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
우석훈 지음 / 녹색평론사 / 2006년 8월
평점 :
품절


노무현은 세가지 폭탄을 우리에게 준비하고 있다.

1번은 부동산 거품.
한국의 땅을 팔면 캐나다를 7번, 프랑스를 5번 살수있다는 통계가 있다고 한다.
똑 같은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난다. 도쿄의 황궁터를 팔면 캘리포니아를 다 산다는 이야기인데
일본의 90년대 초반 거품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과연 그러한 거품이 영원히 지속 가능할까?
맨하탄 보다 비싼 강남의 명품 아파트라는 현실이 외국인들에게는 아무래도 납득 가기 어렵다.

2번은 환율 폭탄이다. 초반 현대 정몽헌 회장 등 여러 인사들의 투신을 비롯해 경제불안이 이어지자
노무현은 수출 부양을 위해 환율 방어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다.
아마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이것은 분명 엄청난 골칫거리다. 통치자의 무지와
경제관료들의 손재주가 합쳐서 만든 폭탄인데 압박으로 나타나는 것은 시기의 문제일 따름이다.

그리고 마지막이 바로 한미FTA다.
주변에서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FTA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제법 많다.
칠레와의 FTA는 싼 와인, 원자재 수입과 더불어 한국 상품의 칠레 수출도 늘리는 꽤 좋은 효과를 거두었다.
나도 절대로 FTA 자체의 반대론자는 아니다.

하지만 국민학교 공부잘했다고 대학가서도 잘 한다는 보장은 절대로 없다.
내놓은 치적 없으니 이것 하나에 몰두하겠다는 노무현의 폭주는 열심히 FTA를 우리에게 밀어붙이고 있다.

작년에 잘나가던 제약주가 반토막 나는 것은 FTA가 되면 미국 거대 제약사가 특허권 주장이 강해질
것으로 보는 전망의 결과다. 하나의 산업이 한국에서 왔다갔다 해버리는데 이를 아무런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정해버리는 자세는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래도 정부인데 무언가 대비책이 있겠지 하는 기대는 접어주시기를. 부동산에서 충분히 실력 검증하지
않았나? 그것 하나 정도면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을까?
부동산도 잘 못하는 데 미국의 프로 협상가들과 상대가 된다고 너무 기대하지 마라.

개방은 필요하다. 하지만 누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전혀 다른 문제가 되어버린다.

아무런 신뢰도 국민에게 주지 못하는 정부라면 이제 자신의 권한을 반납하는 것으로 소임을
다해야 한다. 김영삼 말기의 섣부른 개방과 원화 방어노력이 IMF를 부르고 김대중 말기의 부양책이
지금의 거품을 만들었듯이 노무현 또한 후대에 부채를 남기는 것은 더 이상 그만두어야 한다.

사회는 이미 계층을 급격히 계급화시키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만들어낸
불평등의 고착화다.

다음 세대간 격차를 키워버렸다. 대학 졸업 후 취업을 고민하는 세대는 그 다음으로 자기 집을 얻으려면
절망감을 고스란히 안게 된다. 마치 거품 경제의 일본 젊은이들이 현실의 벽을 보며 자신을 프리타로
포기해버리게 되듯이 말이다.

희망, 평등, 공정함 등의 가치를 점점 사라지게 만드는 노무현의 폭주.
아직 그의 임기는 1년 이상 남았다. 그 사이에 무모한 결정이 나지 않도록
그의 폭주를 멈추는 것 또한 그를 만들어준 국민들의 몫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경제신문을 보다 보니 한국 기술 중국으로 마구 흘러들어간다는 기사가 나왔다.
주범은 물론 내부자다. 보안사고의 대부분은 먼저 내부에서 나오는 것이 태반인데 여기서도 확인된다.
경제적 파급효과가 결코 작지 않은 이러한 사건들을 보면서 혀를 끌끌차는 사람도 있지만
이 세태는 충분히 예견되는 현상이었다.

한국 기업들의 기술수준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수 있었던 계기는 일본기업들의 구조조정이었다.
그 전에 기술 한 가지 얻기도 쉽지 않았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퇴직 혹은 퇴직이 예상되는 일본인들의
기술 이전 협조를 꽤 많이 받을 수 있었다.

똑 같은 모습이 한국과 중국 사이에서도 다시 발생하는 것이다.

답은 물론 충성심의 회복 및 공동체의 부활이다. 국내 S그룹만 해도 기술자들의 연봉을 차별화해서
막대한 보상금을 지불하고 다른 한편으로 철저한 보안검색을 실시한다.

이는 조금 확대하면 중국 진출한 외국기업들 사이에서 보안 소프트웨어에 대한 투자가 막대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내부의 중국인들은 어느 순간 훌쩍 사라질지 모른다. 막대한 자산이 들어간 정보를 들고.
수십명이상의 중국 디자이너를 고용하는 모기업은 현지 오피스에 아무것도 가져오지 못하게 하고
다시 일하고 아무것도 못 가져가게 하는 강력한 보안책을 취한다고 한다.
마치 예전에 버스 안내양 삥땅 검사하듯이 말이다.

이런 산업 도둑들을 막기위해 한국보다 훨씬 강력한 보안조처가 취해진다.

내부 보안소프트웨어의 흥성, 구조조정, 세계화가 서로 물려가면서 재미난 현상들을 만들어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씨티그룹 그 열정과 도전
아메이 스톤 외 지음, 이종천 옮김 / 황금부엉이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금융계의 거대한 공룡인 씨티그룹을 이해하는데 꽤 도움을 주는 책이다.

은행,카드,보험 등 다양한 금융영역을 모두 포괄하는 거대한 존재로서 이 기업은 자리매김한다.
그 사업은 미국에만 머물지 않고 전세계를 대상으로 하는데 한미은행을 인수해 한국에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그 기업의 중심에는 누가 있을까? 샌디 웨일이라는 거물이 하나 존재하고 다른 한편에는 존 리드라는
신화적 존재가 있다. 리드는 정보처리 전문 임원인 CIO로서 CEO가 된 인물로 한때 이를 따라
향후에는 정보담당임원이 득세할 것이라는 분위기도 만들었었다. ATM 등 다양한 신기술을 적용해
효율을 높이고 금융의 정보화를 만들어낸 존재다.
반면 웨일은 내게 꽤 낯선 존재였는데 이 책의 중심인물은 웨일쪽이었다.
얼핏 보기에는 욕심에 가득찬 일벌레로 아마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 나온 수준의 악마의
이미지에 부합되는 존재였을 것이다. 무조건 요구하고 빠른 실행을 명령하며 답을 듣기도 전에
자기 주장을 펼치는 그런 까다로운 인물이었다.
경영 또한 야멸차서 M&A하면 즉시 인원감축에 나서고 각종 복지혜택은 최소화하면서도
자신에게 돌아가는 보상프로그램은 꽤 높여서 빈축을 사곤 했다.

그런 부정적인 측면을 잠시 접고 인물 하나 하나의 개성을 보려고 시도해보았다.
동구권 유태계 출신이라 월가가 인맥에 기반한 보수적인 가족기업들이 주축을 이룰 때 직장 하나
얻기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얻어낸 자리는 주문 들고 사무실을 뛰어다니는 수준이었는데
이 일을 통해 회사의 업무처리 배후과정(back office)의 실상을 속속들이 알게되었다고 한다.
이는 취업 후 수년이 지난뒤 파트너들과 독립적인 자기 사업을 시작할 때 큰 힘이 된다.
당시 미국 기업들은 컴퓨터에 의한 정보화 물결의 초창기였는데 웨일은 훌륭히 back office를
갖추고 냉정하게 원칙을 세워 운영해서 성과를 내었다고 한다. 은투기로 유명한 헌트형제의 몰락에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이나 후일 씨티은행의 PB 대상자인 중남미 독재자들의 이름을 고객명단에서
제거하는 것은 꽤 강력한 사업상 투명하자는 원칙이었다고 보여진다.

지속적인 M&A를 통한 급성장과 바닥의 실무자들에게 공감을 얻는 현실감 가진 경영자라는 특징들을
보면서 징기스칸이 떠올랐다. 바닥에서 출발해 초원의 여러 부족들을 차례차례 통합해나간 그는
특히 하층민들을 전사로 탈바꿈하면서 부족장들의 권위를 뭉개버리고 강력한 힘을 만들어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속속들이 조직을 알아야하는데 처음 출발이 바닥이었다는 점이 오히려 그에게
큰 자신이 되는 경험을 주게 된다. 웨일 또한 애초 자신을 접근조차 시키지 않던 월가의 성들을
하나하나씩 점거해나갔다. 강력한 역동성을 가지고 말이다.

그에게 무기로 쥐어진 것은 IT분야를 조기에 안정적으로 금융에 접목시킨 것이고 다른 측면에서
넓은 시야를 준 것은 은행,보험,증권으로 나뉘어진 금융서비스가 결국 하나로 통합될 것이라는
거대한 비전이었다. 애초에 하나의 조사보고서로 출발한 이 개념은 지속적인 M&A의 논리적 근거로
활용되었고 나중에 결국 의회가 금융간 벽을 없애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은행은 대중적이기에 규제가 많은데 반해서 주변의 타 금융기관들은 상대적으로 유연한 상품들은 내어
놓는다. 최근 한국에서도 유행하는 CMA가 그렇고 <은행을 떠나라>라는 책 또한 그렇다.

원대한 비전,업무의 이해에 기반한 실행력,자신에 대한 굳은 믿음은 웨일에게 지속적인 성장을 가져왔다.
그 보상은 경제적인 것 뿐이 아니라 주주들의 폭넓은 지지였다고 한다. 금융분야에서는 잭 웰치 만큼이나
높은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성장은 이제 거대해진 금융 공룡 씨티그룹을 만들어 전세계에 영향을 끼친다.
아마 한국에서도 금융간 장벽을 없애고 씨티나 골드만 같은 거대 기업을 만들자는 논의가 한창인데
이 책이 보여주는 시사점이 꽤 많을 것 같다.

읽다보면 다양한 에피소드가 잔잔히 나타난다. 카드사가 고객정보 가지고 전화로 온갖 장사하면서
고객 귀찮게 하는 것도 있다. 최근에 내가 느낀 불만인데 이를 놓고 다투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파티장에서 경쟁하는 두 부서의 책임자가 다투다가 다음날 견책을 받는 모습.
합병 후 하나밖에 남지 않는 CEO 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갈등과 투쟁.
그리고 일이 주는 압박을 느끼면서 이를 좋은 음식과 와인 그리고 적절한 방법으로 풀어나가는 솜씨.
역시 자기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아야 일도 잘하게 된다.

비행기가 공항에서 고장 났을 때 다른 사람들은 투덜대고 있는데 웨일은 전화를 걸어 현재
상황을 조속히 해결하려고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역시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해결 못할 문제는
없고 단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참고로 웨일에 대해서 다른 시각도 있다. 하나는 루빈의 회고록에 나타난 모습인데
씨티 그룹 회장으로 취임해서 같이 일해보니 웨일은 너무나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한분기 한분기 성과를 꼬박꼬박 채우라고 모두를 압박했는데 이러다보니
무리수가 나오게 된다. 기업 공개 수수료를 벌기 위해 리포트를 과대포장 시키다가 결국 검찰의
수사망에 걸리고 만다. 당시 청탁 내용은 애널리스트에 대한 금전적 보상과 더해서 유태인 중심의
유치원 입학 지원이었다고 한다.
교육에 끝없이 집착하는 유태인들 역시 보통은 아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시비돌이 > 진정한 자유주의자 고종석
신성동맹과 함께 살기 - 고종석 시평집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6년 9월
절판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실망은 - 차라리 환멸은- 한동안 공적 발언에 대한 내 의욕을 납작하게 짓눌렀다. 글쓰기가 내게 허락된 유일한 생업이 아니었다면, 나는 진즉 키보드를 치워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은근히 기대를 걸었던 공인의 정치적 파산은 내게 '사람됨 일반'에 대한 건강한 경계심을 회복시켜 주었다. 그렇다면 그는 내게 환멸을 줌으로써 한편으론 은혜를 베푼 셈이다. 불혹지년을 한참 넘겨서, 나는 잠시 무엇에 홀렸었다. -4쪽

그러나 버핏에 대한 이 환호를 '나눔의 방식'에 대한 논점 하나를 흐려버릴 수 있다. 그것은 가난 퇴치가 부자들의 기부를 통해, 그들의 자선을 통해 이뤄져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기부에 바탕을 둔 자선사업을 선양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덜 혜택받은 사람들을 일종의 '구걸자'로 만드는 것이다. 자선의 아름다운 손길 뒤에는 음험한 위계 철학이 웅크리고 있다. 가난한 사람은 부자의 너그러움과 친절에 기대어 살아가게 마련이라는 생각 말이다. 그러나 부는 '환원'의 대상이 아니라 '분배'의 대상이다. 그리고 그 분배의 엔진은 개인의 너그러움이 아니라 공동체의 법이다. -18쪽

1등과 2등의 능력 차이는 아주 작을 수 있지만, 그들이 받는 보상의 차이는 터무니없이 크다. 그 차이를 줄여 사회 갈등을 눅이는 것이 세법이다.(중략) 버핏이 꿈꾼 '평평한 경기장'은 '부자의 자식들에게 유리하게 더욱 기울어진 경기장' 보다는 정의로운 경기장이다. 그러나 더 정의로운 경기장은 '서민의 자식들에게 유리하게 약간 기울어진 경기장'일 것이다. -20쪽

사회당 정권 아래 프랑스에서도 국가의 오른손이 왼손보다 힘이 셌다면, 신자유주의 해일 속에서 허우적대는 지금 한국에 국가의 왼손이 있기나 할까 하는 체념도 엉뚱하진 않다. 그래도 계급적 양극화의 긴장 속에서 경제국가로 치닫는 대한민국의 페이스메이커로서 국가의 왼손 비슷한 것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국가인권위원회일 것이다. -52쪽

자유지상주의와 국가주의의 이념적 친화를 뜻하는가? 그럴 리는 없다. 개인의 선택을 절대시하는 자유지상주의와 집단을 물신화하는 국가주의는 물과 기름이다. 그 둘을 동시에 주장한다는 것은, 그 주장이 진심이 아니거나 주장자가 정신분열증 환자라는 뜻이다.(중략) 이 범우파 블록 안에서 시간은 자유지상주의 편일 것이다. 세계화의 해일은 이내 국가주의자들의 기를 꺾어놓을 것이고, 분열증적 개인들의 내면에서도 자유지상주의는 국가주의를 이길 것이다. 국가 위세를 특별히 중시하는 초강대국이 아닌 나라에서, 동원된 애국심이 계속 자본에 맞먹는 결기를 유지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국가보안법이 자본운동의 걸림돌이라고 판단되는 순간, 우익 진영의 폐지 반대 목소리는 쑥 들어갈 것이다. 자유지상주의는 한국의 전통적 수구기득권층만이 아니라 그들의 정치적 경쟁자들도 꽤 개종시켰다. 지금 한국에서 자유지상주의는 개혁의 이름으로 관철되고 있고, 여권의 주류는 총자본에 굴복한 듯 하다. -61쪽

자유지상주의의 범람은 세계화에 시큰둥한 유럽에서까지 목격되고 있다. 그러나 서유럽 국가들에 맞먹는 경제규모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 나라들이 두세 세대 전에 이룩한 복지시스템이 없는 한국에서 이것은 재앙이다. 서유럽과 달리 우리에게는 줄일 복지 자체가 없다. 사회경제적 약자들을 위한 복지시스템 구축과 공동체 구성원 사이의 연대를 핵심 가치로 삼는 좌파적 감수성이 우리 사회에 특히 긴요한 것은 그래서다. "부자에게는 세금을, 서민에게는 복지를"이라는 슬로건은 한 정당의 선거구호를 넘어 우리 사회를 운영하는 기술적 근본원리가 되어야 한다. 세법 손질 움직임이 조금이라도 부자에게 불리하다 싶으면 좌파 세상이 왔다고 호들갑 떠는 야당과 우익언론이 민생을 얘기하는 것은 뻔뻔한 일이다. 민생은 본디 좌파적 가치다. 우리 사회에는 좀 더 많은 좌파가 필요하다.-62쪽

강준만 교수의 새로운 글쓰기가 깊은 곳에서 현실정치와 소통하고, 그 큰 틀의 정치평론이 인터넷에서 그림자와 메아리를 얻는 표준적 규범텍스트가 되길 기대한다. 그는 아직도 지식인들의 지식인이고, 논평가들의 논평가다. -72쪽

시청 앞에서 인공기를 흔들어대는 것은 분명히 대다수 한국인들의 미감을 거스르고 눈살을 찌푸리게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철없음이나 유치함 자체를 형벌 대상으로 삼는 것은 시민적 자유의 밑바탕을 위협한다. 시청 앞에서 부시 당선을 위해 기도를 올리거나 히틀러 사진을 들고 있는 것 자체를 처벌하는 것이 자유주의를 위협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80쪽

사실 이 정권은 출범 이후 지지자들 심정에는 아랑곳없이 신성동맹 눈치를 살피느라 끊임없이 오경화의 길로 매진함으로써 제 지지기반을 허물어왔다. 그러다 사면초가다 싶으면 사소한 '껀수'를 잡아 온 나라가 들썩이도록 신성동맹과 각을 세우며 지지자들을 규합하는 방식의 조잡한 정치공학을 되풀이해왔다. -91쪽

노 정권의 핵심과 그 지지자들이 '조선일보'와는 비길 수 없을 만큼 자유민주주의에 친화적이라는 것은 안전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보다 더 큰 잘못을 저지르는 집단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지 않고서는 제 정당성을 주장하지 못하는 '개혁세력'을 보는 일은 슬프다.-113쪽

줏대를 버린 뇌동은 그 당사자에게만이 아니라 공동체에도 크게 해롭다. 그러나 줏대를 지닌다는 것은 독선적이 된다는 것과 크게 다르다. 줏대를 지니되, 진리는 늘 여러 겹이라는 사실도 잊지 마라. 독립은 고립과 아주 다르다. 고립은 단절된 상태를 뜻하지만, 독립은 연대 속에서도 우뚝하다. 연대는 어느 쪽으로도 향할 수 있지만, 아비는 네 연대가 공동체의 소수자들, 혜택을 덜받은 사람들에게 건네지기를 바란다. -145쪽

김수영의 산문 한 대목이 생각난다.
"소설이나 시의 천재를 가지고, 쓰지 못해 발광을 할 때는 세상이란 이상스러워서, 청탁을 하지 않는다. 반드시 그런 재주가 고갈되고 나서야 청탁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무릇 시인이나 소설가는 청탁이 밀물처럼 몰려올 때는 자기의 천재는 이미 날아가 버렸다고 생각하는 게 좋다. 세상은 참 우습다. 그렇게 이를 갈고 속물들을 싫어할 때는 아무 소리도 없다가 이렇게 내 자신이 완전무결한 속물이 된 뒤에야 속물에 대한 욕을 쓰라고 한다. 세상은 이다지도 야박하다."(거룩한 속물들)-329쪽

위에 인용한 김수영의 이죽거림을 내 식으로 고치면 이렇다. 젊어서 온힘을 다해 글을 쓰면, 그 글은 반드시 출판사 편집자에게 난도질당한다. 나이 들어 슬렁슬렁 쓰면, 그 글은 고스란히 활자화되기 마련이다. 무릇 글쟁이는, 제 글이 고스란히 활자화될 땐, 그 글이 별볼일 없다고 생각하는 게 좋다.-330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의 정치변동
김영명 지음 / 을유문화사 / 200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자가 쓴 글들과 비교하면 이 책은 별로 재미가 없다.

그렇다고 강준만 글 처럼 방대한 자료 조사와 과감한 주장이 들어간 것도 아니다.

읽다보면 가끔 과감하게 느껴질 때도 있는데 그럴 때 별로 공감가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은
왜 일까?

예를 들어 87년 대선에서 김대중으로 단일화되면 노태우에게 질 가능성이 컸다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하지만 이 주장으로 특정한 책의 내용을 인용하지만 왜 당시 실시되었던 어느쪽으로 단일화되어도 노태우를 이길 수 있었다는 갤럽의 조사는 인용하지 않는지 이유가 궁금하다. 참고로 당시 갤럽 조사는 노태우를 비롯한 대선주자의 지지율을 정확히 맞추어 화제가 되었다.

그렇게 과감한 주장들은 이곳저곳에서 나타난다.
그리고 대체로 내가 겪었던 정치상황과 해석과 비교하면 별로 공감가지가 않는다.
특히 지역감정이 왜 발생했는지에 대해서 이런 주장 저런 주장을 들먹거리기는 하는데 막상 저자가 취하는 방식은 내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정치라는 영역은 역시 박사라도 대중들의 정서와는 거리가 많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런 인식에 도달한 덕분에 나머지 내용들은 그냥 설렁설렁 넘기게 되었다. 그렇게 가볍게 눈요기를 해도 썩 머리에 남는 참신한 주장은 없었고 단지 교수라는 타이틀이 그리 쓸만한 정치 관련 책을 대중에게 공감시키기는 어렵구나 하는 인식 정도를 남기게 되었다.

다음부터 도서관에서 책 고를 때 이분 책은 빼기로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