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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대한민국 CEO 박정희
홍하상 지음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5년 2월
평점 :
품절
홍하상님이 지은 책으로 내가 읽은 것이 5권인데 그 중에 가장 허접한 책이다.
이병철경영대전은 매우 감동적이었고, 이건희, 정주영과 이병철 등도 수작이고
오사카상인들도 괜찮은 시도였다.
반면 개성상인은 너무 쉽게 만들어진 홍보용 책이었는데
이번에 나온 이 책은 정말 허접한 왜곡된 프로파간다용 선전책이다.
죽은 독재자의 허리띠가 낡았다는 메시지가 광고용으로는 좋았지만
과연 그 허리띠 하나가 박정희의 공과를 모두 포괄할 수 있는 단어인지는 되 물어보고 싶다.
냉정하게 한마디 던진다면 그 낡은 허리띠를 풀고 바지 벗고 하는 행동도
평범한 시민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것이었을까?
시바시리갈을 마시고 일본 노래 부르며 여대생에 가수 끼고 노는게 모두가 가능한 일일까?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다시 냉정하게 보기를 바란다.
똑 같은 공을 놓고도 홍하상의 시각과 정반대의 시각이 존재한다.
얼마전 밝혀진 한일협정을 보면서 나는 고골리의 <죽은혼>을 떠올리게 되었다.
죽은 농노들의 명부를 사서 이들을 담보로 거액을 빌리는 그런 사기극이 고골리의
주제였다. 박정희가 일제시대 징용되거나 희생된 정신대 등의 몫을 가로채기 위해
개인에게 줄 것을 정부에게 주라고 한 행위는 무엇일까?
결국 죽은자들의 권리까지도 팔아넘기고 여기에 대해 군소리가 없게 쉬쉬한 것이
<죽은 혼>의 사기꾼 수준에서 얼마나 벗어날 수 있을까?
이렇게 죽은 사람을 다 팔고 나자 그에게 산사람을 팔 기회가 왔다.
박정희가 벌인 세번의 인력수출인 독일로 간 광부와 간호사, 베트남의 군대파견,
중동의 건설인력 파견은 모두 몸 이외에 팔 것없는 가난한 자들의 희생이었다.
반면 박정희는 당시 이들을 판 댓가를 가로채는데 혈안이 되었다.
달러는 무조건 본국으로 대부분 송금되었고 이들 달러를 받은 정부는
똑 같은 금액의 원화를 종이로 찍어대기에 정신이 없었다.
결과는 통화의 증발과 이어지는 인플레이션이었다.
소비수준이 정부에 의해 통제되는 사회에서 당연히 부동산으로 돈은 몰릴 수 밖에 없고
한국의 부동산 신화는 이러한 외환 정책의 자연스러운 결과다.
반면 멀리 이역에서 몸바친 사람들은 일하고 돌아오니 물가만 폭등하는
억울함을 고스란히 감수할 수 밖에 없었다.
조정래의 <한강>을 읽어보면 박정희가 만들어낸 경제발전의 이면에서
노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박탈당하며 살아가는 많은 민초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된다.
이게 과연 공평한 삶인가?
홍하상이 남덕우를 사채를 동결하여 기업을 살린 대단한 인물로, 남덕우를 발탁한
박정희를 희대의 CEO로 칭송하는 것도 우습다.
다시 한번 조정래의 <한강>을 보면 월급 모은 돈을 사장에게 맡겼다가
나중에 푼돈으로 돌려받아 억울함을 참지못하며 죽어가는 여공의 삶도 나온다.
정말 사채가 해롭다면 금액의 기준을 두었어야 한다. 하지만 박정희의 눈에는
이런 기준이 없었다. 과연 그가 낡은 허리띠 하나 찼다는 이유 하나로
많은 서민의 삶을 짓밡은 그 과오 모두가 용서 받을 수 있을까?
박정희가 CEO로 있는 동안 분명 한국은 발전했다. 놀라울 정도로,
하지만 옆을 보면 일본,대만,싱가포르 등 동아시아의 여러 나라 모두가 발전했다.
물론 홍하상은 멀리 아프리카의 콩고,말리와 비교해서 한국의 성과가 놀라왔다고
이야기하려고 한다. 하지만 일본,싱가포르 등 나라의 지도자가 박정희보다 훨씬 청렴했고
반대하는 국민을 마음대로 잡아죽이는 인권탄압을 하지 않은 점은 거론하지 않는다.
이승만의 독재 속에서 희망없이 살아가던 국민들에게 같이 뛰어보자고 외친 것은
분명 박정희의 공이다. 하지만 경제성과의 공 모두를 박정희가 차지하고
또 박정희 아니었다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처럼 가정하면서 이야기하는 것은
지나친 자기 비하다.
솔직히 이런 3류 도서에 들인 비평치고는 나도 너무 긴 비평이다.
시류에 맞추어 베스트셀러라고 치켜세워지는 걸 보면서 가만 두기는 아쉬움이 너무 많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