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망력 - 사람을 이끄는 힘
도몬 후유지 지음, 이규원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인망력

조직은 사람으로 구성된 탑이기 때문에 쉽게 만들기도 어렵고 유지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히데요시가 성 쌓기 노역에서 인부들을 활용한 방법은 꽤 유명하고 재미있는 일화다.
우왕좌왕 헤메는 인부들에게 일의 목적을 이해시켜서 성을 보수하는 일은 군주를 위함 이전에 자신의 가족을 지키는 것이라고 동기 부여 시켰다. 다음 자율적으로 조를 짜게 만들어서 조직을 탄탄히 구성하게 되었다. 내 동네 출신, 나의 지인 등과 함께 일하면서 농땡이 치기 어렵게 된다. 참 똑 같은 기법을 쓰는 이야기가 미국의 철강 기업 뉴코에서 노동자들을 조직할 때 나온다.
마지막 단계는 경쟁이었다. 적당한 당근과 함께 공명심이 자극되면서 성곽의 무너진 벽은 하루 밤 만에 보수되었다.

이렇게 사람을 잘 부리려면 사람을 알아야 한다. 사람은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더욱 힘써 일하기 때문이다.

지식과 깨달음은 서로 다르다.
많이 읽었다고 깨달음이 같은 속도로 키워지는 것은 아니다. 지식은 학력 이른바 가방 끈에 의해 같이 늘어간다. 책장의 크기나 학력증명서가 그 증거가 된다.
반면 사람을 다루는 능력은 지식과 꼭 같이 가지는 않는데 이 분야야 말로 대표적인 꺠달음의 영역이라 지식과 별개다.

덕분에 역사의 인물들 중에 낮은 학력에도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한 사람들이 존재하는데 링컨이나 히틀러, 징기스칸, 유방 등이 대표적인 사람들이다. 여기 책에서 강조하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그런 부류의 사람이다.
이들 낮은 학력으로 높이 올라간 사람들에게는 지식은 상대적으로 적어도 깨달음을 얻는 능력이 훨씬 뛰어났다.

오히려 자신의 낮은 지위 덕분에 과거의 가치관에 연연하지 않아서 기존 질서를 파괴하는데 용이했고 바닥까지 겪어본 덕분에 사람의 심리를 잘 이해하기에 새로운 가치관 가지고 사회를 건설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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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잔의여유 2007-08-13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마천님의 글은 간단한 것도 나름대로 생각있게 서술하시네요.^^ 서재서포터즈에 응모해서 이렇게 돌아다니는데 글을 봤는데 괜찮아서 일단 추천 ^^ 앞으로 좋은 글을 부탁합니다.

사마천 2007-08-13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칭찬 감사합니다. 로토님 사이트도 제가 자주 돌아다녔는데 최근에 워낙 바빠서... 태업 중입니다. ^^
 
바람난 가족 일반판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04년 4월
평점 :
품절


가족 하나의 붕괴되는 모습을 통해 많은 감정을 느끼게 한다.

감독은 여러 유형의 죽음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우리에게 진정 산다는 모습이 무엇인지를 표현해내려고 한다.

먼저 6.25에 부역자로 희생된 사람들의 유골 발굴 작업이 나온다. 울고 있는 가족들 사이로 땅에서 유골들 하나 하나가 나타난다.
노인의 죽음도 있다. 배가 삽시간에 불룩해지고 잎에서는 피가 갑자기 쏟아져 나와 사방을 뻘겋게 적시운다. 병간호 꾸준히 하는 효자 없다는 말이 이런 경우구나 하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가장 슬픈 아이의 죽음이 있다.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술취한 배달부에 의해 아버지와의 갈등의 희생으로 죽어버린 그런 아이의 모습은 너무나 큰 슬픔을 준다.
다른 영화에서 쉽게 찾기 어려운 이 장면들을 연달아 보여주는 의도는 무엇일까?
무릇 없음은 있음의 반대이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의 진정한 가치는 그것을 잃어보아야 깨닫게 된다.

연달은 죽음의 장면을 보면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감정은 죽음의 가벼움이다. 우연하게 찾아올 수도 있고 6.25 전란에서 대단한 잘 못 없이 줄 하나 선 덕분에 죽을 수도 있고 어린 아이의 모습에서 보듯 도덕적 책임이 없이도 찾아올 수도 있다. 이 모든 과정에 놓인 죽음들은 마치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삶의 가벼움을 보였듯이 <참을 수 없는 죽음의 가벼움>을 느끼게 한다.

죽음과 대비되어 우리를 살아있도록 느끼게 해주는 감정은 무엇일까? 바로 욕망이다. 그 중에서도 원초적 욕망인 성욕에 대해 느끼도록 한다.
원래 인간의 말단에는 식욕과 성욕이 자리한다. 이 영화에서는 식욕을 자극 하는 장면은 거의 없는 것을 보면 성욕쪽으로 몰아가는 쪽이 작가의 의도라고 짐작된다.

남편들의 외도는 쉽게 용납되기 마련이다. 사업상, 남자이기 때문에라는 여러 명분이 활용된다. 반면 이 영화에서 충격적으로 다룬 것은 여자들의 솔직함이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로 15년만에 다시 시작한 성생활을 즐긴다는 어머니를 필두로 남편과 아내는 따로 애인을 찾아간다. 가족 모임에서 버젓이 공개되면서 아내는 남편에게 어머니의 솔직함을 받아들이라고 한다.
그리고 한 걸음 나아가 본인도 욕망의 자유를 찾아나선다. 그 상대인 연하남 그것도 고교중퇴생을 엮어내는 솜씨는 꽤나 우스움을 자아내게 만든다. 그리고 그들이 어렵사리 도달한 즐거움의 절정의 모습에 대한 묘사는 제법 훌륭했다. 여자로서의 쾌락의 절정을 보여주고 그 대가인 2세의 임신을 버젓이 드러내는 것 이른바 혼외정사의 공식화라는 범죄행위에 대해 전혀 부끄러움도 미안함도 없이 솔직해지자라고 외치는 그녀들의 모습이 놀라움을 준다.

결국 죽은 것은 가족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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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17 1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현의 노래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현의 노래

서기 500년 이후 한반도에서는 전쟁이 끊이는 날이 드물었다. 각기 구석에서 한반도를 나누던 여러 나라들이 이제 직접 힘을 다해 부딪혀간다.
그 근저에는 철기술의 발달이 있었다. 특히 철기술의 발달은 소를 이용한 밭갈이에도 힘을 보탰다. 사람 손을 빌리지 않고 땅 속 깊이 파들어가는 우경牛耕의 도입은 땅에서의 생산을 늘렸다. 늘어난 곡식은 더 많은 사람을 먹이고 특히 생산 없이는 만들어 질 수 없는 군사의 숫자를 늘렸다.

국가란 원래 제사의 공동체로서 그 안전은 무기에 의해 보장되어진다.
가야 철기술의 상징은 야장 야로가 맡고 있다. 오랜 전통을 가진 기술로 그는 무기를 만들었는데 현대의 무기상처럼 양편을 왔다 갔다 한다. 그의 손에 의해 한층 발전된 무기에 의해 전쟁은 점점 치열해졌다.

덕분에 이곳 저곳에서 소리가 난다.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 그 쇠에 의해 병사들의 군장이 점점 무거워지고 군장들은 서로 서로를 겨누며 소리를 낸다. 사람이 쇠에 부딪혀 지르는 외마디 비명은 다시 지른 이의 가슴에 꽃히는 날카로운 칼날에 의해 잠재워진다.

철제 무기는 계속 다듬어져 갔다. 원래 가야의 철기술은 놀라운 수준이어서 멀리 일본에까지 인기를 끌었다. 근본은 지상에서 바로 캘 수 있는 노출된 철광이 가야 땅에 존재 한 덕분이었다.
가야 연합을 이룬 소국가들은 철의 힘을 기초로 성립되었고 번성하였다.
그들의 위세는 거대한 봉분에 나타난다.

많은 백성을 동원해 만들어진 어마어마하게 큰 봉분을 보면 자체로도 놀라게 된다. 더욱 놀라게 되는 그 안에서 벌어진 순장이었다. 때는 사람의 목숨의 가치가 서로 다른 세상이었다.
선민들은 각종 설화를 만들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알이 있었다 혹은 바다 건너온 귀한 천손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그들이 다른 존재라는 우월성을 부각시켰다.
핏줄의 구분은 매우 중요했기에 김춘추의 아이를 밴 동생을 보다 못해 김유신은 불태워죽이겠다고 시위를 벌인다. 6두품에 머무는 한을 못 이겨 최치원은 속세를 떠나 선계를 찾아나선다.
어쨌든 그렇게 고귀한 피를 가진 왕후장상은 높은 존재였고 그들에게 피정복된 땅의 백성들은 가벼운 존재였다. 심지어 왕의 죽음에까지 동참하는 순장에 뽑힘도 영광으로 여기고 감사해야만 하는 가볍디 가벼운 깃털 같은 존재였다.

가야 궁정의 왕은 곧 죽음을 맞게 된다. 천손이든 왕이든 이데올로기가 담긴 말은 싫다. 자세히 들어다보면 세포의 재생 기능도 사라져 하나 하나 죽어가는 검은 피부의 노인이요 그 역한 냄새는 가까운 자손도 다가가기 어렵게 한다. 몸 아래 구멍으로 때를 가리지 않고 나오는 오물은 또 무엇이냐?

그 노인은 이제 신성한 행위로 자신의 생을 마감하려고 한다. 바로 거대한 무덤에 묻히고 철을 깔고 눕고 옆에 산 백성을 두는 것이다. 저 세상에서도 오래 오래 지상의 영광을 누리려는 욕망의 모습이다.

사마천의 사기를 보면 불로장생의 꿈을 가졌던 군주에 대해 차가운 비판이 겨누어진다. 진을 세우고 망하게 한 진시황은 물론이야 당대 자신의 생사여탈을 쥐었던 한무제에 대해서도 헛된 욕망에 의해 백성이 질 수 밖에 없던 고통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여기 김훈의 손에 의해 묘사된 당대 가야 백성의 모습 또한 엇비슷하다. 무덤에 들어가는 힘 없는 민초들이 마지막으로 내는 소리는 제관들에게는 불경의 소리다. 더구나 부모와 함꼐 가는 갓 태어난 아이라면 어떨까? 소리가 밖으로 이어지는데 이는 고장 사람들의 마음도 함꼐 울린다. 그 소리를 마음에 느끼고 달래기 위해 나누는 현의 소리는 어떠할까? 마음 깊이 품었던 연민, 몸의 애욕을 나눈 정인을 잃음에 따른 상실감, 왕의 배려에 대한 아쉬움 모든 것이 복합되어 나타나는 소리는 애잔하다.

이제 국경 곳곳은 무너져 내려 간다. 신라는 교묘하게 밀어 들어 온다. 한편으로는 화친을 내세우고 다른 한편으로는 군비로 기회를 잡아 고을을 접수해간다. 그렇게 강역이 좁혀질수록 예법에 대해 강조하려고 들지만 이는 헛발질이다. 신라의 지증왕은 벌써 한참 전에 순장을 금했고 우경을 도입하는 개혁을 이루어냈다. 황남대총에 놓인 황금관과 순장의 모습은 이제 옛 모습이 되어가고 아낀 민력으로 키워낸 군사들이 모여지고 있다.

신라의 행태는 냉혹한 국제 관계 및 정치의 세계를 잘 보여준다.
백제와 연합해 고구려 땅을 빼앗더니 갑자기 돌변해 백제의 땅까지 마저 먹어들어간다. 가야와 국혼을 하더니 삽시간에 가야땅으로 밀고 온다.

싸움은 피로 땅을 적시게 한다. 힘이 부치게 되면 싸움은 잦아들지만 반대편에서 소리는 길게 남는다. 우륵은 바로 그 소리의 보전자였다. 위로는 왕의 소리에서 아래로는 무덤의 소리까지 고루 담았다. 특히 봉분을 여인의 젖가슴으로 비유하고 떄로는 가랑이 사이에서 나오는 쉿 소리까지 잘 새겨들었다. 여인이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가랑이에서 힘을 주어 아이를 만들지는 못하는 것인가? 그 아이에 의해 다시 삶이 이어져 감이야말로 소중함일지다. 어찌 차가운 무덤 한 구석에 몸을 놓아야 할 당위성이 있단 말인가?
고을은 고을대로 이어져간다. 군주가 짓밟혀도 고을은 이어져간다. 그것이 생명력이다.
하지만 군주의 후손에게는 그런 여유로운 허락이 주어지지 않는다.

월광이라는 인물은 비극의 주인공이었다. 아비의 나라 가야에 어미의 나라 신라의 군대를 이끌고 들어왔지만 결국 포로의 신세가 되어 승려로서 세상을 등지게 된 망국의 왕자였다.
월광이 마지막으로 들어서게 된 공간은 절이었다.
절은 부처의 공간이다. 부처는 깨달음을 세상에 나누었다. 인간은 끝없이 윤회한다고. 오늘의 왕후장상이 다음 생에서는 천민의 자리에 놓일수도 있고 심지어 인간의 틀을 벗어나 버러지로 날수도 있다고 한다.
나만이 소중하다고 주장하다가 이제는 가까이 있는 모든 것에 겸손을 가지게 된다. 선조들이자신만을 위해 거대한 봉분 쌓고 순장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음인지 알게 되고 그 업보가 오늘의 가야땅의 몰락인 것을 깨닫게 되어간다. 이제 월광은 죽음을 어리석음을 따라가야만 했던 소리 없던 죽음을 위무한다.

이제 인간은 서로를 좀 더 존중하며 사는 세상으로 넘어갔고 그것이 진보요 발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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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으로서 추구하는 바가 무엇일까?
돈, 명예, 전문성 등등.
최근에 내가 아는 프로젝트 하나의 경우는
몇가지로 나뉘어진 부류의 사람들이 한데 모여있다.
한쪽은 프리랜서, 실력이 빵빵해서 년 수입이 1억이 넘는다.
하지만 권한은 매우 적고 조직상 가장 아래 놓인다.
실력과 대우는 비슷하게 가지만 권한과의 괴리는 심하게 존재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운영자들, 이들은 직업은 안정적이지만
외부의 다양한 프로젝트 경험이 부족해서 경험 싸움이 발생하면
프리랜서에게는 밀린다. 그리고 이들이 이사나 부장 타이틀 달고
다니는 것도 꼽다. 돈도 작다.
덕분에 불만이 많지만 스스로 자신을 조직의 일원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또 한 부류는 관리자들이다.
이들이라고 돈이 확 튀어 오르는 것은 아니다. 프리랜서들 보다 작다.
하지만 전체 판을 짜고 흔들고 그림 그려나가는 매력은 있다.
그 댓가로 막중한 책임에 따른 압박을 함께 가져가야만 한다.

여러분 들은 어느쪽을 취하시겠습니까?

벌써 현대 사회는 길이 달라지고 거기에 따라 보상도 달라지는 구조가 되어간다.
하나를 누리면서 다른 것들까지 한꺼번에 바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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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28 1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6-29 1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상의 일들은 과연 서로 평등할까?
직업에는 귀천이 정말로 없는 것일까?
미국의 경우를 살펴보면 결코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연봉과 시급이 다르고 다시 거기에 성과급을 받을 수 있는지
스톡 옵션을 받을 수 있는지가 다르게 나타난다.
나이와 전문성에 따라 지속적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급여가 연봉이라면
시급은 아주 아주 단순한 노동만을 원한다.
과거 테일러 등이 세분하게 구분해서 팔 이나 다리가 없어도 수행가능하다고
정의하고 거기에 맞추어 대가를 책정해놓았듯이.

일반 직장도 비슷한 원리가 적용된다.
직장인으로서 가장 먼저 물어야 할 것 중 하나가 자신의 일이 반복적인지 아니면
지속 발전하고 있는지 여부다.
영업이라면 판매하는 상품의 가격 혹은 전체 매출이 늘어나는지.
기술이라면 점점 신기술을 익히는지.
관리직이라면 관리의 범위가 커지고 중요성도 올라가는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면
아마 당신은 전문성의 함정에 빠져있는지도 모른다.
전문가라는 미명아래 오래 오래 같은 일에 매달리고 있는지 말이다.

분명 전문성이라는 분야는 존재한다.
망치 하나 들고 화학공장 방문해서 오류 찾아주고 수만불 청구했다는 이야기,
또 피카소가 스케치 하나 쓱싹 그려주고 수백만원 청구하면서 비싸다고 하자
여기까지 오는데 수십년이 걸렸습니다라고 답변했다는 이야기가 그 예다.
반면 자신은 전문성이라고 주장하는데 알고보면 허구인 경우도 있다.
기술의 발전에 의해 대체되어버리는 경우들이 그런데
어느 날 기계에 밀려 사라져버린 피아노 조율사를 생각해보라.

노트에 몇개 적어 놓은 노하우 붙들고 꽤 오랜 시간 뻐기며 살던 시절도 있었다.
IT 분야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많았는데 어느 날 부터 하드웨어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운영 엔지니어의 중요성이 사라져버렸다.
하긴 나도 젊은 날 운영 담당하던 시절 외부 교육장에 나가있다가
본사의 긴급 호출을 받고 다시 들어가 해결하면서 한편으로는 짜증
다른 한편으로는 그래 나밖에 안되라고 뻐기던 시절도 있었다.
강도가 터져야 경찰이 대우 받고 바이러스가 창궐해야 안철수 매출이 오르고
사고가 터져야 시스템 엔지니어도 대우 받는다.

적과의 동침.

하여간 세상이 빨리 변한다면 그만큼 자신의 커리어 포지션도 바뀌어가야만 한다.
스스로에게 냉정히 물어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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