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 경제 - 부의 분배 메커니즘을 해부하다 화폐전쟁 5
쑹훙빙 지음, 홍순도 옮김, 박한진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우리는 새로운 규칙에 적응해야만 했다.

한편에서는 공포스러운 현실이 지나갔고

좀 지나니 위기가 기회라고 사상 최대의 무역흑자가 나고 있다.

고개를 들어 머리 위 세상을 쳐다 보면 놀라운 마법사가 희한한 마법을 부리고 있었다.

일을 다르게 하기는 어려워도 말을 다르게 만들기는 쉬운 것 같다.

양적 완화, 테이퍼링 등 현란하게 쏟아져 나오는 단어들의 내용은 잘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미국의 부동산은 올라주고 실업률도 떨어져주고 주가는 사상 최고로 올라간다.

그럼 모든 문제는 잘 해결된 것인가?

화폐전쟁의 새로운 책은 여기에 대해 생각을 더 해보라고 자극을 준다.

저자는 우리를 여러 곳으로 데려간다.

먼저 월가의 채권 트레이딩 룸이다. 여기서 마켓메이커와 큰 손들이 서로 주고 받으면서 금리를 결정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장면이 더 궁금한 분들께는 <마진콜>이라는 영화를 추천드린다.

전화로 수십억불의 채권 거래를 성사시키며 막대한 보너스를 챙기던 이들이 어느날 갑자기 시장을 아예 망가뜨려버리자고 나서는 장면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다.

버냉키의 언론쇼, 좀 지나서 FRB의 전산에서 한 줄 입력이 되면 은행들 계좌에 막대한 금융 머니가 입고된다. 그리고 이 돈이 돌고 돌아 <겨울왕국>에 온기를 퍼트리는 마법이 이루어진다.

엘사가 따로 있나? 버냉키가 엘사와 같은 마법사다.


이제 저자는 우리를 로마와 송나라로 데려간다.

두 거대 제국의 몰락의 원인과 과정을 소소하게 보여주면서 자연스러운 결론으로 유도한다.

화폐는 마법이지만 남용하면 독이 되어 자신을 망가뜨린다는 것을..

로마와 송 모두 금융 과두의 등장이 사회를 황폐화시켰다는 점을 잘 보여주었다.

왕안석은 늘 논란이 있던 인물인데 이 책을 통해 그의 개혁에 대해서 확고한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이런 비판에는 현대 미국은 물론이고 중국 또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시진핑이 처음 들어와서 확 퍼져나간 단어가 <중국몽 = 차아니 드림>이다.

꿈은 처음에는 좋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 꿈 자체만 쫓아가게 된다.

수단은 사라지고 결과만을 갈망한다.

한국 드라마 <별그대>가 중국에서 더 인기를 끌었던 것이 과연 좋은 현상일까?

우주인이나 만족시켜줄 수 있는 거대한 꿈을 모두 꾸는 것이 타당한 일인가?

꿈만 커진 사회의 뒤안에는 엄청난 투기, 땅장사로 돈을 쌓고 있는 중국 정부 등 부정적인 면들이 잇달아 드러난다.


앞날은 어떻게 열릴 것인가?

미국이 금융정책을 어떻게 조종해가면서 비행기를 바닥에 추락시키지도 위로 올려 태풍에 휩쓸리지도 않게 할 지는 잘 모르곘다.

높이면 인플레, 낮추면 디플레라는 양날 사이를 위태위태 걸어가야 하는 운명이 쉽게 보여지지는 않는다.


중앙은행장들의 마법은 버냉키에 이어서 아베노믹스를 탄생 시켰다. 그 바람에 한국에서도 뭔가 해보자는 식으로 초이노믹스가 탄생했다.

배당기대감으로 올라가는 주식은 미국의 자사주 매입에 따라 올라가는 모양새와 너무나 비슷하다. 기업에게 돈의 가장 큰 목적은 투자일 것이다. 기업은 모험을 하도록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배당과 자사주매입은 오직 주주만을 위하는 듯 보여진다.

이 마법이 겨울왕국 처럼 해피엔딩으로 끝날지는 두고 볼 일이다.

현실은 <겨울왕국> 보다는 <마진콜>에 더 가깝지 않을까?

갑자기 피케티가 떠오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블루레이] 세이빙 미스터 뱅크스
존 리 핸콕 감독, 톰 행크스 외 출연 / 월트디즈니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월터 디즈니와 메리 포핀스 작가 트래비스의 만남.

영화 트레일러는 디즈니가 트래비스를 디즈니랜드를 직접 구경시켜주는 장면을 보여준다.

우와 디즈니랜드도 영화속이지만 잘 볼 수 있구나. 

기대가 컸다.

특히 그 속에서의 두 문화 천재의 만남이라면 놀랍겠구나 하고 참 유쾌한 영화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 영화는 달랐다.


위대한 창조물 보다는 창조를 이루어 내는 사람 자체에 초점을 맞추었다.


창조자는 실제 자기 스스로는 즐겁지 않은 경우가 매우 많다.

이는 개그맨들, 특히 개콘에 나오는 이들의 방담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잘 만들어진 작품은 매우 치열한 고민의 산물인 경우가 많다.

덕분에 이들은 고독 속에서만 살아 가야만 하는 운명을 이어간다.

골방 속의 천재.

특히 고통을 안고 사는..


트래비스의 출신은 아일랜드. 영국에서 차별 받는 2등 시민.

어려서 호주에서 살았는데 이곳은 사실 범죄인들을 방출했다가 만들어진 공동체였다.

그 속에서의 그녀의 삶은.. (영화를 보시면 자세히)


그녀가 영화사를 만났을 때 일들이란 결코 순조롭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의 마음을 열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또 한 명의 고독한 천재 디즈니였다.

시대를 뛰어넘는 미키마우스라는 캐릭터를 만들고 상업적으로도 훌륭하게 성공한 디즈니에게도 아픔은 있었다.

 

디즈니는 바닥에서 사업을 이루었기에 micro management를 할 줄 알았다.

아주 작은 것도 그의 손을 거쳐 만들어졌기에 그는 매우 꼼꼼한 관리자였다.

음악 하나 가사 하나, 의상, 캐릭터.. 

시대를 뛰어넘어 오래 남는 영화는 그냥 잘 해봐라라는 말을 입에 담는 경영자의 손에 의해서 완성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영혼의 상처를 알아보기에 공감도 같이 끌어낼 수 있었으리라..


참고로 메리 포핀스 영화를 가지고 은행에 대해서 논 해보는 책을 잠깐 본 적이 있었다. 영화를 보니 실제 은행 이야기가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오즈의 마법사도 은행이야기가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 동화로 녹아든 금융이라는 주제가 머리에 스쳤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얀거탑 세트 - 전4권
야마자키 도요코 지음, 박재희 옮김 / 청조사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2014년 하반기 장안의 히트 상품은 <장보리>다.

악과 선의 대결이 주종으로 무려 3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연초의 <별그대>에 이어서 두 번째로 나의 관심을 끈 드라마다.

덕분에 몇 줄 소감을 적어 보려고 한다.

 

처음 든 생각은 개콘의 박대표였다.

<시청률의 제왕>에서 맹활약한 박대표의 어투가 생각났다.

출생의 비밀,죽여,살려,알고 보니 법인은 엄마였어..

쉬지 않고 던져지는 그의 신공 덕분에 시청률은 바닥에서 공중으로 튀어나간다.

그의 비법은 집중 강타와 현란한 반전이다.

내려오면 때려서 올려 세우는 것이 반전이고 한번 올랐을 때 연달아 내놓는 것이 집중이다.

 

드라마에 푹 빠져있는 주변인들에게 개콘과 겹쳐서 보개 하면 아 그렇구나 하고 끄덕인다.

내가 왜 이런 수고를 해야 할까?

그건 이 드라마가 개콘과 겹친 덕분에 나의 즐거움을 잡아 먹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 이건 한 마디로 <박대표>야 하고 외쳐보지만 끄덕임은 잠시 다시 시선은 <장보리>로 간다.

 

그래서 한번 작품을 분석해보기로 했다.

작품 속에는 두 개의 신데렐라 스토리가 나온다.

하나는 연민정의 신데렐라다.

가난한 집 딸에서 고아로 변신해서 호적세탁하고 유학가서 실력 닦고 재벌집 아들과 결혼하는 전형적인 신데렐라다.

또 하나는 장보리의 신데렐라다.

중졸의 학력에 검사를 남편으로 맞고 헤어진 가족도 찾아서 말년의 행복이 눈에 선하다.

하나의 신데렐라가 탄생하려면 앞의 신데렐라를 무너뜨려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선이 악을 이기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시야를 약간 넓혀보자.

양모와 시모 둘 다 연민정에게 약점이 잡혀 있다.

둘 다 악착같이 신분상승을 하고 온갖 술수 심지어 범죄를 저질러서 그 자리를 쟁취하였다.

톡 깨놓고 연민정이 아무리 악녀라고 해도 살인 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기껏해야 유괴 약취에 경력세탁 아닐까? 그걸로 감옥은 가도 사형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반면에 양모와 시모는 살인에 준하는 죄를 지었다.

 

그런데 왜 연민정만 비난 받을까?

압축 성장 시대에는 신화가 많았다.

규칙이 없을 때 휙 남의 것을 가로챈 경험은 매우 많다. 6.25 전후를 해서 남의 재산과 호적을 가로챈 사례는 매우 매우 많다. 그것이 신화의 배경이다.

양모와 시모 또한 그러한 신화에 묻어가고 일부를 자기 손으로 실행한 존재들이다.

하지만 그 신화는 이제 반복되기 쉽지 않다.

연민정은 어느 정도의 악은 행했다 하지만 비난의 집중 포화를 맞는다.

기록의 도구들이 그녀의 발목을 잡는다.

USB, 전화기의 녹음 파일, 위치 추적 등 이제 사회는 기술 덕분에 점점 투명해진다.

흐릿하면 눈감아 줄 수 있는 것들이 생생하게 앞에 드러나는 순간 신화는 꺠져나간다.

급성장이란 차별화된 방법이고 그 방법의 상당수는 남의 것을 가로채는 것이다.

기업의 경영과 비유하면 독점 기업이 그렇다.

하지만 이제 연민정에게 그 여유는 허락되지 않는다.

그녀의 도약은 적을 만들고 비난의 포화 속에 무너져가고 있다.

이런 연민정은 꽤 현실적이고 우리 주변에서 발견되는 캐릭터다. 개연성은 꽤 된다.

 

반면 장보리라는 캐릭터는 뭘까?

흐릿하고 우연적이다.

즉 비현실적 캐릭터다.

논리도 매우 개연성이 떨어진다.

듀오에 가서 물어보라 중졸을 검사가 선택할 확률이 몇 프로일까?

나도 남의 꿈을 비웃을 수는 없지만 현실적으로 가능성은 매우 드물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한다.

 

그럼 드라마의 주인공은 왜 현실 보다는 비현실성에서 나올까?

현실의 신데렐라를 찬찬히 까보면 범죄에 가까운 놀라움들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신정아라는 미술계의 신데렐라의 추락을 한번 떠올려보자.

다 까보면 너무 추악해지니 적당히 올라가고 적당히 바라보면 괜찮은 노력자구나 할 캐릭터였다.

장보리는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나와 가능성이 크다는 시청자들의 공감을 더 끌어내준다.

막상 현실에서 이기려면 연민정 식 길이 더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도전하려면 이를 악다물어야 한다.

그래서 비현실적인 장보리를 보면서 푸근함을 느끼는 길을 선택한다.

행운이 나에게 돌아오기를 바라면서 보는 것이 더 쉽고 편하기 때문이다.

 

성장시대가 끝난 지금 어머니 세대의 약간을 흉내내었음에도 차갑게 내몰리는 연민정의 어려움에 얼마간 연민을 느꼈다.

드라마는 떴고 광고는 다 장보리에게 몰린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머리에 오래 남을 캐릭터는 연민정이 되지 않을까?

 

이 드라마와 가장 유사하게 느낀 캐릭터는 <하얀거탑>의 주인공이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데릴사위로 부잣집 사위가 되어(호적세탁) 지도교수와 쟁투(모략과 중상)를 겪으며 자리를 획득하고 약간의 오만스러움으로 과실치사(범죄)를 저지른 후 몰락해가는 주인공에게서 나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위로가 필요할 때 처음에는 웃음과 착함으로 쏠려간다, 하지만 정말 나의 삶을 개선해보려고 한다면 비극의 주인공들에게서 직접 배울점을 가져와 몸으로 해보는 것이 더 맞는 방법이리라.

 

드라마에서 개콘으로 다시 역사분석,성공학 이렇게 오가다 보니 추석이 가고 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관상 : 초회 특별 한정판 (2disc) - 콘티북 + 시나리오북 + 캐릭터엽서
한재림 감독, 송강호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14년 1월
평점 :
품절


척하면 미래를 알 수 있다면 얼마나 대단한 기술인가?

관상은 오랫동안 중국과 한국에서 중요한 기능을 해왔다.

그런 뛰어난 관상가도 결국은 실패한다는 것이 영화가 준 아이러니이자 교훈이었다.

왜 실패했을까?

마지막 말에 힌트가 있다.

파도를 보았지 바람을 보지 못했다.

한 명의 얼굴을 보고 해석은 했지만 그 얼굴이 가짜라는 건 전혀 알지 못했다.

이 한계는 고스란히 그의 가족사의 비극과 연결된다.

수양이 툭 던지는 자기 자식은 저렇게 비명횡사할 운명임을 몰랐던 말이냐 라는 언사는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꽃힌다.


사회에는 소위 전문가들이 있다.

특정한 영역에서 전문성에 기반해서 해답을 내놓는다.

그 위에 다양한 브랜드가 덧칠된다.

하버드 박사, 미국 최고 기업에서의 경력, 국제기구에서의 성취 등.

반대로 전문가의 함정이라는 말도 있다.

전문가들은 전문성에 매몰되어 더 큰 일을 못 한다는 말이다.


콜롬버스가 신대륙 탐험 계획안을 가지고 처음 찾아간 곳은 포르투갈 왕실이었다.

여기서 왕은 전문가 위원회에 이 안을 논의하게 했다.

결론은 불가로 나왔다.

그래서 스페인으로 갔는데 여기서는 여왕이 직감으로 하는 길로 밀어 붙였고 결과는 아 알듯이 대박이었다.


이렇게 전문가는 종종 함정에 빠진다.

아들을 출세의 길로 내보내고 잘 되기를 바라는 건 부모의 마음이다.

하지만 그가 모른 것은 시대가 난세라는 점이었다.

난세에는 소신가보다는 기회주의자, 학자보다는 교활한 모험가들이 활개를 친다.

소신 가진 이들은 쉽게 자신의 목을 저자거리에서 형리에 내놓게 된다.

해방과 6.25를 거치면서 우리는 난세를 겪었고 그렇게 사라져간 많은 재능들을 보았다.


관상가는 자신의 전문성으로 한 명 한 명의 얼굴은 보았지만 

결코 시대의 큰 흐름을 보지는 못했다.

그 역할은 역사가 해낸다.

관상과 역사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차라리 정관정요에 나온 형제들의 살육전, 당대 명나라에서 벌어진 조카를 죽인 영락제의 잔혹함을 읽어 간다면 같은 패턴이 반복될지 모른다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작은 기술에 치중하고 그걸 또 전문가의 눈에 과도하게 매달닌 점에서 문종과 단종의 비극이 나오게 되었다.


교훈을 정리해보자.

전문가의 브랜드가 주는 함정에 빠지지 말기를..

나는 하버드이름으로 비즈니스 리뷰 공부를 열심히 하지만 자기 자신의 삶에 적용하지 못하는 경우를 숱하게 보았다.

마케팅 이론을 아무리 익힌들 바로 옆사람을 자신의 고객으로 만드는 재주가 없다면 헛공부다.

차라리 주변을 관찰해서 고객 늘려가는 이를 보면서 자신을 한 발 앞서게 만드는 공부가 더 중요하다.

이론은 잿빛이요 오직 푸르른 것은 생명의 나무다.

기술과 문장의 함정에 빠져 살아 있는 삶에 대한 애정을 허투루 하지 마시기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 2판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김영하는 참 독특하다.

전혀 낯선 대상 위로 우리의 시선을 끌고 가서 찬찬히 살펴보도록 만든다.

퀴즈쇼에서는 3포세대의 고시원 골방, 빛의 제국에서는 간첩이라는 낯선 운명을 가진 이에게로 끌고 간다.

이 책 엘레베이터.. 는 단편 모음이다.

내 앞을 지나가는 무수한 인간들이고 만남은 찰나지만 그들 하나 하나의 삶은 참 유니크하고 소중하다. 무언가 의미를 두고 본다면 이야기가 쫙 풀어져나온다.

작가 김영하는 그렇게 이 소설집에서 여러 존재들에게 시선을 둔다.

마트 가서 물건 훔쳐먹고, 길가는 행인 퍽치기하는 잉여의 삶에서도 존재의 의미를 찾아낸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마라, 너는 누군가에게 따뜻한 존재였는가?라는 시가 있다.

길거리의 부랑아에게도 의리라는 것이 있고 진실됨이 있다는 걸 새삼 이 소설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의리와 진실, 사회와 조직체들이 그걸 원하지만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김영하는 아주 소소한 듯한 인생에도 그런 아름다움이 있다는 걸 드러내준다.


다른 소설들도 독특하다.

사랑하면 투명해지는 건조한 운명을 가진 은행원 이야기도 참 뛰어났다.

운명을 듣지만 그 운명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

카산드라가 그랬던가..

은행은 아주 철저하게 궤도와 같이 움직인다.

그래서 따분하지만 그게 엄중한 운명이다.

그런 그에게 다가온 아주 오랜 첫사랑의 추억. 하지만 그로부터 그의 운명은 바뀐다.

여자를 만나면 호기를 부여야 하고 평소 먹지 않던 갈비를 먹고 .. 그러려면..

IMF라는 거센 풍랑 속에서 무수한 은행원들이 스러져갔다.

궤도위의 삶에서 떨여저나가고 다시 어딘가 던져저버리는 사람들의 운명.

작가는 그들의 모습이 투명해졌다고 은유한다.

있지만 있는 것 같지 않은 존재로의 변화.

변신의 카프카에게서 그러한 삶은 벌레라는 존재로 그려진다.

작가의 투명함이라는 비유 또한 낯설지만 매우 훌륭한 선택이었다.

일에서의 존재감이 사라지니 가정에서의 존재감은 사라지고 욕망은 남지만 그 욕망을 이룰 수단이 사라지면서 말 그대로 투명해진 존재.

이 땅의 그 나이의 가장들, 아버지들에게 딱 맞는 절묘한 선택이었다.

다 읽고 우울하지만 쉽게 놓지 못하는 글을 만들어낸 작가의 솜씨에 경탄하였다.


작가 이야기를 약간 더 하면..

아이는 낳지 않는다, 고양이와 함께 산다.

어려서부터 낯선 곳에 던져지는 삶에 워낙 익숙했다. 아버지가 군인이었고 번 돈은 사기 당해서 날라가서 집들은 전전해야만 했다고 한다.

그덕분인지 작가는 여행가가 되었다. 자기 돈으로도 가고 남의 돈으로도 간다. 하이델베르그, 일본, 미국 등 여러 곳을 오간 체험은 때론 여행기가 되고 때론 소설이 된다.

장편 <검은 꽃>도 멕시코 여행이 받쳐주지 않았다면 그만한 현장감을 줄 수 없었으리라.. <옥수수>도 뉴욕의 위아래 거리를 오갔던 느낌들이 만들어냈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세계를 모두 끌어 안고 있는 작가의 행보에 기대가 크다.

한류는 퍼져나가지만 그걸 딸랑 딸랑 떨어지는 동전 세기로만 이해해서는 신통한게 되지 않는다. 문화의 뿌리는 인간상을 드러내는 소설이 담당해준다.

괴테의 파우스트가 파우스트박사와 메피스토텔레스라는 두 형태로 독일인의 특질을 포괄해냈듯이 김영하의 손에서도 밖에서 보는 한국인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킬 걸작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