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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15 - 로마 세계의 종언 ㅣ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15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7년 2월
평점 :
처음 1권에서는 장안에 퍼지는 소문을 들어서 한번 집어들었고 한니발을 다룬 2권에는 탄복해서 푹 빠져버렸고 3권은 잠시 시들 하지만 캐사르를 다룬 4,5권은 정말 즐겁고 유익하게 읽었다. 그리고는 서서히 로마제국의 쇠망 처럼 시리즈 또한 쇠퇴해갔다. 중간쯤에는 더 이상 사모으던 행위를 그만두게 된채 빌려보며 쓱 넘어가는 정도의 책이 되어버렸다.
그럼 이 시리즈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나와 다른 인간의 발견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로마인 그들은 공익을 위해 자신을 던지고 더 높은 이상을 위해 활동했으며 무엇보다 사람을 조직하는 법을 잘 알았다. 귀족과 평민의 구분은 있었지만 이들이 함께 전장에 나갈 수 있도록 서로 역할을 존중하였기에 아테네를 비롯한 그리스 문명의 몰락의 길을 걷지 않아도 되었다. 패배자를 노예로 삼지 않고 동맹으로 키워나간 것은 유목제국을 건설한 징기스칸의 수법과 비슷하다.
기본적으로 로마인은 전사였다. 긴창으로 대오를 맞추어 방패를 같이하고 팔랑스를 이룬 그들의 모습을 우리는 글레디에이터 등 여러 영화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비슷한 전법은 영화 300이나 알렉산더에 나오는 그리스 군에서도 나타난다. 하지만 로마군은 그들을 모두 격파해내 버렸다.
거기에는 늘 새로운 강한 상대 - 한니발 등 - 를 만나도 굴복하지 않고 창발적인 방법을 고안해내 마지막 전투를 이겨낼 수 있는 로마인만의 전쟁기술이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전쟁의 상대를 갈리아의 야만인으로 바꾼 캐사르의 활약, 또 로마인들끼리의 내전 모두 재미있는 읽을 거리였고 인생 나아가 기업간의 전쟁에서 잘 응용될 수 있는 교훈을 주는 내용들이었다.
하지만 대제국은 결코 무력만으로 건설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종류의 인간이 공존하기 위해서는 상호 인정할 수 있는 규칙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법인데 로마의 법은 무수한 나라들의 기초가 되고 후대에 가면 나폴레옹이 모방해서 자신의 법전을 만들어 제국의 기초를 삼았다.
이 규칙과 관련된 내용도 도움이 많이 되었다.
조금 시야를 넓히면 사회갈등으로 갈 수 있다. 실패한 개혁가로 꼽히는 그라쿠스 형제들의 애잔한 죽음은 그들이 펼쳤던 높은 이상과 함께 영원히 남는다. 나도 잘 몰랐던 그라쿠스의 개혁이론과 파벌정치 나중의 캐사르의 등장까지 일련의 흐름이 로마인 시리즈에서 잘 정리되었다.
그 점은 지금까지 애매했던 역사책들과는 다르게 장대한 시대를 잘 다루어내고 서로를 연결한 작가의 기여에 힘 입은 바 크다.
그러다가 드디어 끝에 도달했다. 오랫동안 한국에 로마인 현상을 일으키던 이 시리즈가 무려 10년 이상의 세월을 지나 대장정의 마무리에 도달하는 것이다. 로마의 몰락 그 위에 잔잔하게 흐르는 애수를 담은채 시오노 나나미는 붓을 놓아간다.
마지막에 달해서 다시 돌아보면서 쇠락기의 로마인에게는 무엇이 빠져버렸을까 물어본다.
우선 상무정신이 없다. 군대 가서 고생하는 일은 아예 야만인들에게 맡겨버린지 오래되었다. 로마인들은 그저 세계의 식민지에서 부를 누리고 전차경주와 같은 향락을 즐기는 그런 생활에 푹 빠져버렸다. 아마 글레디에이터의 시대부터 벌써 전장의 싸움은 하층계급 아니면 이민족이 담당하고 로마인은 기껏해야 검투사의 싸움에서 피냄새를 맡으며 향수를 느끼는 그런 구조가 되어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공공정신이 없다. 어디에도 모두를 위해 나서보겠다는 영웅이 다시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냥 무력을 가진 장군들 특히 야만인 출신들이 힘으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었다가 그 힘이 떨어지면 사라질 뿐이다. 대중을 설득하기 위한 명쾌한 논리 가슴을 움직이는 장엄한 연설이 나타나지는 않는다.
더해서 여러 종교를 폭 넓게 관용하던 사회구조도 사라져간다. 종교끼리 갈라지고 서로를 적대하면서 저자가 그렇게 혐오하던 일신교의 병폐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카톨릭, 아리우스 다시 또 다른 분파로 나뉘며 서로를 죽인다. 아울러 우상을 파괴하기 시작한다. 이곳저곳에서 마구잡이로 파괴하면서 아름다운 그리스 로마 시절의 조각품들이 사라져간다.
그리고 제국은 가라앉는다. 서서히 죽어갔는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하나의 추억으로 남게 되고 스키피오가 카르타고에서 흘린 것 같은 눈물이 땅에 떨어지고 시인은 노래한다. 그 노래가 한 번에 끝나지 않기에 때로는 기번이 수십년의 세월을 바치게 만들었고 이제 시오노 나나미가 오랜 글쓰기에 지친 팔을 내려 놓는다.
하지만 노래가 만들어낸 감동은 결코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오랜 세월을 함께 한 작가의 노고에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한다. 정말 우리 각자가 이렇게 훌륭한 라이프웍, 인생의 골을 가져갈 수 있을까 스스로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