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조조와 원소의 대결
처음 천하대란이 발생했을 때 조조와 원소는 오히려 가까운 사이였다. 조조는 이전에 원소를 동맹군 대표로 추대한 경력도 있기도 했지만 우선 두 사람의 근거지는 약간 떨어져 있었다.
여럿이 섞여서 무작정 싸울때는 먼저 자신에게 가까운 상대부터 꺽는 것이 필요하다. 괜히 먼거리에 있는 적들을 공략해서 이겼다 하더라도 그곳을 온전히 지키기는 힘들다. 그렇게 보면 한발 한발 본거지에서 전진해나가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이러한 원교근공遠郊近攻이라는 전략은 전국시대의 진나라에서 범수라는 사람이 제기하였는데 이때쯤해서는 하나의 상식이 된 것 같다. 따라서 조조와 원소는 동맹을 맺고 각기 여포와 공손찬을 견제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원소가 자리한 산동지방은 인재도 많고 자원도 풍부했으며 무엇보다도 지정학적으로 유리한편이었다. 후면에 공손씨의 세력이 있기는 했지만 이를 꺽고나서는 배후도 안전했기에 한방향으로 나아가 중원으로 도전하기도 좋았다. 하지만 원소는 때를 읽어내기 보다는 자기 세력을 서서히 키워나가는 쪽을 선택하였다. 한편으로 조조를 한참 낮게 보는 원소의 자만심도 한 몫을 하였다.
한 수 아래로 보던 조조가 세력을 충분히 기르더니 이제 도전을 해오자 양자간의 정면대결이 벌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싸움은 후일 관도나루 대전이라고 불리운다.
삼국지의 세계에서 초반의 세를 결정한 것은 다음 세 번의 커다란 싸움이었다.
첫째 조조와 원소가 겨룬 관도나루 싸움.
둘째 조조의 남하에 맞서 유비와 손권이 동맹을 맺고 요격한 적벽싸움.
셋째 유비가 관우의 복수를 위해 동쪽으로 갔다가 패배한 이능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