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사원 -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위대한 건축물 데이비드 맥컬레이 건축 이야기 7
데이비드 맥컬레이 지음, 김영선 옮김 / 한길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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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건축에는 막대한 노력과 비용이 들게 된다. 덕분에 세계에 현존하는 위대한 작품들 중에는
종교적 건축이 많다.

인도의 타지마할도 이슬람 사원의 하나로 이해해야 한다. 이스탄불의 블루 모스크도 대표작일 것이다.

그런데 종교적 건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담겨 있는 종교의 원리를 잘 알아야 한다.

이슬람 종교가 의무 중 하나가 메카를 향해 하루에 다섯번 절해야 한다는 것이 있다.
그래서 그 방향을 향해 벽의 위치가 놓이게 된다.
기독교가 성가와 설교가 중요시되는데 비해서 이슬람 성당에는 그런 것이 없다.
설교는 전문 성직자가 존재하지 않으니 필요 없고 단지 인도하는 모습만 필요하다.

하루에도 여러번 있는 예배시간을 알리는 일이 중요해서 건물 옆에 높이 솟은 탑 바로
미나레트가 세워지게 된다.
성당이 대체로 십자가나 열쇠(로마 베드로 성당)와 흉내를 낸 것이 많은데 비해
이슬람 사원은 장방향이 많다고 보인다.
그것 또한 종교적 행사가 이루어지는 방식과 관련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건물의 안쪽 구조는 공동체적인 성격이 많다. 신학생들이 머물고 밥먹고 씻고 하는
그런 공동체의 모습은 일종의 평등주의를 잘 나타낸다.

이렇게 종교적 원리를 넘어서서 다음에는 어떻게 이런 건축을 만들었는지 그 과정에 호기심이 간다.
특히 한국 건축에 없는 넓다란 공간을 과연 어떤 식으로 만들었을까 궁금해진다.
그 과정을 하나 하나 추론해 보여주는 맥컬레이의 솜씨는 꽤나 놀랍다.

넓은 공간, 높은 천장은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을 당신이 발 디딘 이곳이 바로 신의 영역이다 하고
압박을 주게 된다. 그런데 그 천장은 과연 어떻게 만들었을까?

책의 내용 하나 하나는 바로 그런 공간을 읽어나가는 솜씨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멀리 이슬람을 자신의 여행 계획 속에 담았던 분들이 있다면 꼭 미리 담아두시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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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선생 지식경영법 - 전방위적 지식인 정약용의 치학治學 전략
정민 지음 / 김영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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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선생의 저작이 다양하고 폭이 넓었던 만큼 이 일부를 배워보자는 이 책의
취지를 따라가다보니 매우 두껍고 내용도 많은 책이 되어버렸다.
덩달아 지식 경영 한 수 배워보겠다는 나의 독서도 꽤 많은 노력이 소요되었다.

읽다보면 한국이라는 나라의 속성은 꽤 오래 계속 간다는 느낌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래서 그 중 인상 깊었던 것 몇가지만 정리해보았다.

1. 실용적인 것에 관심이 적고 이론 논쟁이 많다

누가 일본에 출장 다녀와서 문화가 천하다고 비판하며 글씨 한두 장 얻어가려던 일본인들의 무지를 비판한다. 이를 보고 다산 선생 말씀하시기를 왜 그 나라가 치중한 과학기술에서 한 수 배워오지는 못하는가.
조선의 은제련 기술이 고스란히 넘어가 일본에서 은광개발해가지고 서양식 조총 사오는데 투입되었다. 그 결과는 임진왜란에 조선군이 만나게되는 바로 그 철포다.
요즘에도 똑 같이 일본만 나오면 게 거품 물고 무시하려는 인간들이 있다. 특히 정치판에 노모씨라고 있는데 꼭 이 이야기 들려주고 싶다.
조금 생각을 바꾸면 남을 만날 때도 항상 장점을 먼저 배우도록 노력하자. 고이즈미의 신사참배가 맘에 안든다고 해도 그가 벌여 놓은 정치개혁의 솜씨는 분명 한국 보다 훨씬 낫다.

2. 끼리끼리 붕당을 만들기를 좋아한다

신념이 삽시간에 종교화되어 버린다. 조선왕조의 후반 대부분을 장식하는 파당의 핵심은 동당벌이라고 이 책에 나온다. 그런데 지난 2006년을 대표하는 사자성어가 바로 동당벌이 아니였나?
자기편의 큰 허물에는 눈 감고 상대방의 작은 허물에는 악착같이 게거품 무는 모습이 바로 그 꼴인데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3. 공무원의 자질은 핵심 찾기, 다산이 만든 경영자정보 시스템

얼마전 변호사 중에서 공무원 뽑는 시험이 있었는데 문제가 산더미 같은 보고서 안겨주고 짧은 시간안에 핵심을 찾기였다고 한다. 박정희 때도 관료들의 솜씨가 briefing에서 발휘되었다고 하는 걸 회고록 등에서 많이 읽게 되었다.

다산에 대한 이야기 중에 딱 똑 같은 대목이 나온다.
정조의 지시에 대해 한 수레 분량의 서책을 요약해서 왕이 보아야 할 수준의 내용으로 한장에 정리를 해냈다고 하는 것이다. 또 각종 부역을 공정하게 부여하기 위해서 자료들이 서로 엇갈려 체크가 되도록 만든 것도 작품이다. 현대의 데이터베이스 관리 기술과 핵심은 같은 맥락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을 정도다.

4. 공부의 원리는 허식이 아니라 내실이고 기법의 개선은 꾸준히 필요하다
따라서 빨리가는 것을 찾기보다 바닥을 든든히 다져라

요즘 논술바람이 멀리 초등생시절의 독서에도 영향을 준다. 그런데 안타까운 점은 글을 쓰는 요령에 집중하지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데는 별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생각의 깊이는 토론에서 만들어지는데 가장 좋은 상대 중 하나는 부모다. 케네디가가 밥먹는 자리에서 토론 시켰던 것이 유명한 사례인데 한국의 식탁이 과연 그렇게 활발한 자리가 될 수 있을까?
좋은 음식을 먹으면 자연스럽게 얼굴에 윤기가 난다고 비유하면서 요령을 배우러 온 사람에게 내실을 키우라고 조언하는 것은 지금도 유효한 이야기다.

글로벌 시대에 한국이 약한 것은 서비스산업이다. 신세계를 비롯한 몇몇 기업이 세계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아직 좋은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국민은행으로 대표되는 은행권도 한참 멀었고 삼성SDS를 비롯한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도 질은 매우 낮다.

해당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이유가 뭘까 곰곰히 생각해보게 된다.

내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한국이 지식가진 사람을 존중하는 문화로 바뀌지 않는 한 어렵다는 것이었다.

다국적 기업과 일해보면 paper 몇장의 가치를 비싸게 취급한다. 덕분에 전담자가 존재하고 꾸준히 그 내용을 업그레이드한다. 물론 대우도 좋다.
반면 내가 다녀본 한국기업은 나름대로 국내에서는 대표자라고 하면서도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자신만의 방법론을 만들지도 못했고 전문가의 지식을 끌어내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비즈니스 모델 또한 머리수 곱하기 얼마 이상을 넘지 못하고 이익을 내기 위해 구매거래선만 무조건 들볶는 구조밖에 안된다. 대표기업이 이 수준이라면 그 사회의 해당 산업이 발전하지 못하게 되는데 그 책무에 대한 의식은 별로 없는 것이다.

오죽하면 이런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 심수관을 비롯한 한국의 도공들이 자발적으로 일본으로 넘아갔다고 하는가?

다산, 한국인으로는 드물게 르네상스적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의 저작은 결코 실용적으로 반영되어 사회를 개혁하지는 못했다고 보아야 한다.

그는 천주학의 가르침에 따라 사민평등의 철학을 가져 없는 사람들에게도 가르침을 배풀려고 부단히 노력하였다. 반면 나라님은 수만명의 백성의 목숨을 가벼이 여겨 형장의 이슬로 보냈다.
그는 눈을 밖으로 돌려 과거의 영광이라는 아집에 빠져 현실의 거대한 힘을 가진 청과 일본을 무시하지 말라고 했다. 반면 나라님은 뙤놈들이라는 단어 하나로 자신들의 무지를 덮어버리고 제대로 배우고자 하지 않았다.

한국의 실학, 이는 분명 값있는 노력일 것이다. 하지만 절대로  자만에 빠지지는 말자.
한국이 내세우는 금속활자의 세계최초 주장을 서양인들은 콧방귀를 낀다.
왜냐고? 기술은 기술 자체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회제도의 혁신을 가져올 수 있느냐는 파급력의 경중에서 더 큰 중요함을 찾아야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정약용의 실학은 괜찮은 노력이지만 그 것 하나를 가지고 우리에게 대단한 지식 경영의 전통이 있었다고 내세워서도 안된다. 왜냐고? 아직도 한국에 제대로 된 지식이 축적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증거는 세계인이 볼만한 책을 한국 사람이 내놓아서 번역해가는 것이 눈 ?고 찾아도 찾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이 현상이 계속 가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한국의 지식경영에 이러한 책이 초석이 된다면 좋을 것이다라는 기대는 여전히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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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의 흥망
폴 케네디 지음 / 한국경제신문 / 199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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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접한 것은 80년대 말이었다.
당시 미국의 제조업은 일본에 의해 급속히 밀리고 있었고 레이건 말기의 과도한 국방비가
재정적자를 유발하며 성장성에 우려를 불러일으키는 상황이었다.
당시 유려한 문장과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역사적 안목을 전세계 독자에게 전해주는 이 책의
위력은 대단했다.
그리고 잠시 후 망한 것은 소련이었고 동구권이 일제히 붕괴해버리면서 미국은 유일 초강대국이라는
지위의 혜택을 잔뜩 누린다. 반면 미국을 대체할 것으로 보였던 일본,중국,인도는 그렇게 빨리 떠오르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저자가 역사학자의 과도한 추정의 오류라는 비판을 받게 되면서 책의 성가 또한 내려가게 되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15년 이상 지난 오늘 다시 보면 이 책의 가치가 새삼 느껴진다.
미국은 90년대 IT혁명으로 경제력을 더욱 키워나가고 소련이 모라토리움을 선포하는 등 제자리를
잡지 못한 상태에서 과도한 세계지배의 욕망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추진한 아프간 및 이라크 전쟁과 악의 축 개발은 그들의 이념과 체제로 전세계를 통일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문제는 비용이다.

스페인 제국이 중미에서 가져온 은으로 추진한 거대한 정복전쟁은 결국 실패하였고 결과는
화려한 전쟁이력속에서의 쇠락이었다. 비슷한 오류가 세계제국들에서 꾸준히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정치적 오만은 경제의 무리를 가져오고 이 불균형은 결국 제국을 가라앉게 만든다.

미국은 아프간 전쟁 한번 만으로도 보유한 크루즈 미사일을 모두 소모했다고 한다. 이라크 전쟁에서 다시 한번 소모하다보니 보충을 하는 비용까지 엄청난 예산이 들 수 밖에 없다.
만약 미국이 북한과 이란을 대상으로 한번 더 전쟁을 벌였더라면 결과적인 소모는 더욱 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결과는 달러의 약세다. 전쟁비용은 지폐의 증발로 충당될 수 밖에 없고 늘어난 지폐는 결국 실물의 가격을 올리며 자국의 통화를 약세로 몰아간다.

그 결과는 미국의 부자들의 달러 내던지기다.
어드벤처 캐피털리스트의 저자인 짐 로저스는 거품이 되어버린 달러를 팔아라 자원을 사라라고
강조한다. 평생 한번도 해외투자를 하지 않던 워렌 버핏까지 해외투자에 나서고 그의 친구 빌 게이츠까지
동참한다. 조지 소로스는 말할 필요도 없고...
그런데 죽어도 달러 사들이겠다는 안목없는 인간들도 있다.
발권력을 동원해서라도 환율을 방어하겠다는 노무현의 발언이 그 예다.
조금 경제학적 상식을 동원해서 이 말을 해석해보라. 얼마나 어리석음 그 자체인지를.

최근 한반도는 거대한 핵게임의 소용돌이로 몰아져가고 있었다.
북-미 양쪽이 벌인 포커게임은 판 자체를 흔들며 주변의 관객인 우리들까지 같이 공포로 몰아갔다. 하지만 이제 94년 핵위기 당시 처럼 막바지로 몰고가는 것은 거꾸로 대타협의 전조를 예고한 것인지 모른다.상대의 카드가 뻥카인지 아닌지는 눈매를 보고 안다. 북한은 미국의 전쟁추진력의 한계를 내다보았기에 더욱 강하게 버텼고 미국은 자신들이 보여준 공포의 정치가 위력이 다 하기 전에 더 많은 성과를 끌어내려고 했다.
그래도 양쪽이 타협에 이루게 된 근저에는 아마 케네디가 전개한 강대국 흥망의 이론이 작용하지는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아무리 강한 것처럼 보이는 강대국이라도 적절한 경제력이 뒷받힘 되지 못하는 전쟁은 현명하지 않다는 교훈이 바로 그 핵심이 아닐까?
결국 이 책은 수십년 세월을 넘어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역사학과 정치학의 고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해본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왜 이런 책이 도저히 나오지 못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 결과는 역사에 충분한 안목 없는 지도자들을 겪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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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잔의여유 2007-02-19 0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강한 것처럼 보이는 강대국이라도 적절한 경제력이 뒷받힘 되지 못하는 전쟁은 현명하지 않다. 좋은 이야기네요.^^ 사마천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사마천 2007-02-19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전은 역시 고전의 값을 하는 것 같습니다. 로토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sayonara 2007-02-22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가 8~90년대에 군비경쟁의 시대는 가고 경제전쟁의 시대가 온다~고 터무니없는 예측을 했던 사람인가요... 아닌가... 기억이 가물가물...
교수님이 그 작가를 신나게 씹는 걸 듣고 안 읽었던 기억이...
이 작가가 그 작가인지... 아닌지... 긴가민가... -_-;;;

사마천 2007-02-23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맞을 것 같습니다. 케네디의 이론이 미국의 쇠락을 예언했는데 거꾸로 미국이 레이건 혁명 이후 잘 되니까 여기저기서 비판을 많이 들었죠. 하지만 요즘 다시 보면 미국이 부시의 연달은 전쟁 이후에 정말로 쇠락해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역사는 길게 보아야 진실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고레카와 긴조 - 일본 주식시장의 신
고레카와 긴조 지음, 강금철 옮김 / 이레미디어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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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전설적 주식투자자 고레카와 긴조의 자서전이다.

그는 1800년대 말에 태어나 일본,한국,중국을 넘나들며 각종 사업을 하던 인물로 말년에 주식에 몰두하여
대단한 성과를 이루어내었다. 한참 오를 때는 1조원대의 부를 이루었다고 하는데
그에게서 자민당 유력자가 자본을 빌려 정치자금으로 쓰는 장면도 나타날 정도니
영향력은 정재계에 폭이 넓은 편이었다.

승부근성이 뛰어났다는 점이나 일찍부터 자본주의의 생리에 눈을 떴던 점들도 장점으로
들수 있지만 내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의 국제감각이었다.
어느 나라의 외화자금이 부족해지니 일종의 지불정지가 발생할 것으로 내다보고 이 것이 자금 흐름을
막아 주가하락을 가져올 것이다. 그 날짜는 언제다라고 까지 예측해낸다.
또 국가간 사회시스템이 다르니 가격차이가 발생하는 것을 포착하여 이를 가지고 베팅에 나선다.

군대를 따라다니다가 전쟁상인으로 변신하는 과정도 재미있다. 처음 그는 귀찮은 존재라 귀환 대상에 오른다. 하지만 군인들이 계산을 못해 몇일 헤메며 장부 장부정리하는 모습을 보고 이를 거들어 주며 변신하게 된다. 다음은 보급물자를 확보하러 마을로 가는데 아무도 상대안해주니 다음번에는 일본군인을 끌고간다. 도망가버린 마을에서 돼지와 닭을 끌고 오지만 가격은 시가를 감안해서 치러놓는다. 이렇게 되니 다음번에는 그를 상대하는 사람들이 나와 어엿한 상인의 자리를 차지한다.

제국주의를 추구했던 영국이나 일본은 여러나라에 걸친 안목을 갖춘 인물을 많이 배출하게 된다.
세지마 류조가 보여주었던 러시아나 중동의 시황에 따른 투자도 그의 젊은날의 경험이 바탕에 깔린 것이다.
고레카와 또한 한국,중국을 걸치며 돌아다니고 바닥의 경제권까지 체험하며 얻어진 경험을
투자에 잘 활용한다. 미국과 일본의 갈등을 예측하고 전쟁이 발발하면 어떤 산업들이 활황이 될지
잘 예측하여 선투자하는 솜씨도 보인다. 그 투자 지역이 한국이라는 점이 떨떠름하고 심지어 한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에 출마할 계획을 가졌고 조선의 총독의 귀인으로 교류했다는 점이 놀랍다. 어쨌든 일본인의
관점으로 보면 선각자였고 애국자였고 전쟁사업에서 치부한 뛰어난 인물이었다.

광산개발에 능했는데 사람 속 만큼이나 땅 속을 알기 어려운 덕에 일종의 투기업에 가까왔다.
남이 보면 투기 내가 보면 투자가 되려면 추론의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광맥의 흐름을 짐작하고
사업성을 유추하는 단계에서 발군의 솜씨를 발휘한다. 이는 고스란히 동,금 등 자원개발 주식의
투자에서 든든한 기반이 된다.
최근 대우인터가 미얀마에 투자해서 만들어낸 놀라운 성과를 상기해보면 이 사업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분야를 떠나서 상황을 보고 추론해내는 솜씨는 놀라운데 어느지역에 지진이 나면 희생자를 애도하기
전에 복구에 소요되는 도구(못 등)가 막대하게 소요될 것으로 예측한다. 다음은 결단을 내리고
도구의 매점을 전자산에 신용까지 걸어서 나서는데 그 승부력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었다.
비슷하게 정주영 회장이 박정희에게서 댐 건설의 지시를 받자마자 나와서 회사돈 털어 강남에
땅사라는 지시를 했다는 일화가 있다. 댐은 수재를 줄일 것이고 결과는 사람 살만한 땅의 개발이니
반드시 오를 것으로 본 것이다. 그 자리가 지금 현대 이름 붙은 여러 아파트 (압구정 포함) 단지다.
보통 애널리스트는 논리는 좋으나 결단력이 없고 펀드매니저는 반대라고 하는데
고레카와와 같은 대투자가는 양면이 다 월등한 인물이었다.

책의 상당수는 자전적인 면모를 담고 있어 투자 자체에 대한 양은 그렇게 많지는 않다.
하지만 한 사람이 갖추게된 안목과 승부력의 원천이 어디에서 오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도
필요한 부분으로 보인다. 본인이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설파했기에 줄 수 있는 생동감은 충분히
값을 한다고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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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차원 전면교육 학습법
원동연 지음 / 김영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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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의 부모들을 보면 자녀의 교육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막대한 사교육비의 비율만 봐도 그렇고 학군이 좋다면 부동산이 올라가는 모습도 다른 나라에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현상이다. 나아가 기러기아빠와 같이 가족의 해체를 가져올 수 있는 도박 조차
무리하게 시도하기도 한다.
과연 이 모든 것이 바람직한 현상일까?
경제적 무리를 차지하고도 묻고 싶은 것들이 부모는 스스로의 교육에 그만한 투자를 하는가?
또 부모 자체는 자신의 삶에서 행복을 느끼고 있는가이다.

교육의 효과는 시험성적도 대학진학 그 자체도 아니다.
플라톤을 비롯해 고전적 목표가 지향하는 바는 완전한 인간 즉 자신의 가치를 높게 사고
목표를 설정하고 거기에 매진하며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종합적 능력을 가진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거기에 비하면 지금의 교육 방식은 훨씬 왜소한 사람을 만드는데 그치고 있다.
영어를 위해 어려서부터 각종 학원에 보내고 나서 발음이 좋아지는 모습을 보고 부모는 흐뭇해한다.
하지만 말의 목적은 의사소통인데 머리속에서 논리적 사고를 전개해 주변이 필요한 가치 있는 메시지를
만들어내는지는 체크하지 못하고 있다.
왜? 부모들 본인 스스로가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그런 경험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릇 교육의 가장 기본은 모범의 발견이다.
부모가 TV로 드라마 열심히 보면서 아이들에게 공부하고 책읽으라고 하는 것이 소용있겠나?
마찬가지로 본인이 잘 하지도 못하는 영어를 자녀에게 익히게는 하지만 논리적 사고
독서에 대한 모범을 스스로가 보여주지 못한다면 교육적 효과는 극히 제한적이다.
하지 못하면서 마음은 불안하다 바로 이 상태를 노리고 달려드는 사교육에 휘말려
막대한 돈을 들이게 된다.

그런 부모들에게 원교수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매우 포괄적이고 교훈적이다.
자녀를 마음 심,지력,체력,자기조절,인간관계의 다섯가지가 모두 갖추어진 인재로 키워야하고
어느 하나만 빠져도 한계가 그어진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원교수는 자신만의 교육법을 만들어 한가지씩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특히 지식을 가르치지 말고 지혜를 깨워주라는 조언이 눈에 들어왔다.
전체를 보고 부분으로 들어가는 사고가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대학을 들어가면서 과를 선택하는데 고민을 많이 한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나오면 무엇을
하느냐이다. 이는 선배들의 모습을 보면 된다. 하지만 입학식에서 졸업하는 선배들의 진로를
꼼꼼히 살피는 후배들은 별로 없다.
대학이라는 과정을 삶의 전체 모습의 어디에 놓는지 훈련이 안되어 있기 때문이다.

책에 몰두하다보니 정서적인 측면이 약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음악 등 예술교육을
악기 다루는 것 자체가 아니라 즐거움을 느끼도록 꾸준히 훈련시키라는 조언도 좋다.

이 모든 것들이 남에게 맡겨서 특히 돈으로 살 수 있는 영역인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때로 많은 돈을 들이는 것 그 자체로 본인의 의무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자만하지는 않는가?
아니면 한국의 사회시스템의 빡빡함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스스로에게 자녀교육을
도그마로 삼아 해외로 발걸음을 무작정 옮기고 있지는 않은가?
그 와중에서 정말 스스로가 해야만 하는 여러 의무들에 대해서는 쉽게 포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유태인의 교육이 오래가는 이유는 그들이 삶에서 교육원리를 실천하기 때문이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가업이 꾸준히 이어져가는 것이다.
아들이 아버지의 직업을 이어가려면 먼저 아버지의 삶이 아름답다, 충분히 따를 만하다는
이해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 결과 존경심이 따라가는 것이고 가정의 화합과 대화도 있게 된다.
거기에 비해 한국의 교육은 그만한 철학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대치동의 경우는 시험을 통해 자격을 갖출 수 있는 직업을 타겟으로 삼는다.
평생 직업이 보장되는 몇몇 자격들이지만 그들내에서의 경쟁 또한 치열해진다.
미국이 자격을 하나의 시작이라고 간주하는데 비해서 한국은 신분이라고 생각한다면
경쟁력은 그리 높아지지 않는다.
왜 하는지에 대해 가르치지 않고 무조건 따라와만 강요하며 제대로 안될 때 이를 한탄만 한다면 
교육철학은 결단코 만들어지지 못한다.

이런 풍토를 아쉬워하는 저자는 교육원리를 제창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시행하도록 사설 교육기관을 만들기도 하고 연변에 과기대학을 만들어 조선족 후학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기도 한다.
꾸준히 그 성과가 이어져가 척박한 한국 교육의 풍토에 신선한 파장을 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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