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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드러커 자서전
피터 드러커 지음, 이동현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05년 10월
평점 :
절판
드러커는 살아가면서 관심분야를 매우 폭넓게 가져갔다.
덕분에 학자라고만 한정짓기에는 경력이 매우 다채로운데
잡지사, 신문사와 같은 언론계통에서 글을 쓰다가 은행에서 증권분석도 하고
학교에서는 강의를 하는데 주제 또한 자주 바뀐다. 말년에는 경영학 말고 학생들에게
일본미술에 대해서도 가르키게 되었다고 좋아하는 모습이 이채롭다.
이렇게 살아가는게 가능했던 것은 우선 본인의 지적 능력이 뛰어났다는 선천적 요인과 함께 호기심이 무척 많아서 결코 한곳에 머무르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는 후천적 요인을 들어야 할 것 같다.
프로페셔날의 조건이라는 책을 보면 주제 하나를 정해서 수년간의 시간을 두고 공부하고 다시
주제를 바꾸어 다른 공부를 하기를 평생 동안 반복해왔다고 한다.
파우스트에 나오는 오늘 내가 이제 그만 하고 말한다면 나를 즉시 데려가도 좋다 (지옥에)는 말과
딱 부합할 정도로 끊임없이 탐구하는 호기심 많은 인간의 모습니다.
이 책의 원래 주인공은 드러커 자신은 아니다. 그 보다 살아오면서 만난 사람들 중에 남들에게도
기억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여러 인물들을 소재로 삼아 재미있게 그들의 특색을 보여준다.
재능보다 큰 권력을 원해서 나찌에 참여했던 신문기자 한 사람은 공산당과 나찌당 양쪽의 당원증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취재에 필요하기 위해서라고 둘러대었지만 권력의 방향이 정해지자
자신의 권력을 만끽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종말은 비참하게도 자살로 끝나고 만다.
또 어떤 유능한 언론인은 자신이 충분히 나찌를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독일로 돌아와 중요한 일을
맡았는데 활용가치가 없어지자 숙청되고 만다.
이들 인물은 드러커의 초기 히트작인 경제인의 종말에 실렸는데 여기에 실명과 세세한 배경이 나온다.
이들과 유사하게 당시 공산주의에 호의적이었던 자유주의 언론인이 소련에 교묘하게 이용당했던
이야기도 꽤 흥미롭다. 나찌에서의 경험과 마찬가지로 필요성이 없어지면 관계가 끊어지는데
어느 시대나 양심적인 지성이 정치가들과 함께 일하며 자신의 소신을 잘 펼쳐가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영국에서 프라이빗 뱅커들과의 일하는 것 또한 프로페셔날의 조건에 나오는 이야기다.
과거에 어떠한 성과를 냈던간에 새로운 일을 맡으면 거기에 맞추어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찾으라는
충고를 받게 된다. 당시 드러커의 성과는 우선 이들 뱅커가 보여준 간결하고 놀라운 통찰력을 배운 것이다.
어떤 회사의 사업계획서가 성장을 하면서 이익도 많이 늘리겠다고 되있자 단번에 거짓말이라고 내친다.
오늘날 많은 기업들이 지나친 성장과 장미빛 기대를 주주에게 주다가 몰락하는 것을 보면
이런 통찰이 많은 도움을 준다는 걸 알 수 있다.
타임,라이프,포춘 등을 발행한 언론인 루스와의 교분도 재미있다. 편집인이 절대적 권력을 가지고
자신의 책임하게 개성을 가지고 잡지를 만들던 시대에 루스는 권한을 위임하고 자본을 투입해
대량생산과 잡지 계열화를 시도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일종의 공장형 생산방식을 도입하는 것이고
잡지산업을 충분히 훌륭히 기업화한 것이다. 드러커를 꽤 좋아했던 루스라 여러번 중책을 맡기려 했지만
사양한다. 중국을 좋아했던 루스와 일본에 관심이 많았던 드러커의 시각차도 재미있다.
맥루한과의 교류 또한 흥미로왔는데 맥루한의 무명시절 자신을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아이들과 놀았지만
미디어에 대한 이론이 정립되면서 유명세를 타자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과 맥루한을 비교하면 맥루한은 전문가로서 한분야에 승부를 걸고 깊게 연구를 했는데 비해
자신은 가볍게 여러 분야에 호기심 많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고 한다. 전문가는 처음 선택한 주제가
시류에 맞지 않을 경우 실패도 겪지만 그럼에도 고집스러운 돌진에 의해 대성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드러커가 배운 것은 무엇일까?
우선 한가지 시각을 지나치게 고집해서는 안된다는 점일 것이다. 세상을 보는 눈은 여러가지가 있고
각자 상대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경제학자에게는 실물경제의 생동감을 주고
완벽한 이론을 만든 것 같은 정치학자에게는 역사학이 주는 여러차례의 실패 교훈을 알려준다.
돈 만 바라는 기업가들에게는 인간자본이야말로 진정한 가치라고 충고하면서 모두에게 균형감각과
개방성의 중요성을 알려준다.
드러커 자신 또한 과거에 대한 깊은 공부는 자신이 그려낸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한다.
나찌가 집권하자 바로 독일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은 집을 미리 팔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전에 나의 투쟁을 꼼꼼히 읽고 히틀러라는 인물이 충분히 자신의 주장대로 실천할 것이라고
판단했기에 의사결정을 수행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차일피일 자신에게 닥친 현실을 회피하다가
비참한 결말을 맞게 된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나찌의 본질과 2차대전이라는 또 하나의 현대사의
전환점을 이야기하자 그는 정치학자들에게서 선견력이 있다고 추대된다.
이 성과들을 비롯해 드러커의 많은 통찰력들은 수백년의 역사를 아우르는 깊은 공부와
오스트리아에서 출발해 유럽 각국을 돌고 미국에 정착해서 아시아의 예술에도 깊은 관심을 가진
그의 여행에서 나온 것이다.
한국의 발전을 늘 감탄스럽게 생각하며 멀리 신라의 불교미술과 조선의 도예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는
드러커가 한국민들에게 주는 충고는 놀라운 역동성을 가진 한국민들이 자신감도 가지라는 것 아닐까?
고인을 보내며 그의 삶이 결코 책, 이론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 확인하게 해준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