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삼국지와 삼국지연의
한국,일본,중국 등 한자문화권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삼국지>라는 책을 읽도록 권유 받는다. 원래 진나라 사관인 진수가 지은 역사책을 바탕으로 소설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삼국지연의>다. 원래 한문으로 씌여진 것이고 양이 워낙 방대해서 번역이 쉽지 않았다. 최근까지도 여러가지 번역본이 나와 읽혔는데 이문열씨 작품은 비평이 더해진 번역으로 인기를 끌었다. 굳이 평을 하자면 문장은 한글세대에 친숙하게 쉽게 되었고 중간중간 역사적 사실을 비교해가면서 자신의 주견을 넣어 해석을 유도한다. 때로는 수긍가는 대목도 있지만 가끔 거부감이 들게 할 때가 있었다.
하여튼 삼국지는 어떤 책으로든 한 번 읽어 볼 만하다. 배울 수 있는 내용은 특히 정치적인 측면의 인간이다. 권모술수라고 표현되는 적나라한 정치투쟁 과정에서의 책략들이 여러 모양새로 나타난다. 도덕을 먼저 생각하는 분들께는 그런 세계가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겠지만 정치든 회사든 인간이 만들어내는 세계는 본질적으로 권력투쟁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소설 읽기가 좋은 이유는 역시 직접 체험하지 않고도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삼국지에 그려진 인물들이 보여주는 모습들은 결코 하나의 옛날 이야기로 치부하기 어려운 시대를 뛰어넘는 보편성이 있다.
주인공들은 상당수는 영웅이라고 불리운다. 이 부류의 인물들은 각자의 개성으로 자신의 시대를 열어 나가는 존재다. 몇몇은 해가 되어 빛을 발하고 다른 이들은 주변을 도는 달이 되어 그 빛을 받아 다른 이에게 반사하며 존재를 드러내기도 한다. 잘되어 패권을 이루는 제왕이 있고 그를 주변에서 돕는 모사,장군이 있지만 이들 주위로는 채 자기 뜻을 다 펴지 못하고 소멸해 가는 수 많은 인물 군상들도 있다. 삼국지의 강점은 이렇게 여러 유형의 인물들을 각각 기준에 따라 잘 분류해서 그 독특한 성격을 잘 드러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기와 함께 근대 이후의 동아시아의 정신세계에서 존재하는 인물들의 원형을 만들어 냈다고 일컬어진다.
삼국지를 즐기려면 우선 전체를 쭉 따라가며 통독해서 소설로서의 재미를 한 번 느껴보아야 한다. 이렇게 읽는다면 섬기던 왕조의 위기를 기회로 삼아 자신의 지배를 수립하려는 간웅奸雄 조조의 음모에 대해 이를 저지하려는 유비와 제갈량의 충의가 대립하는 소설의 기본구도를 따라가게 된다.
다음 번 독서에서는 감상의 포인트를 충성이라는 권력과 관련된 모호한 문제에 맞추기 보다는 사회적인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지배층의 균열로 말미암아 빚어진 혼란을 배경으로 활약하는 살아 있는 역사 속에서 인물들의 움직임을 살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갈라진 중원을 차분하게 통합해 나가는 조조라는 인물의 수완과 전략 그리고 계속적인 실패에도 불구하고 한 번 관계를 가진 사람들로부터 결코 배신 당하지 않는 유비라는 인물 단명했던 아버지와 형을 가졌지만 본인은 장수하면서 세 발 달린 솥의 하나의 다리를 이루었던 손권 등의 제왕이 기본 줄기다. 이른바 제왕학이라고 하면 이들 인물들의 장단과 강약을 대상으로 한다.
다음으로는 제왕의 주변에서 각양 각색의 재주를 가지고 기회를 잡아 펼치려는 영웅,호걸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가장 태표적인 사람은 제갈량이다. 이 외에 조조의 각종 모사들 중에서 훌륭한 사람들이 있는데 곽가나 이숙 등이 그 예로서 각기 적어도 하나의 재주는 가지고 있었다. 오나라에도 주유나 노숙이 인재인데 차분하게 살펴보면 특색들이 있다.
촉나라의 경우는 관우와 장비가 가장 주요한 인물인데 <삼국지연의>에 묘사된 것 같이 유비와 도원결의를 맺은 것은 아니지만 일찍부터 고락을 함께한 것은 사실이다. 장비는 부하들에게 충분한 덕을 베풀지 못해 그 손에 암살당하고 말았는데 인간적인 결함으로 볼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