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연의를 읽고 나면 이번에는 정사 삼국지 읽기를 시도해볼 만하다. <삼국지연의> 소설이라면 <삼국지> 중국의 정사 25 가지 중의 하나에 들어가는 역사책이다. 전체 내용이 한국에 번역된 것은 최근이지만 중요도는 결코 낮지 않다. 조선에 대한 기록으로 높이 평가받는 위지동이전에는 조선 사람들이 음주가무를 무척 즐긴다는 지금도 널리 받아들여지는 특성을 담고 있다. 역시 당대 중국의 사관들의 관찰력의 예리함과 기록의 정밀함을 다시 있는 대목이다. 삼국지의 저자 진수는 촉나라의 사관출신으로 촉이 망하자 진에 귀속하여 명을 받아 먼저 제갈량에 대한 일고를 저술하였고 다음으로 삼국에 대한 역사서를 저술하였다. 사마천의 기전체 서술 방식을 따르면서 삼국간의 대립에 대해서 나름대로 객관적인 서술을 하려고 한다. 전체적으로 매우 간소한 서술법을 취하고 있는데 가장 중심으로 삼는 인물은 역시 조조다. 권을 읽고 다음의 인상은 인물들이 소설에서 보다 규모가 작다는 생각이었다.  제갈량이나 관우 <삼국지연의>에서 중심으로 서술되는 인물들에 대해 기록이 장을 넘지 못한다. 삼국지에서 형성된 소설로서의 허구에 대해 실제 있었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생각의 균형점을 잡기 위해 책을 차분하게 읽어 보는 것이 괜찮을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땀을 쥐게 하도록 흥미가 있지는 않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촉나라를 내세우고 삼국지에서는 위나라를 내세워서 독자를 헷갈리게 하는데 정말 진실은 무엇인지 궁금할 것이다. 여기서 역사적으로 촉한 정통론이 남송 이후에야 나왔다는 점을 이해야 한다. 남송이라는 사회는 여러 측면에서 명분을 매우 강조하였는데 이것은 현실정치에서 북방유목민족과의 대결이 만들어 낸 굴욕감의 반작용이라 할 수 있다. 문화를 가졌다는 자부심은 반작용으로 일으켜 세워 정의,전통과 같은 가치를 매우 강조했다. 이 시기에 저술된 주희에 의해 저술된 <자치통감 강목>은 사마광이 지은 <자치통감>이라는 사서를 명분론을 바탕으로 재 서술한 것이다. 여기서부터 촉한이 한을 계승하였다는 근거로 명분을 삼아 유비의 촉을 정통으로 삼는 역사서술이 시작되었고 소설 <삼국지 연의>로 이 분위기가 이어져 갔다.

 

이러한 점을 놓고 볼 때는 조조가 역사에 공헌한 점을 바로 인정해야 한다. 실제 조조는 파괴와 재건을 모두 수행한 인물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역사서들은 그가 한왕조와 신의를 저버리고 파괴해갔다는 점을 주로 보았지 그가 붕괴된 질서를 꾸준하게 재건해서 민중들에게 끼친 혜택에는 공정한 점수를 주지 못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이런 배경을 안고 당대에 실제 발생했던 사건들과 소설을 비교해가면서 교훈을 찾는 작업을 쭉 진행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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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후, 당신의 미래
오마타 간타 지음, 김지효 옮김 / 명진출판사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일본의 불황은 10년을 갔다고 한다. 지나고 보니 말이 쉽지 10년이라는 세월은
강산이 바뀔만큼 길다. 어제 호사롭게 살다가 하루 하루 빡빡하게 현실에 대면해야 하는
고통을 많은 사람들이 참기 어려워 했다. 그리고 정부의 정책 한두개를 바꾸어
쉽게 넘어갈 것이라고 자위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다르게 생각했고 다르게 대처했다.
주어진 시대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자신의 기회를 찾아나갔는데
결과는 일본 최고의 소득자 중 한명이 된 것이다.

여기 담긴 글들은 그냥 지나가면서 툭 던지는 가벼운 수준이다.
전문 작가도 아니고 스스로를 미래 예측가라고 자부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논조는 간결하게 핵심을 꿰뚫고 있다.
현재 주어진 토지와 물가가 내려가는 디플레이션은 멀리 보면
냉전이 끝나고 사회주의권의 싼 노동력이 대거 편입되면서 만들어진 현상이기에
쉽게 끝나지 않는다.
국제 관계도 그런 차원에서 잘 읽고 미국과 다투지 말라.
과거 일본의 고도성장을 특징 지웠던 종신고용, 성실한 직장인 등의 모토는
이제 없을 것이다. 오히려 과도한 해고비용과 국민연금
부담에 지친 기업이 신규고용을 없애면서 좋은 학벌을 가지고도 직업 얻기가 힘들다.

결국 해결책은 사회시스템 특히 정치와 정부가 바뀌어야 하는데
멍청한 작자들이 쉽게 바뀌는 걸 기대하지는 말고
스스로 자신의 직업,위치 등을 알아서 시대 변화 잘 대응하라는 것이다.

이런 내용들을 쭉 훑다보니 한국의 현실과 유사성이 한둘이 아닌점을 알게된다.
가볍고 짧게 읽히지만 생각할 거리는 계속 던지는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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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중앙정부의 붕괴 지방군벌의 발호

 

당장 눈앞에 닥친 황건적의 난에 대처하기 위해 잠시 중지된 중앙의 권력투쟁은 난이 어느 정도 진압되자 재발되었다. 외척의 대표인 황후의 오라버니 대장군 하진은 지극히 무능하고 유유부단한 인간이었다. 환관과 사이가 나빴지만 직접 제거할 자신감이 없었다. 그래서 멀리 변방의 정예군을 이끌고 있는 동탁을 수도로 불러들였다. 이정도 했으면 환관들이 숙이고 들어오겠지 했지만 군대의 이동을 전해 듣고 이제 막바지에 몰렸다고 생각한 환관세력이 먼저 하진을 암살해버렸다. 여기에 원소라는 청년장교가 앞장서서 환관들을 모두 죽여버리는 피의 보복을 하게 되자 궁전의 안팎이 모두 피바다로 변했다. 나이 어린 황제와 황후는 난리속에 도망다니기 바빴고 조정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시기에 동탁은 이민족이 많이 포함되어 강력한 군대를 이끌고 수도에 도달한 상태였다. 그는 권력의 공백을 보고 자연스럽게 군대의 물리력을 기반으로 자기식의 군정체제를 수립해나갔다. 

새로운 체제를 수립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첫번째로 시도하는 것이 우두머리를 직접 자기손으로 세우는 것이다. 동탁도 황제를 바꾸어 새로 옹립하니 이가 마지막 황제 헌제다. 이어서 기존 조정의 권위를 이용해서 새롭게 중앙과 지방의 질서를 재편하려고 시도했지만 전반적으로 민심이 따르지는 않았다. 먼저 청년장교들의 대표주자인 원소와 조조가 각기 자신의 본거지로 떠나버렸다. 표면적으로 이들은 아직 조정의 중간급 장교이기 때문에 당장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저변에 흐르는 반감을 나타내주는 지표 정도로는 있다. 나아가 동탁은 중앙의 기존 고관들의 추천을 받아 새로 지방수령들을 임명했는데 이렇게 임명된 수령들이 일제히 힘을 모아 동탁에 대해 토벌군을 일으키게 되자 동탁은 위기를 맞게된다.

 

동탁군은 크게 나누어 동탁에게 임명장을 받은 지방관들이 부류이고 조조와 원소, 손견과 같이 직급은 낮지만 황건적의 난을 통해 한차례 자기 세력을 형성하고 전투에 참여했던 청년장교들이 부류를 이루고 있었다. 이들이 모여서 동탁을 꺾어보자는 시도는 좋았지만 색깔이 다른 세력들이 너무 많이 모여서 다들 자기 욕심을 가지게되니 힘이 한데 모아지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변방의 이민족을 끌어안고 있는 동탁군이 너무 강했다. 조조는 지정학적인 인식을 통해 수도로 들어가는 물류를 막아 장기전을 승리로 가져가기 위한 대국적인 전략을 제시했지만 대다수가 그를 따라주지 않았다. 결국 동탁 토벌은 실패하고 말았는데 결과는 다들 물러서서 각기 독자적으로 지방권력을 수립하는 무정부 상태였다. 다음부터는 나름대로 자신의 힘을 키워서 주변을 하나씩 병합해나가는 약육강식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명분이야 어찌하던 간에 순간부터 중앙정부의 인사권이 지방에 작용되지 않게 되어 중앙은 중앙대로 지방은 지방대로 서로 갈라서게 되는 대난리가 시작된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한왕조는 이때 무너진 것이다.

대결의 과정에서 지방권력들은 자신의 군대를 양성하기 위해서 민초들에게는 엄청난 수탈을 가했다. 자기 지역의 군벌이 전쟁에 이기면 그나마 낫지만 졌다면 민초들은 승자에 의해 다시 한차례 약탈을 겪게 된다. 소농들은 몰락해 주변의 권세있는 호족에게 자진해서 예속되거나 자신의 고향을 떠나 여러곳으로 유랑하게 되었다. 정상적인 질서와 생산활동이 이루어지지 못하자 식량의 값은 천정부지로 올라서 굶어죽는 사람들이 속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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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천하대란

 

1.1    농민반란

 

삼국지의 인물들이 등장하던 시점에서 후한왕조는 이미 천하의 통제권을 거의 잃어가고 있는 상태였다. 중앙에서는 나이 어린 황제가 연이어 등장했다. 최고권력자가 제구실을 못하면 흔히 황후가 나서서 섭정이라는 이름의 신탁통치를 수행한다. 당연히 이를 이용해서 권력에 간섭하는 황후의 친척들이 활개를 치고 여기에 맞서는 환관들이 한무리가 되어 양자간의 권력다툼이 발생한다. 치고 받고 싸우다 보면 제대로 정치는 저만치 뒤로 밀리게 된다. 실제 당대의 지방에서는 점점 커져가는 호족들의 압박에 농민들이 몰리면서 집단으로 모여 저항하게 되었다. 이른바 황건적의 난으로 일컬어지는 대규모 민란은 향촌의 질서와 생산기반을 완전히 흔들기 시작했다. 반란은 한번에 끝나지 않았고 변방에서는 위나라의 정권이 안정될 때까지 수십년간 다양한 형태로 지속되었다.

황건적의 수괴라는 장각도 알고보면 상호간의 부조를 강조하는 종교집단을 만들어 귀족 중심의 사회로부터 압박을 받아 몰린 농민들에게 의지할 정신적, 물질적 지주 역할을 하였다. 이론적으로는 도가 등의 영향을 받았고 점차 후대에 보다 고차원적인 불교를 수용해서 정신세계를 안정시키는 중간다리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장각이 앞장서고 농민들이 모여서 규모는 많았지만 제대로 조직화되지 못한 민초들이 많아서 실제 전투력은 생각만큼 강하지 못했다. 덕분에 여러 지역에서 호응을 받았던 대규모의 민란이었지만 대부분 손쉽게 진압되고 만다. 정작 중요한 영향은 반란 자체보다는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각지의 호족들이 자발적으로 무기를 들고 사람을 모아 일어났던 점에 있었다.

의병이라면 좋은 뜻으로 붙여준 이름이지만 냉철하게 보면 한번 무기를 들고 중앙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으며 자율적으로 움직여 호족들이야말로 사회가 다시 안정되는데 가장 위험한 존재가 된다. 그래서 전쟁을 치르고 나면 공신들을 숙청하려고 하는 것인데 조선왕조만 보아도 태종이 공신들을 숙청한 점이나 임진란 이후 의병장과 승병들을 홀대한 점이 그런 예다. 명장 이순신 또한 그런 와중에서 자신의 미래를 예견하여 죽음을 선택하였다는 해석이 있을 정도다.

 

어쨌든 황건의 난에 의해 농민들은 언제든지 도적이 있고 도적이 다시 농민이 되거나 군인이 있는 그런 가변적인 상황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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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연의를 읽고 나면 이번에는 정사 삼국지 읽기를 시도해볼 만하다. <삼국지연의> 소설이라면 <삼국지> 중국의 정사 25 가지 중의 하나에 들어가는 역사책이다. 전체 내용이 한국에 번역된 것은 최근이지만 중요도는 결코 낮지 않다. 조선에 대한 기록으로 높이 평가받는 위지동이전에는 조선 사람들이 음주가무를 무척 즐긴다는 지금도 널리 받아들여지는 특성을 담고 있다. 역시 당대 중국의 사관들의 관찰력의 예리함과 기록의 정밀함을 다시 있는 대목이다. 삼국지의 저자 진수는 촉나라의 사관출신으로 촉이 망하자 진에 귀속하여 명을 받아 먼저 제갈량에 대한 일고를 저술하였고 다음으로 삼국에 대한 역사서를 저술하였다. 사마천의 기전체 서술 방식을 따르면서 삼국간의 대립에 대해서 나름대로 객관적인 서술을 하려고 한다. 전체적으로 매우 간소한 서술법을 취하고 있는데 가장 중심으로 삼는 인물은 역시 조조다. 권을 읽고 다음의 인상은 인물들이 소설에서 보다 규모가 작다는 생각이었다.  제갈량이나 관우 <삼국지연의>에서 중심으로 서술되는 인물들에 대해 기록이 장을 넘지 못한다. 삼국지에서 형성된 소설로서의 허구에 대해 실제 있었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생각의 균형점을 잡기 위해 책을 차분하게 읽어 보는 것이 괜찮을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땀을 쥐게 하도록 흥미가 있지는 않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촉나라를 내세우고 삼국지에서는 위나라를 내세워서 독자를 헷갈리게 하는데 정말 진실은 무엇인지 궁금할 것이다. 여기서 역사적으로 촉한 정통론이 남송 이후에야 나왔다는 점을 이해야 한다. 남송이라는 사회는 여러 측면에서 명분을 매우 강조하였는데 이것은 현실정치에서 북방유목민족과의 대결이 만들어 낸 굴욕감의 반작용이라 할 수 있다. 문화를 가졌다는 자부심은 반작용으로 일으켜 세워 정의,전통과 같은 가치를 매우 강조했다. 이 시기에 저술된 주희에 의해 저술된 <자치통감 강목>은 사마광이 지은 <자치통감>이라는 사서를 명분론을 바탕으로 재 서술한 것이다. 여기서부터 촉한이 한을 계승하였다는 근거로 명분을 삼아 유비의 촉을 정통으로 삼는 역사서술이 시작되었고 소설 <삼국지 연의>로 이 분위기가 이어져 갔다.

 

이러한 점을 놓고 볼 때는 조조가 역사에 공헌한 점을 바로 인정해야 한다. 실제 조조는 파괴와 재건을 모두 수행한 인물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역사서들은 그가 한왕조와 신의를 저버리고 파괴해갔다는 점을 주로 보았지 그가 붕괴된 질서를 꾸준하게 재건해서 민중들에게 끼친 혜택에는 공정한 점수를 주지 못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이런 배경을 안고 당대에 실제 발생했던 사건들과 소설을 비교해가면서 교훈을 찾는 작업을 쭉 진행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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