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 1
카이지 카와구치 지음 / 세주문화 / 2000년 4월
평점 :
절판


저자인 가와구찌 가이지는 정치와 군사에 관한 작품에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한다.

전공투 세대를 다룬 <메두사>도 있었고 2차 대전을 다룬 <지팡구>도 있다.

특히 <침묵의 함대>는 핵잠수함 하나가 미국으로 나아가면서 위협을 통해 자기의 주장을 전개한다. 결코 일본의 자위권에만 머물지도 않고 지배를 추구하지도 않는다. 그가 바라는 것은 보다 고차원적인 세계의 평화다. 패배자의 피해나 보복심리에서 벗어나 한층 스케일 큰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번에 잡아 본 작품 <이글>은 클린턴의 시대가 끝나고 전개되는 대통령선거를 대상으로 삼는다. 작품의 매력으로는 우선 미국의 정치 구조를 알게 해준다. 각 주별로 전개되는 선거전의 원리와 작동방식을 매우 생생하게 잡아낸다. 마치 한편의 잘 짜여진 정치 드라마를 보는 듯한 기분이다. 이는 작품 속에서 작가가 주장하는 미국인들은 사소한 것도 축제를 만들어버린다는 말과 맥이 통한다.
선거전은 일종의 축제다. 사회적 제약이 없어지고 각종 욕망이 분출되어 마치 모든 것이 금방 바뀌어질 것 같은 광란의 장이 되어버린다. 정치인은 다 지키기 어려운 약속을 마구 행사하는데 그 대상은 때로는 대중이 되고 때로는 지지를 모으기 위한 다른 파벌들이 된다.
대중들은 이번에는 혹여 하면서 모여들어 스스로 조직체를 구성해 선거전에 몰두하고 이야기를 논한다.
이 과정을 꽤 꼼꼼하게 그려낸 것에 일단 그의 작품이 주는 값어치는 있다.

그럼 그것만일까? 절대 아니다. 주인공을 일본인 2세로 내세웠는데 그의 꿈은 미국의 대통령이다.
이를 이루기 위해서 그는 양면의 가치를 다 가지고 있다.  
하나는 미국의 정통 리더가 되기 위한 코스로서 명문 학교를 거치며 미식축구에서 쿼터백을 하고 전쟁에 자원해서 참여한다. 다음은 명문가문의 영애와 혼인을 해서 주류사회에 진입한다.
개인적으로 리더의 가장 핵심인 책임감을 강하게 가지지만 반면 필요할 때는 상대를 누르기 위해 기싸움도 하고 정보를 흘리는 선전전도 쉽게 자행한다. 비밀이 오가는 말을 녹취한 테입을 활용하기도 하고 뇌물수수의 근거를 가지고 소송에서 상대방을 압박하기도 한다. 실제 이는 미국 변호사들이 막대한 돈을 받아가며 살아가는 방식이다. 다시 확인하고 싶은 분들은 그리셤의 작품을 보시면 될 듯 하다.

그의 반쪽은 바로 일본인이다. 이민자의 후손으로 적지 않은 피가 섞여 있다. WASP 즉 백인 프로테스탄트만이 가능한 미국 사회의 리더를 이민자가 그것도 동양인이 도전한다는 스토리는 색다른 면모가 많다. 그렇지만 조금 시야를 돌려보면 페루의 후지모리가 바로 좋은 예가 되지 않을까한다. 당시 경제대국 일본의 막대한 원조를 기대하고 그가 대권을 쥐었다가 독재자가 되었고 마지막에는 일본으로 망명해버렸다.

이번에는 상대가 미국이기 때문에 어떻게 될 것인가? 대권후보의 입은 무기의 규제 나아가 세계 평화를 위한 거대한 한걸음으로 미국이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내어 놓는다. <침묵의 함대>가 파괴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의 평화를 가져오듯이 말이다.
내부적으로 미국이 안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를 하나씩 건드려가는 것도 재미있다.
뉴욕에서는 노회한 흑인 정치가와 흥정을 통해 지지를 유도한다. 실제 뉴욕시장은 흑인이 상당기간 수행했었다. 그런데 문제는 흑인들이 경제적 배경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기돈으로 직접 정치를 수행하기 보다 남의 돈을 끌어들이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는 점이다. 이를 교묘히 파고들어 자신의 강점인 장인이 은행을 하고 있는 덕분에 만들어지는 자금력으로 회유한다.
남부에 방문해서는 카우보이들이 모인 식당에서 스테이크를 먹으며 총기문제를 교묘히 풀어간다. 논쟁을 키워 가장 강한 상대를 끌어들여 담판을 전개한다.
공업지대에서는 노조와의 싸움이 나온다. 이미 권력화한 여러 노조들이 안고 있는 부패의 문제가 상대를 깨는 핵심요소가 된다.

이 과정 전반이 세세한 면까지 정확도를 고려해서 그려져 있다. 어지간한 미국 문화 도서를 보는 것 보다 훨씬 낫도록 잘 설명되어 있다. 외형으로 드러나는 보도자료 뿐이 아니라 이면에 담긴 진실을 더 잘 포함하고 있다.

덮고 보면 좀 황당한 내용이지 않냐고 물어보지만 벌써 한국인으로 유엔의 사무총장이 배출되었다. 이제 한국인 또한 자국만의 이해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내다보며 자신의 가치를 넓혀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에서와 같이 고민의 폭을 꾸준히 넓혀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된다.

왜 한국에는 이 정도의 리얼리티를 가진 작품은 만화로 없을까? 잘해서 김진명의 작품을 만화하하면 비슷한 수준이 될까하는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플루토 Pluto 3
테츠카 오사무 지음, 우라사와 나오키 그림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데즈카 오사무와 우라사와 나오키 라는 두 거장의 만남은 가슴을 설레게 한다.
마침 20세기 소년도 늘어져서 답답해하는 와중에 나온 이 작품을 펼쳐보니 기대를
전혀 저버리지 않는다.

만화의 신 데즈카 오사무의 작품을 바탕으로 고전이 가진 불멸의 가치를 잘 살리고
현대적인 환경에서의 재해석을 시도하고 이를 예쁜 선으로 그려낸다.

주제는 로봇과 인간이 공존하는 미래사회 속에서 과연 인간적인 것이 무엇인지 물어감이다.
로봇 소설의 원조 아시모프의 로봇헌장의 원칙도 나오고 인간과 인간의 심각한 전쟁이
그렇게까지 피를 흘려야하는 것인지 물어가는 원초적 질문도 나온다.

배경으로 등장하는 전쟁의 모습은 마치 대량학살 무기 존재 여부로 촉발된 이라크 전쟁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악역을 맡은 존재는 현재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내는 곰인형같은
로봇이다. 이름은 루즈벨트인데 작가의 의도는 테디 베어로 유명한 루즈벨트를 상징 시키면서
미국이 가장 선하게 내세우는 대통령조차도 실은 타국에게는 엄청난 폭력을 행사하는 괴물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넌지시 보여주는 것 같다.

어쨌든 수 많은 로봇이 죽어간 이 전쟁은 아직 마무리 안되었는데 하나씩 죽음이 발생한다.
바로 대량학살무기 조사단 일원들과 초고성능 로봇들이 대상이 된다.
그들에게 그만한 힘을 주는 존재는 무엇일까? 다 말하면 만화가 재미없으니 스포일러라는
소리를 듣겠다.

이 과정까지 거의 군더더기 없이 빠른 속도로 전개가 이루어져서 한편의 웰 메이드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비슷한 느낌으로는 스필버그가 만든 뮌헨이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짙은 영상 속에서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이 과연 그렇게 온당한 근거를 가진 것인지 물어간다. 마지막에 비추어지는 무역센터빌딩은
바로 9.11을 상징하는 도구일 것이다.

그런데 마침 이 영화처럼 분노에 찬 피해자가 더 큰 폭력의 무기를 들고 다시 뛰어든다면
거기에 핵물질을 들고 있는 누군가가 동조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마치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처럼 무한대의 파괴가 발생하는 비극이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한반도의 긴장을 가져온 북한의 핵을 놓고 벌어진 큰 논란은 핵무기의 유출이었다. 직접 사용할 경우 미국까지 도달하는 미사일이 개발되지 않았기에 기껏해야 서울 아니면 동경이 대상으로 되겠지만 만약 유출되어 맨하튼 한 가운데서 터진다면 미국으로서도 1000만 인구의 죽음이라는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
우려 대상이었다.
어쨌든 그 덕분에 북한과 미국은 타협으로 가게 되었고 이게 우리가 평화롭게 존재하는 이유가 된다.

이 대목에서 다시 만화로 돌아가 묻건데 인간과 로봇의 차이는 무엇일까?
남이 흘리는 피에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자신의 욕망만 추구하는 존재, 끝없이 타인을 파괴해야만
자신의 정복욕을 채우는 존재 그런 것이 인간이라면 로봇보다 나은 점이 무엇일까?

점점 물신화되는 현대사회의 인간이라는 존재들에게 아주 극단화된 물신인 로봇이 물어가는
질문에 어떤 답변이 나타날 것인가.

궁금하다면 이 만화의 세계로 들어오시기를.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ayonara 2007-04-07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난주에 읽어봤지요. '몬스터'만큼의 충격은 없지만, 나름대로 흥미로운 작품이더라구요. 부디 '20세기 소년'처럼 용두사미가 되지 않기를...
이렇게 훈훈한 리뷰에 댓글이 없이 추천만 난무하다니...
-사마천무댓글방지위원회일동

사마천 2007-04-07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사요나라님. 제가 요즘 워낙 바빠져서 글쓰기가 쉽지 않더군요. 안정되는대로 점점 쓰는 양을 늘려보고 싶습니다. 말씀하신대로 몬스터만큼의 충격은 없습니다 하지만 흥미는 꽤 유발합니다. 감사 ^^
 
뼈의 소리 - 이와아키 히토시 단편집
이와아키 히토시 지음 / 애니북스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가 막 수련을 마치고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시점의 작품이다.

명문대 입시에서 떨어져 자신의 몸을 절벽에서 떨어뜨리려는 주인공에게 당신이 원하는 것은 푸른 바다 속이겠지만 그냥 떨어진다면 절벽 바로 아래 바위에 부딛쳐 자연의 풍광만 망칠 따름이라는 충고가 주어진다.
그러면서 인간이 과연 존엄한 존재인가? 인간을 살린다는 것이 과연 그렇게도 고귀한 일인가를 묻는다.
마치 기생수에서처럼 인간이 지구에서 줄면 지구의 다른 생물들도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하면서.

마구 몸을 던지는 주인공이 또 있다. 남자들에게 몸을 쉽게 주는 여자분이다. 꽤 미인인.
이유가 무엇일까? 글로 다 묘사하기는 민망한데 한번 확인해보시기를.
기생수에서처럼 사람 몸을 마구 찢어 놓는 기생수들이 나타나는 듯 하다.

초능력도 나온다. 유쾌하지 않지만.

이런 글들이 이렇게 저렇게 합쳐지면서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었다.
아직 긴호흡으로 장편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여느 작가와는 다른 자신만의 세계가 만들어져간다.

그리고 우리는 그 다음을 안다. 바로 기생수와 히스토리에.
오늘 대가라는 사람들도 사실은 치열하게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려고 살아갈 때가 있었다.
독특함으로 남아 자신의 이름을 내느냐 아니면 그냥 그렇게 반복하다가 사라지는가
그 차이는 그렇게 크지 않을지 모른다. 누군가의 눈 특히 패배자들에게는 운으로 밖에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은 그 과정이 가장 고통스럽고 또 가장 심도 있는 자기 탐구가 들어있는 기간이다.

그 몸짓을 알고 싶다면 이 작품이 괜찮은 선택이 될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ayonara 2007-04-07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작가의 '칠석의 나라'도 외계인과 초능력에 관해서 다룬 작품이었는데...
'히스토리에'는 정말 굉장하지 않았나요? 전 한달 전쯤 읽었는데, 아직도 감수성(?)이 얼얼(??)한 느낌이더라구요. 딱 내 스타일이었으니... ^_^;

사마천 2007-04-07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중에 갈수록 점점 더 좋은 것이 나온다고 보입니다. 그래도 이 작품에서는 풋풋하게 자기 세계를 만들어가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게 되죠. 그런 정도에서는 의의가 있었습니다.
 
단 하루만 더
미치 앨봄 지음, 이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짧지만 여운이 꽤 긴 책이다.

우리에게 하루가 더 주어지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자신의 무덤에 일을 더 하고 싶어서 아쉬움이 남았다 이런 사람이 있을까?
아니 그 보다는 남에게 무엇으로 기억되는가를 더 원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가장 원초적 기억은 가족이 될 것 같다.
사랑을 주고 받는 사람들이 떠오르지 직장의 상사나 동료가 떠오르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다.

누구나 가장 힘들때 의지하는 마지막 존재는 가족이다.
자살을 기도하는 주인공에 죽은 어머니가 나타난다는 이야기는 처음에는 황당하지만
아니 그럼으로서 더욱 속에 담긴 감정이 자유롭게 끄집어내진다.

이 대목에서 떠 오르던 장면들.
먼저 <메종 드 히미코>. 게이 분들이 모여서 부르던 어머님이 불러주던 노래가 여운있게 다가온다.
단 사흘만 눈을 뜨게 해달라는 헬렌 켈러의 기도문도 나타난다.
다음 <AI> 로봇 소년이 그렇게 갈망하던 어머니에 대한 기대.
그를 위해 단 하루동안 살려낸 어머니의 품 안에서 그렇게 행복하던 소년의 모습이 떠 오른다.
다시 고도원의 <부모님 살아계실 때 해드려야 할 일>이 나타난다.
사놓고 몇개나 나는 채웠지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 책 읽으며 한가지 행동은 추가 되었다.
집에 오자마자 바로 부모님께 전화를 돌리게 되었다.
아쉬움을 남기지 않도록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하자. 특히 나의 가족에게.

그리고 결단코 잊지 말자 당신이 사랑받고 태어난 존재인 것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모 엑세쿠탄스 1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그가 돌아왔다. 소설로.
각종 잡문을 신문에 늘어놓으며 정치판에 기웃거리며 훈수하던 그가 다시 작가로서 돌아왔다.
늘 더 좋은 것은 다음에 남아 있으리 하며 우리에게 여운을 남기던 작가.
80년대 흑백이 분명하고 폭력으로 폭력에 맞설수 밖에 없던 그런 시대에 많은 여린 정신들에게 색다른 지적 충격을 주던 작가. 상업적으로 보면 베스트셀러를 마음대로 만들어내며 부를 거머쥐었고
사회적으로 보면 말 한마디가 활자로 찍혀 수백만명에게 배달되는 그런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다.

그런 그였기에 얼마간 기대를 안고 책을 펼쳐보았다.
하지만 나의 책읽는 속도는 점점 빨라져가고 마지막은 훌훌 넘기다보니 1권이 끝이 나버렸다.
물론 읽는 장소가 지하철이 되어버린 것은 독자의 지나친 무성의 아니냐고 반문한다면 나도 얼마간 찔린다. 그래도 여전히 그 정도의 대접을 받는 것이 적당하다는 결론에는 큰 변화가 없다.

작가가 주인공으로 내세운 인물들은 80년대 운동에 심취한 군상들로서 여기서는 20년 뒤의 모습을 그려내었다. 아주 위악적으로. 즉 악을 덧씌운 모습으로 말이다.

절대적 신념에 빠져 있던 사람들은 또 다른 절대를 찾는다.
이것은 역사가 보여주는 교훈이다. 실제 운동의 이념을 버리고 종교 그것도 적극적 몰입을 요구하는 모 종교에 빠져들어간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는 뒤집어 보면 박정희의 신화가 아직 남아 있는 현상에서도 같은 맥을 찾을 수 있다.
논쟁을 거부하는 숭배라는 점에서.

증권회사에서 그날 그날 돈을 만지다가 사고로 벼랑끝에 몰리는 주인공의 모습이 나타난다. 이념의 추억은 한편 하지만 이제 자본주의의 첨병으로 보이는 금융산업의 종사자의 모양새다. 그런 그를 교묘하게 유도해서 정치자금 세탁소 내지 관리소로 보낸다. 아주 유치한 모습으로.
물론 세상에는 공돈이 필요하다. 인심 좋은 아저씨처럼 남에게 자유롭게 퍼주기 위해서는 원래 돈이 무지 많거나 아니면 돈 나오는 화수분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야 권노갑 처럼 신라호텔에서 수십만원짜리 저녁도 먹고 김대중 3남처럼 최고급 클래스의 항공권을 1천만원 들여 자유롭게 타고 다닐 수 있다.
그 뒷받침은 누가 할까? 바로 후원자들이다. 여기에는 규모가 크고 고전적인 방법인 사업권 획득이 있을 수 있는데 SK의 한국통신 인수 등 각종 이권이 이렇게 결정된다.
반면 최근에 들어와서는 그런 게임이 공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 빠르고 쉬운 방법으로 선택된 것이 바로 증권이다. 김대중 정권의 코스닥 바람 당시 마찬가지로 막대한 공돈이 만들어지고 뿌려졌었다. 이를 놓고 이문열이 씹어댄다면 할말은 없다.

하지만 나도 기억 하나를 떠올려주겠다. 한국 최초 최대의 증권 사기사건이 바로 박정희가 5.16 쿠데타 일으키고 벌인 주식조작이었다는 점을. 그 주도자가 중앙정보부였고 김종필이었다는 점을.
조금 더 나아가면 노태우의 아들도 SK와의 관계를 교묘히 이용해 주식시장에 상장하여 돈을 마련한다.

주인공이 바뀌어도 똑 같이 악이라고 비판해대면 할말이 없는데 반대파의 잘못을 씹어대지만 자기편의 과오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식의 태도를 취한다면 결코 공정하다고 할 수 없다.

돌이켜 보면 이문열의 여러 활동에 그런 모순들이 나타났던 것 같다. 사람의 아들이 당시 종교 분야에 끼친 충격은 대단했다. 모세가 사실은 이집트의 신관이었다는 주장은 꽤 깊은 뿌리를 가지고 지적인 파문을 던졌다.
그런데 이것이 실은 프로이드의 책 한권의 내용을 교묘히 짜집기 한 것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젊은날의 초상을 보면 바로 똑 같은 대목이 나온다. <중간 이층이 있는 집>이라는 체홉의 소설 한권을 번안해놓고 제 것인냥 너스레하고 내놓았다가 개망신 당하는 그런 주인공의 모습이 아마도 이문열 자신은 아니었을까?
<사람의 아들>을 보면서 늘 그런 느낌을 떨치지는 못했고 처음의 신선한 기대가 많이 반감되었다.

이문열의 승리는 계속 이어졌고 꼭 자신이 역사의 심판자인양 행세하는 태도는 여기 저기서 이어졌다.
삼국지에다가 자신의 주장을 마구 붙여서 베스트셀러를 만들었는데 그 안에 담긴 역사와 정치에 대한 주장들은 소설속에서 흘려 듣고 넘어가기에는 참을만 하지만 신문의 논설에 담기는 것은 그냥 그렇다.

내가 너무 이문열에게만 혹독한 것이냐고 반론해주지는 말아달라. 나는 똑 같은 논법으로 한홍구의 역사책은 봐줄만해도 그의 유시민 옹호는 구역질이 난다고 이야기했다.
사람은 놀아야 할 물이 있는데 과거를 들어다보며 반추하는 수준의 행위는 학교와 소설에서는 쓸만하지만 이를 현실에 끌고오고 미래에 대한 주장을 할 때 똑 같이 대접해줄 수는 없다.

이문열의 모습이 점점 중첩되어 가는 존재는 바로 이병주다.
그야 이병주의 지리산(상당수가 남의 글을 카피했던) 보다 영웅시대가 한결 낫지만 어쨌든 결론은 권력의 언저리를 맴돌며 점점 시대와 멀어져가는 잊혀져가는 작가 이병주의 꼴이 바로 마지막은 아닐까 하는 우려를 품게 된다.

괴테의 말처럼 노력하는 인간은 구원받는다. 뒤집어 말하면 노력하지 않는 인간 오늘에 만족하는 인간 이제 충분하다고 하는 그런 인간들이말로 죽은 존재 그 자체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심술 2007-04-13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병주, 97년 대학 도서관에서 관부연락선 찾아 읽고 감탄했던 기억이 나는데 말년은 추했던 모양이군요. 뭘 잘못했지요? 미당 서정주처럼 전두환 찬양에 나섰나요? 지리산도 99년에 읽어 봤는데 저는 관부연락선이 훨씬 좋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몇 달 전 한길사에서 이병주 선집 몇 권 출판했다는 뉴스를 봤는데 게으름 때문에 아직 확인 못 하고 있어요.

사마천 2007-04-14 0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두환 백담사 갈때 대국민성명서 만들어준게 이병주였습니다. 박정희와는 불화했지만 전두환에게는 집권시부터 꽤 대접을 받았죠.

심술 2007-04-17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랬군요. 씁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