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식으로 내부적인 갈등이 지속될 서쪽으로부터 도전하는 세력이 생겼다. 마초와 한수라는 서량의 우두머리들이 정면으로 도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초의 아버지 마등은 일찍 한나라에 복속해서 수도로 관직에 있었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인질의 상태였던 것이다. 조조는 서방에 종요라는 장군을 장안에 두고 강족을 안무하면서 외곽지역은 자율성을 부여하는 간접 통치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조조가 원소를 정복한 이후에는 지방에 대해서 요구하는 수준이 점점 높아졌다. 처음에는 특산물을 보내라는 수준이지만 점차 군대를 징발해 보내라고 하고 마지막으로는 관리를 파견해서 일거수 일투족을 직접 감시하게 된다. 수십년을 자율적으로 살아오던 강족으로서는 이게 불만이었기에 참에 무력시위를 통해 조조로부터 독립을 공인받으려 했다.

 

싸움에서 조조는 매우 뛰어난 지략을 발휘했다. 조조의 군사들이 말을 잘타지만 강족 또한 방면에서 앞서가면 앞서갔지 뒤지지 않은 실력자들이다. 덕분에 초반 싸움에서 조조의 군대가 밀리는 경우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조조로부터 독립을 하는게 전쟁의 목표였지 아예 조조와 끝까지 싸워 이겨야겠다는 결전의 의지는 약한 상태였다. 군대의 구성 또한 단일한 지휘체계를 갖추었다기 보다는 여러 부족의 연합체 성격이 강했다. 이런 약점을 파악한 조조는 화평에 나서는 것처럼 보여서 우선 상대방의 긴장을 풀게 하였다. 다음 주요한 세력인 마초와 한수의 사이를 이간시켜 서로 믿기 어렵게 만들었다. 내분이 일어나게 상태에서 공격에 나서게 되자 생각보다 쉽게 강족의 대군이 무너져버렸다.

처음에 전쟁에 나서는 순간부터 죽을 힘을 다해 끝까지 싸우겠다고 했다면 아마 조조가 제압하기는 쉽지 않은 상대였을 것이다. 중원에서 여러 상대에 맞서 싸웠던 조조의 꾀를 넘어서기에는 아직 아래였다.

 

이렇게 연달아 지략을 자랑하는게 조조의 장기였지만 뒤집어보면 약점이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자기보다 재주 많은 사람들을 곱게 보지 않았다. 때로는 양송처럼 재주를 지나치게 앞세운다는 이유로 조조에게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그의 집안에 있었다. 조조는 원래 여자를 무척 좋아했다. 장수의 항복을 받고는 그의 작은 어머니를 취하여 첩으로 삼았다가 이에 분개한 장수의 역습으로 크게 참패해서 허겁지겁 도망나오고 말았다.

원소를 격파했을때 원소의 아들 원상의 처가 워낙 미인이었는데 조비가 재빨리 나꿔채었다. 여인은 후일 조비로서는 연상이었지만 황후의 지위까지 오를 정도였다. 이미 아들이 차지한 것을 놓고 다툼을 벌일 없었던 조조가 이번 전쟁에서는 아들 좋은 일만 시켜주었다고 투덜대는 대목이 <세설신어>라는 책에 나온다.

제갈량이 손권과 조조의 침공에 맞서 대항하도록 권유할때 조조가 지은 시가 남쪽으로 내려가 이교를 데려다가 동작대에 놓겠다는 대목을 들어 손권과 주유를 분개하게 만들었다는 기록 또한  결코 근거없는 내용은 아닐 것이다. 이런 면면들이 조조의 여성편력을 짐작하게 해주는 단면들이다.

그런데 이들 여자들의 공통점은 미인이라는 것이다. 잠깐 데리고 노는 상대라면 이쁜 것도 좋지만 자신의 아들을 낳고 가정교육을 시키며 집안의 안기둥이 되어야 지와 덕을 겸비한 여자를 구하는 모습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집안 식구들끼리 서로 다툼이 나온다. 조조의 여러 아들들 특히 조비와 조식이 가장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둘을 놓고 조조는 수시로 번갈아 칭찬하면서 후계자 자리를 경쟁시켰다. 필연적으로 두사람은 서로 갈등하게 되고 이들을 중심으로 거대한 파벌이 생겨서 소모적 대결을 펼치게 된다. 이를 원만히 조정하기 보다 끝까지 방치한 조조의 태도 덕분에 일족이 서로 반목하는 문화가 만들어졌다. 이는 결국 그가 이룩한 위업인 위나라의 수명을 단축시키게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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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조조, 유비, 손권의 정립

 

3.1 조조의 정치

 

남방원정에서 절반의 성공을 거두고 돌아온 조조를 기다리고 있는 문제는 내부 체제의 정비였다. 당시의 정황을 살펴보면 조조의 통치권은 과거 원소, 공손찬의 세력권을 모두 통합하고 이제 형주까지 합쳐서 외형면으로 매우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치열한 싸움 끝에 점령한 땅들이라 충성도도 높지 않았고 민심 또한 제대로 추스르지 못한 상태였다. 인구들 상당수는 미망인, 고아들이었고 쓸만한 장정들은 전장터에서 많이 쓰러진 상태다. 체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무리하게 확장을 하려고 싸움을 벌였다가 만에 하나 진다면 제국이 동시에 흔들릴수도 있다. 그래서 우선 시간을 두고 새로 정복한 지역들을 계속 관리해나가는 쪽으로 무게를 두었다.

 

아울러 풀어가야 문제로는 명목상 황제로 모시고 있는 한나라 헌제와의 관계였다. 당시 중앙정부는 한과 위라는 개의 정권이 외형적으로 병립하는 형태가 이루어졌다. 헌제와 한나라의 귀족들 측에서는  신생 무력집단인 조조를 무너뜨리고 한왕조의 위업을 이어가려고 시도했다. 원소와의 싸움 이전에 동승과 유비에게 한번 밀지를 주어서 자신을 몰아내려고 했기에 조조로서는 헌제가 부담스러웠지만 당시에는 완전히 밀어내기에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주변에 크게 두려워할 적이 없는 마당이라 조조는 급격히 자신의 의도를 관철하고 정부내에서도 세력을 키워나갔기에 마찰은 여러 형태로 나타났다.

 

우선 그동안 기득권을 존중해서 최대한 예우하던 한나라의 귀족들에게 압박이 가해졌다. 공자의 후손이라고 해서 당대의 명사로 꼽히던 공융은 조조를 존중하지 않았다고 해서 억울한 죽음을 받아 일족이 멸하게 되었다. 법보다 조조의 사적인 권위가 중시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다보니 조조를 오랫동안 따르던 세력 내에서도 이탈자가 생겼다. 최염이라고 오랫동안 조조가 친구로 가까이 하던 사람도 이러한 처사에 분개하였다. 조조도 아까웠지만 자기의 분노를 조금도 감추려하지 않는 최염을 살려두지 않았다. 어차피 욕을 먹기로 했다면 많이 먹는 자체를 개의치 않은 것이다. 최종적으로 순욱이나 순유와 같이 조조의 초반기부터 계속 그를 수행했던 신하들까지 조조의 욕심에 등을 돌렸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다. 조조의 정권에서 이들이 공이 많았던 인물들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처벌되었던 것은 이상 한에 연연한다면 누구도 같은 종말을 맞이할 것이라는 경고였다. 결국 대목에서 사가들이 조조의 냉혹한 면모를 그려내게 된다. 삼국지연의 또한 여러가지 표현을 통해 권력의 냉정함을 보여준다.

피를 나눈 친아들과도 권력은 나눌 없다고 한다. 또한 한번 시작하면 중간에 멈출 없다. 올라가는 사다리가 있어도 내려올 때는 그냥 밑바닥까지 바로 추락할 밖에 없는 것이 바로 권력추구의 냉정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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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 적벽대전

 

조조로서는 앓던 하나가 쉽게 빠졌고 세력 또한 형주의 군대를 포함시켜 훨씬 커지게 되었다. 특히 강을 끼고 강동과 맞서왔던 형주의 수군을 끌어안은 것은 상당한 수확이었다. 그래서 다시 손권에게 편지를 보냈다. 형식은 정중하지만 내용은 항복권유가 담긴 문서였다. 하지만 유종과 손권은 달랐다. 손권 진영에서 벌어졌던 논쟁을 보면 재미있다. 문관들은 대체로 형주의 예에 따라 조조에게 머리를 숙이자는 쪽이었다. 기득권을 누리는 호족의 논리였다. 반면 무관들은 한번 싸워보지도 않고 항복한다면 자신들의 대우가 지금 보다 훨씬 아래로 내려갈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이들은 싸워보자고 주장했다. 특히 바다와 같다고 비유되는 양자강에 익숙하기에 어느 정도는 조조에 맞설 있다는 계산도 있었다. 이제 공은 손권의 결단으로 넘어갔다. 이때 방문객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제갈량이었다. 20대의 청년이었지만 유비의 군사로 임명된 상태였기에 쉽게 다루기에는 어려운 인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손권이 굳게 의지하는 제갈근이라는 중신의 친동생이다. 제갈량이 가져온 논리는 보지 않아도 분명하다. 조조와의 싸움에 함께 나서자는 매우 위험한 제안이다. 하지만 여기서 제갈량은 성공적인 설득의 사례를 보여주었다. 거래가 나에게 좋은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 좋은 것이라는 점을 이해 시킨 점이다. 천하가 지금은 조조에게 쏠리는 같지만 유비와 손권이 힘을 합쳐 고비를 넘기면 셋으로 나뉘게 되어 균형을 잡는다는 논리를 납득시켰다. 이대로 진행된다면 손권으로서는 지방을 차지한 주인에서 천하를 놓고 다투는 패자의 지위까지 올라가는 것이다. 당장 문신들과 항복하느니 마느니 다투는 골치 아픈 상황에서 벗어나 같이 싸우자는 우군도 생기고 성공 했을 때의 밝은 미래 전망까지 듣고 나니 손권은 싸움이라는 결단을 내리기가 쉬워졌다.

 

하지만 결심을 하는 것과 싸움에서 이기는 것은 다른 문제다. 당시 유비의 세력은 수만명 수준이었다. 유표의 아들 유기가 강하에서 얼마간의 군대를 거느리고 있었는데 여기에 북방에서부터 자신을 따라오던 세력을 합친 것이다.

손권쪽은 훨씬 여유가 많아서 10만에 가까운 규모의 군대였다고 추정된다. 특히 강을 끼고 생활하다보니 수군이 무척 강했다. 조조가 아무리 막강해도 그건 넓은 평지를 누비는 기병이 좋았기 때문이다. 말을 타던 병사를 배에 태웠다고 해서 여전히 강병은 아닌 것이다.

이런 상황인식에 의해 손권의 군대는 강쪽에서 조조가 넘어 오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다. 기회가 되면 유비는 지상에서 외곽으로 기습하고 손권은 강쪽에서 조조의 주력을 공격을 하는 것이 전략이었다.

조조 군대는 매우 많았다. 연의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100만에 가까운 대군은 아니지만 20만을 훨씬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대군이 위세 좋게 내려왔지만 대병력을 보급하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그리고 북방과 강남지역은 기후가 달랐다. 먹는 곡식도 다르고 계절도 바뀌는데 풍토병이 돌아 면역이 약한 북방군대의 전투력에 타격을 주었다. 그리고 새로 편입한 형주의 수군이 소극적이라 기대만큼 활약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몇차례 수군끼리의 대결이 있었는데 조조의 군대 쪽이 대부분 패한 상태였다. 자신감을 가지게 손권의 수군이 계절의 변화를 읽어 동남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등에 업고 조조의 선단에 강한 타격을 둔다. 안에는 풍토병으로 떨어진 사기에 강을 건너기는 쉽지 않은 보고 조조는 퇴각이라는 결단을 내렸다. 이때 관우가 화용도를 지키고 있었다던가 하는 부분은 모두 소설의 창작으로 작가의 재미있는 상상력이 발휘된 부분이지만 결코 역사적 사실은 아니다.

 

소설에 나온 것처럼 적벽의 전투가 조조의 군대를 궤멸시킨 것도 아니다. 실제 형주를 항복시킨 조조의 기득권은 대체로 유지되었는데 강하와 양양을 비롯한 북쪽은 조조에게 계속 충성하는 상태로 남게된다. 곳들을 형주의 남쪽은 유비와 손권의 연합군이 차지하게 된다. 경계선은 거의 삼국시대 끝까지 이어져서 유비나 손권은 관우의 번성 공격 이외에는 선을 넘지 못했다.

 

전쟁에서 유비의 공은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과연 엄청난 수준은 아니었다. 대체로 손권의 장군인 주유의 활약이 컸다고 보여진다. 그래서 항상 손권은 형주의 일부를 갈데 없는 유비에게 빌려 땅이라고 주장하게 되었는데 여기에 유비가 정면으로 반박하기는 어려웠다. 기껏 들이댄 논리는 유표의 아들인 유기가 자기와 같이 있다는 점을 들먹이는 수준이었다.

조조의 패배 또한 순전히 동남풍과 같은 운이었다면 아마 다음해에 일으킨 전쟁에서는 승리를 거두는 것이 맞는 진행이었을 것이다. 다시 남쪽으로 치닫아 적벽의 패배를 설욕하려고 했지만 이번에도 양자강이라는 지리적인 장애물을 극복하기에는 부족한 상황이었다. 여전히 손권의 군대는 강을 의지하여 단독으로 선방하였다. 이렇게 유비와 손권이 조조가 물리치고 살아남았으니 삼국병립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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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남방원정

 

2.3.1 형주정벌

 

가장 적을 물리친 조조는 이제 원소의 잔존세력을 흡수한 대병력을 몰고 남으로 향했다.원래 남쪽에는 장수와 유표 둘이 긴밀하게 협력하며 조조를 막았지만 지금 장수는 조조에게 붙었기에 훨씬 유리한 상황이 되었다. 더해서 형주 쪽은 눈에 가시 같던 유표도 죽었고 후계자 다툼을 거쳐 올라온 작은 아들 유종은 아직 나이도 어리고 경험도 부족한 상태였다. 유표는 이렇게 어리석은 결정을 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동탁의 초기에 형주를 장악했던 유표는 형주에 뿌리내린 채씨 호족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유종은 집안의 딸과 결혼해서 얻은 아들이기에 결국 후계자로 지명한 것이다.

막상 유표의 아들을 후계자로 추대했지만 형주의 호족들 전반의 입장은 유종을 위해 목숨을 걸고 조조에 맞서고 싶지는 않다는 분위기가 다수였다. 크게 두가지 요소가 작용했는데 하나는 원소를 물리친 조조가 이제 너무 버거운 상대가 되었다는 점이다. 둘째 중요한 것으로 조조가 얼마 항복한 장수에 대해 과거의 원한을 접어두고 후대했다는 것이다. 장수는 조조의 아들을 죽인 원수인데 그가 정도로 대접을 받는다면 우리 정도는 대우를 받을 것이다라는 분위기가 퍼져나갔다. 형주는 상대적으로 전란의 피해가 적었다 보니 충분한 부와 안락함을 누리고 있던 형주의 호족들이라 자신들의 지위가 유지된다면 굳이 목숨을 걸고 싶어하지 않았다. 분위기를 뒤집을 만큼 유종의 의지와 지도력이 검증된 것은 아니다. 유종 개인의 입장에서는 눈물을 머금고 항복이지만 받는 조조로서는 유종 스스로의 결단이 아니었다고 보아서 그렇게 높게 대우해주지는 않았다. 반면 일찍부터 항복하자고 설친 호족들에게는 골고루 요직을 주었다. 좋은 예로 역량도 있고 투항에 적극적이었던 문빙은 강하태수로 임명되어 적지 않은 군대를 계속 거느리고 오나라와 맞서는 최전선을 책임지게 된다.

유표가 살아 있을 조조에 대한 태도를 분명히 하라고 조언한 사람이 있었다. 원소를 치러 나간 사이에 본거지를 공략하던가 아니면 차라리 장수처럼 항복해버리자고 했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쫓겨와 숙식하고 있던 유비에게 형주를 넘겨주는 것도 방법이었다. 어느 쪽을 택했더라도 유표 자신에게는 나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유표는 결단을 내리기 보다 문제를 미뤘고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은 문제를 고스란히 아들에게 남기고 말았다. 난세에 역량이 부치는 일을 맡는 것도 고역인데 바로 짐을 주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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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와 아들들까지 모두 격파한 조조에게 이제 싸우면 이기는 상승장군이라는 평판이 생겼다. 그렇지만 손자병법을 보면 이것보다 높은 단계가 있다. 바로 싸우지 않고 이기는 사람이다. 조조는 원소의 아들들이 도망간 변방을 일일이 자기 손으로 정복하려고 하지 않았다. 공손연이라는 지방군벌이 차지하고 있는 요동은 중원에서 한참 떨어진 땅으로 점령했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번신을 밖에 없는 지역이다. 여기까지 굳이 군사를 몰고 가서 얻을 있는 실리 보다 중요한 일들이 앞에 있었다. 바로 형주의 유표, 강남의 손권, 서량의 마초와 한수를 제압하는 일이었다. 이들의 영토는 중원에 바로 물려 있었고 조조가 중원의 패자가 되면서 압박을 많이 느끼고 있는지라 어떤식으로 저항할지 분명하지 않았다. 종합적인 상황인식을 다음 조조는 군대를 정지시켜 놓고 가만히 요동의 반응을 기다렸다. 조조가 막바로 쳐들어 것으로 보이지 않자 공손연은 원상의 잔당을 정리하고 제발로 복속하겠다고 나왔다. 미소를 지으며 이들을 맞이하는 조조의 솜씨는 그래도 손안대고 코푸는 격이었다. 이러한 정책의 의미는 곳곳에 할거하던 세력들에게 대놓고 저항하지 않으면 자신들의 세력은 보존할 있게 해준다는 메시지를 것이고 여기에 공손연이 응한 형태다. 이외에도 조조는 과거 원소 치하의 무장들이나 지방관들도 순순히 항복하면 기득권을 인정해주었다. 과거를 불문하고 미래를 위해 일하라는 원칙으로 중원을 통합한 것이다.

 

전투 끝나고 남은 민심 수습의 문제에서도 조조는 상당히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우선 승자의 입장이었지만 원소를 모욕하지 않았다. 원소의 본거지인 업을 점령하고 나서 원소의 무덤 앞으로 눈물을 보인 것은 진정이라기 보다는 연극이었다. 하지만 패배의 상처를 안고 있던 원소의 잔존 세력들을 회유하는데 상당한 효과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민심을 다루는 정책이다. 우선 점령지에서 첫해의 세금을 깍아준다는 포고를 내렸다. 당시에는 독자적인 여러 군벌들은 특히 전쟁에 임박해서 막대한 세금을 거두는 경향이 있었다. 자신의 존폐가 걸린 싸움을 앞두고 굳이 본거지에 많은 물자를 남길 없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싸움을 이기고 점령한 땅에서도 무엇 하나 쉽게 건지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여기서 욕심을 내가지고 승자의 권리를 지나치게 행사하려고 한다면 무리가 따르기 마련이다. 이러한 이치를 조조는 이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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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ky 2005-05-22 0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마천 님 올려주신 글들 잘 읽었습니다. 사실 저는 삼국지를 마지막으로 읽은지 벌써 한 8년은 넘었기에 자세한 부분들은 잘 기억이 나질 않다보니, 어떨땐 이런 내용도 있었나 싶을때도 있답니다. ^^; 덕분에 잊고 있었던 부분들을 다시 떠올리게 됐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