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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평점 :
현대의 강남의 이미지는 쿨하다. 마천루와 닮은 타워팰리스, 넓직한 도로로 고급스러운 차량이 달리고 럭셔리 상품들과 맛집이 모여 있는 공간이다.
이곳은 원래부터 이러했을까?
멀리 조선으로 내려가 보면 이곳에는 무덤 하나가 만들어졌다. 선정릉이라고 지금 이름지워진 이 무덤은 힘 좋은 왕비가 만들어 놓고 자신은 들어오지 않았다. 이유는 가끔 일어나는 물난리였다.
실제 최근에도 강남역, 대치동 등 지대가 낮은 지역에는 물난리가 난 적이 있다.
이런 땅이 확 개발된 계기는 한강 상류의 댐 건설이었다. 계획 단계에 참여 했던 정주영 회장이 다녀오자 마자 땅을 사모은 곳들이 지금 현대라는 이름이 붙은 아파트,백화점,아이파크 등 자리들이다.
이걸 보고 아하라고 말하며 그 사람은 뛰어나구나 하고 감탄하는데 머무는 사람은 보통사람이다. 누군가 잘 하는 사람이 있으면 빠르게 따라 붙어야 한다.
정보는 곧 돈인데 막 바로 행동하지 않는 자에게는 그냥 지나가는 이야기일 뿐이다.
하여간 이렇게 강남 이라는 신도시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돈이 쏠리고 기회를 노리는 사람들의 쟁투가 벌어지고 벼락 부자가 만들어진다.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각기 머리,주먹,미모 등 한 가지를 가진 사람들이다.
재주가 있는 사람들이 뛰어다니는 이 시대의 강남은 서부개척 시대의 모습이다.
잠시 머물로 서부영화에 나타나는 모습을 그려보자.
목장의 카우보이, 술집의 왁자지껄임, 그리고 가끔 행패부리는 폭력배와 이를 막는 보안관의 싸움이 보인다. 수컷들의 자존심 다툼은 종종 결투로 이어지고 목숨을 걸고 다투게 되는 운명을 가진 이들을 넌지시 바라보는 술집 이층의 매춘부의 시선이 묘한 느낌을 준다.
이 시대는 자연스러움 그 자체. 곧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모습이다. 사회적 가치,양심이 아니라 각자의 힘으로 자신을 지켜야 하는 냉정한 세계다. 약자는 그냥 총을 맞고 쓰러져 옆으로 밀려 나갈 뿐이다. 이긴자가 바로 정의인 세상이 바로 이 시대다.
다시 강남으로 시선을 돌아보자.
7,80년대의 한국에서 가장 강한 것은 무력이었다.
최고권력자의 의지는 헌법을 뒤집었고 자신의 방식을 강제하게 된다. 이를 뒷받힘하는 힘은 바로 군과 경찰로 대표되는 공권력이었다. 그리고 초법적인 안기부라는 권력과 더해서 조폭이라는 밤의 권력이 있었다.
소설에서 나온 권력자의 모습은 머릴 일제시대 정보경찰로 까지 이어진다. 방첩대,안기부를 이어서 현대로 나타나는 그의 모습을 통해 한반도에서 비밀스러운 정보활동이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보여준다.
총을 중심으로 한 국가권력의 반대편에는 맨주먹을 기반으로 한 조폭의 모습이 있다.
작가는 이 부분에 대해 매우 긴 뿌리를 추적한다. 덕분에 조폭사를 길게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주먹은 주먹끼리 통한다고나 할까? 힘을 발휘하는 수컷들은 그 나름의 멋을 부리며 행세를 했다.
여기에 슬쩍 술집 작부의 모습이 비추어진다. 서부의 주막처럼 이곳에서도 남자의 자랑을 들어주는 이해심 많은 아낙이 필요하다.
가난한 시골에서 서울와 돈벼락을 맞는 기회를 잡은 그녀는 행운아였다.
역전에서 골목 미싱에서 공단의 침침한 공장에서 청춘을 보내야 했던 다른 이들은 얼마나 많았던가.
이렇게 화려했던 공간에 충격파가 온다. 바로 범죄와의 전쟁이었다. 덕분에 세상은 조용해졌다. 화려한 쇼가 끝나고 재미 없는 세상이 된다.
소위 총과 주먹의 시대는 끝나간다.
무력이 있다면 세상을 어찌 못하겠는가? 그들이 가리키면 그것이 바로 새로운 규칙이 된다. 난리통에는 모두가 자신의 보전, 생명을 지키는데 총력을 다 하고 그것이 최고의 미덕이다.
하지만 이제 난리가 끝나고 질서가 세워지니 돈이 말을 한다.
자신의 자리에서 권리를 확보한 이들은 더 기회를 쫓는 이들에게 세를 주고 권리금으로 누리면서 산다. 그런 이들이 점점 많이지면서 재능과 누림은 분리되고 새로운 지주와 소작농이 탄생한다. 신봉건화가 진행된 것이다.
이곳에 땅을 가지고 농사를 짓던 사람의 자식이 있다. 학교에서는 열등생이었지만 지금은 건물의 주인이다. 월세의 합은 곧 봉건시대의 연금과 같은 역할을 한다. 제인 오스틴이 그려낸 <오만과 편견>의 다이시 같은 지주가 된 것이다.
원래 뿌리가 없던 땅에 새롭게 세워진 질서 덕분에 이곳에서는 과시가 나타난다. 마치 프랑스 혁명 이후 부르조아의 귀족 닮기 유행 처럼 말이다.
돈 자체를 보여주기 위한 과시는 집,가구,겉차림 등으로 나타난다.
종종 과하게 나타나면서 벽을 만들어낸다. 너는 이 정도는 안되지? 묻는 태도다.
이러한 변화의 속도 덕분에 부작용도 나타난다. 바로 성수대교와 삼풍의 비극이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이곳에서 운명을 마감하게 된다. 희생자로서 혹은 건물주로서 말이다.
급조된 것은 기반이 약하다. 하지만 그건 불운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운이 좋은 이들은 그냥 가면 된다. 그들은 변신을 위해 하나의 결정을 한다.
지금 사는 곳은 불안하니 거주지를 다 허물고 새로 짓자고 나선다. 재건축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공간은 벽을 두루고 카메라를 달고 경비를 엄히 세운다. 그것도 또 하나의 봉건적인 모습이 된 것이다.
소설은 강남의 화려한 모습의 속살을 헤집고 다닌다. 시선은 사람들의 겉에 머무는 데 만족하지 않고 그 깊은 시간의 근원을 탐구해간다. 내려가 볼 수록 그 시작의 미약함을 발견하게 되지만 끝의 모습이 보여주는 창대함에 감탄이 만들어지게 된다.
강남스타일, 이제 지구촌 곳곳에 비추어지는 이곳의 모습들과 소설이 그려내는 과거의 모습을 포개보는 건 또 하나의 묘미다.
무에서 유로, 부수고 다시 만듬이 당대에 이루어지는 이 급박한 변화속에서 우리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치열하게 때로는 처절하게 가진 것을 가지고 더 많은 것을 쟁투하려던 이들의 모습을 본다. 한명 한명의 최후는 쓸쓸했지만 그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오늘 우리는 더 못한 모습을 보았으리라.
꿈이란 허망할수도 있다. 욕심일수도 있다. 그렇지만 소중하다. 사람은 꿈이 있을 때 더 열심히 뛰기 때문이다. 그런 꿈들의 추억으로 이 소설을 이해하자.
강남에서 꾸어진 꿈들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