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분류를 정확히 하고 자신의 분야에 맞는 시간에 대비되는 목표를 세우고 능력에 맞추어 도전을 해야 한다.

모든 것을 읽는다고 덤비는 자세는 무리가 있다.전체보다는 부분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먼저 적어도 전공분야에서는 깊이 있게 읽기를 있는 기초를 닦아야 한다. 처음부터 너무 두꺼운 것을 시도하지 말고 얇지만 충분히 가치 있는 책을 골라 좋은 습관을 충실하게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같은 독서능력을 시험할 있는 우선적인 대상으로는 전공분야의 고전이 것이다. 경제학도라면 아담 스미드의 <국부론>이나 마르크스의 <자본론> 철학도라면 플라톤의 <대화> 사학도라면 헤로도토스의 <역사> 사마천의 <사기> 읽어서 자신의 기초를 만들어야 한다.

다음으로 일반적인 교양을 위해 쉽게 접근 있는 문학과 역사 분야의 고전을 소화한다. 분야에서 적당한 작품을 골라 일반적인 교양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정보나 즐거움을 위한 독서물을 적절히 고르고 섭취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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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위한 독서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144 권을 모은 브리태니커의 선집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주변에서 한군데 아버님이 언론계 출신으로 국회의원을 지내신 댁에 가보니 있었다. 집어오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참았다.

선집에는 주로 미국을 중심으로 영어문화권의 작품이 주종을 차지하게 되는데 동양과 한국의 작품을 일부 보완하고 신서를 가담시키면 좋은 컬렉션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에 맞추어 사상 전집의 편집도 이와 같은 형태로 확장이 돼주면 좋은데 출판계의 풍토가 아직 힘든 같다.

 

144 권이라는 규모는 무척 크게 느껴지지만 막상 따지고 들어가면 그렇게 많은 분량도 아니라고 있다. 하지만 제대로 읽자고 하면 결코 작은 수량이 아니다. 권을 일단 400 페이지 정도로 가정하고 시간당 40 페이지 읽는 속도라면 10 시간 정도가 한권의 독서에 소요된다. 책을 번의 독서만으로 소화한다고 자신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고 두세번 읽으려고 들면 30 시간 정도는 쉽게 지나갈 것이다. 책이 요구하는 비용은 이렇다 치고 사람이 지불할 있는 능력을 보자. 자신이 주일 동안 책읽기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가 생각해보면 소화할 있는 전체 수량은 분명하다.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6 시간 이상을 투입해야 매주 쫓아갈 있고 1 년이 52 주니까 해마다 52 권이란 계산서가 바로 나온다. 4 년을 분주히 뛰어다녀도 정해진 테두리는 분명하다. 결국 대단한 노력가나 천재가 아닌 다음에야 같은 독서는 무리다.

모두들 고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하지만 막상 대학교수들도 물어보면 중에서 전공 분야를 제외하고는 소설 정도 읽은 수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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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 , 천년의 세월 속에서 가치가 퇴색하지 않는 이유는 후세의 사람들이 한번에 소화하지 하는 가치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대학교수라고 해도 고전 독서를 시작하면 번에 책의 내용을 결코 5 % 이상 획득하지 한다고 나는 장담할 있다. 평생에 걸쳐 파고든다고 해도 60 % 이상 넘어가기 힘들다.

교수들도 어차피 여러 읽어도 모르면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는 방법 밖에 없다. 전문가라고 해서 그렇게 많이 수는 없다. 대부분 남들의 발걸음이 미처 닿지 않은 같은 조그마한 공간으로 파고들어 이것은 영토이므로 덤비지 말아라 하고 선을 긋고 선언할 뿐이다. 똑똑한 것으로 말하면 둘째 가라 하면 서러워 교수들도 정도인 상황에서 남보다 의욕이 조금 많고 이해력이 조금 뛰어난 사람 하나가 번의 독서로 얻을 있는 것이 얼마나 있겠나? 높고 험한 산에 아무런 사전 준비 없이 도전해 나가는 것은 무모하다는 이상으로 표현할 없다.

산을 먼저 올라가려고 시도했던 사람이 무수히 많다면 내가 하나의 시도를 하기 전에 물어볼 있지 않을까? 고시나 자격,입사 시험을 하나 보려고 하더라도 경험자에게 찾아가는 것은 자연스럽다.

 

수학의 명제에서 정의가 애매한 말로 구성을 한다면 전체적인 효용이 없게 된다. 사회과학도 마찬가지다. 조금 쉬운 문장으로 바꾸어 보아도 마찬가지다. 정의를 정확히 알고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독자가 지닌 문제들 가운데는 거의가 자신들에게 어려움을 유발시키고 있는 단어들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자유인을 위한 책읽기> 191

 

지겨움이란 이와 같이 모르는 단어와 명제가 과도하게 나타나 전체적인 상이 만들어지므로 흥미가 유발되지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읽은 내용을 되돌아 보아 페이지 일정 비율 이상의 모르는 단어가 나온다면 책은 일단 덮는 것이 좋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도전하려는 사람들에게 보다 짧은 칸트의 다른 책을 권하는 경우나 마르크스의 <자본론>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마찬가지로 짧은 책을 권하는 것을 경험이 있다.

가령   역사는 자유의식의 발전과정이다라는 단순한 문장이 있다고 하자 문장을 A + B = C 라는 수학 형식으로 바꿀 수도 있다. 여기서 A 5 C 8 이라고 알고 있지만 B 도대체 무슨 숫자인지 알지 한다면 어떻게 등식의 성립과 불성립에 대해서 판단할 있겠나? 마찬가지로 역사,자유의식,발전과정 등의 용어가 명확히 들어오지 않는다면 혹은 저자와 서로 다른 맥락에서 사용하고 있다면 명제로서의 진위여부를 판단하는 작용이 무의미 것이다. 독서 과정에서 저자가 중심으로 사용하려는 단어들의 개념은 되도록 정확히 이해하여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생활에 도움이 있는 가지 정도의 지침을 가질 있는데

하나는 신문의 기사를 이해하는데 시사용어사전의 활용이 필요하다.학자나 언론인이나 자신의 독창성을 강조하기 위해 보통 용어를 낯설게 만드는 것에서 시작한다.

다른 하나는 회사생활에서 업무별로 용어집을 구축하여 공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상당히 많은 회의가 겉돌게 되는 이유는 서로 사용하는 용어의 범위와 문맥상의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다.

 

개설서와 강좌가 필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줄기의 방향을 잡아주고 기본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내용을 잘게 뽀개어서 쉽게 풀어내며 각종 사례를 든다.

이와 같은 해설가가 고전을 넘어서는 것은 불가능하. 하나의 고전에 해설자가 수도 없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 그렇기 때문에 개설서는 무수히 많을 밖에 없고 시대에 맞추어 계속 다시 쓰여진다.

앞서 친구와의 철학논쟁이라는 일화에서 이야기 했듯이 정확한 독서를 하지 한다면 차라리 만화책의 독서가 개인의 이해를 빠르고 풍부하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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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의 생활경험은 여러 문제를 늘 새롭게 연구하도록 자극했다.마침내는 현실을 이론적으로 정립하고 다시 그 이론을 실제에 시험하려는 자세를 취했기 때문에 나는 이론 속에서 질식된다든가,현실 속에서 천박화된다든가 하는 일을 모면했던 것이다. 아돌프 히틀러, <나의 투쟁>

대부분의 사람이 책을 읽은 후 그 책이 당신의 삶과 지식에 어떠한 도움을 주었는가하는 질문을 받는다면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책은 하나 혹은 그 이상의 문제에 대한 저자의 해결과정을 담고 있다. 히틀러는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많은 것을 읽지는 않았지만 뚜렷한 자기의 목적을 가지고 있었고 여기에 맞추어 여러가지 지식을 분류하여 기존의 체계에 통합하였기에 현실이 요구하는 사회를 지도할 나름의 원리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책을 읽는 과정에서 읽었다는 사실 자체에 만족하는 경우가 많다.이 책을 반드시 읽어야 하는 기본적인 목적의식을 가지지 않은 상태에서 활자가 만들어내는 관념세계에 뛰어든다면 가장 핵심적인 명제조차 얻어 듣지 못한 채 물러서게 되는 것이다.

독서 행위가 막 끝난 상태에서 읽은 사람이 가지는 것은 나도 이 어려운 책을 읽었다는 포만감이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생활 속에서 문제와 맞부딪치는 경우 두텁게 구축한 지식이 별 도움이 안된다는 것을 확인한다면 포만감은 공허함으로 바뀌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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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 교육을 받지 않았으면서도 책을 상당히 읽었던 사람의 이야기를 다시 하나 들어보자.

 

독서나 학습의 기술이라는  것도 다음과 같은 것이다.즉 본질적인  것은 기억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잊는 것.

 

한정도 없이 많이 읽는 사람,한 권 한 권,한 글자 한 글자 읽는  사람들을 나는 알고 있다.그렇지만 나는  그들을 박학다식博學多識하다고 할 수  없다.물론 그들은 다량의 지식을 갖고 있다.그러나 그들의 두뇌는 자기가  거두어들인 이 재료를 분류하거나 정리하거나 하는  일을 모른다.그들에게는 책 속에서 자기에게  가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선별選別하는 기술이  부족하다.그리고 어떤 것은  항상 머리 속에 지니고 어떤 것은 가능한 한 무시하는  식으로 어떠한 경우에도 쓸모없는 골치아픈 것을  끌고 다니지 않는 기술이  결여되어 있다.독서는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목적을 위한  수단이다. 첫째로 독서는 각자의 소질,능력을  발휘하고 인격 형성을 충실케 하기  위하여 조력해야만 한다.그러므로 독서는 각자가  자기의 직업에 - 이것이 원시적인 생존투쟁이든,혹은 비교적  고급의 사명에 만족하기 위해서든 마찬가지이지만 - 필요한 도구나 자재를  공급해야 할 것이다.둘째로 독서는 일반적인 세계상世界像을 전달해야만 한다.

 

그러나 올바른  독서 기술을 갖고 있는  자는 어떠한 책,어떠한  잡지나 팜플렛을 읽더라도 쓸모가 있다든가 혹을 알아둘 가치가  있다는 이유에서 오래 기억해야겠다고 생각되는 모든 것에 즉시 주의가 집중되리라.

이러한 방법으로 얻어진 것이 이런저런 문제에 관해서  이미 여하튼 머리 속에 있는 관념들 가운데  적당한 장소를 찾아내자마자 잘못을 고치든가,그  상의 정확성이나 명료함을 높여주는 것이다.인생에 돌연 그 어떤  검토나 해결을 요하는 문제가 생긴다고 한다면,이런 식으로 독서할 경우 즉시  기존의 관념을 기준으로 정하고 거기에서 이 문제에 관계하고 있는 과거  몇십 년간에 모아진 개개의 도움되는 것을 끌어내어 문제를 해명하든가 해결할 때까지  검토하거나 재고하거나 하기 위해 지성을 제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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