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캐리를 처음 <마스크>라는 작품에서 볼 때는 그냥 다양한 안면근육 움직임을 무기로 남과는 다른 방식로 사람을 웃도록 만드는 재주 정도만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연극 배우 출신으로서의 장점을 잘 살리고 있지만 과히 특별하다고 느끼지는 못했다. 이어서 배트맨 시리즈에서 웃기는 역할을 하는 걸 보고 그런 시각이 좀 더 굳어졌다. 뒤에 만들어진 <라이어 라이어>를 보고 약간 생각도 하게 만드는 배우라고 바뀌었는데 결국 <트루만쇼>를 보면서 완전히 다시 볼 수 밖에 없게 되었다.한 가지 더 하자면 2002년에 나온 <마제스틱>이라는 작품에서도 사회성이 담긴 짐 캐리의 연기를 볼 수 있다. 비록 이런 작품들이 흥행에서 참패를 면하지 못했지만 분명 머리에 담아두어야 할만한 가치 있는 창조물이다.트루만쇼는 꽤 진지하지만 우스꽝스러운 소재를 담고 있다. 자신의 모든 것이 세상에 노출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트루만이라는 한 사람의 삶의 모든 모습을 그냥 TV를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전문 배우가 나오는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누가 자신을 관찰한다는 사실을 모르기에 그냥 날 것 그대로 리얼하기에 연출되었기에 사람들은 더 친밀하게 느끼는 것이다. 이렇게 주인공은 단 한 사람이지만 그가 자신이 TV에 나오고 있다는 것을 모르게 하면서 삶의 모두를 담기 위해서 대규모 작업을 해야만 한다. 우선 작은 섬 하나를 모두 뒤덮을 수 있는 거대한 스튜디오를 발견하게 된다. 다음 만나는 사람 누구도 트루만에게 진실을 이야기해서는 안된다. 자신을 가식 없이 모두 드러내보이는 사람을 진실한 사람이라고 정의한다면 역으로 트루만을 둘러싼 모든 사람들은 트루만에 대해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진실한 사람 하나의 모습을 보기 위해 물질적으로는 거대한 스튜디오라는 비용이 들지만 더욱 더 중요한 것은 거짓말쟁이 수천 수만명을 만들어내어야 한다는 것이다.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런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려면 경제논리가 적용되어야 한다. 제작자는 광고가 없는 방송이라고 주장 하지만 영화 속에서 트루만의 부인을 비롯해 여러 등장인물들은 늘 각종 물건을 들고 매우 부자연스러운 동작으로 트루만이 눈치채지 못하게 광고성 발언을 해야만 한다. 그래도 트루만이 진정 자연스러운 삶을 살아가게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선 사람은 돌아다니며 세계를 발견하려고 하지만 그는 그렇지 못하다.어떻게 트루만을 마치 길러지는 동물처럼 제한된 공간에 가두어 둘 수 있을까? 제작자는 트루만 자신이 이곳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라는 논리로 자신을 방어한다. 하지만 여기서 짚어보아야 할 진실이 있다.정말 트루만의 생활 반경은 매우 좁다.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널 수도 없고 차를 몰고 다리를 넘을 수도 없다. 이렇게 트루만을 제약하는 가장 큰 콤플렉스는 물에 대한 공포다. 그래서 늘 좁은 세상에 갇혀 살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콤플렉스의 발생 원인을 따져보면 자신의 실수로 아버지를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이 출발점이다.하지만 이것은 그에게 주입된 기억이다. 마치 매트릭스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처럼 말이다. 원래부터 트루만이 좁게만 살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 꿈을 보면 그는 탐험가가 되고 싶어하던 적도 있었다. 그런 그에게 돌아온 답은 이미 세상이 거의 발견되었다는 것이었지만 이것 만으로 억누르기에 너무 컸기 때문에 강도 높은 조치가 취해진다. 마치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의 성적 욕망을 감추기 위해서 거세하듯이 인공을 위한 부자연스러움이다. 리얼리티를 추구한다는 방송이지만 실은 그렇게 리얼하지 못한 것이다. 어쨌든 주변에서 발생하는 부자연스러운 일들에 의해 의심은 계속 깊어져가고 있을 때 갑자기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가 앞에 나타나면서 정말 트루만에게는 심각한 고민이 발생한다. 막 트루만이 섬을 벗어나겠다는 결단을 내릴 때 제작자 측에서는 아버지를 다시 부활시키는 절묘한 해결책을 내세운다. 잠시 트루만 부자와 시청자들 사이에서 감동이 흐르고 제작자들은 쇼의 중단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에 한숨을 쉰다.그러나 트루만은 이제 정말로 떠날 결심한 것이었다. 수천, 수만개의 카메라의 추적에서 벗어난 트루맛?찾아보니 그는 요트로 바다를 건너고 있었다. 여기서 아버지를 다시 도입시킨 제작자의 선택이 한가지 역설적인 결과를 만들어낸 것을 알 수 있다. 바다를 무서워하던 콤플렉스가 자신이 아버지를 죽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게 되는 순간 사라진 것이다. 분명 차로 가는 것이 좀 더 편한 방법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그가 선택한 방법은 정면으로 지금까지 자신을 억누르던 콤플렉스에 도전하는 길이었다. 트루만이 탄 요트의 이름이 <산타 마리아>라는 것도 하나의 상징이 아닐까 생각된다. 콜롬버스가 1492년 신대륙을 찾아 나서던 배의 이름이 바로 <산타 마리아>였는데 트루만 또한 그렇게 정말로 낯선 미지의 세계를 발견하려 험한 항해를 하게 된다. 하지만 새로운 세계는 쉽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이제 마지막 시련이 다시 다가온다. 그를 붙들어 놓으려는 제작자의 도착적인 욕망은 스튜디오 세트의 장치를 이용해 거센 폭풍우를 일으키게 한다. 트루만이 파도를 두려워해서 돌아오도록 바랬지만 배가 뒤집혀 죽음에 이를 정도로 심한 상황에서도 트루만의 의지는 꺽이지 않았다. 헤세의 데미안에서 나오듯 알을 깨는 과정에서는 부리로 두꺼운 벽을 깨는 고통도 있지만 새로운 빛으로 눈이 부시는 아픔도 있어야 한다. 제작자는 마지막으로 새로운 빛을 대면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너에게 익숙한 너를 위해 만들어진 이 공간에서 벗어나지 말라고 유혹한다. 하지만 트루만은 마지막 시험을 극복하고 시커먼 문 너머로 발걸음을 딛는다. 아마 거기서 그는 피지를 발견할지 모르겠다. 젊은 날 추억을 남긴 여인, 트루만을 둘러싼 세계가 거짓이라는 것을 가르쳐준 오직 단 한사람이 바로 그녀다. 거짓에 대비되는 진실의 표상이 담겨진 여인을 쫓아 그의 걸음이 계속되기를 바란다.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미디어의 횡포에 분노하지만 찬찬히 짚어 보면 그런 미디어를 만들어내는 원인은 결국 시청자라는 사실 또한 밝혀진다. 쇼가 끝나자 모두들 트루만의 결정에 환영하고 격려하지만 방송에서 또 다른 드라마를 찾는다. 이런 시청자들이 공동으로 책임을 나누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지적으로 생각된다.리얼한 것에 대한 욕구는 많은 관련 사업들을 만들어내었다.자신의 침실에 설치한 카메라를 인터넷으로 방송해서 돈을 번 여대생, 성행하는 수많은 몰래카메라들 리얼을 강조하는 각종 TV 프로그램들이 주변에 널려있다.하지만 한편에서 우리 자신이 모두 수도 없이 많은 카메라에 의해 관찰되고 있다. 덕분에 인터넷 메일로 날라오는 몰래카메라에서 찍은 영상물을 모은 CD를 보내준다는 광고 사이트를 보면서 자신의 감추고 싶은 면모가 드러날까봐 두려워한다. 한편으로는 남의 리얼함을 더 찾으려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나의 리얼함이 드러날까 두려워하는 모순적인 현실에 대해서 이 영화가 주는 가장 강한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각자는 자신이 관찰자가 아니라 사실은 관찰의 대상이라는 것도 깨달아야 한다. 또 하나 배워야 할 점은 역시 인간은 결코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길러지는 것을 알 수 있어야 한다. 앞서 트루만의 케이스에서 보면 진실은 불명확하고 기억은 종종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 모두를 거대한 스튜디오라고 이해할 수는 없을까? 어쩌면 우리 자신이 바로 트루만인지도 모르겠다.
오스만족은 원래 터키의 동부에 거주하던 유목집단이었다. 비슷한 생활을 하던 셀주크 제국은 그보다 앞서 제국을 건설했지만 이들이 몽고족에게 격파되자 오스만족에게는 기회가 주어졌다. 빠른 속도로 주변을 정복해나간 이들은 곧 대제국을 건설하게되었다. 헝가리의 귀족을 격멸시킨 바예지드,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한 메메드 등의 업적도 크지만 무엇보다 대제라고 불리우게된 술레이만이 남긴 업적에 주목해야한다. 그가 남긴 군사적 승리들도 경이롭지만 기독교인들로부터 가장 기사다운 이교도라는 평을 받을 정도로 공정하고 합리적인 태도 또한 주목받아야한다. 자기가 한 약속을 지키고 패자를 모욕하지 않았던 그의 인품은 대외적인 교섭에서도 유리하게 작용했다. 프랑스왕과는 동맹을 맺어 합스부르크 왕가를 견제했고 폴란드의 군주는 직접 조공을 하러 왔다. 오스트리아가 맺은 조약의 내용을 보면 스스로를 속국으로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이런 대업을 이루게 된 원동력은 무엇일까? 우선 무적에 가까웠던 군사력을 꼽아야할 것이다. 제국의 초기 정복시대에는 진자라는 유목민 출신 기병이 주력이었다. 종교로 단결된 정신력과 성과물의 공정한 배분이라는 합리적 가치과 결합되어 이들은 정복전쟁에 몸을 던지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엄청난 폭발력은 제국을 성립시키고 확장하게 만든다. 하지만 제국이 어느정도 부피가 생긴 다음에는 초기의 열정만으로 유지할 수는 없다. 유목시절에는 거의 서로를 동등하게 여기던 귀족층이 왕조에 도전하게 되고 정복전쟁에 몸을 바쳤던 부족원들의 후손들은 결코 예전처럼 용맹하지도 적극적이지도 못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복의 범위가 넓어질수록 제국의 구성원 중에서 동족의 비율이 급격히 낮아지게 된다. 이때 정복 제국은 첫번째 위기를 맞게된다. 이 단계에서 대부분의 유목국가는 외부의 새로운 도전세력에 의해 자리를 양보하거나 내부의 도전으로 붕괴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인간의 경험은 꾸준하게 확대되었고 유능한 행정관료들은 새로운 제도를 창안해서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게 된다. 당시 아랍사회의 학문과 지식이 서구보다 나은 편이었고 이들의 대규모 참여에 의해 만들어진 제도는 그 시점에서 매우 뛰어난 합리성을 발휘하였다.오스만이 만들어낸 제도 중 매력적인 것은 예니체리였다. 7-8세의 기독교 소년들을 뽑아 개종과 함께 교육을 시켜 행정관도 뽑고 군사력으로 길러낸 이 제도는 매우 독특한 창안물이다. 결혼을 할 수 없지만 하루 한끼의 식사는 황제가 내리는 특식을 받았던 이들은 개인적인 관계로 술탄과 맺어지는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서구의 기독교 세계가 아직 기사와 용병의 합으로 이루어진 군사력을 유지하고 있을 때 근대적 의미의 상비군 역할을 하는 예니체리는 무적의 군사력을 발휘하게된다.여기에 보완적으로 사하피라는 급료를 받는 지방기병을 유지하였고 다양한 분야에서 징집병도 동원해서 거대한 무력을 만들어냈다. 여기에 기술적 발전으로 대포가 활용되게 된 것 또한 새로운 유목민의 도전을 막아낼 수 있게 해주었다.결국 유목제국은 종교적권위를 통한 새로운 가지 창출과 막강한 물리력을 통해 생명력을 지속할 수 있게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어나게 된다. 청왕조는 이전의 어느 유목민족보다 오랫동안 큰 문제 없이 중국을 통치할 수 있었다. 이들 또한 유교와 과거라는 중국제국의 기본요소를 잘 흡수하였고 여러가지 보완적인 제도를 만들어 중국을 지배할 수 있었다. 대포는 이곳에서도 마찬가지로 위력을 발휘해서 유목민들을 제압하는데 효과적으로 기능했다.하지만 바다에서는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지 못했다. 해양민족이 원래 아니다보니 우수한 배를 만들어 바다를 누비기 보다는 필요한 때마다 해적을 고용하는 방법을 취했다. 원래 해군은 나름대로 경험과 기술이 필요한데 무작정 용감한 육군을 배에 태워 내보내는 방식으로는 노련한 기독교 해군들을 당해낼 수 없었다. 그래서 육지만큼 바다에서 위력을 발휘할 수는 없었다.하지만 이렇게 안정화된 제국도 여전히 쇠퇴를 만들어내는 문제점을 가지게 된다. 물리력을 동원한 정복은 결코 무한정 뻗어나갈 수는 없었다. 로도스라는 작은 섬 하나를 공략하는데도 5만명 이상의 군사들이 희생된 것을 보면 당시는 아직 대포를 비롯한 공성무기가 성을 중심으로한 방어 진용을 완전히 제압할 수 없는 상태였던 것 같다. 따라서 유럽의 여러 국가들이 촘촘이 건설해놓은 수많은 성들을 모조리 점령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소모가 따른다. 즉 확장의 한계효용은 계속 감소하게 되고 따라서 제국은 더 이상 과거의 모델로 발전해가기는 어려웠다. 이렇게 되자 그동안 중요한 역할을 해오던 예니체리와 같은 물리력들이 목적을 잃어버리게 되어 국내정치에 개입하게 된다. 이는 러시아의 귀족으로 만들어진 황실근위대가 제위계승에 꾸준히 간섭했던 것이나 로마의 황제근위대가 제멋대로 황제를 폐위시켰던 것과 비교해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점은 결국 예니체리의 완전한 해체를 통해서만 해결이 가능했다.오스만 제국의 경제력은 상당부분 동방과 서방의 교역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과정에서 이탈리아의 여러 상업도시들과는 악어와 악어새같은 의미의 공생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동방항로와 신대륙을 발견해서 새로운 국부를 획득해가자 상업도시와 제국은 동시에 타격을 입게된다. 전제국가의 약점은 군주에게 있다. 유능한 군주가 등장해서 과업을 수행할 때는 제국의 발전이 많았지만 무능한 군주는 전쟁터보다는 할렘을 좋아했고 의심이 많아 친족을 죽이고 재상을 노예 취급하며 마구 바꾸는 경우가 많았다. 토인비 식으로 말하면 창조력의 쇠퇴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제국은 톱카피 궁전이라는 거대한 건축물을 남겼고 할렘의 문화는 지금도 터키탕이라는 야릇한 이름의 문화를 변방까지 전파했다.
시오노 나나미의 장기는 원래 회전會戰의 묘사에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상대적으로 단조롭고 지루하게 보일 수 있는 공성전에 대해서도 독자들이 흥미를 조금도 잃지 않고 지켜볼수 있게 해주었다.로도스는 원래 터키 앞바다에 놓여 있는 그리 크지 않은 섬이다. 고대 그리스 문명의 전성기에는 이곳에 아름다운 장미꽃이 가득한 기후 좋은 곳이었지만 그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역시 이 섬에 세워진 아카데미였다. 캐사르도 이곳의 대표적인 졸업생 중 한명이었다고 한다.지중해 세계의 주도권이 그리스에서 로마로 넘어갔고 과거 바다를 자기 집처럼 여기고 다니던 해양민족도 이제는 조용히 밭을 갈며 이탈리아의 상인들과 군선이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며 살고 있었다.서구 카톨릭 세계가 십자군을 일으켜 성지수복이라는 명분과 내걸고 약탈이라는 실리를 쫓아 지중해를 넘어 이스라엘로 갔다. 하지만 이슬람의 벽은 두터웠고 성전이라는 대의명분은 빛이 바래게 됐지만 혈전의 선두에 섰던 기사단 중 하나인 요한 기사단이 이 섬을 근거로 삼게된다. 이들은 말을 타고 땅을 달리기보다는 물러서서 주로 배를 가지고 주변을 지나가는 이교도의 배를 약탈하는 해적으로 변모하였다.당시 투르크 제국은 크게 세력을 떨쳐 비잔틴의 낡은 구조를 압박하고 있었고 남쪽으로는 시리아와 이집트를 병합하여 거대한 영토를 지배하게 된다. 이제 지중해를 자기들의 내해로 삼고 싶었던 투르크의 입장에서는 안마당에서 뱀처럼 또아리를 틀고 있는 이교도 집단을 쓸어내려고 벼르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그렇게 해서 1512년에 벌어진 이 싸움의 경과를 보면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의 기사단이 투르크 제국의 거대한 물리력에 맞서 싸워 자존심을 지켜준 것으로 보인다.콘스탄티노플 공방전과 레판토 해전의 사이에 놓였던 이 싸움에서는 한편에는 기독교 수호라는 투철한 이념과 귀족의 후예라는 명예심을 가진 기사단이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기독교들의 입에서조차 기사들보다 더 기사답다는 평을 들었던 술래이만 대제와 그의 지배를 받는 이슬람의 여러 집단이 있었다.충돌하는 두 문명의 최일선에 있었던 양세력은 공격하려는 쪽이나 수비하려는 쪽이나 모두 오랜 기간 여러가지를 준비를 했다. 이들에게는 참고가 되는 것은 약 30년 앞선 1480년에 있었던 공방전과 그보다 전의 콘스탄티노플 공방전이었다. 이당시 군사기술적인 측면을 보면 화약이 폭넓게 쓰이게되어서 우선 거대하고 위력적인 대포와 성채를 파괴하기 위해 만들어진 지뢰가 등장해서 공격쪽의 전력을 크게 강화시켜주었다. 이에 맞서 수비하는 쪽의 전술 또한 바뀌었는데 성의 높이를 오히려 낮추어 대포의 파괴력을 줄이려고 했고 성과 거리를 둔 외벽을 구축해서 상대의 접근을 막았다.이런 식으로 성을 세우고 개조하는데는 엄청난 비용이 들었지만 그 효과는 이 전투에서 양쪽에 발생한 손실을 살펴보면 충분히 인정할 수 밖에 없다.이슬람 쪽의 손실은 5만명 이상이었는데 방어측의 전투력이 모두 합쳐도 5000 정도였던 것을 고려하면 당시의 공성전의 손실이 이렇게까지 많은가하는 느낌이 들었다.대포가 등장한 후에도 성채가 이렇게 위력적이라면 중세라는 세계에서 독립을 유지하고 활약하던 영주들의 기반도 각자 자기땅에 건설한 이런 성채라고 생각된다. 아울러 작은 기사단 하나가 성채를 의지하고 이렇게 버틸 수 있다면 도시국가가 가졌던 자율성도 충분히 이해가 갈만하다.당시 이슬람 측의 군사력을 보면 병력만으로도 10만이 넘는다. 하지만 군대를 구성하는 집단이 이질적이고 각자가 싸움터로 나오게된 사유 또한 틀려서 정복지의 병력을 다음 싸움에 동원하는 것은 유목민족의 정복전쟁에 잘 보이던 것이다.기독교 측의 군사력 또한 신분사회의 틀에 맞추어 기사, 종복, 용병 그리고 현지의 자원자로 구성된다.그리 넓지 않은 섬이고 보면 방어하는 쪽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성외곽의 곡식, 숙소를 파괴하고 우물까지 다 메워버리는 청견벽야 전술일 것이다.이렇게 텅빈 땅에서 공격을 유지하려면 엄청난 물자를 바다를 통해 조달해야 한다. 이러한 거대사업은 역시 술탄의 강력한 의지가 있지 않다면 어려울 것이다.후일 대제라고 불리운 술탄 슐레이만은 당시 28세 밖에 되지 않은 청년이었다. 그에게는 대위업을 이루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고 그리스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교양과 이를 통해 형성하게된 통치자의 안목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각이 기독교 문명의 틀을 통해 이슬람을 보게되는 굴절을 겪게 되지만 그래도 이 사람은 좀더 파악하고 싶은 흥미를 느끼게 한다.작가는 기본적으로 이념에 빠져있던 인간들보다는 현실을 보다 직시하고 개조하려고 노력했던 인간들을 좋아한다. 로마인 이야기를 쓰면서도 기독교가 지배이념이 된 이후의 자료, 프랑스 혁명 이후의 근대자료는 보지않으려 했다는 태도를 보아도 그런 작가의 태도는 분명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세문명의 마지막 잔상들을 주인공들을 삼고 호의적으로 다루었던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생각된다. 당시 서구 문명을 살펴보면 프랑스,영국과 같은 곳에서는 봉건제의 군주제로의 변환을 위해 벌이는 온갖 모략과 잔학행위가 가득했고 이탈리아는 어떻게든 상업을 통해 얻어지는 이익으로 자신들의 풍요를 만들어보려던 장사꾼의 이기주의가 판을 치고 있었다. 이들에 비해 하나의 이념에 충실했던 삶은 외면적으로 훨씬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작가의 3부작 중 마지막은 레판토 해전을 다룬 것이다. 이 전투에 참여해서 부상을 입은 것을 자부했기에 항상 레판토의 용사라고 불리기를 원했던 세르반테스의 세계관을 보려면 그가 남긴 <돈키호테>를 보면된다. 기사의 용감한 돌격의 대상은 이제 풍차가 된다. 확고하게 땅에 못박고 있고 그 넓은 팔을 휘두르며 방아를 찧고 있는 풍차에 비해 기사의 무장은 너무도 빈약해 보인다. 그 이상은 당연히 주변의 조소를 받지만 그렇다고 세상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것 같지도 않다.어쨌든 이 작품의 주인공으로 설정했던 세사람의 카데토의 역할은 소설적 서술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장치 정도로 그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사람 중 하나가 남긴 회고물이 후일 이작품이 만들어지는 기초가 되었으니 중시할 수 밖에 없지만 막상 이들 젊은이들이 직접 보인 활약에 크나큰 것은 아니었다. 흥미를 끄는 것은 양쪽 모두에 유태인이 의사와 같은 기술자로 봉직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중에 기독교 측에 있던 한명의 의사가 이슬람을 위한 간첩행위를 하다 적발되었다. 당시 유태인들은 기독교 보다는 이슬람쪽이 자기들에게 관대하다고 생각해서 그런 방식으로 많이 행동했다고 한다. 책 제목을 보면 아래쪽에 "사려깊은 무장은 부하 장병들을 적과 싸우지 않을 수 없는 상태에 몰아넣는 반면 적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 싸우지 않게 하는 계획을 강구한다"라는 문장이 있다. 사기에 보면 한신이 벌인 배수진이 바로 그런 이치를 가장 잘 살렸던 전술인 것 같다. 진리란 동서양을 막론하고 하나에 수렴한다는 생각이 들게한다.어쨌든 총포의 발전은 계속 이어져 지구 반대편의 일본에서도 사무라이 계급이 몰락시키면서 군벌들간의 싸움의 종지부를 찍는다. 한편 중남미로 건너간 스페인의 도적들에게는 고대제국을 파괴하면서 엄청난 재화를 건져오게 해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쟁의 양상이 결국은 사회제도까지 바꾸어버린다는 것이다.
드림팀이라는 이름 답게 한국의 재테크 고수들이 모여 만든 책이다.짜집기라는 생각도 들지만 꽤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대목도 있다.내가 관심을 두고 본 부분은 최준철씨가 담당한 주식투자 부분인데남들 꺼려하는 환경 산업이 각광을 받을 것이고 더 해서 3D 산업 그 중에서도 쓰레기 취급하는코엔텍,아쿠아테크,인선이엔티 등등이 좋다고 지적한 대목이었다.아쿠아테크는 실패지만 나머지 둘은 상당히 좋은 성과를 거두었을 것이다.책이 나온 시점인 2004년 3월과 이 주식들의 정점을 이룬 2004년 말과비교해보면 몇배의 차이가 난다.가치투자의 값어치를 표현하는데 연예인들을 놓고 비유한 대목도 꽤 흥미로웠다.기술 둔감형으로 전원주를 꼽는다. 살이 좀 찐다고 해서 값어치가 떨어지는 건 아니다.반면 전지현의 몸매가 바뀌면 대번에 CF 의뢰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식료품 만드는 농심이나 유통업체야 큰 움직임이 없지만 첨단기술주는 순간순간피말리는 승부처다. 그래서 알기 쉽고 변화 좋은 쪽이 마음도 편하다는 소리다.경쟁사 몰락형으로 김희선,김혜수는 계속 늙어가는 자신의 이미지에 고민하지만아예 나이든 이미숙은 원숙한 30대말의 여성 역할을 하느라 상종가를 친다고 설명한다.해태가 망하니 롯데가 잘된다는 소리로 이해할 수 있다.이런 형태의 비유들로 설명해내는 이들의 재주에 솔직히 꽤 감탄했다.정말 그 사람이 선생으로 대우 받으려면 누구나 알기 쉽게 설명하는게 중요하다.그럴 때 가장 중요한 방법이 바로 비유다. 예수의 설교가 호소력이 있는게곳곳에서 적절한 비유를 사용했기 때문이다.그런 점에서 이들의 능력을 한층 높게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몇가지 요령은 확실히 배울만하다.1. 노트를 할 때 기호를 사용하라.인과관계 ->상호대립 -><-의문 ?경제 EC, 국제 Int 등등이렇게 하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나중에 볼 때도 간명하다.2. 자신만의 수식으로 표현하라지혜 = 지식 X 열의 + 체험, 마쓰시타 고노스케보면 꽤 괜찮은 공식이다.이렇게 사물을 간명하게 표현하는 버릇을 들이면 두고두고 활용하기 좋다.남들이 잘 표현해 놓은 것을 받아들인 것도 좋다.3. 강연 메모 기술노트의 왼쪽에만 기술함, 오른쪽에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여백을 남긴다.왼쪽도 다시 좌우 둘로 나눈다음 왼쪽에만 강사의 말하는 것 요점을 정리한다.거기에 자기의 의견을 오른쪽에 덧 붙이고.나중에 다른 페이지로 다시 종합해서 정리한다.남의 의견을 받아서 적기만 한다면 앵무새에 머무른다.가령 회사의 경영자가 방향을 이야기하면 유능한 관리자는그 방향을 맞추기 위해서 자신이 아랫사람들에게 어떤 일을 지시하는 게좋은지 바로 파악해둔다. 그래야 경영자가 물을 때 준비된 방안으로 대응할 수 있다.한해에 3천권의 책을 읽고 다시 자신도 수십권의 책을 내는 대가이므로곰곰히 따져보면 유용한 조언들이 많다.참고로 내 경험을 이야기하면 고객이나 중요한 사람이 이야기할 때눈을 맞추어서 경청하는 태도를 취하고, 강조할 때는 항상 메모를 한다- 설혹 나중에 쓸모 없더라도 일단 하는 척이라도 해라그리고 가끔 끄덕이라.경청한다는 자세만으로도 고객은 자신의 요구와 주장이 반쯤은 반영될 것으로 기대한다.한 가지 더.예전에 나중에 회사 사장님까지 올라가신 분이 신입사원들 왔다고 밥사주시는자리에서 맛있게 먹고 약간 졸았더니 이럴 때는 메모하는 거라고 진지하게 충고를해주신 경험도 있다. 반대 입장이 되어서 열심히 경험담 이야기해주고 있는데머리로만 흘려듣고 나중에 딴 소리하는 후배를 보면 정말 짜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