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사색 - 한국인의 인간관계에 대하여
강준만 지음 / 개마고원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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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간사색

 

한국인에 대한 다양한 관심을 보였던 준만 교수가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중심으로 새로운 작품을 하나 만들었다. 사랑, 배신 등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최근 한국사회에서 보여지는 여러 모습들이 담겨져 있다. 사랑도 그냥 사랑이 아니라 키스 나아가 불륜까지 포함시켰는데 그 소재로 사용한 이야기들이 꽤 재미있었다. 박진영, 이효리의 노래를 별로 직접 듣지 않았던 나에게 아 이런 거였구나 하는 충격파를 주었다.

 

그럼 한국인의 고유한 특성은 무엇일까 같이 한번 찾아보자. 이어지는 글은 강교수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내 생각을 덧 붙여 만들어낸 것이다.

 

먼저 술먹고 노래하는 것을 알아보자. 거리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노래방들의 존재는 멀리 중국의 역사기록 삼국지에 나온 한국인들은 음주가무를 즐긴다는 기록의 맥락과 일치하는 것 같다.

한편에서 이렇게 확 트인 끼 발산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꾹 참고 있다가 속병으로 쌓이는 모습이 있다. 오죽하면 미국 의사들이 한국 사람들 진단하면서 화병이라는 신조어를 자신들의 임상 기록물의 리스트에 올려놓았을까?

겉과 속이 다른 문화는 체면의 존중에 다른 부담으로 호칭의 문제를 만들어 내고 겉으로 학벌을 비롯한 각종 벌 따지기가 만들어진다.

 

의리 또한 문제다. 그냥 의리 있는 사람 하면 다 좋게 보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소수의 집단만 의리로 똘똘 뭉쳐서 자신들만의 사익을 추구한다면 그건 문제가 될 것이다. 전두환 노태우의 하나회가 보여준 의리라던가 YS,DJ가 따라오던 측근들에 보여준 의리가 얼마나 독이 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런 의리는 결코 아주 잘난 권력자들만 행사하는 것이 아니다. 내부고발자 중 가장 대표인 이문옥 선생이 끝까지 복직되지 못한 것도 감사원이라는 테두리에서 서로 서로를 봐주는 의리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리들이 과연 그렇게 훌륭한가? 멀리 임진왜란에 가서 봐도 서로 의리를 지키는 당파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만나고 아서도 임금의 눈을 흐리는 거짓 보고를 올리고 다시 이를 감싸게 한다.

 

속도 또한 굉장히 강조되는 특성이다. 동남아 노동자들이 와서 가장 압박 받는 것이 빨리빨리라는 단어라고 한다. 그런데 이건 한국사회의 오래전부터 내려온 고유의 특성은 아닌 것 같다. 왜냐면 계속 그렇게 변화가 빨랐다면 조선왕조가 임진란을 겪고도 존속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이 현상은 일본에 의해 급하게 근대화가 추진되고 다시 해방 이후 박정희식 리더십에 의해 사회가 변화하면서 우리 스스로에게 깊이 각인 된 것 아닐까 생각해본다.

 

신념 쪽도 올바르게 유도되지 못하면 문제가 된다. 성찰 없는 신념은 일종의 재앙이다. 롬멜이 수하 장교들을 분류하면서 멍청하고 부지런한 쪽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고 했는데 노무현 보면 딱 맞는 지적이 된다. 그 정도야 곧 끝나니 잠시 참아둔다고 하는데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사이비 종교들이다. 한국의 종교성은 대단해서 세계 최대의 교회를 만들어낸다. 외국인들도 그 현상에 놀라움을 표시하지만 다음 문제는 그 권력이 세습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한국의 대표 교회들이 연달아 세습에 성공했는데 순복음 교회는 기업을 만들어 다시 이를 일가의 사유로 넘기다 보니 기존의 일부 교인들과 마찰이 생겼다. 압구정의 광림교회는 교회 자체를 아들에게 넘겼고 소망교회는 이 보다는 낫지만 분당에 수십억을 투자해 분점을 내서 아들에게 물려준다.

 

종교쪽만이 문제일까? 아니다. 최근에 보면 아들을 국회의원에 당선시킨 늙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기뻐하는 모습이 나온다. 바로 김대중 부부와 아들이다. 너무 이쪽만 탓하지는 마라 반대편의 YS도 여러 차례 뛰어난 재주를 가진 자신과 닮은 아드님 김현철을 국회의원으로 만들려다 마찰이 많았다. 조금 더 시야를 넓혀보자 휴전선 너머에 가면 김일성의 아드님이 떳떳히 세계 공산주의 운동사에서 유래가 없는 부자세습으로 자리에 앉아있다.

요는 좌우, 남북, 종교의 유무를 떠나서 한국인들은 아들에 대해 물려주려는 강력한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추종자들의 굳센 신념이다. 이는 최근에도 노빠들과 말로 붙어보면서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이들이 과연 80년대 독재에 저항해서 치열하게 자신을 불태우던 존재였던가 아니면 또 하나의 종교적 신념에 빠져버린 사이비 집단인가 다시 나 자신에게 물어보게 되었다.

 

이렇게 신념을 가지고 어느 특정 지도자에 뿍 빠졌던 사람들에게도 언젠가 회의가 온다. 이상은 결코 영원히 현실을 배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회의의 순간 지도자를 다시 보면 배반의 모습이 나타난다. 하나님께 재물을 바치라고 강요하던 목사님들이 알고 보니 아들을 유학보내고 교회까지 키우는 축재의 도사였고 학생들에게 독재에 저항하라고 그렇게 소리 높여 외치면서 자신들의 아들은 고이 온상에 놓았다가 권력만 물려주고 싶어한다. 이런 지도자들이 존경을 받을 수 있을까? 노무현은 또 어떤가? 강준만노무현이 오만에 빠져서 분당을 하고 갖은 쇼를 해나갈 때 굳게 경계의 목소리를 키웠다. 당시 유시민은 강준만과 자신은 다른 류이고 강준만이 언제부터인가 낡아버렸다고 야유의 목소리를 던지며 자신은 국회로 당당히 걸어들어 갔다. 지금 보면 누가 더 가치를 유지하는 존재가 되었나?

우리당 안에서도 왕따가 되어 버린 유시민 보다 이렇게 귀한 책 하나 더 내주면서 가치를 유지 하는 강준만이 백배 낫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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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건축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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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란 무엇일까? 인간이 살기위해 필요한 3대 요소가 의식주라고 하는데 그 중 특히 주에 해당하는 부분이 건축이 담당하는 것 같다. 인간은 그리 강하지는 못하지만 생각하는 능력이 뛰어난 존재이기 때문에 먼저 자신의 안전을 위해 동굴을 찾았고 점차 움집 등으로 자신의 주거를 안정화시켜 왔다.

 

건축의 기본 목적은 공간의 확보일 것이다. 안전한 공간 특히 동물과 같은 외부의 침입이나 기후의 변화에 대해서 생물적으로 자기 보존을 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 목적이 될 것이다. 특히 가족의 거주 목적을 위해서 몇 가지 유형으로 공간을 나누어 확보해나갔다.

목적을 중심으로 조금 시야를 넓히면 신을 위한 공간인 신전, 죽은자를 경배하기 위한 무덤, 여러 사람들의 교류를 위한 회당 등이 가능하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다양한 건축물들을 보면 인간이 추구한 두 가지 방향이 나타난다. 하나는 예술로서 특히 심미안을 만족시키기 위한 방향이 있고 다른 하나는 공학적 특히 안정성과 효율성을 만족시키기 위한 방향이 있게 된다. 건축가라고 자신을 자부하는 사람들이라면 분명 자신의 작품이 오래오래 남아 이름을 잘 떨치기를 바랄 것이다. 한번 만들어진 건축물을 부수려면 수십년이 걸리기 때문이니 말이다. 참 한국이라면 예외적으로 단 20년만 지나도 아파트를 부수게 한다. 아마 많은 건축 관련 관료들이 삼풍이나 와우, 성수대교에 놀라서 그런 정책을 수립했는지 모르겠다.

 

건축물 자체가 오래 남아 이름을 떨치려면 어떠한 조건을 갖추어야 할까? 우선 장대함이 될 수 있다. 노트르담, 비잔틴, 쾰른 등에 남아 있는 대성당이나 왕들의 성들 그리고 피라미드 등이 주는 장대함은 인간이 이렇게 커다란 존재구나 하는 자부심을 갖게 한다. 이는 커다란 폭포와 대양을 만나며 자연에 대해 경외를 갖는 것과는 상이한 감정이다.

그 장대함을 만들어낸 것은 과연 소수의 노력 만일까? 아니다. 성당을 보면 외부의 작은 조형물이나 안을 장식한 스테인글라스와 같은 유리 장식 심지어 벽돌 하나까지도 많은 공이 들어가 있다. 만든 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이 노동을 한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신의 의지에 따라 신을 위한 공간을 만든다고 자부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덕분에 우리는 곳곳에서 위대한 건축물에 감탄하지만 꼭 당대에 그것이 건축주들에게 행복을 준 것만은 아니라고 보인다. 베드로 성당을 거창하게 만들어 종교의 권위를 다시 살려보겠다던 교황의 의지는 결국 면죄부까지 남발하며 자금확보에 나서는 추태를 보이게 했다가 독일을 중심으로 군주들의 반발을 사게 된다. 그 결과는 종교전쟁이 되어버린다. 타지마할에서 느끼는 왕비에 대한 애틋한 사랑의 마음은 지금도 수많은 관광객을 인도로 끌어들이지만 왕 자신은 유폐되어 죽어야만 했다. 가깝게 디즈니랜드의 모델이 된 노이반슈타인 성은 어떠한가? 왕국을 위태롭게 한 결과 왕은 의문의 죽음으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런 예들이 건축의 질과 인간의 삶의 질이 꼭 같이 가지 못한다는 안타까움이라면 여기 책에서 보통이 거론한 몇가지 사례도 비슷한 논리적 밑받침이 되어주는 것 같다. 거장 코르뷔지에의 작품들이 실 거주자에게는 무척이나 어려움을 주었는데 어떤 이는 소송을 걸고 또 어떤 이는 자기 식대로 변형을 가하면서 살고 있다고 한다. 하나 더 붙여 준다면 라이트의 낙수장도 매한가지였다고 들었다. 도대체 집 안에 물을 들여 놓는다는 것에 대해 거주자는 매우 놀랐고 갈등 또한 작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문제는 왜 나타날까? 기본적으로 창조란 기존의 것의 파괴를 의미해나간다. 그 결과 우선 놀라움을 줄 수 밖에 없고 더해서 창조된 질서는 아직 불안정해서 기술적으로 완벽히 그 안에 거주해야 하는 사람들의 안정성을 충분히 담보하기 어렵다는 문제를 준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예술을 추구하는 많은 거장들은 꾸준히 기술이 새로이 허용하는 한 자기 식의 실험을 할 수 밖에 없다. 특히 고전적 재료인 나무와 돌, 콘크리트를 넘어서 근대에 이르러 철과 유리가 도입되자 자유로움의 추구는 매우 다양해졌다. 스페인에서는 가우디에서 나타난 실험도 있지만 미스 반 로데에 의한 심플하면서도 혁신적인 유리에 더 많은 역할을 부여한 실험도 새로운 전형이 되었고 보다 근대에 이르러서는 건축물의 정방향 자체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최근 한국에 나타난 SK유의 건물이나 삼성동 코엑스 앞에 놓인 현대산업개발 본사의 모습이 그런 예들이다. 처음 독일 하노버에 갔을 때 전시장의 건축물 하나 하나가 다 지상으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하는 것에 무척 놀랐다.

사실 고딕 성당의 주변이 수 많은 기둥과 일명 플라잉 버트리스로 채워져야 하는 것은 공학적 한계에 따른 필연성이었다. 이쁘게 보이는 것 같지만 무척 번거롭고 많은 비용이 드는 작업이었다. 이런 한계를 덜어내주는 기술의 발달 특히 품질 좋은 철의 사용은 건축가에게는 큰 매력이었다.

그렇게 한쪽에서 자유로움이 추구된다면 다른 한편에서는 늘 비용 대비 효율이라는 문제를 들먹인다. 그리고 왜 꼭 예술이 새로움으로 나타나야 하는지를 물어간다. 과거에 이미 훌륭한 전형이 있지 않은가 하며 그리스의 고전작품을 거론한다. 마치 자신들의 삶이 그와 비슷하다고 자부하는 태도가 자신을 둘러싼 건축물에 의해 담보되는 양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어느 시대에는 현실을 강조하는 주장이 강했고 다른 시대에는 이상을 강조하는 주장이 강했다는 점을 보통은 잘 드러내준다. 그리고 속에 담긴 위선까지도 잘.

 

그럼 도대체 건축을 아는 것은 우리에게 어떠한 도움을 줄까? 여행의 기술에서 꼼꼼히 보통이 알려주듯이 무엇을 느껴서 알기 위해서는 사전에 준비된 또 다른 앎이 필요하다. 여행의 상당 부분은 사람들의 이해가 차지하게 된다. 이를 뒤집어 보면 사람을 둘러싼 공간의 이해가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사무실,상가 그리고 종교적 건축물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 속의 사람들에 대한 이해에 적지 않은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절이라는 공간은 불교라는 종교에 대한 이해 없이 제대로 소화될 수 없지만 그 반대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그래서 산사를 다룬 <가보고 싶은 곳 머물고 싶은 곳>이라는 김봉열 교수님의 책을 들추어보겠다는 의욕이 생긴다. 또 성당을 제대로 알기 위해 데이비드 멕컬레이의 작품을 찾게 된다.

조금 더 욕심을 내본다면 건물과 건물이 함께 만들어내는 도시라는 공간까지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럼 다시 책으로 돌아가서 보통의 작품 중에서 이 책은 어느 정도의 위치를 차지할까? 나의 답은 더 많은 사례와 더 많은 숙려가 있어야 <불안>이나 <여행의 기술>의 수준에 오르지 않을까 한다는 것이다. 대상이 되는 건축물이 일부로 한정되었고 특히 동양의 주요 건축물과 그 배경에는 아예 관심이 미치지도 못해서 아쉬움을 주었다. 그래도 아주 실망스럽다고 투덜대는 것은 아니다. 덕분에 나도 이렇게 긴 리뷰를 쓰면서 평소 내가 생각했던 건축에 대한 잡다한 사항을 함께 끄집어내게 만들었으니까 말이다.

 

참 사는 것을 고민하는 분들에게는 아마 여행의 기술(페이퍼 백이긴 하지만)으로도 충분히 값어치는 할 것 아니냐고 조언은 할 수 있겠다. 나는 이미 하나 주문에 3권을 덤으로 받는 이벤트에 주문을 눌렀고 <불안> 한권 만으로도 지불한 대금을 훨씬 넘어서는 기대 충족이 되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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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onara 2007-05-27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가 생각납니다.
워낙 저와는 코드가 안맞는 작가라 멀리했는데... 이 책은 한 번... 음... -ㅗ-

사마천 2007-05-27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통의 다른 책보다 이 책이 낫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만... 저도 사랑이 시리즈 쪽은 코드가 별로 않맞더군요. 하지만 불안에 놀랐고 여행의 기술에서는 감탄했습니다 ^^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도널드 케이건 지음, 허승일.박재욱 옮김 / 까치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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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아놀드 토인비의 추천에 의해서부터 명성을 익히 들었던 만큼 기대되는 독서였다. 하지만 이미 수차례 투키디데스의 원작에 시도했다가 쓰디 쓴 맛을 보고 물러나야만 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이번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도널드 케이건이라는 저자의 명성과 그의 전작인 전쟁에 대한 책을 재미있게 보았기에 어느 정도는 괜찮겠지 하고 생각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한번 잡고 나자 쉽게 책을 손에서 떼기가 어려웠다. 내용 자체가 전쟁 관련 사항이라 드라마를 보듯이 긴박하게 흘러가는데 그 속에서 인간 하나의 결정이 바로 승패와 연관되어 버리기 때문에 그야 말로 흥미진진했다. 이는 최근에 나온 연개소문 등 각종 드라마의 흥행세와 견주어볼 만 할 것이다.

 

전쟁의 중간 중간은 외교에 대한 대목이다. 전쟁이 일종의 정치의 연장이라고 하는 클라우제비츠의 통찰의 기초는 바로 여기 그리스에서 잘 나타나는 것 같았다.

페르시아 전쟁을 승리로 이끈 그리스의 영광되고 단합된 모습은 가깝게는 최근에 나온 <300>이라는 영화에서 잘 표현되었고 멀리는 플루타크 영웅전의 여러 영웅들의 모습에서 잘 나타난다. 달이 차면 기운다고 할까 이방인의 폭압에 맞서 자유를 찾는다는 신성한 명분은 점점 동맹국들에게 과도한 분담금으로 부과되고 이를 징수하기 위해 강압이 점점 심해지게 된다. 세금이 국가의 가장 중요한 일이고 세리와 군인이 함께 가는 모습은 어느 제국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성경에 자주 나오는 유태인의 저항을 비롯해서 역사의 모든 대목이 한가지로 증언해주는 바다. 어쨌든 신성한 공납금으로 만들어진 파르테논 신전의 위용은 지금도 흔적을 남겨서 찬란한 영광의 시대를 증언하지만 이를 뒷받침 하는 여러 나라들의 신민들의 불만은 점점 커져만 간다.

후일에도 교황이 로마의 대성당을 만들기 위해 투입된 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전유럽에서 재화를 긁어 가다가 종교전쟁을 불러일으키듯이 이 때도 불만은 저항을 낳고 결국은 대전쟁을 촉발시킨다.

그 과정은 아테네적인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와 스파르타적인 근엄과 용기라는 가치 등이 서로 냉정히 대립되고 이 두 별을 중심으로 여러 나라들이 합종연횡하면서 대전쟁이 진행되게 된다.

 

나라를 뛰어 넘어 배신을 밥먹듯이 하는 알키비아데스의 모습은 교묘한 줄타기로 보인다. 아테네에서 장군으로 일하다가 갑자기 사형선고를 눈치채고 적국 스파르타로 도망가고 거기에서 다시 왕의 부인을 꼬셔내다가 노여움을 사서 도망쳐나오더니 이제는 페르시아로 간다. 가서는 다시 동맹관계를 저울질 하며 자신의 주가만 잔뜩 높여서 고국으로 돌아간다. 한편의 대 로망이 나오는 모습인데 아마 소크라테스하고 친구였던가? 그가 소크라테스를 유혹하는데 (남색이라는 관점에서) 의연히 뿌리쳤다는 토로가 향연에 나오던가 이제 가물거리기는 하다.

 

하여간 인물도 많고 전쟁도 많고 그들이 뿌려 놓은 연설문 또한 땅에 흘린 피만큼 많을 것이다. 역사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아마 인간의 본성이 쉽게 변하지 못하기 때문 일 것이다. 현명함도 어리석음도 같이 꾸준히 이어지는데 이는 오늘도 매한가지다. 그리스의 민회가 보여준 여러 어리석음을 비웃지만 막상 오늘 우리의 정당 구조를 보면 별로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 선동가 대통령에 몇 년 가지 못하는 정당, 아들 당선되었다고 좋아하는 전임 대통령 그리고 또 하나의 전임 대통령은 왜 내 아들은 고향에서 당선되지 못할까 투덜대고.

 

로마인 이야기의 대단원이 로마제국의 쇠망함을 보이면서 우리에게 교훈을 주듯이 이 책 펠레폰네소스 전쟁사 또한 아테네라는 제국 크게는 그리스라는 문명이 왜 어떻게 몰락하게 되었는지를 아주 잘 설득력 있게 우리 마음속에 일깨워준다.

이 시대가 끝나게 되면서 바로 알렉산더의 마케도니아가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는 세계는 민회와 자유로운 중장보병 그리고 선출직 지도자에서 대왕과 정복 그리고 지배의 시대로 넘어간다. 플루타크 영웅전의 그리스 영웅들의 시대는 여기서 끝이 나게 된다.

 

후일 몰락한 아테네는 여전히 문화를 남겨 로마의 귀족들이 공부하러 오게 되는 장소가 되고 요리조리 외교술을 발휘하다가 캐사르에게 혼줄이 날 뻔도 했다. 하지만 오랜 조상들에 의해 용서는 받는다.

몰락해도 이름은 남은 그들이라 이제 쓸쓸함 속에서 종장을 보게 되지만 그래도 우리는 왜 그들이 정상에서 바닥까지 단숨에 내려오게 되었을까 하는 궁금함을 감추기 어려웠다.

아마 그 답은 정말 이 책이 잘 만들어주는 것 같다.

 

참고로 성경을 한글로 읽기 어렵다는 분들에게 <리더스 다이제스트> 판을 추천해왔는데 이 책 또한 투키디데스의 저작에 대한 훌륭한 대안이 될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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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5-13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기는군요. 인문/사회과학에 관심이 있으면서 역사는 예외였는데, 그리스 로마사는 관심이 많아요. 좋은 책이군요. 보관함에 넣습니다.

사마천 2007-05-14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스사의 핵심이 되는 이야기죠. 소크라테스가 병사로 등장하는... 결코 실망하지 않을 책입니다.

겨울호랑이 2016-07-09 08:50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사마천님 추천하신 케이건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처음부터 흥미진진하네요. 2500년 전 전쟁을 눈 앞에서 보는 것처럼 서술되어 저절로 몰입되네요^^ 좋은 책 추천에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sayonara 2007-05-15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가 영국인인가요? ('서른살 경제학' 리뷰에서 언급하셨던) 엘리트의 부재가 국가의 몰락으로 이어진다는 얘기는 마치 19~20c의 영국의 사례가 아닌가 싶어서... -ㅗ-;

사마천 2007-05-16 0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투키디데스의 저작의 위대함은 그리스 민주주의의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보여준다는 점이라고 합니다. 살라미스 해전의 화려한 성과는 많은 평민들이 전투에 참여하였는데 이때 역할은 수병이었습니다. 낮게는 노잡이까지. 이후 시민권이 대폭 확대되고 아테네는 해상을 중심으로 대제국을 건설하죠. 반면 전쟁 중간에 보이는 것은 선동에 의한 무모함입니다. 이는 히틀러, 노무현 등 데몬 중심의 정치가들에게 잘 나타나는데 당시 아테네에서도 이게 횡횡했습니다.
스파르타쪽은 어떨까요? 작가가 깊게 다루지는 않지만 스파르타의 강점(300에 보이는 용기)과 함께 약점도 곳곳에 드러내줍니다.

perky 2008-08-18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펠레폰네소스 전쟁사. 관련 책들을 서치하다가 이글을 읽게 되었어요. 이 책 꼭 읽어보고 싶어요. 보관함에 일단 넣어둡니다. ^^

사마천 2008-08-18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투키디데스의 원작이 여러번 시도하다가 마치기 어려웠는데 반면 이 책은 현대적 해석이 호기심을 잘 충족시켜나가고 있어서 독서를 마치도록 잘 도와주었습니다.

사마천 2016-07-10 12: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재미있고 유익한 독서가 되시기를 성원드립니다. 정말 대단한 책입니다. 덕분에 저도 다시 이 책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관심 늘 감사드립니다 ^^
 
서른살 경제학 - 30대를 위한 생존 경제학 강의
유병률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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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워낙 인기가 많은 책이었다. 쉽게 쓰여졌고 사람들이 공감하는 내용이 잘 담겨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 살펴보았는데 쉽게 만들어졌다는 부분은 동의할 수 있었지만 전반적인 내용은 한 부분 빼놓고는 그렇게 기대만큼 수준이 높거나 참신하다는 생각을 가지기 어려웠다. 그 한 부분은 바로 재벌의 지배구조 관련 분석이었다.

SK가 외국자본에 공격당하는지 삼성의 공정위 조사가 어떠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을지 LG는 지주회사로 가게 되었는데 다른 기업들은 쉽게 못 따라가는지 등을 깔끔하게 다루었고 설명 또한 쉬운 편이었다.

하지만 백프로 동의하기는 어려운 대목들이 있었다. 나는 LG의 경우 기업의 지배구조가 분산형이고 의사결정 구조는 합의형이라고 생각한다. 두개의 가문간의 연합은 서로를 조심스럽게 대우하게 되고 외형적으로는 人和라는 가치를 내세우게 된다. 이는 큰 목소리 안나고 무던하게 산다는 점에서는 맞지만 도전적, 창의적이라는 가치를 포함해내기는 어렵게 된다. 더불어 오너 일가의 경영에 대한 골고루 참여는 결과적으로 직원들의 경영자에 대한 꿈을 줄이게 된다. 삼성에서 진대제,황영기 등 스타 CEO가 연달아 나오고 사회적으로 큰 몫을 할 수 있는 반면 LG 출신으로 그런 사람을 찾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 또한 지배구조와 밀접히 연관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기업이 사람이고 그들의 생각과 일하는 방식이 기업문화라고 하면 삼성과 LG의 장단점이 구분된다. 그 결과는 LG에게는 억울하지만 2등 문화로 이어지게 된다고 생각된다. 많은 사람들이 이 대목에서 쉽게 동의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외향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그렇다.

애니콜을 고르실래요? SK텔레콤을 고르실래요? 아니면 LG브랜드를 원하십니까? 물어서 쉽게 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어떤 지배구조가 선진형이라고 쉽게 단정하기는 어렵다. 최근 끝낸 독서가 <펠레폰네소스 전쟁사>였는데 그 마지막이 민주정의 아테네가 스파르타에 참패하게 되는데 마지막 패인은 승전한 해군사령관 8명을 민회에서 처형해버린 덕분에 해군이 최종적으로 몰락한 것이었다. 아마 소크라테스의 사형도 같이 기억할만하지 않을까?

 

하여간 그런 부분에서 이 책은 결론을 쉽게 낸다. 쉽게 쓰여졌다는 점이 독자에게 편하게 다가간다는 장점을 주지만 결론 조차 쉽게 낸다는 것은 자칫 오독의 소지가 있게 된다.

그런 예로 하나만 더 들자면 레이건 시절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놓고 별 성과가 없다고 지적한 부분이 있다. 세금을 깍아서 경기를 활성화시키겠다는 일견 사기성 짙은 정책이지만 그와 함께 항공,통신 등 각종 서비스 부문의 경쟁을 촉발시켜 오늘날처럼 저가로 인프라를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씨티은행과 같은 거대한 금융 공룡을 만들어 전세계를 공격하게 만든 것이 다 레이건의 정책에 기초함이었다. 비록 그 공룡에 쉽게 밟히지 말자고 한미FTA반대를 앞에 내세웠지만 미국의 입장에서 레이건의 공로를 그냥 무시할 수는 없다. 싫어하더라도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원칙에 따라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이 책의 경우는 그냥 별 성과 없었다 이런식의 한마디가 툭 던져질 따름이다.

 

덕분에 결론적으로 보면 쉽게 읽히는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니니 자기 생각을 반드시 거쳐서 소화해내도록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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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으로 산다는 것 - 사장이 차마 말하지 못한
서광원 지음 / 흐름출판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사장으로 산다는 것은

 

사장, 어떤 이들 에게는 올라가야 할 목표가 되고 어떤 이들에게는 한 없이 어렵게 느끼는 존재가 된다. 큰 조직이라면 회사 생활을 오래하더라도 사장과 가까이 하는 시간조차 가져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사장을 아주 가까이서 보면 어떤 느낌이들까 질문을 가져본다. 아마 그 답 중에 쉬운 것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라는 영화가 어느 정도 줄 수 있을 것이다.

주변에 매우 혹독할 수 밖에 없는 존재. 하지만 집에서는 어렵게 코너에 몰려가고 다시 회사의 오너와는 정치적 갈등 때문에 승부를 벌려야 하는 존재. 그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가장 가까운 부하에 대한 약속도 어겨야 하는 그런 악마 같은 존재가 바로 사장이다.

헤겔이 이야기 한 시종의 눈에 영웅이 없다는 말 처럼 가까이서 본 사장은 멀리서 본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내 주변에도 가까이 지내던 동료가 사장이 된 회사가 있다. 수백명 규모지만 조직을 거느리고 있는 그의 모습은 많은 부러움을 가지게 만든다. 사장단 모임에 나가고 강연도 치르고 동문회의 구애도 받는 그런 모습은 누구에게나 아름답게 보인다.

하지만 반대로 그의 고충은 숨어 있다. 급여날짜가 다가오는데 매출처로부터 수금이 안된다거나 아니면 밖에서 벌인 프로젝트의 성과가 안 좋아 자칫하면 막대한 클레임을 물게 된다거나 하는 고충은 쉽게 끊이지 않는다.

이런 환경에서 사장은 양면을 갖춘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다. 마키아벨리가 말한 것처럼 사자의 용기와 여우의 간지 둘을 적절히 겸하지 않으면 리더로서 성공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그 친구는 사람이 변했다는 말을 듣는다. 전화해도 쉽게 받지 않고 약속잡으려면 한참 걸리고 그런 불평등해지는 인간관계 덕분에 불만이 쌓이게 된다. 하지만 이는 조직의 생리를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다. 조직의 위로 올라갈수록 연봉이 올라가고 책임 또한 따라가기 때문에 그 사람의 시간 당 가치가 달라지게 마련이다. 서로 불균등한 시간이기 때문에 상대방은 시간 내주기가 무척 아까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더해서 인간성이 변해간다. 숫자에 민감하고 비즈니스는 냉정한 것이다라는 말을 바탕에 깔고 이야기하게 된다.

 

바로 그런 사장들을 가깝게 보면서 그들이 겉으로는 못하는 말을 잘 모은 책이 바로 광원의 이 작품이다. 통상적인 사장들의 책이 화려함을 잔뜩 담은 홍보용 도서인 데 비해서 이 책은 솔직히 사장의 고충들을 잘 모아놓았다. 그리고 아마 이 쪽이 훨씬 진실을 담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는 판단으로 보인다.

 

회사가 어려울 때 돈 구하라 밖을 다니다 밤에 들어오니 아무도 없을 때 느끼는 비애감. 고충이 있어도 겉으로 드러내기 어려웠더니 나중에는 회사가 정말로 그렇게 어려웠냐고 되 묻는 철부지 사원들. 마치 월급이 수도꼭지 틀면 나오는 것처럼 행동하는 사원들을 보면서 느끼는 아픔 등. 이야기는 쉬지 않고 이어진다.

 

그런 사장의 자리는 과연 도전해 볼만 할까? 답은 충분히 자신이 있다면 시도해볼만큼 매력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위험도 알아야 한다. 전쟁에 나간 장수는 같이 하는 부하들의 목숨을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게 된다. 해보았는데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는 멍청하고 부지런한 타입이라면 절대로 장수로 세우면 안 된다.

동료의 목숨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존재 그런 정체성을 원하는 마음가짐으로 사장의 꿈에 도전해야 할 것이다.

 

읽어서 유쾌한 책이라고 자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가장 큰 사무실의 자리를 차지하고 무슨 일 하는지 주변에 보이지는 않는 그런 중년의 아저씨의 속에서 어떤 생각이 움직이는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은 꽤 유용한 가이드가 될 수 있다. , 크게 갖지 않으면 아예 가보지도 못하는 그런 것이 꿈이라면 사장의 꿈에 도전하는 많은 이들에게 매우 유용한 지침이 될 수 있는 책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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