치로부터 전국적인 판매 데이터를 바로 받아본다는 내용이 있다. 쓰레기 뒤지는 것보다는 대기업의 활동 데이터가 훨씬 편하고 정확하게 정보를 찾는 도구가 될 것이다.

이 책이 나온 시점은 한참 신경제 예찬이 극에 달하던 때였고 자연스럽게 그 주역으로 그린스펀이 거의 신격화 될 정도로 떠받들어지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몇가지 반론이 존재한다. 우선 짐로저스의 <어드벤처 캐피털리스트>의 막판에 상당 내용은 그린스펀을 비판하는 데 할당되어 있고 더불어 이 책이 과도하게 그린스펀을 치켜세웠다고 혹평하였다. 관련 리뷰도 참고 바란다.

신경제 부양에 대해서는 로버트 쉴러의 <이상과열> 등 비판이 이어진다.

또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의 파산 관련 내용도 서술이 불충분하다. 차라리 <천재들이 실패>를 보는 것이 좋다.

한국을 위시한 아시아 위기에 대한 대응도 한국에서 나온 기록을 보면 외국자본의 우월한 지위를 통한 침탈이라고 해석된다.

결론적으로 하나의 사건,인물에 대한 평가는 널리 두루 의견을 듣고 내리는 쪽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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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maxon 2008-11-14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지금 마에스트로의 아성이 박살난 시점에서, 4년전에 이런 글을 쓰신 탁견이 놀랍습니다.

사마천 2008-11-15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찬의 말씀입니다. 제가 탁견이 있던 것은 아니고요.. 당시 짐 로저스가 행한 맹렬한 비판에 동조한 수준입니다. ^^
 

처음 알게된 것은 <나는 일본 문화가 재미있다> 였다. 일본문화의 수입개방이 허용되면서 쏟아져 나온 책 중의 하나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렇게 큰 감명을 받지는 못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나온 책들이 그저 그렇겠지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던 나였지만 이 책은 분명 달랐다. 대중문화라는 매우 넓직한 범위 안에서 이런 저런 주제들을 다루면서도 꽤 깊이를 유지했다. 일본 프로야구 하나도 세밀히 들여다보면 일본 사회를 알 수 있게된다던가 하는 것은 짧은 시간에 얻을 수 있는 이해는 아니다.
그래서 후일 장정일이 김지룡과의 인터뷰에서 대중문화 하나를 다루면서도 다른 잡다한 일본소개 서적보다 훨씬 일본을 더 잘 알 수 있었다고 치켜세웠다.
한 작가가 마음에 들면 그의 다른 책들을 찾아보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두번째로 손에 잡은 책이 <재미있게 사는 사람이 성공한다>라는 책이다. 본인의 유별난 인생편력을 시간에 맞추어 하나씩 소개하고 있었다. 주변에서 보나 내가 스스로 돌아보나 범생이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는 무척 거리가 먼 삶이었지만 솔직한 고백들과 색다른 경험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가 남들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움을 추구하지만 그것이 결코 아무런 한계 없이 방종으로 흐르거나 방향없이 무의미한 삶으로 사라져가는 것이 아님을 알게되었다.
이책을 썼던 시점이 IMF로 만들어진 경제불황이다 보니 특히 일자리를 잡지 못한 청년층들이 많이 좌절하고 있었다. 이 때 작은 것에서도 재미와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는 김지룡의 주장은 꽤 호소력을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저자 본인 또한 상당한 부담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라고 한다. 감명을 받아 무려 10번을 읽고 나서 편지를 썼다던가 하는 경우였다.
그런 와중에 또 하나 써내려간 책이 바로 <나는 솔직하게 살고싶다>였다. 이 책은 일본의 대중문화 중에서도 특히 성과 관련된 부분을 자기체험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읽다가 너무 재미있었다. 남자들에게 성에 대한 이야기는 늘 과장 섞인 무용담으로 떠돈다. 많은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우리들은 무지한 상태를 벗어나기 어렵다. 가끔은 그런 무지 때문에 다양한 형태의 피해를 보게 된다.
하여간 이 책은 꽤 충격적이다. 빨간 비디오를 찍는 포르노 배우가 되어보려던 시도, 동경의 각종 유흥가에 한국관광객을 몰아주면서 받은 리베이트, 일본 생활에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한단계씩 올라가는 빨간 문화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찬다. 나중에는 아예 홀딱 벗도 원조교제의 한가운데까지 탐색해보는 저자를 보면서 정말 웃지 않고 버티기가 어려웠다. 읽다보면 앞서의 책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사회에서 전문가 행세를 하는 많은 사람들 - 의사, 저술가, 각종 지식인 - 의 무지를 발견하게 된다. 아는 것에 비해서 행세하기 좋아하는 사람들 덕분에 또 얼마나 허위와 무지가 발생하는가?
이책을 보기 껄끄러운 분들도 있을 것이다. 누구보다 ‘개망나니’(?)에게 딸은 주신 저자의 장인, 장모님이실 것이다.
그 대목에서 물론 저자도 고민을 했지만 그럼에도 그는 자신을 까발겼다.
그의 용기와 경험을 보아서라도 꼭 집어들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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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5-03-12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마천님의 소개글을 읽으니, 저도 읽고 싶어지네요 ^^
 

<트루만 쇼>와 비슷한 사회비판물인데 흥행은 앞서 보다 더 참패로 끝났다. 짐 캐리가 여기서는 헐리우드 영화판에서 세속적 의미로 잘 나갈 수 있었던 극작가로 나온다. 2차 대전이 막 끝났지만 미국 사회는 새로운 냉전으로 돌입해간다. 매카시의 선동에서 시작한 빨갱이 사냥은 곳곳에 청문회라는 새로운 마녀재판 공간을 만들었고 마구잡이로 삐딱한 사람들을 끌어내 죄인으로 만들었다.
이런 냉냉한 분위기는 영화에도 반영되어 마제스틱에서 상영되는 B급 영화 속에서 우주선에서 내린 화성인에게 총질을 하는 미군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나에게 낯선 것은 적이고 그들에게 총질 할 수 밖에 없다는 자기 방어적인 논리다.
어제까지 영화사의 차기 유망주였던 짐 캐리 였지만 오늘은 동료도 상사도 기피하고 애인마저 떠나버린 홀몸이 되고 만다. 청문회를 피해 무작정 떠난 짐 캐리가 도달한 곳은 로슨이라는 작은 마을이다.
이곳에서는 마을 사람 모두가 서로를 잘 알고 나아가 서로를 이해하고 있다. 물론 이곳은 헐리우드의 몰인정과 대비하기 위한 설정이다. 그래도 이 마을에는 깊은 아픔은 있다. 2차 대전에서 희생된 숫자가 인구에 비해서 매우 많아서 젊은이들을 약 20여명이나 잃고 말았다. 사족 같지만 비율적으로 보아 미국이 2차대전에서 보인 희생보다는 너무 많은 편이다.
어쨌든 어둡게 깔린 이 마을의 공기를 바꾸기 위해 사람들에게 꿈이 필요하다. 영화는 바로 그런 꿈을 제공하는 도구고 극장은 꿈의 공간이다.
마을의 중심에는 마제스틱이라는 극장이 있고 이 극장을 복원하는 작업을 짐 캐리가 주도하게 된다.
잠시 찾아온 행복이었지만 결국 매카시주의자들에게 발견이되고 그들에 의해 청문회장에 세워졌다가 용기 있는 자기 변론을 하고 로슨으로 돌아온다는 것이 남은 스토리 전부이다.

여자주인공이 에밀 졸라에 대해서 몇차례 이야기한다. 여러 작가를 놔두고 왜 굳이 졸라일까? 결국 드뤠피스 사건을 언급하려는 것이고 나아가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매카시즘이 그런 광기일 따름이라고 주장하려는 것이다.

영화가 담고 있는 역사적인 의미를 잘 이해하려면 시간을 두고 발생한 두 사건을 잘 이해해야 한다. 프랑스에서 1900년 전후를 통해 발생했던 드뤠피스 사건과 1950년대 초 미국에서 발생한 매카시 사건이다. 여기서 두 사건에 대한 기록을 인용해보겠다. 먼저 드뤠피스의 기록을 보자.
19세기 말, 프랑스에서 유대인 사관(士官) 드레퓌스의 간첩 혐의를 둘러싸고 정치적으로 큰 물의를 빚은 사건. 1894년 10월 참모본부에 근무하던 포병대위 A.드레퓌스가 독일대사관에 군사정보를 팔았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비공개 군법회의에 의해 종신유형의 판결을 받았다. 파리의 독일대사관에서 몰래 빼내온 정보 서류의 필적이 드레퓌스의 필적과 비슷하다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증거가 없었으나 그가 유대인이라는 점이 혐의를 짙게 하였던 것이다. 그 후 군부에서는 진범이 드레퓌스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는 확증을 얻었는데도 군 수뇌부는 진상 발표를 거부하고 사건을 은폐하려 하였다. 드레퓌스의 결백을 믿어 재심(再審)을 요구해 오던 가족도 진상을 탐지하고, 97년 11월 진범인 헝가리 태생의 에스테라지 소령을 고발했지만, 군부는 형식적인 신문과 재판을 거쳐 그를 무죄 석방하였다. 그러나 재판결과가 발표된 직후 소설가인 E.졸라가 공개한 ‘나는 탄핵한다’라는 제목의 논설로 사건은 재연되었다. 졸라는 드레퓌스에게 유죄판결을 내린 군부의 의혹을 신랄하게 공박하는 논설을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장 형식으로 98년 1월 13일자 《오롤》지에 발표하였다. 이를 계기로 사회여론이 비등하여 프랑스 전체가 ‘정의·진실·인권옹호’를 부르짖는 드레퓌스파 또는 재심파(再審派)와 ‘군의 명예와 국가 질서’를 내세우는 반(反)드레퓌스파 또는 반재심파로 분열되었다. 전자는 자유주의적 지식인을 비롯하여 사회당·급진당이 가담하여 인권동맹을 조직하였고, 후자는 국수주의파·교회·군부가 결집하여 프랑스 조국동맹을 결성하였다. 마침내 이 사건은 한 개인의 석방문제라는 차원을 넘어 정치적 쟁점으로 확대되면서 제3공화정을 극도의 위기에 빠뜨렸다. 98년 여름 군부는 어떤 새로운 증거서류에 의거하여 드레퓌스의 유죄를 확언하였으나, 그것이 날조로 판명되고, 체포된 증거서류 제출자는 자살함으로써 반(反)드레퓌스파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이에 정부도 재심을 결정했으며, 또 이 때 반드레퓌스파에 대항하면서 공화정 옹호를 내세운 발데크 루소내각이 성립되어, 사태는 재심파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99년 9월에 열린 재심 군법회의는 드레퓌스에게 재차 유죄를 선고하였으나, 대통령의 특사로 석방되었다. 무죄 확인을 위한 법정 투쟁을 계속한 끝에 그는 1906년 최고재판소로부터 무죄판결을 받고 복직 그 후 승진도 하였으며, 프랑스군부도 95년 9월 사건 드레퓌스의 무죄도 공식으로 인정하였다. 자유주의적 재심파의 승리로 끝난 이 사건은 프랑스 공화정의 기반을 다지고, 좌파 세력의 결속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http://my.dreamwiz.com/mydefect/year172.htm에서 인용

매카시 사건에 대해서는

미국 위스콘신주(州) 출신의 공화당 상원의원 J.R.매카시의 이름에서 나온 말이다. 1950년 2월 “국무성 안에는 205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다”는 매카시의 폭탄적인 연설에서 발단한 것이다. 1949년 이래 수년에 걸쳐 매카시가 상원의 비미(非美)활동특별조사위원회를 무대로 하여 행한, 공산주의자 적발 추방의 선풍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냉전이 심각해지던 상황에서 전통적인 미국자본의 시장이던 중국의 공산화와 잇달아 발생한 한국의 6 ·25전쟁 등 공산세력의 급격한 팽창에 위협을 느낀 미국국민으로부터, 그의 주장이 광범한 지지를 받았다.
매카시즘이 먼저 공격목표로 삼은 것은 중국정책에 영향력이 컸던 외교관, 국무성 및 중국통 정치학자 오언 래티모어, 국제법학자 제삽 등이었는데, 대통령 H.S.트루먼도 공산주의자에게 약하다는 비난을 받았다. 당시 국무장관 J.F.덜레스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매카시즘의 공포에 떨었고, 그 때문에 미국의 외교정책이 필요 이상으로 경색된 반공노선을 걷게 되었다. 유력한 정치가나 지식인들도 매카시즘에 두려움을 느끼고 그에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매카시는 육군에 도전한 것이 치명상이 되어서 마침내 1954년 상원의 사문결의(査問決議)에 의하여 실각하였다. 매카시는 히틀러와는 달리 아무런 비전도 가지지 못하였으나, 보기 드문 선동가였다. 그가 미국의 대외적 위신이나 지적(知的) 환경에 끼친 손해는 막대한 것이었다.

멀리 프랑스에서 한참전에 발생했던 드레퓌스 사건이 50년대 초의 미국에서 반복된다면 마찬가지로 비슷한 상황을 우리 주변에서 찾지 못한다는 법도 없을 것이다.
바로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이 한국판 드레퓌스, 매카시 사건이었다. MBC 특집 추적 프로그램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마지막 편은 바로 이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을 다룬 것이다. 1991년 여름 동안 치열했던 공방을 벌였던 이 사건의 핵심적인 증거로 제시되었던 강기훈씨의 필적에 대해서 다시 감정을 해본 결론은 무엇일까? 일본, 미국, 한국 세 곳의 전문가 모두 강기훈씨의 필적이 아니라고 했고 검찰이 내세운 가장 강력한 증거인 가족의 증언도 진실이 부정되었다고 한다. 진실은 도대체 어디에 있고 정의는 또 어디에 있는지 고민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분노하고 슬퍼해야 할 일은 그 다음에 있다. 바로 이 사건의 주임검사가 김대중의 지명에 의해 지금 대법원 판사로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다. 내가 김대중 개인에게 본격적으로 실망하게 된 주요한 계기 중의 하나다. 의회의 동의과정에서도 추미애 의원을 비롯해서 여러명에게 질문공세를 받았지만 당시 강 대법원 판사 지명자는 상황논리로 일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명은 통과되었다.
한마디로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법철학 부재, 한국 사회의 법에 대한 관념의 저열성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해프닝이었다. 물론 보수에서 진보까지 두루 안배해야하는 정황을 이해해야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마제스틱>에서 나오듯 법이란 계약의 한 종류에 불과하고 상황에 따라 이렇게 저렇게 운용될 수 있다는 궤변론의 반복일 따름이다. 그 보다 짐 캐리가 청문회 마지막에 이야기 했듯이 하늘은 인간에게 준 고유한 권리가 있다는 천부인권에 대한 고려가 없을까하는 의문이다.

미국은 우리와 경우가 다르다. 미국의 경우 대통령이 누리는 가장 강력한 특권의 하나가 대법원 판사의 임명이라고 한다. 미국의 대법원 판사는 종신제로 자신의 소신을 가지고 재판에 임하고 그 하나 하나의 판결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영화 <펠리칸 브리프>를 보면 개발사업자들이 친환경적인 두 명의 대법원 판사를 암살함으로써 자신의 욕망을 달성하려는 것을 보여준다. 그만큼 사회에서 대법관의 위치가 중요도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를 보여준다. 그렇게 사법제도와 사회의 건전한 상식이 남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마제스틱>에서 짐 캐리는 로슨으로 돌아오지만 대한민국의 강기훈은 감옥으로 가야만 했다. 내가 왜 없던 죄를 인정해야 하는가라고 묻는 양심의 주장을 끝내 형벌로 가두려고 했던 대한민국의 사법체계에 대해 아직도 반성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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