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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전산 이야기 - 불황기 10배 성장, 손대는 분야마다 세계 1위, 신화가 된 회사
김성호 지음 / 쌤앤파커스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불황이다. 다들 정말 어렵다.
이럴 때 신문 전면을 장식하는 책 광고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군말 말고 될 때까지 하라는 약간 낡은 듯한 메시지가 담긴 책 <일본전산>은 그렇게 우리 앞에 등장했다. 처음에는 왠 괴짜 사장 하며 자세히 보지 않았지만 한주 두주 시간이 지나가자 주변에서 이 책을 보고 또 권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광고를 액면대로 믿지는 않더라도 입소문이 퍼져나가는 데는 분명 합당한 이유가 있으리라 보고 나도 책을 살펴보게 되었다.
책의 주인공인 일본전산의 사장 나가모리는 꽤 독특한 사람으로 보인다. 가장 괴짜 다운 행동은 사람을 뽑는 기준의 하나로 밥 빨리 먹기를 내새운 점이다. 그리고 뽑힌 사원들에게 주어진 일을 아니오라고 답하지 못하게 하면서 반드시 지금 해내라고 다그친다고 한다.
이런 방식은 현대 보통 기업의 상식으로 보면 단순 무식 더해서 과격하게 까지 느껴진다. 그럼에도 이 기업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PC에 들어가는 모터 분야 등 세계 1위인 분야를 수도 없이 가지고 있고 미국 증시에도 상장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성과가 수많은 일본기업들이 엔고와 불황이라는 환경에서 도산해가는 과정에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놀라울 따름이다.
그럼 이 책에서 시키는대로 열심히 따라 하면 일본전산처럼 될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나는 관점이 좀 다르다.
일본전산이라는 회사를 소개한 또 하나의 책 <도전의 길>(품절)이라는 책을 보면 나가모리라는 인물이 단지 밀어붙이는 행동가가 아니고 생각이 깊고 발상이 탁월한 천재적인물이라는 점이 많이 보인다.
책 이야기를 처음 듣고 아 이건 오다 노부나가가 히데요시에게 시키는 방법이구나라고 말 했더니 주변에서 놀라는 사람이 있었다.
실제 <도전의 길>에 나온 나가모리의 이력이나 행동을 보면 나가모리는 오다 노부나가, 직원들의 이상형은 히데요시구나 하는 처음 직감이 보다 구체화되고 확고해졌다.
나가모리의 천재성은 그가 고교시절부터 주식투자를 하면서 큰 성과를 내었다는데서도 나타난다. 주식으로 돈을 버는 행위의 핵심에는 기업가치의 이해가 있다. 가치를 알아야 너무 비싸게 사지 않고 올라도 욕심부리지 않고 적절한 수준에서 팔아 돈을 번다.
나가모리는 가치를 아는 수준을 넘어서서 기업의 구조를 파악해 가치를 높이는데도 일가견을 보였다.
그런 내공이 깊이 쌓여 있기에 창업 이후 고도성장을 해가면서 무너져가는 많은 기업들을 M&A 하고 또 조직을 성공적으로 통합할 수 있었다.
최근 한국의 문제점은 청년실업과 88만원 세대라는 키워드에 많은 부분이 나타난다. 원인이야 우선 질 낮은 대학교육에 있지만 한편으로는 수요자 측이라 할 수 있는 기업이 스펙만 따지며 대학생들 고르고 고르면서 채용 규모는 줄여온 점에도 있다.
이런 변화는 IMF 이후부터인데 지금 소개되는 일본전산의 사례는 한국의 풍토와 180도 대조가 된다.
솔직히 밥 좀 더 빨리 먹었다고 그게 대단한 일은 아니다.
정작 중요한 점은 태도다.
조직에서 개인이 내는 성과는 학력과 같은 자질 보다는 태도에 더 많이 영향을 받는다는 통계가 있다. 나가모리 자신도 비판하는 사람들 앞에서 그런 결과를 소개하곤 한다.
어쨌든 나가모리는 뽑아온 사람들의 몸값을 높여가는데 일가견이 있다. 그는 낭비 특히 시간의 낭비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고 한다. 신입사원 교육은 일과 후에 하는데 아직 밥값도 못 하면서 교육까지 편하게 받으려면 안 된다는 원칙에서 나온 결정이다.
이 점은 최근 정부가 밀어 붙이는 인턴에 대해 불만하는 사람들에게도 똑 같이 들려주고 싶다. 원래 신입은 3년 정도까지는 회사에 재무상 손해를 주지 이익을 주기 어렵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때까지 계속 막대한 돈을 투자하는데 이를 고맙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굳이 억지로 뽑을 이유가 없게 된다.
그렇게 기업이 사람을 뽑았다 치더라도 싫은 소리 안하고 오냐오냐 키우다가 막상 사업부진해지면 나가달라고 한다면 경영자로서 큰 죄를 짓는 것이다.
나가모리는 이점을 지적하면서 자신의 철학을 믿으면 반드시 따라오도록 강하게 드라이브 한다. 이 대목도 오다의 혁신과 비슷한 면이 있다.
이 과정에서 본인이 솔선해서 자신의 믿음을 부하들에 심어주었기에 남들이 포기한 많은 기업들을 살려내는 위업을 보일 수 있었다.
그럼 무조건 노력만 했을까? 아니다. 그는 당시 일본 경제가 불황으로 치닫으며 고도성장기에 만들어진 계열기업으로부터만 산다는 방식이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렵다는 점을 잘 파악했다. 원래 완제품 업체 입장에서 설계의 보안 유지를 위해 부품은 믿을만한 업체에서 주로 사는게 관행이다. 그래서 닛산 자동차도 카를로스 곤이 와서 부품업체를 들볶는 것으로도 충분히 흑자를 내게 되었다고 한다.
반대로 좋은 부품을 만들고 이를 모듈로 조립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 놓고 더구나 싸게 만들어내면 지금의 계열구조를 탈피해서 조립업체가 다 살 수 밖에 없을 것이다라는 점을 나가모리가 착안한 것이다.
이는 오다가 일본의 중세에서 관용상인의 특권을 철폐하고 라쿠좌 이른바 자유시장을 만든 점과 맥이 통한다. 특권이 폐지되어 더 넓어진 자유시장에서는 제일 좋고 제일 싸게 만드는 상인이 1등을 하게 되고 경쟁이 촉발된다.
일본의 불황은 고도성장기에 익숙해져 남의 돈으로 부동산 가지고 쉽게 벌려고 하는 자세가 만들어낸 현상이라는게 나가모리식 인식이다. 빚내서 땅 놀음 하다가 땅값 내려가면서 폭삭 주저 앉은게 닛산, 마쓰시타 등 대기업을 위시하여 많은 일본기업들의 문제지 엔지니어의 고유한 기술은 결코 약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기업들이 부실채권, 막대한 채무에 시달리면서 환경 탓만 했다. 그런 기업 하나 하나의 문을 두들기면서 M&A를 통해 인수하고 기술자에게 다시 쉽게 돈 벌 생각말고 땀을 흘려 가치 있는 작품을 만들라고 독려하면서 비전을 보여준다.
여전히 안 따라오는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없이 밥 빨리 먹어서 들어온 친구들도 제몫을 하는 일본전산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이 어떻게 무에서 남 못하는 크기,성능을 달성해서 인정 받게 되었는지 보면서 동조자는 점점 늘어난다.
처음 오다가 라쿠좌를 시행하고 용병을 고용했을 때는 동생과 가신조차 반대했지만 점점 효과를 내자 나중에는 그 천재성 앞에 모두가 승복한 것처럼 나가모리도 꽤 오랫동안 이단아 대접을 받았지만 이제 그의 방식은 교토식 경영의 모범사례로 꼽히게 된다.
문제의 원인을 환경에만 돌리지 않고 자기식의 해결방법을 제시하여 훌륭하게 성공한 나가모리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런 나가모리 방식이 정부와 기업의 고정된 사고의 틀을 깨는데 훌륭한 자극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 영향이 커져서 청년들의 취업 고통이 해소되는 데까지 이르면 더 할 나위가 없다.
<일본전산>이라는 책을 좀 더 말하면 <이기는습관>을 히트 시킨 방식대로 기획하고 만들어진 인상을 준다. 복잡한 현상에서 키워드를 뽑아내어 이를 잘 강조한 방식은 좋다.
반면 <이기는습관>과 직접 비교하면 이번 책에서는 문제의 복합적인 이면을 과도하게 단순화시키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 독자들에게 앞서 소개한 <도전의 길>과 <교토식경영>,<아킨도> 등 다른 책들을 두루 보면서 시각을 넓혀주기를 바라게 된다.
그리고 일본역사에 대해서 더 관심을 가져두는 것도 책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