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미래를 바꾸는 공부저력 - 우리 아이에게 딱 맞는 수준별 학습법 평생성적 프로젝트 2
김강일.김명옥 지음 / 예담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꽤 히트를 친 저자의 첫번째 작품 <평생성적 초등 4학년...>의 후속편이다.
하나의 작품이 히트를 치면 속편이 나오게 마련인데
앞서의 책이 이론적인 체계를 통해 저자의 주장을 전개한다면
이번에는 실제 지도 사례를 통해 주장을 검증한다.

처음 저자의 논지를 재확인하는데 공부를 하기 위한 힘은
(이해력+사고력+표현력) 곱하기 (열정+인내심+집중력)라고 한다.

표면적으로 학업 성적이 떨어지는 아이라도 자세히 보면
이 중 하나의 장점을 갖고 있을 수 있다. 그 장점을 잘 살려서
제대로된 학업태도를 만들어주는 과정을 보여준다.

저자에게서 놀라운 점은 아이의 친부모도 제대로 발견 못한 면들을
찾아내서 거기에 맞는 맞춤형 학습법을 제시했던 점들이다.
특히 요즘처럼 맞벌이가 많아지면서 한편으로는 자녀의 공부에 대한
바램은 많지만 손쉽게 학원 몇개 끊고 뺑뺑이 돌리듯 하는 것을
마치 막대한 투자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도 보인다.
그런 돈 위주의 획일적인 교육관에서 벗어나도록 부모를 유도하는 점에서
저자의 노력을 높이 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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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자씨를 주의 깊게 보았다.
이유는 나중에 다시 언급하기로 하고 우선 영화애호가로서 감상을 말하자면
스토리의 탄탄함이 부족하다.

같은 감독의 이전 작품인 올드보이를 보면
일본만화를 기반으로 외디푸스 컴플렉스라는 그리스 비극의 개념을
첨가시켜 한층 발전시킨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서양적 고전 해석을 포함시켰기에 해외관객과 평론의 호평을 받으며 상을 타게 된 계기다.

반면 금자씨에서 그런 면모를 발견할 수 있을까?
기독교의 성경에서 얼마간 코드를 따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서로 연결하기 위한 스토리의 탄탄함이 없다.

복수. 과연 인간이 다른 인간의 생명을 빼앗을 만한 권리를 부여받을 수 있을까?
쉽지 않다. 인간은 기독교적 의미로 보면 누구나 죄인이기에 그 권리를
절대자인 하나님께 유보하고 현세에서는 용서하고 심지어 다른 쪽 뺨까지 내놔야 한다.
금자가 줄기차게 자신을 피해자라고 주장하지만 결국 복수를 성공시키고
돌아왔을 때 눈 앞에 나타난 존재는 자신도 공범이었던 유괴된 아이의 영혼이었다.
그 아이에게 미안이라는 말을 하려는 순간 금자의 입은 재갈로 막힌다.
아이의 입을 막았던 재갈? 아니면 얼마전 최민식의 입을 막았던 재갈일까?
미안하다고요 하면서 씩 웃으며 나타나는 소년의 성장한 모습은 실제로는
이 세상에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금자의 공범 행위가 없었다면
분명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 앞에서 죄인은 변명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입을 다물어야 한다.
다시 묻건데 누가 누구를 정죄할 권리가 있을까? 모두가 죄인인 마당에.

이렇게 모순되고 가치고 모호한 세상이라면 절대악을 설정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올드보이의 매력 중 하나가 복수의 방향이 서로 바뀐다는 점이었다.
최민식의 복수가 갑자기 유지태의 복수로 바뀌는 점이 바로 그런 모호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금자씨는 그게 없다. 금자 한사람의 단선적인 복수가 갑자기 형식이 바뀌어 여러
사람의 복수로 바뀔 따름이다. 특히 인간의 속물 근성을 보이기 위한 여러가지
장면들은 한층 주제를 흐리게 할 뿐이다.
최민식의 피를 받아 빨간 무스케익을 만들어 나누어 먹지만 너무 길게 편집된 내용들일뿐이다.

금자, 한국 영화가 지속적으로 뻗어나가기 보다는 성장의 한계를 맞고 있다는 느낌을 떨치기
어려운 작품이다. 다시 올라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 충고는 우선 스토리를 더 탄탄하게 쓰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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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오 2005-08-11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저도 스토리, 특히 중반부 이후의 스토리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게 얽힌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좀 바닥에 발을 딛지 못하고 둥둥 떠나니는 듯한... 그리고 그 빨간 무스케익이 그건지 처음 알았습니다... ^^

사마천 2005-08-11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부분은 양론이 있습니다. 그게 피가 아니라는 말을 감독이 했다고도 하고 다시 그렇게도 볼 수도 있겠네요 라고도 감독이 다시 언급했다고 합니다. 실제 피라고 노골적으로 이야기하면 윤리의 문제가 나오죠. 인간이 인간을 먹는다는. 그래서 혼동의 여운속에서 못 다한 이야기를 넌지시 띄운다고 보여집니다.
 
마법천자문 9 - 믿는 마음! 믿을 신信 손오공의 한자 대탐험 마법천자문 9
시리얼 글 그림, 김창환 감수 / 아울북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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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을 보고 있으면 아들이 다가와서 꼭 물어본다.

"마법천자문 나왔나요?"
아니라고 내가 답하면 "그래도 한번 확인해봐요".
끈질긴 독촉에 한번 더 때려본다.
그렇게 찾다가 없으면 몇일 뒤에 또온다.

이제 고대하던 9권이 나왔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보고
아들을 넘겨주게 되었다.

손오공을 모티브로 한 만화로는 드래곤볼,날아라 슈퍼보드가 있는데
늘 강력한 힘과 천진난만한 생각으로 아이들에서 어른들까지 인기를 끈다.
이 책의 주인공도 어느 정도 살아있는 듯한 개성을 보여주면서 활약하고 있다.
뒤로 갈수록 한자의 수준도 올라가고 있는데
점차 한자능력검정 시험에 대해서 도움이 많이 될 수 있는 보조도구 내지
보충학습 기능이 강화되고 있다.

앞으로의 시대는 대한민국이라는 한반도에 갖힌 틀로 살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벌써 제조업 공장들은 해외로 계속 이전된다. 그런 산업을 지탱하는 것은
새로운 개념을 만드는 창의력, 다양한 국제 고객을 이해하는 힘, 이문화를 넘어서
인적자원을 관리하는 개방성 등등이 될 것이다.

이런 작업이 주로 한중일 세 나라를 둘러싸고 발생할 것이다.
이 나라들이 다 함께 공유하고 있는 한자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선 어려서부터 꾸준한
체득이 중요하다.

어려운 한자 교육을 쉽게 퍼트린 점은 우선 작가들의 뛰어난 창작솜씨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한 걸음 나아가 작가들의 노력도 한권의 만화를 넘어서 문화를 이해하는 기초가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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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hubert / Schumann / Debussy
MSTISLAV ROSTROPOVICH 지휘 / 유니버설(Universal)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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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슈베르트의 아프레지오 소나타는 원래 아르페지오라는 악기를 위해 만들어진 곡입니다.
후일에는 이와 비슷한 음색을 첼로를 통해서 만들어내죠.

로스트로포비치의 이 음반은 정말 이 곡을 은은하게
우리 마음속에 남겨주는 작품입니다.
이 곡으로 만들어진 연주중에 최고라고 과감히 말씀드릴 수 있죠.
한번 꼭들 들어보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여기서 절판이라고 너무 아쉬워 말고 주변에서 잘 찾아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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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대부분의 비즈니스맨들이 지위가 높아지기를 바란다.
지위가 올라가려면 대접이 좋아진다.
단지 호칭 하나만 대리에서 과장 다시 부장으로 바뀌어도
주변 사람들이 보는 눈이 달라진다.

하긴 그래서 어떤 회사들은 역할은 바꾸지 않고서 호칭만 바꾸어준다고들 한다.

어쨌든 올라가면 모든게 다 좋아지는 건 절대로 아니다.
우선 책임이 많아진다.

그렇게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것 중 하나가 주말근무가 생기는 것이다.
누구나 주말을 희생하고 싶지는 않다. 그럼에도 내가 드리고 싶은 충고는
고민되는 상황이 되면 적극적으로 주말근무도 받으라는 것이다.

그래야 하는 논리 보다 내가 겪었던 몇번의 손실을 열거하려고 한다.

하나는 회사를 옮기고서 얼마 있다가 CEO가 Owner에게 보내는 리포트를
만들게 되었다. 외부 인사들과 만들어서 드렸더니 시간이 없다고 토요일에나
보자고 했다. 어 저 약속있는데요 하고 미뤘다.
CEO 혼자 리포트를 간단히 소화하고 해외출장을 가버렸다.
내 잘못은 아니라고 하지만 리포트를 통해서 어필할 수 있는 포인트가 사라졌다.

둘, 사업부장이 새로운 팀을 만드는데 내 의견을 듣고 싶어했다.
하필 주말에 자기 집 근처에서 만나자고 한다.
마침 배가 아파서 좀 미루자고 했더니 다음 주 월요일에 팀장인선을 했는데
내 뜻과 다르게 만들어졌다.
덕분에 꽤 오랫동안 고생했다.

나중에 알아 본 결과 사업부장이 본 논리는 일에 대한 열정이고 다른 각도로 보면 자기 희생을 통한
책무 감당의 자세였다. 내게는 그게 얼마간 부족하다고 본 것이다.

셋, 프로젝트의 중간 고비가 되는 중요한 테스트가 있었다.
IT 프로젝트의 않좋은 점은 테스트가 사용자가 없는 주말에 몰린다는 점이다.
나와 직접 관련이 적어서 나는 불참했다.
다 끝나고 고객사 PM이 나를 불러 왜 나오지 않았냐고 물어보았다.

결국 인간사 대부분의 일에는 양면이 있듯이 승진이란 책무를 더 떠안는 것이다.
그걸 감수하지 않으려 하면서 대우를 바라는 건 일방적 욕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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