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철학자 러셀은 가장 젊어서 머리가 좋을 때는 수학을 공부해 업적을 남기고 조금 머리가 나빠지자 철학을 공부해서 <서양철학사> 저술하였다. 머리가 나빠진 생의 후반부에는 사회과학 연구나 평화운동에 종사하였다.

가장 맑은 시간 아침에는 머리가 비어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고교 시절에 입시공부를 해았을 것이다. 아침나절에 무슨 과목을 공부했는지 되돌아보자. 대부분 수학 아니면 영어였을 것이다. 아침에 머리가 맑을때는 오랫동안 머리를 자유롭지 못게 하던 일에 마음을 집중하라. 이러한 문제들은 가끔씩 잠깐 주의를 기울이른 것만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았기에 그만큼 집중이 필요하다.

조금 긴장이 풀리면 지속적으로 노력이 필요한 부문에 시간을 들인다. 이러한 예는 암기과목을 있다. 접근이 어려워지면 짤막하고 흥미를 유지해주는 분야 가령 신문이나 소설 읽기에 시간을 들인다.

아주 아무 것도 싫다면 나름대로 유용한 분야에 시간을 투입한다. 비디오와 같이 자신은 수동적으로 있어도 내용은 진행되는 쪽으로 시간을 보내고 밖에 적당한 오락물을 주위에 놓아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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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비자다. 내가 하나의 물건을 있기 까지는 생산자와 유통업자가 있어야한다. 지식에도 마찬가지로 생산자와 유통업자 소비자라는 서로 다른 계층이 있다.

학문을 추구한다는 것은 이러한 여러 단계 중의 하나에 자신을 자리 매김하는 것으로 생산과정에 종사할 있는 것은 아니다.

오랜 기간 외국에서 공부하시던 서울대학교의 교수님 분이 자신은 소비자 약간 유통업자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탄하는 것을 들었다.

한국에서 인문사회과학 분야 학문에 뜻을 두었던 많은 사람들에게 좌절을 느끼게 하는 것에는 가지 원인이 있는 하나는 고전이고 다른 하나는 외국어다. 고전은 앞에 묘사 한대로 지식의 산에서 중간 중간의 굵은 능선이다. 다른 사람의 지적인 축적물을 정확히 파악하지 한다면 그들이 도달해 놓은 한계가 어느 곳인지 방법도 없다.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언급한다. 기껏 고민을 하다 보면 이전에 누가 깔끔히 정리해 놓은 것을 발견할 있다. 얼마나 허탈할 것인가?

어지간히 뛰어난 사람도 역사 속에서 지적 능력이 자신보다 훨씬 뛰어 났던 사람들을 무수히 만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앞서 언급한 대로 다른 사람의 노력이 만들어 결과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중턱의 무수한 쉼터나 앞선 등반객의 자취를 무시하고 밑바닥부터 혼자 힘으로만 오르겠다고 하는 사람은 자신이 용기 있다는 이야기가 듣고 싶겠지만 적어도 현명하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할 것이라고 있다. 가령 누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들고 산에 올라가 거기서부터 출발하여 헤겔의 <정신현상학> 만들어 내려왔다고 가정해 보자 이미 시대는 헤겔의 시대를 넘어 마르크스를 거쳐 포스트 모던까지 흘러갔다. 심하게 말하면 그는 고대인간일 따름이다.

 

따라서 창조를 하고 싶은 사람은 무엇보다 자신이 소화한 고전의 범위를 알아야 한다. 이를 기반으로 하고 지금까지 인류가 도달한 한계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다시 앞으로 나아갈 있는 힘이 된다. 자연과학과는 다르게 인문사회과학에서는 자신이 섭렵한 고전의 범위를 따져 보아야 한다. 그것이 창조를 이룰 있는 가능성의 한계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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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교육을 마친 사람 대부분이 2 방정식을 푸는 방법을 안다. 2 방정식에는 어떠한 경우에도 답이 있다. 그러면 3 방정식의 경우는 어떨까? 4 에서는 5 에서는 이런식으로 계속 올라간다면 수학을 어지간히 잘했다고 자신하던 사람도 모호해 진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일부 수학자들이 문제와 씨름하여 3,4 방정식에 대한 일반적인 답을 얻었다. 하지만 5 차에 이르러서는 쉽지 않아 수백년간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다 1800 경에 프랑스에 와서야 풀리기 되었다. 답은 일반적인 해법이 나올 없다는 것이다.

백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매달린 문제인데 나는 지금 그들이 고민하던 문제의 답을 알고 있다. 그러면 내가 그들보다 수학을 탐구하는 능력이 뛰어난 인가? 대답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기하학이나 수에 대한 원리를 보면 현대의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과 전혀 지능적인 차원의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

내가 그들보다 결코 머리가 좋아서 그들이 평생 고민하던 문제를 있는 것이 아니다. 앞과 그들 사이의 누군가가 풀어낸 해법을 내가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후대에 태어났다는 점에 대해 감사할 수도 있지만 결코 그것을 자랑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적어도 자신의 노력이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식과 지적 능력의 사이에는 이와 같은 불일치가 존재한다. 물리物理에 비유하면 지식은 위치位置고 지적능력은 물체를 운동運動하게 하는 힘으로 있다.

 

지식의 추구라는 것은 거대한 산의 등반과 같은 것이다. 결코 한두 사람의 발걸음에 의해 정복되지는 않는다. 한참 근력이 좋을 때는 무조건 앞으로만 나간다. 그렇게 오르다 보면 도저히 넘을 벽을 만나서 되돌아오기도 한참을 나아갔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곳에서 그리 벗어나지 했구나 하는 아쉬운 순간도 있다. 문득 되돌아보면 세월을 보냈기에 어느 정도 아래가 보이고 앞서갔던 현인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쉼터를 만나기도 한다. 아래에는 자기와 같은 목적으로 이제 어귀에 접어든 많은 후배가 보인다.  선한 마음으로 오를 두개만 가르쳐 주어도 자기 자리까지 올라오는데 훨씬 적은 시간이 것이다.

아무리 위대한 인간도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시간이 허락하는 때까지 밀고 나가고 다한 것은 나은 후배가 언젠가 해결해 주리라 기대할 밖에 없다. 이와 같이 인간의 지식이라는 거대한 산에 대한 추구는 무수한 세대의 협력에 의해 이루어 것이다.

결론적으로 창조의 자격 이전에 수습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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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hur Grumiaux (Violin) - The Early Recordings
아르투르 그뤼미오 (Arthur Grumiaux) 연주 / 유니버설(Universal) / 2004년 5월
평점 :
품절


바이올린의 묘미를 잘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명반.
반드시 가져야 한다고 추천할만한 수준.

타르티니의 악마의 트릴, 바하의 샤콘느에 대한 연주가 가슴 깊은 곳에
전율을 느끼게 해줌.

악마의 트릴은 현란한 기교를 보여주어 정말 악마가 가르켜준것인가
자문하게 만들었던 곡이라고 함.
무터의 연주도 좋지만 이쪽에 손이 많이 감.
샤콘느는 하이페츠 연주를 라이선스로 만든 판과 비교해 볼때
이 쪽이 훨씬 좋음.

그뤼미오의 연주는 하스킬과 같이 한 모짜르트 소나타 연주도 걸작임.

재발매되고 얼마 안되서 품절인데 아쉬움.
다시 발매되기를 기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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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souk 2006-03-02 0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음반 너무 갖고 싶은데.. 다시 발매되기를 기대합니다.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1 - 새 시대를 열어간 사람들
이덕일 지음 / 김영사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동아시아의 대립하는 두 분단국가 한국,북한,중국,대만이 일제히 한목소리를 낼때가 있다. 바로 일본이 국사교과서 검정을 할때다. 다른 나라들은 일본이 늘 자기 편의에 의해 사실을 왜곡한다고 생각하고 강력 항의하면 일본이 반론을 펴면서 자기 식대로 밀고 나가는 일이 계속 반복된다.
하지만 잘못된 역사, 권력의 편의에 의한 역사는 다른 나라들에서도 나타난다. 특히 한국의 역사교과서는 다시 쓰여야 한다. 아니 역사교과서라는게 없어지고 다양한 책으로 직접 역사를 배워야 한다.

희대의 천재 정약용이 살았던 시대는 사실 닫힌시대였다.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보면서 느낀 감상은 조선이 실은 후진국이고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소중화라는 얼토당토 않은 자존심을 내세워 고집을 부리고 있다는 것이다. 청과의 전쟁에서 지고난 다음에는 북벌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나라를 전시체제로 몰아가 민생을 피폐시키고 선진문물과의 교류를 단절시켜서 과학과 상업의 발전을 막아버렸다. 그렇게 살아온지 100여년이 지난 조선은 실은 가난하고 몽매한 고집불통의 나라였다. 지금의 북한처럼 그들은 우상을 모시면서 그것이 우상인지 몰랐다.

1800년대는 유럽에서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이 일어나서 봉건제가 종말을 맞게되는 시점이다. 이 때 조선은 여전히 사농공상의 엄격한 구분을 통해 사람을 차별하고 억누르는 체제를 고집했다. 억누르면 억누를 수록 벗어나고자 하는 억눌린 사람들의 욕구는 천주교로 뻗어나갔다. 왜 천주교 일까?

전에 파키스탄 사람 하나에게 너희 나라에는 카스트가 없냐고 물어보았다. 답은 알라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가르친다라는 나의 무지를 무색케 하는 것이었다. 기독교가 이슬람교가 전세계의 종교가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역시 평등사상이었다. 반면 조선의 유교는 인도의 힌두교와 마찬가지로 차별을 위한 종교를 고집하고 있었다.
반면 중국이나 일본은 양이와의 교류가 전면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과학과 기술에 호기심을 막지는 않았다. 특히 일본은 사무라이들의 엄청난 반발을(라스트 사무라이 영화를 보시면) 물리치고 차별을 폐지시켰다. 그렇게 살아온 결과는 후일 조선 스스로 근대체제로 가는 것이 실패하고 일본의 식민지로 귀결되었다.

조선왕조는 천주교를 믿는다고 참수한 백성도 많지만 더 많은 수를 학정에 의해 굶겨죽였다. 여기 정약용은 그러한 시대에 불합리한 점을 느끼고 자기 힘이 닿는 한 최선을 다해 고쳐보려고 노력한 인물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그래도 정약용을 안다고 생각했었지만 막상 잡고 읽어내려가 보니 정말 생생하게 삶의 순간순간을 잘 살려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문체와 서술방법을 굳이 비교하자면 스펜스의 <옹정제>류의 역사서들과 맥을 같이 한다고 생각된다. 교과서와 다른 역사 현실에 의문을 던지며 새롭게 해석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게 하는 역사책이라고 추천하고 싶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역사 만들기의 초석을 만들어가야 한다. 아직도 효종의 북벌을 민족의 자주로, 광해군의 현실외교를 불의로, 영조를 현명한 군주로 배우는 역사서를 이제 던져버릴 때가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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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onara 2005-01-20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이덕일씨의 장점이 잘 나타나 있는 저서같군요. 저도 꼭 읽어보고 싶습니다.
역사 속의 인물들을 재조명하는 또 한 권의 역작이군요.

사마천 2005-01-22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덕일님은 글솜씨가 뒤로 갈수록 더 쉽고 이해가 가도록 나이지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