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천자문 11 - 참는 마음! 참을 인忍 손오공의 한자 대탐험 마법천자문 11
시리얼 글 그림, 김창환 감수 / 아울북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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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아이가 열심히 만화를 본 덕분인지 드디어 한자자격시험에 도전하게 된다.

참 우리 아이의 나이는 8세 이번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처음 학습지 선생님의 적극적 권유 덕분에 7급을 노렸지만 점차 눈높이는 낮아져서
8급으로 하기로 했다. 모의 테스트를 해보라는 말에 두번을 시켰는데 첫번째는
답을 쭉 다음칸에 밀려 써버렸다. 아직 수능 보려면 멀었으니 고칠 기회는 많을 것 같다.
두번째 시험에서는 다 맞으면 마법천자문 11권 사준다는 당근을 제시했더니 집중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내용은 틀린 것이 없었는데 단 하나 한글을 틀려버렸다. 가운데 중을 가운대라고 표현한 것이다.
틀렸다고 하니 울먹울먹 표정이 바뀌는 통에 타협하고 책을 주문해주었다.
그리고 슬쩍 7급 모의테스트를 인터넷에서 찾아서 프린트 시킨 다음 내밀었는데
아내가 제지하였다. 이유는 너무 많은 시험은 스트레스를 증가시켜 결국 학습 욕구를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엉거주춤 책상에 밀어 넣고 잠시 자신을 돌아본다.
부모의 사랑에는 끝이 있겠지만 욕심에는 아마 끝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욕심은 주로 남과 비교하면서 커져가는 것 같다. 지금 사는 동네에서는 그래도
주변과 비교하면 낫다고 우쭐하는데 가끔 전에 살던 강남으로 가서 아는 지인을 만나고 오면
그 마음이 확 떨어지게 된다. 이것 시켰다고 이야기하면 다른 것 가져오고 다시 흉내내면
또 다른 것 가져오는 통에 도대체 종잡을 수 없게 된다. 하지만 그나마 비교하지 않고 살자면
금세 마음이 불안해진다.

이 만화 덕분에 상당히 빠른 속도로 한자시험에 도전하게 된 것은 기쁜일이다.
하지만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거의 대부분 만화교재를 원하는 것은 솔직히 고민이다.
Why 시리즈로 대표되는 과학 부문의 독서도 무려 10권 이상 채워나가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를 제기하고 고민하고 답 써낸다음 평가 받는 시스템이 아닌 순수한 독서라면
분명 한계가 있다. 또 쉽게 다듬어진 지식에 익숙한 사람은 스스로 지식을 찾으려하지 않게 된다.

기쁨과 고민을 함께 주는 마법천자문 과연 어떻게 대해야 할까 여전히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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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쥬 2006-04-16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아이도 처음에 학습만화 위주로만 읽었고, 지금도 읽고 있지만, 아이세움의 명작논술시리즈를 맛보기로 읽어보더니 재밌다고 구입해달라고 해서 우선 "동물농장" 하나를 구입해서 읽혔는데 앉은자리에서 바로 다 읽더라구여.. 님아이한테 추천해주고 싶네여..

사마천 2006-04-16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런가요. 매우 감사합니다. 읽혀보고 반응을 올리겠습니다. ^^
 

고생고생하며 일한 보람으로 사장 바로 아래단계인 Vice President에 오르게 된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회사가 갑자기 무너져버린다. 쌓아놓았던 퇴직연금도 회사 주식에 물려 있어서 함께 무너지고 만다. 집에 돌아오니 자신의 말을 믿고 아내는 직장을 그만두었고 이곳 저곳 벌려 놓은 돈들어갈 곳들은 밀려온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방법은 도둑질이라 좀 치졸하다. 한참을 헤메다가 마침내 도달한 결론이 전 CEO를 털자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유머를 깔려고 노력했지만 인물들 하나 하나의 개성은 약한 편이다. 동기도 선명하지 못하고 행동 또한 부자연스럽다. 문제의 제기에서 해결까지 이르는 과정을 보면 중간에서 겪는 가족의 고통 부분이 과도하게 길다. 반대로 해결 부분은 너무 신속하게 끝나버려 재미가 덜하다.

작품의 배경은 엔론 사태다. 신경제에 맞도록 신 사업모델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엔론은 자신들의 기법을 여기저기 설파하고 다녔다. 덕분에 한국에도 SK에서 합작사 SK엔론을 만들었고 모전력도 유사하게 상품 거래소를 만들었다.  하지만 실제적 가치를 늘리지 못한 주식의 상승은 거품일 뿐이다. 허세를 유지하기 위해 회계적 조작이 엄청나게 필요했다. 재무제표는 도저히 알기 어렵게 꾸몄는데 핵심은 자회사를 손해를 보내고 이를 감추는 것이었다. 영화에 나온 주인공의 회사 또한 거의 같은 모델을 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이 무너지기 직전에 많은 주식을 팔아 거금을 챙겼고 회사는 한번에 도산해버리고 만다.
미국의 퇴직금 제도는 개인책임으로 401K라는 형태를 통해 원하는 방법으로 투자할 수 있다. 엔론의 비도덕성은 퇴직금 자체를 자사주 매입에 적극 권유했다는 점이다. 주인공의 비참한 현실 또한 그런 결과물이다.

사회가 보여주는 양극화는 한쪽에는 산정상에 자리 잡은 전망 좋은 집을 다른 한쪽에는 바닥에서 하루 하루 먹거리를 구하는 가난한 멕시코 이민의 모습을 보여준다. 불법체류 단속 나온 단속반의 폭력에의해 국경 너머로 끌려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 미국이 원래 누구 땅이었지 하는 물음이 든다. 인디언 아니면 멕시코, 글쎄 바다 건너온 청교도들이 차지한 것은 얼마 되지도 않는 공간이었는데 말이다.

주인공의 푸념도 재미있는데 집을 팔면 아이가 기가 죽고 나아가 친구들 모임이 껴주지 않기 때문에 공부를 못한다. 그렇게 되면 좋은 대학을 못가고 나중에 변변한 인생을 살지못한다는 일련의 도식을 풀어 놓는다. 아마 그게 삶의 진리일 것이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약간의 돈이라도 생기면 집을 사는데 2000년 이후의 미국 금리 하락은 이들에게 축복이었다. 그 결과 만들어진 집값 상승이 다시 소비 호조를 부르고 아시아권의막대한 수출 흑자를 만들어낸 세계적 순환까지 이어진다.

반면 미국 자본주의 첨병이었던 소수의 CEO들은 그럴듯한 비즈니스 모델로 주주들을 잘 꼬시는데 능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에게 머리를 빌려주는 역할을 수행한 것이 최고의 컨설팅사라는 맥킨지의 사업이었고 하버드를 비롯한 MBA 출신들이 막대하게 포진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업이란 땀이 흘려야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거래의 규칙 몇개를 바꾸는 것으로 거대한 가치가 만들어진다는 사고 방식은 허용되지 않는다. 잠시 속일 수 있어도 계속 속일 수는 없다. 그 문제점은 미국이 주도한 IT, 통신, 에너지 거래 등 각종 분야에서 연달아 발생한다.

주주 위주의 자본주의로 가는 것이 무조건 정답은 아니다. 어느 하나의 가치만 절대적으로 강조될 경우 그동안 여러 측면을 고려하면서 만들어진 질서가 흔들린다. 주식가격이 오르면 모든게 해결될 것처럼 이야기해버리는 것이야말로 힘이 곧 정의다라는 서부 카우보이 시절의 논리와 다를게 없다. 이 영화에서 보듯이 기업에는 얼마간 그가 뿌리로 하고 있는 사회에 대해 책임을 다할 의무가 있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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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 사이언스 - 불확실한 투자의 세계에서 확실한 승리를 얻는 공식
윌리엄 파운드스톤 지음, 김현구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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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총평하자면 이론서라기 보다는 여러 사람들의 집단 전기로 보는 쪽이 성격에 대한 이해로 빠를 것이다. 머니 더하기 사이언스라고 해서 커다란 비법이 있는 것처럼 책을 광고하는 것은 올바르지 못하다. 책 앞부분에 나오는 마피아들은 분명 그런 비법을 활용했다. 경마정보를 남보다 빨리 알아채서 고객들의 돈을 갈취한 그들의 솜씨는 뛰어나다. 하긴 최근에도 내부자정보를 이용해서 주식거래하는 사례가 나오는 걸 보면 오래된 흔한 기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거야 일반 사람들이 따라가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 보다 소위 사이언스라는 이름으로 금융공학의 시대를 열어간 주요 인물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는데 도움 되는 책으로 보는 게 좋다. 단 노벨상을 받을 정도로 똑똑한 천재들도 참혹하게 실패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도록 해야 한다.

 

사이언스는 현상에 대한 원인과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이치에 대해 논리를 펼친다. 그럼 사이언스가 모두가 바라는 돈벌기에 적용되면 어떤 일들이 발생할 까? 돈벌기와 과학의 접합이 예전부터 시도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수학책 맨 뒤에 나오는 확률에 대한 이론은 신에 대한 경건함을 강조한 팡세를 지은 파스칼이 노름에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 시작이었다. 앞으로 발생할 미래는 누구도 알기 어렵지만 그 불확실성을 얼마만이라도 예측할 수 있게 도와준 것이 그의 이론이다. 하지만 뛰어난 과학자가 곧 성공한 투자가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알아야 한다. 대표적인 예는 뉴턴인데 그는 주식투자 바람에 휩쓸려 현재가치로 따져서 수십억의 돈을 날렸다고 한다. 광풍이 꺼진 후 한숨을 쉬면서 던진 말이 거대한 천체의 움직임을 알아내기보다 광기에 빠진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는 것이 더 어려웠다고 했다고 한다.

근래에 들어와서도 비슷한 일들이 발생한다. 피셔라는 경제학계의 거두가 대공황시절 자신의 돈과 주변의 돈을 다 잃어서 결국 예일 대학교에서도 물러나게 된 것을 비롯해 예는 무수히 많다.

이런 혼란속에서 시장을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건 불가능하다고 단언한 것이 바로 랜덤워크 이론이라고 한다. 이 책에 따르면 경제학의 거성인 폴 사무엘슨이 그런 입장이라고 한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 꾸준히 반론을 제기한 일련의 학자 집단이 있었고 이들의 핵심에 켈리라는 사람이 내세운 공식이 있었다고 한다.

그의 이론을 간략히 보면 한번에 너무 많은 리스크를 안으려고 하면 오래가지 못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이론을 적용할만한 예는 우선 카지노 도박에서 얼마를 거는 것이 합리적인 따져보는 분야가 있고 다음으로는 금융 투자에 있어서도 응용된다.

 

헤지펀드를 비롯해 금융공학에서 강조하는 것은 확실성이다. 아주아주 미세한 차익이라고 해도 이것이 확실하다면 막대한 돈을 빌려서 투자할 수 있다. LTCM의 경우 0.67 정도의 차이를 가지고 자기 자본의 수십배의 돈을 넣어서 충분히 의미 있는 수치를 만들어내었다. 그런데 수년간 놀라운 성과를 냈던 이들을 흔들어 버린 것은 러시아에서 촉발된 전세계 금융시장의 균열이다. 돈을 떼먹는 깡패가 등장하자 갑자기 다들 원금보존 욕구에 의해 자신의 돈을 안전자산으로 이동시켰고 덕분에 전세계 금융시장이 흔들리게 된다. 그리고 LTCM은 일거에 붕괴에 이르게 된다.

 

LTCM의 손해에 대해서 작가는 매우 비판적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대체로 사무엘슨의 맥을 따라서 켈리쪽에 반대편으로 섰던 인물이었기 때문인데 꽤 가혹하게 평가한다. 켈리의 이론을 놓고 LTCM의 성과와 비교해보면 분명 켈리쪽의 주장이 리스크 매니지먼트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을 보면서 배워야 할 점은 바로 이런 역사적 사건이 아닌가 생각한다. 세계는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하나로 묶이는데 특히 돈의 흐름이 그렇게 서로 영향을 준다. 그 점을 역사적 사건을 짚어가면서 배워두는 것이 좋다. 소로스가 한말 중 유념할 대목이 시장이 불안해지면 돈은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있다.

 

코스톨라니가 주식시장을 음악이 흐르지 않는 도박장에 비유한 것처럼 이 책 또한 돈버는 절대이론에 대한 논의를 라스베가스와 월가를 오가며 전개한다. 덕분에 무척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정크 본드의 발명자인 마이클 밀켄, 영화 월스트리트에 나오는 이안 보에스키, 최근 KT&G를 놓고 다투는 칼 아이칸류의 인물들이 줄지어 나타난다.

 

이 부분을 읽다 보니 재미있는 대목이 나왔다. 주인공들이 돈을 벌기 전에 먼저 돈을 함부로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부분이다. 그들은 특히 자신의 돈을 정부라는 끝모르는 욕심장이 무능력자에게 퍼주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양한 절세 아이디어를 냈는데 꽤 흥미로왔다. 하지만 이렇게 돈을 벌려면 법의 경계까지 다다르게 된다. 교도소 담장위를 걷는다는 표현 처럼 사법당국의 제제를 교묘히 피해다니려고 하지만 자칫하면 담장 저쪽으로 떨어지고 만다. 그래도 당분간 앞서는 쪽은 당국이 아니라 투자가들이다. 이들에게 도덕은 차후의 문제고 자신들의 이익이 우선이다.

 

책을 읽고 난 성과를 종합적으로 보면 시야를 넓혀준다는 점을 들어야 할 것이다. 전세계 시장을 놓고 흔들어대는 금융자본의 위력을 느끼면서 그들이 근저에 삼는 확실성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렇게 대단하기만 한 건 아니라는 점도 깨닫게 된다. 물론 현재야 은행 뜯기고 부동산 뜯어가는 솜씨에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지만 우리도 언젠가 따라가야 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배울 점들이 이곳 저곳에 많이 깔린 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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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낸시 랭과 탈승화의 예술

 

 

 

요즘 가장 잘 나간다는 '아티스트' 낸시 랭에 대해 몇 자 적는다. 그녀를 만나본 적도, 그녀의 전시회에 가본 적도 없지만, 언젠가 케이블 TV에서 눈에 띄는 (미혼의) '여성 아티스트'로 소개하는 코너를 우연히 본 적은 있다('콘트라 섹슈얼'이란 프로그램). 그리고, 채 몇 달이 되지 않아 (세계를 목표로 한다는) 그녀는 (적어도) '전국적인' 예술가가 되었다. TV광고에 나오는 건 물론 토론프로그램 패널을 거쳐서 케이블채널의 진행자까지 되었다고 하니까 가히 연예인 뺨친다(혹은 예술의 연예화?). 

미술계에 계시는 분들의 말씀으론 작품 또한 최근에 가장 잘, 가장 많이 팔리는 축에 든다고 하니까(한편으론 부러움과 질시의 대상이겠다) 소위 '성공하는 예술가'의 한 전형으로서 손색이 없다. '문화현상으로서의 낸시 랭'에 미학적으로나 사회학적으로 한번쯤 관심을 가져볼 만한 이유이다. 여기서는 몇 개의 인터뷰/기사를 따라가면서 나의 의견을 보태도록 하겠다.    

먼저, "상큼한 매력의 요정 "세상의 권태여, 가라" 기분 좋은 파격과 긴장의 화신, 편견 깬 신세대 행위예술가"란 제하에 막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시작했던 재작년(2004년) 5월 낸시 랭의 퍼포먼스를 취재한 주간한국의 소개기사. 자신을 새로운 '문화상품'으로 전시할 줄 아는 이 '앙큼한' 아티스트에 대한 기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모든 강조는 나의 것이다.

"YOU LOST! 내게 무릎을 꿇어! 나른한 봄날 오후, 식곤증에 시달리는 당신, 방심하다가는 이 앙큼한 고양이에게 당할지도 모른다. 당신 품에 와락 안겨 윤기 나는 하얀 털로 당신의 가슴을 간지럽히는 럭셔리한 고양이가 대뜸 하는 말, YOU LOST! 당신은 아직까지 근엄한 얼굴로 허허, 웃겠지만 이 고양이를 쉽게 보았다간 큰 코를 다칠지도 모른다. 온갖 끼와 잠재된 재주로 당신의 이성을 흔들어 놓을 애교의 메신저! 당신은 곧 그녀가 만드는 폭탄주를 마시고 견고한 이성을 슬그머니 주머니에 넣어둘 것이다. 큐티, 섹시, 키티, 낸시, 구호를 외치는 당신을 발견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이것이 낸시랭이다."

"아담한 키에 앳된 얼굴, 틴에이저로 보이는 얼굴과는 달리 섹시한 몸의 그녀는 이른바 ‘몸짱’, ‘얼짱’, ‘애교짱’이다. 벌써 다섯 번째 개인전을 가질 만큼 자신의 분야에서 신세대 유망주로 떠오른 아티스트다. 20대 후반의 이 행위예술가는 예술가에 대한 편견을 단박에 깨부순다. 타인을 만나자 금세라도 품에 안길 듯 달려와 자신의 소니 소형 캠코더에 인사를 시키는 그녀."(*요컨대, '큐티, 섹시, 키티, 낸시'가 그녀의 컨셉/구호이며, '몸짱' '얼짱' '애교짱'이 무기이다.)

-첫 대면부터가 그녀의 초미니 스커트만큼 아슬아슬했다. 하지만 거부반응은 일어나지 않는다. 낸시와 함께 있는 공간은 그녀가 만든 ‘이상한 나라’였다. 하늘의 구름이 갑자기 리라빛으로 변하고, 나무들이 춤을 추기도 하는 이 신기한 나라에서 호기심으로 가득찬 얼굴로 캠코더를 보며 인사를 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안녕? 낸시! 난 오늘 널 만나러 왔단다. 낸시 랭이란 여자아이가 순진무구 애교 덩어리란 소문을 듣고 왔어. 넌 누구니. 후 아 유?”

-초록의 계절, 푸르른 숲이 주위를 뒤덮어 권태롭기까지 한 계절에 서프라이즈한 퍼포먼스가 있었다. 위엄으로 가득찬 예술의 전당 지붕 아래, ‘SFAF(서울파인 아트 페스티벌) 한국 미술 열흘 장’ 오프닝에서 ‘싱싱 Sing’이란 이름으로 진행된 낸시랭의 세 번째 퍼포먼스. 단발머리 낸시는 까만 선글라스에 발목까지 오는 버버리를 입고 한 손엔 잉글리시 콕스파니엘을 산책시키는 그로테스크한 여자로 분한다. 궁금증과 긴장으로 혼합된 그 순간에 버버리를 벗어 던지는 낸시. 그러자 비키니 차림의 싱싱한 몸이 노출되고, 순간 로비는 해변가로 변한다.

-베이비 오일을 바르고, 자신의 몸을 훔쳐보는 관객을 향해, 손을 뻗어 ‘오일을 발라 주세요’ 라고 애교를 떨다가, 성큼 다가오지 못하는 관객을 비웃기라고 하듯, 싱싱한 육체를 뽐내며 신문과 잡지로 도배된 기계 앞으로 다가간다. 언뜻 보아 권위와 보수로 똘똘 뭉친 신문과 잡지다. 껍질을 벗겨내듯, 옷을 벗듯, 훌러덩 벗겨내니, 노래방 기계가 나오고, 상큼한 요정처럼 ‘보랏빛 향기’ 를 부른다. 관객은 어느새 그녀에게 동화된다. 그녀의 하이힐과 빨간색 비키니 만큼이나 도발적인 퍼포먼스였다.

-이 여자가 바로 낸시 랭. 미국 국적 취득 전 한국이름은 박혜령. 한국인이면서 미국 국적을 지닌 낸시는 18세까지 이중국적으로 두 가지 삶을 살아왔다. 지금은 누가 보아도 낸시 랭이란 이름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여자다. 낸시의 퍼포먼스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3년 베니스의 비엔날레에서 낸시랭은 초대받지 않은 예술가였지만 ‘초대받지 않은 꿈과 갈등’이라는 주제로 개막식 날 자신이 좋아하는 빨간색 빅토리아 시크릿 란제리에 하이힐을 신고, 얼굴은 가부키를 연상시킬 만큼 허옇게, 어릿광대 마냥 페인팅을 한 채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물론 낑깡 낑깡.(*내가 케이블 TV에서 본 프로그램에서도 이 퍼포먼스는 자세히 소개되었다.)

-낸시가 내는 불협화음은 어릴 적 바이올리니스트를 꿈꿔왔지만 이루지 못했던 꿈에 대한 영원한 동경과 삶과의 갈등을 표현해낸 것이었다. 비엔날레의 주제, ‘꿈과 갈등’과 딱 들어맞았다. 세계 여러 잡지에서는 이 어린 동양 여자아이에게 극찬을 아끼지 않았고, 낸시의 데뷔작은 평범치 않게, 화려하게 시작되었다. 지나가는 서양인들이 낸시를 보고 하는 말, “You looks sad!"

-예사롭지 않은 낸시가 내뿜는 마력의 정체는 무엇일까. 낸시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요기니가 이런 의문을 풀어준다. 요기니는 바로 낸시 랭 자신이다. 천사와 악마의 중간자적 존재로 인간과 신 사이의 영적인 메신저 역할을 하는 요기니에 타부를 개입시켜 자신만의 독특한 요기니를 탄생시켰다. 낸시는 요기니 시리즈를 통해 자신의 꿈과 이상, 상처와 극복을 보여준다. 천사와 악마의 모습을 함께 지닌 요기니는 온몸이 상처투성이여서 어쩐지 슬퍼 보이고 고독해 보이지만, 잠재된 파워와 끈길긴 생명력을 지녀 끊임없이 부활하는 영적인 존재다. “호랑이는 강한 동물이지만, 무리지어 다니지 않는 고독한 영웅이잖아. 강한 것 같지만 늘 혼자 있는 외로운 동물. 내가 그렇다니까!”

-낯선 이의 팔짱을 쉽게 끼고, 가벼운 스킨 십으로 벽을 허물고, 친근감 있게 말을 트고, 허스키 코맹맹이 소리로 언니, 오빠, 선생님을 부르는 낸시. 버릇없어 보이기보다 타인에게 쉽게 문을 열어 오히려 불안할 정도로 순진해 보인다. 세계를 무대로 사업을 하던 어머니를 둔덕에 부족한 것 없이 풍요로웠던 유년시절, 용돈을 모아 산 천체 망원경으로 하늘을 관찰하던 낸시는 공상의 나래를 꿈꾸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낸시의 공상은 우주로 뻗어 나갔고, 자연스레 공상 과학 만화의 상상력은 그녀의 작품 속에 그대로 녹아 있다.

-예술의 전당 지붕아래서 열리는 다섯 번째 개인전의 타부 요기니 시리즈는 기생의 가채머리를 한 동양 여성의 얼굴에 몸체는 로봇인 여전사가 등장한다. 낸시의 작품속 요기니는 대부분 잔다르크적 이미지의 여전사가 대부분이다. 여전사는 그녀와 닮은 그녀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낸시의 어머니는 낸시가 당신처럼 드라마틱한 삶을 살기보다 영화관에 가면 중간 줄에 앉은 관객처럼 평범하고 문안하게 살기를 바란다고. 하지만 낸시에겐 꿈이 있다. 요기니를 통해 사랑의 메신저가 되는 것이 그녀의 꿈과 이상이다.

-너, 아직도 꿈을 꾸니? 나는 묻는다. 응, 나는 꿈을 자주 꾸어. 하늘을 나는 꿈. 바다 속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꿈. 모든 억압에서 벗어나 새처럼 훨훨 나는 꿈을 꿀 때가 가장 행복해. 마치 이루지 못한 꿈을 실현해 가는 과정 같잖아.

-긴장이 풀어지는 봄날 오후, 꿈을 현실로 불러들이는 이 여자를 조심하라. 자신의 분신 타부 요기니 시리즈로 낸시가 말하려 하는 것은 바로 사랑이다. 혼자놀던 외로운 아이는, 자신의 잠재된 가능성을 실현시켜줄 요기니를 탄생시켰지만, 결국 요기니를 통해 사랑의 메신저가 되는 것이 그녀의 꿈이다. 

그리고 오늘자(2006. 04. 09) 인터넷판 세계일보의 기사(여타의 많은 기사들도 대동소이한 내용들을 다루고 있다). 

-“아티스트 낸시 랭입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자신을 아티스트라고 소개하고 대통령처럼 과장된 몸짓으로 악수를 나누는 사람, 낸시 랭(27·한국명 박혜령). 연예인인지 디자이너인지 사람마다 아리송한 ‘답안’을 내놓는 이 사람, 요즘 TV만 틀면 여기저기 나온다. 초고속통신망 광고에서 머리에 깃털을 달고 고양이 캐릭터와 탭댄스를 추고, 패션브랜드 광고의 지폐뭉치 속에서 웃고 있다. KBS의 ‘파워 인터뷰’에 고정패널로 나와 몇 차례 돌출발언으로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더니 슬며시 사라졌다. 그러더니 이번엔 케이블 음악채널 M.net에서 지난 3일부터 월∼금요일 오후 6시30분 ‘낸시 랭의 트렌드 리포트 必’에 진행자로 매일 저녁 나오며 카메라 앞에서 퍼포먼스도 하고 토크쇼도 한다. 본인 말대로 “연예인에게 오는 CF, 영화 등의 섭외는 다 들어온다”는 이 사람의 정체는 무얼까.



◆그녀에 대한 오해: 낸시 랭이 광장에 나온 건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거리 퍼포먼스. 초대받지 않은, 가난한 아티스트 낸시 랭은 얼굴에 분칠을 하고 란제리 차림으로 하이힐을 신고 바이올린을 켰다. 이름하여 “초대받지 않은 꿈과 갈등 : 터부 요기니 시리즈’. 이 파격적인 공연 이후 그는 2000년대 한국 현대 미술계에서 논쟁적인 인물로 떠오른다. 하지만 그는 “퍼포먼스를 한 건 단지 돈이 없어서였다”고 설명한다.

-그를 만났을 때 가장 묻고 싶었던 말, 지난해 11월 KBS ‘파워 인터뷰’에 고정 패널로 출연했을 때의 문제의 발언을 되짚었다. 당시 그의 발언, “(천정배) 장관님도 여자 나오는 술집에 가보셨나요?” “저 엘리트 너무 좋아하거든요” 등은 그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큰 오해를 낳았다. “엘리트는 누구나 되고 싶어하는 거잖아요. 많이 가진 만큼 베풀지 않는 한국 엘리트의 현실이 문제이지, 엘리트가 문제는 아니잖아요? 전 명품도 좋아해요. 루이 뷔통부터 크리스천 디올까지, 좋아하는 순위별로 댈 수도 있죠. 누구나 원하는 걸 제가 굳이 숨기지 않은 게 잘못인가요.” 그녀는 ‘파워 인터뷰’에서도 “패널이 아닌 아티스트 낸시 랭으로 출연한 것뿐”이었다며 얼굴을 붉혔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두가 똑같지 않으면 불안해해요. 튀어나오면 못박고 싶어하죠.”(*나중에 다시 지적하겠지만, '누구나 원하는 걸 굳이 숨기지 않는 것', 그게 '낸시 랭'표 아트의 핵심이다.)

-미국에서 태어나 필리핀에서 보낸 국제고등학교 시절 “전략적으로” 변호사를 사서 바꾼 이름이 낸시 랭(본명 박혜령)이다. ‘랭’은 그가 “비주얼과 타이포그래피, 국제성까지 감안해 만들었다”는 성이다.

◆걸어다니는 팝아티스트 낸시 랭: 아티스트 낸시 랭은 요즘 매일 출근을 한다. 매일 그가 아트디렉터로 있는패션브랜드 쌈지에 출근을 하고 M. Net 아이디어 회의와 녹화도 병행한다. 4월 말 출간 준비중인 책과 개인전, 또 최근 쌈지가 후원하는 입주 프로그램 작가로 선정돼 활동도 벌여야 한다. 도대체 언제 그 많은 일들을 수습할까. “꿈 속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는 그는 침대 머리맡, 화장실, 핸드백 곳곳에 노트를 놓고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적어놓는 ‘기록광’이라고 했다.



-그녀의 아이디어는 ‘낸시 랭’ 상표의 옷과 가방들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그가 디자인한 핸드백 안쪽엔 ‘메이드 인 차이나’ 대신에 ‘메이드 인 헤븐’이라고 씌어진 상표가 붙어 있다. 드라마 ‘궁’에서 윤은혜가 들었던 알루미늄 하드케이스의 핸드백 ‘매직박스’도 그의 작품. 대중의 기호를 따라가면서 아티스트 고유의 세계를 지키는 일이 가능할까.“국내에서 아티스트가 방송프로그램 진행을 통째로 맡는 건 처음이죠. 팝 아티스트가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대중매체를 이용하는 건 자연스런 작업인데도 말이죠. 방송을 통해 트렌드를 만들고 전달하며 재해석하는 아티스트 낸시 랭의 세계를 생생하게 보여줄 겁니다. ”

-“낸시 랭은 비즈니스를 예술과 접목시키는 걸 즐기는 사람이”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는 “미술가도 잘 되는 것 보여줘야 다른 분야처럼 관심과 투자를 받을 수 있지 않겠냐”고 한다. 낸시 랭은 오는 6월 대대적으로 자선 기부파티를 벌일 계획도 털어놓는다. 작품 대신 계획서를 받아 13명의 젊은 예술가들을 뽑은 후 그들을 후원해 주겠다는 생각이 낸시 랭답다.

 

 

 



-그가 꿈꾸는 예술가는 피카소, 달리, 앤디 워홀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천재적 재능과 다작을 남겼다는 것. 그리고 부와 명성을 ‘일찍이’ 누렸다는 거죠. 고흐는 싫어요. 우울하고 고통스럽게 살며 명작을 남겼지만, 사후에야 유명해졌잖아요?”

-작품보다 작가가 유명해지는 것에 불만은 없을까. “지난해 말 쌈지에서 낸시 랭 개인 전시회할 때 사람들이 밖에서 줄서서 기다리다 들어왔어요. 쌈지 전시장 개장 이후 그렇게 성황인 건 처음이라 그러던데요.” “나르시시즘이 내 작품 키워드 중 하나”라는 그녀의 무한한 자신감과 솔직함이 부러워졌다.

'우리시대의 팝아티스트' 낸시 랭의 '아트'에 대한 나의 의견은 간단하다. 그녀의 이런저런 '아트'가 보여주는 것은 '탈승화의 예술', 혹은 '예술 이후의 예술'이라는 것이다. '예술 이후의 예술' 혹은 '탈역사 시대의 예술'에 대해서는 미국의 철학자/비평가 아서 단토의 <예술의 종말 이후>(미술문화, 2004)의 논의를 참조할 수 있는데, 단토의 '예술종말론'의 영감은 낸시 랭의 우상이기도 한, 팝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의 '브릴로 박스'(1964)에서 비롯됐었다. 

 

 

 

 

단토가 워홀의 작품에서 끌어내는 문제의식은 상품으로서의 '브릴로 박스'와 지각적으로 구별되지 않는 워홀의 '브릴로 박스'가 과연 어떻게 (여전히) 예술일 수 있을까였다. 그러니까 예술과 비예술간의 '지각적 식별 불가능성'의 문제가 '예술(시대)의 종언'을 이끌어낸 화두였다(덧붙이자면, 단토에게서 '예술의 종말'은 비극적인 음조와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예술 다원주의'의 개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온몸으로 보여주는 낸시 랭의 '아트' 또한 이와 유사한 문제의식을 불러일으키지 않는가? 본인 말대로, “연예인에게 오는 CF, 영화 등의 섭외는 다 들어온다"고 할 때, 우리는 겉으로 봐서는 그녀가 아티스트인지 연예인인지 식별하기 어렵다(그녀에겐 매일 출근하는 '직장'도 있다). 즉, 여기서도 '지각적 식별 불가능성'이 개입하는 것.  

 

 

자본주의/대중문화 시대의 아티스트/연예인은 다 같이 대중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각자의 장기와 재능을 상품화함으로써 인기와 부를 획득한다. 애교와 끼가 '예술'인 낸시 랭은 노래와 댄스가 '예술'인 채연, 혹은 연기가 '예술'인 한고은과 어떻게 구별되는가? 모두가 팝(pop)에 호소하는, 그럼으로써 한몫잡는 아티스트들 아닌가?(요즘은 '돈벌이'도 아트에 속한다.) 그렇다면, 단토가 앤디 워홀과 더불어 예술(미술)이 종말을 고했다고 선언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낸시 랭과 더불어 예술가의 종말을 선언할 수 있을 것이다(물론, '예술가의 종말' 이후에도 고흐처럼 "우울하고 고통스럽게 살면서 명작을 남"기는 예술가들도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예술가는 '예술가 다원주의' 시대의 한 유형 정도로 자리매김될 수 있을 따름이다).

 

 

 

 

그렇다면, 어떤 의미에서 '탈승화의 예술'인가? 프로이트를 참조하자면, 예술은 기본적은 '승화'의 과정이자 결과물이었다. 할 포스터의 정리를 따라가보자: "프로이트는 예술을 승화의 과정이며 본능을 포기하는 협상과정이라고 생각했다. 프로이트는 예술이 탈승화의 프로젝트라거나 문화가 금지하는 사항을 위반하는 행위라고 보는 입장을 단호히 거부했다."(<욕망, 죽음 그리고 아름다움>, 31쪽, 번역 일부 수정) 승화(Sublimation)라는 건 리비도의 (비사회적) 욕망을 예술적 창조행위처럼 사회적으로 수용할 만한 양태로 치환하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낸시 랭의 기원이라 할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의 퍼포먼스 '초대받지 않은 꿈과 갈등'은 승화의 전형적인 예이다. 다시 옮기면, "개막식 날 자신이 좋아하는 빨간색 빅토리아 시크릿 란제리에 하이힐을 신고, 얼굴은 가부키를 연상시킬 만큼 허옇게, 어릿광대 마냥 페인팅을 한 채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물론 낑깡 낑깡. 낸시가 내는 불협화음은 어릴 적 바이올리니스트를 꿈꿔왔지만 이루지 못했던 꿈에 대한 영원한 동경과 삶과의 갈등을 표현해낸 것이었다. 비엔날레의 주제, ‘꿈과 갈등’과 딱 들어맞았다."

거기서 '영원한 동경과 삶과의 갈등'을 어릿광대의 불협화음 바이얼린 연주로 표현하는 것이 바로 승화이다(그러니까 낸시 랭은 적어도 베니스에서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예술가'였다). 혹은 낸시 랭의 이러한 말: "너, 아직도 꿈을 꾸니? 나는 묻는다. 응, 나는 꿈을 자주 꾸어. 하늘을 나는 꿈. 바다 속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꿈. 모든 억압에서 벗어나 새처럼 훨훨 나는 꿈을 꿀 때가 가장 행복해. 마치 이루지 못한 꿈을 실현해 가는 과정 같잖아."

'이루지 못한 꿈을 실현해 가는 과정', 혹은 현실과 타협해 가는 과정, 그런 게 프로이트가 생각했던 예술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의미에서 프로이트는 초현실주의자들처럼 예술을 탈승화의 프로젝트로 보는 입장에 반대했던 것이다. '탈승화(Desublimation)'란 자아의 중개/제약 없이 리비도적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낸시는 요기니 시리즈를 통해 자신의 꿈과 이상, 상처와 극복을 보여준다"라고 할 때 그 '극복'은 억압되지 않은 리비도의 자기 분출/표현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탈승화는 "세계를 무대로 사업을 하던 어머니를 둔덕에 부족한 것 없이 풍요로웠던 유년시절"의 유산이기도 할 것인데, 그녀는 자신의 욕망과 타협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그녀의 '낑깡 낑깡'은 자신의 본모습이 아니라, 한시적인 모습이었을 뿐이겠다).

가령, 이런 기사는 어떠한가? 데일리 서프라이즈(2006. 01. 01): "한국사회에 혜성처럼 등장해 이미 그녀 자신이 하나의 브랜드화 되어버린 아티스트 낸시랭(한국명 박혜령)의 파격 행보는 지금껏 우리 머릿속에 각인돼온 전통적 아티스트의 단상을 지극히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미술 잡지나 공모전, 아트페어가 아닌 <바자>나 <엘르> 같은 패션지에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며 대중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던 낸시랭은 누구보다 자신을 드러내기에 주저하지 않는 솔직한 아티스트다."

여기서, 전통적 아티스트에 대한 상이 혼란스러워지는 것은 그녀가 '예술가 종말' 시대의 아티스트이기 때문이며, '솔직한 아티스트'라는 것은 이 '나르시시즘의 예술가', 혹은 '공주병 예술가'가 자신의 욕망과 따로 타협하지 않는 '탈승화의 예술가'라는 걸 암시해준다. 예컨대, 그녀는 명품중독자로서의 자기 자신을 그대로 퍼포먼스의 주제로 삼는다.

다시 데일리 서프라이즈: "신드롬이라 부를 만한 예외적 상황들을 끌어내며 한 해 동안 대한민국 현대미술계의 이슈 메이커가 되었던 그녀는 자신에 대한 극단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빠른 속도로 미술계의 핵심부로 다가서고 있다. ‘아이 러브 루이비통’을 외치며 예일 로고를 작품에 등장시키는 철저한 세속성과 싱싱한 육체를 이용한 섹스어필한 퍼포먼스는 이중성을 벗어던진 홑겹의 재현 방식으로 음습하지 않은 경쾌함 마저 전해 준다. 그녀가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고립감에 빠져 무게에 짓눌린 현대미술계의 핵심을 어떤 방식으로든 건드리고 있다는 얘기다."

'이중성을 벗어던진 홑겹의 재현방식'이 암시적으로 뜻하는 것 또한 그녀가 리비도(이드)와 자아 간의 타협과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 예술가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정확히 바로 그러한 의미에서 그녀는 우리시대의 초현실주의 아티스트이다. 혹은 그녀의 예술적 주체는 초현실적 주체이다. 대부분 잔다르크적 이미지의 로봇 여전사인 그녀의 대표 아이템 '타부 요기니'처럼. 나는 그녀의 로봇-요기니가 욕망과 타협할 거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녀가 대놓고 말하는 자신의 욕망이란 무엇인가? "천재적 재능"을 인정받으면서, "다작"을 통해 "부와 명성을 ‘일찍이’ 누리는 것"이다. 우리시대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그런 걸 바란다고 해도, 적어도 '현실'에서는 대놓고 말하지 않는다. 대놓고 돈을 밝히지도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낸시 랭의 '현실'은 우리의 '초현실'이다(혹은 우리시대는 이미 '탈승화의 시대'인가? 하긴 '부자되세요!'라고 인사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06. 04.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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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의 세계 세력도 - 삼정 KPMG 경제연구원 해외총서 1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지음, 삼정 KPMG 경제연구원 옮김 / 현암사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저자인 사카키바라씨는 일본 대장성의 재무관료로서 한때 미스터 엔이라고 불릴 정도의 막강한 힘을 행사했다. 현재는 게이오 대학 교수로 정년을 맞고 있는데 이론과 실무 양쪽 경험이 풍부한 인물이다.
이 책에서 그는 세계경제를 이루고 있는 여러 주체들인 미국,일본,중국,인도 등의 현안을 쉬운 표현으로 이해시켜준다. 우선 지금 미국은 그동안 세계를 이끌던 절대자에서 쇠퇴할 것이고 그 결과 달러 약세가 나타난다고 본다. 그 공백을 메꾸려고 나서는 주체는 여럿인데 일본을 비롯해 중국,인도와 같은 신흥 강국의 역할이 커진다고 한다.

화폐는 까보면 종이에 불과하지만 정부가 부과하는 신용이 있기에 힘을 발휘한다. 달러를 세계 무역의 기축통화로 만들면서 팍스 어메리카가 만들어졌지만 전쟁과 이어진 과도한 소비는 결국 그 위력을 약화시킬 수 밖에 없다. 또 세계의 장벽 철폐는 막대한 유동자금의 움직임을 만들어 곳곳에서 금융위기를 만든다. 이 때 미국은 원인은 차지하고 IMF를 통해 해결책을 내놓으면서 자신이 바라는 시스템을 강요한다.
저자는 이대목에서 문제점 하나를 꼬집어낸다. IMF 위기 당시 박태준이 돈을 빌리러 일본을 방문했고 이 책의 저자를 만났다. 나름대로 꽤 많은 돈을 약속 받기까지 이르렀지만 이에 제동을 건 것은 미국이었다. 자신들과 합의가 되기전에 일방적으로 한국을 돕지 말라는 메시지였다. 당시 김영삼의 반일 메시지에 화가 난 측면도 있었지만 일본은 어쨌든 손을 들었다. 이런 식으로 미국이 세계에 강요한 질서가 과연 그 나라 자체에 좋은 지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왜냐면 미국 스스로 자신들의 문제에서는 결자해지 원칙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이 제기하려는 새로운 질서는 AMF라고 표현되는 아시아 공동 통화정책이다. 여기에는 중국의 협조가 필수적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잘 아시다시피 고이즈미의 친미 외교로 중국의 비판 또한 날이 서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여기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하지만 현실은 어쩔 수 없다.

저자가 새로운 파트너로 주목하는 것은 인도다. 나름대로 민주적 가치를 지키며 성장한 이 나라의 미래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보고 있고 본인 또한 인도기업의 사외이사를 맡아 주기적으로 방문한다고 한다.
저자의 언급 중에 흥미로왔던 사실 하나는 일본 은행 중에 IT를 통채로 인도에 아웃소싱 시키는 곳이 있다고 한다. CIO도 인도사람으로 특별채용했고 비용은 대폭 절감되어 고객에게 각종 수수료를 무료로 제공할 정도로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파산 가까운 위협에 몰리다 보니 근본적인 일들을 개혁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 한국의 은행들은 IMF를 거치면서 조기에 비켜 갔지만 그렇지 멀지 않은 시기에 닥칠만한 일이다.

이렇게 여러 나라들이 모두 성장하면서 미국의 상대적 위치가 하락하면 어떤 일들이 발생할까?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자원가치의 상승이다. 실제 달러 표시 자원의 가격은 급속도로 오르고 있는데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짐 로저스가 상품시장에 주목하라고 이야기한 것이 어제 같은데 이제 그 효과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원인은 물론 달러라는 화폐의 과잉 발행에 의한 인플레이션이다.

이런 현실속에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하는데 아울러 더 고민할 것은 인구문제다. 선진국인 일본은 인구가 주는데 해결방법은 이민의 수용 아니면 노년층의 해외이주다. 양쪽 모두 시도가 되고 있지만 먼저 가치관의 변화가 필요하다. 아마 한국도 비슷한 길을 따르지 않을까? 아 참 한국에는 변수가 있다. 바로 북한의 붕괴다. 저자는 여기에 대해서도 북한 위협론을 따르지 않고 햇볕정책과 같이 유화로 나가면 금방 긍정적 효과가 나올 것이라고 한다.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이지만 다루는 주제도 많고 대상 또한 전세계 여러 나라이기에 주는 메시지가 많았다. 과거 소로스로 대표되는 헤지펀드와 엔화의 향방을 놓고 겨루면서 크게 이겨서 미스터 엔이라는 호칭을 얻었지만 이 책의 곳곳에 소로스의 이론을 높이사는 부분이 나온다. 국제 자본주의 질서를 위협하는 악의 축은 바로 미국의 네오콘이라는 소로스의 통찰이 과거 친소를 불문하고 전세계의 공감을 얻는 것 같다.

우리나라 관료들은 은퇴하고 이런 책 한권 낼 수 있을까?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무슨 게이트에 이름 들어가는 꼴은 언제 그맘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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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 2006-05-31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의 고령화로 인한 인구문제의 해결방법은 일본정부가 예전부터 예견해서 준비해온 로봇의 생산 아닌가요? 그 이유는 보이지 않은 일본내의 극심한 인종차별로 인해 타민족의 이민을 허락하지 않고 첨단로봇의 생산으로 젊은층의 인구가 감소하더라도 세계 제조업 분야에서의 우위를 지키려고 한다는 점으로 알고 있습니다.(폴 케네디 저서 참고)

사마천 2006-05-31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의 로봇 솜씨는 한국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강합니다. 한국 대학생들이 전투 로봇 만들어서 시합하는 동안에 일본에서는 휴머노이드라고 사람 엇비슷하게 하는 아이보 스타일 로봇 경연대회하죠. 그런 로봇들이 자동화 분야에 많이 투입되어서 제조업 경쟁력은 유지합니다. 그런데 간호사는 어떨까요? 그건 그리 쉽게 대체 되기 어렵습니다. 결국 선택은 환자가 나가거나 예전 독일처럼 간호사를 수입하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그 점도 저자는 예측을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