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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혜와 책임 (반양장) - 한국 상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송복 지음 / 가디언 / 2016년 8월
평점 :
품절
원로 보수 사회학자 송복 교수의 신간이다.
사회학이란 프랑스혁명 이후로 사회가 흔들리는 현상을 해석하고 대책을 수립해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떄로는 마르크스처럼 혁명가의 무기가 되고 반대로 베버와 같이 혁명을 막고 사회를 유지시키기 위한 유지보수의 이론적 뒷받침을 해왔다.
한국에서 사회학은 어떠했을까?
역시 80년대의 질풍노도 시기에 빨간책이라는 이름으로 손에 들려 가슴을 뛰게 만들었고 한완상 교수 등이 후원자였다. 그 시기가 지나서 한동안 잠잠해졌고 최근 사회학을 보면 송호근 교수의 <그들은 소리 높여 울지 않는다>와 같이 연구의 범위가 넓어져갔다.
그러다가 2017년 이 시점에 우리는 다시 광장이 분노와 열망으로 가득채워진 모습을 보았다. 정치의 계절 속에서 사회학은 좀 더 깊게 원인을 사회구조와 변화에서 찾아본다.
그런데 보수 원로 사회학자인 저자께서는 왜 어떻게라는 물음으로 진단해갈까 궁금했다.
책에는 맨먼저 자신이 보수가 된 원인으로 419에 대한 실망과 516에 대한 기대를 설명한다.
저자의 글에서 일부 직접 인용해본다.
"지식 중에서도 이론지보다는 실행지가 다르고 뛰어냐야 한다. 실행지는 메써돌로지, 이른바 방법론에 정통한 것이다. 당시 우리 지식인들의 최대 약점은 이 방법론의 무지, 아니 아예 방법론이 없다는 것이었다.
원론적인 것, 당위적인 것만 내세웠다. 당시 최고 지성지라는 <사상계>를 지금 한 번 펼쳐 보라. 모두 원론이고 모두 당위다.
..
방법론을 가르치지 않는 학문, 그것이 학문이 될 수 없듯이."
당시 최고의 경제학자라는 서울대 성창환 교수도 이런 수준이었다고 저자는 통렬히 비난한다. 참고로 연대에서 학생을 가르쳤지만 저자는 서울대에서 수학했다. 그렇지만 당시 학창시절 교수들의 수준이 그냥 외국책 읽어주고 자기 이론은 전혀 없는 낮은 수준이었다고 회고한다.
반면에 기자의 눈으로 본 516 혁명 주체들은 실행적 통찰력이 있었고 성과를 냈다고 한다.
그 덕분에 자연스레 저자는 보수적 이론가가 되었다고 추측된다.
과거는 그렇고 최근의 광장의 충돌은 사회 속에 문제가 곪아터져간다는 이야기다.
사회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빈부격차가 커지고 지배와 피지배간의 격차가 커진다. 이를 저자는 영국과 미국의 사회분석을 통해 분석결과를 보여준다.
영국은 상위 1%가 전체 부의 1/3을 점유한다.
특히 금융,철도,양조,선박 등 안정적인 비즈니스 모델의 상당수는 대대로 상층이라고 한다.
이는 미국도 유사해서 부도 유사하고 인명록(Who's who)를 보면 남북전쟁때부터의 대대로 상층이 상당수를 차지한다고 한다.
일본의 총리들도 천황가와의 혼맥 등 인연이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단 이들 나라는 한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올라가는 부의 일부는 자선 등의 이름으로 흘러 아래로 내려와 한바퀴를 돈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유태인들이 일찍부터 개발한 제도가 사회복지였다. 수확 후 이삭을 남기는 것(이는 밀레의 그림에 잘 나온다. 학교에서는 왜 그런지 모르고 배웠지만), 배고픈 유태인을 위한 기본복지 등을 잘 갖추어나가면서 그들은 공동체를 유지했다. 아니라면 어떻게 나라도 없는데 민족정신이 유지되겠는가?
한국의 민낯은 어떠할까?
저자는 막바로 칼날을 들이댄다. 공식 재판 기록에 나온 YS선거시 초원복국 사건에 나온 소위 사회 지도층의 녹취록을 보여준다.
지역감정이 그냥 담겨 있는 이권 추구형 언행이다.
영남과 호남 대결헤서 그냥 해먹자 딱 이수준이다.
이 대목에서 당시 주역이던 김기춘이 박근혜 정부의 비서실장으로 국정농단에서 큰 역할을 했던 걸 상기해보자.
저자는 이렇게 한국사회의 문제로
5무를 열거한다.
무역사
무도덕
무희생
무단합
무후계성
공감이 간다.
노학자가 들추어낸 한국의 민낯, 다음 정권은 솔직히 난제를 떠안고 출발한다. 누구든 엄청나게 커진 광장의 목소리에 떠밀려가며 난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5무 적폐가 해결되기 위해 보다 깊은 메스가 들이대주어지기를 바란다.
건강한 보수는 사회를 순환시킬 수 있는 시야와 헌신이 있어야 하고 그것만이 양극화가 혁명으로 가지 않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