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가려면 같이 가라는 이야기 2탄이다.

한국사회는 매우 좁다
그래서 다시 만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런데 황당한 건 처음 만날 때와 갑을 관계가 바뀌는 경우다
나이 들어 회사를 옮기다 보면 작은 곳의 헤드로 갈 수 있다
그런데 예전 부하가 큰 기업의 갑쪽에 있을 수 있다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까?
그때서야 제대로 살았는지 평이 나온다

실제 나도 예전 상사들의 레퍼런스 첵을 할 때가 몇번 있었다.
나는 최대한 객관적으로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상대가 고려해야 할 충분한
자료도 제공하려고 했다. 예를 들면 그 분이 횡령혐의를 받은 적이 있었다든가하는 정보도 근거에 의해 전달하려고 했다.
결과? 상상에 맡긴다.

또 다른 케이스 갑회사에서 조기 출세하면서 힘 많이 쓰던 과장이 있었다
일은 잘해서 위에는 잘 했지만 동료들에게 빡빡하게 했다
사실 그래서 더 일이 잘 되기도 하지만 단기성과 위주로 열심히 하다보면
인간적인 면에 소홀하게 된다.
그러다 회사를 떠나 작은 곳의 영업대표로 나서게 된다
어제의 옛동료들은 그를 어떻게 볼까?
세상은 의외로 작아서 다시들 보게 된다.
회사를 떠나며 업계를 떠난다고 호언하지만 거의 대부분은 업계 주변에 머물게 마련이다.
그러니 이 대목에서 자신의 자산을 점검해보아야 한다
물질이 자산이 아니다. 관계가 자산이다.
그리고 그 관계들이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평판 그것이 자산이다
관계자산,평판자산 이 두가지를 잘 관리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다음이 있다.

어떤 이는 한 회사를 그만두고 이를 트윗이 나 페북에 알리자마자 일자리가 쏟아져들어온다. 어떤이는 조용하다.
그 다음을 위해서
헤드헌트를 믿으면 될까?
대부분의 헤드헌터가 40대 중반 이후의 프로파일은 검토하지 않는다.
결국은 평판이라는 자산이 나에게 가장 큰 힘일 따름이다.

다시 강조하는데 한국사회는 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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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2-10-16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공짜가 없듯이, 결국 사람은 각자 자신이 판 우물을 퍼 마시게 되어 있다는 생각이 자꾸만 듭니다. 1859년에 출판된 기념비적 저서로 일컬어지는 새뮤얼 스마일즈의 《인생을 최고로 사는 지혜》라는 책 속에서도 이와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를 여럿 발견할 수 있더군요. 이 책을 2003년에 무척 감명깊게 읽었었는데, 다시 읽어봐도 제겐 여전히 감동적입니다.ㅎㅎ(같은 해에 나온 중요한 책들은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찰스 디킨슨의 《두 도시 이야기》등인데 스마일즈의 책이 비소설 중에서는 가장 인기있는 책이었다고 하네요.)
* * *
우리는 비즈니스가 인생의 그 어떤 분야보다도 더 혹독하게 인격을 시험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것은 정직성, 극기, 정의, 진실성을 가장 혹독하게 시험한다.(273쪽)

정도를 걷는 거북은 그보다 빠르지만 거짓된 길을 걷는 토끼를 이기고 만다. 근면하기만 하다면 굼뜬 것은 별 문제가 안 된다.(332쪽)

개인의 근면과 열정으로 많은 일들을 이룰 수 있지만 인생의 여정에서는 다른 사람의 도움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워즈워스는 다음과 같이 아주 일리 있는 말을 했다.
"모순되게 들릴지 모르지만 씩씩한 종속과 씩씩한 독립, 씩씩한 타인 의존과 씩씩한 자기 의존이 함께 해야 한다."(48쪽)

사마천 2012-10-16 15:26   좋아요 0 | URL
역시 오렌님, 긴 코멘트 감사합니다. 주신 글귀 하나 하나가 다 귀하게 느껴집니다. 비즈니스가 인격을 시험한다는 이야기는 잘 될 때 혹은 안 될 때 등 다양한 경우에 나타납니다. 뻔한 듯 보이는 말들이지만 정말 살면서 깨우침을 줍니다. 권해주신 책들도 참고 하겠습니다.

사실 저도 사이 나쁜 상사에 대해 코멘트 할 때 정말 쾌감을 느꼈거든요.. ^^

saint236 2012-10-16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한국 사회는 좁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판이라는 것도 의외로 같이 따라다니더군요. 학교 다닐 때 동기였던 사람들의 평판에 대해서 묻는 전화를 꽤 여러번 받았습니다. 물론 저에 대한 평판도 암암리에 묻겠죠. 한국 사회가 좁다는 것을 요즘 들어서 새삼 더 깊이 깨닫고 있습니다.

사마천 2012-10-16 15:24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좁아진 세상이 이제 소셜 네트웍으로 해서 더 좁아진다는 생각입니다. 나도 어디서 누군가에게 그런 평을 들으면 안되겠지라는 마음이 자리합니다.

oren 2012-10-17 10:07   좋아요 0 | URL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 가운데 한사람으로 꼽을 만한 하이데거 역시 그의 명저 『존대와 시간』이라는 책에서 '세상이 자꾸만 더 좁아지는 경향'을 갈파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가까이 하려는 경향'을 '라디오 방송'을 보고 떠올렸는데 그가 오늘날까지 살아서 '인터넷'이나 온갖 다양한 SNS를 봤더라면 또 어떤 생각을 떠올렸을지 몹시 궁금하더군요.

* * *

가까움에 대한 본질적인 경향

거리를 없앰은 거리를, 다시 말해서 어떤 것의 멂을 사라지게 함을, 가까워지게 함을 말한다. 현존재는 본질적으로 거리를 없애며 존재한다. 그는 그가 무엇인 그 존재로서 그때마다 존재자를 가까이에서 만나도록 해준다. 거리를 없앰은 멂을 발견한다. 이 멂은 거리와 마찬가지로 현존재적이지 않은 존재자에 대한 범주적 규정이다. 그에 반해서 거리를 없앰은 실존범주로서 확고하게 견지되어야 한다. 도대체 존재자가 현존재에게 그것의 멂이 발견되는 한에서만 세계내부적인 존재자 자체에서 다른 것과 관련되어서 "거리"와 간격이 접근 가능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존재자들 가운데 어떤 것도 그것의 존재양식상 거리를 없앨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단지 거리를 없앰에서 발견되는 측정 가능한 간격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거리없앰은 우선 대개 둘러보는 가깝게 함, 조달함으로서의 가까이 가져옴, 예비해놓음, 손안에 가짐이다. 그런데 존재자를 순수하게 인식하며 발견하는 특정한 방식들도 가깝게 함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현존재에는 가까움에 대한 본질적인 경향이 놓여 있다. 우리가 오늘날 다소 강요되듯이 함께 행하고 있는 모든 종류의 속도상승은 멂을 극복하도록 몰아세운다. 예를 들면 "라디오 방송"과 함께 현존재는 오늘날 일상적 주위세계의 확장과 파괴라는 방법으로써 그것의 현존재의 의미를 아직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세계'의 거리를 없애고 있다. (149쪽)

사마천 2012-10-17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트루만쇼라는 영화에서 카메라에 둘려쌓여서 사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웠습니다. 소셜은 어떻게 보면 스스로 드러내는 카메라 같은 역할을 합니다. 페친 하나 맺으니 내가 알고 있는 지인을 다른 사람에게 추천해버리는 의도하지 않는 드러냄을 만듭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점점 벌거벗고 살아가는 모습이죠.. ^^
 

아프리카 속담이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라, 멀리가려면 같이 가라


이는 커리어에도 유사하게 적용된다.


오랫만에 만난 후배가 있었다.

이야기 중에 알던 다른 사람 이야기가 나왔다.

개인적인 능력은 매우 뛰어나지만 주변의 협조를 잘 못 받고 있었다.


나도 그 사람을 알고 있었다.

일이 잘 되면 자신의 역량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스타일이었다.

내가 어떤 도움을 주어 보았는데 제대로 고맙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어 갔다.

세월이 한참 지난 지금 보면 그의 개성은 별로 바뀌지 않았다.


내가 느끼는 걸 그의 주변인들 또한 느꼈으리라.

조직에서 올라갈수록 일회적인 문제해결 능력 보다 주변과의 관계가 더 중요해진다.

덕분에 그에게 시련기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충분히 예견된 일이다.

작은 일을 보면 큰 것도 내다볼 수 있으니 말이다.


참고로 일본의 위인 중 바닥에서 맨 꼭대기 까지 올라간 출세 고수 한명의 철학은 이렇다.

감사는 즉시 과장되게.

그는 심지어 자신에게 도움을 준 사람 바로 앞에서 엎어져서

한참을 그대로 절하는 자세로 있었던 적도 있었다.

상대가 민망해서 일어나게나 하면서 만류해도 고대로.

처세에 뛰어난 사람에게는 그런 일화들이 있기 마련이다.


앞으로는 시련에서 얻은 교훈으로 더 잘 되기를 바랄 따름이다.

교훈에서 배우지 못한다면 계속 오류를 반복할 따름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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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2-10-15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 몬태규는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예의 바른 태도 하나로 모든 걸 살 수 있다"고 말했다던데, 실제로 일본에서 그와 비슷한 위인이 있었군요. 한참이나 엎어져서 절하는 사람을 도대체 어떻게 보살펴주지 않을 도리가 있었겠나 싶습니다. ㅎㅎ

2012-10-17 17: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광해군 - 역사인물 다시 읽기
한명기 지음 / 역사비평사 / 200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광해 보다가 역사적 배경 몇 개가 더 생각나서 적어 보았다.

1. 대동법 이야기
광해군의 주요 업적으로 대동법의 물꼬를 텄다는 점이 거론된다.
한국사 자체만으로 보면 백성들을 위한 중요한 진전이다.

하지만 이러한 진보도 아시아권으로 넓혀보면 상당히 뒤쳐진 모습이다.

당시 중국은 은경제가 매우 활발했다. 
병사들의 급여 등 각종 전쟁비용이 은으로 지급되었고 이를 노리는 군납업자들이 자연스럽게 따라붙어 같이 움직이는 형태였다.
조선에 들어와 그들은 은을 떼어주고 소 등 고기를 가져가려 했으나 은이 유통되지 않은 조선에서는 백성들과 불화가 일어났다.
이를 본 명의 장군들은 조선에게 은광을 개발하고 화폐로 유통시키라고 권했지만 조선의 왕과 대신들은 요지부동이었다.

또한 전쟁의 반대편이었던 일본도 은경제가 매우 활발했다.
당시 일본은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각지의 금과 은광을 개발하고 중국돈을 가져다가 활발히 유통시켰다. 돈이 돌면서 기현상이 발생하는데 적지를 갈 때 모든 물자를 가져가지 않고 돈만 가져가서 현지에서 물자와 노동력을 조달한다. 적의 백성과 백성의 식량을 내것으로 아주 편리하게 끌어다 쓰는 개념이다. 이렇게 돈과 서비스가 교환되면서 서로 간의 유혈충돌은 적어지고 이어서 정복지의 통합도 쉽게 이루어진다.

중국,일본 양쪽이 이런 사회적 진화를 이룬 반면에 조선은 어떠했는가? 여전히 관료와 결탁한 방납업자들의 수탈이 거셌고 이를 유지하려는 로비 등이 커서 무고한 백성들은 등이 휘어지게 되었다.

광해가 대동법을 주도했느니, 미흡했느니 하는 논쟁도 있지만 시야를 넓혀서 
중국과 일본에 비해 왜 뒤떨어졌는지에 대해 고민해봄이 더 의미 있다고 본다.

2. 은은 어떻게 도는가?
은이 오가는 과정에서는 몇가지 계기가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대규모 은광의 개발이다. 남미 대륙의 발견으로 스페인을 통해 은이 쏟아져 들어왔고 일본도 자체 은광 개발에 성공했다. 은과 반대로 산물이 쏟아져 나오는 원천은 중국이었다. 차,비단,도자기 등 다양한 수출품을 내주고 은을 받아서 이를 내부적으로 활용함으로 중국은 대호황을 누렸다.
일본이 은을 내주고 주로 도입한 것은 무기류가 있었다.
총이 다네가시마라는 큐슈 남쪽 섬을 통해 처음 도입되었는데 대량 확보를 위해서, 또 특히 화약류의 도입을 위해서 은이 큰 역할을 했다.
이때 은 제련 기술의 진보를 가져온 사람이 바로 조선에서 넘어간 기술자였다. 검동이라고 하던가?

나중에 일본 은이 줄어들자 대체품으로 개발한 것이 도자기였다.
그 도자기의 개발은 잘 아시는대로 조선의 도공이 주요한 역할을 한다.

여기서의 교훈은 자명하다. 
기술의 흐름을 막기는 어렵다. 기술을 잘 쓰면 사회가 진보한다.
그래서 눈과 귀를 열고 세계에서 다양한 사람을 받아들이는 개방정신이 중요하다.
반대로 우리 기술자를 제대로 대우 해야 한다.

3. 지배층 교체 불발

패전은 보통 긍정적 효과를 가져온다. 이는 기존의 무능한 지배층을 일소하는 효과다.

무능해져서 패전을 가져왔고 그 결과 다시 지배층이 뒤집어지거나 대체되는 현상이 나타나야 한다.

고려가 왜 단숨에 무너져내렸는지를 살펴 보면 당대 지배층이 원과 결탁해서 인척관계로 성장한 집안이 다수 차지했기 때문이다. 연고로 성장한 사람들은 무능하다.

그들이 막대한 장원을 가졌지만 무능했기 때문에 이성계를 필두로 한 신진세력의 공격에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고 숙청되었다.

이는 한나라 여태후의 사망 이후 친족들이 몰살당하는 것과 비교될 수 있다.


그런데 임란은 외부적 요인에 의해 이 지배층이 유지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서울에서 지배층이 빠져나갈 때 노비들이 들고 일어나는 등 사회혁명이 역역했지만 전쟁의 양상이 바뀌면서 이런 개혁 노력은 이어지지 못했다. 

전세가 유리해지자 선조가 주안점을 둔 점은 의병장들의 고문과 축출이었다. 지방 세력화하는 걸 경계해서 이들을 중점적으로 견제했다. 

다시 중국과 비교해보면 황건적의 난 토벌 이후 그 주도 세력들이 나중에 난세의 영웅으로 성장한 예와 비교 될 수 있다.


그 결과 조선의 임금과 사대부들은 역사의 교훈을 제대로 얻지 못했다.


기술이 왜 중요한지, 사회제도가 왜 중요한지를 알게 되고 이를 실마리로 앞날을 풀어야 하는데 그런 진보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4. 이 시대는 참 안타까운 일이 많았다.

수업료를 냈으면 배우기라도 제대로 해야 하는데 그렇지도 못했다.

그 논란은 또 다른 전쟁을 불러 정말 참담한 패전 속에서 조선이 후퇴하고

신민이 고초를 겪으며 나중에는 역사의 퇴보로 이어지게 된다.

더 치열한 논쟁 속에서 공부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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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 - 역사인물 다시 읽기
한명기 지음 / 역사비평사 / 200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잘 만든 영화다. 해외로 수출 되면 한류의 내실화에 기여를 할 수 있을 만한 작품이다.
몇가지 각도에서 살펴보겠다.

1. 사람을 바꿔치는 수법을 쓴 영화가 몇 편 있었다

구로자와 아키라의 <가케무사>
<마르텡 게르의 귀환>
<써머스비> 등이 그것이다.

사람이 바뀌면 위험도 묘미도 있다

바꾸려는 사람은 당연히 원래 보다 더 높은 사람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처음에는 익숙치 않지만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된다. 그래도 계속 가지는 못하고 마지막에는 확 뒤집어 지는 반전을 제공한다.

바뀌는 자에 대한 주변의 평가는 호의적이다. 왜냐면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가장 쉬운 길은 정서적인 면이다.
그는 주변 사람에 잘 대한다. 이전과는 달리 말이다.
작은 일에도 함께 생각해준다.

덕분에 처음에 혼선이 생긴다
그러나 일정 시간 지나면 팬이 생긴다.
그래서 또 관객을 고심하게 만든다.

사람들이 헷갈릴 때 정답을 찾는 방법에는 고전적인 공식이 있다
몸에 난 특징을 보는 것이다.
두 사람만 아는 은밀한 그 무엇을  기억해내라고 하는 것인데
이는 아주 머나먼 옛날부터 쓰이던 방법이다.
오딧세이가 돌아오자
반신반의하는 사람들에게 이 방법으로 믿음을 준다
하녀에게는 멧돼지 사냥에서 난 상처를 보여준다.
가장 의심이 많았던 부인에게는 침대가 산나무 가지에 걸려 있다는 비밀 퀴즈를 통과해서야 확신을 줄 수 있었다.

이러한 수법은 이 영화에서도 반복적으로 사용된다

광해는 처음에는  
덜익숙하여서 여러가지 웃음을 만들어낸다.
점점 익숙해지고  뒤로갈수록 자율적으로 움직이고
나중에는 제멋대로 몇가지를 해낸다
목숨은 하나인데 그걸 걸고 머무는 자리라면 뭔가 멋지게 해보고 싶은 자연스러운 욕구도 있지 않았을까?

가케무사도 마찬가지였고
서머스비에서도 주도적으로 일을 하다가 마침내 사고가 난다.
가면을 쓰고 지내다가도 결국은 의식이 내면화되면서 그 삶을 직접 살려고 한다
가짜가 진짜가 되고
진짜가 가짜가 되는 묘한 변환이다.
영화 광해는 그런 미묘한 심리와 해프닝들을 잘 묘사하고 있다.


2. 다시 영화로 가보자
권력을 만들어간 인물들을 보면 묘한 특징들이 있다
부하들이 목숨을 걸게 만드는 것이다
캐사르의 운명이 걸린 결전이었던 파르팔로스 전투에서 
백부장 한 명은 막 진군하면서 캐사르에게 오늘 장군이 감동할 정도로 싸워보겠다고 했다. 그는 그렇게 전투를 이기고 목숨을 잃었다. 
김유신은 백제군의 결사항전에 막히자 화랑들을 차례로 투입시킨다. 
또 전쟁에서는 그런 모습이 다양하게 보여진다

영화속에서는 기미상궁과 호위무사가 그런 역할을 한다
짧은 시간속에서도 누군가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면
그는 능히 군주가 될 수 있으리라.

왜냐하면 목숨은 하나이기에 단순한 의무만 가지고 쉽게 되지는 않는다
인정해준 자에 대한 보답이 있는데
선비는 알아준 이를 위해서 죽는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 권력의 속성 하나를 여기서 잘 보여주었다.

3. 광해군에 대한 역사적 평가
한명기 교수의 광해군이 워낙 뛰어난 책이었다
최근에 다른 분이 광해군은 폭군이었고 비판 받는 것이 맞다는 논지의 책을 내셨다
광해군이 그런 임금이라면 뒤엎고 자리를 차지한 인조는 어떠한 인물인가
전쟁을 두 차례 부르고
아들을 독살한 인물이고
개혁 보다 폐쇄로 나간 역사에서 배우지 못한 군주다
병자호란이라는 거대한 패배가 남긴 트라우마는 매우 커서 쉽게 잊혀지지도 않고
북벌이라는 공허한 구호로 국력을 또 소모하게 만들었다.
결국에는 근대로 나아가는 길을 막으면서 식민지로의 전락 까지 이어지게 되지 않았을까 한다.

그 길 보다는 광해군의 통치가 낫지 않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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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2-10-12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광해라는 영화는 이병헌만으로도 충분히 볼만하다고 하는데, 이런 묘미까지 더한다면 안볼 수가 없겠죠. 그런데 오늘 아침에 cj에서 과도한 1+1 행사를 한다고 하더군요. 천만 영화를 만들기 위하 오버액선 같습니다. 이런 일이 영화를 망치지나 않을까 생각이 드네요.

사마천 2012-10-13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있게 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역사를 알면서 영화를 보면 더 좋다는 생각에 몇 자 적었습니다. 그리고 역시 이 책 한명기 교수님의 광해군은 걸작입니다.. 알수록 재미가 느껴지는 세상입니다.. ^^
 
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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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강남의 이미지는 쿨하다. 마천루와 닮은 타워팰리스, 넓직한 도로로 고급스러운 차량이 달리고 럭셔리 상품들과 맛집이 모여 있는 공간이다.

이곳은 원래부터 이러했을까?

멀리 조선으로 내려가 보면 이곳에는 무덤 하나가 만들어졌다. 선정릉이라고 지금 이름지워진 이 무덤은 힘 좋은 왕비가 만들어 놓고 자신은 들어오지 않았다. 이유는 가끔 일어나는 물난리였다.
실제 최근에도 강남역, 대치동 등 지대가 낮은 지역에는 물난리가 난 적이 있다.
이런 땅이 확 개발된 계기는 한강 상류의 댐 건설이었다. 계획 단계에 참여 했던 정주영 회장이 다녀오자 마자 땅을 사모은 곳들이 지금 현대라는 이름이 붙은 아파트,백화점,아이파크 등 자리들이다.
이걸 보고 아하라고 말하며 그 사람은 뛰어나구나 하고 감탄하는데 머무는 사람은 보통사람이다. 누군가 잘 하는 사람이 있으면 빠르게 따라 붙어야 한다.
정보는 곧 돈인데 막 바로 행동하지 않는 자에게는 그냥 지나가는 이야기일 뿐이다.
하여간 이렇게 강남 이라는 신도시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돈이 쏠리고 기회를 노리는 사람들의 쟁투가 벌어지고 벼락 부자가 만들어진다.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각기 머리,주먹,미모 등 한 가지를 가진 사람들이다.
재주가 있는 사람들이 뛰어다니는 이 시대의 강남은 서부개척 시대의 모습이다.
잠시 머물로 서부영화에 나타나는 모습을 그려보자.
목장의 카우보이, 술집의 왁자지껄임, 그리고 가끔 행패부리는 폭력배와 이를 막는 보안관의 싸움이 보인다. 수컷들의 자존심 다툼은 종종 결투로 이어지고 목숨을 걸고 다투게 되는 운명을 가진 이들을 넌지시 바라보는 술집 이층의 매춘부의 시선이 묘한 느낌을 준다.  
이 시대는 자연스러움 그 자체. 곧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모습이다. 사회적 가치,양심이 아니라 각자의 힘으로 자신을 지켜야 하는 냉정한 세계다. 약자는 그냥 총을 맞고 쓰러져 옆으로 밀려 나갈 뿐이다. 이긴자가 바로 정의인 세상이 바로 이 시대다.

다시 강남으로 시선을 돌아보자.
7,80년대의 한국에서 가장 강한 것은 무력이었다.
최고권력자의 의지는 헌법을 뒤집었고 자신의 방식을 강제하게 된다. 이를 뒷받힘하는 힘은 바로 군과 경찰로 대표되는 공권력이었다. 그리고 초법적인 안기부라는 권력과 더해서 조폭이라는 밤의 권력이 있었다.
소설에서 나온 권력자의 모습은 머릴 일제시대 정보경찰로 까지 이어진다. 방첩대,안기부를 이어서 현대로 나타나는 그의 모습을 통해 한반도에서 비밀스러운 정보활동이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보여준다.
총을 중심으로 한 국가권력의 반대편에는 맨주먹을 기반으로 한 조폭의 모습이 있다.
작가는 이 부분에 대해 매우 긴 뿌리를 추적한다. 덕분에 조폭사를 길게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주먹은 주먹끼리 통한다고나 할까? 힘을 발휘하는 수컷들은 그 나름의 멋을 부리며 행세를 했다.
여기에 슬쩍 술집 작부의 모습이 비추어진다. 서부의 주막처럼 이곳에서도 남자의 자랑을 들어주는 이해심 많은 아낙이 필요하다.
가난한 시골에서 서울와 돈벼락을 맞는 기회를 잡은 그녀는 행운아였다.
역전에서 골목 미싱에서 공단의 침침한 공장에서 청춘을 보내야 했던 다른 이들은 얼마나 많았던가.

이렇게 화려했던 공간에 충격파가 온다. 바로 범죄와의 전쟁이었다. 덕분에 세상은 조용해졌다. 화려한 쇼가 끝나고 재미 없는 세상이 된다.
소위 총과 주먹의 시대는 끝나간다.
무력이 있다면 세상을 어찌 못하겠는가? 그들이 가리키면 그것이 바로 새로운 규칙이 된다. 난리통에는 모두가 자신의 보전, 생명을 지키는데 총력을 다 하고 그것이 최고의 미덕이다.

하지만 이제 난리가 끝나고 질서가 세워지니 돈이 말을 한다.
자신의 자리에서 권리를 확보한 이들은 더 기회를 쫓는 이들에게 세를 주고 권리금으로 누리면서 산다. 그런 이들이 점점 많이지면서 재능과 누림은 분리되고 새로운 지주와 소작농이 탄생한다. 신봉건화가 진행된 것이다.

이곳에 땅을 가지고 농사를 짓던 사람의 자식이 있다. 학교에서는 열등생이었지만 지금은 건물의 주인이다. 월세의 합은 곧 봉건시대의 연금과 같은 역할을 한다. 제인 오스틴이 그려낸 <오만과 편견>의 다이시 같은 지주가 된 것이다.

원래 뿌리가 없던 땅에 새롭게 세워진 질서 덕분에 이곳에서는 과시가 나타난다. 마치 프랑스 혁명 이후 부르조아의 귀족 닮기 유행 처럼 말이다.
돈 자체를 보여주기 위한 과시는 집,가구,겉차림 등으로 나타난다.
종종 과하게 나타나면서 벽을 만들어낸다. 너는 이 정도는 안되지? 묻는 태도다.

이러한 변화의 속도 덕분에 부작용도 나타난다. 바로 성수대교와 삼풍의 비극이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이곳에서 운명을 마감하게 된다. 희생자로서 혹은 건물주로서 말이다. 
급조된 것은 기반이 약하다. 하지만 그건 불운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운이 좋은 이들은 그냥 가면 된다. 그들은 변신을 위해 하나의 결정을 한다.

지금 사는 곳은 불안하니 거주지를 다 허물고 새로 짓자고 나선다. 재건축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공간은 벽을 두루고 카메라를 달고 경비를 엄히 세운다. 그것도 또 하나의 봉건적인 모습이 된 것이다.

소설은 강남의 화려한 모습의 속살을 헤집고 다닌다. 시선은 사람들의 겉에 머무는 데 만족하지 않고 그 깊은 시간의 근원을 탐구해간다. 내려가 볼 수록 그 시작의 미약함을 발견하게 되지만 끝의 모습이 보여주는 창대함에 감탄이 만들어지게 된다.
강남스타일, 이제 지구촌 곳곳에 비추어지는 이곳의 모습들과 소설이 그려내는 과거의 모습을 포개보는 건 또 하나의 묘미다.

무에서 유로, 부수고 다시 만듬이 당대에 이루어지는 이 급박한 변화속에서 우리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치열하게 때로는 처절하게 가진 것을 가지고 더 많은 것을 쟁투하려던 이들의 모습을 본다. 한명 한명의 최후는 쓸쓸했지만 그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오늘 우리는 더 못한 모습을 보았으리라.

꿈이란 허망할수도 있다. 욕심일수도 있다. 그렇지만 소중하다. 사람은 꿈이 있을 때 더 열심히 뛰기 때문이다. 그런 꿈들의 추억으로 이 소설을 이해하자. 
강남에서 꾸어진 꿈들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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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2-10-11 0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남'에 대해 참 많은 것들을 다시금 떠올리게 만드는 글이네요.

대학1,2학년때 강남 한복판에 살았던 '첫사랑 그녀'를 만나러 '강북'의 대학가에서 그 먼 길을 '버스 타고' 숱하게 오고 갔던 기억도 나고, 군 입대후 첫 휴가 나와서('83년) 대학친구 만나러 (군복차림에 군화를 신고) 방이동 아파트단지를 찾아갈 때 사방팔방이 진흙탕에 온통 공사중이었던 기억도 나고요. ㅎㅎ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한때 '벤처펀드'를 운용하면서 '테헤란로' 주변의 온갖 벤처기업들을 찾아다녔던 일(지금은 수조원대로 성장한 'NC소프트'와 '다음'이라는 회사가 제가 찾아가봤을 때만해도 종업원이 20-30명에 사무실도 고작 몇십평 쓰고 있었다는...ㅎㅎ), IMF 이후 졸지에 큰 부를 움켜잡은 몇몇 지인들과 '강남의 술집들'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일들도 어느새 '옛일'이 되었네요.

'강남부자들'과 가까이 부대껴보겠노라 8년에 가까운 세월을 [일산↔강남]으로 출퇴근했던 고된 일과도 떠오르고요. ㅎㅎ

강남은 앞으로도 꾸준히 타지역과는 사뭇 차별화된 변화와 발전과 성숙을 보여주리라 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바라고 싶은 한가지는 '강남' 또는 '강남스타일'이 통상적으로 불러일으키는 다소 부정적인 이미지에서 좀 더 빨리 벗어나서, '뉴욕'이나 '파리' 혹은 '런던' 같은 세계적인 대도시가 지니고 있는 세련되고도 독특한 '문화적 깊이'를 갖췄으면 하는 점입니다. 그런 스타일이 제대로 자리잡는다면 지금의 '강남스타일'을 벗어나 진정 아름다운 '서울스타일'로 성숙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을테니까 말입니다.

암튼 '강남'은 이 땅에 사는 우리 모두의 화두이자, 어느덧 세계인의 화두일 수밖에 없는 중요한 무대로 자꾸만 변모하고 있다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saint236 2012-10-11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재 강남의 이미지인, 소비와 향락이라는 이미지는 하루 이틀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겠지요. 강남 스타일의 이미지도 결국은 쿨함 속의 소비와 향락이겠지요. 오렌님의 말처럼 강남이 세련되고 문화적인 이미지를 가지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자기만의 성을 쌓고, 서울의 대부분의 사람들과 자신을 차별화하는 모습을 보면서(물론 이것이 강남의 전부는 아니지만 힘있는 이들이 가지고 있는 태도인 것은 분명합니다) 소비와 향락의 도시로 지속적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강남스타일을 외국 사람들의 발음을 들으면 고담스타일로 들리는데 매우 의미심장하더군요.

사마천 2012-10-11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고담, 베트맨이 떠올려지네요. 요즘 강남 압구정동을 지나면서 뉴욕 센트럴파크 사이드와 많이 비슷해졌다는 느낌을 가집니다. 5번가의 화려함 만큼은 아니지만 웨스트사이드의 아담한 맛집 비슷한 것들이 들어서네요. 워낙 단시간에 만들어진 변화를 누구는 긍정하고 누구는 부정했습니다. 지금은 좀 여유를 가지고 볼 때가 된 듯합니다. 강준만의 강남이야기, 황석영의 강남몽 두 책 모두 작가분의 독특한 시각과 함께 즐거운 독서 경험이 되더군요.. 두 분의 관심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