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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속의 독수리 ㅣ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6
윌리스 브림 지음, 유향란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4월
평점 :
품절
눈속의 독수리
로마군의 상징인 독수리, 군대의 앞에 높이 든 독수리 상징을 따라 갑옷으로 무장하고 화려한 투구를 쓴 로마병정들의 발걸음은 이탈리아를 넘어 갈리아로 다시 지중해를 넘어 카르타고로 또 오랜 왕국 이집트로 걸어 들어 갔다.
독수리는 오랫동안 군대의 사기를 모으는 자부심의 표상이었는데 그 중 하나가 이제 차디찬눈속에서 위기에 몰려가며 점점 위세가 약해져가고 있다.
장소는 갈리아의 북방, 계절은 겨울인데 이 지역을 방비하기 위해 단 하나 남은 20군단의 전력만으로 북방에서 밀려오는 전례없이 거대한 게르만인들의 이동을 막아야 하는 로마 장군 막시무스의 고뇌는 깊다.
오랜 전쟁으로 쌓인 훌륭한 전술도 복합적으로 구성된 군단의 전투력도 지형을 교묘하게 활용하여 만들어 놓은 방어술도 무려 16개월여 동안 저지는 해내는 기적을 보였지만 이제 최후의 한계에 부딪혀간다.
죽여도 죽여도 이어지는 게르만 각 부족들의 거대한 파도의 뒤에는 밀려오는 흉노가 주는 공포가 있다. 퇴로가 차단된 그들의 입장에서 나갈길은 앞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가족을 먹여 살리느냐 아니면 굶어죽느냐 하는 절박감이 부족 모두에 의해 깊게 새겨져있기 때문에 결코 그들의 발걸음을 되돌릴 수는 없다. 위협으로도 이간질하는 술책으로도 일부만 군대로 받아들여 게르만인들끼리 싸우게 하는 책략도 다 한계에 부딪힌다.
덕분에 최후의 전투는 하루 하루 다가오고 마지막의 단발마의 비명은 한편으로 숭고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목숨을 걸고 맞서 싸운 적에게도 경외심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말이다.
소설의 서술은 대부분 막시무스라는 장군의 시선을 따라가며 이루어지는데 최고의 지휘관으로서의 그의 행보를 따라가면서 특히 전투장면을 보면 웰 메이드 된 전쟁 영화 한편을 보는 듯한 인상을 받을 수 있었다.
내 앞에서 칼이 튀는 공포가 느껴졌고 불화살이 날라다니는 속도감이 주는 긴장감 그리고 로마 기병의 말발굽이 내 주변에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장군 막시무스의 이름을 보아도 야만인들과의 전투장면 서술을 보아도 걸작 영화 글래디에이터에 충분히 좋은 영감을 준 것 같다.
물론 소설은 전투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왜 이렇게 적은 병력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아야 하는지 배경이 다차원적으로 잘 설명된다.
그의 눈을 통해 우리는 변방의 실체를 세세히 볼 수 있고 그 안의 여러 주체들의 심리, 활동, 가치관 등을 다양하게 체감할 수 있다.
후방의 지원 부족, 약속을 지키지는 않는 대장군, 지속되는 군인들끼리의 싸움으로 소모된 국력이 로마측 이유로 나온다. 야만인들의 경우를 보면 그들은 벌써 기독교인이 되어버렸다. 기독교라는 종교는 집단의 결속력을 한단계 올려주며 사회 내 구성원들의 질서도 잡아주는 효과가 있다. 불교를 잘 활용한 신라가 순장을 빨리 폐지하면서 민력을 강화하고 상무정신까지 키워 삼국통일에 나섰던 점을 보듯이 고등종교는 고등사회를 만들어낸다.
하여간 영상을 확대해보면 로마인과 게르만인들만의 싸움이 아니라 중국 변방의 만리장성을 놓고 벌어지는 이방민족들과 한인들의 싸움도 똑 같이 눈에 들어오는 듯하다.
이 대목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질문은 위대한 제국 로마가 왜 이렇게 무너져버릴까에 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답이 쉽게 나온다.
일은 노예에게 국방은 타민족 용병에게 시켜 놓고 로마인들은 무얼 했을까?
다수의 로마인들은 변방의 싸움터에 있지 않고 거대하게 꾸며놓은 전차경주장에서 검투사의 목숨을 건 싸움을 지켜본다. 그들은 과거에는 평상시에는 로마의 주권행사에 참여하는 시민이었고 싸움터에서는 영광스러운 로마의 가치를 지키는 군인들이었으리라 하지만 이제 거대 장원들에게 농토를 빼앗겨 빵은 배급에 쾌락은 남의 죽음을 보면서 소리치는 것으로 미래는 멀리 유태인의 종교에 빠져버린 존재가 되어버렸다.
운명을 만들어가는 주인의 모습이 아니라 로마인이라는 특권만 가진채 오늘의 삶은 남의 싸움을 보는 관객에 머무른다.
그들의 모습에서 로마법을 창조해 세계를 끌어안으려는 팍스 로마나의 포부를 찾을 수는 없다. 오늘 하루를 근근히 연명하며 이방인의 종교에 머리를 숙이며 될대로 되라는 식의 자포자기만 사회 가득해 버린다.
그런 그들이 여전히 지중해세계라는 거대한 장원을 소유하고 이국의 물품을 소비하며 안락히 지내는 모습이 영원히 이어질수는 없다는 점이 상식적인 이해가 된다.
반면 상대편인 게르만인들은 어떠한가? 그들은 경계 바깥에서 절박하게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고 가족을 지켜야 하다보니 자기 목숨을 던져서 앞으로 걸어나가야 한다. 이 거대한 인구를 가진 집단앞에 방어선이 무너짐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리라.
이 대목에서 소설의 또 하나의 주인공으로서 막시무스의 친구 율리아누스가 떠오른다. 로마라는 제국이 실은 불공정으로 가득한 악의 소굴이라고 보고 이에 도전하기 위해 반역을 했다가 검투사(글래디에이터)로까지 떨어져버린 존재다. 그는 해결책을 이방인의 순수함에서 찾아나가고 그 힘으로 로마에 도전한다.
영화속의 막시무스가 글래디에이터로 떨어져나가서 이들을 이끌고 검투판을 뒤집어 버리는 장면이 머리에 떠오른다.
더해서 소설속의 흥미를 북돋우워주는 장면은 몇몇의 여인들이었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참 의외였는데 곰곰히 작가의 의도를 곱씹어보니 세상은 서로 죽고 죽이는 칼의 영역만 있지 않고 여인과의 사랑과 이를 통한 후대의 생산이라는 영역이 더 중요하다는 깨달음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처음 시작은 익숙하고 뻔한 주제였는데 마치고 나니 두꺼운 책만큼 여운이 남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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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무너져가는 로마제국의 모습에서 오늘의 미국이 연상되었다. 일은 중국이나 인도시키고 자기들은 돈 놀음하다가 거품 팍 터트려놓고 그거 메우기위해 전세계가 참여해달라는 황당한 인간들.
이방인 출신 오바마는 이 소설속의 막시무스가 될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