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으로 읽는 건축] 서평단 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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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으로 읽는 건축 - 인간의 생활을 담는 그릇, 건축 바로 알기
임석재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건축, 특히 서양의 건축에 관심을 두게 되는 계기는 해외여행이다.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 있는 거대한 고딕 성당을 보며 경외감을 품게 되고 돌아와서는 데이비드 맥컬레이의 <고딕성당>을 찾아 보며 구조물을 가능하게 해주는 플라잉 버트리스와 같은 용어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독일 하노버의 박람회장을 보면서는 직선을 벗어난 자유로운 모던 건축물로 구성된 전시관들이 왜 한국에서는 나오지 않을까 궁금함을 가지게 된다.
그런 호기심들이 더해지면 도대체 건축이란 무엇인지 지속적으로 물음을 되고 가끔씩 답을 누군가에게 주어 듣거나 주어 읽어서 나름의 건축 교양을 쌓아왔다.
이런 잡학의 독자에게 또 나아가 건축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교양으로 알고자 하는 대학신입생, 일반인 등 여러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은 쉽게 다양한 각도에서 많은 내용을 알려준다.
거기에 더해서 또한 건축 분야에서 서양의 모방이 한국사회와 삶에 가져오는 폐해를 일관되게 지적하면서 보다 바람직한 주거문화 더 크게 건축문화를 지향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먼저 건축 전반을 알고자 하는 사람을 위해
문) 건축이란 무엇인가?
답) 인문,예술,공학,산업 등이 두루 합쳐진 복합된 일이다
문) 건축가란 어떤 사람인가?
답) 예술가 혹은 사장님 그 폭은 넓다
등의 문답을 진행해준다.
물론 책에 나온 답은 여기 한줄로 표현한 문장보다 훨씬 길고 섬세한 논리를 담고 있다.
이어서 서양의 건축 사조와 명건축가들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해준다.
로마,고딕,르네상스,근현대 등 수천년의 시대를 빠르게 넘어가면서 이건 꼭 알아야 되 하는 자상한 교수님의 강의를 듣는 듯한 느낌이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의 관심이 많이 가는 두 대표 현대작가로 가우디와 르코르뷔지에에 대해서도 왜 그들을 주목해야하는지 비교해가면서 서술해준다.
여러 책으로 나누어 내도 괜찮을 주제들이 계속 이어져서 교양으로 접근한다면 어느 정도의 포만감이 머리에 채워진다.
그런데 이 대목 까지는 하나의 도입부였음을 저자가 이어가는 다음 이야기에서 알게 된다. 서양의 수 많은 건축물들이 오늘까지 보존되어 있는데 이들은 하나 하나는 막대하나 자원이 투입된 사회의 공유물이었고 이를 위해 매우 깊은 사상적 고려가 더해진 미학의 고뇌가 담겨 있다. 그리스,로마의 시민의식이던, 카톨릭과 신교의 경쟁이던, 혁명과 보수주의의 갈등이던 하나 하나가 깊이를 가지고 새로운 양식을 창조하면서 그 안에 자신의 생각을 담아 내었다. 생각과 사고체계를 이해하면서 외형적 산출물인 건축에 대해 한층 감탄을 더 해갈 때 우리 스스로에게 물음이 주어지게 된다.
우리가 짧은 시간내에 따라잡은 근대화 속에서 외형의 흉내는 내었지만 내면에서도 같은 수준에 올라왔는지 묻게 되면 답은 아니다로 귀결된다.
한국의 건축물을 보면 경제적 성취를 통해 삶의 질이 좋아졌고 이는 머물게 되는 공간에서 잘 나타나게 된 것이 사실이다. 건축물을 막 들어서면 귀한 건축비를 크게 양보해서 탁 트인 공간을 방문자에게 선사하여 시원함을 준다. 다시 안쪽으로 들어가면 바닥의 마감재는 고급 수입 대리석으로 되어 문양의 아름다움을 제공하여 만족감을 높인다.
주거 공간으로 돌아 와도 아파트의 평수가 넓어지고 설계 방식이 좋아져 창과 창 사이의 바람이 통하는 축이 늘어나는 3bay 이상의 공간이 제공되고 바닥에서 한층 올라온 필로티 개념 등 다양한 이야기가 많아진다.
여기까지 우리는 소위 경제적 성취에 자부하게 된다. 반면 우리가 잊거나 부족한 점은 무엇일까? 서구에서 보여지는 다층적 문화, 다양성, 전통의 보전 등을 찾아보기 어렵다. 부수고 새로 만들고 다시 부수고 새로 만들고를 연달아 반복하다 보니 서구의 작은 공간에도 존재하는 수천년에 걸쳐 축적된 다양성이 없다.
도심을 상징하는 랜드마크 성 고급건축물 상당수는 외국 저명작가의 손에 의해 설계된다고 한다. 덕분에 한국의 건축가들은 부가가치 낮은 하도급에 안주하면서 낮아진 예술적 자존감을 물량을 늘려가는 사업적 관점에서 벌충하려고 한다.
이는 다시 창조력 고갈의 악순환을 만드는데 파주의 예술인 마을 조차 모 잡지의 모방이라고 저자는 질타한다.
무엇보다 저자가 우려를 금치 못하는 문제는 아파트를 중심으로 물신화가 지나치게 진행되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능선을 깍고, 개천을 덮어버리니 곡선은 점점 우리 주변에서 찾아보기 어려워진다. 책 하나 끼고 바르셀로나의 가우디는 찾아가지만 우리 주변에서는 유연한 곡선을 놔두지 않는다.
부동산 정책의 핵심이 자산가치에 치중하다 보니 분양가는 반드시 올라야 한다는 절대명제를 설정하고 이를 소비자에게 굳게 신봉시키려 한다. 수년간 건설업과 정부, 부유층 소비자의 카르텔에 의해 유지되었던 이 믿음은 다른 각도에서 프레시안, 선대인 등이 제기하는 상식적 반론을 무시해왔다. 한국의 부동산을 다 팔면 프랑스를 다섯번 이상 산다는.
저자의 여러 문제의식에 내가 하나 더 붙여 질문하고 싶은 문제는 중동에서 일하는 한국 건설업체 들이 자체 시행 보다는 시공작업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이 모든 문제점들을 파고 들어가 보면 결국 우리 자신의 부족함과 추함이 나오는 것 같다.
빨리 해야 한다는 조급성, 우리가 무어 그런 것 까지 할 수 있냐는 자기비하, 돈이 되면 다 아니냐는 물신주의 등 우리 안에 고착된 건축에 대한 태도를 변화시키지 못하면 오늘 우리 주변의 공간들 그리고 그 속에서의 삶이 나아지기 어렵다.
이 책의 출간 후에 전개되는 미국발 위기는 연달아 한국 건설업계를 벼랑끝으로 몰아 넣는데 자업자득의 결과물이라는 평도 듣는다.
결국 모양과 삶에 대한 그림을 그리는 창조의 능력이 키우고 자연을 반드시 이기려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가는 지혜를 터득해가면서 우리 스스로 남에게 부러움을 주는 삶을 살아야만 우리의 건축문화가 따라서 업그레이드 되고 남들에게 경탄과 모방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답으로 정리해가면서 책장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